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Ⅰ. 서론Ⅱ. 맑스의 종교이론1. 맑스 당시 독일 사상운동의 현실적 맥락2. 맑스의 종교관3. 인민의 아편으로서의 종교Ⅲ. 한국의 종교1. 한국 종교의 현황2. 한국종교의 문제점1)기복주의적 성격2)종교의 세속화3) 한국종교와 정치권력Ⅳ. 한국의 종교와 인민의 아편1. 종교의 상류층 편향2. 종교의 권력화3.한국 종교의 기복주의4. 종교내의 강력한 집단의식Ⅴ. 결론Ⅰ. 서론칼 맑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하였다. 맑스의 이 유명한 말은 종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때 흔히 사용되어 왔다. 즉 종교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 하거나 대중의 계급의식 형성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맑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말은 그의 저서인 [헤겔법철학 비판:서문]에서 나타난다. 이 글은 전체적으로 맑스의 종교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으며 ‘인민의 아편’은 그 중 일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그 전후 맥락과는 무관하게 절취되어 무분별 하게 사용됨으로써 맑스의 종교관을 무조건적이고 배타적인 ‘반종교주의’ 또는 ‘무신론’으로 왜곡하였다.우리는 이번 발표를 준비하면서 ‘인민의 아편’이 잘 못 사용 되어져 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용어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우선 [헤겔 법철학 비판:서문]의 전체적 맥락에 대한 이해와 맑스가 이 저서를 쓸 당시의 종교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그렇다면 맑스의 이러한 종교적 관점에서 한국의 종교는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 과연 인민의 아편인가? 하는 문제가 도출된다. 우리는 먼저 맑스의 종교관과 ‘인민의 아편’의 바른 이해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종교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문제점을 중심으로 알아 볼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종교가 과연 인민의 아편인지 아닌지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Ⅱ. 맑스의 종교이론‘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이 유명한 문구는 마르크스의 저서인[헤겔 법철학비판: 서문]의 초입부에 등장하는 말이다. 이 말은 흔히 맑스의 종교관을 대표하는 말로 사용이다라는 말의 참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1. 맑스 당시 독일 사상운동의 현실적 맥락1840년대 초반 독일 사상 운동의 큰 흐름은 종교 비판이었다. 종교 비판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실천적 현실비판 운동이었으며, 이 종교비판의 열풍을 주도한 것은 청년헤겔주의자들이었다. 청년헤겔주의자들의 종교 비판 운동은 단순히 철학적이거나 이론적인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후진적 상태에 있던 독일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비판적 현실개혁운동이었다. 이들이 종교 비판에 전념한 까닭은 기독교를 국가 이념으로 하는 독일의 정치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의 머리에 해당하는 기독교를 공격해 붕괴시켜버리면 국가체제도 함께 붕괴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종교 비판의 실제적 결과는 독일 현실을 개혁하는데 기여하기는 커녕, 오히려 종교비판에 참여한 언론과 출판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 강화로 이어졌다.맑스는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는 청년헤겔주의자들의 종교 비판 운동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으며, 나아가 종교 비판 운동이 안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자각하면서 그것을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다.2. 맑스의 종교관[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맑스의 종교에 대한 언급은 모두 일곱 문단에 불과하며, 양적으로는 두 쪽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개진된 종교에 관한 언급은 마르크스의 전체 저작 가운데서 그의 종교관이 집중적으로 드러나 있는 거의 유일한 저작이다.맑스에게 있어 종교는 철학, 예술, 윤리, 법률 등과 마찬가지로 추상적 원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안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역사적 산물의 한 형태이다. 즉 마르크스에 있어 모든 종교는 그것이 등장한 현실적 토대에서 생겨난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그 시대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따라서 종교는 그것의 현실적 토대인 현실 맥락을 떠나서는 파악될 수 없다.맑스는 또한 ‘종교가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종교를 만든다’는 명제를 제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 자, 심장이 없는 세계의 감정이며, 정신을 상실한 상황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위 문단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문장이 수록된 문단이다. 이 문단에서 앞의 두 문장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명제 못지 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 문장들은 전체적으로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독립된 문장으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히 지니고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종교관에 대한 다양한 유보적 해석이 가능하며, 심지어는 종교에 대한 긍정적 해석까지도 가능하다.먼저 이 문단의 내재적 맥락을 살펴 보자면, ‘종교적 빈곤은 현실적 빈곤의 표현이자 현실적 빈곤에 대한 저항이다’라는 첫 번째 문장은 종교의 두 가지 측면을 보여준다. 즉 현실의 반영인 측면과 현실에 대한 저항인 측면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전자는 특정 종교는 특정현실에서 만들어진 바로 그 현실 세계의 반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후자는 현실적 빈곤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인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자, 심장이 없는 세계의 감정이며, 정신을 상실한 상황의 정신이다’라는 명제는 현실의 반영과 연관되어 있으며, 세 번째 문장인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명제는 현실에 대한 저항과 연관되어 있다.이처럼 맑스는 종교를 일방적으로 폄하한 것이 아니었다. 