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누이 일가(The Bernoulli family)17세기 이후 수학사에 이름을 남긴 베르누이 일가의 자손은 무려 120 여명에 이르고, 특히 니콜라우스 베르누이의 아들, 손자, 증손자 3대에 걸쳐서 8명의 매우 뛰어난 수학자를 배출했으며 이들 모두는 유럽에서 교수직까지 올랐습니다. (당시 유럽 전체의 수학교수 자리는 10개 미만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유전학자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베르누이 가문은 17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18세기 한 세기 동안 유럽의 수학계를 주름잡았던 것이다.같은 시대에 있어서 바하의 집안과 베르누이의 집안은 150여년 동안 활발한 활동을 하였는데 바하의 집안이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그늘 아래서 커 온 것에 비하면 베르누이 집안은 야곱, 요한의 형제와 요한의 둘째 아들인 다니엘 세 사람이 각각 두드러진 활약을 하였기 때문에 세 사람 중 누가 더 뛰어났느냐하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였다.한 편 바하의 집안은 아버지, 아들, 삼촌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냈는데 비하여 베르누이 집안은 형제간은 물론 부자간에까지 반목과 질투로 얼룩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누이의 가문에서는 지칠 줄 모르는 창의력을 발휘하여 수학과 물리학의 모든 분야에서 공헌한 바가 큰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확률과 진동계산을 포함한 몇몇 분야에서는 새로운 이론이 소개되어 전 유럽에 전파되기도 하였다.니콜라우스 베르누이의 두 아들 야콥(Jacob)과 요하네스(Johannes) 형제는 모두 당대 최고의 수학자였고, 과학사에서 형제가 각각 당대 최고의 과학자로 꼽힌 가장 두드러진 예를 제공합니다. 또한 요하네스와 그의 아들 다니엘(Daniel)은 역사상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부자 과학자로 손꼽힙니다. 베르누이 가문의 수학자들의 놀라운 공통점은 그들이 심사숙고한 결과 수학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강요 등의 이유로 다른 여러 전공과 직업을 전전하다가 마치 신에게 이끌린 듯 수학에 닿았다는 것입니다. 니콜라우스 베르누이는 야콥을 신(x) f'(x)lim ------ = lim -------x-a g(x) x-a g'(x)로피탈의 공식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라이프니츠, 요한, 야곱이 연구한 결과를 로피탈이 정리하여 발간한 미적분학 교과서에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야곱과 요한형제간의 추악한 명예싸움은 최속강하선의 문제 때문에 일어났다. 최속강하선문제는 두 점 A, B를 지나는 곡선을 따라서 A에서 출발하여 B로 움직일 때 마찰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이 곡선이 어떤 형태를 취할 때 지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최소가 되느냐 하는 문제이다. 즉 A와B를 잇는 곡선을 구하는 문제이고 이에 대한 해답은 A를 지나는 수평선 위를 회전하는 원둘레 위의 한 점이 그리는 사이클로이드(cycloid)이다. 이 문제는 요한이 제시하였고 당시의 유명한 수학자 뉴턴, 라이프니츠, 로피탈과 야곱, 요한 다섯명 만이 해답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야곱과 요한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접근한 방법은 서로가 달랐다. 요한의 방법이 직관적인데 반하여 야곱은 해석적으로 접근하였다. 그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하여 새로운 분야인 변분학을 탄생시키는 업적을 수학사에 남겼다. 요한의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잘못 사용한 유도식을 후에 그의 형 야곱의 유도식으로 대체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두 형제간에 추한 논쟁이 4년 동안이나 지속되었고 마침내 형 야곱이 싸움에 지쳐 죽고 말았다. 