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경정신분석학의 대부이자 시조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20세기의 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강박행동과 종교행위"를 통해 이미 그가 종교에 대해 남다른 견해와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논문을 통해서 프로이드는 종교적 의식이나 행동이 하나의 신경정신증과 유사하다고 해석하는 등, 종교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 저서인 "환상의 미래"는 그의 종교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에 한층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환상의 미래"에서 프로이드는 '신이라는 것은 종교인들이 이야기하는 실재하는 초월적 존재도 아니며 이성의 최종 결과로 나온 산물도 아닌, 가장 오래되고 간절한 인류의 소원이 실현된 환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종교는 자연의 위력과 죽음의 문제로부터 야기되는 고통과 불안을 해결해준다는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견해를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인간의 삶을 동물의 삶과 구분하여 주는 문명이라는 것은 일정 수준의 강제가 있어야만 문명적 제도가 유지될 수 있다. 본능을 자제하고 열심히 일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모든 문명의 존립 기반이며 따라서 이런 요구를 받는 사람들의 저항을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킨다. 문명은 박탈을 초래한 금지를 통해 동물적 상태에서 분리되는데, 이러한 박탈 작용 아래서 시련을 겪는 본능적 원망은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그 아이와 함께 다시 태어난다. 이 본능적 원망에는 근친상간, 식인, 살인에 대한 욕망이 포함된다. 살인이나 근친상간 따위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문명인들도 탐욕이나 공격 본능이나 정욕을 충족시키는 짓을 꺼리지 않으며, 처벌만 피할 수 있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거짓말이나 사기나 중상모략으로 남을 헤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외부의 압력을 받아야만 외부의 강제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고 사람들이 그것을 두려워하는 경우에만 문화적 금지에 복종한다. 종교적 관념 역시, 문명의 다른 성취들과 똑같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자연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할 필요에서 생겨났다. 우리가 어린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도 아버지가 우리를 위험에서 지켜 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 종교에서는 인간의 무력함과 신에 대한 동경과 유사하다. 신은 자연의 공포를 제거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에서 나타나는 신의 잔인함을 감수하게 하고, 문명 생활이 강요하는 고통과 박탈을 보상해 준다. 자비로운 신의 섭리는 우리를 일일이 보살펴 주며, 겉으로만 엄격해 보일 뿐, 실제로는 우리가 강력하고 무자비한 자연력의 장남감이 되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죽음은 생명이 없는 무기물 상태로 돌아가는 소멸이 아니라, 더 고귀한 존재로 발전하는 과정에 놓여 있는 새로운 존재의 시작이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적 관념들도 문명의 다른 성취들과 똑같은 필요, 즉 압도적으로 우월한 자연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할 필요에서 생겨났다. 이러한 종교적 관념들은 이미 만들어진 상태로 개인에게 주어졌다. 즉 개인이 문명 속에서 종교적 관념들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다.종교 형성에 관한 정신분석적 동기는 의식에 나타난 동기를 형성하는 유아기의 원인과 같다. 아이는 아버지를 동경하고 존경하는 만큼 아버지를 두려워한다. 아버지 자체가 아이에게는 위험을 내포하는 존재이다. 종교도 인간이 성장하면서 자신이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을 운명이며 미지의 우월한 힘으로부터 보호받지 않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라는 인격의 속성을 그 힘에 부여한다. 그는 스스로 신을 만들고, 그 신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의 보호자 역할을 그 신에게 맡긴다.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동경은 인간이 나약함 때문에 일어나는 결과로부터 신에게 보호받고자 하는 욕구와 똑같은 동기다. 어른은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종교를 형성하게 되는데, 유아기의 무력함에 대한 자기 방어의 자세가 종교 형성이라는 어른의 반응에 독특한 성격을 부여한다.종교적 관념들은 외적 현실의 사실과 상황들에 대한 가르침과 주장들이며, 우리가 혼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말해주고 그것을 믿으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그 근거의 진실성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심리학적 문제이다. 종교적 관념들은 경험의 침전물도 아니고 사색의 최종 결과물도 아니다. 