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Ⅱ. 본론1. 70년대 리얼리즘 문학론1)자연주의와 리얼리즘 논쟁- 구중서, 김현, 김윤식2)‘불꽃인가 거울인가’논쟁 -염무웅, 김병익3)사회주의 리얼리즘 논쟁-김동리, 구중서, 임헌영, 염무웅2. 70년대 민족문학론1)보수적 민족문학론2)진보적 민족문학론Ⅲ. 결론* 참고문헌Ⅰ.서론1970년대는 60년대의 4.19혁명과 5.16군사 정변을 거쳐 독재(유신 체제) 탄압이 가중되던 시기이다. 동시에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임금과 노동력이 착취당했다. 이로써 국가의 경제력은 상승했으나, 민중들의 삶은 어려워졌다. 또한 대중문화의 확산과 생활양식의 다양화,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의 확대 등은 산업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한국 사회의 변모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이런 현상들은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가운데 비평 문학 활동의 양상은 1960년대 중반부터 핵심 논제가 되었던 문학의 현실 참여 문제가 참여-순수의 양분법적 대응 논리를 벗어나 당대 현실의 문제와 문학의 지향을 둘러싼 여러 가지 방향의 논쟁을 낳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리얼리즘 문학론, 민족 문학론, 민중 문학론, 노동 문학론, 농민 문학론, 상업주의 문학론 등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 한국 비평 문학사의 특징은 독재의 고뇌로부터 벗어나 문학의 새로운 지표를 찾으려는 리얼리즘 논쟁과 이것을 바탕으로 하는 민족 문학의 태동으로 집약된다. 따라서 우리는 70년대에서 리얼리즘 문학론과 민족 문학론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70년대의 비평은「창작과 비평」),「문학과 지성」)이라는 두 계간지를 중심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창작과 비평」이 사회의 현실문제에 크게 관심을 보인 반면 「문학과 지성」은 문학에 있어서 순수성과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였다.「문학과 지성」은 1980년에 강제 폐간을 당하게 된다.Ⅱ.본론1. 70년대 리얼리즘 문학론한국 근대문학사에서 리얼리즘론은 줄곧 중요한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근대문학의 탄생 자체가 리얼리즘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좌담회이다. 「4.19와 한국문학」이라는 논제로 전개된 이 좌담회는 구중서, 김윤식, 김현 세 사람이 논객으로 참석하였고 임중빈은 진행을 맡았다. 이 좌담회에서는 ‘1930년대 염상섭과 현진건 등의 문학을 리얼리즘으로 볼 것인가 자연주의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게 된다.먼저 김윤식은 일종의 기조 발제문이라 할 수 있는 「4.19와 한국문학」을 집필 발표했다. 그는 리얼리즘이란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보고, 한국 리얼리즘 문학 실현의 계기가 된 것은 4.19라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 문학에 있어 리얼리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최인훈을 풍속과 방법에 대한 자각을 함께 갖추고 리얼리즘을 열어가는 작가라고 평가한다.이러한 4?19 이후 소설이 리얼리즘의 자각을 얻었다는 김윤식의 견해에 구중서는 동조하나, 김현은 이의를 제기하며 자유를 획득하려는 노력을 할 만한 사회계층이 형성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리얼리즘이 구현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김현은 해방 전 우리 문학사의 리얼리스트에 대한 문제를 논점으로 제기한다. 김윤식과 구중서가 4.19이후 리얼리즘 소설의 출발이 가능해졌다는 이론을 제시한 것에 대해, 그렇다면 염상섭, 현진건 등의 소설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김현은 30년대 리얼리즘문학 작품을 창작한 작가들을 중요시하며, 그들이 4.19 이후의 리얼리스트에 비해 훨씬 박력 있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리얼리스트들만의 계층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반면 닫힌 계층인 학생층에 의해 유도된 4.19 이후의 리얼리스트들은 자기 계층의 부재 속에 활동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녔다는 것이 김현의 비판적 지적이다.이에 김윤식은 4.19 이전의 리얼리즘은 기법으로서의 리얼리즘이라고 의견을 반복 제시하고, 구중서는 1930년대의 염상섭과 현진건의 문학은 리얼리즘이 아닌 자연주의 문학이라고 규정한다. 염상섭에 대한 구중서와 김현의 논란은 계속 이어지는데, 이 논란의 핵심이 여기에 있는 것은리즘의 역사성과 현실성」), 김병익이 「리얼리즘의 기법과 정신」)에서 각각 견해를 밝히면서 시작되었다.염무웅은 먼저 리얼리즘에 대해 사회적 현실과 조건들에 따라 시대적으로 발전해 온 하나의 역사적 개념이기 때문에 특정 시대의 이데올로기로 묶어둘 수 없다고 보았으며, 리얼리즘은 역사적 개념에서 출발해 예술 일반의 어떤 보편적 원리를 밝히는 포괄적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즉, 리얼리즘을 특정 시대의 예술 이데올로기로 묶어두지 말고, 그 의미를 확장시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한편, 리얼리즘이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구속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데, 리얼리즘은 작가의 상상력이 단순한 관념의 유희에 빠지는 것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 속으로 가는 것이나, 객관적 현실을 자기만족과 자기기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배격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염무웅은 현실의 객관성과 사회적 실천을 리얼리즘의 중요 원리로 본 것이다.염상섭적 리얼리즘에 대해서도 염상섭 문학을 리얼리즘 문학으로 보느냐, 리얼리즘적 요소를 지닌 자연주의 단계의 문학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중요한 것은 염상섭의 구체적인 작품 속에서 리얼리즘이 달성된 측면은 무엇인지, 염상섭적 리얼리즘의 한계로 지적될 측면은 무엇인지 분석, 비판하는 일이라고 보아 실제 비평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대해서는 리얼리즘을 모두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하거나, 리얼리즘을 혁명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것을 잘못된 것으로 보았다. 그에게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은 사회주의적 세계관과 리얼리즘적 방법론의 변증법적 통일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단계의 리얼리즘으로 이해되었다. 다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마르크시즘을 신봉하는 문예 이론가들에게도 오늘의 사회 현실을 창조적으로 재현하는데 무력하다고 비판받는다는 점을 언급하였다.