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여성의 지위 변화-서론-본론1.중국여성지위의 변화와 발전1)원시사회에서의 여성지위*여성지위의 전환①여성의 숭고한 지위②여성지위의 하락2)봉건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피억압적 지위①가정에서의 낮은 여성지위②결혼 자주결정권의 부재③출산 도구로서의 여성④신체적 학대를 받던 여성⑤경제권이 없는 여성3)남녀평등 사상의 맹아와 발전2.여성지위의 발전추세*발전의 전체 동향①성별규범의 현대화②남녀역할의 전환③가사노동의 사회화와 현대화④사회직업의 다양화⑤가정과 사회의 민주적 결정3.한?중?일 여성지위1)가정 내 지위비교①가사분담②부부관계 평등에 대한 법체계③재산권2)경제적 지위비교①법적제도②여성의 취업활동3)정치적 지위비교①참정권②정치참여 부분-결론-서론인류역사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전환한 이래 여성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에 비해 불평등한 대접을 받고 살아왔으며, 봉건사회의 몰락과 근대국가의 성립은 여성의 지위에도 변화를 예고하였다. 이제 과거의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구분했던 경계는 지금 명백히 무너지고 있다. 현재 여성은 과거의 여성이 아니라 당당한 사회활동의 주체로서 변화하고 있다. 그렇게 변화하고 있는 한국, 중국, 일본 여성의 의식과 지위는 어떻게 다를까? 잘 나가는 엘리트 사회에서가 아니라 평범한 가정에서도 여성들의 사회 진출 욕구와 함께 독립적인 의식 구조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여성교육 기회의 증대, 산업화에 따른 사회, 경제 및 가족구조의 변화, 여성해방운동과 여성학이라는 학문의 보급 등으로 인하여 여성의 자아실현 욕구는 증대되었고 많은 여성들이 사회참여를 통하여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추진되어온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전반적인 경제수준은 많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택마련의 어려움, 자녀교육비의 증가, 일반적 생활비용의 증가 등으로 인하여 한국사회에도 한가정의 생계유지를 위해서는 부부양쪽의 수입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즉, 사회의식의 변화로 보나 경제현실로 보나 여성의 취업활동에 대한 때문에 모계씨족사회에서 여성은 조상과 같은 존경을 받는다.둘째, 여성은 씨족사회에서 주체적인 지위를 형성하였다. 모계 씨족사회와 상응하는 혼인관계는 군혼제이다. 모계씨족 초기의 혈족혼, 그 발전기의 족외혼, 모계에서 부계 씨족사회로 바뀌는 시기의 대우혼 등은 그 혼인 방식이나 가정형태 면에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모두 군혼제에 속한다. 이러한 군혼제 하에서의 결혼생활은 남편이 아내를 따르는 형태로, 남편이 아내를 방문하거나 남편이 아내 집에 들어가서 사는 방식을 취한다. 자녀는 어머니는 알지만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으므로,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이것이 바로 모계 사회를 규정짓는 중요한 특징이다. 따라서 모계 씨족내의 친자관계는 모자관계만 있을 뿐, 부자관계는 없었다. 재산도 모계 상속제를 실시하여 모계에 의해 전승되었다. 남편이 아내의 결정에 따르는 것, 아내의 집에 들어가서 사는 것과, 자식이 어머니의 姓을 따르는 것, 어머니 거처에서 함께 사는 것 등은 모계 씨족사회에서 여성이 주체적인 위치에서 존경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셋째, 여성은 ‘출산의 여신’으로 받들어졌다. 원신인의 생활환경은 매우 열악하여 사람의 사망률은 높고 생존율은 낮았고 수명 또한 짧아서, 노동력의 재생산은 씨족의 흥성과 사회의 발전에 결정적 의의를 지닌다. 여성은 자속번성 및 씨족 번성에 크게 공헌하였기 때문에 많은 존경을 지녔다. 게다가 원시인은 무지몽매하여 여성을 생명의 화신으로 여기고 신격화시켜 ‘출산의 여신’으로 받들면서 더욱 숭배하였다.넷째, 여성은 생산 활동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모계 씨족공동체사회에서 남자는 수렵, 여자는 채집을 하는 성별에 따른 분업을 실시하였는데, 남자는 사냥감을 찾아 사방 돌아다녔으나, 수확물이 극히 적어 안정적이지 못했다. 반면 여성이 담당한 채집량이 비교적 많아 안정된 생활을 꾸릴 수 있었는데, 이렇듯 여성의 노동에 의한 수확물은 씨족 구성원의 중요한 생활 기반이 되었으므로 생산적인 지위에서 여성들은 존경을 그 영향력도 커서 여전히 중국 전통사회와 사상의 전형적인 모델을 대표한다. 