맑스는 종교가 일반인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인정했다. 맑스가 진정으로 문제 삼은 것은 종교는 현실을 고쳐나가기 위한 저항의지가 필요한데 당시 독일에서는 그 어떤 형태의 종교적 저항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즉, 맑스는 현실에 대한 적극적 저항의지가 없는 종교의 모습을 비판하였으며 이러한 종교의 모습을 인민의 아편에 비유한 것이다.이러한 해석을 통해 우리는 종교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인민의 아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종교가 현실에 대한 저항정신을 지니고 있다면 그 사회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 아닌 신이 있는지, 한국사회에서 종교가 인민의 아편 역할을 하는지 알아 볼 것이다.1. 한국 종교의 현황한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종교는 무엇일까? 우리는 종교 현황을 통해 한국에 어떠한 종교가 있으며 어느 종교가 가장 많은 신도 수를 보유하고 있는지 살펴 보았다. 밑의 표에서 보는 것처럼 한국에서는 불교가 가장 많은 종교 인구를 차지하고 있고 기독교와 천주교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종교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가 큰 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종교인구분포불교1072만(42.9%)기독교861만(34.5%)천주교514만(20.6)원불교13만(0.5%)유교10만(0.4%)증산교3만4천(0.13%)천도교4만5천(0.18%)기타16만 3천(0.65%)전체인구 4704만 종교인구 2497만(53%)2005년 통계청 종교인구 현황2. 한국 종교의 문제점1) 기복주의적 성격한국의 종교는 ‘기복종교’적 성격이 강하다. 한국의 종교는 종교 본연의 가르침에 따르기 보다는 현세의 복을 비는 기복적인 측면이 강하다. 교회를 다니거나 절을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목적을 두고 있다. 특히 수능시험이 치러지기 전에 TV에서 보여지는 부모들의 기도는 이러한 기복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 또 개신교에서 이루어 지는 간증도 이러한 기 복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이처럼 한국 종교는 교리의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도 아니며, 신의 가르침을 사회에 실천하는 일보다는 오히려 기복신앙을 통해 자기 자신의 영생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종교로 변해하고 있다.2) 종교의 세속화종교의 세속화는 한국 종교계의 가장 큰 문제이다. 종교가 교리를 전파하거나 종교적 가르침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종교 자체의 성장을 목적으로 하고 많은 이윤을 낳기 위해 신도를 모으는데 급급하다. 대표적인 예가 개신교의 십일조이다. 십일조는 교리상으로는 자유롭게 내는 헌금이지만 실제로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공개적으로 걷음으로써 낼 수 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개신교가 보유한 수많은 교육기관이러한 현상은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불교 또한 마찬가지로 세속화의 경향을 띄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 사찰들은 산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많은 사찰들이 도시 근교에 지어지거나 심지어는 도시 안에 자리 잡는 사찰들도 늘고 있다. 그리고 불교 또한 기독교처럼 불교방송, 불교신문 등 다양한 영리단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불교대학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신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3) 한국 종교와 정치권력한국의 종교는 태생적 혹은 그 성장에 있어서 권력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불교는 삼국시대에 전파되었는데 당시의 법체제인 율령체제의 정비와 함께 발전하였다. 불교는 도입된 이래 삼국의 주요 통치 이념이었다. 유교는 삼국시대에 도입되어 고려 시대에는 강력한 정치 이념으로 작용하였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정치 이념의 수준을 넘어 사회, 문화, 경제, 종교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는 19세기에 한국에 들어왔으며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정치 권력과 강한 유대를 보여왔다. 이승만, 김영삼 그리고 이번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까지 세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며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였다.개신교는 종교와 정치권력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준다. 개신교가 우리 사회에서 어느 집단도 넘보기 힘든 거대 권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에는 선교 초기부터‘미국의 종교’로 간주됐던 게 큰 역할을 했다. 개신교는 선교 초기 미국 근대 문명의 원동력으로 여겨지며 들어왔고 일제 치하에서 실력양성운동과 사회운동으로 역량을 축적한 뒤 미군정과 개신교 장로인 이승만 대통령 시대를 지나며 주류 종교의 터를 다졌다. 개신교는 이어 산업화시대를 거치며 ‘뿌리 뽑힌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뜨거운 설교와 신앙집회 등으로 세계에 유래 없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 권력화의 기반을 공고히 했다.이번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이승만, 김영삼 대통령에 이은 세 번째 개신교 장로 출신 대통령이다. 집권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종교인 개신교와 관련해 많은 분란다
? 목차 ?Ⅰ. 서론Ⅱ. 본론1. 농촌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혼인 실태1) 농촌 남성의 국제결혼 증가 원인2)농촌 남성의 국제결혼 현황과 그 과정2. 농촌 내 국제 결혼의 문제점1)개인적 문제2)사회적 문제3. 농촌 내 국제결혼의 대안1)정부차원의 대안2)지방자치단체의 대안3)민간차원의 대안Ⅲ. 결론* 참고문헌Ⅰ. 서론경제개발 이전인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농촌은 우리나라의 중심이었고 농업은 나라의 기반 산업이었다. 6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경제개발을 이루었으나 농촌과 농업은 이와는 반대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농촌은 이처럼 급격한 쇠퇴와 더불어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인구부족 문제 이다. 농촌의 많은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게 되었고 농촌에는 노동력이 없는 아이들과 노인들만이 남아 농촌은 심각한 노동력 부족과 노인인구의 증가라는 문제에 봉착하였다. 그 다음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들 수 있다. 