이에 대해 김병익은 「리얼리즘의 기법과 정신」에서 리얼리즘은 19세기 전반기의 문학사조이지만, 문제는 그 정의가 아니라 문학 정신으로서의년 『조선문학』)에까지 논의가 연장되었으나 이미 카프가 해산된 뒤였고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끝나게 된다. 해방 직후에는 당시 좌우파 문학 이론의 대립 과정 속에서 노선을 둘러싼 대립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했기 때문에 리얼리즘론은 핵심 과제로 부상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에 걸쳐 다시 리얼리즘 문학론이 대두 확산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또한 왕성한 논쟁을 수반하면서 펼쳐졌다.70년대 후반 문단에서는 김동리의 ?한국적 문학 사상의 특질과 그 배경 - 한국 문학의 나갈 길?)의 강연 요지가, 다음날인 9월 13일 『조선일보』)에 ?한국 문학 오도(誤導)하는 일부 비평?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을 계기로 사회주의 리얼리즘 논쟁이 치열해진다. 이 문학 논쟁은 흔히 문학의 자율성 논쟁이나 문학관 논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글에서 김동리는 특정 계간지를 중심으로 한 일부 비평그룹의 문학 활동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비판한다. 김동리가 여기서 지적한 ‘특정 계간지를 중시만 일부 비평’에 대한 논의는 계간 『창작과 비평』을 중심으로 한 비평 활동을 말한 것이다.김동리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구중서, 임헌영 두 사람은 『조선일보』에 ?현실 고발이 사회주의인가?라는 반론을 발표한다. 이 반론에서 구중서는 ‘서민의식’이나 ‘현실의식’을 갖는다고 해서 반드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사상을 갖는다고 보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반박한다. 임헌영은 먼저 김동리가 늘상 휴머니즘을 거론하면서, 사회의 어두운 곳과 부조리를 드러내는 문학을 비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은 것이라고 대응한다. 또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만 나올 수 있는 문학조류라는 사실을 들어 김동리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비판한다.임헌영의 이 같은 비판에, 김동리는 다시 1978년 9월 27일 『조선일보』에 ?문학엔 임무가 있을 수 없다 - 임헌영, 구중서씨의 반론에 대하여?를 발표하여 주로 임헌영을 공박한다. 임헌영의 휴머니즘이 현실성을 바탕 이른바 현실적 공리성에 있지 않고 인간성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현실적 공리성과 인간성을 상호 대립되는 선택적 개념으로 보는 김동리의 접근법에는 문제가 있다. 현실적 공리성과 인간성 탐구는 대립되는 선택적 개념이 아니라 공존할 수도 있는 개념들이다. 염무웅이 말하듯 문학은‘인간의 편’에 서서 ‘진실을 위해’사용될 수 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문학을 경향문학 혹은 목적문학으로 보는 김동리의 문학관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시대착오적 목적의식의 산물이다.김동리와 몇몇 리얼리즘 계열의 평론가 사이에 진행되는 논쟁을 지켜보던 백철은 무기화된 문학은 문학이 아니다 - 김동리 씨와 젊은 비평가들의 문학 논쟁을 보고 )를 발표하여 이 문제에 개입한다. 백철은 김동리와 염무웅 두 사람의 글이 지닌 문제점을 각각 지적하는 제3자적 태도를 취한다. 백철은 먼저, 김동리가 오늘날의 젊은 비평가들이 말하는 리얼리즘을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연결시킨 것은 지나친 노파심의 발로라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어디까지나 소련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받들고 그 ‘당’의 노선을 지지해서 인물의 ‘전형’을 찾고 인물의 영웅성을 강조한 일방적인 리얼리즘으로서 자유국가에서 사회현실을 비판 고발하는 리얼리즘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리얼리즘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염무웅의 글 가운데 문학이 어느 ‘편’에 선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것이 곧 문학의 무기화 또는 도구화의 주장이라고 해석한다.이후 김동리는 다시, 논쟁의 발단이 되었던 강연원고를 수정하여 한국적 문학사상의 특질과 그 배경 - 한국문학의 나아갈 길 )을 발표하였고, 김동리의 이 글을 실은 『월간문학』은 같은 호에 현대문학, 그 사상성의 진단 이라는 특집 좌담을 마련하여 김우종, 윤재근, 한용환, 유재용, 박제천 등을 참여시키고 그 동안의 논쟁 과정을 정리한다. 그 가운데서 김우종은 1920년대 프로문학과 해방 직후 좌파의 문학, 그리고 60년대의 참여문학과 70년대의 리얼리즘 문학을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는 데 근의한다.
목차Ⅰ. 서론 ---------------------------------------------------2Ⅱ. 본론 ---------------------------------------------------21. 휴머니즘 --------------------------------------------------2(1) 백철의 휴머니즘 --------------------------------------------2(2) 김오성의 네오 휴머니즘 --------------------------------------32. 주지주의 --------------------------------------------------4(1) 김기림의 비평론 --------------------------------------------4(2) 최재서의 모랄론 --------------------------------------------63. 고발문학론 ------------------------------------------------8(1) 이원조의 태도 문학론 ----------------------------------------8(2) 김남천의 고발 문학론 ----------------------------------------94. 예술주의 -------------------------------------------------10(1) 김환태의 인상주의 비평 --------------------------------------10(2) 김문집의 비평 예술론 ----------------------------------------11Ⅲ. 결론 ---------------------------------------------------12Ⅳ. 참고문헌 -----------------------------------------------13Ⅰ. 서론1930년대의 세계정세는 히틀러의 독일 정권 장악과 그로 인한 나치즘의 등장, 이탈리아 무솔리니에 의한 파시즘의 팽창으로 미래의 새로운 인간형을 탐구하는데 주력한 점을 볼 때, 그의 인간 탐구는 네오휴머니즘을 펴고자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그의 휴머니즘 운동의 의의와 목표는 전형기 한국 문단의 주류를 읽히는 계기를 삼아야 한다는데 있었다.이론만을 기술하고 있을 뿐 이러한 현실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이론이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구현되는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로 인해 많은 비평가들이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즉, “비현실적 관념론”, “평론을 위한 평론‘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잃어버린 30년대 문학사에 빛을 비추어주는 등대역할을 해주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하고 여러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2) 김오성)의 네오 휴머니즘론김오성의 비평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근대성 비판이다. 