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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태죄에 관한 연구 평가B괜찮아요
    낙태죄에 관한 연구{目 次國文要約‥‥‥‥‥‥‥‥‥‥‥‥‥‥‥‥‥‥‥‥‥‥‥‥‥‥‥‥第1章 緖 論‥‥‥‥‥‥‥‥‥‥‥‥‥‥‥‥‥‥‥‥‥‥‥‥‥‥第1節 問題의 提起‥‥‥‥‥‥‥‥‥‥‥‥‥‥‥‥‥‥‥‥‥‥‥‥第2節 硏究史‥‥‥‥‥‥‥‥‥‥‥‥‥‥‥‥‥‥‥‥‥‥‥‥‥‥‥第3節 硏究의 方法‥‥‥‥‥‥‥‥‥‥‥‥‥‥‥‥‥‥‥‥‥‥‥‥第2章 落胎罪 一般‥‥‥‥‥‥‥‥‥‥‥‥‥‥‥‥‥‥‥‥‥‥第1節 落胎罪의 意義와 保護法益‥‥‥‥‥‥‥‥‥‥‥‥‥‥‥‥‥‥第2節 落胎罪의 條文 構成‥‥‥‥‥‥‥‥‥‥‥‥‥‥‥‥‥‥‥‥‥第3節 刑法上의 落胎罪가 指向하는 價値體系‥‥‥‥‥‥‥‥‥‥‥‥‥第3章 落胎罪와 現實과의 乖離‥‥‥‥‥‥‥‥‥‥‥‥‥‥‥第1節 現實과의 乖離‥‥‥‥‥‥‥‥‥‥‥‥‥‥‥‥‥‥‥‥‥‥‥第2節 再生産權에 對한 論議‥‥‥‥‥‥‥‥‥‥‥‥‥‥‥‥‥‥‥‥第3節 憲法上 生命權에 對한 論議‥‥‥‥‥‥‥‥‥‥‥‥‥‥‥‥‥第4節 性風俗維持機制로서의 論議‥‥‥‥‥‥‥‥‥‥‥‥‥‥‥‥‥{第4章 落胎罪와 再生産權‥‥‥‥‥‥‥‥‥‥‥‥‥‥‥‥‥‥第1節 再生産權에 基盤한 패러다임의 變化‥‥‥‥‥‥‥‥‥‥‥‥‥第2節 批 判‥‥‥‥‥‥‥‥‥‥‥‥‥‥‥‥‥‥‥‥‥‥‥‥‥‥‥第5章 落胎罪와 憲法上의 生命權‥‥‥‥‥‥‥‥‥‥‥‥‥‥第1節 胎兒의 憲法上 生命權‥‥‥‥‥‥‥‥‥‥‥‥‥‥‥‥‥‥‥‥第2節 胎兒의 生命權과 其他 權利와의 衝突‥‥‥‥‥‥‥‥‥‥‥‥‥第6章 落胎罪와 性風俗維持機制‥‥‥‥‥‥‥‥‥‥‥‥‥‥第7章 結 論‥‥‥‥‥‥‥‥‥‥‥‥‥‥‥‥‥‥‥‥‥‥‥‥‥‥參考文獻‥‥‥‥‥‥‥‥‥‥‥‥‥‥‥‥‥‥‥‥‥‥‥‥‥‥‥‥국문요약낙태죄에 관한 연구낙태죄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숭고한 덕목을 지향하고 있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그 긍정적 가치를 인정해야만 하는 입법례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낙태죄에 대하여서 수많은 존폐논쟁 등이 있어왔다는 사실은 낙태죄가 가지는 본질적인 의미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낙태죄는 현행 형법에서 제269조 제1항의 자기낙태죄와 제269조 제2항의 동의낙태죄를나 1970년대에 들어와서 나타난 2가지의 헌법판결은 낙태의 절대적인 범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서독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과 미국연방최고법원의 판결로서, 태아의 생명권과 기존 사회 구성원이 가지는 권리 간에 발생한 충돌 현상에 대해 상이한 입장을 나타내었다. 먼저 서독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낙태의 자유화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생명권에 위반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Bverfge 38, s.1ff.그리고 미국연방최고법원의 판결은 낙태를 금지하는 주법(州法)이 헌법상 모체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한 것으로서 위헌이라는 내용이었다.{) Roe et al.V.Wade, District Attorney of Dallas Country, 410, U.S. 113(1973)결국 양자는 태아의 생명권에 대하여 기존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는 권리와 충돌했을 때 각기 다른 법해석을 도출해 낸 것이다. 이것은 낙태에 대하여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절대적인 금지의 의미를 반문하게 하고, 그 본질에 대하여 고찰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현재 낙태죄에 대한 논의는 낙태에 대해 허용하고 있는 몇 가지 사유들에 대해 그 범위를 확장하고, 나아가 낙태 자체를 합법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한 움직임이 바로 여성의 재생산권이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모자보건법상 규정된 몇 가지 적응요건에 대하여 그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 더 넓게 확장하여야 한다는 견해이다. 현재 의학적 요건, 우생학적 요건, 윤리적 요건이 인정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대다수 여성들의 낙태사유가 되는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포함시키자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자녀수의 제한을 두기 위해, 혹은 가계의 경제적인 상황 등을 고려하여 낙태를 한다는 것이다. 또 나아가 출산이나 낙태 등의 제반과정이 여성의 권리 라는 점에서 낙태죄의 존재 자체가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므로 낙태죄를 형법조문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한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여전자보건법이 규정하고 있는 적응요건들은 그 일반적 요건이 함께 갖추어 졌을 때 낙태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앞서 언급한 태아 중심의 입법 태도에서 그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일반적 요건으로서 의사에 의한 시술, 임부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 임신한 날로부터 28주 이내에 시술할 것 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요건이 구비되었을 때에 의학적 적응, 우생학적 적응, 윤리적 적응 의 적응요건 중 하나에 해당하면 당해 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되는 체계이다.{) Ibid., p.88~89.이러한 모자보건법상의 위법성조각사유들은 결국 낙태의 원천적인 금지에 대한 예외를 제공한다. 하지만 당해 요건들은 지나치게 그 범위가 좁게 규정되어 있고, 실질적으로 낙태의 가장 많은 사유가 되는 사회적·경제적 적응요건 등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서울대 bk21 법학연구단 공익인권법센터, 양현아 編,「낙태죄에서 재생산권으로」(서울: 사람생각, 2005), p.141~142.第 3 節 刑法上의 落胎罪가 指向하는 價値體系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형법상의 낙태죄는 원칙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 고, 모체보다는 태아의 생명을 우선시하며 모체에서 태아를 배출시키기만 해도 죄가 성립하는 태아 중심의 체제를 갖추고 있다. 