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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현대 중국의 서양문화 수용양상과 유교 지식인들의 대응 양상 평가B괜찮아요
    유교문화와 자본주의 – 김 예호 교수님(2010년 10월 작성)서론19세기 중반 1,2차 아편전쟁의 패배와 이로 인한 민중의 무장 봉기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중국 봉건 제도의 한계와 취약성을 명확히 드러내었다. 중국인들은 반봉건제도와 민주화로의 발전을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다양한 관점에서 서양 문화와 사상들을 받아들였고, 이러한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 문화 수용 양상은 중국의 전통 문화이자 핵심 사상이었던 유교에 대한 태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근 현대 중국이 서양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당시 지식인들의 유교에 대한 대응 양태의 변천과정을 살펴보고, 그 다음 현 중국 정부의 유학에 대한 입장을 알아본 다음 마지막으로, 앞으로 중국 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 순으로 논의해보기로 한다.본론1) 유학의 기본사상유교 문화는 고대 중국의 공자에 의해 창시된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공자는 도덕과 정치의 합일을 강조했으며 이러한 정치와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중민주의, 역성혁명, 민족주의, 천인합일과 같은 대표적인 특징들이 중국 정치이념에 뿌리를 깊게 내렸다. 유학에는 민족정신, 강건불위, 자강불식, 인문주의, 화해 정신과 같은 긍정적인 면 외에도 가부장적이고 친족,혈연 중심, 폐쇄적 자기방어와 피동적인 면들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중국의 전통문화와 유교문화를 동일선 상에서 놓고 보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시각이다.2) 양무운동그러나 이러한 유학사상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840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촉발된 변혁의 움직임들이 향후 1세기가 넘는 근대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2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의 패배와 태평천국 난에 의해 전통적인 봉건 왕조 지배체제에 첫 위협이 부각되었다. 이는 양무운동을 발생시켰다. 서양의 장점을 배워 서양 오랑캐를 견제한다는 중체서용론이 등장했지만, 전반적인 근대화가 아닌 단순한 서양식 군대 편성의 한계에 머물렀고 무엇보다 봉건 관료들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실패할 로의 개편을 요구하는 변법자강운동을 펼쳤다. 공자개재고를 통해 유학을 개혁의 논거로 삼았으나, 중학과 서학의 근본적인 차이를 분명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이들 역시 관료였기 때문에, 봉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왜 자본주의에 근거한 제국주의 침탈이 일어났는지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사상적 접근만 시도하였다. 즉, 서양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제도를 개편하면 침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기에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기는 실패했던 것이다. 이 당시 2가지 주요 사상으로는 강유위의 대동사상과 쑨원의 삼민주의를 들 수 있다. 대동사상은 거란, 승평, 태평의 세 3단계로 나뉘어지며, 공상적 사회주의에 머물렀고, 삼민주의는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를 합하여 부르는 것으로서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이었지만 당시에는 민족주의의 한계에 머물렀다. 또한 엄복의 ‘천연론’, ‘사회진화론’ 등 다양한 서양 철학사상 도입의 노력이 보이기도 했다.4) 신해혁명과 5.4 신문화 운동신해혁명 이후 봉건제도가 무너지면서 보다 급진적인 서양 사상들이 도입되었다. 이 당시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 등이 소개 되어 맑스 주의 전파의 서막을 알렸으며, 무엇보다 타도공가점이 확산되면서, 중국전통과 유학에 대한 보다 강렬한 부정을 요구하는 급진변혁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진독수는 유학에 기반한 ‘낡은 공동체주의’에 철저한 비판을 제기하며, 유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였다. 이는 전통을 뿌리 째 뜯어 고쳐 근대 국가를 재편하려는 의도였다.신문화 운동은 ‘낡은 공동체주의’를 문제 삼았지만, 해방 이후 다시 집단적 도덕 이상주의를 형성함으로써 오히려 중국 사회주의가 집단적-유토피아적 경향을 띠게 되는 사상적 토대를 만들게 된다.5) 현대 신유가학파당시 중국 전통에 대한 비판에 반발하여 양계초, 양수명, 장군매들은 전통의 우월함을 강조하며 계승을 주장하였다. 1915년 동서문화 논쟁, 1923년 “과현 논쟁”을 통해 이른바 오늘 날의 신유가 학파가 형성되었다.이들은 초기에는 국가사회주의적 경제 되면서 대부분의 현대 신유가들은 대만과 홍콩을 비롯 전세계 각국으로 흩어지게 된다. 그들은 유교자본주의 경제관을 공유하였으며, 막스베버의 이론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하여 유가윤리가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으며 그들의 논리적 근거는 바로 아시아적 가치와 유교 자본주의에 의한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뤄낸 싱가포르, 대만, 홍콩, 한국이다.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고도 불리는 이 4국가(지역)은 유교의 집단 공동체의식과 근면성실과 같은 긍정적인 면들을 통한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뤄냈으며, 이들의 성공 원인을 정리한 것이 바로 아시아적 가치이다. (그러나 현재 아시아적 가치는 1997년 IMF 위기 이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6) 중국의 현 사회주의 사상과 입장중국은 개인보다는 인민의 자유를 강조하며, 인민, 즉 단체의 자유에 기반한 정치 체제를 시작했다. 대중의 민권(people’s right)라는 것은 국가에 책임을 지는 국민이 되기 위한 권리라며 강한 국가에 종속과 평등 사상을 퍼뜨렸으며, 문화대혁명을 통해 유교에 대한 다시한번 철저한 부정과 탄압이 가해졌다. 