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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창녀의 노래를 읽고
    늙은 창녀의 노래를 읽고글읽기와 삶이라는 시간에 늙은 창녀의 노래라는 책제목을 접했을 때 약간 거부감이 느껴졌었다. 거부감이라기 보다는 약간의 호기심도 생겼었다. 일단 제목부터가 그랬지만 과연 문학작품으로서 어떤내용일지도 궁굼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이책을 읽고나서 오히려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이름도 모르는 손님과 대화를 하면서도 혼자 이야기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고향이 무엇인지, 생명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순수함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었다. 세상은 그녀에게 희망을 볼 수 없는 창녀촌이라는 그곳에 가두게 하였지만 그녀는 오히려 더욱더 열정적이고 순수하게 그녀만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여 그녀만의 꿈을 만들어나갔다. 애초부터 그녀는 너무 순수했기 때문에 돈을 벌게해주겠다는 공장으로 데려가겠다면서 몸을 팔아 돈을버는 창녀촌에 팔아버린 그남자를 순수하게 믿었고 미워하기는커녕 나중에는 용서를하고 오히려 그남자를 사랑하였다. 그남자는 그녀에게 첫사랑이었고 짧은시간 이었지만 그녀에겐 꿈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남자사이에서 애기를 갖게되는데 그애기는 그녀에게 또하나의 꿈이었고 최고의 행복이었던 것이다. 애기는 여자가 가지는 가장소중한 행복이라고 생각을했고 세상에 여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애기를 낳으라고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애기는 낳자마자 죽게되었고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그눈물은 자신의 꿈이자 행복이었던 것이 무너져버린 아픔에 눈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창녀이지만 누구보다도 생명의 소중함에서 비롯된 순수함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그어떤 여자와도 다를바없는 그야말로 순수하고 평범한 여자였던것이다.창녀촌에서 20년이상을 보낸 지금은 40대이지만 아직도 18살같은 순수함을 가지고있었고 젊은손님을 받을때는 처녀인 것 처럼 설레이었다.
    인문/어학| 2009.01.25| 1페이지| 1,000원| 조회(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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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만식의 문학과 풍자정신 - `태평천하`와 `탁류`비교를 통하여
    채만식의 문학과 풍자의 정신- 「태평천하」와 「탁류」비교를 통하여 -< 목 차 >Ⅰ. 서론Ⅱ. 본론1. 생애와 문학1) 생애와 환경2) 1930년대와 채만식의 작자 의식3) 채만식 문학의 특징2. 태평천하1) ‘태평천하’ 제목의 의미2) ‘태평천하’의 풍자 기법3) ‘태평천하’가 가지는 문학적 성과와 한계3. 탁류1) ‘탁류’의 배경 및 상징적 의미2) ‘탁류’의 풍자 기법3) ‘탁류’가 가지는 문학적 성과와 한계Ⅲ. 결론Ⅰ. 서론채만식은 염상섭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탁월하게 묘사한 리얼리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알고 있다. 특히 본고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그의 작품 와 에 대해서는 그간 다양한 평가가 내려진 바 있다. 지금까지 채만식의 소설작품을 다룬 많은 수의 연구가 사실 풍자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이는 그만큼 그의 작품이 한국 현대소설사에서 독특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풍자문학은 대상과 현실을 간접적이고 우회적으로 비판 공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에서 와 의 형상화 방법과 서술형식으로서의 풍자를 고찰하고 또한 이 작품을 일제강점기 리얼리즘의 걸작이라는 문학사적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은 바로 채만식의 작품에서 풍자라는 기법을 통하여 당시 시대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문학은 그 시대의 문제들을 작가자신의 문제로서 파악하고 올바로 파헤침으로써 그 시대를 살아가는 바람직한 삶의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역사에 대한 성찰과 풍자정신으로 현실을 날카롭게 그린 채만식은 그런 의미에서 문학가로서의 의무에 충실했던 작가임이 분명하다. 풍자의 문제가 그 양상을 드러내는 기능적 논의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방법을 통해 달성된 효과가 무엇인가를 밝히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채만식이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하여 달성된 효과가 무엇인지를 와 의 비교를 통해서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1. 서 농민들은 소작농이나 빈농, 또는 노동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도 일제의 세력을 등에 업은 대지주들은 착취와 수탈을 통해서 더욱 부를 축척 할 수 있었다.