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의 소개2011년 10월에 방영된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과정을 드라마로 담아낸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라는 큰 사실의 틀 안에서 어느 사건들과 어떤 인물들이 사실이고 허구 인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던 드라마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마지막 까지 어느 한 부분도 버릴 것 없고 부족함이 없었던 드라마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극은 연쇄살인 사건의 추리극의 형태를 띤 무술 사극 이었으며 그 안에서 멜로도 가미 되어 남녀노소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를 다 갖춘 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2. 각색 양상- 캐릭터 분석 및 스토리라인이도(한석규)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이며, 대군시절의 이름은 충녕 대군이었다. 셋째 아들임에도 왕권을 받을 만큼 총명했으며 고기를 좋아하고 성질이 급하고 다혈질이며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캐릭터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태종이 저지르는 피의 학살을 보고 자라 모든 것을 대화로 풀고자 하고 또 대화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또한 백성을 가장 사랑하고 아꼈던 의로운 군주이다.강채윤 (장혁)장애를 가진 아비를 지키기 위하여 매우 강하고 배짱있는 인물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왕의 탓으로 여겨 성장시기를 왕을 향한 복수 하나만으로 살아가며 조선 최고의 무인의 제자가 되어 엄청난 무술을 익히게 된다. 허나 막상 복수의 기회가 왔을때에는 소이의 등장과 왕에 대한 믿음으로 한글 창제를 돕는 큰 역할을 하게 된다.소이 (신세경)어릴적 자신의 허세로 인해 사랑하는 이의 아비가 죽어 실어증이 걸린 인물이다. 무엇이든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인물로 백성이 모두 한글을 안다면 자신의 실수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죄책감을 안고 강채윤의 마음도 돌리고 본인이 한글의 해례가 되어 목숨이 끊어 지는 상황에서도 한글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인물이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이가 사랑한 인물은 강채윤이 아닌 세종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정기준 (윤제문)비밀결사 밀본의 본원으로 정도전의 동생인 정도광의 외동아들이다. 깊게 은둔하기 위하여 반촌으로 숨어들어 백정 가리온으로 행세하며 세종은 꽃일 뿐 뿌리는 될 수 없다며 역모를 꿈꾸는 인물이다.- 스토리 라인태종의 학살로 시작되는 이 드라마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통치 방향을 잡게 되는 이도 세종과 그 학살의 피해자인 정도전 일가와 또다른 피해자 백성으로 분류 되어진다.그로부터 백성을 위해 고뇌하며 한글을 창제하고 직접 밭을 가는 등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는 세종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연쇄살인이란 사건의 등장으로 재미 요소를 더해가며 한글 창제의 과정을 그려 나간다. 얼마나 많은 반대 세력을 뚫고 한글이 창제 되고 세상으로 나왔는지에 대하여 흥미롭게 그려지는 드라마이다.3.제작과정이정명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는 약 3년을 준비 했으며, 세종에 정통한 학자들을 만나면서 자료조사를 철저하게 해 세종시대와 한글 창제 과정을 최대한 사실처럼 그렸다. 뿌리 깊은 나무는 sbs사극에서 처음으로 고화질의 영상을 담아낼 수 있으며 60fps 까지 지원되는 고속촬여이 가능한 ARRI??의 ALEXA카메라를 사용해 촬영되었다. 빡빡한 촬영 스케줄과 추위, 문경 , 부여, 파, 탄현 등 곳곳에서 촬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어 “거의 생방송”이다 라는 한 마디로 촬영장을 표현했다.4. 관객반응 및 흥행기록뿌리 깊은 나무의 첫 회 시청률은 전국 시청률 9.5%에 미치지 않았지만 2011.12.22 에 종영된 뿌리 깊은 나무는 마지막회 시청률 25.4%로 막을 내렸다.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동시간대 절대 강자로 우뚝 선 것이다. 또한 뿌리 깊은 나무는 한글 문화연대 상, 우리말 사랑꾼 수상을 하며 세종의 백성 사랑을 재해석 하게 하고 , 한글의 과학적 원리와 우수함을 전달하였고 시청자들에게 한글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 와 ‘나’My house (나의집) 와 Our house (우리집) 또는 My mother (나의 어머니) 과 Our mohter(우리의 어머니) 이것은 언어 속에서 보여지는 서양과 우리 나라 의식구조의 차이를 잘 말해주는 하나의 예이다 서양인들은 어떤 사물이나 자신의 무언가를 표현 할때 있어서 개인개념을 강조하는 반면에 우리는 가족을 더 앞세우는 좀더 공동체적인 경향을 보인다.이름을 짓는데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가족 개념인 성이 앞으로 가지만 서양인들은 자신의 고유의 이름을 먼저 앞세우고 성을 맨 뒤에 씀으로써 자신을 더 강조하고 자신이 중심이 된다.이처럼 큰 단위나 범주보다 작은 단위 즉 보다 자신이 고유로 갖고있는 것을 내세움으로써 자신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주소를 쓸때 역시 우리는 가장 큰 개념인 국가를 앞세우고 점점 개인적인 공간으로 범위를 좁혀나가는 반면 그들은 자신만이 위치한 그곳의 정보를 먼저 제공한 후에 점점더 큰 단위로 키워나간다.우리나라의 경우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치기라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 싸움에 들어가는 경우를 종종 볼수 있다. 