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이 노래는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왕의 강림 신화 속에 삽입된 노래이다. 신의 강림을 소망하는 주술적 노래로서 여러 해석상의 이견이 존재한다. 우리 민족의 원초적 삶의 모습과 문학 생성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연대 : 신라 유리왕 19년(A.D 42)형식 : 4구체 한역시가작자 : 구간 등 가락국의 대신들성격 : 주술요, 집단요, 의식요, 노동요, 삽입 가요주제 : 새로운 생명(신령스런 임금)의 강림을 기원함표현 : 주술적, 명령형, 직설적의의 : 1 현전 최고(最高)의 집단 무2 주술성을 지닌 현전 최고의 노동요별칭 - 영군가, 영신군가, 구지봉 영신가, 가락국가해석 : 1 잡귀를 쫓는 주문이다.2 영신제의{) 신을 맞이하기 위해 치르는 제사의식절차 중 희생 무용{) 짐승등의 희생물을 신께 바치며 춤추는 의식에서 가창된 노래이다.3 원시인들의 강렬한 성욕을 표현한 것이다.4 거북점을 칠 때 부른 노래이다.2. 삼국유사에 실린 구지가후한의 세조 광무제 건무 18년 액을 덜기 위해 목욕하고 술을 마시던 계욕일에 그들이 사는 북쪽 구지(이는 산의 이름인데 열 붕새가 엎드린 모습이기 때문에 구지라고 불렀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2, 3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사람 소리는 있는 것 같으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하는 말소리만 들렸다. 구간 등이 "우리들이 있습니다."하자, "내가 있는 데가 어디냐?" 하였다. "구지입니다." 하자, 또 "하늘이 내게 명하여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 하시므로 여기에 왔으니, 너희는 이 봉우리의 흙을 파서 모으면서 노래하여라. - 거북아 거북아 / 머리를 내어라 / 내어 놓지 않으면 / 구워서 먹겠다 - 하면서 춤을 추면 이것이 대왕을 맞이하면서 기뻐 날뛰는 것이라." 하였다. 구간 등이 그 말대로 즐거이 노래하며 춤추다가 얼마 후 우러러보니 하늘에서 자주색 줄이 늘어져 땅에까지 닿았다. 줄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에 금합을 싼 것이 있었다. 합을 열어보니 알 여섯 개가 있는데 태양처럼 황금빛으로 빛났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놀라 기뻐하며 백 번 절하고 다시 싸서 아도간의 집으로 돌아갔다. 책상 위에 모셔 두고 흩어졌다가 12일쯤 지나 그 다음날 아침에 사람들이 다시 모여 합을 열어보니 알 여섯 개가 모두 남자로 변하였고, 용모가 매우 거룩하였다. 이어 의자에 앉히고 공손히 하례하였다.[삼국유사 권2. 가락국기]3. 구지가의 성격구지가는 임금 맞는 제의에서 부른 노래이다. 구간과 중서 2-3백명이 함께 불렀다는 점에서 주술의 효력을 한 개인의 주술 능력에 의지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집단으로 행하는 주술의 힘에 의존하는 '집단적 주술'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 구지가는 우리 시가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는 김수로왕 탄강 제의 때 처음 창작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던 [호칭 + 명령 + 가정 +위협]이라는 주술 구조를 빌어 수로왕을 맞이하는 주술로 실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명령과 위협으로 형성되는 구지가의 주술 구조는 당시 폭넓게 사용된 형식으로 보이며,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이 즉위 2년에 비류국과 세력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흰 사슴을 잡아 거꾸로 매달고 홍수를 내려서 비류국의 항복을 받고자 행한 기우주술(祈雨呪術)에서도 유사한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가정) 하늘이 만약 비를 내려서 비류 왕도를 표몰시키지 않으면(위협) 내 진실로 너를 놓아주지 않으리니이 어려움을 벗어나고 싶거든(명령) 너 능히 하늘에 호소하라.-이규보, 동명왕편주몽이 홍수로서 비류국을 항복받고자 사슴에게 비를 내리도록 명령하고 위협했던 주술의 내용과 구지가에서 대신들이 새 왕국을 세우고자 거북에게 왕을 보내도록 명령하고 위협하는 주술의 내용은 그 구조가 같다. 바다 용이 앗아간 수로부인을 되찾기 위한 주술 목적에서 부른 역시 이 주술 구조를 적용하여 실현시킨 것이다.4. 작품 선정의 논점이 작품은 고대로부터 구비전승 되어오다가 시간이 흘러오면서 건국 서사시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독립되어 민간에서 구비전승 되다가 한역되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해가'이다. 이 노래의 아류(亞流)로 재액(災厄) 극복의 주술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나 대상은 다르다 하더라도 결국 소원을 빌어 성취했다는 점과 집단 가무였다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한다. 결국 이러한 전승과 더불어 고대인들의 사상도 함께 전승되어온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며, 현대에 이르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고대인들의 사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계승의식은 새로운 형태로 조금씩 변형되며 계승되어 왔고, 이 작품을 재창작하는 나의 목적도 이와 일맥상통한다고 말할 수 있다.5. 이 작품을 재창작한 이유현대인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남아있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고대인들의 원형적 심상을 가장 절실히(생계수단) 나타내주는 주술적 심상에 대하여 흔적을 찾던 중 현재의 삶 속에서 고대인들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렵, 채집의 원형이 가장 잘 보전된 낚시인의 심상을 고대가요인 구지가와 결합시켜 고대인과 현대인의 세기를 초월한 소통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6. 구지가 각색龜何龜何(구하구하) 거북아 거북아首其現也(수기현야) 머리를 내어라若不現也(약불현야) 내어 놓지 않으면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구워서 먹으리↓↓鯉魚烙歌鯉魚何鯉魚何(리어하리어하) 잉어야 잉어야首其現也(수기현야) 머리를 내어라若不現也(약불현야) 내어 놓지 않으면밧데리以烙也(밧데리이란야) 밧데리로 지지리7. 작품해설'거북'은 예로부터 신성함과 장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검' 곧 신(神) 또는 신군(神君)으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낚시인들에게 잉어는 거북 과 마찬가지로 신성함과 함께 대물 의 상징으로 귀하게 여기어지고 있다. 고대인들이 신성한 존재의 강림을 염원하는 뜻을 거북 에 담아 노래를 했다면 필자는 낚시인의 한 사람으로 대물의 낚임을 염원하는 뜻을 담아 잉어 가 낚이기를 노래한 것이다. 또한 구지가의 주술 구조인 명령과 위협의 형식은 신적 존재의 강림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표출하고 있는데 이러한 강렬한 열망은 생명을 위협하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즉, 머리를 내지 않으면 잡아서 구워 먹겠다는 표현을 쓴 것이 그것이다. 