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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건축사]아잔타의 건축적분석
    목 차Ⅰ머리말Ⅱ차이트야를 위주로 한 아잔타 석굴 분석1.초기 차이트야1)제9굴2)제10굴2.후기 차이트야1)제19굴2)제26굴Ⅲ 아잔타 석굴 사원의 비하라1.초기 비하라2.후기 비하라Ⅳ 맺음말Ⅰ 머리말아잔타 석굴은 마하라슈트라 주의 아우랑가바드 에서 북쪽으로 104km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마을에 있다. 마하라슈트라 주 아우랑가바드에 속하며, 데칸고원 북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뭄바이(봄베이)에서 450km, 아우랑가바드에서 106㎞, 잘가온역에서 50㎞ 지점에 있다. 데칸고원의 숲을 지나며 흐르는 와고라강(江) 계곡의 높이 70m 암벽에 BC 2세기부터 AD 7세기까지 계곡의 만곡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30개의 석굴이 있는데, 길이가 장장 1.5km에 이른다. 1819년 호랑이 사냥을 하던 영국인 병사에 의해 처음 발굴된 중서부 마하라슈트라주에 속해 있는 아잔타 석굴사원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 만들어진 전기동굴과 5 7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후기동굴로 이루어지는데 600m의 절벽을 따라 모두 30개의 석굴 군을 이루고 있다. 인도의 남북을 잇는 교통 요지에 가까이 있으며 불교의 전파에 따라 BC 2세기경부터 개굴(開掘)되었고, 승려가 거주하는 승원(僧院)과 스투파(불탑)를 모신 당(堂)이 세워졌다. 당시 승려는 부파불교(部派佛敎)를 신봉하였으며, 불상(佛像)은 전혀 조각되지 않았다. 3세기 사타바하나왕조가 붕괴한 후 잠시 석굴의 개굴이 중단되었으나 5세기가 되자 바카타카왕조하에 대승불교 신도가 대규모의 승원과 스투파를 모시는 당을 개굴하였다. 이때는 불상예배가 성행했기 때문에 스투파의 전면에 커다란 불상을 안치하였고, 승원의 내당에도 불상을 모셨으며, 벽면에 많은 불상을 조각하였다. 이 불상들은 단정한 굽타 양식이다. 벽면에 그려진 회화는 불전(佛傳)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인도 회화 사상 유례가 없는 걸작으로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특히나 자유롭고 활동적인 모습과 매혹적인 표정으로 그려진 여인들의 벽화는 아잔타만이 가지고 있는 보석 같은 가치이다. 벽에에 개착되었으며, 제19굴과 제26굴은 5세기~7세기에 조성되었다. 여기서 굴 번호는 진입부에서 안으로 들어오면서 차례대로 매긴 것일 뿐 조성 순서를 고려한 것은 아니다.석굴이 만들어지던 초기에 제9굴과 제10굴은 U자형 골짜기의 오목한 부분에 정남향으로 자리 잡도록 계획 되었으며, 제9굴의 향 우측에 미완성의 제8굴을, 제10굴의 향 좌측에 제12굴과 제13굴은 배치함으로써 승려들의 거처와 예불 장소를 모두 갖춘 종교시설로 출발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8굴, 제12굴, 제13굴은 모두 불당을 갖추지 않은 비하라로서 제9굴과 제10굴의 스투파에 불상이 새겨져 있지 않은 점과 상통되기 때문이다.{1. 초기 차이트야1)제9굴{석굴 명칭폭깊이천정 높이면적비고제9굴6.93m13.72m7.06m약27.5평BC 1세기{아잔타 석굴 군 가운데 초기의 차이트야인 제9굴의 평면은 통례와는 달리 말발굽 형이 아니고 직사각형인데, 내부공간은 폭이 큰 중랑(中廊)과 폭이 좁은 좌우 측랑(側廊)으로 삼등분 되어 있다. 중랑(中廊)을 3칸으로 분절하는 두 기둥을 세웠으며 그 기둥 안 깊숙한 곳에서는 광창을 투과하여 들어온 빛을 받아 희미하게 보이는 스투파가 봉안되어 있다. 제9굴 내부의 기둥은 순수 팔각형으로 장식조각은 물론 주두나 주좌마저도 표현되어 있지 않고 다만 그림으로만 장엄하여 초기의 단순 명쾌한 기둥을 그대로 보여 준다.