근대성은 근대 사회의 독특한 삶의 특징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근대 정신의 핵심은 과학적 합리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휴머니티 상실의 주된 원인으로 근대의 자연과학적 세계관과 인식 방법을 꼽았다. 실증성과 합리성에 토대를 둔 그대 사고 원리로서 자연과학적 인식이 인간 세계를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 위기에 대한 인식과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결국 네오 휴머니즘 주장으로 귀결된다.실천적 세계관은 먼저 세계를 한 개의 통일체로서 파악하기를 요구한다. 왜 그러냐 하면 실천은 관념주의의 그것과 같이 주관에 의한 객관 세계의 구성, 또는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요 세계의 발전에 참가함으로써 거기에 창조와 발전을 가하는 행위임으로 세계 자체가 한 개의 통일적 발전을 보여주지 않아서는 안될 것임으로써이다. 실천에 있어 세계 현상을 혼돈 잡다한 것으로 보는 것은 주관에 의하여 객관을 합리화시키려는 법칙적 사유 또는 관상적 세계관의 주관적 자의적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세계는 우리의 주관 여하와는 독립하여 그 자체에 일정한 통일적 질서와 발전의 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적 만족을 구하는 물음이기 때문에 관념적이고 주관적이다. 이러한 물음은 비과학적인 의사질문이며, 이에 대한 대답은 의사진술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기림의 시학론의 논의는 리처즈의 논의를 참조했다고 볼 수 있다.김기림의 과학적 시학론을 종합해보면 첫째, 시학의 과학화를 위해서는 시의 사실에 바탕하여 그것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것을 탐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시는 언어적 산물이기 때문에 시학은 언어학을 중점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언어는 의미전달의 매체인 동시에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적 시학은 심리학적?사회학적 입장의 조력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그러나 과학적 시학론이 드러내는 방법적 지향과 이념적 실천의 간극 및 괴리, 그리고 시와 신념의 거리 등은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전반적인 한계점으로 지적된다.③ 모더니즘 시론김기림은「시작에 있어서의 주지적 태도」를 통해 주지적 시작(詩作) 방법을 강조한다. 즉 김기림은 이전의 시를 자연발생의 시(존재의 시)로 매도하고, 의도적인 제작의 시(당위의 시)를 권장한다. 이처럼 김기림은 시가 시인의 지성에 의해 의식적으로 쓰여져야 한다는 데에서 시의 근대성을 찾고 있다.이러한 김기림의 모더니즘 시운동은 20년대의 감상주의?퇴폐주의로 집약되는 낭만파 시운동과 카프가 주도했던 이데올로기 문학을 배격하고 건강한 일상적 삶을 바탕으로 한 생활의 시, 과학의 시학을 제창하고자 한 것이다.그런데 신시의 발전은 그것의 환경인 동시에 모체인 오늘의 문명에 대한 태도의 변천의 결과였다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모더니즘’은 특히 이 점에 있어서 의식적이어서 그것은 틀림없는 문명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가져왔다. 이 일을 이해함이 없이는 신시사 전체는 물론 ‘모더니즘’은 더군다나 알 수 없이 된다.(…)모더니즘은 두 개의 부정을 준비했다. 하나는 로맨티시즘과 세기말 문학의 말류인 센티멘탈 로맨티시즘을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경향파 시의 내용 편중을 위해서였다. 모더니즘은 시가 우선 언어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이 한 사회나 문화 집단에서 강조 내지는 쟁점화되는 것은 그 사회 구조 자체가 어떤 모순을 안고 있거나 그 구성원 의식과 생활 자세가 병들어 있거나 타락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치료의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고 그대로 두면 위험한 지경에 도달하여 파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 윤리 의식이 강조된다고 볼 수 있다.최재서)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문학에서 모랄이 문제시되는 것은 현대의 문학정신이 의거할 전통적 도덕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문학적인 이념이 의거할 수 있는 외적인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다음으로 그가 인식한 문학적 위기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가리키는 개념인가?작가(作家)가 충분한 창작의사(創作意思)를 가지면서도 성실하게 창작할 수 없는 모순상태?이것이 즉 진정한 의미의 문학적 위기(文學的危機)이다. 이 위기에 비한다면 일반적 사회적 위기(危機)의 한 변종(變種)에 지나지 못하는 문단적 위기?독자가 줄고 책이 팔리지 않고 작가가 빈궁하고 등등?는 오히려 용이한 무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상과 같은 문학적 위기가 조선에도 도래하였느냐? 그렇다고 나는 대답한다. 인생 삼십을 지나고서도 오히려 문학 밖에는 없다는 순진하고 강렬한 신념을 가지고 문학에 종사함을 가능케 할 신념(信念)과 지지(支持)가 조선에 있는가? 그는 믿을 뿐 아니라 사랑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실천할만한 대의명분(大義名分)을 가지고 있는가? 그의 순간순간의 부분적 자아(自我)뿐만 아니라 자아 전체를 통일할 만한 태도(態度)와 그의 사색생활뿐만 아니라 생활전체를 규율할 만한 주의(主義)나 원리(原理)를 가지고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이것을 나는 작가(作家)의 허물로 돌릴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이 같은 자아(自我)의 파산(破産)은 결국 사회적 위기(社會的危機)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하여튼 조선(朝鮮)의 문학적 위기(文學的危機)는 창작불능(創作不能) 내지 좌절(挫折)의 상태를 가져오기에까지 이르렀다고 나는이다.「비평의 잠식(蠶食)-우리의 문학은 어디로 가나」(『조선일보』1934.11.1~11)에서 과거 비평은 행동이었으나, 현재는 문학의 가장 순수한 부분이 태도 문학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파악하였다. 또한, 주관 혹은 양심으로부터 출발하는 태도에서 새로운 자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프로문학에 대한 비판과 객관적 상황에 의한 전환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프로문학 비평 또한 주관성을 등한시하므로 생경한 공식론으로 흐르고 이데올로기를 통해 의식과 생활을 통일시키고자 했지만, 프로문학 작가와 비평가들의 생활 감정이 소부르주아적인 토대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모순을 드러냈다고 지적하였다.