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1940년대 항전기 문학)은, 전쟁 시국의 변화에 따라 기존의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통일되어 있던 문학공간이 무너지면서 전국이 국통구?? ? 해방구 ? 윤함구라고 하는 상이한 담론공간으로 분열되었다. 그리고 각 담론공간의 정치적 구조와 지역적 특색 및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문학논쟁이 전개되고, 새로운 문학이론의 틀이 모색되었다.1940년대 초의 해방구는 군사적 ? 경제적 면에서 극심한 곤경에 처해 있었으며,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공산당은 정풍운동(整風運動)을 통해 물질적 곤란을 극복하고 공산당을 사상적 ? 조직적으로 강화하고자 하였다.)이 때 모택동(毛澤東)은 ‘민족형식을 통한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라는 명제를 제시하고, 중국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보편적 진리’라는 이론을 구체적인 중국의 역사적 조건에 적용하는 등 독립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서의 위치를 확립했다.)또한 이시기가 모택동(毛澤東)의 문예이론의 가장 중요한 시기로써 1942년 5월 연안 문예 좌담회(在延安文藝座談會)에서 발표한「문예강화(文藝講話)」는 모택동(毛澤東) 문예이론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그럼 지금부터「문예강화(文藝講話)」를 중심으로 모택동(毛澤東)의 문예이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2. 모택동(毛澤東)의「문예강화(文藝講話)」「문예강화(文藝講話)」는 1942년 5월 급변하는 혁명정세 속에서 혁명 근거지의 중심인 연안(延安)에서 정풍운동(整風運動)의 일환으로 열린 좌담회에서 모택동(毛澤東)이 행한 연설이다.「문예강화(文藝講話)」는 혁명문예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역사적인 문헌으로서 줄곧 중국공산당의 문예정책의 경전이 되었다.)내용은 1942년 5월2일의 문예 활동가의 태도, 활동대상, 활동, 학습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서론부분)과 23일의 문제의 중심을 무엇이 ‘군중을 위한(爲群衆)’ 것이며 ‘어떻게 군중을 위할(如何爲群衆)’것인가, 문예계의 통일전선, 문예비평의 기준, 정풍운동(整風運動)의 필요성에 관한 관점과 실천 방안을 제기한 결론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연안 문예 좌담회(在延安文藝座談會)가 개최된 지 1년 5개월여 만인 1943년 10월 19일자「해방일보(解放日報)」에 그 내용이 실렸으며 같은 해 11월 16일에 당중앙 선전부는 「당의 문예정책집행의 결정에 관하여(關于執行黨的文藝政策的決定)」라는 포고문을 통해 강화(講話)를 ‘현단계 중국문예운동에 대한 기본방침으로 규정’함을 발표했다.)1) 정풍운동(整風運動)「문예강화(文藝講話)」는 먼저 연안(延安) 문예계의 정풍운동(整風運動)을 지도한다.정풍운동(整風運動)은 잘못 조성된 당의 기풍, 학풍, 문풍을 정돈하는 작업으로 공산당은 1942년 연안(延安)으로 엄청난 피난민이 흘러 들어오면서 일본군과 국민당 군대의 압력이 가중되는 전환기를 맞자 조직개편과 규율강화를 위해 정풍운동을 벌인다.모택동(毛澤東)은 정풍(整風)을 “사상작풍(思想作風)과 공작작풍(工作作風)을 정돈하는 것”이며, “전당(全黨)의 비판과 자기비판을 통하여 마르크스 주의를 배우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1942년 연안(延安)을 중심으로 처음 전개된 이후 1948·1950·1957년 대규모의 정풍운동(整風運動)이 벌어졌다.)1941년에서 1942년 사이, 모택동(毛澤東)은「우리의 학습을 개조하자(造我們學習)」,「당의 작풍을 정돈함(整頓黨的作風)」,「당팔고에 반대함(反對黨八股)」등 세 편의 강연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정풍운동(整風運動)의 지도적 문건이 된다.이어서 발표된「문예강화(文藝講話)」는 사상 면에서 상술한 글들과 논지가 일맥상통한다.)2) 반영론 문예관모택동(毛澤東)의 문예관은 반영론적 문예관이다.그는 사회 존재가 사회 의식을 결정한다는 유물사관의 기본 원리에서 출발하여 "관념 형태인 문예 작품은 특정한 사회 생활이 인간의 머리 속에서 반영된 산물이다. 혁명적 문예는 인민 생활이 혁명 작가의 뇌 속에서 반영된 산물이다."는 의견을 명시했다. 바로 이러한 원리의 기초 위에서 인민의 생활은 모든 문학 예술의 마르지 않는 유일한 원천이니, 다른 예술의 원천이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책 속의 지식이나 이론, 과거 문예 작품 등은 단지 흘러가는 지류일 뿐 원천은 아니라고 했다. 인민의 생활이 문학 예술의 유일한 원천이라면, 작가는 생활에 익숙해야만 창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택동(毛澤東)은 과거 혁명 문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실제적 감정의 중요성을 등한시했던 편파성을 교정하여, ‘생활에 익숙한가’ 하는 문제를 문예를 창작하는데 필요한 하나의 원칙으로까지 제기했다.또한 모택동(毛澤東)은 줄곧 교조주의를 반대했다. 또한 섬북(陝北)에 도착해서는「실천론(實踐論)」)과 「모순론(矛盾論)」)을 지어 실천과 체득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모순의 특수성을 연구하자고 주장하여 비판의 창 끝을 직접 교조주의에 겨누었다. 1940년에 쓴 「신민주주의론(新民主主義論)」)은 정치면에서 중국의 출로를 제시했을 뿐 아니라, 문화 사상 면에서도 5?4 이래의 역사 경험을 총괄하여 노신(魯迅)의 방향을 중화민족이 추구해야 할 신문화의 방향으로 확립했다.)3) 노?