이천여년간 봉건사회제도가 어느 정도 변화하긴 하였지만, 아직도 그 본질적인 면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소유제와 국가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며, 계급이 엄격한 종법제도는 여전히 시행되었고, 남존여비의 근본원칙과 삼강오륜 삼종사덕의 도덕기준이 통하고 있어서 남녀 양성의 관계에서 말하자면, 여성은 사회나 가정에 있어 그 지위가 시종 낮았다. 이는 다음 다섯 가지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봉건사회에서의 여성의 피억압적 지위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①가정에서의 낮은 여성지위봉건 가족제도 하에서 가부장제와 봉건적 도덕규범이 철저히 적용되었으므로 가정에서 남녀는 주종관계 혹은 귀천관계를 형성하였다.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냉대를 받아 그 지위가 남성보다 낮았는데 먹고 입는 것이 다르고 남성과 불평등하게 길러졌다. 여자는 “결혼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라야”한다는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따를 것을 강요했으며, 일생을 남자에게 예속되어 그 지배를 받으며 복종하고 노역하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출가 전에는 딸로서 아버지를 최고로 여기고 아버지가 시키고 결정한 대로 따라야만 했다. 출가 후에는 아내로서 남편을 최고로 여기고 그의 지배를 받아야만 했다. 아내는 일생동안 오직 ‘공경’만을 염두에 두고 남편을 섬기고 시중들어야 하며, 남편의 노리개로, 때로는 자식을 낳아주는 도구가 되었다. 심지어 남편은 아내를 사유물로 취급하여 팔거나 남에게 양도하거나 저당잡일 수도 있으며 순장까지 자행하였지만, 아내는 반항할 힘이 없기에 갖은 모욕을 참으며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부부간에는 부창부수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주인과 종의 관계였다. 남의 며느리가 되면 반드시 효도를 다해 시부모와 웃어른을 섬기고 공경해야하며 하루 종일 조심스럽게 행동하면서 무조건 맹종해야하며, 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견디며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하고 항상 웃는 얼굴로 온갖 방법을 다침서들은 여성의 언행, 복장, 표정, 몸가짐에 대한 엄격한 표준을 제시하여 철저히 지키도록 강요하였다. 이러한 것이 여성의 정신을 얽어매는 족쇄가 됨은 물론, 여성의 신체적인 발육과 성장마저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특히 중국특유의 발을 감싸서 동여매는 전족(纏足)이란 봉건악습은 여성의 신체가 건강하게 발달할 수 없게 하였다.중국의 ‘전족’은 五代의 南唐에 기원한다. 남당의 후주(後主) 이욱(李煜)이 향락적 목적으로 후궁 요낭에게 비단으로 발을 감싸서 동여맨 뒤 흰 양말을 신고서, 금으로 만든 연잎 위에서 나폴나폴 춤추게 하고 이를 보며 즐겼다. 전족은 봉건통치자들이 여성을 희롱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여러 차례 전족을 금하는 법령을 내렸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작은 발을 선호하였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전족을 하였다. 여자아이가 4~5세가 되면 전족을 시작하는데, 발끝이 뾰족하고 초승달처럼 굽은 모양의 전족이 완성되기까지 지독한 고통을 감내하여야만 했다. 전족한 여성은 발이 작아 제대로 걸을 수 없어서 벽을 짚고 다녔고, 꿇어앉아 일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일상생활과 생산 활동에 큰 불편을 겪게 되었고, 수많은 여성들이 이로 인한 장애로 노동능력을 상실하였다. 천여 년 동안 무수히 많은 여성들이 전족의 악습으로 인하여 평생 정신적 고통을 받거나 기형적 육체로 고통스럽게 살아야만 했다. 이것은 중국 봉건사회가 여성의 신체를 속박하고 학대한 좋은 예이다.⑤경제권이 없는 여성봉건사회에서 여성의 생활환경은 노예사회에 비해 다소 개선되기는 했지만, 그 소유물로서의 지위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출가하기 전에는 아버지의 재산이었고, 출가해서는 남편의 사유물이었다. 봉건 가부장제의 가정에서 처첩, 자녀, 노비 등은 모두 가장의 소유였으므로 가장은 마음대로 지배하고 처와 딸을 팔수도 있었다. 계집종의 경우 더욱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었다. 