이후 중국은 1978년 등소평이 복권하면서 전면적 경제 개방을 가속화하며 생산력 향상에 초점을 맞춘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발동하였다.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 현대화를 위한 이념적 기반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유학에 대한 비판적 계승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고, 이에 대한 연구, 분석에 전면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다양한 문화사상 담론을 장려하면서 이른바 문화열이라는 열띤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여기서 4가지 주요사상이 등장하였는데 이는 유학부흥론, 비판계승론, 서체중용론, 철저재건론 등이다. (신유가 보수전통, 사회주의 민족주의, 봉건비판 서약과학기술, 시스템 완전개혁, 전반서화파)중국은 철저한 사회공산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생산수단 공유, 무산계급 독재, 공산당 영도, 맑스주의와 모택동 사상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그러나 사회주의 초급 단계에서 시장 경제와 현대화로 나아가는 붕괴가능성, 사회적 양극화 현상과 같은 문제점들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이는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 사태를 발발시켰다. 아이러니하게, 이 당시 중국 정부는 과거 철저하게 비판했던 ‘낡은 공동체주의’ 즉 민족문화와 가족주의 사상을 호소하며 다스리는 태도를 보였고 결국 그들이 여전히 유교의 부정적인 면들을 정권 유지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7) 현대 중국에서 유학의 위치따라서 현재 중국은 공산당의 영도적 지위 유지를 위해 유학에 비판적 계승의 입장을 보였지만 사회주의는 포기 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인’ 면을 갖고 있는 아시아적 가치에 기반한 유교 자본주의를 정치 이념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중국정부는 유교를 현실 문제를 무마시키려는 수단으로 사용하며 화교와의 매개체로 사용할 뿐이다. 지배질서 유지를 위한 보수적 이념 가운데 하나로 활용 될 가능성이 높다. 유교의 가부장제 및 계급사회, 특히 민족애국주의 정신을 강조하는 부분은 정치적 수단이 농후해 보인다.결론결국, 중국 정부의 근대화 노선은 곧 아시아적 가치에 기반한 유교 자본주의임을 확인했다.그러나 중국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않고 당의 통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인 수단으로서 유교의 “낡은 공동체주의”를 받아들인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중국의 개혁개방이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오늘 날 중국이 다뤄야 할 문제점들은 바로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빈부격차와 공산당의 부정부패와 같은 문제이지, 정치수단의 유지에 대한 방법론 논의가 아니다. 이러한 빈곤 계층의 인권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민주주의 문제를 무시한 중국의 근대화 방안은 “중국 특색적인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데 장애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과거로 미뤄봤을 때, 국가 주도에 의한 근대화는 집단적 발전을 통해 절대 빈곤을 해결하였지만 동시에 인권 억압의 역사를 초래했다. 이러한 생산력 및 효율 위주의 근대화 방식은 낡은 공동체 정신과 수직적 구조의 성격을 드러내며, 한국과 같은 효율 위주의 성장이었기에 IMF를 전후하여 각종 기업의 비리와 분식회계 등 부정 사건이 발발하였고 이는 1997년 당시 한국의 경제를 더욱 심각한 위기에 몰아 넣었다.그렇다면 중국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의 근대화를 이뤄야 할까?무엇보다 유교 전통문화와 서구 문화에 대해 이분법적인 접근이 아닌 변증법적 분석태도를 갖고 접근을 해야 한다. 중국 본토의 정부와 대다수 지식인들의 입장은 전통문화의 비판적 계승과 외래문화의 선별적 수용이다. 즉, 현실에 발을 딛고 전통을 진화시켜야 하며,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의 현대화를 위해서는 유학과 현시대의 발전이 충돌하는 부분에서 비판적 수용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유학의 몇 가지 특징, 이익경시와 의리중시문화, 단체와 집단중시문화, 인치문화 등은 확실히 오늘 날의 사회에 맞지 않다.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법치를 통한 엄격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시대이지만, 무엇보다 근대화 과정에서 봉건제도와의 투쟁을 통해 얻어낸 인간의 자율성 부분을 어떻게 중국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도덕과 윤리의 맥락 속에서 받아들여 소화해 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부정적인 부분이 많을 지라도, 현재 중국이 유교적 문화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따라서, 중국은 ‘도덕적’ 실용주의의 시각에서 오히려 담대하게 서양의 문화를 수용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교와 서양의 비판적 수용, 사회주의의 발전, 현대성 고민 등을 통해 효과적인 근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인권문제를 무시하면 안되며, 동시에 근본적인 사회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는 노력들을 취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근대성을 위한 유교전통문화의 수용 입장이 단순히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을 만들고 민중의 비판을 무마시키기 위한 정치적 수단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참고문헌조경란(2003), 중국 근현대 사상의 탐색, 삼인조시원(1990), 중국근대사, 청년사조훈(1999), 각
    인문/어학| 2010.10.20| 4페이지| 1,000원| 조회(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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