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10대광고대상 : sk텔레콤10대 대상의 이 광고는 워낙에 금방 바뀌고 광고의 버전이 조금씩 달라지가 때문에 대충 최근의 sk텔레콤광고를 대상으로 하겠다.첫째, 입에 붙는 멜로디와 멘트이다. 실제 10대를 대상으로 가장 인상적인 광고가 뭐냐고 물었을 때 바로 “콸콸콸”이라는 이 광고의 멘트를 말했을 정도로 10대광고에게 멜로디와 멘트는 중요하다. 딱 그 광고를 대표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멘트도 단 한마디로 끝날 정도로 간결해야 한다. 그 멘트로 여러 가지 패러디가 가능해야 할 정도로 간결한 멘트는 중요하다.둘째, 메시지의 은유성이다. 광고주가 전하고자 하는 멘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은유적인 영상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한다. 콸콸콸 물 흐르는 영상은 인터넷속도의 스피디함을 은유하고 현재 양이 모여 있다가 흩어지는 영상은 보유할 수 있는 테이터양이 많음을 은유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광고 속에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은유적으로 세련되게 깔아야하며 그렇지 못한 광고는 “촌스럽다”라고 인식되어 눈길을 끌지 못한다.세 번째, 디테일이다. 30대 이상의 광고에서 주 광고대상을 방해할 만한 배경은 최대한 자제하지만 10대는 예외이다. 도무지 광고와는 상관없을 것 같은 영상, 소리, 배경을 넣는다. 아예 작은 글자로 그 배경과 노래의 출처를 명시하도 한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광고에 집중력이 높은 세대이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까지 10대가 흥미있어 할 것을 넣는 것이다. 배경이든, 노래든 10대의 흥미를 끌면 성공이기 때문이다. 그 흥미를 끄는 대상이 굳이 광고대상이 아니라도 상관없이 말이다.Ⅱ. 20대 광고대상 : the faceshop첫째는 빅모델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어떤 모델이 광고했는가? 그 모델이 그 광고와 이미지가 맞는가가 중요하다. 어떤 모델이 광고했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더더욱 빅모델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광고모델에 민감한 세대이기에 선호도 높은 광고모델과 찰영한 광고가 상영한 이후에 판매량이 많이 상승했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은 20대 광고의 두 번째 특징과도 맞물린다.두 번째 특징은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효과를 본다는 30대 화장품광고와 달리 20대 대상의 화장품인 페이스샵이나 미샤나 토리모니나 특별한 화장품의 효과에 대해서는 광고하지 않는다. 그저 촉촉하다. 산뜻하다 이런 대략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어 광고한다. 아마도 특별한 화장품을 효과를 기대하는 나이가 아니고 이미지로 제품을 고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배경, 스토리 라인과 더불어 빅모델이 필요한 것이다. 십대의 광고가 단발적인 영상이 위주라면 20대의 광고는 좋은 배경과 더불어 약간의 스토리라인이 들어가서 이미지를 형성해 낸다는 특징도 있다.Ⅲ. 30대~40대 광고대상 : SK230~40대 대상의 광고이며 30~40대에게 가장 어필하는 광고이다.우선 이 광고의 모델로 40대이나 전혀 40대로 보이지 않는 모델 김희애를 계속 고수하고 있다. 30대는 김희애의 원래 나이를 안다. 그래서 시청자는 김희애씨가 SK2제품을 꾸준히 사용하여 정말 효과를 본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도 이 제품을 사용하면 자신도 김희애와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그리고 또 중요한 특징은 모델을 꼭 한국인으로 쓴다는 거다. SK2는 분명 일본제품이다. 하지만 그냥 별다른 생각없이 이 광고를 보거나 쓰는 사람은 이 제품의 국적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30대가 되고 나서야 알았는데 30대는 외제를 좋아하지않는다. 어려운 설명이나 다른 사용법이 딱 귀찮다. 또한 국산에 대한 선호도가 나이가 들수록 높아짐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20대가 주 모델인 화장품은 제품명이나 모델에서 이 제품이 수입산임을 살짝살짝 드러내지만 30대 이상의 제품에서는 전혀 국적을 알 수 없도록 광고를 한다. 실제 SK2는 초창기부터 한국인모델을 계속 고수했지며 제품명등에도 전혀 국적을 알 수 없도록 하고 있다.이 광고의 특징은 모델 뿐 아니라 직접적인 멘트에도 있다.몇 년째 계속된 SK2의 광고는 계속 달라졌지만 스타일은 똑같다. 바로 김희애의 직적접인 멘트다. 김희애는 존대말을 하지 않는다. 반말을 한다. 그것도 확신에 찬 자기 중심의 반말을 한다. 지금 멘트는 “시간, 되돌릴 수 있어”이다. 이전에도 이 비슷한 멘트였던 걸로 기억한다. 광고 내내 김희애는 반말은 아니더라도 친근한 어투로 조곤조곤 말한다. 광고가 하고자 하는 말을 직접적으로 시청자에게 이야기한다. 30대 이상의 시청자에게 10대나 청소년이 선호하는 시각적 효과나 숨어있는 의미찾기, 궁금증 남기기 등은 귀찮은 거다. 그래서 광고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렇게 시청자에게 직접 말하듯이 전달한다.