비록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일반적 요건과 매우 좁은 범위의 개별적 적응요건을 두고 있기 때문에 낙태 허용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현행 형법상의 낙태죄는 낙태에 대하여 엄격한 규정을 적용함으로써 태아의 생명에 대한 우선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국내의 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기혼의 임부가 임신중절 수술을 하는 이유 중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사유가 자녀를 원하지 않아서(47.9%), 터울을 조절하기 위해서(11.1%), 임부의 건강상의 이유(9.7%)의 순서이며 기타 경제적 곤란(3.7%)리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낙태는 합법화되어야 함을 의미한 다. {) Ibid., p.60.낙태죄를 형법 조문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이처럼 낙태의 합법화를 요구한다. 그것은 여성들에게 있어서 재생산권이라는 개념을 통해 낙태죄의 폐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유사 이래 인간의 사회를 재생산해왔고, 그러한 재생산 과정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가진 여성들에게 있어서 낙태의 여부 등은 임부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법 체계가 낙태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요하고 있는 것 역시 여성이 가지는 재생산권의 개념을 인식하지 못한 일방적 사법작용이라는 것이다.그리고 현행 법 체계가 인정하는 예외적 허용사유에 대하여 그 범위를 수정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견해도 있다. 범위의 수정이라 하면 이른바 범위의 확장 을 의미하는데,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대한 사항이 그것이다. 현재 모자보건법 제14조에 규정되어 있는 적응요건들은 그 범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협소한 폭을 가지고 있기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미 언급된 바 있는 사회적, 경제적 사유에 대한 배제를 생각할 수 있다. 여성에게 있어서 아이의 출산, 양육이 임신한 여성이나 그 가정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본다면 국가가 무조건 출산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온전한 복지정책과 보육시설,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임부에게 있어서 출산과 양육은 가혹한 운명을 걷게 하는 형틀이 된다. 임신의 지속이 임부에게 있어서 의학적 정당화 사유와 동일한 비중으로 다가오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사회적, 경제적 사유로서 인정하여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현행 법 체계의 예외적 허용사유를 수정·확장해야 할 부분으로서, 우생학적 사유의 범위 확장이나 윤리적 사유의 범위 확장 등을 생각할 수 있다.따라서 재생산권은 낙태죄와 현실과의 괴리에 대한 문제인식과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낙태라는 문제를 인류학적 입장에서 접근하고, 여성들과라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있어 낙태는 자신들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고, 실질적으로 기혼여성의 경우 낙태란 사회적, 경제적 이유라는 절실한 원인에서 행해질 때가 대부분이다. 즉, 여성들이 현실 속에서 외치는 처절한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지극히 이상적이며 지고지순한 남성들의 논리로서 이어져 내려 왔다는 것이다.이러한 현실에 대한 해결방안으로서 일부에서는 재생산권에 기반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장하고, 또 그에 따른 낙태죄의 폐지 및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임신, 출산, 낙태, 양육의 문제는 여성의 생물학적 특수성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이에 대한 의무가 여성에게 부여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여성이 사회 진출을 할 수 있는 조건들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여성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낙태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언제, 어디서, 어떠한 방식으로 낙태를 할 것인가는 무엇보다도 여성의 이해를 중심으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 또한 형법에서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조항들은 삭제되어야 했다. 여성들에게 낙태는 완전하게 합법적인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아직도 낙태는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와 같이 모호한 허용 기준이나 절차 규정, 그리고 서로 모순되는 법의 공존은 언제든지 여성의 낙태권을 규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적 맥락의 변화에 따라 여성의 낙태권을 규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 Ibid., p.47.다시 말하면 낙태는 여성의 삶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이나 삶의 고통 역시 여성이 짊어지고 가야할 것이기에 그 무엇보다도 여성 자신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 그들의 삶의 고통을 공감할 수 없는 존재들이 법안을 만들고 시행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낙태에 대한 법 체계를 구축할 때에는 무엇보다 여성의 목소리가 절대적으로 반영되어야 하고, 그러한 합의체로서의 법만이 현이다.
