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성장과정믿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시는 부모님께서 자신의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가르침으로 인해 저는 늘 저의 말과 행동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나아갈 방향은 제시해주셨지만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게 해주셨고 그에 대한 책임 또한 스스로 져야 한다는 점을 항상 강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씩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과정에서 자립심을 키웠습니다. 서툴렀지만 나름대로 깊이 있는 생각과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저의 인생에 대한 책임 의식을 깨달아가는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성격 및 장단점저의 장점은 세심함 입니다. 대학교에서 2년 간의 업무가 끝나고 마지막 날, 저는 같은 부서 교수님들께 감사의 의미로 작은 선물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같이 대화하면서 관심 있어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한국에서 방콕에 여행을 오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미리 준비했습니다. 특히 한국 영화, 드라마에 관심이 많으시던 한 교수님께 가장 좋아한다고 했던 드라마의 dvd 세트를 선물로 드렸더니 세심하게 다 기억하고 있었냐고 하시며 정말 좋아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세심함은 비서직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맡은 업무에 몰입하여 신속하고 실수 없이 끝낼 뿐만 아니라, 임원분께서 필요로 하시는 것들을 미리 파악하고 챙겨드리는 비서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저에게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새로운 환경에 처했을 때 다소 긴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약간의 긴장은 사회생활에 있어서 자극제가 되기에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촉매제가 되는데 그 단점을 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단점을 가리기 보다는 장점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현명함을 갖추겠습니다.경력사항대학 졸업 후 학원에서 수학 강사로 근무하다가 3년 전 코이카에 지원해서 태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평소 여행을 다니면서 태국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한국어교사 양성과정 프로그램을 이수해 방콕에 있는 대학교에서 2년 동안 한국어 강사로 일했고 계약 만료 후 한국어학원에서 1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대학교에서 일하는 동안 태국인 교수님, 스탭들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온 다른 강사들과 함께 소통하고 일하면서 열린 자세와 적극적인 태도를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롭게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태국인들과 일했던 경험들이 입사 후 임원분을 모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지원동기 및 포부직접 비서 업무를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제가 생각하는 비서의 역할은 모시는 임원의 업무를 완벽하게 파악한 상태에서 놓칠 수 있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보완하며 최소한의 시간에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꾸준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는 후천적인 전문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입사 후에도 기본이 되는 사무능력과 외국어회화 향상에 꾸준히 시간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최종적으로는 제가 모시는 임원분과 관계된 모든 거래사와의 상호관계, 업무 우선 순위 등 총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 나가겠습니다.