우리는 초면인 사람 또는 가깝지 않은 사람과 맞닥뜨릴 경우 우선 경계를 하고 방어태세에 들어간다. 하지만 처음엔 이렇게 접근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일단 사귀게 되면 속을 전부 드러내고 간도 쓸개도 내준다는 말처럼 철저하게 믿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인 반면 서양의 경우는 우리와 정 반대이다. 학교가 외국인들이 많이 있는 이태원과 인접해 있는 한남동 이라 그런지 서양인들과 눈빛이 마주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경우에 그들의 밝은 미소에 어쩔줄을 모르겠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서양인들은 우리에 비해 처음엔 접근이 용이해 쉽게 친해질 듯 해 보이지만 그들은 그들 개인의 어느 선 이상은 침범당하는 것을 싫어할뿐더러 침범 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문화인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존경받기를 원한다. 일단 사귀어만 놓으면 속을 훤히 내어주는 한국인과는 매우 대조적이다.인고 있는 반면에, 불교에서는 해탈에 이르는 고통스런 존재로 보고 있고, 유교에서는 군자와 대인을 지형하는 존재로, 그리고 도교에서는 자연에 순응하는 길을 가야하는 인간으로 보고 있다.Ⅰ. < 유교 >유교는 하늘과 만물 곧 우주의 모든 존재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입장으로, 하늘로 부터 부여받은 성품은 순수한 선이요 보편적인 이치이며, 욕망과 연결되어 있는 육신은 선의 기준으로부터 이탈하기 쉬운 충동적?가멸적 존재라 하였다. 유교는 이러한 우주적 자연관 속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행동하고 살아가는 도리를 근본 문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사욕이 본성을 가려 그 유혹에 넘어가는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극기 복례하려고 애쓰는 것이 인간이다. 이와 같이 악에 빠졌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선에로 돌아올 수 있음을 굳게 믿고 있다.선에의 자각은 수기(修己)로 이어지고 수기를 하고 나면 필연적으로 안인(安人)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이 인간은 도덕의 주체이다. 《논어》에서도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人能弘道 非道弘人〕.?라고 단언했다. 인간은 극기 복례를 통하여 천인합일의 경지를 개척하지만, 그것이 중단되는 순간에 생생 화육(生生化育)의 질서에 순응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유교의 인간관은 윤리?도덕적 인간관이라 할 수 있다.공자는 도덕적 인간의 이상형으로서 군자(君子)를 제시하고 있다. 군자란 하늘의 계승자로 서 도덕이 순수하게 갖추어져 있고, 학문도 뛰어나 날로 상달(上達)을 추구하고, 그리고 인 (仁)과 예(體)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맹자는 이상적 인간으로서 대인(大人), 혹은 대장부(大丈夫)를 제시하였다. 대인, 대장부란 인의(仁義)을 중시하여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충만한 자를 의미한다.* 수기(修己), 수양(修養)을 통한 仁의 도를 실천할 것을 강조* 공동체적 인간관-사람들의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을 파악* 윤리적 인간관-윤리적 기반 위에서 인간과 사회가 공존함을 중시.* 이상적 인간상-도덕과 학문이 뛰어난 군자이다. 우리의 마음이 겉으로는 나쁘고 온갖 더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깊은 곳에는 여래장(如來藏), 곧 불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이 불성을 지닌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도 현실적으로 인간이 고통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연기(緣起)의 틀 속에 머무는 것은 무명이라는 무지에 의해 이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일체의 존재 현상을 불교에서는 연기로 설명한다. 오온과 십이처, 십팔계의 가르침에도 연기적 원리가 관통되고 있다. 연기란 부처님의 가르침 전체 체계를 수미일관하게 관통하고 있는 가르침으로써 연기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오류를 지적하고 그것을 통하여 참된 인간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고정 불변한 본성이 없다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현실적 인간은 연기의 소생일 뿐이다. 전체 교화 체계속에서 일부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교화체계 전체 핵심이고, 그리고 오히려 다른 교화 체계들이 연기적 원리에 입각해서 세상을 설명해 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따라서, 그것은 허망한 것이며 참된 것이 아니다. 결국 유교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서의 도덕적 인간성으로 밝히려 하나, 불교는 인간의 현실적 고뇌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인생론적 입장에서 인간성을 해명하고 있다.보살은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는 하나의 인격이고 보살행(菩薩行)인 여섯 가지 덕을 실천하는 자로서 행위의 주체자이기도 하다. 이 여섯 가지 덕이란 베품[布施], 정계(淨戒)를 지님[持戒], 인내함[忍辱], 노력함[精進], 정신을 집중함[禪定], 근원적 예지를 나타냄[智慧]을 말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 : 인간은 상상(想)과 의식(識)을 가지고 행동(行)한다.