최근의 자유무역과 FTA로 인해 많은 외국 농산물이 들어오면서 우리 농산물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된 저가의 외국 농산물에 비해 우리 농산물은 가격대가 높아 소외 받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이처럼 외국 농산물이 들어오면서 국내농산물의 판매가 저조해지자 농가별 부채도 증가 하고 있다. 그 외에도 교육, 문화, 의료시설의 부족은 농촌인구의 감소를 더욱 부추기는 심각한 문제이다. 농촌은 도시에 비해 교육, 문화, 의료시설등의 복지가 빈약해 농촌인은 도시 사람들에 비해 문화적인 혜택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최근 들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농촌 총각들의 혼인 문제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여성들은 문화, 교육시설이 부족한 농촌으로 시집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경향의 대안으로 베트남, 연변 등지의 여성과 결혼하는 농촌총각이 많아 졌는데 문화가 다른 외국인 여성들이 많이 들어옴으로써 농촌은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나는 많은 농촌 문제 중에서도 농촌 내 총각들의 혼인 문제에 관심이 갔다. 우리나라는 성비불균형거의 업는 사람들의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한 성노예로 외국인 여성을 수입하기도 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일부 국제결혼중개업체의 영리를 목적만을 추구로 함에 따라 일어나고 있는 문제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실제 직업과 재산, 나이, 외모 등을 속여 실제로 없는 내용으로 신랑을 꾸미고 경제적 목적으로 이주해 오는 대다수의 여성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결혼 중개업체들은 같은 상호로 계속해 영업을 하지 않을뿐더러 한곳에서 지속적으로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다. 국제결혼중개업은 매우 이윤이 많이 생기는 사업이다. 신고만으로 업소를 차릴 수 있고 남성들이 여성을 데려오기 위한 결혼비용의 20-30%를 업자들이 수수료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문 업체는 물론이고, 개인이 결혼 브로커로 나서는 경우도 많으며 최근 온라인에서 영업하는 업체만도 100여개가 훨씬 넘는다.2) 농촌 남성의 국제결혼 현황과 그 과정(1) 혼인 현황현재 농촌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의 대부분은 동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이다. 중국동포, 베트남 등의 동아시아지역의 외국인은 그 외모적인 모습이 한국인과 비슷하기에 다른 외국여성에 비하여 외모적으로 비교적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큰 요인으로 보인다.근래 들어서는 농촌남성들의 베트남 여성을 배우자로 얻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어 최근에는 중국동포보다 베트남 여성과의 혼인이 늘고 있다. 베트남 여성의 경우 중국동포보다 남편의 말에 더 순응한다는 인식과 중국동포의 경우 주변에 아는 사람이 많아 결혼 후 가출이나 위장결혼의 우려가 있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2) 혼인 과정현재 국내로의 결혼 이주 방법은 크게 네 가지로 아는 사람의 소개, 직접 만남, 종교단체, 결혼중개업체를 통하는 방식이 있다.중국 조선족의 경우는 소개로 결혼하게 되는 비율이 가장 높았는데 이는 같은 민족으로서 서로 아는 친척이 많을 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왕래가 빈번하게 이루어졌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소개가 손쉽불구하고 바쁜 일과 무관심으로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문화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갈등은 언어로 인한 오해로 인해 발생 하는 것 들이다.국제결혼 부부는 각자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들이 취해야 할 적절한 행동모델을 선택함에 있어서 자신이 이제까지 지내왔던 문화 속에서 찾으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이 충돌할 때 생기는 문화마찰로 인해 부부간에 갈등이 생겨난다.서양보다는 문화가 비슷한 동양권이라고 하여도 한국과 베트남, 필리핀, 중국의 문화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필리핀의 경우 지금은 양계사회로 변하였으나 필리핀 여성들은 모계사회생활이 어렸을 때 몸에 익숙한 이들이다. 아무리 지금의 한국 사회가 여성을 위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남성중심의 사고로 움직이는 생활제도에서 이들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2) 이웃과의 갈등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 있어 겪게 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 있어 가족만큼 중요한 존재가 이웃이다. 같은 나라에서 온 외국인 여성과 교류를 갖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국내에서의 빠른 적응과 앞으로의 한국생활을 생각한다면 이웃과의 친분을 쌓는 것이 더 좋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과의 원만한 관계는 사회적 수준에서가 아닌 개인적 차원의 안전망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어 진다. 그러나 일부 외국인 여성들은 이웃과의 교류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으며 남편의 의지이든 자신의지이든 자신을 가정 밖의 세상에 내어놓는 것을 꺼려하고 있어 가정 내에 고립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아직까지 주변의 외국인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교류의 벽이 되고 있다.(3) 부부간의 문제국제결혼 가정의 부부간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언어적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에 있다. 외국인 아내는 결혼 전 한국어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이고 남편 역시 영어나 아내의 모국어를 전혀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사소한 싸움도 처음에는 작은 말다툼으로 시는 경우도 있다.한 조사에 의하면 현재 살고 있는 자녀들 중 본인과 현재 남편 사이에서 난 자녀가 있는 사람이 41%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 결과를 통해 재혼 상대의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외국인 여성이 재혼할 경우 자신의 아이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에는 까다로운 법 절차와 많은 수속비용, 남편과 시댁의 반대로 인해 어려움이 많다. 자녀가 한국에 입국해서 따로 사는 경우에도 이전 결혼에서 얻은 자녀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시댁식구와 남편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남편이 전 부인과 낳은 자녀의 경우 그 자녀가 젊은 외국인 여성을 엄마로 받아들이는 데 힘들어하여 이주여성과 자녀간의 벽이 생기는 경우도 존재한다. 