낚시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낚시를 가서 대물이 낚이기를 염원하지만 대물을 낚기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낚시인들에게 있어 대물의 낚임은 고대인들이 신적 존재의 강림을 염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간절함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음이 틀림없다. 기다림에 지치면 아무리 훌륭한 낚시인이라도 낚시 그 자체를 즐기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정말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대물을 낚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러한 낚시인들의 충동과 강렬한 열망을 필자는 밧데리 에 이입하고 싶었다. 즉, 이 작품의 중심적인 심상은 밧데리 이다. 밧데리 는 기다림의 끝에 지친 낚시인의 절박한 심정을 극대화한 전율적 시어로써 시적 긴장감과 감정의 극적 분출을 의미하는 시어이다. 필자는 이 시어의 사용으로 인해 이 작품이 구지가의 명령과 위협의 구조보다 더 강렬한 열망을 표출했다고 자부한다. 구지가는 신적 존재에 대한 위협만이 있을 뿐이지만, 필자의 작품은 물에서 사용하면 위험한 밧데리 의 사용으로 인해 열망의 대상과 내가 동시에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으로 극적 진행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열망의 대상을 얻기 위해 나의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는 광기 어린 집념의 정서를 여실히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I. 서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II. 본론1. Facts(1) Plot1) 줄거리1 그는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가며, 『왕오천축국전』에서 빠진 세 글자와 소발 률 에 대한 궁금증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들을 수첩에 기록한다.2 방콕에서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비행기에서 소발률 의 왕이 도망친 후 어떻게 되었는가 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여러 궁리를 하면서 숙소에 다다른다.3 이슬라마바드에서 타라싱까지 도착하는 순간에도 그는 『왕오천축국전』의 문장을 거 듭해 읽으며 그의 여정과 혜초의 여정을 생각한다.4 그는 여자친구의 죽음 이 후, 자신에게 닥친 슬픔을 배워나가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 을 읽는다.5 책을 빌리다 우연히 여자친구가 죽기 전 읽었을 법한 책을 발견하고, 그는 그녀가 죽으면서 쓴 유서에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음을 생각하며 자신이 그녀에게 아무런의미도 없었거나 은밀한 존재였을 것이라 생각한다.6 그는 그 후로부터 아홉 달 동안을 자신과 여자친구가 등장하는 소설을 쓰는데 매달리 며, 소설을 쓰면서 그는 여자친구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던 존재였다고 생각하게 된다.7 소설을 다 쓴 후 히말라야 등단을 위해 훈련에 참가하며, 2차 동계 훈련을 떠나기 전 자신의 소설을 『왕오천축국전』을 옮기고 주석을 단 나 에게 보낸다.8 고줌바캉 원정대원 선발에서 떨어지고, 자신의 목적과는 달리 소설이 출판사에 넘겨졌 다는 통보를 받고 원고를 찾으러 출판사로 간다.9 그는 출판사에 찾아갔으나 원고를 찾지 못하고 나 에게 설득당한다. 그리고 그는 회 식 자리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쫓겨나고, 나 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⑩ 라토바에 도착한 낭가파르바트 원정대는 고산병에 시달리다, 사흘만에 회복되어 입촌 식을 거행한다.⑪ 4주에 걸쳐 베이스캠프에서 제4캠프까지의 루트를 개척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며, 부족 한 예산과 시간에 쫓겨 정상공격을 빨리 단행하기로 한다.⑫ 악천 후로 인해 제2캠프로 올라가지 못하고 제1캠프로 철수했으나, 고산증세로 잠을 이루지 못해 고통을 겪비극적인 일을 암시해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으며, 『왕오천축국전』에 빠진 세 글자를 추측하는 것이나, 여자친구가 쓴 편지의 없었습니다. 와 후회는 없어 라는 거대한 틈 사이의 의미를 추측하는 것은 결국엔 그것을 쓴 당사자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며, 보는 우리들은 그저 추측할 수 밖에 없음을 아는 나 의 견해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그 와 맞물려 결국에는 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위험 속으로 뛰어들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게 해주고, 이러한 예상을 통해 독자들은 그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등정 중에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절정의 순간을 암시하게 해준다.⑭는 절정에 해당된다. 사고와 육체가 모두 뇌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순간에 그는 환상을 접하게 되고, 그 순간부터 그는 환상과 함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⑮는 결말이다. 의문투성이인 그의 실종을 일반 사람들은 그저 일반적인 추측으로 매듭지을 뿐이다. 하지만 그를 잘 알던 나 는 그가 그 환상과 함께 그가 그토록 가고자 했던, 그토록 알고자 했던 해답을 향해 나아가는 기쁨의 여정을 걷고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3) 플롯의 유형이 소설은 구성상으로 볼 때 주된 사건의 주 스토리 선(main story line)과 이에 부속되는 사건의 부 스토리 선(subsidiary line)이 교차되면서 진행{) 구인환, 『소설론』, 삼화원, 1996, p215되는 복합구성(intricate plot)이다. 여기서는 전개부분이 주 스토리 선에 교차되면서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때 이 전개부는 플래시 백 기법이 사용되어진 것을 앞에서도 확인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아래의 도식과 같이 현재의 나 가 중심적인 이야기인 과거에 일어났던 그 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는 액자 구성 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나(부차적 구성) --------------- 현재-----+|||+--- 그(중심 구성)-----------------+||||||| 과거||||||+----------p257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후반부에 육체적·심적 고통 때문에 정신적 착란을 일으키나 그것이 인물의 인성을 변화시킨 것이라고 보기에는 미흡하기 때문에 성격변화는 없다고 하겠다. 