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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교외 안에서의 Same Sex Marriage 이해
    Works CitedRobert Crooks and Karla Baur, Our Sexuality, (the Benjamin/Cummings Publishing Co, 3rd edition, 1987)J. Harold Greenlee, Introduction to New Testament Criticism, (Baker Academic, 1993), 96~113.Brevard. S. Childs, Old Testament Theology in a Canonical Context. (Fortress Press, 1990)Richard M. Gula Ethics in Pastoral Ministry, (Paulist Press, 1996)The Book of Discipline of United Methodist Church.기윤연, 기독교 윤리 연구소,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Chirstian Ethics Research. Christians’s answer to the homosexuality)Hppt://star.ohmynews.comHppt://www.umc.org한국 교회 안에서의 Understanding of Same Sex-Marriage 이해Jiwon Jang얼마전 유명 영화감독인 김조광수(48)와 영화사 대표인 김승환(29)이 서울 청계청 공개적인 장소에서 결혼식을 거행했다 (2013년 9월 7일). 이는 국내 최초 공개 동성 결혼식이라는 이유로 세상의 관심을 이끌었어. 결혼식 성혼 선언서를 낭독하던 중, 스스로를 기독교 신자임을 밝히 한 남자가 난입해 준비해 둔 오물을 투척하였다. 그 사람은 동성애 반대 문구가 적힌 주황색 조끼를 입고 있었으며, 스스로 “하나님께서 보냈다”며 “성경 말씀에 동성애를 금지하라” 했다. 또한 한 기독교단체는 결혼식을 반대하는 내용의 공문을 경찰서로 보냈고, 또한 결혼식 당일에도 두 사람의 결혼식을 막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무대 작업 공간에 난입해 예배를 올렸다. 그들의 공문에는 “동성결혼은 행사는 하나님의 창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1904171)어려움 1) 한국교회 안에서 목회자가 진실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위 기사에서와 같이, ‘same sex marriage’ 문제에 대해 한국교회와 사회여론 갈등을 안고 있다.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와 ‘same-sex marriage’문제는 한국사회안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는데, 문제는 사회적 담론이 하나의 유행처럼 떠오르게 되면, 그 담론에 대해 어떤 가타부타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이상한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동성애를 지지하고 찬성하면 진취적이고 용기있는 사람이 되고, 반대하면 보수적이고 단힌 사람으로 치부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여전히 헌법과 같은 사회 제도는 same-sex marriage가 시기상조라고 하면서 불법으로 규정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여론은 이와 다르게 ‘성소수자’를 보호해야하며, ‘동성애’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분위기이다.이에 반해, 교회의 분위기는 정반대이다. 대부분의 교회의 입장은 동성애에 대한 전동적인 견해인‘rejecting- punitive position (징벌적 거절)’해야 한다는 입장을 따르고 있다. 더욱 더 심각한 것은, 미국 감리교회는 오랜 시간에 결쳐 공식적으로 ‘homosexuality’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것에 반해, (2012 Tampa에서 개최된General Conference of United Methodist Church; http://www.umc.org/site/apps/nlnet/content3.aspx?c=lwL4KnN1LtH&b=8057055&ct=11742349), 한국교회는 ‘동성애’에 대해 공식적인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이런 양쪽으로 정확하게 갈라져 있는 상황 속에서, 목회자로써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고 또 할수 있겠는가? 이렇게 벌어져 있는 교회와 사회의 입장 차이는, 교인들로 하여금 큰 혼란을 갖게 만든다. 목회자자로써도 ‘동성애’에와 ‘성소수자’에 대한 어, 매년 새로운 교인이 600명 늘어나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20명이 넘는 Assistance pastor들은 하나같이 아무 것도 할 줄 몰라 우왕좌왕(run about in confusion) 했다는 것이다.그 사람과 만나 상담해본 결과, 대한민국 안에서 대부분의 성소수자들은 외형적이고 생물학적인 이유로 인해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가족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있을 적으로 인간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분명 목회적 인 돌봄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임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문제들로 인하여 기존 교인들과 발생될 여러 갈등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동성애자의 인구를 정확하게 통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한 인권 단체는 한국에 살고 있는 동성애자(20세이상의 성인)가 30만명에 육박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전체 대한민국 인구 5000만명의, 0.6 % 에 다라는 상당한 인구이다.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성 소수자들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목회자로써 너무 준비되지 못해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Same sex marriage 대한 목회적 제안첫째로, 목회자로써, 성경과 장정의 가르침을 준수해야한다.전통적인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동성애는 한마디로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동성애에 대한 최초 기록인 창세기 19장에선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명확하게 부정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모세의 율법에서는 동성애를 강하게 정죄하고 있다 (레위기 18:22; 20:13). 여기서는 특히 남성 동성애주의자에 경우를 예를 들면서 가정한 일, 죽임을 받아야 할 이들로 규정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신약성경의 금지는 세곳에서 발견된다 (롬 1:26, 고전 6:9. 딤전 1:10). 특히 바울의 글들 속에서 우리는 동성애에 대한 비난을 읽을 수 있다. 로마서 1장 26-27절에서 동성애는 우상적나 분명한 것은 신약성서 전반에 거려 동성애 뿐 아니라 결혼관계 이외의 모든 성관계애 대해서 금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Yale Divinity School의 Brevard S. Childs교수는, “동성애의 행위에 대한 성경의 개방성을 찾으라는 최근의 몇몇 신학자들의 시도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한 구약의 이해와 엄청난 불일치를 보이는 것이다”라면 논쟁을 일축하고 있다 (B. S. Childs, Old Testament Theology in a Canonical Context).