이런 일제의 반봉건적, 식민지적 착취와 억압은 더욱 거센 반일 감정을 불러 일으켰는데, 일제에 대한 분노와 미움은 비단 농민, 노동자들에게만 생성되었던 것이 아니라 친일반동지주와 예속 자본가 같은, 일제와 결탁한 일부 세력을 제외하고 조선 민족 모두의 일반적인 감정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의 생존권뿐만 아니라 사상의 문제에까지 개입하여 강압적인 탄압정책을 폈으며, 이러한 1930년대의 시대적 상황은 우리의 문학계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이 당시 작가들에게 있어 이상적인 문학은, 식민지 현실을 고발함과 동시에 일제의 검열을 통과할 수 있는 문학인데 이러한 두 가지 모두를 포기하지 못한 작가들의 중간적 위치의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들 작가들은 완전히 해방을 외칠 수도, 시대를 외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각 작가의 성격 등에 의해 다르게 나타났는데, 어느 하나도 완전하게 고집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갈등 속에서 당시의 상황을 너무도 비관론적으로 바라본 작품들도 있었고, 생존과 지조의 두 역할을 모두 소화하기 위해 일제의 눈을 속인 경우도 있었다. 일제의 검열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우회적 방법을 사용한 작가의 대표주자로 채만식을 들 수 있다. 그는 풍자나 리얼리즘을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시대를 반영하였다. 우리는 당시의 현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면서도 시대의 모순을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방법으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3) 채만식 문학의 특징채만식은 문학을 ‘역사를 밀고 나가는 힘’으로 보고, 민족?역사?사회를 제재로 삼았다. 채만식은 소설을 비롯하여 희곡, 평론, 수필 등 모두 120여 편이 넘는 글을 썼다. 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장르에 집필능력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채만식의 글 모든 것이 역사나 사회가는 힘’이며 결코 한인(閑人)의 소일거리나 아녀자의 완롱물(玩弄物)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이것은 왜곡되고 잘못된 현재와 그러한 현재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인간을 비판함으로써 밝은 미래를 열 수 있다는 역사의식의 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타고난 성격이나 투철한 역사의식은 이미 풍자 작가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2. 태평천하(太平天下)채만식은 우리 현대소설사에서 뚜렷한 개성을 가진 작가 중 한 사람이며, 「태평천하」는 그 개성이 뚜렷이 발휘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태평천하」는 1938년 「天下太平春」이라는 제목으로 『朝光』지에 연재되었으며, 이광수의 「무정」과 홍명희의 「임꺽정」등과 함께 문학적 가치와 대중적 호응을 동시에 얻은, 흔치 않은 명작 중의 하나이다.「태평천하」는 일종의 가족사 소설로 이해되어진다. 가족사 소설이란 가족의 삶과 역사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이 전제 하에서 주인공 윤두섭 가의 5대(1대 윤용규, 2대 두섭, 3대 창식, 4대 종수, 5대 경손)에 걸친 세대 간의 갈등과 한말(韓末)에서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사회변천을 가족사의 연대기적 서술로서 제시한다.좀 더 구체화시켜본다면 신분적으로 열세였던 윤직원 가가 경제적으로는 부를 누린다. 빈부의 격차가 심했던 당시 윤직원이 어떻게 하여 부를 누리면서 신분적으로도 양반에 가까운 대접을 받게 되었으며, 세대를 이어갈수록 자손들의 삶의 양식과 사고방식이 어떻게 달라져 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 변질과 변천을 풍자적 내지는 해학적인 문체로서 제시해 간다.본고에서는「태평천하」의 인물을 중심으로 주제를 통하여 태평천하에 사용된 풍자적 기법을 살펴보고, 아울러 태평천하의 문학적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 살펴보겠다.1) 「태평천하」 제목의 의미「태평천하」에서는 윤직원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 변화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개화기부터 일제 강점기 후반까지(대략 1870~1940)의 사회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조선후기의 농민의 생활, 관리의 모습, 전근대 실제의 의미가 명백하게 파악된다. 이 작품이 단조로운 독후감을 주는 이유는 말하기를 주로 사용한 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화자의 의도가 분명하게 감지되는 데 기인하는 바가 크다. 독자는 풍자의 대상을 비판함에 있어서 타인의 괴로움에 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동시에 독자는 무언중에 자기는 잘났다고 생각하거나, 자기는 그런 비판에서 면한 것을 기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인간들만이 들끓고 있는 현실에서 그것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나’란 무엇인가, 이런 추악한 현실이 되는데 ‘나’도 일정하게 기능한 바가 없는가 하는 질문에 누구도 ‘쾌감’과 ‘기쁨만 누릴 수는 없다.이 소설은 1930년대의 구한말의 어지러운 사회로부터 일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적 현실이 걸쳐 있다. 이 시기에 지주계급의 한 가정을 설정함으로써 그 허위와 이기주의를 풍자하는데, 풍자 대상은 주인공 윤두섭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무지다. 