농민의 처녀와 여식은 지주의 유모나 계집종이 되어 무참하게 유린당하고 가혹하게 착취당하기 일쑤였다. 여성에게는 봉건사회에서 밤낮으로 린이의 보호, 노동자 지지 등의 구호를 내세웠다. 여성을 봉건사회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매우 힘썼으며, 여성의 학대, 전족, 여아살해 등의 봉건악습에 반대하였고, 여성이 가정을 벗어나 사회활동과 정치나 전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호하였다. 이 시기에 여성은 남성과 평등한 경제지위를 획득하게 되었고 여성의 정치지위와 교육수준을 제고시켰으며, 정책과 실천에서 여성의 권리 보장이 현저히 나타났다.이러한 일련의 노력들은 봉건 종법제도와 윤리도덕의 반대,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남녀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서 봉건 전통의 속박과 여성을 노예화하는 노역의 규범을 타파하고 폐지시키는데 어느 정도 충격을 가할 수 있었으며, 남녀평등의 새로운 규범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이것은 역사의 커다란 발전이며 현대 남녀평등을 향해 힘찬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한계성으로 말미암아 그 작용은 일정정도 상에서 그리고 일부지역에서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어서, 이렇게 낡은 것을 타파하고 새로운 것을 세워 나가는 것은 하나의 점진적인 과정일 뿐이었다.2.여성지위의 발전추세여성의 지위는 특정시대나 사회의 특수한 상황에 따라 그 발전의 속도가 빠르게 혹은 느리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 발전은 규칙이 있으며, 전반적인 추세는 향상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은 그 지위가 점점 남녀평등으로 나아가는 추세이며, 평등의 수준 또한 계속 향상되고 있다. 중국 여성의 지위를 전망한다면, 매우 낙관적이긴 하나,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아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하겠다.*발전의 전체동향중국은 지금 개혁과 개방을 심화, 확대시켜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며 고도의 문명과 민주를 건설하는데 매진하고 있으며, 중국 사회를 새로운 수준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 힘입어 중국여성의 지위를 현재의 기반 위에서 계속 발전시켜 남녀 양성 관계의 조화와 협조 자유와 민주를 실현하여 진정한 의미의 남녀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여위
중국과 우리나라의 차 문화2005311022 임세희1- 서론2- 본론1. 차의 발생1) 차의 역사2. 재배3) 차의 효과2. 중국의 차문화1) 음식과의 관계2) 지역과의 관계3. 차의 종류1) 제다법에 따른 분류2) 품종에 따른 분류3) 기타, 혼합차의 분류4) 차잎색에 따른 6대 차엽 분류5) 차의 채엽 시기에 따른 분류4 .중국 10대 명차5. 우리나라의 차1) 차의 역사2. 우리나라 차가 쇠퇴한 원인6. 우리나라 차의 종류7. 차와 덕성론德性論8. 맺음말1. 서론고대든 현대든, 폐쇄된 환경 또는 개방된 사회를 막론하고 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매우 많다. 또한, 차로 인해 발생한 미국의 독립전쟁과 청과 영국의 아편 전쟁 같은 일화는 차가 인간생활의 필수적인 기호음료로서 인류문화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음을 알려준다. 차가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차에 취한다. 사람들은 문언(文言)이나 그림을 사용해 차를 전했고 예찬했다. 차가 비록 커피 콜라와 같이 세계 3대 음료의 대열에 들어가 있지만, 커피와 콜라는 단지 음료로써 기껏해야 손님을 대접하는 도구일 뿐이다. 차는 오히려 다르다. 차는 결코 하나의 음료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중국인이 차를 마시는 것은 단순하게 갈증 해소를 위해서가 아니고, 한국사람 또한 그러하다. 차는 이미 자신의 고유한 물질적 속성을 초월해, 하나의 정신적 영역으로 진입해 일종의 수양, 일종의 인격적 역량, 일종의 경지가 되었다. 이렇듯 차는 인간과는 떨어져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일상생활에 늘 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인간과 함께 해온 차의 유구한 세월과 사람의 정신을 취하게 하는 갖가지 차에 관한 흥미를 되새겨 보도록 한다.2. 