바로 이점이, 교회가 쉽게 ‘agree they disagree on sexuality’할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의 신앙의 근간이 되는 성경이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또한 우리가 약속하고 있는 장정이 그렇다면 목회자로써 이를 따를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담배를 피는 사람들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해서 그 위험성마저 침묵할 수는 없으며, 캠페인도 하고, 담배 포장에 경고문구를 쓰는 노력을 하듯, 동성애자들이 소수자 인권이나 권익을 지켜야 한다는 대원칙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라는 것이 ‘비정상성’이라는 것은 분명히 지적할 필요가 있다. 만약에 목회자로써 장정과 다른 의견을 너무 쉽게 주장한다면, 이는 교인들에게 혼란을 줄 것이며 또한 교회 안에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하기 때문이다.둘째로, 목회자로써 동성애자들의 존엄가 가치를 부인하지 말아야한다.그러나 목회자는 동시에 성경이 그 어느 곳에서도 동성애를 용서받지 못하는 죄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비록 성에 대한 신학적 견해가 다르다 할지라도 기독교적 입장들은 동성애주의자들에 대한 하나님이 부여해 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지 부인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고 있다 (기독교 윤리 연구소,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 243-244); 일찍히 1974년 미 연합감리교회의 청소년 목회위원회는 결의안을 통해 ‘동성애라는 이유로 목회적 배려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된다’라고 선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관련된 동성애주의자들을 향한 목회를 위하여 가장 바람직한 길들을 찾아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기록한다. 독일 교회의 경우 1971년에 낸 백서에서 “독일기독교회는 동성애를 성의 잘못된 형태로 이해하는 동시에 동성애를 이상화하는 일을 거절한다. 동성애주의자들에 대한 목회적 배려와 정신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들이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동성애주의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의 접근성(accessability of the Grace of God to homosexuals)을 부인할 만한 신학적이며 인간학적 정당성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만일 신학적인 입장을 내세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을 접근성을 파기하기나 부인한다면, 그것은 복음에서 먼 신학적 오류요, 그릇된 주장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셋째로, 다른 교회를 추천해 주는 것도 방법의 하나이다.현실적인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한다. 나의 father in law의 경우처럼 어느 날 갑자기 ‘성소수자’가 교회에 찾아온다면, 교회가 이를 환영할 준비가 되었다면 가장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교우들과 갈등이나 본인들이 입을 상처가 예견된다면, 그들에게 맞는 교회를 추천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된다. 서울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있는 Itaewon에 가면, 게이와 레즈비언 등 성소수자들만을 위한 “Open Doors Community Church”가 있다(www.opendoorskorea.org). 이 교회의 목사 Daniel Payne는 New Orleans 침례신학교 졸업하고, Progressive Christian Alliance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는데, 그는 본인 역시 어린시절 성정체성으로 같은 고민을 하던 자라고 고백한다.마지막으로, 목회자로써 변화에 앞서 준비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앞서 언급되었듯이, 2013년 General Conference 에서 처럼, 앞으로 homosexuality 와 same sex marriage에 대한 논의는 다.
    인문/어학| 2014.02.06| 9페이지| 1,000원| 조회(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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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페너의 경건주의 책, Pia desideria의 변역본 `경건의 열망`의 요약본입니다. 평가B괜찮아요
    경건한 열망(Pia Desideria) 요약서론,17-18세기에 걸쳐 기독교에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부흥이 있었다. 이 부흥은 교리와 예배와 삶의 형식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다.1슈페너의 개혁을 이해하기 위해선, 상황 이해(시기, 장소)가 있어야 한다. 삼십년 전쟁 말기인, 1648년, 독일은 삼백 개 이상의 지역, 또는 국가로 분리되어있었으며, 이 각 국가의 통치자들은 ‘절대왕권’을 주장하였다. 이는 교회에 영향을 주었는데, 통치자들이 교회의 내적인 생활까지 간섭하였고, 성직자들은 국가의 관리들이 되었다. 이에 따라 계급의 차별이 엄격히 준수되었다. 직업인들, 법률가들과 성직자들까지, 그리고 도시의 시민들은 귀족 밑에 있었다. 노동자와 농민들은 사회 하층민이었다. 교회 안에서도 계급의 차별이 분명히 나타났다. 자리가 구별되었으면, 상급계층들을 위한 사적인 예배가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일예배를 참석하였으나, 그래서 외적으로 무성한 교회의 상태에도 불과하고, 기독됴의 순수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는 거의 없는 듯하다.2슈페너는 1635년 1월 13일 알사스 지방에서 태어났다.목사인 요아킴 스톨(Joachim Stoll, 1615-1678)는 ‘요리문답 교사, 설교자, 그리고 상담자로서 영향을 끼쳤다. 스톨 목사는 후에 슈페너의 큰 누이와 결혼하여 계속 그의 존경하는 조언자로 있으면서, [Pia Desideria]의 두번째 부록을 썼다. 슈페너는 남독가였는데, 존 아른트(John Arndt)의 True Christianity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스트라스부르그의 학생시절 슈페너는 보다 금욕적인 은둔적인 생활을 하였다. 31세의 나이에 그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수석 성직자가 되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슈페너의 경력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평신도의 신앙생활에 대한 그의 권면이다. 그는 거룩을 장려하기 위해 사적인 모임, 소위 경건의 모임(collegia pietatis)를 개최하였다.3Pia Desideria는 세 부분으로 나뉘진다.- 첫부분은, 당시 교회의 결함에 대한 비평이다. 죄가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종교적인 의무들은 대부분 단순히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방식으로 수행되었다.- 두번째 부분은, 개혁의 가능성을 주장한다. 그는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약속들과, 초대 교회의 모범을 사용하였다.