윤두섭의 시대 판단 착오적 행위와 현실 만족이 모두 무지로부터 연유된 것이다.윤두꺼비는 피에 물들어 참혹히 죽어 넘어진 부친의 시체를 안고땅을 치면서,“이놈의 세상이 어느 날에 망하려느냐!”고 통곡을 했습니다.그리고 울음을 진정하고도 불끈 일어서 이를 부드득 갈면서,“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고 부르짖었습니다.폐정과 악습으로 인한 아버지의 몰락을 보면서,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식의 이기주의는 일제 치하의 윤직원의 삶에서 극단화된다. 나라가 망하고 일본에 예속되어도 그는 민족적인 불행과 무관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죽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이며 더구나 재산이 날로 번창해 간다는 사실이다. 그는 대지주로서 작인들로부터 소작료를 받고 사채놀이를 함으로써 자신의 안락을 추구하는 데에 성공한다. 민족을 외면하고 자신의 이기주의에 탐닉할 때 그는 다음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일들을 범하게 된다.첫째, 족보에다 도금을 한다. 이른바 족보상의 양반 가문을 만드는 것이다. 둘째, 향교의 직원 벼슬을 사서 자신의 명예를 획득한다. 소설상에서의풍자문학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다. 당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판 의식을 겹겹이 싸서 숨겨두어야 하지만, 지나치게 숨겨진 비판 의식은 독자들에게 전달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때로는 작가의 의도한 바가 왜곡되기도 한다. 그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채만식은 「태평천하」를 통해 새로운 방식을 과감하게 실험해 본 것이라 하겠다.독자들로 하여금 줄거리 진행보다는 윤직원 일가의 부정적 일상생활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독특한 서사구조와 끊임없이 자신의 의견을 내어놓음으로써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논평적 화자의 설정이 서로 어울려 풍자를 성공시킨 것이다. 시간적으로는 구한말부터 당대까지 거의 60여년의 내력을 다루고, 윤용규에서 경손에 이르기까지 다섯 대의 생활상을 담아냄으로써 식민지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뿐만 아니라 그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원인에 대한 인식에까지 이르게 하고 있다.다만 작품의 인물군상에서 부정적인 인물 군에 대립하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참다운 갈등이 결여되었고 주로 말하기의 수법을 통해 윤직원의 부정성을 서술한다는 점에서 추상적인 성격을 안고 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긍정적인 것을 대표하는 인물인 종학의 활동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못함으로써 자기반성을 행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추상적인 성격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드러낸다고 하겠다.결론적으로 「태평천하」는 발표된 시기의 상황을 참작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뚜렷한 한계를 지닌 작품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1930년대 ‘풍자’라는 당시로서는 색다른 방식으로 현실의 모순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충분히 평가할 만하며, 독특한 서사구조와 1인칭 화자의 소설방식은 절대 과소평가 할 수 없는 것이다. 풍자문학이 어려운 난국을 돌파하는데 유용한 수단임을 알려준 것이다. 또한 1930년대 후반의 혹독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작가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했던 작가정신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개인사적인 관점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문학사적인
    인문/어학| 2009.01.25| 17페이지| 1,500원| 조회(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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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알파벳의 기원 및 변천과정
    알파벳의 기원 및 변천과정
    ≪알파벳의 기원 및 변천과정≫들어가며문자의 발명은 인류에게 역사와 문명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알파벳의 발명은 권력이나 문명의 혜택을 소수에 의해 독점되는 시대에서 모든 사람들이 읽고 쓸 수 있는 민주주의 시대로 발전하는 기틀을 놓았다. 이런 알파벳의 체계가 로마의 라틴어를 거쳐서 전 유럽으로 퍼져 현재 우리가 아는 모든 유럽어의 문자체계가 되었으며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english)의 모태(母胎)가 된다.본문1. 알파벳 명칭의 유래그리스인들은 자음으로만 이뤄진 그리스어 알파벳 중 몇 개를 발음을 위해 모음으로 변화시켰다. 그 예가 바로 알파다. 셈족어의 자음 ‘알렙’이 그리스어에서는 ‘알파’, 즉 모음a가 된 것이다. 한편 ‘베이트’는 ‘베타’가 됐다. 이렇게 페니키아어의 22개 알파벳이 그리스 알파벳으로 변했다. ‘알파벳’이란 말은 이 문자체계의 첫 두 글자인 알파와 베타의 결합에서 생겨난 말이다.2. 최초의 문자기원후 18세기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신이 문자를 만들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문자는 한순간의 계시가 아니라 오랜 기간을 거쳐 만들어진 진화의 결과이다. 