어느 쪽의 자녀이건 부모 중 한 사람이 외국인인 데서 오는 자녀가 겪는 또래집단으로부터의 집단 따돌림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이주여성들은 양육과 보육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경제적여건과 자녀양육 시설이 미비한 농촌 환경으로 인해 보육시설의 이용이 힘든 실정이고 20대 초반의 어린 신부가 많은 외국인 여성들은 친정과도 떨어져 있는 상태여서 양육교육도 받지 않은 터라 자녀를 기르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취학 자녀들의 숙제를 도와주거나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데에 있어서도 한국어가 능숙치 못해 원만한 부모, 자식의 관계를 만드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다.(6) 사회 참여 부족 문제농촌남성에게 시집온 여성들은 남편의 농업 일을 곁에서 보조하거나 주위의 식당이나 공장 등에 나가 일을 하는 등 생계유지를 위해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다. 최저 생계비마저 유지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어능력이 되지 않는 이들은 단순 노동에 종사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국문화를 친숙하게 몸으로 느끼거나 천천히 받아들이는 과정도 없이 삭막한 사회로 내던져지고 있다. 주변의 시선과 남편의 반대로 집 밖의 외출도 힘들어 사회적으로 고립어 가는 이들도 있다. 이들을 위해 민간단체나 지자체에서 최근 들르고 시집을 와 1, 2년 만에 아이를 낳기 때문에 이러한 역할을 해 줄 수 없다. 한국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배우기 힘든 근본적 이유는 국제결혼의 52%가 최저 생계비 이하의 소득수준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울 여유가 없는 것이다. 한 어린이 특수학교의 정신 지체자 40명중 8명이 혼혈아이며 그나마 경제적 여건이 되기 때문에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아예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정신질환을 갖게 되는 혼혈아들을 위해서 제일 먼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은 이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양육할 외국인 여성들의 한국어교육, 자녀 양육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2) 여성 가출 문제농촌남성의 외국인 여성과의 결혼성사는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만으로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농촌 지역으로 시집 온 외국인 신부의 가출이 최근 급증하고 있는데 경찰에 가출신고를 하지 않는 사례가 훨씬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외국인 신부 가출은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볼 수 있다. 외국인 여성의 가출은 남편의 폭력이나 경제적 어려움 등, 가정불화에서 일어날 수도 있지만 결혼의 목적이 순수한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회문제가 되는 것이다. 막연히 ‘한국에 들어올 수 만 있다면’ 이라는 생각과 브로커를 끼고 유흥업소에서 일할 목적으로 들어오는 위장결혼 등이 외국인 아내의 가출을 발생시키고 농촌남성들은 배신감과 결혼 전 지불한 금전적 피해의 2중고를 겪게 된다. 국제결혼을 주선한 업체들과 몇몇 브로커들은 자신이 결혼을 성사시킨 외국인 신부들에게 취업을 알선해 준다는 명분으로 아내의 가출을 부추기고 있어 더 이상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현재 위장결혼을 방지하기 위해 법적으로 결혼 후 2년 후에 국적을 취득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남편의 학대와 혼자서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국적취득만을 위해 하소연도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어 문제가 된다.
? 목차 ?Ⅰ. 들어가는말Ⅱ. 나의 아르바이트 경험1)공장 아르바이트2)치킨집 아르바이트Ⅲ. 맺음말Ⅰ. 들어가는 말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내 주위에도 아르바이트 한 두 번 하지 않은 사람은 찾기 힘들 정도다. 나도 두 번의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다. 내가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 내 용돈 정도는 스스로 벌어야 겠다고 생각해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뿌듯하고 보람찼던 기억이 많다. 고생하며 일해서 받은 첫 월급의 기쁨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일을 할 때는 힘이 들었지만 첫 월급을 받을 때는 몇배로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또 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아르바이트를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가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정적이고 안 좋았던 기억 또한 있다.이러한 아르바이트의 경험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또 아르바이트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은 무엇인가? 나는 이 글을 통해 내가 아르바이트를 통해 경험한 것과 느낀 바를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Ⅱ. 나의 아르바이트 경험1)공장 아르바이트내가 제일 처음 해 본 아르바이트는 공장아르바이트였다. 공장 아르바이트는 1학년 겨울 방학 때 우연한 기회로 하게 됐다. 그때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어떤 아르바이트를 할지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어머니의 소개로 어머니가 아시는 분의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다.일하러 가기 전까지 나는 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섬유공장이 힘들다는 것만 알았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일할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로 면접을 보러 간 다음날부터 바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일이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일하게 된 날부터 공장에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한달 반동안 공장에서만 지냈다.내가 주로 하는 일은 섬유 원사와 완제품이 든 박스를 옮기는 일과 생산된 섬유를 증기에 찌고 제품을 포장하는 일이었다. 섬유원사가 27키로 정도 나가고 완제품은 40키로가 넘었는데 하루에 이백 개 정도씩은 옮겼던 것 같다. 공장이 3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는 날이면 계단으로 옮기기도 했다.공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일은 정말 힘들고 노동시간도 긴데 임금은 그에 비해 굉장히 적다는 것이다. 하루 12시간씩 일을 해야 했고 휴일은 월 2회였다. 