본론1. 차의 발생1) 차의 역사차란 차나무의 싹과 어린잎으로 만든 음료이다. 중국 고대의 적지 않은 차에 관한 기록들이 야생 큰 차나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동군록(桐君錄)』에는 “남방에 큰 나무가 있는데 명(茗)과 비슷하고, 매우 쓰고 떫다.3도 이상 되고 강우량이 1,400mm이상 되며 봄과 여름 생육기에 강우량의 25%이상 오는 곳이 생육적지이다.약간 냉량하고 안개가 짙은 지역의 차는 녹차용이로 좋고, 온난지대에서 생산되는 차는 홍차를 만들면 좋으며 고산지대에서 나는 향기가 좋아 청차용으로 쓰인다. 양분이 많고 배수가 잘되며 토양 반응이 ph5~6인 약산성 땅에서 잘 자란다. 중국에서는 신농씨가 발견한 이후 재배되고 있으며, 일본은 서기 805년에 중국에 유학한 스님이 종자를 가져가 재배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서기 7C 신라 덕성여왕 때 전래되었으나 서기 828년 ‘신라 흥덕(興德王) 3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金大廉)이 소엽종 종자를 가져왔다. 임금의 명으로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위치한 쌍계사(雙溪寺)를 중심한 계곡에 심게 했다’고 삼국사기에 김부식이 기록했다.3) 차의 효과차잎에는 3백여 종의 화학 성분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페인, 타니산, 카테킨, 아미노산, 당류, 비타민, 정유, 미네랄 등이 들어 있어 단맛, 쓴맛, 떫은 맛, 신맛, 짠맛을 내기에 이를 ‘인생살이’에 비유해 말하기도 한다. 차는 예로부터 독을 없애고, 화를 내리며, 담을 없애고, 설사를 멎게 하며, 피를 멈추고, 머리와 눈을 맑게 하며, 번뇌를 없애 마음을 맑게 하며, 소화를 도우며 술을 깨게 하고, 몸의 기름기를 없애 몸을 가볍게 하고, 대변과 소변을 편하게 하고, 몸에 있는 습기를 이롭게 하고, 바람을 없애고 땀을 잘 나게 하고, 갈증을 멈추게 하여 진기를 생기게 하고, 열을 내리고, 더위를 없애고 오래 먹으면 몸에 이롭고 오래 산다고 하였다. 실제로 차의 임상응용효과는 당뇨병, 세균성이질, 위장염, 황달형 간염, 고혈압, 관심동맥질환, 동맥경화, 눈병, 일부 피부염, 방사능으로 인한 상해 등을 치료하며, 충치예방, 혈중지방 감소, 다이어트, 더위를 막고 체온을 낮추는 기능이 있다.2. 중국의 차문화1) 음식과의 관계당나라 전의 차는 음료라기보다 약초의 일종으로 인식되었다. 차가 일상적녹차, 청차)과 떡처럼 만드는 병다법(餠茶法: 떡차, 돈차)이 있다.(1) 부초차(釜炒茶)의 종류찻잎을 볶는 정도에 따라서 차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 찻잎을 반(50%)미만으로 볶는 것을 덖음과정이라고 하고 반이상을 볶는 것을 볶음과정이라고 하여 덖음차와 볶음차로 구분한다. 찻잎을 전혀 볶지 않고 햇볕에 말려서 만드는 일쇄차(日殺茶)로부터 약간만 덖는 덖음차 (설록차, 반야차, 쌍계차)와 반쯤 볶는 볶음차(작설차, 유비차, 초의차)와 강하게 볶는 볶음차 (수미차, 보향차, 화개차)가 있다.(2) 증제차(蒸製茶)의 종류찻잎을 수증기로 찌는 정도에 따라서 차의 빛깔과 맛과 향이 달라진다. 찌는 방법은 시루에 찌는 법, 끓는 물에 데치는 법, 수증기로 찌는 법, 볶은 찻잎에 냉수를 한 잔 첨가해서 찌는 법, 찻잎을 뭉쳐 손으로 눌러서 찌는 법 등 다양하다. 또는 약간만 찌는 법(설록차: 덖음, 작설차), 반쯤만 찌는 법(쌍계차), 완전히 찌는 법(설록차:옥로, 돈차)등 찌는 정도에 따라 차의 구분이 생긴다.(3) 발효차(醱酵茶)의 종류찻잎의 발효 정도에 따라서 빛깔과 맛과 향기가 달라진다. 발효 방법은 일광발효, 실내발효, 열발효, 밀봉발효 등이 있고 발효시기는 차를 만들기 전에 하는 선발효, 중간에 발효하는 중간발효, 차를 다 만든 후에 발효하는 후발효 등의 방법이 있다. 발효 정도에 따라서 약발효차(청차)와 중발효차(오룡차)와 강발효차(무이암차)와 완전발효차(홍차)가 있다.(4) 병다(餠茶)의 종류찻잎을 가루내거나 짓이기거나 압축시켜서 벽돌이나 떡모양을 만들어 덩어리 차를 만든다. 떡차의 모양은 다양한데 동전 모양의 돈차(錢茶)와 떡 모양의 떡차와 누룩 모양, 벽돌 모양 등 가지각색의 차가 있다. 떡차의 크기는 다양하다. 큰 것, 작은 것, 둥근 것, 모난 것, 거친 것, 정교한 것들이 있다.2) 품종에 따른 분류차나무의 품종에 따라 차 만들기에 알맞은 차의 종류가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차나무 품종이 한 종도 등록된 것이 없지만 야생차 가운데는 여러 가지 변이) 벽라춘(碧螺春) (녹차 -불발효차)중국의 녹차중 햇차로서 4월 1일을 전후로 따는데 명전차다. 소주 오흥현 동정호의 동산과 서산에서 생산된다. 벽라춘은 향기가 높고 맛이 부드러우며 잎이 가늘고 어리며 우려낸 빛깔이 벽록색이다. 만들어진 찻잎은 나선형이고 잎에는 녹용에 있는 털과 같은 것이 있다. 