지금 30대 작가들의 사상적 고민의 표정은 사실은 모든 사상을 받아드리려다 그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한 불안의 그리고 자기의 문학 세계의 빈곤(貧困)에 대한 공허감의 표출(表出)에 지나지 못하다는 것은 혹은 일면의 사실을 드러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 하는 것이 인간성의 탐구 일진댄 모든 사상을 다 받아드리려다가 아무것도 못받아들인 것은 방법의 실패일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문학적으로 순수(純粹)하지 않다고 하는 이유야 어디 있는가? 더구나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제문학(諸文學)적 세계의 빈곤을 느낄 줄 모르고 아무런 사상적 고민도 없다면 그야말로 갖바치나 두부쟁이보다 나을 것이 어디 있는가? )② 태도문학론의 이해이원조는「현단계의 문학과 우리의 ‘포-즈’에 대한 성찰」(『조선일보』,1930.7.11~17)에서 문학의 행동성은 사회 전체의 조직과 관련된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과 절충을 전제로 하는 정치적 실천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치적 중압이 가중되는 객관적인 정세에서는 행동의 문학은 존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또한 행동에서의 패배는 문학의 패배가 아니고 문학의 매력은 포오즈에 있다고 말하면서 그 예로 갈릴레오의 태도를 인용하여 문학적 의욕을 차단하는 세력에 대한 내면화된 저항과 고민을 역설한다. 이원조가 태도 문학론을 전개한 의도는 프로문학 퇴조 후의 문단의전한다.
-차 례-Ⅰ.시작하며----------------------2Ⅱ. 1960년대 전통문학론1. 60년대 전통론의 출발--------------------------------22. 전통부정론과 단절론-이어령?유종호----------------------23. 전통의 반성론과 극복론-조동일-------------------------34. 전통의 주체적 수용론-정태용?김순남---------------------4Ⅲ. 1960년대 리얼리즘론1. 리얼리즘 문학론의 출발-----------------------------52. 이어령과 김순남의 리얼리티 이견(異見)------------------53. 백낙청의 한국 소설과 리얼리즘의 전망------------------6Ⅳ. 1960년대 순수-참여론1. 순수-참여논쟁의 출발----------------------------------72. 순수-참여논쟁의 전개------------------------------73. 순수-참여논쟁의 충돌(Ⅰ)---------------------------84. 순수-참여논쟁의 충돌(Ⅱ)---------------------------9Ⅴ. 마치며---------------------11Ⅰ. 시작하며전쟁의 폐허, 독재 정권의 수립, 이데올로기의 억압 등의 50년대를 잇는 60년대 문학은 4?19 혁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4?19는 당시 정당성을 잃고 독재 체제로 일관한 이승만 정권에 대항한 민중 운동으로서의 국민주권회복운동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4?19 민주화 운동은 이듬해 61년 정치군부에 의한 5?16군사 쿠테타로 반전하게 된다. 5?16으로 인해 4?19가 갈망했던 민족통일, 정치의 민주화, 사회개혁이라는 대중의 꿈은 무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4?19 정신은 그대로 우리 문학사의 자극제가 되었고, 냉전 이데올로기로부터 탈피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하였다. 4?19는 당시 많은 문인들에게 현실 인식과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문학 활동의 무대가 종합지 혹은 동인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현대시의 정원은 하나의 언덕을 이루거나 잡초만 우거졌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내용면에서는 전통의 연속이 있고 형식면에서는 전통이 단절됐다는 기형적인 결론을 맺고 있다.유종호는 토론회를 통하여 우리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단절과 단층이 놓여 있다고 전제하고 한국의 현대시가 그 이전의 시가를 전혀 이어받지 못하고 있음으로 전통이 단절됐다고 단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시의 경우 현대 시인들은 이전의 향가나 이조 가요를 전통으로 하지 의지하지 않았고, 소설의 경우에도 습작자들이 『춘향전』이나 『장화홍련전』을 도외시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현대 시인들이 과거 한국의 시문학 유산(신라시대의 향가, 고려가사, 이조의 시조 등)을 고려함이 없이 과거의 유산과는 단절된 채 백지출발을 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시작의 실제에 있어서 결국 서구의 시와 일본사람들이 서구의 시가를 모방해서 쓴 또 하나의 이미테이션을 샘플로 삼아 시작을 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최남선의 시만 보더라도 일본의 신체시를 모조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나 태도는 역사의식의 결여에서 온 것이라고 유종호는 지적한다. 그리고 그는 전통의 발원지로서 엘리엇의 ‘역사적 의식’을 예로 들고 있다. 우리 문학의 경우, 이러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문학 풍토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전통이 단철된 상태라는 것이다.3. 전통의 반성론과 극복론-조동일의 토론회가 주로 전통 단절론과 부정론을 통해 우리 것에 대한 계승의 문제 그리고 서구 문학의 수용에 대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한국적인 것」(『신사조』1962.11)의 특집은 전통 논의를 심화 확대시켰다.조동일은 전통의 치열한 논의에서 전통 반성론과 극복론의 자세를 취한다. 그는 「전통의 퇴화와 계승의 방향-문학사에서 전통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창작과 비평 1966.3)에서 우선 전통의 개념을 정리하면서, 아무리 전통 계승론의 입장에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전통 단절론이나 부정론에 공감이 가는 면이 있으면 성할 점이 많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요컨대 정태용이 주장하는 전통론의 논의는 주체성의 확보를 바탕으로 한 전통의 계승을 전제로 서구 문화의 이식이 뒤따라야 바람직하다는 것으로 귀결된다.재일동포 비평가인 김순남 역시 기본적으로 정태용이 주장한 자시 시대정신이 문학 앞에 제기한 역사적 과업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파악하여 주체적 입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에 동조를 보이며 전통 계승론을 적극 지지한다. 김순남은 「주체적 입장에서 본 전통 문제-본국문단에 붙이는 글」(『현대문학』 1964.1)에서 문학이란 어느 시대나 새 문화 건설에 있어서 선행한 역사적 시기에 연면히 계승 발전하여 온 문화의 전통과 그 역사적 경험을 발판으로 출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문화의 전통은 새 문화의 창조와 발전에서 필수적이며 가장 능동적인 요인의 하나라는 것이다.Ⅲ. 60년대 리얼리즘 문학론1. 리얼리즘 문학론의 출발우리나라에서의 리얼리즘은 1920년대『창조』)(1919. 