- 세번째 부분은, 구체적인 제안을 제시한다. 성경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보다 광범위하게 사용할 것, 평신도의 폭넓은 참여와 활동, 기독교에 있어서 믿음 못지 않게 행위가 중요하다는 인식, 경건을 학문에다 결합시키는 목회자 교육, 그리고 양육과 내적인 생명을 목적으로 하는 설교를 채택한다.-부록으로는, 여동생의 남편이며 종교회의 감독관이었던, John Henry Horb의 견해 (전체적으로 동의, 신학적인 논쟁과 이를 강단에 도입하는 것을 옹호, 교회치리에 대해선 이의제기,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와 큰 누나의 남편이었던 요아킴 스톨(Joachim Stoll)의 논평 (대부분 찬성, 그러나 약간의 우려)이 있다.-영향: 신학 교육의 개혁, 스콜라 신학과 신학적 논쟁에 대한 비판, 상대방의 고백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변호하는 것, 신앙에 있어서 머리뿐 아니라 마음에 대한 강조, 삶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신앙을 촉구하는 일, 완전주의를 향하는 성품으로써 개인적인 거룩함을 도모하는 일, 평신도의 성장, 경건을 돕는 사적인 모임들에 대한 권장, 신자들의 영적인 제사직의 발전, 신비주의에 대한 지지 등이었다.[문안과 저작 배경]“모든 복음적인 기독교회의 신실한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에게 드립니다.”“우리의 질병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 자신의 결점과 교회의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보다 면밀히 알아보고 그 후에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함으로써 그 치료책을 찾고 숙고하는데 부지런합시다.”1부 [교회의 타락한 상태에 대한 개관]우리 복음주의 교회만 보더라도 수치와 비탄 속에서 재빨리 그러한 것들을 내던져 버리지 않고는 그 교회를 바라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인간의 눈으로 쉽게 식별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불행한 교회의 영적인 고통이 위험스런 생태입니다.첫번째 이유는, 반기독교적인 바벨(로마 카톨릭 교회)에게 당하는 박해입니다. 그러나, 이 박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박해가운데서도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박해로 그리스도 인들의 수가 배가되고, 항상 순교의 피는 교회 성장의 강력한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박해 그 자체를 당하는 것보다, 이 박해의 결과가 더 슬픕니다. 아직도 적들에게 권세가 허용되어짐은, 교회가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에 있지 못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표이며, 아직 단련되는 시험을 만나지 않았다는 증표입니다.두번째 이유는, 수많은 결점들입니다.시 당국의 결점들: 절대 권세를 남용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성직자들의 선한 일을 행하고자 하는 제안조차 막아버립니다. 도움은 커녕, 방해가 됩니다.성직자의 결점: 설교자들 마저 부패했습니다. 이는 높은 계급 때문입니다. 승진과 이동을 모색하고 있으며 그리고 모든 종류의 음모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경외보다는 명예에 대한 갈망과 참된 그리스도인에게는 맞지 않는 다른 충격들을 자극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시민들의 결점: 대중을 다스려야 하고 경건을 이끌어야 하는 처음 두 계급들의 상태가 이와 같기 때문에 세번째 계급의 상태가 어떠한지 쉽게 추축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교훈이 준수되지 않습니다: 술취함, 법적소송, 선행의 베품, 하나님을 섬기는 것, 의식을 통해서(opus operatum).이러한 결점들에서 비롯되는 죄과들- 우리 가운데 살고 있는 유대인들(?!) 실족한 첫번째 사람입니다. 불신앙으로 굳어지고 참으로 주의 이름을 모독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과 아울러 모든 종류의 이교도들도 우리로 말미암아 실족하였습니다. 이들 가운데 중요한 부류는 가톨릭 교도들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할 수록 혐오스러운 상태를 더욱 보게됩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의 대적득 –특히 로마교회-, 사실상 우리가운데 발견되는 나븐 것들 중 많은 것들은, 우리가 로마교회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며, 그리고 그와 유사한 것, 추가된 것, 심지어 더 악한 것들이 여전히 저들 가운데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의 이유로 로마교회의 탓으로 당연히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2부, 교회 개선의 가능성성경 상에 나타난 지상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1) 로마서 11:25-26, 유대인들의 회심 예언, -예언을 대비해 지금보다 더욱 거룩해져야 합니다. 이는 회심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입니다.2) 계시록 18-19장, 로마교황의 대몰락 – 반기독교적인 로마의 반감이 제거된다면,이 두 예언이 이뤄진다면, 참된 모든 교회는 지금볻 더욱 영광스럽고 복스러워질 것입니다.“저들이 단지 “형제, 자매”라는 다정한 이름을 서로 불렀을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서로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을 정도로 형제애를 가지고 살았을 때 저들 가운데있었던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습니까! “ – 초대교회의 이러한 상태는 우리의 미지근한 상태를 부끄럽게 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추구가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한계를 인정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능력에 따라, 나와 나의 사랑하는 동역자들에게 맡겨진 교회의 결점들이 어떻게 수정되고 그리고 이러한 교회들이 어떻게 세워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 후, 나는 담대해져서 경건한 묵상과 성경의 인도에 적습니다.3부, 교회 개혁을 위한 제안들첫째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보다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는 믿음과 믿음의 열매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1) 모든 성경을 예외없이 회중들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딤후 3:16)2) 관례적인 설교보다, 여러방법으로 성경이 소개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부지런히 읽음, 공적인 예배 가운데 해설없이 성경을 읽는 시간, 초대교회의 사도적인 교회의 모임을 재도입-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둘째로, 영적 제사장직의 확립과 부지런한 실행입니다. 루터 역시 영적 제사장직을 열정적으로 옹호했습니다. 영적 제사장직에 따르면, 성직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구세주에 의해 제사장이 되었으며, 성령의 기름부음받았으며, 영적인 제사장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바쳐졌습니다.