그는 80년대의 대학생으로 자의식이 강하며, 자기 자신이 겪는 일들에 대해 깊이 탐구하며, 꼼꼼하다.……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죄다 수첩에 기록했다. 몇몇 사소한 고민거리들, 문득 떠오른 일들과 좀체 가라앉지 않는 의문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얘기들, 평생 단 한 번 스쳐 지나가는 게 분명할 풍경 들, 껌 한 통에 이르기까지 자잘한 구입 물품과 그 가격, 시간대별 이동 경로와 방법 ……그건 상당히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에게는 그런 수첩이 스무 권 가까이 있었다. 하루의 일정이 모두 끝나면 머리맡에 램프를 밝혀 두고 수첩의 그 불완전한 문장들을 따로 준비한 공책에다가 옮겨 적었다. 여러 번 차를 끓여 마셔 입안이 텁 텁해지도록 그는 그 일에 몰두했다.주인공은 자신이 살면서 겪는 모든 일들에 관심을 갖고 거기서 무엇인가를 찾으려 한 흔적이 엿 보인다. 이러한 그의 삶에 대한 탐구적인 성향은 외계에 대한 자아의 인식인 자의식을 강하게 만들고 이것은 그 가 여자친구의 죽음을 직면하게 된 이후 행하는 평범하지 않은 행동으로 이어진다.……그런 일을 겪고도 자신은 살아남았으므로 또 뭔가를 배워야만 한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히면서도 위로했다. 그렇게 해서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그는 집에 있는 책을 한권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다.……한달 정도가 지나자 집에 있는 모든 책을 읽어버렸다.……그로부터 아홉 달 동안, 그는 소설을 쓰는 데만 몰두했다.……도서관 밖에서는 연일 확성기를 동원한 집회 가 계속 이어졌고 오후가 되면 교문 밖으로 진출하려는 시위대를 막아선 전경들이 쏘아대는 최루탄 소리가 터 졌지만, 그는 구석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자신이 봐도 재미없기 짝이 없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소설을 쓰면 쓸수록 그는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존재로 변해갔다.또한 세상과 단절되어 자기의 은 파키스탄의 히말라야에 이르는 여정부터 낭가파르바트 까지이며, 부속된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1986년대이며 공간적 배경은 한국의 어느 도시의 대학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서울올림픽이 열리던 그 해, 한국에서는 몇 개의 원정대가 조직돼 히말라야로 떠났다.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조직된 원정대였으므로 실패는 있을 수 없었고 그들은 모두 등정에 성공했다. 그러니까 1988년 한국 낭 가파르바트 원정대만 제외하자면.길기트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원정대는 다시 캐러밴이 시작되는 타라싱을 향해 출발했다. …라토바에 도착한 1988년 한국 낭가파르바트 원정대는 가장 먼저 그룹별로 포터들의 대장 격인 사다를 불러모 아 임금을 정 산했다. ……교문 앞 아스팔트에 물이 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전날 시위가 있었음을 짐작했다.……1986년의 캠퍼스라면 어디서나 규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젊은 욕망들로 가득했다.……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이야기의 전개 배경이 글 속에 드러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2. Theme이 소설에서 그 는 여자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많은 문장들을 접하던 중, 여자친구가 죽기 전에 읽었던 『왕오천축국전』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줄을 그어 놓았던 문장들과 여자친구가 남긴 유서의 의미를 탐구한다. 그 의미들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쓰며, 의미 발견에 실패하자 그 는 여자친구가 궁금해했던 그곳으로 떠난다. 그 는 나 에게 나 가 달아놓은 주석의 의미를 묻는다. 하지만 나 는 선택할 수 있는 많은 해석 중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하나만을 주석으로 달아놓을 뿐 거기엔 어떠한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으며 어떤 특별한 의미를 안다거나 그것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없다. 나 는 여자친구의 유서 또한 마찬가지로 그 가 아무리 없었습니다. 와 후회는 없어 사이의 의미를 발견해내려 노력해도 결국에 그 사이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것은 여자친구라는 것을 안다.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진실. 그것은 마치 낭가파르바트의 닿을 수 없는 만년설과 같 창조를 위해, 위험을 마주할 용기를 가지고 우리가 도달해야 할 그곳을 향해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도가 제목에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여진다.(2) Point of View1인칭 관찰자 시점 - 소설에 참여하는 부수적인 인물이 주인공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기법이다.{) 구인환, 『소설론』, 삼화원, 1996, p242여기서 나 는 부수적 인물에 해당되며, 주인공은 그 이다. 이 시점은 서술자인 나 에 관한 이야기는 주관적인 특색을 가지게 되고,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는 순전히 관찰자의 눈에 띈 객관적인 세계라는 점에서 결합적인 효과를 준다. 이러한 시점의 소설은 서술자의 관찰의 기회가 제한되어지고, 또 서술자는 자연히 일종의 해석자가 되어 작품을 설명해 간다는 한계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나 가 그 의 이야기를 그가 남긴 노트와 나 의 경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회고조로 그의 이야기를 관찰자적 시점에서 하고 있다.새 공책을 사면 그는 언제나 공책의 표지 뒷면에 다음과 같은 릴케의 글을 적어놓았다. 대학교 입학시험을 준 비하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책을 사면 으레 이 문장을 적었으니 언제라도 그 문장은 온전히 외울 수가 있었 다.낭가파르바트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그는 밤새 깨어 있다가(혹은 뜬눈으로 자신의 꿈을 바라보 고 있다가) 새벽 1시가 되어 얼어붙은 신발을 신고 텐트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 등반일지에 그는 달빛에 대해 썼지만, 증언에 따르면 사흘째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고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위의 문장들을 보면, 나 는 그 의 공책에 적힌 그의 이야기들과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 의 인생을 재구성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었다 의 쓰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인용할 시에는 -라고 한다 와 같은 표현을 쓴다. 그러나 나 는 다른 사실들을 인용하지 않고, 얻은 정보들을 재구성하여 그 의 인생을 해석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마치 자신이 경험한 것처럼 이야기 있다.