    법학| 2007.06.23| 36페이지| 2,500원| 조회(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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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바울과 유대교와의 연속성 및 바울의 이방인선교 문제
    1. 들어가면서바울에 대해서는 초기 기독교의 신학을 체계화시키고, 정경의 틀을 형성시킨 신학자라고 이야기된다. 그만큼 초대교회사에서 바울이 공헌한 바가 크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바울에 대해서는 기독교 신학을 ‘만들어낸’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것 역시 바울의 신학적 관점과 사고의 틀이 초기 기독교 신학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무엇보다 바울이 독자적인 방향을 견지한 그의 이방인 선교와, 그것으로 인한 예루살렘 사도들과의 갈등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바울의 비(非)율법적 태도가 본질적으로 유대교와의 연속선상에 있는지를 고찰함으로써 당해 갈등관계의 본질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2. ‘바울 복음(The Gospel of Paul)’이 빚어낸 갈등바울에 대해서 또 하나의 별칭으로 언급되는 것이 ‘이방인의 사도’이다. 그것은 바울이 이방인에 대한 선교에 대해 남다른 열정이 있었고, 바울의 사역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기제로 작용하고 있기에 붙여진 별칭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 서중석 교수는 ‘바울의 복음’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그 독특한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바울의 복음은 이방 기독교인들과 예루살렘 교회 신도들 사이의 불화가 해소되기를 끊임없이 희망했다.) 그러기 위해서 바울은 유대의 율법적 행위들이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 일종의 장벽을 설치한다고 생각해서, 율법 행위에 대한 무조건적 준수를 거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은 예루살렘 교회 신도들의 생각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율법 준수를 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각하기 어렵다는 견해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계속해서 율법행위와 신앙인의에 대한 차이를 언급하며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의 조건을 한정시켜 이방인들에 대한 활로를 열어 놓았다. 이러한 부분들은 특히 예루살렘 사도들과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한 사건 역시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빚게 된다. 또한 이러한 갈등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공생애 기간 중에 직접 목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도권’의 갈등 문제로 해석되기도 한다.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러한 바울의 이방인에 대한 태도는, 기존의 유대인이 지켜왔던 율법 행위들에 대하여 그 실효성을 축소시켜 버린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예루살렘 사도들은 여전히 율법 행위 역시 준수해야 한다는 견해를 취했으므로, 오히려 유대교와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누구보다 유대교에 열심이었던 사람이었고, 그 사고 체계에 종속된 사람이었다.) 그런 바울에게 있어서 완전히 유대교와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태도가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입증 받을 수 있었을까? 여기서는 이러한 의문을 시작으로 바울에게 있어서 유대교와의 연속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연속성이 입증된 상태에서 바울이 당해 사회 속에서 무엇을 실천하고자 했던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3. 바울의 ‘유대교’와의 연속성바울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 성서학에 기인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하여는 바울 서신에 나타난 부분들을 중심으로 성서학적인 관점으로 접근해 갈 것이다. 신약 성서, 특히 바울 서신에 나타난 바울의 ‘유대교와의 연속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본 연구의 핵심이 되는 이 부분은 특별히 서중석 교수님의 「바울서신해석」에 나타난 논지를 따라서 기술한 것임을 밝혀둔다.(1) 연구의 개설바울의 신학이 당시 존재했던 유대교의 사상과 어떤 연속선상에 있는가? 여기서는 세 가 지 항목을 통해 바울의 신학이 유대교와 어떤 연속선상에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각 항 목에 대한 기술을 통해 바울 신학의 성격을 고찰해 본 후, 결어에서 그 의미를 종합해 보 도록 하겠다. 먼저 그 세 가지 항목은 다음과 같다.1) 바울의 ‘다메섹 사건’은 회심인가? 소명인가?2)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분리시키는 장벽 설치 방편으로서 율법 행위에 대한 바울의 비 판도 유대교와 연속선상에 ‘회심’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유대교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즉 유대 교와는 전혀 다른 기독교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명’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유대교 내에서의 활동의 변화가 된다. 다시 말해 유대교와의 연속선상에 있게 되는 것이 다. 이에 대해 슈텐달 등의 학자는 그것을 소명이라고 주장하고 세갈 등의 학자는 회심으 로 이해한다. 사실 해석자들에 따라 그 이해는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는 다메섹 사건에 대해서 바울 자신이 직접 보도한 갈1.13~17을 통해 그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13~14절을 통해 바울은 자신의 변화되기 전의 모습을 설명한다. 그는 스스로 ‘열심을 낸 사람’이라고 진술한다. 이러한 내용은 15절 첫 부분에 나오는 ‘그러나’를 중심으로 역전 된다. 바울은 15절의 ‘그러나’를 16c절과 17절 곧 “내가 혈육(육과 혈)과 의논하지 아니하 고 …예루살렘으로도 올라가지 않았다”는 진술과 연결시키며 자신의 견해를 명확히 한다. 즉 바울이 변화된 후 달라진 것은 ‘육과 혈(유대교적 전통에 서 있는 유대인들)’과 의논하 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이러한 해석은 바울이 변화된 후 유대교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논 의를 거부하게 한다. 바울은 단지 이전에 알아오던 유대교인들과 더 이상 신학에 대해 의 논하지 않았을 뿐, 그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킨 것을 아니었다. 결국 바울은 유대교 와의 연속선상에 있는 상태로서, 다메섹 사건을 ‘소명’이라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3) 유대인과 이방인을 분리시키는 장벽 설치 수단으로서의 율법 행위에 대한 바울의 비판바울의 이방인에 대한 포용이 구약적 근거를 갖고 유대교와의 연속선상에 있는지를 고찰 해 보고자 함이다. 그것은 소제목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던 율법 행위에 대하여, 이를 거부하는 신앙인의론이 구약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 알아보 는 데에서 출발한다. 대표적 학자로서 던은 그러한 근거를 이사야 58장, 아모스 5장, 미가 3장, 에스겔 18장 5~9절, 스가랴 족하다. 이유는 그 구절들이 돌볼 것을 종용하는 대상이 이방 인이 아닌 유대인 내에서의 소외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던의 근거들은 모두 설득력을 잃게 되고 오직 레위기 19장 34절만이 남게 된다. 