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문제의 소재애당초 간도영유권문제의 당사국인 조선과 청간에는 국경이라는 것이 없었다. 조선과 청간의 국경이 처음으로 성립된 것은 1627년 정묘호란의 강화조약이었던 ‘강화회맹’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조선과 청간의 간도영유권문제가 정식으로 제기된 것은 이로부터 160여년 후 1883년이다. 그 핵심은 소위 백두산정계비상의 ‘토문’에 대한 해석에 관한 것이었다. 이 정계비상의 토문강을 청측은 두만?도문?토문을 동일한 강이라 주장하였고, 조선측은 두만강과 별개의 강으로 송화강의 지류라고 주장하였다. 이로써 그 사이의 간도지역, 즉 토문강의 동쪽과 두만강의 북쪽의 일정한 지역에 대한 영유권분쟁이 전개되었다.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양국은 1885년 을유감계회담과 1887년 정해감계회담을 가졌으나 청측의 강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보지 못하였다. 1905년 소위 한일 을사보호조약으로 일본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침탈해 갔다. 이를 근거로 대한제국을 대리한 일본은 1907년부터 1909년 사이에 청과 간도영유권문제를 위하여 북경에서 회담을 진행하였다. 일본은 이 회담의 초기부터 간도가 조선의 영토라고 주장하였으나 1909년 그들의 대륙침략정책을 위하여 돌연 전략을 바꾸어 보다 교묘한 대륙침략을 위하여 간도가 청의 영토인 것으로 하는 소위 간도협약을 체결하였다. 이하에서는 간도협약의 효력과 국가간의 분쟁해결원칙 중 국제법상의 시효제도를 검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당한 권원이 한국에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처럼 한국 정부가 그 권리주장을 중국에 공식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정당한 권원의 여부에 관계없이 시효를 통하여 간도에 대한 영토취득이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Ⅱ. 쟁점국제법적으로 1909년의 간도협약의 유효성과 현재 중국의 간도분쟁에 대한 국제법적 해결방안이 이 사안의 쟁점이다.Ⅲ. 1909년 간도협약의 국제법적 유효성판단첫째, 청일 간도협약은 국제법상 “서약은 제3자에게 해롭게도 이롭게도 하지 않는다”는 법원칙에 따라 제3국인 대한제국에는 아무런 효력을 미치지 못하고, 둘째, 일본이 간도영유권분쟁에 개입하여 간도협약을 체결하기까지 그 개입의 법적근거가 된 을사보호조약의 관계에서 을사보호조약이 조약의 체결권자인 당시 고종황제의 비준이 없었으므로 성립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점, 설사 을사보호조약이 성립하였다고 보더라도 그 체결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헌병의 위협 하에 정동의 손택호텔에 대한제국의 8대신을 불러놓고 강박을 통하여 체결한 조약이므로 국가대표에 대한 강박에 의하여 체결한 조약이므로 무효라는 점, 또 설사 을사보호조약이 유효하다고 보더라도 간도협약을 통하여 일본이 대한제국의 영토인 간도를 청에게 넘겨준 처분행위는 을사보호조약 제2조의 ‘(일본의)대한제국의 신민과 대한제국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한계를 벗어난 것이어서 무효라는 점에서 간도협약은 효력이 없으며, 셋째로 이러한 근본적인 이유 외에도 제2차 세계대전의 마무리 과정에서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일본의 항복문서조인, 샌프란시스코강좌조약, 그리고 중일평화조약 등에서 과거 일본이 제국주의 하에서 체결한 모든 조약이 무효로 되었다는 점에서 중국이 간도영유권을 법적 근거로 간도협약을 드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 따라서 이러한 분쟁상태에서 한국의 법적 근원은 중국에 비하여 월등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Ⅳ. 국제법상의 시효제도실정국제법, 즉 국제조약이나 국제관습법에는 시효제도에 대한 아무런 규칙이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실정국제법에서 시효제도가 인정되는지의 여부와 설사 인정된다 할때에도 영토 취득 또는 변경의 사유로서 시효완성의 요건의 내용에 대하여는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따라서 간도영유권문제를 두고 장차 한국 정부의 문제제기에 의하여 한중간에 분쟁이 현실화될 경우에도 시효과 관련하여 실정국제법을 원용할 수 없다. 그러나 분쟁해결과정에서 양국간의 직접 교섭이나 제3자를 개입시킨 다양한 분쟁해결방법이 진행될 경우 중국측에서 시효를 주장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설사 실정국제법에는 관련한 내용이 없다고 하더라도 판례가 그 결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국제판례에서 시효제도가 문제가 된 사건은 몇 건이 있다.그러나 국제법원이 시효에 의한 영토취득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한다든지 일반국제법으로 공인하는 것은 드물며, 실효적 점유 또는 영역주권의 계속적이고도 평화적인 표시의 한 태양으로서 시효의 논리를 채택할 뿐이다.우선 시효에 의한 영토취득과 관련한 대표적인 판례로는 태국과 캄보디아간의 프레아 비헤아 사원사건(Temple of Preah Vihear case)이 있다. 이 사건에서 시효 차단을 위한 항의의 존재 여부와 관련된 것이다. 국제사법법원은 적절한 시한 내에 당해 지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금반언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고 보고, 그 결과 이처럼 행동한 태국은 이제 문제의 지도를 수락하지 않았었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하였다.다음으로 미국과 멕시코간의 차미잘지역 사건이 있는데, 이사건을 맡은 중재위원회는 이 같은 상황에서 시효가 작용하기 위하여는 미국의 점유는 “방해받지 않고, 차단되지 않고, 이의를 제기받지 않았어야 하고(undisturbed, uninterrupted and unchallenged)" 또한 ”평온했어야(peaceful)" 한다고 전제하고, 멕시코는 여러 해에 걸쳐 반복하여 항의를 제기하였으므로 차미잘지역에 대한 미국의 행동은 이의를 제기받지 않는 것이 아니었으며, 게다가 멕시코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토를 탈환하려고 시도한다면 미국측은 폭력을 만나게 될 것인데, 이것은 미국측의 점유가 무력의 위협 또는 사용에 의존하고 있고, 따라서 평온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이 같은 상황하에서 멕시코가 단지 외교적 항의에만 의존한 것은 비난받을 수 없으며 미국의 시효취득을 막는데 충분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