그것들은 환상이며,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하고 절박한 원망의 실현이다. 어떤 믿음을 갖게 된 주요 동기가 원망의 실현일 때 그 믿음을 우리는 환상이라고 부른다. 종교적 교리 역시 구세주가 와서 황금시대를 열리라는 것처럼 입증할 수 없는 환상의 일종인 것이다.이러한 종교가 인류 문명에 크게 공헌한 것은 분명하나 종교는 수천 년 동안 인류 사회를 지배해 왔기 때문에, 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가 충분하지 못하다. 종교가 일류의 대다수를 행복하게 하고, 위로해 주고, 삶과 조화를 이루게 하고, 문명의 수단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문명에 불만을 품고 있고, 문명 속에서 불행을 느끼고 있으며, 문명을 벗어 던져야 할 멍에로 여기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죄를 짓고 그러면 제물을 바치거나 고해 성사를 하여 속죄하고, 그러면 다시 마음대로 죄를 지음으로써 죄는 근본적으로 신을 즐겁게 해드린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따라서 오직 신만이 강하고 선하며, 인간은 약하고 죄 많은 존재라는 데에 모든 사람의 의견이 일치 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종교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사람들에게 행사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종교가 약속하는 것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약속들을 과거만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원인은 과학 정신이 높아진 데 있다. 지식의 보물 창고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많아질수록 종교적 믿음에서 멀어지는 현상은 더욱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문명에 대해 적의를 품고 있는 교육받지 못하고 억압당하는 대중의 경우는 문명과 종교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고쳐야만 그들에게도 과학적 사고가 사람들 마음에 일으키는 변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명의 모든 제도와 명령은 순전히 인간이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이롭다. 사람들은 그런 명령과 법률이 그들을 다스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거기에 좀 더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게 될 테고, 명령과 법률을 폐지하려고 애쓰는 대신 개선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문명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부담을 감수하는 방향으로 내딛는 하나의 중요한 진보일 것이다.어린아이는 신경증 단계를 반드시 거처야 만이 문명적 단계로의 발달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 인류 전체도 오랜 세월동안 발달해 오는 과정에서 신경증과 비슷한 상태에 빠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린아이의 강박신경증과 마찬가지로, 종교는 오이디프스 콤플렉스, 즉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생겨났다. 성장과정이 불가피한 운명인 것처럼, 인류가 종교를 떠나는 것도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명한 교육자의 태도를 본받아 닥쳐오는 새로운 발전에 저항하지 말고, 그 발전이 갑작스럽고 격렬하게 이루어지는 대신 서서히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이것을 현실에 대한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인간은 자신의 능력에만 의지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능력을 적절히 활용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과학적 지식은 노아의 홍수 시대부터 인간에게 많을 것을 가르쳤고, 앞으로도 인간의 힘을 더 한층 강화해 줄 것이다. 인간은 운명의 여신 앞에서는 무력하지만, 그래도 운명을 감수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다른 세상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해방된 에너지를 이 세상의 삶에 쏟음으로써, 모든 사람이 견딜 만한 삶과 더 이상 아무도 억압하지 않는 문명을 이룩하는 데 성공할 것이다.이처럼 지성은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삶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목표로 설정할 것이다. 어떤 것도 결국에는 이성과 경험에 저항 할 수 없으며, 종교가 이성이나 경험과 모순된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순화된 종교적 관념이라 해도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종교의 속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한 이 운명을 면할 수 는 없다. 특성을 명확히 설명할 수도 없고 목적도 분명히 이해할 수 없는 뛰어난 영적 존재를 믿는 것에만 종교적 관념들이 한정된다면, 분명 과학의 도전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종교적 관념들은 인간의 관심도 잃게 될 것이다. 종교적 교리의 부담에서 해방되더라도 교육은 인간의 심리적 본성에 그리 많은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