제품이 생산되면 바로 포장해야 하고 옮겨야 했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되어도 다른 직원들이 잔업을 하고 있으면 혼자 퇴근 할 수가 없어서 보통 1시간정도의 잔업을 더해야 했다. 물론 이 잔업은 임금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렇게 고된 노동을 하며 나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문제와 3D업종 문제의 심각성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인상 깊었던 점은 요즘 사회계층론 수업에서 배우고 있는 마르크스의 이론 중 분업과 노동소외를 직접 체험해 보았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일을 할 때 나는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쉬고 싶지만 기계는 제품을 계속 만들어 내기 때문에 계속 일을 해야 했다. 심지어는 밥을 먹을 때도 직원을 둘로 나눠서 한 팀이 먼저 밥을 먹고 다음 팀으로 교대 해주는 방식으로 일을 할 정도였다. 그동안 수업에서만 배웠던 분업과 기계화의 문제점들을 내가 직접 체험 한 것이다. 이런 경험을 직접 해보니 이번 학기에 배운 마르크스의 이론이나 포디즘이 더욱 잘 이해 되었다.공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평소 학교에서의 인간관계와는 다른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를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공장에서의 인간관계는 학교에서의 인간관계에 비해 좀 더 엄격하고 냉정한 관계였다. 실수를 하게 되면 가차 없이 욕을 먹고 생계와 관련되어 있어서인지 모두들 딱딱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 곳에 아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든지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형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때 매우 아쉬웠다. 그리고 공장에서의 인간관계 이후 그동안의 나의 인간관계가 좁고 소극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후에는 인간관계를 비롯한 모든 일에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 하게 되었다. 공장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이후에 내가 군대에 가서 적응하는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많은 공장들이 그러하듯이 내가 일한 공장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 같은 기숙사에서 함께 일하고 생활했다. 그들과 생활하며 나라와 민족마다 문화와 가치관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었는데 책에서만 배우다 몸으로 느껴보니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런 외국인들과 같은 기숙사에서 부대끼며 생활하다보니 그들과의 거리감도 좁혀지고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멀게만 느껴지던 그들도 나와 별 다를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2)치킨집 아르바이트치킨집 아르바이트는 군대를 전역하고 난 후 시작한 아르바이트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니 내 용돈은 내가 해결해야 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다. 이 아르바이트는 현재도 하고 있다. 복학 전에는 평일오후에 일하고 학기 중인 요즘은 주말 아르바이트를 해오고 있다.치킨집에서 나는 주로 주문을 받고 닭을 튀기고 서빙을 한다. 일을 하다보면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게 된다. 닭이 늦게 나온다고 짜증이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천천히 하라고 하고 일이 힘들지 않냐고 격려해 주는 사람도 있다. 서비스 업이다 보니 친절이 가장 기본이기 때문에 어떤 손님이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다양한 유형의 손님들을 대하며 고객을 대하는 서비스적 마인드와 감정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치킨 집에서 일하며 인상 깊었던 점은 사장님의 경영마인드다. 손님들께 항상 친절하고 제품의 맛과 서비스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며 그러한 점은 본받을 만 하다고 느꼈다. 이번 학기에 조직행위론 이라는 경영학 수업을 듣는데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업에서 듣던 내용을 직접 응용해 볼 수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문자의 역할과 영향력- contents -Ⅰ. 서론Ⅱ. 본론1. 광고물에서 문자의 역할과 영향력(1) 광고란(2) 광고에서 문자의 역할1) TV광고① 동음이의어의 사용② 음운과 관련된 현상의 이용2) 신문광고①품사의 전환②비유적 문장의 이용③시각적 의미3) 인터넷광고(3)광고에서 문자의 영향력2. 인터넷에서 문자의 역할과 영향력(1)통신언어에서 문자의 역할(2)통신언어에서 문자의 영향력Ⅲ. 결론 및 고찰Ⅳ. 참고 문헌Ⅰ. 서론문자는 고대에서는?특정계층만이 가지는 특권이자 지배의 수단이었으며 전근대 사회에서도글을 배운다는 것은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현대에 이르러서 문자는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대중적인 것으로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문자가 없는 현대 생활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을 만큼 문자는 우리 생활에서 중요하다. 마치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물을 마시고 숨을 쉬 듯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수단 중 하나가?바로 문자이다. 책을 읽고 간판을 읽으며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는 등 현대 사회에서 문자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우리 조원들은 이렇듯 매일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사용하는?문자의 일상 속에서의 역할과 그 영향력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자 생활이라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다.그렇다면 우리의 생활과 가장 연관되는 것은 무엇일까?현대에 오면서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 체제는 우리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또한 광고는 우리의 소비생활과 유행, 화제 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인터넷에서의 문자생활의 유형과 특징, 광고에서 문자가 미치는 영향과 그 형태 등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다. 이제부터 현대사회에서의 문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Ⅱ. 본론1.광고에서 문자의 역할과 영향력(1) 광고란광고란, 불특정 다수에게 상품 또는 서비스의 존재, 특징, 편의성을 제시하고 설득하여 소비자의 욕구나 필요를 자체가 상품·서비스·이념·신조·정책 등을 세상에 알려 소기의 목적을 거두기 위해 투자하는 정보활동으로, 글·그림·음성 등 시청각 매체가 동원된다. 