2)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창조파 작가들은 ‘있는 그대로의 인생이나 현실을 표현해 보고자 했다.’ 춘원 이광수의 계몽주의 문학을 거부하는 최조의 리얼리즘 선언하였다. 김동인은『조선근대소설고』)에서 리얼리즘을 실현하는 것이 소설의 최고 흥미라고 하였으며, 리얼리즘에 대한 작가들의 이해는 아직 미숙하다 하였다. 이렇게 미숙한 경우 리얼리즘을 자연주의)와 구별하지 못하거나 리얼리즘 및 자연주의를 제대로 파악 못하는 것이다. 1920년대 중엽에서 30년대 중엽의 프로문학 시대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중심으로 많은 논의 있었다. 이 시기에 변증적 리얼리즘, 사회주의 리얼리즘 등 다양한 수식어가 동원된 리얼리즘 논쟁이 활발하게 되었음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해방 직후에는 당시 좌우파의 문학 이론의 대립 과정 속에서 노선을 둘러싼 대립이 주요 쟁점이 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에 리얼리즘 문학론이 다시 대두 확산된다. 1960년대 리얼리즘 논의 내용은 리얼리티의 개념론,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론, 사회주의 리얼리즘론 등하는 것은 참된 리얼리티의 논의가 아니다. 이어령의 논의는 은유를 벗기고 나면, ‘상식적’현실을 초탈한 기상천외한 놀람과 전율, 상징과 고답의 갈구만이 남은 것뿐이다.리얼리티는 실재성의 바탕으로 생활의 실재적 반영뿐만 아니라 생활 재료의 내부적 구조와 상호 연관성에서 유출되는 특징적 ? 본질적인 것, 개연성을 내포하여야 헌다. 즉, 리얼리티는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는 정적인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활의 법칙을 추구하는 행동 정신이다. 따라서 작가가 재구성한 현실은 현실과 동떨어질 수 없으며, 오히려 그 본연의 자태의 구상적 재현에 불과하다. 이어령이 말하는 평범과 상식을 초월한 경이와 전율, 상징과 고답을 내포하여야 한다는 리얼리티에 대한 설명은 말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어령이 설명한 한국 소설의 평면성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도 반발하였다. 이어령은 한국 소설의 평면적 인물설정은 서구 소설을 따르지 못하는 비리얼리티와 비예술성의 근원으로 보았다. 사대적 관점과 민족 비하적 사고방식이다. 작가의 자질과 작품의 가치는 기술론이나 방법론 이전에 존재하는 문학 정신과 인간적 내용의 문제를 토대로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기법과 방법의 근대화를 추구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더욱 절실한 것은 진리와 인간 존재의 권리를 절규하는 오늘의 한국현실을 대변하려는 건전한 문학정신이며, 격동적 소재와 주제 사상을 드러내려는 기백이다.3. 백낙청의 한국 소설과 리얼리즘의 전망백낙청은 1966년 1월 계간지 『창작과 비평』을 창간하여 문단의 체질 개선과 문학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과거 문예지들의 고식적인 방법을 지양하고 참신하게 편집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창작과 비평』창간호에「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라는 글 발표하였다. 한국 문단의 병리적 구조와 한국 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포괄적으로 분석하였으며, 문단의 복고주의, 허무주의, 몽매주의 비판하고 올바른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에 입각한 진취적 작품들 옹호하고 현재까지 계속 『창작과 비평』운영하였다.「한국 소설과 리얼리즘의 전망문학-그 원리적인 문제」: 참여문학론을 주장하고 순수문학을 비판하였다. 방관적 지식인과 순수문학론자들은 의식적으로 자신을 사회의 부재자로 만드는 인물들이라 비판하고 무관심도 나름대로의 사회참여라고 말하면서 사회 참가의 문학과 비참가의 문학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견해를 내세웠다.▶최일수 「문학의 현실?우리의 비원」: 휴머니즘론에 바탕을 두고 순수문학을 보수파의 음풍농월이라 비판하고 문단이 민족통일의 과제 수행을 위해 진력할 것을 제안하였다.「문학과 앙가지망」: 한국문학과 현실참여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유럽문학의 특질에 대해 접근(유럽문학은 순수성만을 고집하지 않는다)하였다. 문학은 정치적 현실을 많이 취급하고 작가는 현실에 개입해 민족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였다. ↔ 김상일 「순수문학 논의」「4?19 이후의 문학적 전망」: 4?19 이전의 여러 문학 유파에 대해 차례로 비판한 후, 앞으로 우리 문학은 진정한 저항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정의와 진실에 입각하여 민족통일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과업을 이루는 일에 기여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이철범 「문학과 현실의 단면」: 현대 이후 문학정신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라 주장하고 문학과 정치적 현실과의 싸움을 강조하였다. ↔ 원형갑 「앙가지망과 신비적 체험」「앙가지망의 문학적 용어-속 문학과 현실의 단면」: 앙가지망이라는 용어의 의미 를 설명하고 커뮤니즘의 계급투쟁과 싸르트르의 현실참여의 차이를 상세히 논의(참여문학은 커뮤니즘에서처럼 개인이 사회의 부속품처럼 취급되지 않는다)하였다.▶유종호 「작가?창조?현실」: 문학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였다.「현실참여의 시」: 시가 민중속에 침투하지 못하는 것은 민중을 외면하기 때문이다.▶김우종 「문학의 순수성과 이데올로기-창작계가 답보하는 원인을 분석한다」: 우리 문학계 침체의 원인으로 사상성의 부족을 지적하였다. 우리나라 문단의 발전을 위해 작가들이 위대한 사상가가 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도피와 참여의 도착」: 현실도피 문학과 현실참여 문학의 의미 정리하였고 하였다.
Ⅰ. 서론1894년의 갑오개혁을 경계로 한반도에는 정치제도에서부터 일반 생활양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서양의 선진 문화를 뒤따르려는 근대적인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이 신기운을 개화기(開化期)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개화문명의 양상은 신문학운동을 태동시켰다. 이로써 창가와 신소설이 출현하였는데, 한국의 근대적 민족주의와 민족문학은 이 개화기부터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1910년대에는 일제의 혹독한 압제와 질곡의 상황에서 건전한 민족주의 사상이 표현될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박은식과 한용운, 최남선과 이광수는 식민지 현실에 굴하지 않고 민족주의와 근대 사상에 접근하였다.개화기와 1910년대의 한국 비평 문학이, 고전 비평 문학으로부터 근대 비평 문학에로 옮아가는 과도기적 역할을 담당하였다면, 1920년대의 비평 문학은 우리나라에 근대 비평 문학의 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특별히 이 시기의 문학은 3·1운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 1920년대의 문학은 3·1운동이 실제로 끝난 뒤의 좌절과 새로운 방향 모색에 대응되는 양상을 띤다고 할 수 있다.1920년대의 초기 문학의 경향은 자아의 발견이라는 근대 의식의 발현에서부터 출발하여 민족적 자기 발견과 현실 인식이라는 구체적인 주체의식으로 확대되고 있다. 