그것은 “타국인을 …자기 같이 사랑하 라”라고 이야기한다. ‘타국인’이라는 명시적인 언급이 있기에 이방인의 포용에 대한 구약적 근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던의 연구는 그 근거 제시가 매우 빈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예레미야 9장 25~26절의 ‘마음의 할례’, 31장 33절의 ‘새 언약’ 등의 가시적인 표지를 통해 구약적 근거를 확보하고자 한다. 바울의 이러한 견해를 로마서 2장 28~29절 에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체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다. 오히려 내 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마음의 문제이니, 영적인 것에 있고 문자적인 것에 있지 아니하다”라는 부분을 통해 알 수 있다. 바울은 구원이 율법의 행위가 아닌 신앙에 의해 의롭다함을 받는 것을 통해 얻어진다라고 이야기한다. 바울은 결국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 이에 그어진 전통적인 경계선을 거부하였고, 그러한 사상은 구약적인 근거를 통해 설명되 어질 수 있는 것이다. 즉 유대교와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또한 바울의 이러한 비판은 유대교에 대한 외부적인 공격 같은 것이 아니라 유대교 내의 내부적 비판과 유사하다. 실 제 바울은 언약을 무시하지 않았고 율법을 거부하지도 않았다. 더 나아가 율법 행위가 구 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한 바리새적 유대교의 ‘언약적 율법주의’와 비슷하였다.(4) 바울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강조도 유대교와의 연속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가?앞서 언급한 것처럼 바울은 구원의 통로가 율법 행위가 아닌 믿음(신앙)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견해는 당시 유대교와 연속선상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대립 관계에 있는 것인가? 먼저 당시 사회에서 예수라는 메시아에 대한 강조가 어떤 의미를 가 지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따라서 바 울의 예수에 대한 메시아 주장은 유대교와 연속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다음으로 율법 행위가 아닌 믿음을 통한 구원이 유대교와 대립되는 것이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앞서 사용했던 그 구약적 근거를 찾아보는 작업을 통해 이루어 진다. 만약 그 구약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유대교와 연속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로마서 4장 11절에서 나타난 바울의 아브라함에 대한 언급을 살펴 보려 한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할례로 대표되는 율법을 행하기 이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할례 받지 않고도 모든 믿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게 하려는 것(롬4.11)”이 라고 주장한다. 즉 아브라함 때부터 이미 구원은 그 율법 행위가 아닌 '믿음'에서 기인한다 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믿음에 대한 구약적 근거를 찾아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또 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작업이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이방인을 그 구원 대상에 포함시킨다 는 것에 있다.그렇다면 바울이 구원의 통로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이 유대교와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가? 위의 두 단락에서 예수에 대한 메시아성이 문제될 것이 없고 믿음을 강조한 부분 역시 유대교와의 연속선상에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두 가 지 부분이 다 성립하므로 바울의 주장은 유대교와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가? 대 답은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바울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두 가지 근거에 서 유대교와의 연속선상에 있다. 예수의 메시아성, 믿음의 강조 모두 유대교와 일치하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율법의 중요성도 간과하지 않았기에(비록 율법이 그리스도와 동등하 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더욱 유대교와 동일선상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구 원을 향한 통로가 ‘오직’ 그리스도 예수임을 주장하였기에 유대교와 단절되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이것은 당시 유대교의 관용을 넘어선 것으로서 예루다.
    인문/어학| 2007.01.18| 5페이지| 1,000원| 조회(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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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출애굽의 역사성과 그 의미
    출애굽의 역사성과 그 의미차 례서 론????????????????????????????????????????????????????????????????????????????????????????????????????????????????????????????????????????????????????????????????????????????????????????????????????????????1제 1 절 : 문제 제기??????????????????????????????????????????????????????????????????????????????????????????????????????????????????????????????????????????????????????????????????1제 2 절 : 연구사 및 연구 방법론????????????????????????????????????????????????????????????????????????????????????????????????????????????????????????????????1제 1 장 : 출애굽의 연대에 관한 논의?????????????????????????????????????????????????????????????????????????????????????????????????????????????????????????3제 1 절 : 주전 15세기 설???????????????????????????????????????????????????????????????????????????????????????????????????????????????????????????????????????????????????3제 2 절 : 주전 13세기 설???????????????????????????????????????????????????????????????????????????????????????????????????????????????????????????????????????????????????????????????????????????????????????????????????????????????????????????????????????????????????????????????????????????????????????????????12서론제 1 절 : 문제 제기출애굽 사건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하지만 그 모든 논의들은 역사적 실체성을 입증해줄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사상누각’이라고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수많은 논의들 속에서 어떠한 통전적인 그림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이고, 나아가 당해 그림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논문에서는 출애굽의 연대, 출애굽의 경로 등 당해 사건이 가지고 있는 여러 연구 분야에 대해 세부적으로 논의한 후에, 그러한 이야기들 속에서 어떤 하나의 통전적인 시사점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에 지극히 신화적이고 기적적인 관점에서 기록된 당해 기사가 온전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제 2 절 : 연구사 및 연구방법론출애굽의 역사성에 대한 논의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깊이 있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출애굽의 역사적 실체에 대하여 정언하여 줄 수 있는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무엇이 사실이라고 확언하기에는 여전히 문제가 많다.