그래서 언어를 연구하는 것이 광고에 있어서도 중요한 기본이 되었다.(2) 광고에서 문자의 역할1) TV광고텔레비전 광고에서는 짧은 시간동안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신문광고나 다른 매체에 의한 광고에 비하여 문자의 사용이 비교적 적으나 제품의 특징이나 기업의 이름과 같은 포인트를 부각시키거나 주의사항을 표시하는 데에는 문자가 효과적이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사용되는 문자는 주로 음운과 관련된 현상을 이용한다거나 동음이의어를 사용하는 방법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①동음이의어의 사용아마도 이 방법은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말소리밖에 들을 수 없는 라디오 광고, 한 컷만으로 효과를 보아야 하는 포스터 광고 등 많은 분야에서 가장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 단어를 사용하여 광고의 참신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방법으로서 그 형태론적인 방법 중 가장 흔히 쓰이는 것은 동음이의어(homonyms)를 사용하는 경우다. 이 경우는 우리나라 광고가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같은 철자와 음이라도 한자로 풀이하면 다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최고(最古)에서 최고(最高)까지’라고 하는 광고에서 ‘최고’라는 단어는 같지만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가장 좋은 품질을 만들겠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한자의 예는 아니지만 한 광고에서는 폭력배들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맞고 할래? 그냥 할래?”라는 말을 하는 그림이 걸려있다. 이것은 인터넷 고스톱을 소개하는 것으로 ‘맞고’라는 용어가 동음이의어로 사용된다는 것을 사용하고 있다.②음운과 관련된 현상의 이용:음운과 관련한 현상을 이용함으로써 TV광고에서 신선한 언어 효과를 얻을 수가 있다.그 예로는 “걸리면 걸리니까 걸리버지예~”라고 하는 광고를 들 수 있겠다. ‘걸’자가 각 어절에 들어감으로써 박자감이 살아나는 효과를 얻고 사람들의 입에 친숙하고 따라하기 쉽게 만들어 졌기에 그 당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이때 큰 치아 화면상에 클로즈업 붓고 시리고 피나는...성우: 붓고 시리고 피나는 잇몸병엔 이가탄!김자옥: (고기를 뜯으며) 뜯으니까 너무 좋다흰 바탕에 다시 자막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삽입명인제약 이가탄2) 신문광고신문은 그림과 문자로만 이루어진 매체로 TV와는 달리 고정된 독자층이 있으며 반복하여 볼 수 있는 인쇄매체이므로 메시지를 읽는데 있어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리고 신문을 한번 펼쳐 보면 전체 지면에서 광고가 40∼5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신문광고는 대체로 광고제목, 광고문구, 그림(사진) 등 세 가지로 나누어지며 주로, 인상적인 헤드라인으로 시선을 끈 뒤 상세한 제품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선을 끌기 위해 큰 글자크기와 화려한 색, 글자를 꾸미거나 늘이거나 줄이기도 한다. 또한 문자의 내용에 맞는 그림을 삽입하기도 하며 각 단어가 가지는 품사를 전환(conversion of the word-classes), 각 문장을 이용하거나 비유적인 문장을 사용하여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①품사의 전환(conversion of the word-classes)원래 'Fuji'는 고유명사이지만 “YOU CAN FUDGI IT OR YOU CAN FUJI IT”이라는 광고에서는 그 단어를 동사화 하고 있다. 이런 예는 우리나라의 광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헹굼물이 맑아진 새로운 피죤-피죤했다” 여기에서 피죤은 고유명사이나 그 뜻이 ‘깨끗하게 헹구다’라는 뜻의 동사처럼 쓰였다.②비유적인 문장의 사용우선은 한 단어의 의미를 개념적으로 유사한 다른 단어의 의미로 전이시키는 기법인 은유형태가 있다. 그 사례로 '신호등 맥주'(하이트 맥주)를 들 수 있다. 신호등이란 원래 교통에 관련된 신호를 표시 해주는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광고 카피에서는 맥주의 맛이 가장 좋아지는 온도를 표시 해주는 라벨이라는 의미로 전이되었다. 이러한 은유적 카피는 '온도 표시 라벨이 부착되었다'라는 명시적 카피보다 훨씬 부드럽게 소비자 에컴퓨터가 없다!'(샤프전자 리얼딕)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전자수첩 광고 카피이다. 독자들은 이 말도 되지 않는 표현에 호기심을 느끼고 그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광고 내용에 주목하게 된다. 광고 내용 속의 설명을 본 후 독자들은 이 카피의 의미가 미국에 컴퓨터라는 물건이 없다 라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라는 영어 발음이 없다 즉 '컴퓨터'라는 한국식 발음을 미국식 발음으로 교정해주는 전자수첩 이다 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제품의 강점은 보다 강하게 전달된다.③시각적의미광고언어는 발음에 관한 음성적 요소뿐만 아니라 문자외형에 의한 시각적 요소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사는 문자의 사전적 의미보다는 외형에 의한 시각적 의미에 있다.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의 질식사를 막기 위하여 아이들의 머리가 위로 향하게 잠재우라는 영국의 한 공공 캠페인은 Back to the sleep이라는 메시지에서 B자를 옆으로 뉘여 표기하여 뒤로 잠자는 아이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3) 인터넷 광고인터넷 광고는 사람들이 잦은 사이트나 공간에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이용해 광고하는 방식으로 작은 공간에 제품의 특징이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문구를 움직이게 해 번뜩이게 하여 클릭하게 하면 광고 제품 관련 사이트로 저절로 연결이 된다.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 하므로 현란한 플래시 이미지와 애니메이션 효과로 핵심이 될 만한 문구를 부각 시킨다. 전광판 광고와 같이 동일한 문구를 다른 시각적 효과와 함께 반복해서 보여주므로 텔레비전 광고와는 달리 원하면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 또한 배너를 통해 연결 된 사이트로 가면 상세한 설명과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무분별한 사용으로 원하지 않는 배너로 인하여 소비자에게 불쾌감을 일으키는 부작용 또한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예) 내 특별한 친구 하봇! 하봇에게 아이템을 선물 해 주세요~신기하고 재미난 하봇 아이템 단돈 100원!(꼬마와 꽃 화분이 그려진 배너에 위의 문장들힘이지만 그 광고물이 제품 광고물일 경우 그 제품을 소비자로 하여금 공감을 얻게 하고 마침내 구매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제품의 특징과 기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문자의 힘이 크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광고는 치밀한 전략에 의해 표현된 그림과 문자의 완벽한 결합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럴 경우 그림과 함께 광고수용자의 시선을 해당 광고텍스트에 유도하여 관심을 일으키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헤드카피는 소비자의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제품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는 기능에서 볼 때, 어쩌면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된 광고의 언어성분이라고 할 수 있다.2. 