요한은 그의 형이 죽은 후에 바젤로 돌아와 형 대신 교수직을 물려받았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야곱은 요하네스를 수학으로 이끈 스승이고 평생 동안 이들의 학문적 지향점은 같았지만, 베르누이 가문의 최초의 대 수학자 야콥과 요하네스의 불화는 거의 전설적으로 전해집니다. 요하네스가 자기보다 더 훌륭한 학자로 인정받는 걸 지독히 꺼리던 야곱은 자신이 재직하던 바젤 대학 교수직에 요하네스가 임용되는 것을 철저히 방해함으로써 요하네스는 결국 네덜란드의 그로닝겐 대학교에 가게 됩니다. 그 이후 두 사람은 학술지 Acta Eruditoriu페테르부르크 과학원의 수학교수로 임용됩니다.다니엘은 7년 후 바젤로 돌아왔다. 그는 요한의 세 아들 중 가장 유명하였고 온 정열을 확률론, 천문학, 물리학 및 유체역학에 쏟았다. 확률론에서 개연적 기대값(moral expectation)의 개념을 고안 하였고 1738년에 쓴 에는 현재의 초급 물리학 책에 나오는 그의 이름이 붙은 유체역학의 원리가 들어 있다. 세 아들중 막내인 요한 2세는 법률 공부를 하였으니 인생 후반기를 바젤대학교의 수학 교수로서 보냈다.앞에서 말했던 야곱, 요하네스 형제간의 불화는 요하네스, 다니엘 부자간의 증오에 비하면 그 정도가 훨씬 덜할 겁니다. 다니엘이 어린 나이에 유럽에서 손꼽히는 과학자로 인정받은 건 일부분 요하네스의 혹독한 교육에서 기인했습니다. 요하네스, 다니엘 부자의 불화의 결정적인 단초는 앞에서 요하네스 2세를 설명하면서 잠시 언급했던 프랑스 과학원의 연례 학술경연대회였습니다.프랑스 과학원은 중요하고 전문적인 과학 문제를 해마다 공개적으로 제시하고, 유럽의 수많은 과학자들은 거기에 응모합니다. 프랑스 과학원의 대상은 요즘으로 따지면 노벨상 급의 권위가 있는, 유럽의 모든 과학자들의 꿈입니다. 1734년 다니엘 베르누이는 오랜 러시아 생활을 끝내고 스위스로 귀국하여 아버지 요하네스의 집에서 기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해의 프랑스 과학원 대상은 요하네스, 다니엘 부자가 공동으로 수상한다고 발표되었습니다. (그 이전에 요하네스와 다니엘은 각각 한번 씩 대상을 수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들과 대상을 공동수상하는 것에 화가 끝까지 치민 요하네스는 그날로 다니엘을 자기 집에서 내쫒습니다.이런 엉뚱한 이유로 나빠진 두 사람의 사이가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으로 악화된 사건은 1738년 다니엘이 그 동안의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한 ‘유체 동역학(Hydrodynamics)’를 출간함으로 써 시작됩니다. 이 책에서 다니엘은 그 유명한 ‘베르누이 법칙’을 소개합니다. 아들 다니엘의 책을 받아 본 요하네스는 그 업적의 핵심내용을 자신이ce,1749~l827), 몽주(Gaspard Monge,l746~1818), 람베르트(Johann HeinrichLamberr, 1728-1777) 등을 거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 오일러가 가장 뛰어난 수학자였다는 것을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양에 있어서나 질에 있어서나 그를 능가하기는 어렵다. 오일러 하면 생각나는 단어가 "다산(多産)"이다. 왜냐하면, 그는 평생 동안에 500편 이상의 저서와 논문을 출판하였다. 오일러의 연구 목록에는 죽은 뒤에 출판한 것까지 포함해서 886항목이나 있으며, 현재까지 나온 전집은 75권에 달한다. 생애를 통해 그가 쓴 논문의 분량은 연평균 약 800쪽이 되는 셈이다. 심지어 그가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였을 때에도 그의 연구 활동은 위축되지 않고 계속되었다. 오일러가 살아 있는 동안 과학 잡지나 학술지들은 실을 글이 떨어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는데, 이는 오일러가 잡지에 기고한 논문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죽은 후 43년이 지나서야 그의 저서들을 모두 출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방대한 저작들은 심오하게 수학의 면모를 바꾸어 놓은 한 스위스 시민의 천재성에 대한 증거가 되고 있다. 