I. 서론빙허 현진건은 1920년 11월 첫 작품「희생화」를 발표하면서 소설 쓰기를 시작해서 1941년 9월 마지막 장편 「선화공주」를 《춘추》지에 연재하다가 중단하기까지 20여 년간 창작 활동을 해온 작가이며,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이다.그의 작품은 그의 의식 변화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제 1기의 작품들은 봉건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 지식층의 사회에 대한 갈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전환기를 살아가면서 과거의 전통적 요소와 새로운 근대적 요소의 부조화를 겪으며 비로소 자아에 눈을 뜨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 시대 의식을 각성하는 과정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작품으로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등이 있다. 제 2기의 작품들은 식민지 정책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사회와 민족에 대한 이데올로기 의식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모순을 파악해 내고 있다. 특히 사회계층의 양극화 현상과 하층계급의 불행을 주시했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심화, 확산되어 식민지 사회의 허위를 파악하는데 주력하였다. 작품으로는‘피아노 , 할머니의 죽음’,‘운수 좋은 날’등이 이 시기 작품에 속한다. 제 3기의 작품들은 1930년대 군국주의 시기이다. 표면적으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나타낼 수 없을 정도로 탄압이 강화되자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유토피아 의식으로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맞서 나갔다. 이러한 의식이 현실도피라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우나 타협의 가능성을 상실한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서의 대응양식을 창출했다는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다. 작품으로는‘서투른 도적 ,‘무영탑’등을 들 수 있다.그의 문학세계의 바탕에 흐르는 큰 줄기는 사회와 민족에 대한 작가적 양식이었다. 그것은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문학적 진실을 지키려고 애쓴 결과이기도하다. 그러한 자취가 그의 작품을 문학사적으로 탄탄한 자리에 서게 했다.II. 본론1. 빙허의 생애수 있다.그의 앞에는 일본과 러시아. 중국으로 통하는 길, 두 개의 통로가 열려 있었던 셈이다. 그는 처음에 일본 유학을 떠나지만 결국 좌절하고 몰래 상해로 출정하였다가 정건의 권유로 마침내 3.1운동 직후 스산한 서울로 돌아오고 만다. 그는 제3의 길 -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국내에 남아서 영운의 행로를 거절하면서 지식으로서 상건과 정건의 길을 가는 것 - 그의 선택은 일견 형제들이 선택했던 길보다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더욱 어려운 길이었는지도 모른다.즉, 어린시절 가정환경이나 주변상황은 평탄치 못했고, 그의 진로결정도 참 힘겨운 것이어서 비록 어려운 길이었지만 ‘제3의길’ 인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그의 문학 활동은 1920년부터 시작된다. 이 해 그는 5촌 당숙인 현희운의 소개로 처녀작 단편 ‘희생화’를 게재하였으며, 그 후 ‘빈처’ 등을 발표함으로 작가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현진건은 작가 생활과 더불어 기자생활로 사회활동을 하였다.1921년 조선일보에 입사하고 『백조』동인으로 활동하고 이어 으로 일자리를 옮기지만 은 1923년 로 전환되어 현진건으로서는 다시 신문기자직을 갖는 기회를 맞는다. 그러나 신문사의 재정난으로 신문사가 폐간되자 자연히 다시 기자직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로 발탁되면서 또 다시 기자가 된다. 1925년경 까지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다가, 조선일보 합평회에 참여하고 문예지에 작품 월평을 쓰면서 작품 활동이 뜸해졌다. 그 기간에 비평 활동을 하였으나, 민족주의나 프로문학의 논쟁에는 간여하지 않았다.1925년 작품집 『조선의 얼굴』을 내고서, 후에 「적도」의 일부가 되었던 작품을 발표하다가 중단하였을 뿐, 1927년 7월 「신문지와 철창」을 발표할 때까지 이렇다 할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사이 동아일보 사주인 김성수와 사장인 송진우의 인정을 받아 1928년 사회부장으로 승진하고 나자 언론계 진출과 함께 가뜩이나 뜸해지던 창작활동은 한층 줄어든다. 창작보다었다. 이로 인해 작품 전반적으로 생동감이 느껴지고,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소설 문체를 찾아 볼 수 있다.2. 문학적 활동과 경향2-1. 민족의식현진건이 창작 활동을 시작하던 무렵, 그의 가족 관계 및 주요 친척들의 경력 혹은 사회적 활동을 조사해 보면, 당시 그의 가문은 ‘일찍부터 개화한’ 개화기의 명문 소리를 들을 만큼 번화한 바가 있었다. 현진건의 친인척들은 다난한 국내외적 요인으로 국운이 날로 기울고, 신구 문물과 가치관이 충돌하는 개화기의 시대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각기 적극적인 방식으로 현실에 대응해 나갔으며,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입장에서 정반대의 노선을 취한 인물들도 있었다. 그 중 상해에서 활동하던 독립 운동 투사였던 셋째 형 정건의 감화로 일찍이 현진건은 강렬한 배일 사상을 갖게 되고, 그의 후기 장편에서 식민지 시대를 극복할 항일 저항 이데올로기를 본격적으로 모색하는 중대한 계기로 작용했던 것 같다.‘고향’(1926)은 지식인인 1인칭 서술자 ‘나’가 우연히 차중에서 만난, 한 유랑 농민의 비참한 삶의 유전을 서술하고 있다. 단편소설로서는 다소 짧은 규모에 광범한 제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자칫 태작으로 과소평가될 소지가 있지만, 일제의 한국에 대한 침략, 강도적 경제 수탈 정책, 그로 인한 비참한 민중의 현실을 고도로 절제된 1인칭 관찰자 시점 형식에 의하여 집약적, 암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점에서 그 역사적 기록성과 더불어 부정적 현실에 대한 작가의 강렬한 비판과 고발 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이다.“썩어 넘어진 서까래, 뚤뚤 구르는 주추는! 꼭 무덤을 파서 해골을 젖혀 놓은 것 같더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기오? 백여 호 살던 동리가 십년이 모되어 통 없어지는 수도 있는기오, 후!”하고 그는 한숨을 쉬며, 그 때의 광경을 눈 앞에 그리는 듯이 멀건히 먼 산을 보다가 내가 따라준 술을 꿀꺽 들이키고, “참! 