‘미술감상과 비평’이라는 과목을 듣고 있는 학생으로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나에게 그림이란 그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의 수준에 불과할 뿐 그 속에 담긴 의미나 깊은 배경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것이 없다.그래서 이 과제를 받고서 참으로 망설였다. ‘아는 것이 이정도 밖이니 봐주세요.’ 라는 애교섞인 뻔뻔스러운 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노력한 흔적이라도 이쁘게 봐달라며 논문과 논평을 솎아 내여 베낀 글을 쓸 것인가 사이에서 말이다. 그렇게 망설이다 부족하니 부족한 것을 어찌할 것인가 싶어 모를 글들을 베껴서 써내기 보다는 솔직하지만 부족한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생각과 느낌을 써내려 가되 모르는 것에 있어서는 홋타 요시에의 ‘고야’의 도움을 받았다.고야의 작품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고야를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이었다. 마드리드에 갔으니 별다섯개 관광코스며 루브르박물관, 내셔널갤러리와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이라기에 프라도미술관에 방문했을 뿐이었다.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에도 나의 기본바탕은 일천했으니 그저 ‘옷벗은 마야’보다 ‘옷입은 마야’가 더 요염하다더라, 꼭 봐야할 작품은 ‘5월 3일’이나 꼭 찾아보자 정도였다.연대기 순으로 진열된 프라도미술관에서 지도를 보며 찾아간 고야코너의 첫방에서 내 시야를 바로잡아버린 작품은 처음 본 고야의 작품 ‘양산’이었다. 그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나에게 그의 양산 은 이 작품은 내가 아는 ‘그 고야’의 작품이 아니었다. 제법 컸던 이 작품은 방 분위기를 화사하게 바꿔놓을 만큼 밝은 작품이었다. 그림1))그 격렬하고 거친 그림을 그린 그 사람이 이렇게 화사한 작품을 그렸던 말인가 하고 별 의미없는 작가였던 고야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이 작품은 고야의 초기 작품으로 귀족의 의뢰대로 그린 그림이지만 초기에 이렇듯 화사한 작품을 그렸던 사람이 왜 변해갔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그의 그렇듯 밝은 작품은 양산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다음해에 그린 눈먼 기타 연주자 또한 주위는 어두움에 물들어 가지만 세상의 맑고 정겨운 모습을 담아낸 일명 ‘따뜻한 작품’이었다.그림2))동글동글한 얼굴의 밝은 표정, 아름다운 옷 색깔... 처음 만난 고야의 작품은 벽에 걸어놓고 장식을 해도 괜찮을 그런 정겹고 따뜻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로 프라도미술관 내 기념품가게에서 그의 양산은 정말 많이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였다.그러한 나의 생각은 그의 먹어가는 나이만큼 지나간 방들에서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야의 대표작이자 문제작들 중 하나인 샤를4세의 가족 초상..그는 이 가족의 후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족들의 어리석음을 비꼬는 것을 빠트리지 않았다. 누가 봐도 조롱하는 듯한 이 작품, 그는 참 신기한 사람이다. 이렇게 용감하게 행동할 수 있다니. 그림3))난 점점 그에게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호기심을 가지게 하던 작가에서 이제 호감을 가지는 작가로 변해갔다. 이 작품 외에도 그의 유명한 작품 ‘1808년 5월 3일’을 통해 그는 세상사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생생한 살아 있는 작가임을 증명했다.후원을 받지 않으며 과감하게 비판하는 작품을 그리는 것은 그래도 쉬운 일이다. 그처럼 이렇게 이 가족들의 후원을 받고 있는 처지에서 이렇듯 그들의 비웃는 작품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그의 높은 자존심과 용기때문에 가능한 것이다.이때부터 난 그와 나를 비교하여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도 과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그처럼 자신의 작품에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을까?나에게도 고야가 양산을 그리던 시절처럼 세상의 밝은 면만 보고 용기와 자신감으로 팽팽하게 가득차 있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에 대한 투지나 미움이 없었다. 왜나면 세상이 나에게 활짝 팔을 펼칠 것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림4))하지만 점점 나이를 들어갈수록 세상은 어떻던가?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하지 않았다. 세상은 나에게 점점의 좌절과 타협을 강요했다. 그러한 세상에 맞서 조그만 반항이라도 하려고 하면 그 결과는 만만치 않았다. 그러한 여러번의 경험을 눈물로 씻어내리고서는 타협을 택했다. 그렇식으로 희망과 패기로 반짝이던 나 자신을 변화시켜갔다. 남들도 다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자신을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회색빛 칙칙한 모습으로 색칠하는 건 너무나 마음 아프고 힘든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무력한 나 자신, 용감하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하곤 했다.고야의 이 시기까지의 작품을 볼 때 내가 느낀 것은 나의 이렇게 퇴색해져 버린 인생이었다. 그는 타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여전히 날카롭게 자신의 용기를 꺾지 않았던 것이다. 난 그런 용감한 고야에게 은근한 존경심을 느끼기 시작했으나 그런 나의 짧은 감상은 오래 가지 못했다.일명 검은 그림이라고 부르는 말기의 연속 작품을 접하고 나서는 참으로 많은 생각하게 되었다. 고야는 중병에 시달리며 귀머거리가 되어 일명 귀머거리집에 머물며 말년에 어두운 내용의 그림을 연속적으로 그렸는데 이 그림들을 고야의 검은 그림이라고 부른다. 많은 생각이라고 표현하지만.. 그림에 대해, 작가에 대해 이렇게 깊이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생각 속에는 그림 한 장, 한 장에 대한 것이 아닌 고야라는 한 개인에 대한 의문과 깊은 동정이 포함되어 있었다.그림5))간단한 그림이지만 정말 보는 이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몽둥이를 든 남자이다. 이 둘은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우고 있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 지도 알 수 없지만 너무나 치명적인 무기를 들고 싸우고 있다. 그 둘은 이미 무릎까지 늪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이 싸움의 결말과 상관없이 이 둘은 죽지만 그것도 모르고 서로만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