* 인간은 불성(佛性)을 깨달음으로써 고통을 극복하고 해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자타 불이(自他不二)의 정신을 자각하고 자비의 윤리를 실천 할 것을 강조함* 이상적 인간상(보살)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가르쳐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구현하게 닌 것을 구별하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았다. 특히, 맹자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금수(禽獸)와 인간이 다른 점을 찾아내어 거기에서 인간다움을 발견하려 하였다. 그러나 도교에서는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다른 점으로부터 인간의 본성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오히려 인간과 천지 만물이 서로 통할 수 있으며, 같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보았다. 자연계(自然界)와 인간계(人間界)의 밑바닥에는 보편적인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는데 이것을 도(道)라고 하였다. 당시 '덕(德)'자는 '득(得)'자와 서로 통하여 쓰였다. 그러면 무엇으로부터 얻어진 것일까? 인간의 본성인 덕은 도로부터 얻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장자의 '마제편(馬蹄篇)'에서는 "대저 지덕(至德)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금수와 더불어 같이 거주하였으며 만물과 더불어 나란히 살았으니 어찌 군자와 소인의 구별을 알았으리오. 만물과 똑같이 무지(無知)하되 그의 덕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똑같이 무욕(無慾)하였으니 이것을 소박(素樸)이라 한다. 소박하면 백성들의 본성이 얻어질 것이다. 후세에 성인이 힘들여 인을 행하고 자랑스럽게 의를 행하게 되자 천하 사람들이 비로소 의혹(疑惑)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무지 무욕하며 무인의(無仁義) 할수록 온전한 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덕은 성현이나 군자만이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도 덕을 온전히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장자는 덕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어린아이 같다고 하였다.『장자』'경상초편(庚桑楚篇)'에서는 "어린아이가 종일 울어도 목소리가 쉬지 않으니 심기가 화순(和順)한 극치이다. 종일 주먹을 쥐고 있어도 지치지 않으니 그의 순박함이 덕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종일 보아도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으니 치우쳐 보지 않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결국 그의 덕이란 지식, 정감과도 관계가 없으며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도덕과도 관계가 없다. 맹자에게는 인의(仁義)가 인간만이 가진 것이라고 하지만 장자는 그러한 주장에 반대한다.사상의 주개념은 도(道)이다. 도는 스스로 그러한 自然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도는 인위 조작이 가해지기 이전의 본래 상태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노자의 무위(無爲) 사상도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무위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 지내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도의 존재를 인정하고 도의 기능과 일체화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과 천지 만물은 도를 공통의 근원으로 삼는다. 이 도는 자연적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아 도가의 인간관은 자연적 인간관이라 할 수 있다.장자는 학(學)과 사(思)에 의한 방법으로 인간의 본성을 회복할 수 없다고 한다. 학(學)과 사(思)로 치기명(致其明)이나 복기초(復其初)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유가와 다른 점이다. 장자서(莊子書)에서는 상아(喪我), 좌망(坐忘), 무기(無己) 등의 신비스러운 수양 방법이 자주 언급된다. 특히 좌망은 인의예악(仁義禮樂)의 관념을 버리고 무아의 경지에 몰입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수양 방법을 거쳐 덕과 간격이 없는 경지인 '천인합덕(天人合德)'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자 이상적 인간상ㅡ 성인(聖人), 지인(至人), 신인(神人)이러한 사람은 소요자재, 순성, 순물자연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소요 자재는 어떤 외물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게 살아가는 정신의 자유를 뜻한다. 순성은 본성인 덕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는 것을 말하며 소박한 본성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순물 자연은 자기의 사심과 주관을 버리고 사물의 자연스러운 변화에 따르는 것이다.2. 서양의 인간관자연주의 인간관과 합리주의 인간관서양의 사상은 자연주의사상에서부터 발전되었다고 한다. 그 자연주의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은 동물학적으로 유기적인 물질이고, 그 물질이 발전한 산물로써 인간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나, 집합적으로 이 이론은 인간이 유일한 목적이 되며 인간 중심적으로 된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자연주의적 관점은 근대 사상의 두가지 주된 발전 방향인 합리주의적 인간관과 유물론적