연구사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자면, 크게 ‘출애굽의 연대’와 ‘출애굽의 경로’라는 두 가지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구약성서를 통한 연구방법과 구약성서 외의 역사적 사료를 통해 연구하는 방법을 병행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먼저 출애굽의 연대와 관련해서는 주전 15세기 설, 주전 13세기 설이 제기되고 있다. 각각의 학설들은 열왕기상 6:1절이나 출애굽기 1:11절과 같은 성서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며, 여리고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한 역사적 사료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성서적 근거의 경우 기술한다. 이럴 경우 솔로몬의 제4년이라는 시점에서 480년이라는 시간을 역산해간다면 출애굽의 연대를 계산할 수 있게 된다. 애굽왕 시삭이 주전 925년 침략한 것을 감안하면 솔로몬은 주전 930년까지 통치했을 것이고, 솔로몬의 재위 기간이 40년임을 감안하면 솔로몬 제4년은 주전 966년이 된다.) 그러나 480년이라는 숫자는 12세대에 각각 40년을 부여해서 계산해낸 ‘어림수’, ‘총수’라고 반박되어지기도 한다.) 특히 주전 13세기 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아버지의 탄생부터 아들의 탄생까지로 계산되는 ‘한 세대’는 대략 25년 가까이 되므로, 12세대는 480년이 아니라 약 300년이 되어서 오히려 주전 13세기 설을 증명하는 논거가 된다고 한다.)두 번째로 아르마나 문서에 나타나는 ‘아피루’에 대해서는, 아피루들이 가나안 지역을 침공하여 당시 예루살렘의 지배자였던 ‘히바’가 놀라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이 아피루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이 논점이다. 이 문서의 수신자였던 아케나톤이 주전 1370~1353년 동안 애굽을 통치했던 것을 감안하면 출애굽은 주전 15세기 중엽에 발생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하여 주전 13세기 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아피루와 이스라엘 백성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반박하기도 한다.)세 번째로 사사기 11:26절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사기 11:26절에는 입다 이전시대에 이스라엘이 헤스본을 중심으로 요단 동편 지역을 300년간 정복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입다의 시대를 주전 1100년경으로 보았을 때, 300년을 역산하면 주전 1400년경부터 당해 지역을 정복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이것은 출애굽의 연대가 주전15세기 중엽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한다.마지막으로 여리고의 멸망 연대에 관해서는 빔슨의 고고학적 발굴로 인해 주전 1430년이 여리고의 멸망 연대라는 논의가 존재한다. 주전 1430년에 여리고가 파괴되었다면 그것은 후기 청동기 시대가 되고, 출애굽의 연대는 그보다 40년 전인 주전 14 족은 주전 17세기 중엽 애굽의 지배권을 장악하고 ‘아바리스’를 수도로 정하여 약 100년간 애굽을 통치하였다. 여기서 주된 논점이 되는 것은 요셉과 이집트로의 이주가 주전 17세기 중엽 힉소스 족의 유입과 동시대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주전 17세기 중엽에서 400년이 지난 시점은 바로 주전 13세기가 된다.제 3 절 : 주전 16세기 설주전 16세기 설을 주장하는 견해의 핵심적인 논거는 주전 1540년경 최종 마무리된 힉소스의 추방 사건을 출애굽의 모형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힉소스 족의 애굽 통치가 아바리스와 샤룩헨을 중심으로 유지되어 오다가 카모세에 의해 아바리스가 함락되고, 악흐모세에 의해 샤룩헨이 함락되자 전세가기울어진 힉소스 족은 추방의 위기에 놓여진다. 이러한 힉소스 족의 추방은 성서적 출애굽의 모형으로 상정할 수 있기에 주전 16세기 설을 주장하게 된다. 이후에 힉소스 족의 추방은 그들의 붕괴로 인해 가나안의 도시국가들 사이에 세력다툼을 발생시키게 된다. 그것은 중기 청동기 시대의 여리고가 주전 1550년경 심하게 파괴되었다는 고고학적 발굴의 배경사적 설명이 될 수 있다.)제 2 장 : 출애굽의 경로에 관한 논의출애굽의 경로에 관한 논의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그것은 북방 경로설, 중앙 경로설, 남방 경로설의 세 가지이다. 각각의 견해는 이동 경로와 얍숩의 위치, 시내산의 위치 등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그리고 드보의 이중 출애굽설은 첫 번째 출애굽은 북쪽방향, 두 번째 출애굽은 남쪽방향이었다고 언급한다.제 1 절 : 북방 경로설북방 경로설은 비돔과 람세스를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중해 안으로 이동했다는 설명이다.) 이럴 경우 얌숩은 포트 사이드의 서쪽 멘잘레 호수이거나 시르보니스 호수이다. 이곳은 넓은 갈대 지역이 분포해 있고, 강한 동풍이 불어서 바닷물이 밀려오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때 시내산의 위치는 얌숩과 가데스 바네아 이면서 가데스 바네아의 근처에 있다고 한다.중이라고 하며 각각의 탈출 경로 역시 다르게 상정한다. 레아 집단의 경우 북방 경로를 통해 가데스 바네아로 갔고, 라헬 집단의 경우는 남방 경로를 통해 시내산 사건을 경험한 후 가데스 바네아로 갔다고 한다. 이들 두 집단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만나 라헬 집단의 시내산 전승을 공유하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출애굽의 연대 문제 역시 양쪽이 다르게 설정된다.)제 3 장 : 역사성과 관련된 그 외의 문제들출애굽의 역사성과 관련하여 그 연대와 경로의 문제를 제외하고 논의할 수 있는 것을 언급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렬을 인도하신 야웨의 모습에 대해, 그리고 만나와 메추라기에 대한 드보의 이중 출애굽설의 견해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먼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렬을 인도하신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성서에 기록된 부분은(출애굽기 13:21절) 야웨께서 자신의 백성을 직접 초자연적인 권능으로 인도하셨다는 어조로 기록되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하여 그것은 군대나 대상들이 행진할 때 그 열을 나타내기 위하여 맨 앞에 불화로를 들고 갔다는 고대 관습을 떠올리게 한다고 언급된다.) 즉 그것은 행렬의 방향을 바꾸고자 할 때, 맨 앞에 있는 우두머리가 불화로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불을 피웠기 때문에 낮에는 연기로써, 밤에는 불빛으로서 행렬을 이끌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온전히 그것으로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한다. 이유는 불과 구름을 사막의 뜨거운 바람(시로코)으로 상정했을 때 구름, 불, 번개, 비, 북쪽 산악 지대의 폭풍현상 등으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그것은 해당 지역의 경이적인 자연 현상을 통해 야웨의 돌보심과 권능을 묘사한 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두 번째로는 만나와 메추라기에 대한 드보의 견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굶주린 이스라엘을 위해 야웨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다는 초자연적인 기사는 그 역사성에 대해 질문을 하게 한
    인문/어학| 2007.01.18| 14페이지| 1,500원| 조회(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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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구약성서 비평학의 몇 가지 방법론