< 목 차 >Ⅰ. 머리말Ⅱ. 혁명으로서의 4·19Ⅲ. 혁명에 대한 반혁명으로서의 5·16Ⅳ. 맺음말Ⅰ. 머리말이번 학기 20세기 한국 지성사 수업을 통해 ‘함석헌’ 이라는 인물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고 그의 생각들에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그 중 내가 관심이 갔던 부분은 우리 역사의 흐름과 정치 문제, 그 중에서도 아래로부터 일어난 혁명에 대한 함석헌의 시각이다.20세기 이후 우리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이고 민중들의 혁명의 역사이다. 동학에서부터 5·18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있었다. 그 중 함석헌이 4·19에 부여한 의미를 알아보고 5·16과의 차이점을 밝혀가며 참 혁명의 뜻을 알아보려고 한다.우선 ‘혁명’이 뜻하는 바를 살펴보면, 혁명은 정치가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달라지되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뜯어고치고 새 출발을 하는 일이다. 근대로 들어서면서 민중들은 역사의 주인 노릇을 하기 시작했고, 역사를 새롭게 발전시키려고 했다. 끊임없는 혁명이 계속되는 것이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혁명은 죄와 싸우는 일이라는 점이다.이러한 혁명이 성공되기 위해 갖추어야할 것을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혁명이 성공되려면 반드시 대중운동이 아니면 안 된다. 근대의 혁명은 옛날의 영웅들이 지도하던 혁명과는 다르다. 이것은 민중의 자기해방 운동 곧 자유운동임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옛날 무왕·탕왕이 하고, 왕건·이성계가 하던 혁명도 민중을 얻지 않고는 아니 되었 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중 자신이 한 것이 아니요, 개인 혹은 일부 계급이 민중 을 이용했을 뿐이다. 근대 정치 이념은 링컨의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민중의’라는 세 마디에 다 된다. 민중을 위할 뿐 아니라 민중에 의한 민중 자신의 정치여야 한다. 그러므 로 그것은 민중이 직접, 전체가 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아무도, 대중적인 것이 현대 혁명운 동의 특색인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중략)그다음 지속적이라는 것은, 참 전체의 운동은 스스로 하는 운동이므로 시간적으로 계속해 나가는, 다시 말하면 자라는, 또 다시 말하면 자신(自新)하는 운동이어야 한다.혁명에 깊고 넓은 이론, 치밀한 조직, 뛰어난 인격이 요구되는 것은 이 두 가지, 곧 대 중적이며 지속적인 운동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운동이 이루어졌을 때 그것을 국민성격 혹은 민족성이라 한다. 그러므로 혁명의 목표는 국민성격을 세움에 있다. 혹은 민족성을 개조함에 있다 할 수 있다. 혁명은 국민 성격적인 운동이어야 한다.Ⅱ. 혁명으로서의 4·19함석헌은 민중이 민주주의를 살려낸 4·19혁명 10돌을 맞아 1970년 4월 19일자로 「씨알의 소리」 첫 호를 발행하였다. 4·19혁명은 민중의 소리였고 이는 곧 씨알의 소리였으며 그 씨알의 소리를 이어받아 다시 그 목소리를 내고자 씨알의 소리라는 매체를 창간한 것이다. 이처럼 큰 의미를 지닌 4·19는 3·1운동에 뿌리를 두고 「사상계」의 영향을 받아 해방 직후 학생운동에서 나오게 되었다. 4·19는 순전히 젊은 세대, 그 중에서도 학생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운동이라는데 큰 특징이 있다. 특정 이익집단의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은 비교적 공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는 순수한 정의감의 표출이었다.또한 전국에서 전 민중이 들고 일어난 혁명이었다. 처음에는 4·19를 혁명으로 규정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분명히 4·19는 쿠데타도 의거도 정변도 아닌 혁명이다.마산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서울로,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대학생에서 교수로, 교수에 서 전 민중으로, 들판의 불처럼 번져나가 개인은 없어지고 한 덩어리가 되어 노한 바다처 럼 뒤흔들었는데 그것이 혁명이 아니란 말이야? 그러지 않았으면 총칼을 쓰다 말고 항복 했겠는가. 전체 민중이 일어선 것 아니라면 그 권력 구조가 무너졌겠는가. 무너진 후에 무 엇이 남은 것 있었던가. 죄악의 세력이 밑둥에서부터 꺾어지지 않았나. 그런데 혁명이 아니 란 말인가? 전 민중이 노했고, 일어났고, 이겼고, 기뻐했는데 그것이 혁명이 아니라면, 그럼 혁명은 어떤 것이냐.그러나 정작 4·19혁명 이후 민중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자유는 거의 없었다. 민중들은 민주당에게 힘을 실어줬지만 그들은 역시 민중들의 기대를 어기고 자신들의 권력유지에 급급했다. 하지만 민주당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민중 자신들을 책망해야 했다. 모두가 혁명 세력들을 칭찬하기에만 바빴고 감히 4·19를 정당하게 비판하고 충고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4·19의 실패원인을 말했다.4·19에서 우리의 근본 잘못은 우리가 스스로 역사의 책임자 노릇을 하려 하지 않고 서서 기다리려 한 데 있다. 모든 잘못의 근본 원인은 너·나를 갈라 생각하는 데 있다. 나라는 너·나 생각이 없고, 너도 ‘나’라 하는 데 있다. 모든 것을 ‘나’라 하는 것이 나라요, 나라하 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너·나 봄을 떠나지 못한 사람은 인생 구원을 말할 자격이 없고, 선 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정도 이상을 모르는 마음은 사회 경륜을 의논할 수가 없다. 그 놈이 그놈이라 하지 말고, 이놈도 그놈도 나다 하게 되어야 한다.