이런 엄청난 양을 전해들을 때 과장 이거나 가공적인 이야기이며 역사적 사실일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주로 독일?러시아의 학사원을 무대로 활약하였고, 해석학의 화신(化身),최대의 알고리스트(algorist : 數學者) 등으로 불렸다. 그의 연구는 수학?천문학?물리학뿐만 아니라, 의학?식물학?화학 등 많은 분야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레온하르트 오일러는 1707년에 스위스의 바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울은칼빈(Calvin)파의 목사였다. 그러나 수학이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야곱 베르누이에게 수학을 배우고 자기 아들인 오일러에게도 가르쳤다. 아버지는 오일러가 목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오일러는 아버지가 가르쳐 준 수학에 더 흥미가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희망도 저버릴 수 없어서 13살에 들어간 바젤 대학에서는 신학수학과 물리학이었다.1727년 그는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운이 나쁘게도 그 날 학문의좋은 이해자였던 예카테리나 1세가 죽고, 그 뒤를 이은 피터 2세는 학문을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일러의 의학부 자리도 흐지부지되었다. 다니엘 베르누이가 애쓴 덕택에 얼마 안 있어 수학부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 후1741년에 프리드리히 대왕의 초빙으로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로 옮길 때까지 그는 페테르부르트에 머물렀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살 생각을 한 오일러는 1733년 그곳에서 표트르 대제의 신임을 얻은 화가의 딸 카타리나와 결혼하여 13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 가운데 7명은 어릴 때 죽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오일러는 어린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큰 아이들을 주변에서 놀게 하고 수학 논문을 썼다. 쓰기를 마친 논문을 차례로 책상 위에 쌓아두었는데, 인쇄 속도가 논문 완성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부주의한 인쇄소가 위에 쌓아둔 논문부터 차례로 인쇄해갔기 때문에 논문의 완성 날짜가 늦은 것이 먼저 인쇄되기도 하였다.오일러는 성페테르부르크스에 머무르는 동안 유체역학이 발달함에 따라 다니엘과 더 많은 교류를 하게 되었다. 바로 그 곳에서 오일러는 압력은 유체 내 각 점에서 변하는 성질을 가졌다는 것을 확신했으며 압력과 속도를 관계짓는 미분 방정식을 얻었다. 이것이 유체역학에서 유명한 오일러의 방정식이다. 또 오일러는 그 미분 방정식을 적분하여 역사적으로 최초로 베르누이 방정식의 형태를 유도하였다.1733년 다니엘이 바젤로 돌아가자 오일러는 그의 자리를 이어 받아 성페테르부르크스의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오일러는 역동적이었으며 많은 저작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1741년까지 그는 90여 편의 논문을 써서 출판되길 기다렸으며 두 권 짜리 “역학(Mechanica)”이라는 책을 썼다. 성페테르부르크스의 주위 환경 또한 그런 성과를 이루도록 잘 갖추어져 있었다.28세이던 1735년은 지나친 연구와 러시아의 추운 날씨 때문에 오른쪽 눈을잃게되는 불행한 해였다. 당시 다른 수아졌다.
