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상의 익명성 문제와 실명제의 도입1. 들어가는 말2. 인터넷 상의 익명성 논의의 배경과 논쟁1) 익명성의 의의와 쟁점2) 사이버 공간과 신원3) 인터넷 익명성의 장단점과 찬반 논쟁4) 인터넷 익명성의 폐해로 인한 피해 사례3. 대응책으로서의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1) 인터넷 실명제의 등장2) 인터넷 실명제의 실효성 문제3) 인터넷 실명제의 법률적 근거4. 맺음말* 참고 문헌1. 들어가는 말인터넷(internet)의 등장은 지난 세기의 가장 주목할 만한 기술적 현상 중 하나이다. 불과 20여년 전만해도 인터넷을 아는 사람은 과학자와 학자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중 대다수는 인터넷이 의료행위부터 교육에 이르기까지 사회전반에 걸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제 인터넷은 단지 하나의 통신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특히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인터넷은 우리의 문화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고, 우리 생활의 전반에 걸쳐 다양하고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본래 인터넷은 군사적 목적)으로 등장하였지만, 지금은 우리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들어 더 이상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든 단계에 이르렀다. 현재 인터넷은 분명 우리에게 수많은 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생활의 편리함을 안겨 주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인터넷이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동안 반드시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되어 온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통신 중독, 게임 중독, 해킹, 바이러스, 인터넷 사기, 프라이버시 침해 등 여러 문제점들이 갈수록 심각해져 가고 있다.이것은 인터넷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인 익명성이라는 문제와 결부되어 갈수록 그 피해정도가 커지고 있고, 이제 새로운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분명 인터넷 상의 익명성은 인터넷을 확산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현재 이것으로 인한 문제점 또한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이제는 익명성이 간에서 만들어지고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이버 공간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직접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하는 대면(對面)적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단서 또는 기호 등이 없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익명성의 유지가 가능해진다. 신체의 직접적인 접촉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제약이 현실 세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다. 사이버공간의 특성구 분특 성매체적 특성- 탈체화(disembodiment)) 및 비가시성(invisibility)- 시공간적 축약과 확장- 양방향성 미디어- 디지털 기록과 보존성문화적 특성- 익명성(anonymity) 및 탈금제(disinhibition))의 문화- 개방성과 다양성의 문화- 초월성과 가상성의 문화- 연결성과 전파성의 문화(출처: 조동기 외 2인(2001)에서 발췌.)조동기 외 2인(2001)은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이버 공간의 특성을 매체적 특성과 문화적 특성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탈체화(disembodiment) 및 비가시성(invisibility)은 익명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람의 사회적 활동 중에 상대방에 대한 정체를 확인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실 세계는 옷차림, 목소리, 신체, 몸짓 등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해지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현실 세계에서 인간은 두 종류의 신원(identity, 정체성)), 즉 육체적(물리적) 신원과 사회적 신원을 갖고 있다. 