또한 4·19는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것은 분명하지만 함석헌은 그 둘 사이에 큰 차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종교적인 배경이다. 3·1운동은 기독교·불교·천도교 세 종교가 단합해서 하나 되어 운동이 되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배경이 아주 강했다. 그에 비해 4·19는 굳센 종교적 신념의 뒷받침이 없었다. 4·19는 순수한 학생들의 외침에서 비롯되어 지성과 결합된 혁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실패의 원인이 종교 신념의 부재라는 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종교’를 오늘 날 우리 주변의 종교로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함석헌이 말하는 종교 신념은 곧 철학과 동일한 것으로 주어진 척도에 대한 부정성이며 개인의 철저한 주체성을 뜻한다. 이러한 종교적 신념이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5·16이 오게 된 것이다.정치적인 의도는 전혀 없이, 단지 정의와 진리를 위해 시작되었던 4·19의 특징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8개월 뒤 5·16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구실이 되기도 한다. 독재 타도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혁명으로 나아갔어야 했다.우리가 기대를 한다면 모처럼 깨어 일어나는 지성일수록 문제의 뿌리가 사회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일을 2, 3일에 끝내고 정치인에게 넘겨준 다음 이젠 “당신들이 하시오”하고 좀 더 깊이 들어갔더라면 아마 그렇게 만은 안 됐을 것이다.)Ⅲ. 혁명에 대한 반혁명으로서의 5·16혁명이 자꾸 뒤이어 오는 것은 참 혁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5·16은 아래로부터 올라간 운동이 아니었고, 대중 전체가 움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혁명이라고 말할 수 없다.혁명은 민중의 것이다. 민중만이 혁명을 할 수 있다. 군인은 혁명 못한다. 어떤 혁명도 민 중의 전적 찬성, 전적 지지, 전적 참가를 받지 않고는 혁명이 아니다. 그러므로 독재가 있 을 수 없다. 민중의 의사를 듣지 않고 꾸미는 혁명은 아무리 성의로 했다 해도 참이 아니 다. 또 민중의 의사를 모르고 하는 것이 자기네로서는 아무리 선이라 하더라도, 또 사실 민 중에게 물질적인 행복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선의는 아니다.함석헌은 5·16 군사 쿠데타가 성공한 직후 모든 언론이 권력의 서슬에 숨죽이고 있을 때 「사상계」에 “민중을 겁나게 하여가지고서는 혁명을 못한다.”라고 5·16과 박정희를 정면에서 비판하였다. 그들은 쿠데타 당시 내세운 혁명공약을 표면적으로만 드러낼 뿐 전혀 실행하지 않았다. 혁명이 끝나면 물러가겠다고 했지만 말 뿐이었고, 정치가에게 권력을 넘겨준다고 했지만 이 역시 실천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민중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권력을 준다는 것 자체도 말이 되지 않는 공약이었다.5·16은 분명히 4·19에 맞서 일어난 것이다. 혁명에 대한 반혁명이다. 5·16 정권이 5·16을 될수록 혁명으로 규정짓고 4·19를 혁명이 아니라하려고 갖은 수단을 써서 구구한 억지 서명을 하는 그 일이 벌써 그것을 증명한다. “나는 도둑이 아니다” 하는 것이 도둑인 증거이다.
< 목 차 >Ⅰ. 머리말Ⅱ. 후설의 칸트 비판1. 칸트의 근본 문제론에 대한 비판2. 초월론 철학적 방법의 관점에서 이행되는 후설의 칸트 비판Ⅲ. 후설이 칸트로부터 받은 영향1. Transzendental 개념2. 주관성의 본질Ⅳ. 맺음말Ⅰ. 머리말처음 후설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서 칸트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선험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점에 있어서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칸트에게서 후설이 받았던 영향과 자기 나름의 현상학을 정립해가며 칸트 사상과의 방법적 차이를 드러내며 비판했던 부분을 후설의 현상학을 중심으로 하여 알아보려고 한다.Ⅱ. 후설의 칸트 비판1. 칸트의 근본 문제론에 대한 비판후설은 칸트가 독단적 주관 개념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물음이란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설정될 때 오직 그때만 실제로 만족스런 대답이 주어질 수 있다. 문제의 근본적 설정이란, 문제되는 것이 그것의 본질상 놓여 있는 차원의 의미와 모순되는 가정들이 물음 안에 수용되지 않음을 말한다. 후설에 따르면 인식 물음의 본질에서 동떨어진 가정들이 칸트의 문제설정에서 전제되고 있다. 이는 곧 인간의 의식 바깥에 놓여있는 ‘물 자체’이자 한편으로 실재하는 인간의 주관적 표상능력이다. 그러나 후설은 칸트와 같은 물 자체를 설정하지 않았으며 우리에게 드러나는 현상들이 세계와 세계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고, 최소한 우리 의식에 주어지는 모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이처럼 자연적 세계파악에 의해 정립되는 초월적 객체성의 전제들은 근본적 인식 물음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후설은 근본적인 인식 문제는 자연적 태도에서 제기될 수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우리는 자연주의자는 자신의 행동에서 관념론자(Idealist)이며, 객관론자(Objectivist)라고 총괄적으로 말할 수 있다. 