01.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 주고 공공재를 공급함으로써 정부도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정부가 사회적 협력과 경제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음의 두 가지 이다. ①시민들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보호한다. ②그 범위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시장을 통해서 공급되기 어려운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한다. 정부의 보호기능은 치안과 질서의 유지를 말한다. 정부가 이러한 보호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여러 가지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사유재산권을 분명리 확정하지 못하거나 재산권을 확실하게 보장하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타인에게 해로운 일을 하기 시작한다.정부의 두 번째 기능, 즉 생산적 기능은 경제학자들이 공공제라고 부르는 것의 생산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댐을 쌓았을때 모든 주민이 혜택을 보겠지만 어느 누구도 댐이 만들어지고 난후에는 돈을 내지 않는다. 애덤스미스는 정부의 이러한 역할을 주권국가의 세 가지 기능 가운데 하나로 생각했다.02. 정부는 교정장치가 아니다.정부는 사회구성원들이 집단적 의사결정과 집단적 사업 추진을 위해 구성한 사회적 조직의 하나일 뿐 정부를 교정장치로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반드시 같이 가지 않으며,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나라라고 해서 시장경제 체제를 가지는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서로 다른 원리를 말한다. 시장경제에서는 각자가 자신이 행사하는 구매력에 의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할 수 있다. 다수결이 지배하는 정치의 장에서 소수파는 다수의 결정에 복종해야만 하지만, 시장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03. 정부가 쓰는 비용은 납세액보다 훨씬 크다.정부는 국민들에게 큰 비용을 부담 시킨다. 정부가 발생하는 비용은 세금뿐만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비용은 기회비용을 말한다. 정부의 활동은 다음 세가지 비용을 발생 시킨다. 첫째, 정부의 활동이 늘어날 수록 민간의 활동은 줄어든다. 둘째, 세금을 거두는데도, 또 납세자들이 자진 신고하는 데에도 자원이 투입돼며 그거 역시 정부활동에 따른 비용이다. 셋째, 또다른 비용으로 초과부담이라는 것이 있다. 이처럼 정부 때문에 이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다양하다. 따라서 구체적 정부정책이나 공공 사업의 필요성을 평가 할때는 그런 비용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04. 헌법으로 적절히 견제하지 않을 경우, 특수 이익집단들이 민주적 절차라는 이름으로 남세자와 소비자들을 착취할 수 있다.단순 다수결에만 기초를 둔 민주정치는 특수 이익집단의 문제로 해결하지 못한다. 정부가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려면 정부의 공공정책을 적절한 범주로 국한 시켜야 한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대다수의 이익을 무시하고 이익집단에게 유리한 정책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한가지의 정책 때문에 일반 대중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 숫자는 매우 크지만 각자에게 돌아가는 손해는 매우 작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고 구체적 행동을 취할 인센티브가 생겨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정책으로 인하여 이익을 얻는 이익집단의 경우 숫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개별적 이익이 상당히 크다. 이런 상황에서는 재분배 정책과 특수 이익집단을 위한 정책들이 번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릴 것이다.05. 적절한 제어를 할 수 없다면 입법자들은 재정적자를 통해서라도 재정자금을 조달 하고 싶어한다.현대 국가에서 재정적자는 일상적인 일이 되버렸다.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정부 차입을 통한 재정적자 증가가 이자율의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재정적자가 일어날 수록 미래 노동자들의 생산성 증가는 방해를 받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자본형성이 적게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또한 국공채가 늘수록 이자지급액이 늘어나 정부의 실질적 지출능력이 줄어든 다는 것이다. 즉 납세자들로서는 세금을 내봐야 돌려받을 혜택이 별로 없는 것이다. ‘재정적인 문제’ 는 구조적 정치문제이다. 민주정치에 적절한 제어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재정적자가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정치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정치인들에게 세금을 거둘수 있는 범위에서만 예산을 지출하게 해야하며 정부정책과 예산이 좀 더 효과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06. 정부가 일부 국민을 돕기 위해 다른 국민들의 희생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국민들의 시간과 노력과 자원은 생산적 활동이 아니라 정부를 통한 약탈행위로 흘러들 것이다. 그 결과 경제성장은 억제된다.정부가 경제적 번영의 매개체가 되려면 국민들의 생산적 행위는 장려 하면서 약탈은 억제해 주어야 한다. 