이에 대해 여러 학자들은 쐐기문자 문서를 판독하면서 알파벳의 기원에 대한 답을 찾았다.1). 물표인류가 맨 처음 고안해낸 문자는 진흙에 새긴 형태인 ‘물표’라는 주장이 있다. 기원전 9000년 신석기 혁명이 일어나 채집경제에서 농경경제로 전환된 시기에 이스라엘, 시리아, 터키, 특히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중심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표는 기원전 3300년경부터 급격히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묘사하려는 대상을 진흙위에 직접 그려 표현하는 그림문자 방식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이는 메소포타미아뿐만 아니라 기원전 3200년 엘람(지금의 이란 남서부)에서, 기원전 3200년경부터 급격히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묘사하려는 대상을 진흙위에 직접 그려 표현하는 그림문자 방식이 출현했기 때문이다.2). 쐐기문자메소포타미아 남부 수메르에는 아르메니아에서 발원해 페르시아만으로 유입되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오랜 기간 동안 날라온 침적토가 쌓여 굳지 않은 점토판이 흔했다. 수메르인들은 갈대 줄기 끝을 뾰족하게 잘라 점토판 위에 눌러 문자를 새겼다. 이것이 바로 쐐기문자이다. 점토판 문서는 태양 아래에서 자연히 굳어져 반영구적인 기록이 됐다. 초기 수메르인들의 문자는 거의 1천5백개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현대적 의미의 문자는 아니었다. 한정된 지역에서 사용됐고, 대상을 그대로 그렸기 때문에 추상적인 개념은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 또는 ‘희망’이란 단어를 그림문자 체계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2. 쐐기문자 판독 과정1). 1618년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에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오벨리스크와 유사한 삼각형 모양의 문자들이 발견됐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토마스 하이드라는 교수는 이 문자들이 쐐기처럼 생겼다고 여겨 설형문자 또는 쐐기문자라고 불렀다.2). 쐐기문자를 완벽하게 해독하려면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단문보다는 장문의 쐐기문헌이 필요했다. 이란 자그로스 산맥 서쪽 비시툰산의 지상 60m 높이에 있는 절벽에 ‘비시툰 비문’이 새겨져 있다. 쐐기문자의 로제타 석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비문에는 페르세폴리스의 비문처럼 세가지 쐐기문자가 적혀있었다. 영국의 장교이자 외교관인 헨리 크레스윅 로린슨은 1826년부터 1833년까지 인도에 머물면서 1847년 1천 1백행 이상이 되는 비시툰 비문을 모두 베낀 다음 판독하는데 성공했다.3). 1905년 중동지방의 시나이반도에 위치한 세라비트 엘-카뎀에서 조그만 스핑크스가 발견됐다. 이를 발견한 이는 영국의 고고학자인 플린더스 페트리였다. 스핑크스의 한쪽에는 이집트 성각문자로 ‘터키석의 여주인인 하쏘르 여신의 사랑 받는 자’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한편에 쓰인 이상하게 생긴 문자였다. 그 문자는 30개 이하의 글자로 돼있었다. 제한된 수의 글자로 많은 의미를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현대의 문자에 좀 더 가까운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페트리는 이를 히브리어나 아랍어, 페니키아어, 아카드어 등이 속한 ‘셈족어’라고 추정했다. 당시 고대 이집트인들은 가나안 지역(현재 이스라엘, 레바논)에서 온 셈족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이곳에서 노동을 시켰기 때문이다.4). 그로부터 10년후 1916년 이집트 학자 알란 가디너는 이 새로운 문자를 ‘원(原)-시나이어’라고 이름 붙였다. 가디너는 두음법칙을 기초로 해 원-시나이어를 판독했다. 두음법칙은 그림문자에 대한 셈족어 발음의 첫 자음을 그 글자의 발음으로 하는 체계다.
    인문/어학| 2009.01.25| 3페이지| 1,000원| 조회(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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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환기의 조선문학 감상 비평문
    < ‘전환기의 조선문학’감상 비평문 >1. 들어가며지리적으로 일본은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역사적으로는 절대로 가까워 질 수가 없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끊임없이 괴롭히면서 물질적으로 침탈을 했을 뿐 아니라 정신적인 피해까지 입히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일본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이는 아마도 극소수일 것이다. 물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내가 듣기로는 일본도 또한 우리나라를 아주 싫어한다고 들었다. 그들은 우리가 시시콜콜하고 하찮은 일로써 오히려 일본을 성가시게 한다고 주장한다. 반성을 해도 시원찮은 판에 왜 그런 망언으로 우리국민을 분노하게 만드는지 너무나도 이해가 되지 않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요즘 들어 친일잔재 청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현 정권 들어서 과거사 청산을 기치로 친일파의 재산을 몰수하고 아울러 옛 우리나라를 위하여 몸 바쳐 희생하고도 역사 속에 자취를 감춘 열사들을 찾아내어 오늘날 다시 기리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이는 아주 당연한 事必歸正이라 생각하는 바이다.