자연주의자는 ‘도대체 무엇이 진정한 진? 미? 선이며, 이것은 어떻게 일반적 본질에 따라 규정될 수 있고 개별적 경우에 어떤 방법으로 획득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들을 학문적으로, 따라서 모든 이성적인 사람을 구속하면서 인식에 도달하려고 매우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은 후설은 날이 갈수록 점점 완화시켰다. 이는 이런 관점에서 행해진 그의 칸트 해석이 끊임없이 변하였기 때문이다. 후설이 보기에 칸트는 확실히 초월론적 현상학적 차원을 목격했으며, 그의 논구들은 그것의 진정한 의미에서 볼 때 순수히 이 차원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이 초월론적 현상학적 차원은 칸트에 의해서는 체계적으로 답사되고 확보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차원은 칸트에 의해서는 자연적 인식태도에서 연유하는 모든 심리학적 견해들이 탐구의 고유한 의미에 의해 그것들의 존재권리를 이 탐구 안에서는 상실했다고 해도, 그것들은 언제까지나 함께 작용하고 있다. )2. 초월론 철학적 방법의 관점에서 이행되는 후설의 칸트 비판칸트에게 있어서 경험이나 이 경험들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감성 작용과 지성 작용이다. 이는 감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순수하고 선험적이며, 그러면서도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므로 칸트는 이를 ‘초월적’이라고 부른다. 자기 자신의 의식을 통해 주관이 객관의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대상을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의식을 ‘경험 의식’이라고 한다면 이 경험 의식의 형식적 기능 원리를 ‘초월적 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칸트의 초월 철학은 선험적 감성과 지성에 출처를 가진, 즉 한갓 주관적인 인식 원리들의 토대 위에서만 무엇인가가 인식되고 따라서 인식된 것 일반에 이 주관적인 원리들은 보편 타당하며 이런 의미에서 인식(경험)된 대상 일반은 선험적 인식 원리들에서 ‘규정’된다고 말하지만, 선험적 인식 원리들이 대상을 구성한다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후설은 어떤 한 대상 영역을 탐구하기 위한 특정의 방법론은 주관이 임의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태의 본질적인 존재론적 구조에 의존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본질적으로 서로 구별되는 다양한 대상영역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방법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후설의 직관주의의 방법적 원리는 모든 특수한 방법 이념들 앞에 놓여 있는 다른 한 가지 원리와 특히 느낌상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아니라 넓게는 이 원리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문제의 이 원리는 근본에 있어서 윤리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철학자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즉 모호한 ‘추상적’ 사상이나 ‘호언장담’에 만족하지 말고, 자신이 말하는 바에 대해 언제나 정확히 석명하라. 다시 말하자면, ‘사상(事象) 자체’를 그것의 모든 국면과 측면에 걸쳐 분석하여 고찰하라. 이 원리는 이리하여 후설의 사고가 지닌 성격을 그토록 외경스럽게 만드는 바로 그 지적인 성실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후설은 칸트에게는 이러한 직관적 방법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의식을 직관적으로 탐구하지 않는다고 하는 후설의 비난은 당연히 체계적인 지향적 분석을 시행하지 않는다고 하는 비난과 같은 의미이다. 이처럼 칸트에게 체계적인 지향적 분석이 결여된 이유는 칸트가 초월론적·현상학적 환원을 방법상 관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비판을 제기하는 것은 벌써 그의 현상학적 환원의 이념이 체계적으로 전개되는 최초의 문헌에서, 그러니까 1907년의 『다섯 강의』에서 이다. )Ⅲ. 후설이 칸트로부터 받은 영향1. Transzendental 개념1905년은 후설이 현상학에 환원이라는 사상을 도입한 해이다. 그 시기를 전후로 후설은 일반적으로 매우 침울하였다. 그것은 후설의 정교수 임명 동의안을 철학과 회의가 부결한 데서 볼 수 있는 과 동료들의 불신에만 기인한 것은 아니다. 그 때 후설은 철학자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해서 회의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인식 비판, 이성 비판이라는 과제를 세워 특히 칸트의 저술을 깊이 연구하게 된다. 