이때의 육체적 신원은 인간의 육체를 의미하는 오직 한 가지뿐이며, 사회적 신원은 여러 개가 존재하게 된다.육체적 신원은 사람의 얼굴모양이나 체형, 지문의 형태, 각기 다른 목소리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각 사람마다 비슷할지언정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다. 또한 육체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육체적 신원은 성형수술로 얼굴모양이나 체형이 바뀌는 경우 등 극히 제한된 예를 제외하고는 때와 장소가 바뀌더라도 스스로는 변하지 않는다.그익명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판결이 잇달아 내려져 익명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준 바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미국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은 오클라호마 소재 법률회사인 ‘프리-페이드(Free-Fade)’ 법률 서비스가 '야후(www.yahoo.com)' 게시판에 글을 올린 사람들의 신상 정보를 공개해 달라는 요청을 기각했다. 개인 권리 침해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네티즌들이 '프리-페이드' 법률 서비스에 대해 불만 섞인 글을 '야후' 게시판에 잇달아 올린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이에 '프리-페이드' 측이 즉각 기업의 비밀이 누설될 우려가 있다며 '야후' 측에 글을 올린 사람의 실명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이외에도 2001년 4월 워싱턴 주 지방 법원이 웹서비스 업체인 '인포스페이스(InfoSpace)'가 익명의 게시자 이름을 공개하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기각했으며, 같은 해 7월 뉴저지주 항소법원 역시 대부분의 경우 인터넷 게시자의 익명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이처럼 전반적인 분위기는 익명성을 적극 지지하는 목소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익명성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야후 게시판 사건을 비롯해 다수의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위치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인터넷 익명성을 보장받았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들뜬 분위기이다.)그러나 이와 같은 판결들조차도 네티즌들과 기업 사이의 감정싸움을 막을 수 있는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의견도 점차 대두되고 있다. 또한 무분별하고도 근거가 불분명한 여론 형성으로 기업 또는 개인이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인터넷 익명성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재차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다시 말해,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이 여러 가지 방법이나 수단을 통해 나타나지만, 논의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문제될 수 있는 영역을 한정해 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최근 가장 문제되고 있는 인터넷 상 명예 훼손 등 사.com)’에 대해 게임 이용자 정보를 빼가는 ‘트로이 목마’) 유포지로 악용하기 위한 해킹 시도가 이뤄졌다.모 인터넷 경매 사이트와 모 일간지 포털 사이트도 동일한 해킹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세계적 인터넷 검색엔진업체 ‘구글(www.google.com)’이 일본해를 동해로 표기를 정정한 이후 국내 사이버 외교사절단인 ‘반크(VANK)’가 일본 네티즌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이처럼 인터넷은 개인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어준 현대 문명의 대표적 산물이지만 서비스가 보편화될수록 이에 비례해 각종 역기능에 따른 폐해 역시 증가하고 있다.3. 