민족 종합지 『개벽』의 창간을 전후하여 동경에서는 김동인·주요한·전영택 등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예술의 창조를 목표로 순문예동인지 『창조』를 간행하였고, 국내에서는 암울한 시대의 고통을 문예를 통해 극복하기 위해 염상섭·오상순·변영로·김억 등이 문예동인지 『폐허』를 간행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박종화·박영희·홍사용·나도향·현진건·김기진 등이 『백조』를 간행함으로써 문학 운동의 사회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백조』가 지향하던 이상적인 세계나 낭만적인 요건이 각종 사회운동이 확대되고 민족사회 운동이 분명하게 사회주의적 경향을 나타내던 시대적 분위기와 괴리되면서 제 3호를 낸 후 활동이 지속되지 못한다.결국, 『백조』동과정에서 늘 통일을 목적하고 진리를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전제한 후 “프롤레타리아의 전(全)문화가 한 건축물이라면 프롤레타리아의 예술은 그 구성물 중의 하나이니, 석가래도 될 수 있으며, 기둥도 될 수 있으며, 기와장도 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반박한다.당시 문단의 관심이나 논제의 중요성 등에 비해 이 논쟁의 외형상 결말은 비교적 쉽게 이루어지는데, 김기진이 「무산문예 작품과 무산문예비평」)을 통해 본론의 핵심부분에서는 자신의 주장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없음을 변론하다가, 마무리에 가서 자신의 태도상의 잘못을 시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그의 이런 외형상의 패배적 선언은 외부로부터 강요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이 논쟁의 동기를 문학관 자체에 한정된 것이라기보다는, 카프 와해 공작 등 문학 외적인 측면에서 파악하려는 시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김기진, 박영희의 내용?형식 논쟁, 그리고 후에 이어진 아나키스트와의 논쟁과 조선의 전반적인 사회운동 노선의 방향전환 등의 요인과 맞물려 1927년 의 제1차 방향전환론이 대두된다. 문예운동의 방향전환은, 자연발생적 신경향파문학론이 목적의식의 문학론으로 변화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방향전환에는 박영희와 한설야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박영희가 제시한 방향전환론의 핵심은 경제적 조합주의적 투쟁에서 정치적 대중적 투쟁으로 전환, 자연생장적 신경향파 문예에서 목적의식적 무산계급 문예로의 성장, 단순한 프롤레타리아문학에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으로의 전이, 전선적 방향전환을 이루기 위한 이론투쟁의 강조 등이다. 이러한 방향전환론의 전개과정 속에서 는 1927년 9월 1일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동경지부를 창설하였는데, 이 때 조직개편의 핵심은 를 예술가 중심의 특수조직에서 대중조직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이 방향전환론에서 나타난 일부 이론가들의 논의는 후에 문학대중화 논쟁의 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Ⅲ. 민족주의 문학비평(1) 민족주의 문학비평의 발생과 전개민족주의 문학 비평은 1926년 국민문학파의 문인들에 의해 전개된 문학론을 립적인 가치를 부여하며 프로문학에 대해서는 예술을 이용하여 본능적 충동을 거짓되게 하며 신성한 예술을 더럽히는 통속적 저급문학이라 비판했다.(4) 시조부흥론시조 부흥론은 민족주의 문학운동의 구체적 실천 방법으로 국민문학파가 제시한 현대 시조 창작 운동을 말한다. 시조부흥운동을 주도한 최남선은 「조선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에서 시조부흥에 대한 그의 신념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최남선은 「조선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에서 시조가 우리 문학 중 유일하게 체제를 갖춘 문학으로서, 사상과 운율 면에서 조선 정조의 특질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시조가 조선인의 문학 중 정수이고 민족정신을 되살리려면 시조를 되살려야 하고, 세계 문학사에 내놓을 수 있도록 갈고 닦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최남선은 「시조 태반으로서의 조선 민성 민속」)의 이해에서 우리의 민족성을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민족이고 따라서 창으로 소리하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데서 찾고 있다. 이러한 민족성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시가의 형식보다 시조가 적합한 형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최남선의 시조부흥론은 이후 이병기, 이은상, 주요한, 조운 등으로 이어지면서 두 가지 측면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였다. 첫째는 시조 창작 활동이 활성화되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최남선의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시조집『백팔번뇌』의 간행과 함께 그 시적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도달했다는 점이다. 시조부흥론은 시조의 창작활동과 함께 시조의 본질적 연구를 활발하게 전개시켰다. 이는 전통 문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가람 이병기는 「시조란 무엇인가」, 「시조원류론」에서 체계적인 시조론을 개진하고 시조 문학의 본령을 적절하게 논의하였다.(5) 절충론1927년에 들어서면서 사회주의 운동의 방향전환이 본격화되고 최초의 민족통일전선체인 신간회가 결성되는 등 민족해방운동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처럼 민족해방을 위한 계급연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문학계결론지금까지 프로문학비평과 민족주의 문학비평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프로문학은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이 결성된 이후로 약 10년 동안 우리 문단을 주도해나갔다. 그리고 프로문학에 대립하여 민족주의 문학비평이 성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프로문학비평과 민족주의 문학비평은 1920년대 비평 문학사의 가장 큰 두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중반에 전개된 프로문학의 내용?형식 논쟁에서 표명된 박영희의 내용 위주의 문학론은 이후 목적의식론으로 이어졌고, 김기진의 내용과 형식을 함께 중시한 문학론은 문학대중화론, 변증법적 사실주의론으로 이어져 1930년대 비평문학의 큰 흐름인 창작방법론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민족주의문학 비평의 시조부흥론은 70~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도 여전히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이 시기의 프로문학 비평과 민족주의 문학비평은 감상적이기보다는 이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론의 현실적용 문제에도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문학의 현실 참여에 대한 논의가 다양한 입장에서 이루어지면서 문학비평이 활성화되었는데, 바로 이 점이 이 시기의 문학비평의 커다란 의의라고 볼 수 있다.