그 결과 후설은 칸트의 ‘선험적’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며, 현상학은 선험 철학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이 후설 현상학에서는 선험적 환원을 나타내는 현상학적 환원이다. )후설은 자신의 순수 현상학을 지칭하기 위해 ranszendental 개념을 차용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에 따르면 선험적 환원은 (1) 판단 중지에 의해서 우리의 시선을 대상으로부터 주관으로 돌리며 (2) 그 결과 도달하는 선험적 주관은 모든 초월적인 것을 배제한 ‘잔여’에 그치지 않고 대상을 형성, 구성하는 생산적 기능을 가진 주관으로 된다.) 이것은 주관이 선험적 주관이 됨으로써 이 주관이 구성한 지향적 대상도 현상학적 연구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판단 중지에 의해 도외시되었던 모든 대상이 주관 의존적이 된다. 그리고 선험적 주관은 모든 대상들의 존재 근원으로서 절대적 주관의 성격을 갖게 된다. 후설은 《이념들Ⅰ》에서 이 선험적 주관은 실재계가 몽땅 없어지더라도 그 존재에 있어서는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 그런 존재라고 한다.즉, ranszendental개념은 칸트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후설의 초월론적 주관은 칸트의 초월론적 의식과는 달리 보편적인 초월론적 통각의 통일체가 아니라 역사와 사회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주관이다. 보편적인 초월론적 통각의 통일체인 칸트의 초월론적 의식은 역사성과 사회성을 지니고 있지 않지만 역사와 사회 속에서 살아 숨 쉬는 후설의 초월론적 주관은 역사성과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
< Report >자기의식과 존재사유- ‘나’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참다운 주체성에 이르는 과정-과 목 : 학 과 :학 번 :이 름 :Ⅰ. 머리말“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과 함께 근대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나’일 것이다. 데카르트는 형이상학의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나’를 주요 화두로 던졌고 문제화시켰다. 데카르트 이전에는 ‘나’가 철학적 중심 주제로 자리 잡은 적이 없었다. 그가 말하는 ‘나’라는 존재가 무엇을 뜻하며, ‘나’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 물음이 어떻게 근대적 주체성으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야 할 우리의 지향점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한다.Ⅱ. ‘나’와 ‘우리’1. ‘나’왜 ‘나’인가?데카르트 이전까지 생각과 있음은 내 밖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그 둘은 언제나 하나라고 전제되어왔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볼 때 나 자신은 세계 속에서 정말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한데, 그러한 나라는 존재의 생각이 어떻게 나의 밖에 존재하는 세계의 있음의 원리와 일치할 수 있는지 회의와 불신을 갖게 되었다. 내가 다른 것을 생각할 때, 그 생각의 대상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나의 감각을 통해 보는 외부 세계의 사물들은 항상 참이 아니다. 내가 그 사물을 부르는 말과 실제 그 사물 사이에는 불일치가 있을 수 있다. 내가 그 대상을 창조하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심을 하고 있는 나 자신만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고, ‘내가 있다’라는 말과 실제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항상 일치한다. 내가 생각을 함으로써 생각하는 ‘나’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내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진짜로 존재한다. 즉 생각은 나의 본질적 속성이며, 이런 의미에서 ‘나’ 속에서 생각과 있음이 하나가 된다. 생각과 있음이 일치하는 것을 진리라고 부를 때, 진리의 원리는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나’라고 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나=나라는 자기관계이자 내적관계이다. 나는 언제나 그 자체로서 나 자신에 대하여 있다. 칸트가 볼 때, 내가 그 자체로서 나에 대하여 있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나 아닌 다른 것임을 말한다. 이러한 자기의식 속에서 생각하는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타자라는 자기부정성이며, 1인칭인 내가 동시에 3인칭인 ‘그것’이 됨을 뜻한다. 언제나 나는 ‘나’인 동시에 ‘그것’이기도 하고, 나의 자기의식 속에 ‘나’와 ‘그것’은 하나이다. 그렇다면 ‘나’는 인격적인 대상과의 관계를 이루지 않더라도 비인격적인 ‘그것’들과의 관계만을 통해서 온전한 인간으로 자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타자적 주체 없는 세계에 홀로 군림하는 주체의 존재를 우리는 홀로주체성이라 부르는데, 절대적인홀로주체성의 실현이야말로 서양적 자유의 이념 아래 숨겨진 은밀한 욕망이다.) 