차색은 벽록색이고 찻잎은 소라 고동처럼 나선형이며 동정산 벽록봉 아래에서 난다고 하여 벽라춘으로 이름지었다고 한다.3) 황산모봉차(黃山毛峰茶) (녹차 -불발효차)중국 안휘성 황산은 모봉차가 생산되는 유명한 명승지로서 중국의 5대 명산 중 하나이다. 작고 흰 은빛털이 찻잎을 덮고 있는 차이지만 백차로 분류하지 않고 녹차로 분류돠며 작고 흰 은빛 털이 온몸을 감고 있어 마치 여우털이나 밍크를 온몸에 감고 있는 귀부인을 연상 시킨다. 또 높은 향기와 신선하고 부드러운 맛이 자랑이며 어린잎에는 많은 백호를 가지고 있다. 찻잎의 빛깔은 황록색이고 우려낸 탕색은 맑고 투명하며 우려낸 잎 또한 선명한 황록색을 띠고 있다. 찻잎을 넣고 물을 부으면 찻잎이 둥둥 뜨다가 계속해서 물을 부으면 천천히 가라앉는다.4) 철관음(鐵觀音) (청차 - 부분발효)중국 복건성 안계현이 주산지이며 요룡차 중의 하나로서 높은 향기가 오래 유지되고, 차맛이 달고 입안에 과일향이 나며 시원하게 해준다. 이 입안에 감도는 향기를 여느 향기와 구분하여 철음운(鐵音韻) 이라 한다. 차의 탕색은 금빛이 감도는 선명한 등황색이고 잎은 두텁다. 차잎을 말린 것을 보면 둥근 원형을 하고 있다.철관음은 다자란 잎으로 만드는데 차 가운데는 푸른빛이 나고 가장자리는 붉은 빛이 돈다. 찻잎은 일년에 4차례 걸쳐서 따며 봄에 따는 춘차, 여름에 따는 하차, 더울 때 따는 서차, 가을의 추차로 나뉘는데 대부분이 춘차가 주종이고 그 다음에 딴 차는 맛이 조금 떨어진다. 특히 추차의 경우는 맛이 떨어지지만 향이 일품이어서 추향차라고도 한다.5) 동정오룡차(凍頂烏龍茶) (청차 - 부분발효)대만의 남투현 녹곡향(鹿谷鄕)의 동정산(凍頂양을 삼기삼락(三起三落) 이라 했다.10) 보이차(普이茶) (흑차 -후발효)중국의 운남성(雲南省)에서 생산되는 후 발효차.긴압 형상에 따라 병차,전차,방차,타차,긴차,인두차,등으로 불린다.운남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드는 차로서 보이현에서 모아서 출하하기 때문에 보이차 라고 하며. 알칼리도가 높고 속을 편하게 해주며 숙취제거와 소화를 도와주는 작용을 한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에 잘 어울리며 곰팡이균을 번식시켜 만들기 때문에 특유의 곰팡이 냄새가 있다. 홍콩이나 싱가폴, 광동지방에서 주로 많이 소비되고 있으며 오래 숙성시킬수록 가격이 비싸다.5. 우리나라의 차1) 차의 역사우리나라 차의 역사 우리나라에 차가 들어온 것은 신라 선덕왕(632~647년 재위)때이지만 널리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흥덕왕 3년(828)에 김대렴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차 씨를 가지고 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은 후 부터라고 한다. 이때부터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는 호남과 영남지방은 우리나라 차의 본고장이 되었다. 차 문화는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주로 선승들에 의해 다도가 발달되어 왔다.(1) 신라시대신라시대의 차 생활을 말할 때 신라 화랑들의 차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차를 매우 좋아하였는데 고려시대의 학자인 이곡(1298~1351)의 기행문 에는 화랑들이 사용하던 차도구가 동해 바닷가 여러 곳에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현재까지도 강릉 한송정에 그 유적이 남아 있다.화랑들은 차를 나누어 마심으로써 서로 강하게 결속할 수 있었고,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 예(禮)로써 화합할 수 있었다. 이렇듯 화랑들의 수행을 돕는 데 차 생활이 한몫을 차지하였다고 볼 수 있다.신라의 차 생활은 통일신라로 이어지면서 더욱 화려한 꽃을 피우는데, 문무왕 때 김수로왕의 시제(時祭)에 차를 올린 것을 비롯해 각종의 의례에 차를 흔히 썼다는 기록이 많이 발견된다.(2)고려시대신라의 차 생활이 고려시대로 이어지면서 불교문화의 발전과 함께 더욱 융성해 왕실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다.)
1. Introduction Columbus is the first man who brought Tobacco to Europe. English palace took monopoly of the Tobacco for financial expansion. So that other imperials and governments monopolized Tobacco manufacture of their state.It slept all issues about harm of Tobacco. Tobacco was in fashion and hit from 1890S to 1900S. Later and later, people perceived that cigarette is not good for their health.Today, there are so many movements for strong regulation on cigarette making, marketing, and smoking. More and more company ban smoking in their office, and many public spaces are doing that too.Well, come and get some information about what the smoking really is.