친일잔재는 당연히 청산되어야 하며 또한 친일파로 인하여 역사에서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의인들도 마땅히 재평가 되어야 한다.나는 부끄럽게도 친일파, 친일잔재, 이완용 등등에 대해서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또한 관심도 많았다. 하지만 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지성인으로서 정작 친일 문학에 관하여서는 너무나도 무지하였다. 아마도 이번강의를 통하여 식민지 시대의 문학과 또한 친일문학에 대하여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지금부터 ‘전환기의 조선문학’을 읽고서 각 단락의 중심내용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통하여 비판적인 사고로 접근하는 시도를 해 볼 것이다.2. 전환기의 문화이론소단원 제목을 ‘전환기의 문화이론’으로 한 것에 대해 처음 나는 이해를 잘 하지 못하였다. 전환기라고 하면 보통 어떠한 흐름이 정점을 기준으로 방향이 바뀌거나 혹은 새로운 개인적인 혹은 외래적인 가치 체계를 신봉하여 온 국민에게 국가적인 가치 체계를 부여하는 것이 오늘날 모든 국가의 당면한 긴급과제여야 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국민문화의 이념을 추구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국민문화란 말하자면 대중성과 순수성과의 새로운 조화와 통일위에 건설되어야만 한다는 것인데 국민문화가 바로 국민의 정신적인 통일 및 단결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이리하여 문화 의식과 생활 전통이 완전히 합치할 때 국민 문화의 기초는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전 국민이 함께 즐길 문화가 건설되는 단계가 즉 국민 문화의 목표로 하고 있다.일본은 우리나라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억압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국민의식을 심는다. 개인을 부정하여 조금이라도 개인적으로 저항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여 진다. 조선은 현재 문화적으로 위기이고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간주하여 이에 대한 명분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주장하는 국민 문화의 목표가 아닐까 한다.3. 문학정신의 전환바로 위에서 조선의 문화위기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조선사회 당시에 실제로 문화가 위기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일본의 사관에 의해서 조선의 문화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전락해버렸는데, 이는 바로 문학의 길에 손을 내밀려고 하는 전주곡에 불과하지 않았다.‘지금까지의 생각에 이르면 현대문화가 취해야만 할 전환의 방향이 거의 자명한 일이 되지 않았는가? 문화의 국민화 이것 이외에 길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문학정신의 전환도 전체적인 전환과 방향을 하나로 해야 한다’고 하면서 문학정신의 전환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하려 함을 볼 수가 있다.‘이 수년 동안 문단의 유행어가 되었던 비평정신의 상실이라는 것도 새롭게 국민적 입장에서 考究하는 길 외에 빠져나갈 방도는 없을 것이다. 원리 탐구의 실마리를 우리 주변에서 찾지 않고 추상적인 이념에서 찾고자 하는 데에서 사변적 위험은 생긴다. 비평은 어디까지나 양식의 소산으로서 우리들이 살아갈 길을 탐구하다른 상태였던 중세 봉건주의를 타개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자 하는 시민계급의 인생철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르네상스와 버금가는 신체제운동은 그야말로 일본이 조선을 부흥해주겠노라고 하는 명분에 딱 맞는 형식이면서 표현이었다.‘신체제하에 있어서 작가는 개인의식의 낡은 껍질을 벗어던지고 국민생활 속으로 뛰어들어 몸으로 국민 의식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가에 유용한 길임과 동시에 또 자신의 예술을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국민과 함께 걷고 국민과 함께 고난을 나누고 거기서 국민 전체에게 음송되고 읽히는 위대한 문학이 태어납니다. 작가가 국민 의식에 불타 국민 생활의 유지와 발전에 기여하는 문학, 단순히 오락을 주는 것만이 아니고 진정 국민정신에 양식을 줄 수 있는 문학을 창출하는 것이 신체제하에서의 정신이어야만 합니다.’국민정신, 국민 문학으로 대변되는 신체제하에서 개인주의적 문학인 사소설, 대중소설을 청산해야한다는 말에 조금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중소설이 국민정신에 부합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을 하게 했지만, 어째든 이글의 의도는 바로 신체제를 조금이라도 저항하려는 개인의식을 봉쇄하려는 일본의 철저하고 치밀한 의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5. 신체제하의 문예비평‘비평은 폐지되었는가?’라고 하는 물음으로 글이 시작된다. 일본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비평은 폐지되어야 할 것임에 틀림없다. 