셋째로, 그리스도인이 신앙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으며 그 이유는 기독교가 실천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넷째로, 우리는 불신자들과 이단들과 종교적인 논쟁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주의해야 합니다.1) 기존의 정통 진리 안에서 견고케 하고 확신케 하며, 큰 관심을 가지고 모든 종류의 미혹으로 부터 저들을 보호하는 일입니다.2) 우리는 저들에게 선한 모범을 보여야 하며 또한 어느 모로든 그들의 감정을 해치지 않도록 많은 수고를 해야 합니다.3) 우리가 고백하는 진리를 겸손하나 확고하게 제시함으로써 이 기쁘게 하여야 합니다.4) 모든 불신자와 이단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랑의 실천을 이데 더햐야 할 것입니다.5) 논쟁에 의존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조들과 연합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요, 하나님이 크게 복주실 방법입니다)다섯째로, 성직자들이 교회 개혁에 가장 큰 부분을 감당해야하는데, 이를 위해 학교와 대학에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여섯째로, 학생들의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고양시키기 위해, 설교하는 목적(믿음과 믿음의 열매들)을 청중 안에서 최대로 가능하게 성취할 수 있게끔 설교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인문/어학| 2013.03.14| 3페이지| 1,000원| 조회(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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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신약] 바울의 헌금이해
    2005년 봄학기 - 고린도 후서 세미나> 김판임 교수님 2005년 6월 23일 , 기말 보고서바울의 모금 활동의 의미-하나님의 보편적 구원론의 실천-장지원 ( 신대원 3/4 , 011-9258-4273)INDEXⅠ. 들어가는 말1. 소논문의 동기2. 소논문의 방향Ⅱ. 몸이 되는 말1. 바울의 모금 활동의 다양한 연구2. 고린도 후서 8,9장을 통해 본 바울의 헌금의 의미1) 고린도후서 8,9장 본문 사역2) 바울의 헌금신학3. 바울 시대의 헌금이해 ; 구약(신명기)의 헌금 이해1) 헌금을 드리는 자세와 정신2) 헌금의 사회적 지평(1) 헌금과 사회 통합(2) 헌금과 계층 화해Ⅲ. 꼬리가 되는 말참고문헌Ⅰ. 들어가는 말1. 소논문의 동기바울서신 속에서 바울의 헌금에 관한 기록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2장의 사도회의 부분에서도 자신의 감당한 사역을 모금 활동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울에게 있어서 ‘모금 활동’, ‘헌금’이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바울은 왜 그리도 헌금을 위해 노력하고 애써야 했는가? 이로 인해 고난을 받기도 하였는데 그가 모금 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에게 있어서 헌금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 글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2. 소논문의 방향이 글에서는 고린도후서 8,9장의 내용을 통해서 바울이 말하는 헌금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또한 바울이 살고 있던 시대의 헌금 대한 이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그들의 삶의 지표가 되었던 성경(구약)에 헌금이해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헌금에 담겨있는 바울의 사상과 구약에 담겨있는 헌금의 사상을 비교해 봄으로써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선교하면서 함께 헌금을 강요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Ⅱ. 몸이 되는 말1. 바울의 모금 활동의 다양한 연구고대 주석가들은 예루살렘을 위한 헌금을 교회들이 서로 돕고 살았다는 단지 아름다운 미담으로 간주하여 후대의 교회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제시하곤 했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는 19세 요하네스 멍크(J.Munk)는 헌금 사업에 대한 논의에 바울의 선교적 이해를 감안하여 바울이 종말론적 희망과 묵시적 사고를 혼동하였기 때문에 적절한 주장을 펴지 못하고, 모호한 기준으로 본문을 임의적으로 파악했다는 비평을 받는다.) 프랭클린은(W. M. Franklin)은 역사적, 상황적 범주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헌금사업은 초대교회, 특히 예루살렘의 예수 공동체의 재정적인 궁핍이라는 구체적인 상황 때문에 시작되었으나, 바울은 헌금사없을 믿음과 관련된 ‘연대’와 ‘참여’로 전환시켰다고 주장한다.) 바레트( Barrett)는 바울이 거둔 헌금의 일차적 의미는 비교적 좀 여유가 있었던 이방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예루살렘의 가난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었는데,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인 교회들 사이에서도 항상 실천적인 사랑의 연결이 필요했고(갈 2:9-10), 그것이 바로 헌금으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헌금의 대한 이런 이해는 후대 교회의 모범으로 교회 사이에 상부상조의 미덕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고대 주석가들의 입장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또한 이와 비슷한 입장에서 슈테게만(Wolfgang Stegemann)은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인 교회들의 사회 계층적 성격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방인 교회는 단지 예루살렘 교회보다 경제적으로 조금 더 넉넉했을 정도였다고 평가하며, 이 둘 사이에는 가난한 자들 간의 상호 연대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바울의 헌금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는 코이노니아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헌금신학은 나눔과 교제와 같은 의미이다. 즉 그 사상의 의미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유대의 사상을 이방인들에게 강조했다는 것이 되는데, 중요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바울에게 있어서 중요한 주장인 구원의 보편성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할례라는 의미가 있듯이, 유대인들로 독특성을 가지고 서로를 사랑하고 나눔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 틀은 하나님의 유대인들을 구원하심의 틀n, i{na kaqw;"proenhvrxato ou{tw" kai; ejpitelevsh/ eij" uJma'" kai; th;n cavrin tauvthn.6. 그래서 우리가 디도에게 청하여, 그가 앞서 시작한 것처럼 여러분 가운데서도 이 은혜를 성취하라 하였습니다.ajll! w{sper ejn panti; perisseuvete, pivstei kai; lovgw/ kai; gnwvsei kai; pavsh/ spoudh'/ kai; th'/ ejx hJmw'n ejn uJmi'n ajgavph/, i{na kai; ejn tauvth/ th'/ cavriti perisseuvhte.7. 