천정을 보면 신랑 위는 궁륭형 천정, 측랑과 후진 요도 위는 기둥 높이의 평 천정, 스투파 위는 볼트와 연결된 돔으로 되어 있다.19번 동굴 밖에는 나가 왕과 그의 부인의 조각이 특히 눈에 띈다. 나가 왕은 바위의자에 한쪽 무릎을 굽힌 채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왕비는 머리를 하나로 단단히 묶고 다소 불편한 모습으로 구석 쪽에 있다. 시종인 야크쉬도 다른 한쪽 구석에 파리채를 든 채로 나태 한 모습으로 기대어 있다.{{{{1. 제9-14굴 2.제9굴 내부의 스투파 3.제9굴 내부 기둥의 부처그림 4. 제9굴 정면2)제10굴{석굴명칭폭깊이천정높이면적비고가진 대형 차이트야이다. 따라서 파사드 상부의 광창도 제9굴에 비하면 훨씬 커지긴 하였으나 굴속이 길어져서 스투파 부근은 매우 어둡다. 기둥은 제9굴과 마찬가지로 평면이 팔각형이고 주두나 주좌를 두지 않고 다만 그림으로 마무리 하였다.{{{1.제9-14굴 2.제10굴 스투파 3.제10굴 기둥의 그림2. 후기 차이트야2) 제19굴{석굴 명칭폭깊이천정 높이면적비고제19굴7.19m14.12m7.42m약28.8평AD 6세기{후기 차이트야에서 제19굴과 제26굴의 관계는 초기 차이트야에 서 제9굴과 제10굴의 관계를 연상케 한다. 제19굴도 제10굴과 마찬가지로 말발굽 형 평면에 내부를 삼등분한 바실리카 식 평 면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반면에 제9굴이나 제10굴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굴 앞부분의 전정(前庭)이 새롭게 등장해 있다. 정면 암벽 앞쪽에 만든 현관도 새로운 방식의 출입 시설이다. 파사드 에서 창과 출입구를 제외한 모든 벽면에 부조 상을 가득 조성한 점도 물론 달라진 것이다. 내부에서도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 스투파에서 형태구성의 변화는 물론이고 그 정면 감실에 입불 (立佛)을 새긴 점도 혁신적이다.내부의 기둥 부분도 몰라보게 변화 되었다. 기둥몸을 아래에서 위로 가면서 다양하게 깎고 다듬어서 다면체로 만들되 아랫몸에 모를 내어 턱을 둔 자리에 부조를 한 점, 기둥몸에 꽃무늬 띠를 위아래로 여러 번 두른 점, 기둥몸 상단에 아래에서 위로 차례대로 항아리와 정사각형 판석을 얹고 그 위에 두 팔 달린 주두를 얹은 점, 주두 표면의 중앙에 불 좌상, 좌우 팔에는 코끼리를 탄 여인 등을 부조로 새겨 놓은 점 등을 확인할 수 있다.주두 위쪽의 상벽에 그림을 그려 장엄했던 초기 차이트야와 달리 여기서는 벽면 전체를 사각형으로 분절하고 감실과 꽃무늬 부조를 번갈아 배치하였으며 감실 안에는 똑같은 도상의 불 좌상과 불 입상을 번갈아가며 리드미컬하게 배치하고 있다. 주두 마구리 밑면에는 연꽃무늬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무늬를 그려 넣었다. 측랑의 천정은 평 천정으로 처리하여 연트야에서는 일반적으로 기둥은 가늘고 기둥 간격은 극히 좁았었다.{{{{1.제19굴 2.제19굴 입구3.제19굴 부조 4.제19굴 스투파2)제26굴{석굴 명칭폭깊이천정높이면적비고제26굴11.05m20.68m9.53m약65평AD 7세기{제26굴은 제19굴의 2배 이상 되는 규모로서 앞 시기의 제10굴과 비교할 때 석실의 깊이가 조금 얕고 폭도 조금 좁으며 높이는 현격하게 낮다. 평면 구조상 제19굴과 공통점이 많으며, 굴 입구에 면석을 부조로 장엄한 기단과 소맷돌을 둔 계단 등이 있어서 시선을 끈다. 파사드의 현관 부분은 현재 파손되어 버렸지만, 원래 5칸 규모의 정면을 구성했던 흔적으로서 기둥 밑둥 4개가 바닥에서 튀어나와 잇다. 이 기둥 안쪽에 정면 랑이 한 겹 더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지만 정면 랑 좌우 벽에도 입구에 쌍 영을 세운 익실이 각 1곳씩 있어서 제19굴의 전정과 비교된다. 정면 랑은 비하라의 평면 구조에 일반화되어 있었다.석실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3곳이나 나 있어서 가운데 출입구는 신랑 어칸으로, 좌우 입구는 좌우 측랑으로 바로 연결된 통로를 구성 한다. 