대응책으로서의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1) 인터넷 실명제의 등장사이버상의 익명성의 폐해가 우리사회에 점차 부각되면서 사이버 사회의 정화 장치가 필요하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이에 정부는 2005년 6월 15일에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주관으로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을 주장하면서 본격적인 논쟁의 불씨를 당겼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터넷 실명제는 2004년 3월 12일 개정 공포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 규정된 개념으로, 인터넷 언론사의 게시판에 선거에 관한 의견을 게시할 때 의견 게시자가 기입하는 성명과 주민등록번호의 일치 여부를 확인한 후 일치하는 경우에 한하여 의견을 게시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를 말한다.)인터넷 실명제는 들어가는 말에서도 언급했듯이 인터넷의 익명성으로 인한 역기능을 해소함으로써 사이버 문화의 신뢰도를 높이고, 자신의 글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해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인터넷 주소 자원관리법' 등을 통해 2002년 이후 공공기관이나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의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는 본인 확인을 거치도록 하는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을 계속 추진해 왔다.이러한 인터넷 실명제는 익명성의 정도에 따라 구분을 할 수 있는데, 순수 실명제와 실명 인증제가 있다. 순수 실명제는 인터넷 공간에서 실명으로만 글을 범죄자에 대한 인적 정보를 얻기 쉬워 추적이 용이하기 때문에 실질적 제재를 통한 사후 구제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다.③ 정보나 의견게재에 신뢰성 부여와 올바른 여론 수렴이 가능하다.)인터넷상에서 다수의 정보와 의견이 있지만 그것들의 진실성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또한 익명의 정보나 의견은 그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 신뢰성이 떨어지게 된다. 선거철만 되면 특정세력의 낙선운동) 및 검증되지 않은 견해들이 여론을 호도 하는 것)이 그 예라고 볼 수 있다. 자칫 왜곡된 정보들이 검증되지 않은 채 여론화되어 국론분열과 사회혼란을 초래 할 수 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정보나 의견에 더 많은 신뢰성을 부여함으로써 이 같은 폐단을 막을 수 있게 해 준다.더욱이 인터넷 실명제는 자유로운 개인의 의견 반영을 방해한다는 반대 측의 주장과는 다르게 작용한다. 다음의 용인경찰서 홈페이지의 인터넷 실명제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면 이해하기 쉽다.구 분실명제 실시 이전(99.11.29~01.11.17)실명제 실시 이후(03.1.1~03.6.30)증 감교통관련34%35%1% 증가공지(광고, 홍보)34%15%19% 감소항의(허위정보유출)5%8%27%19% 증가항의(욕설비방)3%음란물0%0%기타23%23%동일소계100%100%민원신고 등10.4%20%10% 증가 실명제 실시 이전과 실시 이후 용인경찰서 자유게시판 게재 내용 변화(출처: 용인경찰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1013건)의 내용에 따르면 교통 관련 사항과 기타 사항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광고홍보는 무려 19%나 감소하였고 오히려 항의성 글은 27%로 증가하였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인터넷 실명제가 상업적 글이나 욕설 비방에 대한 방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욕설은 감소한 반면에 항의성 글이 큰 폭으로 증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는 사회가 민주화되고 인터넷이 더욱 활성화되면서 참여정부의 국민 의견에 귀 기울이려는 정치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다시 말하면, 인터넷 실명제의 실시가 개인의아니다.