※ 참고 문헌권영민(1998), 『한국 계급문학 운동사』, 문예출판사.김영민(2006), 『한국근대문학비평사』, 소명출판사.김윤식(1987),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일지사.김혜니(2003), 『한국근현대비평문학사연구』, 월인출판사.엄창섭(2002)『한국 현대문학사』, 새문사.홍문표(1995), 『문학비평론』, 양문각.홍문표(2003), 『한국현대문학사 Ⅰ』, 창조문학사.※ 인물 및 용어정리1. 『개벽』: 천도교에서 펴낸 월간잡지로 1920년 6월 25일 창간되어 1926년 8월 1일 통권 72호를 끝으로 강제 폐간되었다. 사장 최종정, 발행인 이두성, 편집인은 이돈화였다. '개벽'이란 명칭은 천도교의 '후천개벽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판 160쪽 안팎의 국한문혼용체로 씌어졌으며, 집필자로는 주로 당시 계급주의 경향문학을 내 맞서 사실주의적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1925년대 유행하던 신경향파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를 표방하고 순수문학 운동을 벌였다. 한국어에서 본래 발달하지 않았던 3인칭 대명사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고, 용언에서 과거시제를 도입하여 문장에서 시간관념을 의식적으로 명백히 했으며, 간결하고 짧은 문장으로 이른바 간결체를 형성하였다. 주요 작품은「배따라기」,「감자」,「광염 소나타」,「발가락이 닮았다」,「광화사」등이다.4. 바르뷔스의 클라르테 : 1919년 발표. 《지옥》, 《포화(砲火)》와 함께 3부작을 이룬다. 이 소설의 젊은 주인공 장 폴랑은 이 세상에 사회악이나 빈부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공장 사무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비참한 전쟁을 체험함으로써 전쟁악(戰爭惡)을 고발하고 계급제도를 회의의 눈으로 보게 되며, 진실하게 사는 괴로움에 눈떠, 나중에는 인생과 진리의 광명(클라르테)을 추구하게 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제국주의 ·편견 ·전통의 속박 ·계급착취 등을 배격했다. 또 이 작품을 계기로 좌익작가로서의 자세를 표명하고, 로맹, 뒤아멜, 츠바이크 등과 평화주의 ·국제주의의 입장에서 사상의 인터내셔널을 슬로건으로 하는 이른바 ‘클라르테 운동’을 실천하고, 잡지 《클라르테》를 발행했다.5. 박영희 [朴英熙, 1901.12.20~?] : 호 회월(懷月), 송은(松隱). 서울 출생. 배재고보를 거쳐서 도쿄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에서 수학, 황석우(黃錫禹)와 함께 시동인지 《장미촌》을 발간하고(1921), 이듬해 《백조》 동인이 되어 《미소의 허영시》 《환영(幻影)의 황금탑》 《월광으로 짠 병실》 등을 발표하여 낭만주의적인 탐미적 시인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곧 그러한 자기 자신을 비판하고 1925년에 《개벽(開闢)》지에 단편소설 《사냥개》를 발표하면서 신경향파에 속하게 되어 이 해에 김기진(金基鎭)과 함께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를 조직,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에 가담하여 그 지도적인 인물로서 극좌적 평론을 썼다. 그러나었다.
- 목 차 -Ⅰ. 서론 - 시대 배경과 비평/2Ⅱ. 본론 -1950년대 비평의 전개 / 21. 민족 문학론 ---------------------------------------------------- 21) 민족 문학과 리얼리즘2) 민족 문학과 세계문학3) 민족 문학과 전통론4) 민족 문학론의 검토2. 신세대론 ------------------------------------------------------- 51) 김경린의 모더니즘 논의2) 김규동의 모더니즘 논의3)신세대와 전통의 단절4) 신세대 문학의 특색5) 신세대론의 검토3. 전후 모더니즘 문학론 ---------------------------------------------- 81) 김경린의 모더니즘 논의2) 김규동의 모더니즘 논의3)모더니즘 문학론 비판(1) 이봉래의 모더니즘 논의(2) 모더니스트 외부의 비판4) 뉴크리티시즘론의 소개5) 전후 모더니즘 문학론 검토4. 실존주의 문학론 ------------------------------------------------- 121) 실존주의 문학론의 전개(1)실존주의와 휴머니즘(2) 실존주의와 행동주의(3)실존주의와 부조리 인간2) 실존주의 문학론 비판3)실존주의 문학론의 검토Ⅲ. 결론 - 50년대 비평의 의의 / 15◎ [부록] 용어 정리 ---------------------------------------------- 16Ⅰ. 서론 - 시대 배경과 비평1950년 6월 25일 남·북한이 각기 단독 정부를 수립한지 불과 1년 10개월여 만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로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의 조인이 있기까지 만 3년 1개월여에 걸친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뼈아픈 시련의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평단이나 문단의 정신 구조의 상황도 전쟁의 포화에 잿더미가 되어버리고 새로운 인식의 출발이라는 계기를 마련하게 하였다.개화기 이래 해방공간까지의 한국의 근대비평은 계급주의 사상과 민족주의 사상의 이데올로기를 주축으로 하여 전개되어 왔다. 이 두 이데 역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자유신문≫, 1958)을 써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이 글은 한 나라의 문학이 한 민족의 민족적 특성을 강조할 경우 민족문학이 되며, 인류적 보편성을 강조할 때는 세계문학이 된다고 전제하면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의 관계를 개성과 보편성이라는 문제에 초점을 두고 접근한다. 민족의 개성을 드러내는 문학이 민족문학이고, 개성 있는 민족문학들이 모여서 인류적 보편성을 띤 세계문학을 이룬다는 말을 통해,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에 대한 조연현의 주장의 핵심은 ‘개성에 대한 강조’로 요약할 수 있다.3) 민족 문학과 전통론우리 근대문학사에서 개화기문학 초기부터 우리 민족 전통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이어 왔고, 서구사상을 받아들여 국권확장을 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유교 이데올로기적 전통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논의가 드높았었음은 개화기 소설작품들을 통해 알 수 있다. 1950년대에 우리가 겪은 전쟁과 그를 통해 밀려든 외래사상의 혼재는 당시의 인텔리 누구든 자기부정의 전제조건으로 전통 부재를 내세우게 만드는 풍조를 낳았다.민족 문학에 대한 관심과 전통의 문제를 깊이 있게 거론한 글로는 우선 백철(白鐵, 1908~1985)의 「현대문학과 전통의 문제」(≪조선일보≫, 1956)를 들 수 있다. 이 글에서 백철은 전통의 계승이 고전문학 작품에 대한 연구와 검토를 통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백철의 전통계승론은 곧바로 이봉래 등에 의해 비판 받는다. 이봉래(李奉來, 1922 ~ )의 「전통의 정체」(≪문학예술≫, 1956)는 모더니즘 비평의 계열에 선 전통부정론의 대표적인 글이다. 