    1. 아모스 1장을 양식비평적 방법으로 분석하시오양식비평적 방법이란 성서 문학의 장르를 분석하여 당해 본문이 갖는 배경 등을 통해 저자의 의도를 연구하는 방법론이다. 그것은 하나의 작품을 개별 문학단위로 나눈 뒤, 각 문학단위가 갖는 장르를 분석하고, 그 장르가 당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어떤 기제로 쓰였는지를 고찰한다. 나아가 그러한 쓰임 속에서 저자가 궁극적으로 어떤 의도를 나타내고자 했는지를 생각해본다.이러한 양식비평적 방법에 의해 아모스 1장을 분석할 경우, 당해 본문 내에 존재하는 개별 문학단위를 구분해내는 것이 우선 과제이다. 아모스 1장은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고 있다. 이때 주변 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개별 국가에 대하여 하나의 단위를 이루며 반복되고 있다. 그것을 구분하자면 1:3~5(아람에 대하여), 1:6~8(블레셋에 대하여), 1:9~10(두로에 대하여), 1:11~12(에돔에 대하여), 1:13~15(암몬에 대하여)의 형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이 구분된 개별 문학단위가 특정한 ‘양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먼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로 시작하여 “OO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라는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따라서 아모스 1장을 양식비평적 방법으로 분석함에 있어서는 당해 양식이 어떤 상황 속에서 사용되어지던 것인지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당해 양식의 사용배경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첫 번째는 ‘사자형식(使者形式)’ 혹은 ‘심부름꾼의 어투’로 보았을 경우이다. 고대 근동에서 주인의 뜻을 대신 전달하거나 할 경우, 사자형식을 사용한다. 그것은 먼저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밝힌 후, 그 주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심부름꾼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을 전달한다는 선언을 하고 있기에, 그 주인의 권원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즉 대언(代言)을 하는 것이다. 아모스 1장의 개별 문학단위 역시 이러한 사자형식과 같은 양태를 나타내기에 아모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달한 것이라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양식비평적 방법의 논의에 맞추어 보자면, 아모스는 당시에 사용되어지던 사자형식이라는 특별한 ‘양식’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권원을 갖고 메시지를 선포하였다는 것이다.두 번째는 당해 양식이 ‘성전에서 사용되어지던 제의적 저주’로서의 의미를 가질 경우이다. 그것은 특히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이방 민족의 탄압을 저주하는 데에 사용되어 졌다. 버나드 W. 앤더슨은 그의 저서 『구약성서 이해』(크리스챤 다이제스트, 강성열 노항규 譯, 1994)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열방들에 대한 야훼의 심판’(암1:3~2:3)에 관한 부분에서 아모스는 성전에서 야훼의 택함 받은백성을 위협하는 원수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데 사용되었던 제의적 ‘저주’를 채택하고있다. 그렇다면 아모스는 이 형식에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셈이 된다.”결국 아모스 1장의 특정 양식이 성전의 제의에서 사용되던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아모스서의 기자는 성전 제의에서 사용되어지던 저주의 양식을 주변 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에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당해 양식이 갖는 특성을 자신의 저자적 의도 하에 포섭시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당해 양식을 놓고 사자형식으로서의 의미와 제의적 저주로서의 의미로 양분한 것이 불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자형식이라는 메카니즘 하에 성전의 제의에 대한 논의가 포섭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 근동 사회에서 사회학적으로 두 가지 용례가 갖는 차이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기에 기술해 보았다.결론적으로 아모스 1장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라는 특정문구로 시작하여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특정 양식을 나타낸다. 그것은 ‘사자형식’으로서의 의미와 ‘성전의 제의적 저주’로서의 의미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아모스서의 기자가 당해 양식이 당대의 사회에서 가졌던 사회적 함의를 자신의 저자적 의도 하에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2. 수사비평적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시오수사비평적 방법론은 성서 본문이 가지고 있는 문체적 특성과 문학적 기교들을 통해 연구하는 방법론이다. 수사비평적 방법론은 원래 ‘화법’에 대한 연구였으나 ‘문체’에 대한 연구로 그 관심이 이전된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수사비평적 방법론의 시작이라고 이야기되는 것은 뮐렌버그 학파이지만, 실제 그 기원은 어거스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거스틴은 키케로의 수사학적 방법론을 자신의 ‘연설가의 의무 사항’들을 설명하는데 사용하였다. 이후에도 베데, 유다 메써 레온, 존 칼빈 등이 수사비평적 방법론을 사용하였으나, 수사비평적 방법론이 다시 소개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뮐렌버그 때부터이다.뮐렌버그는 1968년 ‘성서문학학회’에서의 연설에서, 성서 본문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사용되어왔던 양식비평의 방법론을 더욱 확장시키자는 취지의 강연을 했다. 그것은 하나의 특정한 본문 속에서 나타나는 문학적 특징들을 고찰해봄으로써 성서 해석을 더욱 주의 깊게 해보자는 것이었다. 또한 뮐렌버그는 수사비평이 양식비평을 대치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양식비평을 보충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뮐렌버그의 수사비평적 방법은 한 본문의 특수한 수사적 형태를 나타내는 ‘사상의 병행’이나, 수사적 구조들, 패턴 등에 관심을 가졌다.그러나 뮐렌버그에게 있어서 수사비평적 방법은 양식비평의 보충적 방안으로 사용된 것이기에, 실제 그것을 통해 성서 본문을 해석하는 데에는 모호함이 남아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뮐렌버그의 제자들이 이룬 뮐렌버그 학파에 이르러 조금씩 해결되어 갔는데, 그것은 1974년 발간된 『Rhetorical Criticism: Essays in Honor of James Muilenburg』라는 책에 나타나 있다. 뮐렌버그 학파의 수사비평적 방법론은 문체론적 연구에 많은 방향성을 나타내었고, 주로 주어진 본문의 문체들이나, 문학적 기교, 일관성, 특수성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의 수사비평적 방법론의 특징은 크게 네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첫 번째는 그들이 하나의 성서 본문을 공시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그 안에 나타나는 수사적 장치들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수사학적 장치란 인클루시오들(처음과 끝이 같은 모양이어서 하나의 ‘단위’를 알려주는 기제들), 교차대귀적 형식들, 평행법적 문장들, 언어유희, 시의 운율, 단어의 반복, 주요 주제, 사자형식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렇게 문학적이고 기교적인 방법론을 통해 성서 본문을 연구하게 된다. 