가슴이 터지더마, 가슴이 터져.” 하자마자 굵직한 눈물 둬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그 눈물 가운데 음산하고 비참한 있는 정치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 개혁의식을 가진 영웅적 인물이며 막연한 봉건 시대의 영웅이 아니라, 민중의 힘을 집결한 민중의 대리자로서의 영웅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현진건은 그러한 시대와 인물의 설정을 통해 한 시대의 타락한 사회 풍조와 사회의 모순을 부정,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려는 의지를 그의 민족의식으로 드러내고 있다.2-2. 인간성의 비판현진건은 신변 체험을 제재로 다룬 초기의 자전적 작품 세계에서 벗어나면서 차츰 지식인다운 눈으로 현실 속에 내재해 있는 부정성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되고 비판적 관점에서 그것을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재현해 내려는 시도를 보이게 된다. 현진건의 이러한 작품들은 그의 사회인식 혹은 민족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낮게 평가되어 왔지만, 이들 작품은 작가의 주요한 작품 경향으로서, 그의 관심이 당대적 현실문제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 본성의 문제에도 두어져 있음을 시사해 준다. 또한 이 점은 사실주의 작가로서의 그의 본질적 특성의 일면을 시사해 주기도 한다.‘할머니의 죽음’에서 가장 핵심적인 관심의 초점은 서술자 자신을 포함하는 가족들의 성격모순 혹은 이중성이다. 작중 인물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아이러니의 기법을 통하여 그들의 외양과 실상, 행위와 본능간의 모순이나 불일치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든 둘 고령에도 임박해 오는 죽음 앞에서 악착같이 삶에 대한 집착을 보여 주는 할머니를 위시해서 겉으로는 할머니 시중에 정성을 다하면서도 그것으로 자신의 효성을 과시하고 다른 가족들을 질타하는 중모, 할머니에 대한 효심보다는 단지 호기심에서 재미있는 구경거리인양 할머니를 바라보며 웃는 자부들, 모든 가족들의 모습에서 인간 본성의 모순과 이중성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나는 곧 그들에게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하되 나의 마음을 냉정하게 살펴본즉 슬프다! 나에게는 그들을 모욕할 권리가 없었다. 형수들 앞에서 앞가슴을 풀어젖히라는 할머니가 민망스럽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였다. 환자를 가엽다고 생각하면서도주고 있다.우선 ‘운수 좋은 날’이라는 제목부터 따지고 보면 부조리한 삶의 한 단면을 나타내고 있다. 김첨지에게는 돈벌이가 잘되는 그날이 분명 운수 좋은 날이었으나 동시에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는 가장 불행한 날이 된다. 이것은 한 인력거꾼의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원인과 결과가 서로 어긋나고 모순하는 삶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다.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만인가? 그러자 그 돈벌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내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 일 제 이의 행운을 곱친 것보다도 오히려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문득 김 첨지는 이 미칠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비비대며 중얼거리었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운수 좋은 날’ 본문 중.전자는 작품의 전반에서 일어나는 행운의 중복 현상이며 후자는 그러한 행운이 불운으로 급전했을 때의 주인공의 깨달음 내지는 반응을 기술한 것이다. 종말 부분은 플롯의 전반에서 제시되었던, 주인공 김첨지에게 오랜만에 닥쳤던 일련의 행운이 결코 행운이 아니라 아내의 죽음이라는 비극의 전조였다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이처럼 상황의 반전을 포함하는 아이러니의 효과로서 작가는 주인공과 같은 당대 하층민이 처해 있는 전형적인 빈궁의 삶의 비극성을 강렬화 할 뿐 아니라, 그러한 불행하고 비참한 삶을 초래하게 한 사회적 현실의 비정함과 부정성을 비판하고 있다.2-4. 사실주의시간와 장소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치 못하는 것이다. 달나라의 소요도 그만둘 일이다. 구름바다의 유희도 그칠 일이다. 조선문학인 다음에야 조선의 땅을 단단히 디디고 서야할 줄 안다. - (1926.1), 「개벽」65호.이것은 그의 현실주의를 표방하는 사상으로서 현실의 재현이라는 순수한 리얼리즘이 그 본질임을 보여준 말이다. 박종화가 “조선에 있어서의 사실주의를 대성한 이는 현진건이다. 묘사나 .
서론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발생한 시가형식으로서, 시조와 더불어 주로 사대부 사회에서 널리 창작되어다가 조선 후기에 들어 다양한 작자층에 의해 불리워진 노래를 말한다. 3(4).4조, 4음보의 연속체 시가로서 운문과 산문의 중간형태인 시가였다. 가사는 두 마디씩 짝을 이루는 율문의 구조만 갖추면 내용은 무엇이 되던지 상관없이 노래했던 양식으로 길이가 자유로웠으며 형식적 요건이 단순했기 때문에 향유층도 매우 다양했다.본론가사의 장르적 특징전반적인 가사의 형태적 특징은 두 개의 대구, 즉 4음보 1행의 연속체로 된 운문이라는 점, 1음보의 음수율이 3·4조 또는 4·4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과 행의 수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또 가사는 그 형태적 특징에 따라 정격가사와 변격가사로 나누는 데 그 기준은 마지막 시행이 시조의 종장형식을 띠느냐 띠지 않느냐의 여부로 판가름한다. 그리하여 전자의 경우를 정격가사로, 후자의 경우를 변격가사로 구분하며 조선 전기의 작품들이 주로 정격가사의 형태를 보이며, 조선 후기의 작품들이 대체적으로 변격가사의 형태를 보인다. 또한 그 내용에 있어서도 복잡다기한 것 또한 주요한 특징이어서 이러한 점을 들어 다음과 같은 장르처리 문제가 제기되어 왔었다.1 가사는 시가와 문필의 중간적 형태이다.(조윤제)2 가사는 율문으로 된 수필이다. (이능우, 장덕순)3 가사는 율문으로 된 교술 문학이다. (조동일)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에는 공통된 의견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가사는 율문이라는 것과 서정시와는 달리 사물이나 생활에 관한 잡다한 나열이나 서술로 되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아직까지 가사에 대한 명확한 단 하나의 명제로 합의되지 못했지만 가사는 시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창으로 불려졌다는 사실과 함께 율문이라는 형태적 특성을 가진 것으로 보아 시가 문학에 속한다고 보는 견해가 타당하다고 생각되어진다.