? 진화라는 개념 : 다윈의 혁명1. 다윈의 진화론의 등장과 배경? 19세기에 이루어진 세 번째 중요한 진전 -> 생명과학에 대한 이해? 진화론은 과학적인 세계관에 하나의 새로운 차원, 즉 현실적인 시간을 기준으로 한 역사 감각을 부여? 당시 뉴턴으로 대표되는 세계의 체계는 이러한 역사적인 차원이 결여됨? 당시 만물은 성서에서 묘사하듯 약 6000년 전에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었고, 그 당시에 창조된 만물은 영구적으로 고정된 것임 (따라서 변화나 진보의 성장이 들어갈 여지가 없음)? 18세기와 19세기 초 화학과 암석에 대한 연구는 성서가 말해주는 역사가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사 (화석으로 남아 있는 여러 종의 모습이 암석의 다양한 층들에서 발견된 점은 생명체도 창조설과 비교해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기간을 거쳐 진화해 옴을 증명)?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 엄청난 종류의 동물과 식물들이 지질학적 기간과 비견될 수 있을 정도의 기나긴 기간을 거쳐 연속해서 진화하여 온 것으로 설명? 자연 도태(선택)설 ->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게 된다는 것 (다시 말해, 개체 간에서 경쟁이 항상 일어나고 자연의 힘으로 선택이 반복되는 결과, 진화가 생긴다고 하는 설로 라마르크의 ‘획득형질유전론’과 멜서스 ‘인구론’ 등의 영향을 받음),「종의 기원」(과학 역사상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저서)? 다윈의 연구 중 가장 중요한 하나의 단점-> “왜 새로운 변이들이 항상 종에서 발생하는가?” 라는 지적에 대한 근거 제시 X?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윌버포스(당시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많은 지적을 했던 주교)의 바램-> 다윈의 진화론에서 말하는 경쟁법칙 외에도 유리한 변이들의 존재와 조화를 이루면서 연속적으로 후손들을 통해 그런 유리한 변이들을 축적하는 힘이 자연 속에서 활발히 작용한다는 점을 다윈이 증명해주기를 희망 (멘델이 완두콩을 통한 실험을 통해 유전의 법칙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이런 힘을 증명해내지 못함)? 멘델과 완두콩 실험 -> 우성과 열성 형질의 기초적 개념을 추출하여, 그들 형질의 유전에 대한 수학적 계산을 도입 (즉, 멘델의 유전법칙 완성)? 멘델 성과의 재발견과 진화론의 인정-> 멘델의 법칙 발견 후 35년이 지난 1900년에 마침내, 어떤 방식으로 유전이 실제로 적용되는지에 대한 이해를 통해 진화론을 정설로 받아들이기 시작 (그 후, 1930년대에 드디어 진화의 종합론으로 인정받아 오늘날 물리학에서의 뉴턴 역학과 더불어 사상의 혁신을 가져와 그 후의 자연관ㆍ세계관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침)2. 다윈의 진화론과 관련된 몇 가지 오해? 자연선택설은 다윈과 월리스의 공동작품 (일반적으로 진화론의 자연선택설 하면 다윈만을 떠올리나 사실, 윌리스라는 학자 또한 동시에 자연선택설을 생각해내고 다윈과 공동으로 발표했으나 다윈의 유명세와 뒷받침할 이론적 근거자료의 상대적 부족 등의 이유로 역사속에 묻히게 되었음)? 다윈이 진화론을 포기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 (다윈이 죽은 직후에, 호프 부인은 자신이 다윈의 임종시에 방문했으며, 그때, 그는 진화론을 포기했다고 말했으나, 그의 임종을 계속 지켜보았던 딸이 호프 부인이 다윈이 병을 앓고 있는 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으며, 자신의 과학적인 입장을 전혀 포기하지 않았다고 밝힘)? 진화론은 인간이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설명하지 않음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원숭이의 자손이라는 기술은 다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예로부터의 오해이며 실제로 진화론이 가르치는 것은, 인간과 원숭이는 수백만 년 전에 같은 조상에서 진화했다는 것임)
목차▣ 세종대왕은 어떤 인물인가 ▣ 세종시대의 주요 과학적 성과 ▣ 세종의 과학 기술 정책 ▣ 세종 시대 과학의 특징 및 한계 ▣ 결론▣ 세종대왕은 어떤 인물인가▶ 프로필 및 약력 ▶ 성장배경 및 성품▣ 세종대왕은 어떤 인물인가▶ 프로필 및 약력 • 프로필 - 1397년, 한양의 준수방 장의동 출생 - 성명 : 이도 - 시호 :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 (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 태조(이성계)의 아들인 태종(이방원)의 셋째 아들 - 비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昭憲王后) - 1408년에 충녕군(忠寧君)에 봉군, 1412년에 대군, 1418년에 왕위에 즉위 세종 (世宗) - 1450년(세종 32년)에 54세의 나이로 승하 1397 ~ 1450▣ 세종대왕은 어떤 인물인가• 약력 - 1397년(1세) 4월 10일(양력 5월15일) 태종의 셋째 아들로 한양에서 탄생 - 1408년(12세) 2월 충녕군에 책봉되고 결혼 - 1418년(22세) 6월 왕세자로 책봉 - 1418년(22세) 8월 10일 왕위에 