여러분은 모든 것에서, 믿음과 지식과 모든 진지함과 우리에게 나와 너희 안에 있는 사랑에서 풍부한 것처럼,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하십시오.Ouj kat! ejpitagh;n levgw ajlla; dia; th'" eJtevrwn spoudh'" kai; to; th'" uJmetevra" ajgavph" gnhvsion dokimavzwn:8. 제가 명령으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열성을 말함으로써, 여러분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한 것입니다.ginwvskete ga;r th;n cavrin tou' kurivou hJmw'n !Ihsou' Cristou', o{ti di! uJma'" ejptwvceusen plouvsio" w[n, i{na uJmei'" th'/ ejkeivnou ptwceiva/ plouthvshte.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즉 그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 가난으로 여러분이 부요하게 하게하시려는 것입니다.kai; gnwvmhn ejn touvtw/ divdwmi: tou'to ga;r uJmi'n sumfevrei, oi{tine" ouj movnon to; poih'sai ajlla; kai; to; qevlein proenhvrxasqe ajpo; pepaino" ejn tw'/ eujaggelivw/ dia; pasw'n tw'n ejkklhsiw'n,18 그리고) 우리가 그와 함께 형제를 보내었습니다. 그는 모든 교회를 통해서 복음에 있어 칭찬을 받는 자입니다.ouj movnon dev, ajlla; kai; ceirotonhqei;" uJpo; tw'nejkklhsiw'n sunevkdhmo" hJmw'n su;n th'/ cavriti tauvth/ th'/ diakonoumevnh/ uJf! hJmw'n pro;" th;n ((aujtou')) tou' kurivou dovxan kai; proqumivan hJmw'n,19 그뿐만 아닙니다. 그는 주님의 영광과 우리의 자신해서 함을 나태내기 위해 교회들에게 여행 동무로 더욱 지명 받은 사람입니다.stellovmenoi tou'to, mhv ti" hJma'" mwmhvshtai ejn th'/ aJdrovthti tauvth/ th'/ diakonoumevnh/ uJf! hJmw'n:20 우리가 조심하는 것은, 우리가 맡은 많은 것으로 누구도 우리를 흠잡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pronoou'men ga;r kala; ouj movnon ejnwvpion kurivou ajlla; kai; ejnwvpion ajnqrwvpwn.21 왜냐하면 우리가 주의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더욱 선한 일을 실천하기 위함입니다.sunepevmyamen de; aujtoi'" to;n ajdelfo;n hJmw'n o~nejdokimavsamen ejn polloi'" pollavki" spoudai'on o[nta, nuni; de; polu; spoudaiovteron pepoiqhvsei pollh'/ th'/ eij" uJma'".22 우리가 그들에게 우리의 형제를 함께 보냈습니다. 우리가 그를 많은 것에 여러 번 열심을 시험하였습니다. 지금 그는 여러분들을 향한 큰 신뢰로 더욱 열심입니다.ei[te uJpe;r Tivtou, koinwno;" e정적인 도움을 제공한다는데 있었다. )(3) 영적 빚에 대한 물질적 상환예루살렘에 전달한 헌금은 구원의 은총의 선물이 이방인에게도 주어진, 부인할 수 없는 현실과 직면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그들 스스로가 질투심을 느끼게 되어 결국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헌금 사업은 교회 안에 존재하고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를 하나 되게 하려는 의도에서 시행된 전략이었으며, 나아가 이방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 됨을 위한 전략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4) 섬김과 나눔바울에게서 헌금 사업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예루살렘 교회와의 ‘나눔’에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나눔을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주고 가난하게 되신 것(8:9)과 비교하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 죽음, 부활에의 동참이 곧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3. 바울 시대의 헌금이해 ; 구약(신명기)의 헌금 이해바울이전에 헌금 이해는 어떠하였을까? 그리고 바울이 살던 시대의 헌금에 대한 이해는 어떠하였을까? 이와 같은 질문은 바울의 이방인들에게 예루살렘을 위한 모금 운동을 강조하는 것을 이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신명기 12장을 살펴봄으로써 당시 헌금에 대한 이해는 어떠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신명기 12:6 , 11, 17, 26-27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헌물을 열거하고 있다. 먼저 신명기 12:17에서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 마아세르) , 소와 양의 맏배 (????, 버코르), 서원예물(???, 네데르), 자원예물(????, 너다바), 거제예물(?????, 터마루)) 들을 열거하고, 이를 신명기 12:26에서는 성물(코데쉬-의무적으로 바치는 것))과 헌물(네데르-자의로 바치는 것))로 체계화시켜 요약했다.) 신명기 12:11)에서는 “번제(올라), 친교제(쩨바), 십일조, 거제예물, 서원예물”을 제물로 추가하였다. 그리고 신명기 12:6)에서 “번제-친교제-십일조-거제예물-서원예물-자원예물-소와 야의 hy
    인문/어학| 2005.06.23| 9페이지| 1,000원| 조회(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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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신약] 누가복음 서론에 대해서
    누가복음 서론 (1:1-4절)과 요세푸스의 “아피온을 반대하여 ” 비교장지원 (신대원 3/4 학기)INDEXⅠ. 들어가는 말Ⅱ. 본문 연구1. 본문 사역2. 본문의 위치와 구성3. 본문 주석4. 요세푸스의 “아피온을 공박함”의 서문5. 누가복음 서문의 헬라적 특징Ⅲ. 꼬리가 되는 말참고문헌Ⅰ. 들어가는 말고대문헌에서 서론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서 보아야 한다. 당시 기록을 하였던, 양피나 파피루스는 두루마리 형식으로 되어있으며, 따라서 서론은 각 복음서의 특징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하며,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을 포함하여야 한다. 누가복음의 처음 1-2장은 완전한 L자료로서 구성되었다. 특별히 세 번째 복음서의 첫 부분이자, L자료인 서언(1:1-4)은 누가의 문학적 그리고 신학적 관점을 위한 매우 중요하다. 세 번째 복음서 저자는 많은 기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적 확신을 위해 자료들을 다시 한 번 재구성하는 편집자로 드러난다.) 이 글에서는 본문을 서론을 주석을 통해 알아보고 , 요세푸스의 “아피온을 반대하여”의 서론과 비교해 봄으로써 누가복음 서론에 있는 문학적인 양식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문 연구1. 