인터넷에서 문자의 역할과 영향력21세기에 이르러 인터넷 보급률은 1000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인터넷상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누구나 사용하는 일상적인 생활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인터넷의 발달을 통해 등장하게 된 통신언어와 이모티콘 등은 인터넷을 통한 문자 생활에 있어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즉 서로 간에 컴퓨터를 이용한 채팅을 하거나 또는 개인 미디어, 메신저, 카페 등 컴퓨터를 통해 글을 쓰면서 통신 언어와 그 하위개념인 이모티콘이 발달하기 시작했다.(1) 통신언어에서 문자의 역할통신언어란 1990년대 이후 컴퓨터 통신이나 인터넷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온라인상에서는 네티즌들이 만들어 사용하는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 이렇게 컴퓨터 통신이나 인터넷과 같은 온라인상에서 통용되는 언어를 ‘통신 언어’, ‘채팅 언어’, ‘사이버 언어(사이버 은어)’, ‘인터넷 언어’ 등이라 한다.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인터넷상의 통신 언어’ 정도가 될 듯하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간결하게 ‘통신 언어(통신어)’라고 한다.이러한 통신언어는 문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특성은 읽기 쓰기의 기능보다는 듣기 말하기, 즉 대화의 영역으로 풀이된다. 인터넷에서 쓰이는 언어는 단순히 보여주기가 아니라 능동적인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통신언어가 가지는 한다.
1.서론2.본론(1)독도 바로 알기1)독도의 역사2)독도의 가치(2)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3)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1)일본이 독도를 노리는 이유2)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그에 대한 반박(4)독도문제의 해결방안1)정부적 차원의 대응 방안2)국제법적 차원의 대응 방안3)독도의 효율적인 이용3.결론1. 서론?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이 노래는 정광태씨가 부른?독도는 우리 땅?이다. 제목이 말하듯 독도의 중요성과 독도가 우리나라 땅임을 노래하고 있다. 이 노래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 독도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잘 나타내고 있다. 독도는 우리에게 있어 단순한 화산섬이 아니라 민족의 정기를 나타내는 일종의 상징물과도 같다.그런데 이러한 독도가 남의 나라의 섬이 되려고 하고 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며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 동안 국제적인 여론을 의식하고 한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독도문제'에 대한 공세적인 발언을 자제해온 일본 정부가 최근 들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망언을 하며 국제법상으로 독도문제를 쟁점화 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망언에 대해 우리나라는 '일본 정부의 그러한 공약과 지침은 일본 국내 무마용이라 하니 너무 과민하게 대응하지 말고, 침묵하는 것이 일본을 자극하지 않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소극적인 자세로 대처해 왔다. 하지만 이제 일본이 독도문제를 적극적으로 쟁점화 시키고 있는 만큼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대응이 필요하다.사실 일본이 독도를 노리고 있었던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일본은 독도를 자신들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수십 년 전부터 증거가 될만한 자료를 모으는 등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 그에 비해 우리의 대처는 어떠했는가? 일본의 도발이 일시적인 행동으로 끝날 것이라는 아닐한 생각을 하며 독도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소홀해 왔다.우리는 독도가 당연히 우리 땅이겠거니 하며 일본의 도발에 코웃무성에서 만든 결정서, 1876년 일본 해군성이 작성한 , 1905년 동경박물관에서 펴낸 , 1936년 일본육군참모본부에서 나온 등의 자료 등에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밝혔다. 기인 1899년(광무 3년)에 당시 중등과정 신식교육기관에서 활용됐던 제 1권에 삽입 돼 있는 지도 대한전도에는 울릉도 옆에 `于山`이라는 표기와 함께 섬이 그려져 있으며 좌 측 상단에는 `光武 3년 12월 15일 學部 편집국 刊`이라는 표시가 선명히 적혀져 있다.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독도를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도서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편입했다.2)독도의 가치울릉도에서 뱃길로 3시간 여 소요되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산 42~75번지'라는 행정구역을 가진 독도. 해발 98m의 동도와 해발 168m의 서도라는 두 개의 주요 섬과 주변의 가제바위, 지네바위, 구멍바위, 미륵바위 등 각각의 생김새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36개의 암초로 구성된 독도. 250만년 이상 전에 울릉도, 제주도 보다 먼저 형성된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적이라는 독도.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된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의 번식지 등 다양한 그들만의 아름다운 생태계가 형성된 독도.도대체 가로세로 400m의 이 조그마한 땅덩이에 무엇이 있길래, 한국과 일본은 이리도 오랜 세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영유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가?㉮ 독도의 일반적인 경제적 가치독도주변 해역은 황금어장이다. 독도주변해역이 풍성한 황금어장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한한류와 남쪽에서 북상하는 대마난류계의 흐름들이 교차하는 해역인 독도주변해역은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회유성 어족이 풍부 하기 때문에 좋은 어장을 형성한다.어민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는 회유성 어족인 연어, 송어, 대구를 비롯해 명태, 꽁치, 오징어, 상어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오징어잡이 철인 겨울이면 오징어 집어등의 맑은 불빛이 독도 주더 이상의 작은 바위섬이 아니고, 높이 2천여m의 거대한 산의 꼭대기라고 한다.