[실험2] 키르히호프의 전류 법칙과 전압법칙 그리고 옴의 법칙1。목적 : ① 모든 마디에서 전류를 지배하는 법칙, 즉 키르히호프의 전류 법칙과 모든 루프에서 전압을 지배하는 법칙, 즉 키르히호프의 전압 법칙을 실험을 통해 이해한다.② 저항기에 흐르는 전류와 저항기에 걸리는 전압 사이의 수학적인 관계, 즉 옴의 법칙을 실험을 통해 이해한다.2。기기 및 부품- 기기 : 직류-전력 공급기, 멀티미터- 부품 : 저항기-1kΩ, 2kΩ, 3.3kΩ, 4.7kΩ, 6.8kΩ, 10kΩ3。예비 지식< 키르히호프의 법칙 >독일 물리학자 G.R. 키르히호프가 발견한 법칙. 대표적인 것으로 전기회로에 관한 법칙, 열복사에 관한 법칙, 반응열의 온도변화에 관한 법칙 등이 있다. 〔전기회로에 관한 법칙〕 1849년에 발표된 것으로 임의의 전기회로의 전류를 구하기 위한 법칙이다.다음 제 1 법칙과 제 2 법칙을 수식으로 나타낸 연립방정식의 해(解)로 구할 수 있다.① 제 1 법칙: 하나의 접속점에 흘러 들어오는 전류의 총합은 0이다. 이때 음의 전류는 접속점에서 흘러나오는 전류를 뜻한다.② 제 2 법칙: 하나의 접속점에서 출발하여 처음 접속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닫힌 회로에 대해 각 부분의 저항과 여기에 흐르는 전류의 곱은 그 닫힌 회로에 포함되는 기전력(起電力)의 합과 같다. 이 법칙은 직류뿐만 아니라 교류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저항 외에 인덕턴스·콘덴서를 포함하거나 저항을 임피던스로 바꾸어도 된다.♣ 키르히호프의 법칙-다중 전원의 회로해석키로히호프의 법칙 (Kirchhoff's Law)키르히호프의 법칙은 전류에 관한 제1 법칙과 전압에 관한 제2 법칙이 있다.제1 법칙은 전류가 흐르는 길에서 들어오는 전류와 나가는 전류의 합이 같다는 것이고,제2 법칙은 회로에 가해진 전원전압과 소비되는 전압강하의 합이 같다는 것이다.① 제1 법칙 - 키로히호프의 전류 법칙회로에 가해진 전원전압으로 각 저항에는 전류가 흐르는데 저항에 반비례하여 흐를 것이다.전원전압이 가해져 전체 회로에 흐르는 전류는 각 저항에 흐르는 전류를 합한 것과 같게된다. 7[A]가 회로에 흘러들어가 2[Ω]의 저항에 5[A]흐르고, 5[Ω]의 저항에 2[A]흘러 합은 7[A]의 전류가 되는 것이다.회로내에 임의의 한 점에서 흘러 들어오고 나간 전류의 대수적인 합은 항상 0이다.다시 말하면 회로에서 임의의 한 점을 통해서 흘러들어온 전류와 흘러나간 전류의 크기는 항상 같다.② 제2 법칙 - 키로히호프의 전압 법칙회로에서 가해진 전원전압은 저항3개로 나누어져 소비된다.즉 부하는 3개의 저항이 되고 각 저항마다 전압강하가 생길 것이다.각 저항의 전압강하를 모두 합하면 가해진 전원 전압이된다.임의의 폐루프에서 모든 전압의 대수적인 합은 0이다. 만약 임의의 전위를 갖는 한 점에서 출발해서 같은 전위로 같은 점에 들어오면 전위차는 0이다.③ 옴의 법칙◆ 전류전기장의 힘을 받아 전하가 운동하는 것이 전류(electric current)이다. 다시 말해서 전류I는 한점을 지나는 전하 q의 시간적 이동률로써 정의된다.만약에 회로의 저항요소는 그 크기가 고정되어 있고 인가되는 전압의 크기가 변한다면 전류도 변화하게 된다. 그림의 회로와 같이 인가전압의 크기가 0V에서 12V까지 변화시킨다고 가정하고 전구에 12V의 전압이 공급되었을 때 전구의 밝기가 표준전류의 경우라고 생각해 보면 10V의 전압이 인가되었을 때 전구의 밝기가 12V의 경우보다 흐린 것을 알수 있고, 전압이 0V가 되면 전류가 흐르지 않기 때문에 전구는 빛을 내지 않게 된다.여기서 옴의 법칙증명할수 있다.◆ 전압그림에 표시된 것처럼 저항R이 건전지V와 직렬로 연결되기 때문에 저항 양단에 걸리는 전압은 건전지의 전압V와 크기가 같다. 이런V값은 I x R에 의해서 구해지는데,I가 2A의 세기를 갖기 때문에 2A x 3Ω=6V로 인가된 건전지 전압 6V와 같기 된다.◆ 저항V와 I의 크기를 알고 있다면 저항 양단에 걸리는 전압의 세기를 전류의 세기로 나누면 쉽게 저항의 크기를 구할 수 있다.■ 요약 ■여러 개의 전기 저항과 전원이 연결된복잡한 회로에서 각 부분을 흐르는 전류와 전압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키르히호프의 법칙이 성립한다.1> 전류가 흐르고 있는 여러 개의 회로가 한 점에서 만날 때 이 점에 흘러들어 오는 전류의 총 합은 그 점에서 난가는 전류의 총 합과 같다.그림에서 B점으로 들어오는 전류는 이고, 흘러나가는 전류 이므로 이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성립한다.이것은 전기 회로에서 전류가 흐를 때 전하가 보존됨을 나타낸다.2> 임의의 닫힌 회로에서 그 회로에 있는 전지의 기전력의 대수 합은 그 회로에 있는 저항에 의한 전압 강하의 대수 합과 같다.다음 그림의 전기 회로는 두 개의 닫힌 회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아래의 회로도에서 다음과 같은 관계가 성립한다.닫힌 회로 ABDA 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