가사의 효시작가사의 발생 연대가 조선조 초기 정극인의 으로부터 시작하였다는 견해와 고려말의 명승 나옹화상의 에서 비롯되었다는 견 볼 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서왕가가 창작된 후 뒷따라 나온 가사 작품들과의 시간 상으로의 공백이 거의 1세기 정도가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을 효시작으로 볼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형식이 너무나도 세련되고 완벽하게 정격가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인데, 효시작치고는 너무도 완벽하다는 점이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당시 우리 문학사의 시대적 상황을 고찰해 볼 때, 고려말엽에서 조선 초의 시기에는 한시인 4언고시체 가 성행을 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4언고시체 역시 가사와 마찬가지로 행수의 제한이 없고 계속 이어지는 형식이며, 한자를 우리말로 표기하면 그 자체가 가사와 동일하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생각할 때 한시체를 약간 변형하여 가사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를 효시작으로 볼 때와 어느 정도 배경이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다.가사의 기원가사의 기원을 내적으로 찾는 의견과 외적으로 찾는 의견이 동시에 존재한다. 내적인 면에서 찾는 의견의 내용으로는 등의 악장에서 이루어졌다는 의견과 교술 민요가 기록 문학으로 전환되면서 이루어진 장르라는 의견, 그리고 고려 속요와 경기체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그 중에서도 경기체가와의 관계에 주목해 볼 수 있는데, 가사나 경기체가나 모두 사물이나 생활을 나열 서술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경기체가가 쇠퇴하면서 가사가 발달했을 것이다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닌 듯 하다. 가사의 기원을 외적인 면에서 찾는 의견 역시 존재하는 데 그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중국의 한시인 4언고시체에서 왔다는 의견이다. 4언고시체는 행수에 제한이 없고 계속이어지는 형식인 동시에 한자를 우리말로 바꾸어버리면 가사와 거의 동일한 수준에 이른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한시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무시할 수 없다.가사의 작가전기 가사의 경우 그 대부분이 귀족·양반들이 중심이 되어 있고, 유명한 불승들의 작품으로 전하는 것들이 상당량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승려의식의 상승에 힘입어 기존의 수사적인 기교나 미의식 면에서도 사설시조와 마찬가지로 관습적인 표현방법을 즐겨 쓰고, 의태어·의성어·비속어가 대량으로 도입되게 되었고, 그것은 희극미를 추구하던 평민적인 미의식 구조의 반영이라고 보여진다.가사의 시기별 특징가사는 그 형식 및 내용적 특성에 따라 세 가지 시기로 분류되는데, 조선 전기의 가사, 조선 후기의 가사, 개화기의 가사가 그것이다.(1) 조선 전기의 가사이 시기의 작품들은 주로 양반 사대부 계층에 의해 쓰여지던 시기였다. 이들은 주로 임금에 대한 연군의 정이나 충심, 감사하는 마음을 노래하거나 강호의 한가로운 정을 노래하였고, 종교적 삶을 권장하는 등의 내용을 다루었다. 대부분의 작자들이 양반 사대부들이었으므로 작품에 묻어나는 사상적 이념 역시 유교 사상이 가장 많이 묻어나던 시기였다. 형식적으로도 3·4조의 율격과 시조 종장 형식의 결구를 취하는 정격 가사 형식을 취하는 작품들이 많이 존재하였다.강호의 한가로운 정을 노래에는 등이 있는데 은 정극인이 쓴 작품으로 현세에 와서 가사의 효시작 인가의 여부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자연에 묻혀 그것을 즐기는 풍류를 노래한 후 자연에 안빈낙도하겠다는 결심을 노래한 작품이다. 그리고 은 송강 정철이 쓴 작품으로, 서하당 주인인 김성원의 멋과 풍류를 노래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의 풍류를 읊은 것이며, 과는 달리 자연에 안빈낙도하는 삶이 아니라, 귀거래를 명분으로 삼고 때를 기다려가며 쉬어가는 안식처로 자연을 인식하였으며, 기회가 닿으면 정계에 진출하겠다는 정철의 의지 및 16세기 사대부들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할 수 있겠다.이러한 강호가사 외에도 전기 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사가 연주 충군의 가사들이다. 특히 송강 정철은 여성의 목소리로 임금에 대한 사랑과 충절을 나타낸 과 같은 뛰어난 작품을 지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이 임금에 대한 충절을 애절하게 노래한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가 과연 충신이었는가에 대한 여부는 의심스이 작품 역시 서정적 자아를 임을 그리워하는 여인으로 설정하여 연군의 정을 드러내는 한편, 자신이 유배를 당하게 된 현실에 대한 발분의 정서를 표출한다. 이 작품은 연군의 정보다도 발분의 정서가 더 두드러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이러한 작품 외에도 종교적 신념을 권장하거나 전기 가사인 것치고는 주제가 새로운 와 같은 작품도 존재한다. 는 전란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전기 가사로 볼 것이냐 후기 가사로 볼 것이냐 하는 논란이 많은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형식적인 측면으로 볼 때 전기 가사에 가까운 형식임을 들어 전기 가사의 범주에 포함된다. 는 왜적을 맞아 싸우는 병졸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가사로, 쳐들어온 적들을 물리치고 태평시절을 맞이하자는 내용으로 박인로가 지은 가사이다. 그리고 종교적 신념을 권장하는 내용의 작품으로는 와 나옹화상의 가 있다. 는 유교적 실천이념을 충실히 하라는 권면적인 내용이며 는 극락왕생의 인연으로서 염불공덕을 권장하는 노래이다.이상의 다시 정리하면 전기 가사는 내용적인 면에서는 연군의 정을 노래하는 가사와 자연의 풍류를 즐기는 강호가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과 그 외에 종교적 이념을 권장하는 노래나 나라를 안녕을 기원하는 노래 등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주로 정격 가사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다.(2) 조선 후기의 가사임진왜란을 경계로 하여 17세기부터의 후기가사에 오면 몇 가지 특징적인 변화가 생긴다. 우선 임진왜란을 계기로 평민계급의 의식이 성장되어졌고, 이것은 가사 문학의 다양성에 큰 역할을 했다. 이 시기 역시 전기와 마찬가지로 양반사대부들도 작품활동을 했으나, 더 두드러지게 활동한 것은 평민계층이었다. 그들은 다양한 주제의 내용의 가사 작품을 다루었고, 형식적인 면에서도 후기 가사의 특징인 4·4조 이외에도 형식이 자유로운 변격 가사의 형식을 띤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전기와는 달리 실학사상을 그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였으며, 새로운 사상인 가사와 같이 현실의 관념에 머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집단적 의지의 표현에도 적합한 양식을 보여줬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역시 전쟁을 소재로 제작된 것으로 의병의 입장에서 바라 본 전쟁 현실 속에서의 참상을 표출하려 하였으며, 현실의 부조리함을 포함하는 거시적인 역사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또한 실학 사상의 대두로 현실 문제에 관심과 비판을 드러낸 작품들도 창작되었다. 