국책에 반대하거나 비난하는 비평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상 식민지 시대에 조선당시의 문예비평은 폐지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 정세에 대응하여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비평의 임무를 스스로 규정하여 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라진 언론 자유의 유령에 사로잡혀 엉뚱한 방향에서 헤매는 대신에, 이 시대의 사회 정세에 대응하여, 시대정신에 합치한 비평의 임무를 스스로 설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특권이며 영예인 것이다.’지금 현재 문예비평이 나아가야하는 자세에 대하여 꿔야 한다는 말이다.‘문학에서 국민의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신은 일개 개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국민이라고 하는 의식, 따라서 자기 자신 한 사람으로는 의미도 가치도 없는 존재이며, 국가에 의해서 처음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는다고 하는 자각으로부터 문학상의 국민의식은 출발한다. 국가와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는 것과 가치를 살리는 관계로 확실히 묶여 질 때, 거기에 처음으로 문학상의 국민의식은 성립하는 것이다.’국민의식이 없는 문학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은 필연적으로 규격화되고 철저하게 통제되어서 자신의 가치도 없는 존재로 의식하도록 하여 국가라는 집단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각인을 받게 된다. 이를 통하여 작가는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 작가가 국가의 눈치를 보며 국민의 입장에서 창작한다면 제대로 된 문학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작가는 책 속에서 배우거나 책상 위에서 연구해야 할 것이 아니다. 먼저 좁은 개성의 껍질을 깨버리고 국민 생활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해서 국민과 함게 기뻐하고, 국민과 함께 슬퍼하며, 국민과 함께 아파함으로써 국민적 감정은 실체를 얻을 것이다.’국민문학의 성격은 일본이 의도한 대로 당연히 윤리적이고, 교훈적이며 또한 계몽적인 성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존 개인주의 문학의 쾌락주의는 접고 독일 나치의 문예이론과 같은 성과를 이끌어 내고 싶었을 것이다.‘윤리적’,‘교훈적’이라는 표현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나치와 윤리?교훈은 나란히 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일본의 속셈은 바로 윤리적, 교훈적인 주제와 내용을 가지고 국민문학을 호도할 것이고 계몽하려고 하는 나치와 같은 의도를 숨기며 양의 탈을 쓰고 양면적인 입장을 취하였음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한다.7. 새로운 비평을 위하여새로운 비평을 한다는 것은 일본인적 사고방식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의 이상(理想)을 추구함으로써 일본정신을 길러간다는 것이 오늘날 새로운 길일본의 것이 좋고 우월하며 조선의 것은 낡고 쓸모가 없고 그래서 일본의 좋은 것으로 대체해야할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바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하기 위한 합리화라고 봐야할 것이다.비평의 새로운 길을 열어 가기 위하여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두 가지 중에 나머지 한가지인 비평이 지나치게 서양에 의존한다고 하는 것이다. 바로 비평의 혁신을 늦추는 요인이라는 말인데, 언뜻 보면 서양의 것을 극복하는 주체적인 시각의 입장이라고 착각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도 전혀 그렇지 않다.‘일본 비평은 대부분 서양의 것을 수입한 것이라 사실 뿌리가 없다. 그러므로 일본의 전통적인 것으로부터 ‘일본의 교양’을 취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교양은 일본 고전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점은 비평의 본성이 보수적이라는 부정적인 말에 도움을 줄것이다. 왜냐하면 복고라고 함은 유신으로 통한다는 일본정신이 여기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이렇게 하여 일본적 교양이 비평가의 요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작품을 보는 방식이나 사고방식, 특히 가치 판정의 방법에서 일본적인 사고방식이 수립되어 갈 것이라고 기대하였을 것이다.새로운 비평을 위하여 혁신을 늦추는 요인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제시한 두 가지는 결국 철저하게 일본의 입장에서 바라본 주관적인 시각이었음을 파악할 수가 있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문화사를 파악 할 때에는 반드시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들이 아무리 자국의 입장을 지켰다고 하더라도 그들 자신의 문학사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범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8. 조선문학의 현단계국민문학의 입장에서 문학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 적으로 국가의 선전수단이 되며 그러나 그와 동시에 문학이 국민의 성격을 형성해 나간다는 훨씬 유구하고도 기본적인 책무를 떠안고 있다. 오늘날 고도 국방 국가 체제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서워진 혁신적인 문학상의 목표로써 일본 정신에 의해 통일된 동서 문화의 종합을 지반으로 하여 새롭게 비약하려는 일본 국민의 이상을 강조한 대표적인 문학으로서 있다.