출입구 시설을 3곳이나 둔 이유는 측랑 폭이 넓고 측벽에 불상 같은 부조로 가득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차이트야 가운데서 측벽에 부조 상을 새긴 경우는 제26굴뿐이지만 오히려 아잔타의 비하라에서는 이 측벽 부조상이 일반화 되어 있었다.제26굴과 제19굴과의 중요한 차이는 무엇보다도 측랑이 넓고 양쪽 측벽 전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현재 제26굴의 향우측벽에는 여백이 불규칙하게 남아 있는데 여기에서 보듯이 측벽의 불 벽화나 불상 조각은 통일적인 디자인에 의하여 한 번에 제작된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수많은 시주 자들의 후원으로 조성되었으며 그만큼 불상에 대한 예불이 성행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1.제21-27굴2.제26굴 입구{{3.제26굴 내부4. 제26굴 스투파Ⅲ 아잔타 석굴 사원의 비하라아잔타의 30개 석굴 군 가운데 차이트야 4곳을 제외하고 26곳이 모두 비하라이다.전면 계단, 난간, 단순한 사각형의 벽기둥 문설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굴 앞에 바로 계단이 놓여 있어서 전정(前庭)을 필요로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제12굴은 향 좌측 벽과 후벽에는 각각 승방 4개씩을 배치하였으나 향우측벽에는 웬일인지 승방 1개만을 조성하여 미완성인 채로 남겨 두었다. 승방은 대개 1~3평(사방 6자에서 사방10자) 정도의 소규모여서 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면적만을 허용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승방 내부 바닥에는 제12굴에서처럼 돌침대와 돌 배게 2개씩을 만든 예도 있다. 중정에는 함께 식사를 하도록 의자용 석단이 빙 둘러 설치되어 있는 예도 있었으나, 초기에는 후기의 대승 교단 비하라에서처럼 중정이 다용도로 활용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1.제5-18굴2. 후기 비하라데칸 지역의 혼란된 정치적 상황 때문에 예술 활동이 고갈된 지 무려 300여 년이 지난 기원후 5세기에 가서야 아잔타에서 석굴 조성이 재개되었다. 따라서 5세기 이후에 새로 조성된 아잔타의 비하라는 소승불교에 의한 비하라와 달리 대승불교 교단의 후원으로 건설되었으므로, 반드시 내부에 불당을 마련하였다. 이로써 이 시기에는 차이트야에서뿐 아니라 비하라에서도 불상 봉안과 예불이 행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후기에 조성된 비하라는 21개소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제3굴, 제5굴, 제7굴, 제14굴, 제22굴, 제23굴, 제25굴, 제27굴, 제28굴, 제29굴 등은 미완성 굴이다. 대형 비하라는 제1굴, 제2굴, 제4굴, 제6굴, 제16굴, 제17굴, 제21굴, 제23굴, 제24굴 등 9개소이며, 비교적 소규모인 비하라는 제7굴, 제11굴, 제15굴, 제20굴, 제22굴, 제25굴, 제27굴, 제30굴 등 8개소이다.먼저 대형 비하라 부터 살펴보면, 많은 승려들이 거처하고 다양한 집회 및 예불 활동을 벌이기 위해서 내부에는 중정, 외부에는 전정을 넓게 확보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내부는 전랑, 후랑, 좌우측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면 벽에는 통로나 창을 내어 출입과 채광에 대비하였
    공학/기술| 2005.11.15| 11페이지| 3,000원| 조회(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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