와 같은 작품은 작자가 양반으로 알려졌으나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농사를 나랏일에 비기어 백관들의 탐욕과 무능함을 개탄하고 근검하 것을 훈계하는 내용을 은유법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또한 전기의 가사와는 달리 남녀간의 애정에 관한 가사 작품도 많이 등장하였는데 그 당시의 사회상에 비추어 보았을 때 상당히 파격적인 작품들도 많이 등장했다. 는 여성의 입장에서 사랑의 표현을 과감히 드러낸 작품으로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작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는 양반의 입장에서 기생과 염문을 나누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 작품으로 노래하였다. 특히 이 작품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인권 존중의식의 발로 라 할 수 있겠다. 당시 기생은 천한 신분에 불과하였으나 함부로 다루지 않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지은이의 모습이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양반의 신분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라 생각된다. 는 여승이 애정문제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것을 문자화하여 나타내고 불렀다는 것 역시 이전의 불교작품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인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은연 중에 불교 이상 세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 또한 엿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후기 가사는 기행 가사와 유배 가사를 빼놓을 수 없다. 는 국문기행가사로서 국외문국가사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김인겸이 쓴 작품으로 서울에서 일본을 거쳐 돌아오는 여정을 사설적인 율조 양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는 유배가사이다. 이 작품은 기존의 유진다.
작가황순원. 평안남도 대동(大同) 출생. 숭실중학을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31년 중학 재학중 《동광(東光)》지에 시 《나의 꿈》 《아들아 무서워 마라》를 발표, 등단하였다. 그 뒤 《삼사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며 《방가(放歌, 1934)》 《골동품(1936)》 등 시집을 간행하였으나, 40년 단편집 《늪》을 계기로 소설에 전념하여 《별(1941)》 《그늘(1942)》 등 대표작들을 썼다. 광복 후 서울중학교?경희대학에 재직하면서 《독 짓는 늙은이(1952)》 《곡예사(1950)》 《학(1953)》 등 단편과 《별과 같이 살다(1950쾬》 《인간접목(1957)》 등 장편을 발표하였고, 55년 《카인의 후예》로 자유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전쟁의 비극적 상황 속에서 젊은이들의 좌절과 방황을 묘사한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 전통적 한국의 인습 속에서 자의식의 분열을 다룬 《일월(1964)》 《움직이는 성(城, 1973)》 《신들의 주사위(1982)》 등 장편을 썼다. 《소나기》를 통해 유년기의 동화적인 색채로 출발, 인생 입문에서 겪게 되는 아픔과 정서적 손상의 형상을 거쳐, 《별과 같이 살다》 《카인의 후예》에 이르러 삶의 현장을 투시하고, 점차 인간의 정신세계와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그린 휴머니즘으로 변모하였다. 61년 예술원상, 66년 3?1문화상, 83년 대한민국 문학상 본상을 수상하였다.그의 작품 세계는 시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문체와 스토리의 조직적인 전개를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그의 문체는 설화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는 인간의 본연적인 심리를 미세하게 묘사하는가하면 , 비극적인 현실을 심원한 사상이나 종교로서 감싸고 이해하려는 주제 의식의 확대를 보여주고 있다.Facts(1) Plot발단 : 훈이 고향으로 돌아와 배우지 못한 소작인의 자식들을 위해 야학을 운영하자 이미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오작녀는 훈의 집에 기거하며 그의 수발 을 들어 주며 서로의 사랑을 훈은 도섭 영감을 죽이기로 작정한다. 훈과 맞선 도섭 영감은 훈의 칼에 옆구리를 찔린다.결말 : 항상 훈의 신변을 걱정하여 미행해 오던 오작녀의 동생 삼득이가 이를 저지하다가 상처를 입으며 훈에게 오작녀를 데리고 빨리 떠나라고 말한다.(2) Character박 훈 : 지주의 아들로 지주가 된 전형적인 지식인이다. 결벽한 양심주의자이고 관조적인 사랑의 소유자이나 삼촌의 죽음을 계기로 행동형의 인간인 카인으로 변모하여 도 섭영감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그에게 칼을 들고 덤벼드는 동적 인물(Round Character)이다.도섭 영감 : 원래 부유한 집 아들이었으나 가산을 탕진하고 떠돌아다니다가 훈의 집에서 열심히 일을 하여 마름이 된다. 해방 후 토지개혁에 앞장서서 지주인 훈을 배 신하고 자신의 이득을 추구해나간 동적 인물(Round Character)이다. 냉혈한 기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오 작 녀 : 어린시절부터 훈과 좋아하는 관계였으나 신분적인 차이로 최가에게 결혼했다 가 남편의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친정으로 돌아온 여인이다. 아버지의 권유로 훈이 돌아온 뒤에 그의 수발을 헌신적으로 들어준다. 사랑하는 박훈에게는 온 순하고 헌신적이면서, 박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모든 위험에 용감하게 맞서는 당찬 여인이다. 매사에 적극적이며 열정적, 모험적인 성격.오작녀 남편 : 건달이면서도 나름대로 멋과 의리를 지닌 사내.용제 어른 : 박훈의 삼촌. 토지를 몰수당하고 끌려가 광산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주도해 건설하다가 끝을 맺지 못한 상태로 있는 저수지를 못 잊어서였다. 어떤 사업을 일으키면 거기 속속들이 빠져들고야 마는 뛰어난 장인(匠人) 같은 인물.박 혁 : 용제 어른의 아들이며, 박훈의 사촌 동생. 울분을 참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 기는 적극적 성격의 인물.당손이 할아버지 : 고전적 도리(道理)의 인물.흥 수 : 이중 성격의 기회주의자삼 득 이 : 단순하고 힘센 곰 같은 청년공 작 원 : 전형적인 공산당 조직의 하수인(3) Setting공 은 후손이라는 뜻이다. 박훈의 고향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념의 도입으로 인해 질투하고 증오하고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것은 형제와 다름없는 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범죄이다. 