본문 사역!Epeidhvper polloi; ejpeceivrhsan ajnatavxasqai dihvghsin peri; tw'n peplhroforhmevnwn ejn hJmi'n pragmavtwn,우리 중에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차례대로 이야기를 정돈하려고 시도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kaqw;" parevdosan hJmi'n oiJ ajp! ajrch'" aujtovptai kai; uJphrevtai genovmenoi tou' lovgou,그들은 이것을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로부터 그대로 우리에게 전하여주었습니다.e[doxe kajmoi; parhkolouqhkovti a[nwqen pa'sin ajkribw'" kaqexh'" soi gravyai, kravtiste Qeovfile,그리고 나도 그 모든 일 이야기를 정돈하려고 시도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로부터 그대로 우리에게 전하여주었습니다.누가복음의 시작에 나오는 에피이데페르(~이므로, ~이기 때문에)는 신약성경이나 칠십인역의 다른 곳에서 나오지 않고 고전 시대의 문헌들에 드물게 나오는 표현이다. 그러나 헬라니즘 시대의 문학 작품들 속에서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어휘이다. ) 이 어휘는 유대 전쟁기에 대한 요세푸흐의 서문에서도 발견되는데, 거디에서 서문으로서의 양식과 문학적 풍미를 더해 주는 역할을 한다.(Cadbury, "Preface of Luke", 492) 통상적으로 주절에 나오지만, 여기에서는 구문에 등장하고 있다.우리는 “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 그리고 저자를 포함한 제 3 세대의 기독교인들을 가리킨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김득중은 1) 완성된 혹은 완결된 것이라는 의미, 2) 완전히 확인된 것의 의미 , 3) 성취된 것이라고 헬라어 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표현은 누가시대의 일어난 사건으로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일들을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야기를 정돈하려고 시도한 많은 사람들(폴로이)에 대해서 부정적이 않은 것이 분명하다. 만약 여기서 누가가 복음서를 쓰려고 한 의도가 이미 나온 복음서들을 “개선하려는”데 있었다면 양보를 의미하는 접속사 (카이페르)가 나와야 했을 텐데, 이는 강한 비판이 될 것이다.목격자되고 일꾼된 자들 목격자(아우톱타이)는 신약성서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단어이다. 또한 일꾼 된 자는 다른 곳에서 열두 제자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여기서도 일차적으로 열두제자들 염두 할 뿐 , 그들에 대한 권위를 염두 하는 표현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 이렇듯 두 종류에 대한 언급에 대해서 김득중은 “처음부터 목격자가 되어 말씀이 일군이 된 자”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나,) 논랜드는 사도행전 1:8의 함축되어 있는 두학적인 형태의 호칭으로 사용된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대의 저술가들은 서문을 통해 일반적으로 그 작품을 헌정받는 사람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혀서 가장 주요한 독자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해도 헌정을 받는 개인보다 더 넓은 독자층을 염두해 두고 서문을 쓴다. (예로 Josophus, Ag.Ap.1-18). 사실 대부분의 역사서의 서문들의 그 작품이 헌정된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 D. Earl, "Prologue-Form in Ancient Historigraphy," ANRW, vol. 1, Part 2, 842-46) 그러므로 누가가 데오빌로라는 개인을 지목하여 명백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이 복음서의 특이한 몇몇 특징들은 적어도 데오빌로의 특별한 상황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뜻하다. 데오빌로라는 이름은 주전 3세기로부터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자주 등장한다. 어떤 사람에게 이 이름을 붙였을 때는 이 이름의 어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벗 ; Cadbury,"Preface of Luke" 507). 데오빌로라는 이름을 상징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많은 내용들은 고넬료 같은 독자들에게 아주 적합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 또한 각하(카라키스테)는 존칭인데, 이 단어는 두루뭉실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데오빌로의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거나 부유하거나 어떤 종류의 공직에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Fitzmyer). 4절 ‘배운바’와 연결해서 생각했을 때, 누구든 간에 이미 기록을 알고 있는 존재일 것이다. )4) 이는 각하께서 말로 알린 말씀들이 확실한 사실임을 아시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더 나아가 데오빌로가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냐는 문제는 ‘카테케오’(배운 바)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다. ) 이 말을 “보고하다, 알리다” 또는 “가르치다”)는 뜻을 쓴 글”(톤 프론톤 로곤)이라는 요약문이 나오는데, 사도행전이 여러 권으로 된 작품의 일부임을 보여 준다. 또한 여러 모티프들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공통으로 분포되어 있다는 것은 이 두 책이 서로 밀접한 관련 속에서 읽혀지도록 계획되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해 준다. 그의 저작을 하나로 연결시켜 주는 주제는 모두 동일하다는 사실은 이 서문을 우선적으로 복음서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특히 24:44-45에서), 누가복음은 여러 권으로 된 작품의 첫 번째 권으로 계획되었을 뿐만 아니라 독자적으로 완결된 작품이기도 하다. )4. 아피온을 반대하여1. 에바브로디도 각하여! 저는 저의 저서인 ‘유대고대사’에서 그 책들을 숙독하는 독자들에게 우리 유대민족이 매우 훌륭한 고대사를 지니고 있으며 처음부터 독창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유지해 왔던 민족임을 분명하게 주지시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저서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어떻게 우리 민족이 들어와 살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5,000년의 역사를 지녔으며, 그러한 사실들은 유대의 성경을 근거로 하여 제가 헬라어로 번역을 해 놓은 것입니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과 우리에게 악의를 지닌 사람들이 우리에게 퍼붓는 비판에는 귀 기울여 들으면서도 제가 우리나라의 고대사에 대해 쓴 것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과 우리에게 악의를 지닌 사람들이 우리에게 퍼붓는 비판에는 귀 기울여 들으면서도 제가 우리나라의 고대사에 대해 쓴 것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헬라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역사가들이 공공연하게 언급한 것을 가치있게 고려하지 않은 사실을 우리 민족이 비교적 후대에 생긴 것을 입증하는 증거로 인용하고 있습니다.3. 