두 번째는 그들이 수사학적 장치에 따라 본문을 몇 가지의 부분들로 나누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양식비평의 그것과도 비슷한 양상인데, 뮐렌버그 학파는 이러한 방법론들을 통해 양식비평가들의 견해와 같은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고 다른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세 번째는 그들이 ‘문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성서 본문 내에서의 문학적 통일성을 찾아내고, 성서 기자가 강조하려고 했던 내용을 밝혀내려 했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그들이 양식비평과는 달리 성서 본문에 나타나는 언어들의 그 ‘언어 외적의 의미’를 통해 본문의 의미를 알아보고자 했음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미에 대한 연구’는 그 자체가 문체론에 대한 관심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본문에 내포된 의미보다는 양식비평에서 문학적 통일성이 인정되지 못한 부분에 대하여 그 통일성을 입증하려는 노력에 국한되어 있었다.뮐렌버그 학파의 수사비평적 방법론은 이후에 ‘본문 구성의 기술에 관심을 갖는 부류’와 ‘본문의 설득력에 관심을 갖는 부류’의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연구는 케네디 학파의 수사비평이 등장하기 전까지(비록 그것이 신약에 대한 부분이라 하더라도), 본문에 내포된 역사적 정황과 청중에 대한 저자의 수사적 영향력을 포섭하지 못한, 오로지 문학적 특성에만 국한된 모습을 나타내었다. 참고로 미가서 1:2~3:12이 수사비평적 방법론을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3. 역사비평적 연구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설명하시오역사비평적 연구는 구약신학의 3가지 연구방법론인 Diachronic Methods, Synchronic Methods, Achromic Methods 중에 첫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통시적인 연구를 지향한다. 역사비평적 연구는 성서 본문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적인 정황 등을 재건하여, 성서 해석에 있어서 온전한 이해를 추구하고자 한다. 그러한 가운데 역사비평적 연구는 ‘하나하나를 쪼개서 연구한다’라는 특징을 갖게 된다. 역사비평적 연구가 성서 본문이 향유하는 역사적 배경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객관적인 연구를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본문과 독자 사이의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또한 교회가 신학적 관점이 없는 성서연구를 필요로 하는가하는 점에서도 한계를 나타낸다.역사비평적 연구는 여러 가지 방법론의 양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본문비평, 자료비평, 양식비평, 전승사비평, 편집비평, 역사비평적 접근 등의 항목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본문비평의 경우 그 방법론은 ‘처음의 본문을 추적해가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것은 주로 여러 사본들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대표적인 예가 마소라 사본과 칠십인 역의 비교이다. 양자간의 비교를 통해 서로 다른 점과 통일성 등을 찾아내어 궁극적으로 가장 처음의 성서 본문을 추적해간다.
    인문/어학| 2007.01.18| 4페이지| 1,000원| 조회(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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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사랑`의 선지자로서의 아모스에 대한 연구
    1. 문제 제기 및 연구 방법론일반적으로 아모스서는 ‘정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것은 예언자 아모스가 당시의 종교적, 사회적 범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외치며 심판을 선포하는 내용이 아모스서의 주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본 연구는 그러한 명제에 대하여 의문을 갖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모스는 북왕국에 대하여 오직 심판만을 이야기했을까?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은 불가변적이고 절대적으로 예정되어진 것이었을까? 반대로 아모스를 심판의 선지자가 아닌 ‘사랑’의 선지자로 명명할 수는 없는 것인가?이러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개괄적인 방법론은 다음과 같다. 먼저 아모스와 아모스서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들을 고찰한 후, 특별히 암9:11~15에 나타나는 ‘회복’ 내지는 ‘사랑’의 개념을 통해 아모스서가 사랑을 수반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논의해 볼 것이다. 여기서 아모스와 아모스서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라 함은, 예언자 아모스에 대한 개인적 배경과 그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 아모스서의 구조, 아모스서의 편집사, 아모스서의 계약 개념에 대한 논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암9:11~15에 대한 논의는 그것이 후대의 첨가인지 아닌지 하는 점을 중심으로 학자들의 견해 대립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부에서는 이러한 모든 논의를 종합하여 아모스서에 면밀히 흐르는 ‘회복’ 내지는 ‘사랑’의 개념을 고찰하고, 나아가 아모스를 ‘사랑의 선지자’라고 명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2. 아모스와 아모스서에 대한 일반적 고찰(1) 예언자 아모스아모스는 드고아 출신의 목자였다. 드고아는 남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암1:2에서는 ‘시온’과 ‘예루살렘’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이러한 두 가지 사항은 아모스가 남왕국의 전승을 견지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아모스는 이렇게 남왕국의 전승을 가지고 북왕국에서 활동한 예언자였다. 그리고 아모스는 ‘뽕나무를 배양 하는 자’로 언급되는데, 여기서 뽕나무를 배양한다는 비슷환 열매에 구명 을 내줌으로써 안쪽에 생긴 벌레들이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2) 아모스서의 시대적 배경아모스가 활동했던 시대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이른바 ‘일시적인 안정기’로 표현할 수 있다. 당시 고대 근동의 상황은 맹주인 앗수르의 세력 변화에 따라 그 형세가 달라지 는 모습이었다. 당시 앗수르의 세력이 약화되고 시리아의 세력 역시 약화되는 등 이스라 엘에게 유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일시적인 번영기를 누리게 된 것이다. 이 때에는 경제적 인 부흥기도 맞게 되는데 이세벨의 고국인 두로와의 무역으로 인해 상인 계층이 번성하였 고, 그들의 종교인 바알 종교가 편만하게 되었다. 그리고 상인 계층의 번성은 상대적으로 농민 계층과의 빈부격차를 형성하였고, 이러한 모습은 가난한 자에 대한 억압으로 나타나 게 되었다.(3) 아모스서의 구조아모스서의 구조 일반은 다음과 같다.1:1~2 제목과 주제1:3~2:16 민족들에 대한 심판 (아람,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 모압, 유다, 이스라엘)3:1~6:14 구체적인 심판 메시지 (종교적, 사회적 범죄에 대하여)7:1~9:6 이스라엘의 파괴를 알리는 다섯 가지 환상9:7~15 다윗왕조의 회복(4) 아모스서의 편집사아모스서의 편집사에 대해서는 그것이 단 한 차례에 의해서 기록?편집되었다기보다, 수 차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대표적으로 뉴섬은 아모스서가 오늘의 형태로 구성된 것은 후대의 편집자에 의한 것이라고 진술하였고, 블렌킨소프는 좀 더 구 체적으로 그것의 최종편집이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며, 제2성전 시기에 예루살렘에 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쿠트는 블렌킨소프가 막연히 수세기에 걸쳐 이 루어졌다고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편집이 세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 졌다고 주장한 다. 