    인문/어학| 2009.01.25| 7페이지| 1,000원| 조회(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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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지용 시에 나타난 이미지즘 - 바다와 산을 중심으로
    정지용 시에 나타난 이미지즘-바다와 산을 중심으로-차 례Ⅰ. 머 리 말Ⅱ. 본 문1. 정지용 생애에 대한 고찰2. 바다와 산에 나타난 이미지즘에 대한 고찰(1) 바다를 중심으로(2) 산을 중심으로Ⅲ. 맺 음 말.Ⅰ. 머리말1930년대 )의 가장 핵심적인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각광받는 모더니스트로서 주목을 받은 정지용은. 은유와 심상을 1920년대 시와는 질적으로 다르게 의식적으로 다듬어 참신한 감각을 표현하였다. 한국 현대시의 획기적인 전환을 실질적으로 주도해 나간 인물로 평가된다. 따라서 그의 시세계는 서구적 모더니즘의 틀로 다루는 경향이 많은데, 그것은 그의 초기시에서 살필 수 있다. 정지용의 시세계를 초기시와 후기시로 구분하자면, 초기시는 주로 바다를 대상으로 하고 후기시는 주로 산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가 이 과제를 하며 가장 먼저 착안한 점은 왜 정지용은 바다와 산을 시적 공간으로 설정하였을까? 라는 의문에서부터 시작하였다.지금부터 집중적으로 탐구하게 될 바다와 산을 중심으로 한 이미지즘에 대하여 고찰한 이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정지용의 전체적 시세계에서 바다와 산의 이미지는 어떻게 변모되어 가며 정지용이 지향한 바다와 산의 미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파악해 봄으로써 그에 대해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인간 정지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문1. 정지용鄭芝溶 (1902.5.15-1950.9.25) 생애에 대한 고찰정지용은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아버지 정태국씨와 어머니 정미하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릴 적 이름은 지룡(池龍)이었는데 이것은 연못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태몽을 꾼 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후에 항렬자를 따라 지용(池溶)으로 고쳤다. 옥천(沃川)은 지명의 뜻 그대로 땅이 기름지고 물이 맑은 곳이다. 지용의 생가가 있는 청석교 부근은 지금은 도로변이지만 지용의 어린 시절에는 그의 시‘향수’에 나오는 것처럼 넓은 벌이 펼쳐지고 실개천이 이러한 정지용의 시세계에서 바다를 중심으로 고찰 해 보도록 하자.1) 넓은 바다① 풍요로운 생명력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오·오·오·오·오· 연달아서 몰아 온다.간밤에 잠 살포시머언 뇌성이 울더니,오늘 아침 바다는포도빛으로 부풀어졌다.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제비 날아들 듯 물결 사이사이로 춤을 추어.다양한 심상과 시어를 통하여 이미지즘 계열의 시 세계를 보여 주고 있는 작품으로 원제는 '바다1'이다. 2행씩 4연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바다의 심상을 감각적인 심상으로 그려 내고 있다. 특히, '바다'를 다양한 청각적 심상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이 돋보인다.정지용이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을 동원하여 세련된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평가에 걸맞게, 이 시에도 바다의 인상을 주로 청각적 심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바다를 '오·오·오·오·오·'나 '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과 같이 비슷한 시어를 연첩시켜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또한 아침에 솟아오르는 태양에 의해서 바다는 풍만한 생성력을 갖는다. 생성력의 이미지는의 서술어에 의해 만삭의 여인과 여인의 출산을 동시에 환기시켜 한층 강화된다.이런 심상 표현은 시인의 섬세한 감각과 정확한 표현력을 짐작하게 하는 것으로, 그의 시세계에 비교적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언어 탐구를 통하여 시인은 우리 시와 언어를 지키려는 일제 강점기 시인의 '자기 지키기' 노력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②외로움과 그리움정지용이라는 한 개인의 의식 속에 바다라는 사물이 처음으로 언제, 왜, 어떻게 자리 잡히게 되었으며 유년기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작가에게 있어서 유년기란 매우 중요하다. 이때의 경험이 작품 전반에 걸쳐 작가의 사상이나 작품의 성향을 결정짓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지용에게 유년기는 하나의 특수한 공간을 형성한다. 그것은 정지용이 고향인 옥천에서 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14세 되던 때 서울로 올라와 고달픈 타향살이를 한 자노래한다. 누나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바다는 파도가 철썩이고 고기잡이 배가 있는 실제적 바다가 아니라 파랑병 속에는 파랑바다가 나오고 빨강병 속에 나오는 빨강바다로서 자신이 무한이 상상하는 그런 바다이다. 어린 시절의 정지용에게는 바다는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한 존재였다.하지만 누나가 시집을 간 뒤 아무리 병을 깨뜨려도 신기한 바다는 나오지 않는다. 누나가 없는 화자의 외로움과 바다는 만나지 못하는 화자의 심심함이 동일선 상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정지용 초기시의 바다는 그리움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그것은 역설적으로 바다와는 상관없는 산간 내륙지방에서 태어났다는 전기적 여건이 형성한 정지용의 최초의 바다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정지용 시에 나타난 그리움의 정서를 드러낸 작품을 하나 더 예를 들어보자. 