따라서 나는 악의를 품고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과오를 깨우려주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무지를 시정하기 위하여, 더욱이 우리 우리의 역사를 언급한 헬라의 역사가들을 모두 언급할 생각입니다. )누가복음 1:1-2절에서는 앞서 3장의 주석처럼, 기록의 이유와 전제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3절에서는 수신자 데오빌로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서론의 마지막은 누가복음의 전체적인 기록목적을 밝히고 있다.그런데 우리는 요세푸스의 “아피온을 반대하여”와 단순비교 해보며, 누가복음 서론과 많은 부분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첫째로, 사용되는 문체가 코이네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둘째로는, 서론 구성의 유사성이다.누가가 1:1-2에서 누가복음의 기록의 이유와 전제를 밝히고, 3절에서 수신자를 밝히고 있듯이, “아피온의 반대하여”에서도 1:1-3절에 에바브로디도를 수신자를 밝히고 있으며, 그리고 기록의 이유와 전제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눅 1:4에서 누가복음의 전체적인 기록의 목적을 밝히고 있듯이, 4,5절에서 기록목적을 밝히고 있다.셋째로는 , 위에서 이미 언급이 된 수신자의 내용인데, 누가는 데오빌로를 각하 , 요세푸스는 에바브로디도 각하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둘 다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수신자라는 것이다.4. 서문에 나타난 헬라적 표현 )위의 비교에서 알수 있듯이 누가 문서의 연구가인 탈버드( C.H.Talbert)에 의하면, 그리스-로마 시대의 문헌들은 일정한 형식을 갖고 있었으며, 그런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구성요소가 필수적이었다고 말한다.)1) 선배 저자들에 관한 언급 - 보통은 그들의 글의 부적합성에 대한 언급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누가에서는 비평적인 언급은 나타나지 않는다.2) 저작의 주제에 관한 언급 - 누가는 1:1에서 “우리 가운데 일어난 많은 사건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들”을 기록하려고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3) 저술을 하는 저자의 자격에 대한 언급 - 일반적으로 저자가 목격자이기 때문에 , 혹은 훌륭한 자료를 갖고 있기 때문에, 혹은 일차적 자료를 다룰 수 있는 언어적 능력이 있기 때문에 주제를 잘 알고
    인문/어학| 2005.06.23| 5페이지| 1,000원| 조회(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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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신약] 누가복음의 제자직
    < 2005년 봄학기 > 유태엽 교수님과 함께하는 “누가복음 세미나”누가복음의 제자 상(狀)에 대해서공관(共觀)복음서의 기록목적변화와 제자상의 변화장지원 (신대원 3/4 학기)< Index >Ⅰ. 들어가는 말Ⅱ. 몸이 되는 말1. 기록 목적의 변화2. 제자 상의 변화3. 베드로의 강조Ⅲ. 꼬리가 되는 말참고문헌Ⅰ. 들어가는 말복음서에서는 문학적인 구성을 속에는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그 등장인물의 기능으로 인해 문학적인 효과가 다르게 표현되곤 한다. 이 글에서는 복음서에 나타나는 다양한 등장인물 중에 예수님의 제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과 그리고 마태복음, 누가복음 각각의 기록목적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 상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기록목적과 제자상의 변화를 연관 지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Ⅱ. 몸이 되는 말1. 기록 목적의 변화)마가복음의 서론 1장 1절에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복음을 쓰고자 하였다. 그는 환난가운데 있는 기독교 공동체에게 예수가 진정으로 누구이며, 그가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말하고자 하였다.1) 예수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고, 그는 전승이 잃어지거나 잊혀지기를 원하지 않았지 때문이다. 복음서가 기록되기 바로 전에 베드로는 64년에 순교 당했다.2) 저자는 교회 안에서 생겨나는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에게 기초한 사상에 근거하여 답을 얻고자 하였다. 그가 예수의 이야기를 말 함으로서, 전하고자 했던 주요한 관심은 정치적인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목회적 혹은 신학적인 것이었다.3) 이방인들에 대한 기독교의 개방성을 밝히기를 원했다.4) 마가는 신앙적으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지지, 혹은 격려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5) 저자는 거짓 예언자의 주장에 대처하기 원했다. 그가 두려워한 이단의 종류가 무엇인가는 분명하지는 않다.)마태의 공동체는 마가의 복음서가 기록된 공동체와 동일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여러 종류의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외적으로 그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양측으로부터 박해에 직면하거나 혹은 박해를 예상하고 있었다. 내부로부터는 이단의 문제, 배교, 그리고 배신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마태와 공동체는 이와 더불어 마가의 주요한 관심일 수 없었던 문제들에 직면하였다. 유대적 배경 혹은 영향은 더욱 더 그들을 무겁게 하였다. 히브리 성경의 성취와 율법의 지속적인 정당성과 관련된 문제들은 더욱 더 그들을 압박하였다.)서론에 복음서의 내용이 집약되어 있다. (총체적 서론, The cumulate introduction) 따라서 기록목적도 언급되어 있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이를 시도하였으나, 만족스런 결과를 얻어 내지는 못하였다.1) 첫째로 복음의 선포(Evangelism)가 주요한 목적이었다.( 부르스 와 오네일 ) : 그레코-로망시대의 불신자를 위한 복음선포를 목적으로 기록되었다는 주장이다.2) 바울에 대한 변증이다. : 바울을 옹호하기 위해 쓴 글 (브렌든, 젤벨)3) 로마정부에 기독교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 유대교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줌. (이스톤과 헨첸)4) 종말론의 지연의 답변이다. : (콘첼만) , 파루시아가 임박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예수와 초대교회에 있어서처럼 현재를 결정하고 지배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5) 교회 안에 파고드는 영지주의 사상에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이 이론은 탈버드에 의해 제기 되었다.6) 복음의 확증을 심어주기 위해서이다. 운니크는 히2:2-4에서 암시를 얻어 사도행전의 기록목적은 흔들리는 신앙을 격려하기 위한 ‘확증’에 있었다고 주장한다.위에서 기록되었듯이, 마가복음의 기록목적은 임박한 종말의 지연 따른 교회 안에 생겨나는 갈등과 어려움 대해 예수님의 능력을 답해 주고 있다. 