즉위 - 1420년(24세, 세종 2년) 3월 집현전의 기구를 확장, 궁중에 설치 - 1433년(37세, 세종 15년) 8월 혼천의(천체 측정기)를 제작 - 1434년(38세, 세종 16년) 7월 동활자 갑인자와 물시계를 사용 - 1434년(38세, 세종 16년) 10월 앙부일구(해시계)를 제작 - 1437년(41세, 세종 19년) 4월 일성정시의(주야측우기)를 제작 - 1441년(45세, 세종 23년) 8월 측우기를 제작, 이듬해 5월에 측우제도 실시 - 1443년(47세, 세종 25년) 12월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언문청을 설치 - 1446년(50세, 세종 28년) 9월 (양력 10월 9일) [훈민정음](한글)을 반포 - 1450년(54세, 세종 32년) 2월 17일 (양력 4월 8일) 승하▣ 세종대왕은 어떤 인물인가▶ 성장배경 및 성품 • 주변 인물▣ 세종대왕은 어떤 인물인가• 성장배경 - 태종이 왕자의 난을 준비하려던 시기에 태어남 - 세종 2살 되던 해 : 제 1차 왕자의 난 발생 - 세종 4살 되던 해 : 1400년, 제 2차 왕자의 난 발생 - 세종 10살 되던 해 : 1406년, 8월 외삼촌 민무구 형제가 '반역음모'로 죽임을 당함 - 세종 12살 되던 해 : 1408년, 충녕군으로 책봉되고 심온의 딸 심씨와 혼인 - 세종 21살 되던 해 : 1418년, 처음 양평대군을 세자로 책봉, 하지만 자질부족으로 쫓겨나고 세종이 세자에 양위 • 호학하는 성품 - 공부벌레 - 실무가 적이고 이지적이며 실리주의적인 성품 -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 - 책을 읽을 때 다독보다는 정독을 중시▣ 세종시대의 주요 과학적 성과▶ 천문학과 역학 ▶ 농업기상학 ▶ 산업과 기술 ▶ 지리학 ▶ 의학▣ 세종시대의 주요 과학적 성과▶ 천문학과 역학 • 간의(簡儀) - 천체 관측을 위한 기구 - 행성과 별의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 - 혼천의를 간소화 • 혼천의(渾天儀) -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을 했던 기구 - 1433년(세종 15년)에 이천․ 장영실 등이 감독하여 처음 제작 - 천문역법의 표준 시계와 같은 구실▣ 세종시대의 주요 과학적 성과• 앙부일구(仰釜日晷) - 해시계의 일종 -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시계 - 세종 19년(1437년)에 정초, 장영실 등이 많은 기술자를 지도하여 제작 • 자격루(自擊漏) - 세종 16년(1434년)에 장영실 등이 만든 일종의 자동 물시계 - 조선 왕조의 표준 시계로 쓰임▣ 세종시대의 주요 과학적 성과• 옥루(玉漏) - 장영실이 만든 정교한 자동 물시계 - 1438년(세종 20) 1월에 완성되어 경복궁 안 흠경각에 설치 •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 1437년(세종19년)에 이천, 장영실 등이 만든 천문 기기 - 밤과 낮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시계▣ 세종시대의 주요 과학적 성과▶ 농업기상학 • 측우기(測雨器) - 비가 내린 양을 재는 기구 - 조선 세종 23년(1441년) 세계 최초 발명 - 서양의 측우기보다 200년이나 앞섬 • 수표(水標) - 1441년(세종23년)에서 1442년에 걸쳐 제작 - 청계천과 한강에 설치한 하천 수위 계측기 - 초기의 목재에서 후에 석재로 개량▣ 세종시대의 주요 과학적 성과• 규표(圭表) - 일년의 길이와 24절기를 알아내기 위해 사용하던 도구 • 풍기대(風旗臺) - 바람 방향과 세기를 측정 - 독자적이고 독특한 기상관측기기▣ 세종시대의 주요 과학적 성과▶ 산업과 기술 • 갑인자(甲寅字) - 1434년(세종16년)에 이천 등이 제작한 동활자 - 현재 유실되고, 다만 인쇄본이 전해짐 •『총통등록 (銃筒謄錄)』 - 화포들의 주조법과 화약사용법, 규격을 그림으로 표시한 책 - 조선시대의 화포제조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 세종시대의 주요 과학적 성과▶ 지리학 •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 - 세종 14년에 맹사성, 윤 회 등이 편찬 완성 - 그 후 개정 증보되어 “세종실록”에 수록 - 우리나라 최초의 완전한 인문지리지 ▶ 의학 •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 세종 5년에 85권을 저술 - 조선에서 생산되는 약재에 의한 의약처방들을 집대성 • 의방유취(醫方類聚) - 세종 24년경부터 편찬 시작 - 조선의약학발전의 절정▣ 세종의 과학 기술 정책▣ 세종의 과학 기술 정책▶ 과학기술발전에 대한 의욕적이고 거시적인 정책 • 천문관측기구의 부재인식 • 전문 인력의 양성 ▶ 과감하고 개혁적인 인재의 등용과 중용 • 혁신적이고 파격적으로 왕권 인재 등용 ex) 장영실 ▶ 연구와 사업의 분업화와 공동 연구 체제를 효율적으로 구축 • 천문의기 제작 사업의 분업화 • 학자들의 상호 교류 및 공동 연구체제의 기반을 마련 • 의학지식을 조직적인 협력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 