그러나 이러한 범죄는 박훈의 고향 마을에 국한되지 않는다. 삼팔선 이북 지역 전체에서 일어난 일이며, 나아가 삼팔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우리 민족 안에서 빚어진 질투, 증오, 살인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 안에서 빚어진 이런 비극과 범죄는 카인과 아벨, 아담과 이브에게로 소급되어 인류의 원죄와 연결된다. 소설 ?카인의 후예?는 그렇듯 해방 직후 평안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을 인류의 원죄까지 연결시키고, 또 거꾸로 인류의 원죄라는 거대한 주제를 평안도 시골 마을의 조그만 사건으로 상징화시키는 작업을 해냈다. ?카인의 후예?는 역사적 사건을 보편적 의미로 확대시켜 형상화한 훌륭한 작품인 것이다.(2) Point of View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3) StyleDiction : 주로 외연적인 어법 사용Imagery : 오작녀의 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많은 이미지들이 사용되었다. 특히 큰 애기 바위 전설을 통하여 오작녀의 사랑을 잘 나타내었다. 도련님에 대한 사랑 을 못 이루고 바위가 되어버린 여종의 넋과 같은 붉은 진달래와 뻐꾸기 울음소 리는 오작녀의 한의 정서와 아름다움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그녀의 변함없이 계속되어온 사랑은 망부석으로 대변되어지는데 비록 그녀가 임자가 있는 몸이 지마는 지아비에게 결코 가슴을 허락하지 않는 것과 같은 모습들이 바로 그러 한 것이다.Syntax : 단문 > 장문, 홑문 > 복문(4) Tone등장인물에 대한 태도 : 객관적독자에 대한 태도 : 객관적소설사적 의의시대를 증언하는 문학소설은 시대를 증언하는 기능과 예술 형상화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래서 소설(또는 문학)을 반(半)예술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카인의 후예”는 시대를 증언하는 역할에 상당한 무게를 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카인의 후예”를 읽으면 해방는 태도이다.“카인의 후예”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거울에 비치듯 보여 주면서도 아주 객관화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작가의 주관이 어느 정도 가미되어 있다. 즉 “카인의 후예”에서는 박훈을 비롯한 지주 계급 쪽에 조금 더 비중을 두고 작품을 전개했다. 또한 작품 내용의 입장에서 볼 때 작가가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그 시대의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삼팔선 이북에 자리 잡은 공산당 지도부는 혁명처럼 갑작스러운 변화를 일으켰다. 과거의 상층 계급을 갑작스럽게 하층 계급으로 끌어내리고 과거의 하층 계급을 갑자기 부상시켜 놓았다. 오랫동안 지녀 온 풍속과 관행도 갑작스럽게 깨 부숴 놓았다. 사회는 가둬 놓았던 물을 별안간 쏟아 낸 듯한 그리고 물길을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혼란이 일어났다. 급하더라도 순리에 따라 해야 하는데 그러한 변혁은 순리와는 상관없는 무리와 억지여서 부작용이 낙석처럼 떨어져 굴러다녔다. 또한 친밀하던 인간 관계가 갑작스럽게 깨어져 적대 관계로 바뀌고 폭력과 살육이 자행되었다. 따라서 양식과 지성을 갖춘 작가로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개성적인 성격 묘사이 작품에 빛을 더해 주는 것은 등장 인물의 성격 묘사이다. 특수한 예를 제외하고는 소설에는 필수적으로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는 등장 인물을 통해서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 또는 작품 속의 해설자는 ‘작가의 대리인’이라고도 말해진다. 그러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뚜렷한 개성으로 부각되지는 못한다. 어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개성을 지니지 못하고, 사건을 진행시키고 매개하는 역할만 담당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는 작가가 인물 성격 부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인물 성격 묘사를 게을리 했기 때문에 생긴다. 어쨌든 성격이 잘 묘사된 인물은 소설에 생기와 흥미를 더해 주고 소설을 풍요롭게 한다. “카인의 후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뚜렷한 개성을 지녔다. 주인공 격인 박훈은 전형적인 지식인의 한훈네 집 토지를 관리하는 마름일 때는 소작인에게는 냉혹하면서도 지주에게는 개처럼 충성스럽더니, 해방이 되고 세상이 뒤집어져 지주가 괄시를 받고 매도되는 상황이 되자 주저 없이 공산당에 붙어 과거의 주인인 박훈을 앞장서서 비난하고 매도한다. 한편 오작녀의 남편은 건달이면서도 나름대로 멋과 의리를 지닌 시대다. 박훈의 삼촌 용제 어른은 토지를 몰수당하고 끌려가 광산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주도해 건설하다가 끝을 맺지 못한 상태로 있는 저수지를 못 잊어서였다. 어떤 사업을 일으키면 거기 속속들이 빠져들고야 마는 뛰어난 장인(匠人) 같은 인물이다. 용제 어른의 아들이며, 박훈의 사촌 동생인 혁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적극적 성격의 인물이다. 그 밖에 고전적 도리(道理)의 인물 당손이 할아버지, 이중 성격의 기회주의자 흥수, 말 없고 단순하고 힘센 곰 같은 청년 삼득이, 전형적인 공산당 조직의 하수인인 공작원 등, 수많은 등장인물의 다양한 성격을 뚜렷하게 색색으로 구별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인물들은 그냥 성격만 다른 것이 아니다. 해방 직후 평안도 순안 부근의 어느 시골에 몰아 닥친 공산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 상처 입거나 죽지 않으려고 허둥거리는 모습으로 부각된 인물들이다. 격변기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해 가는가. 물론 성격에 따라 자기 나름의 대응을 하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거꾸로 대응하는 과정을 통해서 각자의 독특한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격변기에 적응하고, 적응하려고 허둥거리고, 적응하지 못해 낙엽처럼 떨어져 짓밟히는 사람들은 앞선 시대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이 소설이 마치 정말로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 것 같이 실감나는 것은 등장 인물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각기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소설은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이 다른 인물과 사건을 만들고, 그 사건은 다른 사건의 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