이봉래는 역사가 있고 과거가 있다고 해서 거기에 반드시 전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면서, 우리가 우리의 고전문학 작품들에서 문학적 유산이나 문학정신이나 문학적 영향을 조금도 물려받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문학에 전통은 없지만, 앞으로 전통의 확립은 중요하다면서 전통의 중요성 자체는 부인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앨리어트의 기성세대의 문학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고 보며, 신세대 작가들이 가지는 특질을 자존심과 패기 같은 적극적 세계관, 폭넓고 본질적인 교양조건, 이데아를 기반으로 하는 방법과 기술추구라고 접근하고 있다.하지만 백철은 당시 신인들의 작품에 대한 실제비평에서는 그들의 작품을 만족스러워 하지 않는다. 그는「신인과 현대의식」(《조선일보》,1955)에서 오늘날 신인의 작품세계는 외국문학의 정신분석적인 경향을 추종하고, 그럼으로써 진정한 현대사회의 인간 본질을 드러내기보다 병적인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며 신인들에 반성을 요구한다. 또한 「전형기 문학」(《사상계》,1955)에서도 “그들은 이십세기 하나하나의 문학 경향과 그 작품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해와 해석을 하고 있으면서, 그때마다 근시안적으로 거기 심취되는 집착인 편이 많고 거기 대해서 어떤 문학사적인 위치도 더 크게 역사적 성격의 일부로서 비판해서 파악하는 힘이 결여되거나 극히 약하거나 한 것이다.”라 말하며, 신세대들의 지엽적이고 근시안적인 안목에 대해 비판한다. 이러한 그의 신세대 문인에 대한 비판은 5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며 특히 1958년 10월 《자유문학》의 「세대의 대결:반항과 공동의 의식-친애하는 이어령군에게」에 잘 나타난다.반면 조연현은「우리나라의 비평문학-그 회고와 전망」(《문학예술》, 1956)을 통해 문단에서 중요한 것은 기성과 신인의 구별이 아닌 본격적 정열과 포부를 강조하며 계속해서 신인에 대한 기대를 표명한다. 그리고 이어서 「비평의 신세대」(《문학예술》, 1956)를 써 신세대론에 대한 본격적 정리를 시도한다. 그는 “평단의 신진들을 일종의 신세대의 대변자로 보는 것은 그러나 반드시 정확한 것은 못된다. 그것은 ‘신인’과 ‘신세대’라는 개념이 반드시 일치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인 중에서 그의 문학이 가장 수구적(守舊的)인 특질 위에 서 있는 것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성 중에서 신인보다 오히려 신세대적인 것에 가까운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라고 말하며 신인들에 대한 김경린과 김규동이 모더니즘 이론을 가장 활발하게 개진하였다.1) 김경린의 모더니즘 논의 동인들의 시적 논의는 주로 김경린(金璟麟, 1918~ )에 의해서 펼쳐졌는데 그는 모더니즘 시론의 방향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김경린은 먼저 ?현대시의 원근?(《조선일보》,1954)을 통해 감각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시작법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이글에서 과거의 순수시는 감각에만 의존하거나 이미지만을 강조하는 결함을 갖고 있었지만 앞으로 우리의 현대시는 이미지와 메타포 유기적인 배치에 의해 이루어지는 효과를 중시하고, 그 배후에 숨은 시대감각을 작품의 테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계속해서 김경린은 ?현대시의 제문제?(《문학예술》,1957)를 발표하여 모더니즘 시 활동을 회고하면서 모더니즘시의 기교 문제를 다룬다. 그는 먼저 과거 10년간 모더니즘시가 거둔 성과가 적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과거 우리의 선조들의 순수미의 세계와 감정의 자연노출을 통한 낭만의 세계는 금세기 초부터 현재에 이르는 전란(戰亂)의 타격 속에서 여지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신해, 격동하는 현실의 새로운 질서 속에서 동적(動的) 인간관과 더불어 주지적(主知的) 세계 형성을 위한 노력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현대시를 주지적이며 시각적인 세계로 이끌어왔고, 복잡한 기교의 발달은 현대시가 지나치게 난해하다는 비판을 불러오기도 했다고 말한다. 김경린은 현대 시인들은 그들이 체득한 시적 세계의 효과를 위하여 이미저리 즉 작상(作像)에 의한 응화관념(應和觀念)의 세계를 구축하기에 이르렀으며 여기서는 정확한 언어의 선택과 성공적인 작상의 구현화로 인한 시적 효과의 세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시적 효과의 세계를 이룩하기 위한 실천적 방법으로서 복잡한 기교 발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것이 곧 현대시의 난해성을 가져온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김경린은 현대시의 난해성을 현대시가 가진 약점이라기보다는 현대시가 남길 하나의 공적(功績)으로 분열적 작품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는 전통 계승을 통한 민족문학의 확립을 주장하는 최일수로서 당연히 제시할 수 있는 견해였다. 이어 그는 ?우리 문학의 현대적 방향?(《자유문학》, 1956)을 발표하여 현대문학의 모더니즘과 모더니티를 구별하여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을 역설한다.4) 뉴크리티시즘(new-criticism)론의 소개 - 백철, 김용권뉴크리티시즘은 50년대 중반 이후에 우리나라에 도입·수용되어 주목받았으며, 60년대를 거치며 이론의 정립과 작품의 적용이 시도되었다. 뉴크리티시즘 이론은 그것이 모더니즘적 세계관에 입각한 비평 방법론이라는 점에서 모더니즘론과 연속선상에서 다룰 수 있다.뉴크리티시즘이 우리 비평계에서 처음 언급된 것은 백철의 ?세계문학과 우리 문학?(《조선일보》, 1956)을 통해서이다. 그는 여기서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 기교 분석을 통한 숨은 의미 파악 등의 뉴크리티시즘 이론의 핵심을 잘 파악하여 전달하고 있다. 계속해서 백철은 ?뉴크리티시즘의 제문제?(《사상계》,1958)를 발표하여 한국비평과 서구비평의 차이를 거론하고, 한국 비평이 뉴크리티시즘에서 취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 대해 논의한다. 백철은 뉴크리티시즘을 수용함으로써 한국의 비평 문학이 근대 비평적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현대 비평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백철이 말하는 뉴크리티시즘의 비평론은 첫째, 뉴크리티시즘은 문학 그 자체의 조건, 그 내부적 언어의 짜임을 분석함으로써 그 언어가 의미하는 바를 구명해야 한다고 한다. 둘째, 뉴크리티시즘의 방법은 해석적이며 분석적이기 때문에 가령, 시의 한 행, 한 절 또는 그 행과 절과의 관계에서 그 시의 복잡한 의미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분석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뉴크리티시즘은 결코 작가의 전기, 사회적 배경이나 또한 작가가 살고 있는 사회적 상황과 관련해서 작품을 비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김용권(金容權) 역시 뉴크리티시즘의 소개와 유입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김용권이 뉴크리티시즘에 대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