ex) 의방유취▣ 세종의 과학 기술 정책▶ 기술 향상을 위한 정책적 뒷받침 • 금속활자의 활판 인쇄술 개량 • 화포의 성능개량 • 선박의 성능개량 ▶ 과학기술의 자립을 위한 노력을 강조 • 당대의 전통 탈피 • 자주적 역법의 수립 - 칠정산 내편, 칠정산 외편 • 조선의학의 학문적 자주성 성립 ex) 향약집성방▣ 세종 시대 과학의 특징 및 한계▶ 세종 시대 과학의 특징 ▶ 세종 시대 과학의 배경▣ 세종 시대 과학의 특징 및 한계▶ 세종 시대 과학의 특징 • 실용적이고 구체적 - '과학'이란 용어의 차이 - 인간에게 어떤 용도가 있는지를 전제로 추구되었던 연구 • 일시적인 활용 - 오늘날과 같은 뜻의 진정한 과학적 발달이라고 보기 어려움 - 전통 사회에서 중요한 필요성에 의해 그 시대에만 크게 발달▣ 세종 시대 과학의 특징 및 한계▶ 세종 시대 과학의 배경 • 건국 초기의 불안한 상황 • 조선 고유의 문화 창조 필요성 대두 • 안정을 향한 노력의 가시화 •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의미 = 세종 시대의 과학기술 발달은 그 시대의 독특한 필요성에서 가능했던 눈부신 업적▣ 결론▶ 세종 시대의 과학이 뛰어났던 이유는 세종대왕의 과학기술정책이 뛰어났기 때문 ▶ 세종 때 이룩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그 질과 양에서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사적인 시야에서 볼 때에도 유례가 없는 발자취 남김 ▶ 비록, 정치적 배경이 있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과학기술이 발전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러한 과학발전 성과의 업적은 높게 평가받아 마땅함 ▶ 다만, 세종시대의 눈부신 과학발전의 양상이 후대에 이어져 내려오지 못한 점은 큰 아쉬움감사합니다 ~ !{nameOfApplication=Show}
1. 닐스보어의 연보 (1)1885년 덴마크 코펜하겐 출생 1903년 코펜하겐 대학 입학. 물리학 전공 1907년 표면장력에 관한연구 덴마크 왕립아카데미 금메달 수여 1911년 금속의 전자 이론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 수여 1912년 맨체스터 대학 교수 부임 , 마그레더 뇌르룬트와 결혼, 원자모형 연구 1913년 원자구조에 대한 이론 발표 1916년 코펜하겐 대학 이론물리학 교수 1921년 이론물리학 연구소 (닐스 보어 연구소) 소장 1922년 새로운 원자구조론으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1. 닐스보어의 연보 (2)1927년 '양자이론의 철학적 기초' 연구 1930년 핵물리학 연구 1934년 '물방울'에 비유한 원자핵 모형 제시 1936년 원자핵 이론의 개요 제시 1939년∼1962년 덴마크 왕립 문학 아카데미 회장 1947년 덴마크 왕으로부터 '기사'작위 수여 1955년 코펜하겐 대학 은퇴, 원자력 위원회 회장 1957년 '평화를 위한 원자상' 수상 1962년 11월 18일 심장마비로 사망2. 닐스보어의 생애 - 초기• 코펜하겐대학교 생리학교수인 아버지와 덴마크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 유년기부터 과학에 대한 관심과 능력 - 온화하고 지적인 가정환경속에서 더욱 촉진. • 코펜하겐대학교에서 덴마크 왕립 과학 아카데미의 금메달을 받으면서 유명해짐. • 1911년 금속의 전자이론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취득. • 그후 케임브리지 조셉 톰슨과 연구를 시작하였으나 조셉 톰슨이 자신의 연구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자 1912년 3월, 멘체스터 대학의 러더 포드에게로 감. - 원자론 등장의 계기.2. 닐스보어의 생애 - 중기• 1912년 여름, 코펜하겐대학 강사가 되어, 원자모형 연구에 착수, 러더퍼드의 모형에 플랑크의 양자가설을 적용함으로써 원자이론을 세우고, 수소의 스펙트럼계열 설명에 성공. • 후에 이것은 보다 일반적인 원자이론으로 정리되어 보어의 원자이론이 됨. - 양자역학으로 발전 계기. • 1916년 코펜하겐대학 이론물리학 교수가 되었고, 강좌에 부속된 연구소 신설을 제의, 1921년 그 소장이 됨. - 새로운 물리학 연구의 중심으로서, 물리학 발전에 공헌. • 양자역학의 개발을 추진, 대응원리와 상보성원리를 제창. - 1922년 원자구조론 연구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 • 1930년경부터 연구는 원자핵으로 기울어, 원자핵을 원자의 경우에 비해 보다 고전적으로 다룰 수 있음을 지적. - 핵반응론의 출발점.2. 닐스보어의 생애 - 후기•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미국에 건너가 맨해튼계획에도 참가. • 이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원자무기의 발달에서 생긴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들 문제의 연구를 공개하도록 주장, 국제연합에 공개장을 보내는 등 정치적 행동도 취함. • 1955년 제네바에서 열린 제1차 원자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국제회의와 같은 국제적 노력을 장려했고, 유럽 공동원자핵연구소 (CERN)를 만드는 일을 도움. - 1957년 미국 평화를 위한 원자상 수상. • 1962년 7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3. 