동·서양의 이상적인 자연관 유형과 그 특징Ⅰ. 서양◎ 서양 자연관의 고찰-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을 중심으로-전통적 기독교 자연관에 대한 재해석-근대서양의 기계론적 자연관-과학주의의 팽창과 근대 이성의 비극Ⅱ. 동양◎ 동양의 자연관 고찰-모범으로서의 자연-이법으로서의 자연-생명 원천으로서의 자연-동양의 이상적인 자연관의 조건-그 밖에 동양의 자연관ⅰ도가(道家)ⅱ불교사상Ⅲ. 결론-곤경으로부터의 탈출; 동서양의 융합은 가능한가?Ⅰ. 서양◎ 서양 자연관의 역사헤라클레이토스는 일찍이 이렇게 말하였다.강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 사람에게 그 강물은 언제나 다르게 흘러들 것이다.)이 말처럼, 그리스인들에게 물의 의미는 ‘도공(陶工)의 물’이요,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들에게는 ‘서로 결합될 수 있는 4원소(물, 불, 땅, 공기)의 물’이었고, 17세기 사람들에게는 ‘물방아나 펌프’의 물이요, 갈릴레오(Galileo)에게는 ‘계량역학(quantitative Machanik)의 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자핵의 융합 반응에서 에너지를 뽑아내려는 현대 과학자들에게는 ‘중수(重水)의 물’일 것이다. 같은 물이라도, 어떤 과학 지식과 세계관을 가녔느냐에 따라, 인간에게 그 물의 의미는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인공물을 만들 듯 ‘자연’의 특성을 스스로를 창조하는 행위에서 바라보았다. 그는 자연물이든 인공물이든, 이것들의 생성 원인을 질료, 형상, 운동과 목적의 4원인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인공물들의 경우 이들의 운동인과 목적인은 이들의 개체 밖의 다른 존재자에게서 찾아야 하고, 자체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연물(생물, 4원소 등)의 경우 그들의 운동인과 목적인은 질료인이나 형상인과 함께 그 개체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에게 자연 세계는 살아서 움직이는 유기체적인 것이었다.중세의 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빌려서 하느님의 천지 창조를 설명하였다. 이들은 자연 세계를 ‘하느님의 의지’의 표현으로 보았기에 고유한 권리를 상실하게 된다.)여기서 서양의 자연관의 큰 두 관점의 대별을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서양의 고대 및 중세에 걸쳐서 목적론적 자연관의 중심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이다. 자연의 중심에는 생명이 있고, 모든 변화는 생명의 실현으로 나타난다.이와 다른 한 관점으로 기계론적 자연관이 있다. 그 모태에는 플라톤적 관점이 있다고 본다. 자연계(현상계)와 본질계(이데아계)는 이원적으로 구분되고, 이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은 자연을 죄, 육체, 일시적인 공간 등으로, 신의 측면을 구원, 초월적 영혼, 영원성 등으로 구분한다. 17세기 이후 갈릴레이-데카르트-뉴턴 등이 이의 부활과 확장의 연장선에서 기계론적 자연관을 내세웠으며(자연의 근저에 있는 것은 물체고, 그 모든 변화는 물체의 인과적인 운동으로 파악된다.), 이후 이 자연관은 서구 근대 문명의 (자연 파괴적)발전 원리가 된다.- 전통적 기독교 자연관에 대한 재해석기독교의 성서에서 태초의 에덴은 신과 인간, 자연과 그 안의 모든 피조물 간에 소외와 파괴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와 조화의 생명성이 충만한 상태의 세계이다. 하느님이 지은 이 에덴의 세계는 그러므로 지상의 천국과도 같은 곳이며 기독교인들의 유토피아적인 장소가 될만하다.그런데 서구 기독교 신앙은 에덴 회귀적인 신앙이 주류를 이루지 못했다. 에덴의 세계를 주목한다면 신, 인간과 자연, 만물의 공생적인 자연관이 등장해야 한다. 태초의 평화 상태는 생명과 더불어 장엄한 신적인 조화 질서가 있어 매력적인데 이는 철저히 무시된다.이를 무시하는 논리는 유대 그리스도교 전통에 기인한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신의 대리인이다. 