농?병(勞農兵) 문예의 방향모택동(毛澤東)은 혁명 문예는 인민 대중을 위한 문예이어야 하고,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인민은 노동자, 농민, 병사 및 도시 소자산 계급이므로 혁명 문예란 최우선적으로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문예의 노?농?병(勞農兵) 방향이라고 지적했다.더욱이 그는「문예강화(文藝講話)」에서 일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소자산 계급의 자아 표현의 창작물로 인식하여 제대로 노?농?병(勞農兵) 군중을 표현해내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혁명 근거지의 작가들에게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세계를 표현하도록 호소했다. 이 호소 아래 작가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제재를 버리고 노?농?병(勞農兵)의 투쟁 생활을 표현하느라 노력했다. 이는 제재 면에서 일대 혁신이었다.또한 노?농?병(勞農兵)을 위해 봉사하는 문예는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모택동(毛澤東)은 그것을 보급과 제고의 관계로 귀결시켰다. 그는 양자의 관계를 “보급의 기초 위에서 제고시키고, 제고의 지도 아래 보급시킨다”는 변증법적인 말로 개괄했다. 나중에 그는 또「신민주주의론(新民主主義論)」에서 ‘민족적, 과학적, 대중적 문화’의 방향을 제시했다.따라서 민족화와 대중화는 해방구 문예의 중요한 특색이 되었다.)3. 결론지금까지 모택동(毛澤東)의「문예강화(文藝講話)」를 중심으로 그의 문예이론에 대해 살펴보았다.모택동(毛澤東)은 먼저 경제 기초와 상부 구조 관계라는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칙, 그리고 정치는 경제에 집중 표현된다는 레닌의 관점에 근거하여 경제와 정치, 문화 삼자의 관계를 정리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그의 문예는 노?농?병(勞農兵) 군중을 표현해야 한다고 제창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예가 그들 이외의 다른 사회 생활을 묘사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모택동(毛澤東)은 “지식인을 대대적으로 흡수할 것”을 지시하며 지식인을 경시하지도 않았다. 또한 “우리는 관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객관적 실천에서 출발한다”는 모택동(毛澤東)의 말처럼 외국의 이론을 배우는 것에도 반대하지 않았다.결국「문예강화(文藝講話)」는 항전기 해방구라는 군사적?경제적 위기 상황 속에서 항일전에서 승리하고 사회주의적 국민국가를 건립하기 위해 민중적 역량을 동원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예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이론이란 무엇인가? 이론이란 실천 경험의 총 결산이다. 모택동(毛澤東)은 혁명실천과 문예실천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예이론을 제기했는데, 앞으로는 이 문예이론을 발전시키고 실제 문제에 대한 연구를 더욱 강화해야 하겠다.*참고문헌-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 , 동녘, 2006- 김시준, , 지식산업사, 1992- 오중걸, , 신아사, 2001- 모리스 마이스너, , 이산, 2004- 조나서 스펜서, , 이산, 2002- 모택동, , 범우사, 1991- 모택동, , 범우사, 1994*참고논문- 이충양, , 한 양대학교중소연구소, 1982- 백원담, , 중국어 문학연구회, 1999*참고사이트-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137145) 1940년대 항전기 문학이란, 일반적으로 항일전쟁 및 그에 뒤이은 국공내전 시기(1937~1947) 문학을 가리킨다. -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 , 동녘, 2006, 63쪽)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 , 동녘, 2006, 64쪽 68쪽) 모리스 마이스너, , 이산, 2004, 83쪽) 이충양, , 한양대학교중소연구소, 1982, 195쪽) 1)인민을 단결?교육시키고 적을 타도하고 소멸할 유력한 무기가 되고 인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적과 투쟁하도록 돕는 것이 당면문예의 목적이므로 무산계급과 인민대중의 입장에 설 것, 2)적, 통일전선 중의 동맹자, 인민대중 등 세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 각각 ‘폭로’와 ‘비판과 찬양’ ‘찬양’이라는 세 가지 태도를 취할 것, 3)상해의 골방과 해방구의 차이라는 문예활동조건의 차이를 인식하고 문예사업의 대상을 노동자, 농민, 병사, 혁명 간부로 삼을 것, 4)공작과 학습문제에 있어서는 문예공작자들이 사람과 언어를 모른다는 것을 지적하며 대중화란 문예공작자의 사상 감정과 노?농?병(勞農兵) 대중의 사상 감정이 하나가 되는 것임을 지적하고 군중의 언어를 학습할 것을 요구한다. - 백원담, , 중국어 문학연구회, 1999, 3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