지질학적으로 보면 독도는 동해의 해저로부터 해저의 지각활동에 의해 불쑥 솟구친 용암이 오랜 세월동안 굳어지면서 생긴 화산성 해산이다. 이러한 독도는 원래 동도,서도가 한덩리인 화산섬이었다. 몇십만년의 세월이 흐르며 바닷물에 의해 침식작용 과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을 거듭하며 원래 부드러운 성질의 돌이 천천이 깍여 들어갔다.(파랑에 의한 해식작용) 이러한 해식작용의 결과로 칼로 깍은 듯 날카롭고 가파른 해식애(sea cliff)들이 만들어졌으며, 한편에서는 서도의 북 쪽과 서쪽 해안처럼 파식대지(wave-cut platform: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바닷가 해저의 평탄면)이 형성되었다.이러한 지질구조를 갖는 독도는 지질학적으로 큰 중요성을 갖고 있다. 독도는 해저 밑바닥에서 형성된 벼개용 암과 급격한 냉각으로 깨어진 부스러기인 파쇄각력암이 쌓여 올라오다가 해수면 근처에서 폭발적인 분출을 일으켜 물위로 솟다가 대기와 접촉할 때 생기는 암석인 조면암, 안산암, 관입암 등으로 구성된 '암석학의 보고'라고 한다.해저산이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드문 예이며, 또한 오랜 세월 동안 파식 및 침강작용에 의해 원래 의 모양을 간직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독도는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적이라고 한다.㉱지하자원의 가치1997년 기준 우리의 원유소비량은 전세계 6위이며, 원유 수입량은 세계 4위이며, 에너지의 해외 의존도는 97.8%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는 1970년부터 30만㎢에 달하는 대륙붕에 7개의 광구를 설정하여 해저탐사를 벌여왔으며, 실제 89년과 93년에는 비록 경제성이 미흡했지만 동해중심해역에서 가스층이 발견되었으며, 최근 98년 7월 27일에는 울산 남동쪽 50km 해상의 대륙붕에서 이전의 것과 비교 안되게 뛰어난 천연가스인 ‘하이드레이트’가 발견되었다. '하이드레이트'란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가 얼음처럼 고체화된 상태로서, 기존 천연가스의 여 고시했을 뿐이다. 이후 일제가 한반도를 식민지로 강점했으나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1895년 이래 침략전쟁이나 약취한 영토는 모두 원주민에게 반환토록 한 각종 선언과 문서에 의거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부지령(SCAPIN) 제 677호를 통해 독도를 일본에서 영구히 제외하고 한국에 반환하였다. 이어 SCAPIN 제 1033호는 일본 어부들이 독도와 그 영해 근접수역 12마일 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이나 국제법상의 지위로 보더라도 독도가 우리 땅임은 명백하다.(3)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1)일본이 독도를 노리는 이유과거 일본은 러시아에 대응하는 경제수역을 선포(1977년)할 때에도 한국, 중국과의 마찰이 예상되는 지역은 대상 수역에서 제외하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따라서, 1996년 2월 이후에 보여 준 일본의 강력한 망언은 일본 내부의 정치 상황과도 관련이 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그 동안 국제적인 여론을 의식하고 한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위해 '독도문제'에 대한 공세적인 발언을 자제해온 일본 정부가 갑작스런 태도의 변화를 보인 것은 우일 성향이 강한 하시모토 류타로정권의 출범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찍이 일본 전몰자 유족회 회장까지 지낸 바 있는 하시모토가 일본 총리에 선출되었을 때. 우리 나라에서는 앞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가 껄끄러워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다.이러한 우려가 '독도문제'를 계기로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일부러 일으키고 있는데에는 크게 네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첫째, 장기적인 전략에 바탕을 둔 외교적 대처법으로 생각할 수 있다.우리 나라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한, 지금 당장은 독도를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틈나는 대로 문제를 제기해 놓음으로써 외교적인 기록을 남겨 두자는 속셈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도가 한?일간의 영유권 분쟁 지역이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확산시키고 나중에 언젠가 국제 정세가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날이 오직자를 파견하여 통치권을 행사하였음은 그 단적인 증거로서 실효적 지배가 결코 방기, 단절된 적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여 준다.● 1905년 정식 영토편입조처로서 원시적 권원을 확정적 권원으로 대체하였다는 것이다.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 의사를 표명한 최초의 행위는 1905년의 시마네현 고시로서, 일본은 이 편입조처를 실정 국제법이 요청하는 권원으로 대체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그러나 국제법은 고유의 영토를 국제법의 변천에 따라 계속 확인하도록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뿐만아니라 일본은 독도 이외의 다른 영토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한 예가 전혀 없다.● 1905년 일본내각의 결정과 시마네현 고시로서 독도를 일본영토에 정식 편입하였고 이 조처는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로서 이미 사실상 존재하던 원시적 권원을 실정 국제법이 요청하는 정식권원으로 대체하기 위한 법률행위였다고 한다.일본인들이 울릉도에서의 불법 도벌이 늘어나자 이에 대한제국 정부는 1900년 10월 25일자 칙령 제 41호로써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한 건"을 반포하고 관보에 게재한 후 울릉도에 대한 총제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 칙령 제41호 제2조에 울도군의 구역이 울릉전도와 죽도(독도) 까지 관할하는 것으로 명시하여 독도에 대한 관할권을 근대 법 상의 행정 조치로 확인하게 된다. 이것만 보더라도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한 시마네현 고시보다 최소한 5년전에 독도는 분명히 한국의 영토였고, 일본의 고유영토도 무주지도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06년 4월 울도군수 심흥택의 '본군 소속 독도가 외양 백여리 밖에 있는데...'라는 보고에서도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이며, 울릉군에 소속된 관할 구역이었음이 확인된다.● 그들은 무주지, 즉 주인 없는 섬인 독도를 선점하였다고 주장한다. 선점이라는 것은, 즉 주인 없는 땅을 먼저 발견하여 소유한 국가가 그 영토의 주인이 된다는 논리이다. 1905년 독도를 편입하였다는 일본의 '편입설'에 따른 내용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른 일본의 주장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