그것은 주전 8세기 중반과 주전 7세기, 그리고 주전 6세기경이라고 한다.) 주전 8세 기 중반의 편집은 주로 심판에 대한 내용이, 주전 6세기경의 편집은 회복에 대한 내용이 다.(5) 아모스서의 계약 개념아모스서는 그 본문 내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규정짓는 특수한 용어를 사용한 다. 그것은 바로 ‘야다(yada)’로서 ‘알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남녀 간의 은밀한 관계나 고대 근동에서의 종주와 봉신 사이의 계약 관계를 나타낼 때 사용한다.) 아모스서에서는 바로 후자의 개념으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례를 종주?봉신 계약관계로서 규정하고 있다. 아모스가 선포하는 심판의 메시지는 바로 이러한 계약관계를 이스라엘이 깨뜨림으 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아모스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위가 성전에서의 이교적 행음(암2:7~8), 형식적인 종교생활(암4:4~5), 사회적인 죄(암 5:12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비판한다.3. 아모스서의 ‘회복’ 내지는 ‘사랑’의 개념암9:11~15은 그전까지 일관적인 심판의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회복’에 대한 메시지로 분위기를 바꾸게 된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후대의 첨가라는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반면에 당해 부분을 반드시 후대의 첨가로 볼 수는 없다고 하거나, 더 나아가서 당해 부분이 후대의 첨가가 아니라 예언자 아모스 시대의 것이라고 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여기서는 그러한 학자들의 견해를 다양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먼저 핸슨은 암9:11~15 이전에 등장하는 암5:15에서의 ‘남은 자’ 개념이 후대에 암9:11~15을 첨부하게 된 사상적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후대의 편집자가 남은 자에 대한 구원의 희망을 토대로 암9:11~15을 첨가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쿠트 역시도 당해 부분을 주전 6세기경의 마지막 편집과정에서 첨가된 것이라고 본다. 그럴 경우 마지막 편집자의 상황을, 포로기 말엽이나 그 직후에 회복을 간절히 희망하는 모습으로 상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올드의 경우는 당해 부분을 반드시 후대의 첨가로 볼 수는 없다는 견해를 내비친다.“Such a move from negative to positive and introducethat day'(9.1) and 'behold, the days are coming'(9.13) is part of a much wider pattern in classical biblical prophecy.")올드의 견해에 의하면 암9:11~15이 외견상으로는 앞의 심판의 분위기와 반대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 11절의 ‘그 날에’와 13절의 ‘그 날들이 이를지라’라는 미래적 표현은 심판과 구워의 메시지에 균형을 주는 예언서의 보편적 관행이라고 생각되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해 부분이 한 명의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을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주장이다. 결국 올드는 당해 부분이 후대의 첨가라고 보는 것에 대해 조금은 소극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그리고 라솔은 당해 부분이 분명 아모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서 세 가지를 상정한다. 그것은 암7:2,5에서의 중보에 대한 응답, 언약신학에 기인한 궁극적 회복의 희망, 암9:11의 ‘다윗의 무너진 장막’에 대한 분사형 해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암7:2,5에서는 아모스가 야곱을 위해 두 번 중보 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두 번 다 응답해 주신다. 이러한 기록을 보았을 때 아모스 자신이 ‘회복’과 ‘사랑’의 개념을 이미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암9:11~15은 아모스 자신에 의한 기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언약신학의 관점에 기인한 궁극적 회복의 희망이다. 아모스서는 성서 본문에서 언약 관계에 입각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성을 이야기한다. 언약신학이 궁극적으로 희망을 상정한다고 했을 때, 일반 대중이 아닌 예언자로서의 아모스가 그러한 사실을 몰랐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암9:11의 ‘다윗의 무너진 장막’의 해석이 히브리 원문에서는 분사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이 구절의 원문은 분사형으로 되어 있다.("the booth of David [which is] falling")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 다윗의 장막”(the falling booth of David)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따라서 다윗의 장막은 이미 무너진 것이 아니라 현재 무너지고 있다는 성서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암9:11~15은 아모스 자신의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판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솔은 왕국 분열과 ‘아합과 이세벨’의 사건 등으로 인해 이미 북왕국이 멸망하고 있다는 인식이 당시에 존재했다고 한다. 그런 견지에서 당해 부분은 아모스 자신의 것이라고 입증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4. 결론그렇다면 아모스서의 주제에 ‘회복’과 ‘사랑’의 개념을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인가? 아모스를 ‘사랑의 선지자’라고 언급할 수 있는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하여 아모스서가 표면적으로까지 그러한 사랑을 나타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아모스서의 분위기는 분명 일관하여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면밀히 회복과 사랑의 주제가 흐르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분위기’라는 것은 전체적인 느낌을 형성할 수는 있지만 그 본질에 대해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모스서에는 암5:6의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와, 암5:14의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암5:15의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라는 희망의 구절이 암9:11~15 이전에 등장한다. 즉 아모스서 내에는 면밀히 회복과 희망, 그리고 사랑이라는 선인식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 인식과 함께 아모스가 종주?봉신의 계약관계를 함께 인식하고 있었다면, 아모스가 지향하는 것 역시 당해 계약관계가 잘 이행되고 유지되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아모스서는 표면적으로 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발하고 심판을 선포하는 내용이 주가 되었기에, 그 사랑의 개념이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 심판의 분위기 속에 사랑의 개념이 전제된 것이었음을 있다.
    인문/어학| 2007.01.18| 5페이지| 1,000원| 조회(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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