이 점이 근대 형이상학의 편협함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가 ‘그것들’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나’ 자신 외에 다른 모든 것들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자신의 의식 속에서 ‘그것들’의 의미를 해명하려고 했던 것이다.그러나 내가 나 자신에게 의식되고 대상화 된다고 해서 반드시 3인칭의 그것, 사물일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왜 ‘그것들’뿐만 아니라 인격적 타자인 ‘너’가 존재해야만 하는지 그 존재 의미와 가치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생각하는 나는 그 자체로서 1인칭의 주체이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서 결코 1인칭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나’는 항상 자발성으로 발생하지만 ‘그것’은 항상 활력 없는 수동성으로 발생한다. 그러면 나와 그것은 서로 간에 상호적인 관계가 불가능 하고 일방적인 관계만 남게 된다. 주체는 스스로 자기를 반성하고 규정할 줄 아는 존재이다. 그런데 사물적 대상인 ‘그것’은 이러한 행위가 불가능하다. 오직 인격적 대상인 ‘너’를 통해서 가능한 일이다. 자기의식 속에서 내가 나를 의식할 때 의식하는 나와 의식되는 나 사이에는 고정된 주체나 객체가 따로 없다. 즉 내가 나 자신에게 마주선다고 해서 내가 사물적 대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오직 인격적 대상만이 그 주체로서 마주설 수 있는 것이므로, 자기의식 속에서 나에게 마주서는 나는 ‘그것’이 아니라 인격적 대상인 ‘너’이다. 나는 물건이 아니라 인격으로서 세계 안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나와 너가 모여 만드는 인격적 공동체 없이 오직 나와 그것들과의 관계만을 통해 나와 세계의 존재를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2. ‘우리’이처럼 내가 나 자신을 고립된 홀로주체로서의 내가 아니라 나와 너의 만남과 통일로서 의식하는 것이 참된 의미에서 주체의 자기의식이니, 이런 주체에게 합당한 이름은 더 이상 ‘나’가 아니라 ‘우리’이다.) 내가 나 자신을 반성적으로 의식하고 생각할 때, 진정한 주체가 될 수 있고 ‘나’는 곧 ‘너’이고 ‘우리’가 된다. 여기에서 나와 너가 같다는 것은 각자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무조건적으로 동화되어야 된다는 뜻이 아니라, 나와 너 모두가 주체라는 의미에서의 같음이다. 또한 자기의식에서의 중심은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다.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한 것이므로 ‘우리’라는 말로서만 참된 자기의식을 나타낼 수 있다. 나는 오직 ‘우리’가 됨으로써만 주체인 나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되지 못하는 나는 ‘나’도 될 수 없고 한낱 사물이 될 수밖에 없는 나이다. 이처럼 내가 곧 ‘우리’로서 표현될 때는 본질적으로 상호의존의 의식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고, 나와 너가 하나의 주체성 속에서 통일되어 있을 때, 그런 주체성을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주체성은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를 뛰어넘는 것, 즉 자기를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 자체로서 타인과의 만남을 위해 자기의 동일성을 스스로 뛰어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뛰어넘은 그 자리에 너를 받아들여야 하는것이다. 오직 너를 받아들이기 위해 나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신을 비울 때, 나와너는 참된 만남을 이루게 된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상실한다는 뜻이 아니라 너와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우리 사회에서 더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의견 1 >우리사회는 전통적으로 공동체주의적인 사회를 구성해왔다. 그로인해 개인으로 분리될 때에는 도저히 이룰 수 없었을 경제성장과 한국사회 특유의 고유한 공동체문화를 이룩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외환위기 당시 국가의 빚을 우리 모두의 빚으로 생각했던 공동체의식이 외환위기를 극복한 중요한 힘이 된 것과 기업에 취직해 일을 할 때에도 직장동료들의 상조사까지도 함께 하는 모습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공동체주의적 사고는 우리사회에서 긍정적인 모습으로 작용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주의적 사고는 우리사회의 고질적 사회문제인 학연 지연 혈연 등의 폐해를 낳았고 이와 더불어 개인이 해야 할 책임과 의무 또한 공동체주의적 사고로 인해 옅어지는 결과도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았을 때 공동체주의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사회의 사상적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 