이런 기능은 정부가 중립적인 심판자로서 국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해 주고, 자유로이 맺은 계약을 보호해줄 때에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는 정부 그 자체가 약탈의 도구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민주정치에 제한이 없다면, 민주주의가 이와 같은 방향으로 전개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정부를 약탈의 도구로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하며, 그 방법은 헌법으로 정치를 제약하는 것이다.07. 정부 주도 재분배정책의 비용은 수혜자들이 받는 혜택보다 훨씬 크다.국민연금, 건강보험제도 등 이같은 소득 재분배정책을 펴는 이유는 가난 때문인데, 불행히도 지금까지 여러나라의 경험들을 살펴보면 이런 정책을 통하여 가난문제가 해결된 적은 없다. “소득재분배를 하더라도 수혜자의 복지수준을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높여줄 수는 없다.”는 경제학의 일반명제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득 재분배 정책은 원치않는 부작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실험보험 때문에 실업이 늘어나듯이 소득재분배 정책은 가난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무엇인가 보조해주면 어느 무엇인가는 더욱 늘어나게 마련이다.08.정부주도의 경제 개발계획은 정부기능으로 시장을 대체하자는 것이다. 그 결과 자원은 낭비 되고 경제성장은 지체된다.자신의 이윤만을 챙기는 기업가보다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국민의 대표자들과 공부원들이 일반 국민들의 복지를 더 잘 대표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정부의 계획은 시장의 판단을 정치적 판단으로 대체시킬뿐, 정부는 교정장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프록스마이어가 말했듯이 “돈은 권력이 있는곳으로 모인다” 또한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정치자금등 보조금을 자신에게 끌어들이려고 노력할 것이며, 민간투자자들은 자기돈으로 투자를 하기 때문에 정치인들보다 더 현명한 판단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어떤 계획자도 제대로 된 국가경제계획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정보를 가질 수는 없다. 경제계획이나 산업정책 때문에 경제가 발전하리라는 믿음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정부에 힘이 실려 기업가들이 자신들의 시간과 노력을 소비자보다 정치인들에게 투자를 하게 된다면 경제는 오히려 퇴보하게 될것이다.09. 경쟁은 시장에서만이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중요하다. 지방정부들이나 공기업들을 다른 지방정부들이나 사기업들과의 경쟁에 노출시키면 시민들을 위해 더 좋은 봉사자가 될 것이다.경쟁은 이기심을 길들이는 장치이다. 시장에서 기업들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한다. 사기업들은 경쟁과 도태의 압력 때문에 소비자들의 이익에 기여하려고 노력하지만, 공공부문에서는 그런 압력이 거의 없거나 매우 약하다. 따라서 소비자를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다. 사기업들이 담합을 통하여 독점력을 얻고 싶어 하듯이 정부 역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한다. 지방정부간의 경쟁이 일어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헌법으로 중앙정부의 권한을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10. 민주정치와 시장경제의 조화를 위한 헌법개정안민주주의만 제대로 시행된다면 경제성장은 자동으로 따라 온다는 생각, 그것이 이 시대의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오류 이다. 정부가 무제한적 권력을 가지게 되면, 즉 모든일에 정치가 관여한다면, 그 사회는 분열될 수 밖에 없다. 새로운 파이를 창조하기 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파이를 나눠먹기에 급급하여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될것이다. 물론 정부도 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것은 질서와 평화의 유지를 통해서 이지 과반수라는 미명으로 아무 일에나 간섭했지 때문은 아니다. 이런 사실을 일찍깨우칠수록 경제적 번영도 일찍 다가온다.결론건전한 경제제도는 경제적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새로운 부의 창출을 장려하는 제도를 가진 나라는 번영할 것이고, 거기에 실패한 나라는 쇠퇴를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원론은 사유제산제와 교환의 자유와 경쟁적 시장과 안정적 통화제도가 경제적 전제조건임을 가르쳐 준다. 이런 전제조건이 충족된다면 사람들은 ‘뿌린대로 거둘 것’이며 또한 거두기위해 뿌리게 될것이다.경제적 번영을 이루기 위한 경제제도의 조건에 대해 알아보자. 천연자원은 경제성장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라는 사실이다.일본이 가진 천연자원은 빈약하기 짝이 없으며, 에너지 수요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홍콩은 더욱 그러하다. 홍콩은 실질적으로 거의 어떠한 자연자원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에너지를 수입함은 물론 비옥한 토지조차도 없다. 그런데도 그 두 나라는 번영을 이루었다. 천연자원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중요한 요인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는 일본과 홍콩보다 여러배 부유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