그러므로 이를 남용해서 해석하면 자연을 정복하고 활용하며 다스리는 역사를 진행하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서구의 역사는 실제로 이렇게 진행되어 왔다.여기에는 플라톤 이원론의 영향도 큰 몫을 한다. 자연은 신의 상징의 반대편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천국, 영원함, 초월, 숭고함, 선, 진리, 남성성, 완성, 능동성 등등의 의미로정에서 욕구를 추구하고 그러한 자기 보존수단으로서의 힘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연은 인간에게 있어서 유용성의 체계로 여겨질 수 있다.- 과학주의의 팽창과 근대 이성의 비극인간의 욕구 충족을 만족시키기 위한 베이컨의 자연 지배적인 근대적 의식은 자연 현상들에 대한 경험적인 연구 분석과 실험을 통하여 자연 과학적 지식과 기술의 발전에 혁신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이런 자연과학적 연구 방법의 강조는 무엇보다도 먼저 중세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연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에서 벗어나서, 그 사물의사실 자체만을 바라보아야 할 것을 발하였다. 여기에 베이컨의 근대 과학 방법론이 그의 ‘우상’ 파괴의 가르침으로부터 시작하는 소이가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연구자의 가치 판단의 개입 없이 오직 현상적 사실에 대한 엄밀한 분석과 그것에 기초한 가설들의 실험적 증명만을 가장 확실한 학문적 방법으로 추구하는 자연과학적 방법이 근대적 학문 방법의 근본 원칙으로 성립하게 된다. 이러한 과학주의의 팽창은 경험적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도덕적 원리나 가치론, 요컨대, 형이상학적 주제들에 대한 학문적 열정들을 과학성이 결여된 사이비 학문으로 몰아붙인다. 이에 논리적 실증주의가 또한 20세기를 지배하는 하나의 철학으로 성립하게 된 소이를 보게 된다.l 이런 자연과학적 실증주의적 방법을 통하여, 근대 계몽주의 시대이후 목적 추구적인 합리적(도구적) 이성은 엄청난 사회 생산력의 진보를 이룩했으며,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의 생산력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베버(M. Weber)에 의하면, 이런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과정이란 소박한 자연적 분업의 단계로부터 계속적으로 합리적으로 정리, 조직 되어가는 노동 분업의 무한한 합리화의 과정이다. 노동 분업의 합리화는 노동 과정에 기계의 도입을 가져왔고 이 폭발적인 위력을 가진 기계 문명이 최근 200년 이래로 발전시켜온 생산력의 증가는 거의 무한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온 세계는 하나의 생활권으人合一이 설파되었고, 인위적인 그 무엇으로도 간섭할 수 없는 천도에 근거한 일종의 자연권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이 오랜 기간동안 축적된 동양인은 자연을 분석적, 추리적, 조직적인 이성 중심적 판단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종합적이며, 직관적이며, 개괄적인 정서중심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성정을 지닌 동양인의 자연관은 다음의 몇 가지 특성으로 나타난다.- 모범으로서의 자연유교에서 자연은 완전한 존재로 묘사된다. 완전한 존재로서의 자연은 인간이 순응하고 본받아야 할 모범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은 서양의 완전자完全者로서의 신神에 가깜다고 할 수 있지만, 거기에 인격적 주재성主宰性은 없다. 자연은 그 자체가 ‘저절로 그러함’으로써 존재할 뿐이다. 자연은 인간의 운명에 지배력을 갖지만 그것은 자연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다. 다음에서의 공자의 자연관을 읽을 수 있다.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사계절이 (질서 있게) 운행하고 온갖 만물이 다 잘 자라는데,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비유하자면 자연이라는 커다란 톱니바퀴 안에서 인간을 비롯한 만물들이 각자 자신의 크기를 가진 톱니바퀴로 맞물려 돌아갈 뿐이다. 다만 인간과 사회는 자연의 톱니天道에 맞춘 톱니天道를 가질 때 자연은 운행과 조화를 이루어 갈 수가 있다. 공자는 자연 법칙의 쉼 없는 운행을 다음과 같이 찬탄하였다.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구나.)