마태복음은 마가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 공동체만의 특별한 내적인 문제와 외적인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로 답하고 있다. 누가복음은 앞선 두 복음서 보다 훨씬 후대의 것으로 복음서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대답임은 알 수 있으나, 대답 즉, 기록목적이 기능들이 더욱 다양해짐을 알 수 있다. 공간 복음서의 기록의 목적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예수의 권위의 표현에서 예수를 전하는 기능의 모습으로 발전, 변화해 감을 찾아 낼 수 있다.2. 제자 상의 변화 ) : 누가복음 중심으로제자들의 모습을 좀 더 나은 빛 가운데 제시하려고 하는 마태의 관심은 누가복음에 와서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누가는 제자들의 명예에 손상이 되며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마가의 진술과 표현들을 과감히 제거 혹은 수정해 버림으로써 제자들의 예수의 훌륭한 동역자요 모든 믿는 자들의 모범으로 제시하려고 하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A.마가 (4:10-13) 예수께서 비유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제자들이 일지 못함에 개탄하신다. 마태 (15:16)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16:12) 그제야 그들이 ....깨달았습니다. (16:9)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누가 (8:9-10) 위의 마가나 마태에 나온 개탄의 부분을 생략하고, “제자들이 예수에게 비유의 뜻을 물었습니다.” : 마태복음의 (마 16:9, 12/ 막 8:7-21)을 모두 삭제하고 있다.B.마가 (9:10)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 하고 서로 물었습니다. ” / 막10:14 : 제자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나오는 사림을 꾸짖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노하셨다”는 표현이 삭제한체 누가 그때에 예수께서 아기들을 가까이 오게 하시고 말씀하셨다.C.두 번째 수난 예고에서 누가는 마가 9장 32절(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묻기조차 두려워했습니다.)있으나, 누가 9장 45절에서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삽입시킴으로 그들이 고난의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계획 혹은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인 것으로 설명)하므로 어리석은 제자들을 변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누가의 의도는 세 번째 수난 예고(눅 18:31-33)에도 똑같이 나타난다.D.열두 제자 중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나아와, 주께서 영광 받으실 때 주의 좌우편 자리를 자기들에게 달라고 부탁한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막 10:35-45)가 마가의 문맥에서는 제자들의 영적인 무지를 반영해 주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마태에서는 야고보와 요한 대신 그들의 어머니가 예수께 부탁하는 것으로 수정되어 있다. 그리고 누가는 이를 삭제하고 있다.E.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잠들어 버린 실수에 대해서도 누가는 마가복음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 26:40 / 막 14:37)는 책망의 질문을 삭제해 버리고 도리어 “그들이 슬픔에 지쳐서 잠든 것을 보시고”(눅 22:45)라는 문구를 삽입하고 있다.F.오천 명을 먹인 이적에서는 마가복음의 제자들이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랍니까?”(막 6:37) 말하며 믿음 없는 모습을 보여주나, 마태에서는 부정의 반문을 생략한 채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다”(마 14:17)라고 표현함으로써 제자들이 좀 더 낮게 그려주고 있다. 또한 누가에서는 (눅 9:13)에서는 “우리에게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어디든지 가서 이 모든 사람이 먹을 것을 사와야 하겠습니다”라고 제자들을 순종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G.혈루병을 치료한 이야기에서도 “제자들이 여자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막5:31)에서 누가 본문은 퉁명스런 말대꾸를 삭제해 버리고 있다. 오히려 “사람들이 모두 모른다”고 대답한 후에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중재역할을 하고 있다.H.예수께서 체포되시던 사건에서는 마가와 마태에서 예수께서 잡히셨을 때, “ 제자들 중 한 사람”이 예수를 위해 검을 사용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막 14:47 , 마 26:51) 누가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되어 가는 사태를 주님 우리가 검을 쓸까요 하고 말했습니다.”(22:49)라는 말을 첨가함으로써, 예수의 제자들의 다수가 예수를 위해 나서려 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고, 반면에 마가와 마태에서는 모두 “모든 제자들”(막14:50 , 마 26:56)이 다 도망쳤다고 말하고 있는데 누가는 이 구절을 삭제해 버리고 있다.I.뿐만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예루살렘에 그냥 계속 남아 있는 제자들의 모습(눅 24:33) , 또한 십자가 현장에 제자들이 있었다고 암시하고 있다.(눅 23:49)J.예수의 배반 예고도 마태와 마가와 상당히 다르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막 14:18)를 삭제하고 있으며, 마가의 경우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배반할 것이라고 분명히 제자들을 지적하고 있는데(막 14:20) 반해, 누가는 “그러나 보라. 나를 잡아줄 자의 손이 내 손과 함께 식탁 위에 있다”(눅 22:21)라고 막연한 언급으로 수정하고 있다. 누가에 의해서는 오히려 배반이 사단의 짓으로 이해되고 있다.K.우리는 제자들을 옹호하고 변호하여 가능한 한 그들을 좀 더 훌륭하게 그려놓으려고 하는 누가의 관심과 경향이 그의 베드로상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누가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를 이상적인 모습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이름에 손상이 될 만한 기록들은 과감히 수정하거나 삭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제자 상에 대한 누가의 표현들은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의 다르다. 마가복음에서 제자들의 부정적인 모습으로 예수의 권위를 부각시키고 있다면, 마태복음은 이를 완화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또한 누가복음에서는 마가와 마태의 제자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삭제하고 수정하여 긍정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기록목적의 변화와 같다.
    인문/어학| 2005.06.23| 4페이지| 1,000원| 조회(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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