중에 우리사회에 새로이 필요한 것은 개인주의인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화와 도시화로 인해 과거와 달리 우리사회에서 공동체적 사고가 많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공동체적 사고가 사라진 자리에 개인주의적 사고가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개인의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하며 그에 대한 자신의 정당한 몫을 가지는 개인주의적 사고는 그간 공동체주의적 사고만이 지배해왔던 우리 사회에 좀 더 명확히 자리 잡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의견 2 >개인주의는 국가나 사회보다 개인이 어떠한 식으로든 우선한다는 사상을 뜻합니다. 이는 이기주의와는 크게 구분이 되는 것으로 개인주의는 아무리 자기 이익을 추구해도 사회적 질서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이기주의는 자기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회적 약속은 물론이고 타인을 이용해서라도 자기 이익을 달성할려는 주의입니다. 철저한 개인주의는 존경을 받지 못하나 법적으로 제제를 받지는 않지만 철저한 이기주의는 도덕적 비난은 물론이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공공의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사회는 예와 정을 중시하는 사회로서 개인주의와 상성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서양문화가 자연스러운 21c 우리사회에서는 개개인이 집단을 해치지않는 범주내에서 자신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집단 또한 궁극적으로 발전하는 형태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서로 상반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커다란 맥락에서 본다면, 개개인들이 극단적이지 않은 한도내에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 힘쓴다면 분명 어떤 씨너지 효과를 발휘해서 그가 속한 집단 또한 발전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의견 3 >공동체주의가 옳지 못하다,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회이다 보니 그 속에서 어느샌가 '개인'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인일 뿐 존재 자체로서의 의미를 크게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예전보다 그러한 것들이 많이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공동체 속에서 개인이 그 자체로 존중받지 않고 소외되고 있습니다.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소신껏 피력하고 자유의지로 생활할 수 있도록 개인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의견 4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유교를 바탕으로 공동체주의를 이끌어왔다. 이미 개인주의가 한국에 들어와 정착하고 있지만, 아직도 공동체주의의 풍조가 완연히 뒤바뀌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개인주의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이 참 많은 것 같다. 물론 공동체주의를 없애가면서 개인주의의 손길이 필요하단 말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공동체주의의 장점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만큼 단점이 많다는 사실을 묵과할 순 없을 것이다. 이러한 단점들을 개인주의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로 충분히 그것들을 메꿔주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공동체주의의 장점을 취하는 바탕에서 개인주의가 가진 장점으로 공동체주의의 단점을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 볼 때, 한국 사회는 공동체주의가 그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개인주의의 장점을 가지고 좀 더 융합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결론 >개인이 없는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고, 개인 또한 사람들 속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를 따로 떼어놓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새로이 필요한 것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의 사상적 뿌리인 공동체주의보다는 개인주의적 사고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개인주의는 아무리 자기 이익을 추구해도 사회적 질서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이기주의와는 크게 구분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