한 순간의 그침도 없이 가고 오는 자연의 본연을 깨달아 자신의 삶의 원리로 삼을 때 인간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인 삶, 즉 자연스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연에는 완전한 존재로서 지녀야 할 덕성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그래서 성인聖人, 대인大人, 군자君子의 덕을 이러한 자연의 완전함에 의탁하며 묘사한 글이 고전에 많이 보이는 것이다. 증자曾者는 공자의 성인됨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중니仲尼는 요堯 ? 순舜을 조술祖述 하시고, 문왕文王 무왕武王을 헌장하시며, 위로는 천시天時를 따르시고, 아래로는 수토를 인습하셨다. 비유하면 하늘과 로 통한다는 것天人相通 이고, 둘째는 하늘과 사람이 서로 유사하다는 것 天人上類이다. 하늘과 사람이 서로 통한다는 학설에서는 하늘의 근본 덕성이 곧 사람의 심성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는데, 천도와 인도가 실제로 하나로 관통된다고 여긴다. 이렇게 볼 때 우주의 본체는 인륜 도덕의 근원이며, 인륜도덕은 우주 본체의 유행流行이자 발현이다. 여기서 인간의 본성은 하늘과 인간을 합일 시키는 매개이고, 우주 자연의 이법이 인간의 이법으로 전환되는 통로이다. 자연의 이법에 따르는 인간의 자연스런 삶은 곧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타고난 본성에 따른 삶을 말하는 것이다. 자연의 이법에 따르는 인간의 자연스런 삶은 곧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타고난 본성에 따르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주역』에서는 64괘를 통하여 우주의 질서와 운행 과정을 상징하였으며 우주의 운행 법칙을 원형이정으로 보았다.원은 만물이 처음 생김이요, 형은 만물이 번창하고 무성함이요, 이는 열매가 익어감이요, 정은 그 열매가 이루어짐이다. 열매가 다 익으면 그 뿌리와 꼭지가 떨어지는데 이를 다시 땅에 심어 나게 할 수 있으니, 이는 사덕이 순환해서 끝이 없는 것이다.)원형이정은 자연관에서 춘하추동 사계절의 원리가 된다. 계절의 바뀜은 모든 사물의 시작과 끝, 그리고 거듭되는 생의 근원이 된다. 주역은 자연의 참 모습을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찾았고, 자연의 이법을 강유剛柔의 작용과 음양陰陽의 변화를 통하여 드러내었다. 주역에서 자연의 이법은 인간의 이법과 상응성을 갖는다. 음양, 6효,8괘, 64괘로 중첩되어 있는 주역 체계는 우주과정이자 인생과정을 나타낸다. 주역은 기본적으로 점서적占筮的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자연의 이법으로 체계화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생명 원천으로서의 자연투웨이밍(Tu Wei-Ming)에 의하면 유교의 자연관은 존재의 연속성에 의거한다. 조셉 니덤(J. Needham)은 이를 두고 ‘자연은 제정자가 없이 질서 잡힌 의지들의 조화’라고 했다.)유교에서 자연은 만물을
The term "well-being" seems to be showing up everywhere you look in Korea these days. defines well-being as "the pervasive sense that life has been and is good. It is an ongoing perception that this time in one`s life, or even life as a whole, is fulfilling, meaningful and pleasant." Membership in a health club? It`s all about well-being. Organic produce? Same thing. Yoga classes? Condominiums? Bibimbap? Instant noodles? Believe it or not, the "well-being" label has been used to sell all of them."Organic Foods for Parties," says the "well-being" concept "is grossly misunderstood in Korea."The purpose of seeking well-being was to feel free from a materialistic, success-oriented society and seek ways to find inner peace, to cultivate one`s inner world, to define what happiness and time mean to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