은 그리움의 정서를 절실히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당신께서 오신다니당신은 어찌나 오시려십니까.끝없는 울음 바다를 안으올때포도빛 밤이 밀려오듯이,그 모양으로 오시려십니까.당신 께서 오신다니당신은 어찌나 오시려십니까.물건너 외딴 섬, 은회색 거인이바람 사나운 날, 덮쳐 오듯이,그 모양으로 오시려십니까.당신 께서 오신다니당신은 어찌나 오시려십니까.창밖에는 참새떼 눈초리 무거웁고창안에는시름겨워 턱을 고일때,은고리 같은 새벽달부꾸럼성 스런 낯가림을 벗듯이,그 모양으로 오시려십니까.외로운 졸음,풍랑에 어리울때앞 포구에는 궂은비 자욱히 들리고행선배 북이 웁니다, 북이 웁니다.여기서 화자는 그리운 이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화자는 임이 찾아오는 풍랑몽(풍랑처럼 고생스런 꿈)을 꾸고 있다. 그 임은 언젠가 와야 할 존재다. 그런 존재를 화자는 애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검은 파도가 밀려오듯이. 무인도에 사는 거인이 덮쳐오듯이, 새벽달처럼 부끄럽게 나타나듯이, 임은 올 것인가. 당장에는 올 것 같지가 않다. 풍랑몽이기 때문이다. 포구엔 궂은 비 내리고 행선배조차 울면서 화자의 슬픈 심회를 돋운다. 주로 직유를 통해 임에 대한 그리움을 간절하게 노래한 작품이다. 화자을 동요시킬 뿐 더 이상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라는 시를 살펴보도록 하자.나의 가슴은조그만 갈릴레아 바다.때없이 설레는 파도는미한 풍경을 이룰 수 없도다.예전에 문제들은잠자는 주를 깨웠도다.주를 다만 깨움으로그들의 신덕은 복되도다.돛폭은 다시 펴고키는 방향을 찾었도다.오늘도 나의 조그만 (갈릴레아)에서주는 짐짓 잠자신 줄을-.바람과 바다가 잠잠한 후에야나의 탄식은 깨달었도다.이때, 가톨릭에 귀의한 정지용의 시의 세계는 광활한 세계로의 수평적 확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있는 하늘로의 수직적 상승에 의해 도달될 수 있는 있을 것이므로 바다는 파도로 변형되어 평정한 기도의 자세를 뒤흔드는 저해물의 이미지로 변환된다. 매개항의 역할이 바다에서 산으로 바뀐 것은 단순한 바다에서 산으로의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정신적인 상승을 의미하며 바다에서 산으로, 땅에서 하늘 가까운 곳으로의 정신적 상승도 의미한다.지상의 것들은 덧없는 것이라는 허무의 인식, 다시 말하여 땅에서의 개인적 실존을 조건지우는 역사,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을 포함한 희비애락이 인간의 욕망에 의하여 야기되는 것들이며 특히 정지용 자신의 삶을 억압했던 식민지 상황의 고뇌, 자식을 잃은 개인적 비애의 해소는 지상의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가능하다는 각성이다.(2) 산을 중심으로바다에서 산으로, 땅에서 하늘 가까운 곳으로의 정신적 상승 과정에서 겪은 정지용의 신앙체험은 《백록담》의 세계를 가능하게 한다.) 무욕의 세계로의 정신적 상승은 신앙체험 이외에도 이후 산행 체험을 통해 정지용이 보여준 동양사상, 동양고전)의 영향도 상당히 작용되었으리라 생각되어진다. 잡지 《문장》에 관여하면서 쓰게 된 연작이나, , ) 등의 작품에서는 정지용의 정신적 성격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절정에 가까울수록 뻐꾹채 꽃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스러지고 다시 한마루 위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중에는 얼굴만 갸웃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版) 박힌다. 바람이 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익어 붙인 채로 살이 붓는다.9가재도 기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불구(不具)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쫓겨온 실구름 일말(一抹)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굴에 한나절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祈禱)조차 잊었더니라.백록담은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극한의 지점이다. 하늘과 지상이 만나면 인간과 신이 마주하는, 따라서 인간 세상에서 길들여진 의식들이 모두 뒤바뀌는 곳이다. 시적 자아는 점점 더해가는 고도를 ‘뻑꾹채 꽃키’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정상에 이를수록 ‘뻑국채 꽃키’는 상징적인 형상으로 추상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지상의 꽃은 하늘의 별과 동일시된다. 그 이유는 하늘이 지닌 극도의 순수성 때문이다. 산에 절정에 놓인 꽃은 희박한 공기와 낮은 기온을 견뎌낸 강한 생명력의 그것이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순결함의 결정체인 것이다.시적 자아는 모든 물질과 육신이 걸러진 듯한 이곳에서 죽음이 생명과 그리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님을 체감한다. 죽음과 같은 상태가 열매 하나로 인해 생명으로 전이될 수 있는 것이나 아름다움의 극한을 보여주는 ‘백화’가 아무렇지 도 않게 ‘촉루’ 곧 해골처럼 보일 수 있는 지경은 죽음에 대한 의식이 매우 가벼운 상태로 여겨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죽음은 거부감도 두려움도 일으키지 않으며 생의 다른 이름 정도로 의식되는 것이다. 이것은 물질이나 육신이 더 이상 집착하는 대상이 아닌 것이 될 정도로 정지용의 정신성이 고양된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정지용은 산을 시적 공간으로 둠으로써 초월적 세계관을 드러내 주고 있다. 산을 제재로 한 시들을 살펴보면 산이란 속세의 혼탁과 대립되는 신성하고 정결한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신성하고 정결한 공간으로서의 산은 당연한 결과로 정적의 상태를 유지한다. 떠들썩한 저자 거리의 모습을 산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다. 이 산에는 인간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시의 화자는 분명 인료 >
    인문/어학| 2009.01.25| 15페이지| 1,000원| 조회(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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