닐스보어의 특징•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 (코펜하겐정신) - 보어와 란다우의 일화, 토론을 즐김. • 물리학 연구에 있어서 협력을 중시. •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윤리를 강조, 그에 따른 정치적 문제에도 깊은 관심과 참여를 유도. •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바탕으로 세계적 활동. • 인간의 삶과 사고의 많은 측면에 관심. • 매우 가정적이었으며 자녀의 교육에도 관심. • 겸손한 태도 - 젊은 과학자들에게도 기꺼이 귀를 기울임.4. 닐스보어와 원자론• “전자는 일정한 에너지를 가진 원궤도를 돌고 있으며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방출하면 그만큼의 준위가 상승하거나 떨어진다.” • 1913년 닐스 보어가 제안한 새로운 원자론은 현대물리학의 한 축을 이루는 양자역학 출현에 커다란 역할. • 이 보어의 원자론은 고전전자기학적 논의와 새로운 양자론적 논의가 서로 혼합된 것으로 훗날 양자상태 개념과 파울리의 배타원리출현에 결정적인 역할. • 1925년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1926년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에 의해 대체될 때까지 보어의 원자론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과도기적 이론. - 이러한 원자구조와 복사에 대한 엄청난 연구업적으로 192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5. 맺음말• 닐스보어는 20세기를 풍미한 최고의 물리학자로 상대성 이론이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에서 비롯되었다면, 상대성 이론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양자역학은 보어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물리학자들의 공동 노력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음. • 또한 거의 반세기 동안 양자물리학을 이끌어온 인물로서 주요한 공헌을 했으며 192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힘쓰기도 한 명실 공히 아인슈터인과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라 할 수 있음.{nameOfApplication=Show}
1. 를 통해 본 인간과 기계의 상호관계이 영화는 1927년, 독일에서 “프리츠 랑”이라는 감독에 의해 제작된 흑백 무성영화이다. 이 영화는 기술의학철학 수업시간을 통해 처음 본 것이었으나, 그 첫인상은 요즘의 화려한 영상과 효과음으로 무장한 영화들에 익숙해진 내게 흑백에 소리도 없는 이 영화는 별다른 흥미를 주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1920년대에 나온 영화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긴장감 있는 화면전개, 당시로서는 거대한 스케일의 배경, 로봇의 등장과 같은 특수효과는 눈여겨 볼만한 것이었다. 물론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가 영화 그 자체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닌 영화상의 내용과 배경에 초점을 맞추고 본 것이기 때문에 이런 점은 여기서 그다지 언급할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먼저 이 영화의 탄생 배경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면 다음과 같다.1920년대 독일에서는 정치ㆍ경제적으로 매우 불안한 시기에 나치가 등장하여 군중 심리를 철저히 이용해 대중을 현혹해간다. 계급적인 갈등이 심화되면서 나치는 이 해결 방법으로 이성보다는 인간을 획일화, 기계화하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나치는 이를 계층 간의 화해라고 주장한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대변해주기 위해 탄생한 영화가 바로 이다. 그리고 간단하게 영화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2026년, 미래 도시 메트로폴리스는 행복한 자본가들의 지상 세계와 비참한 노동자들의 지하 세계로 나뉜다. 지상의 가진 자들은 지하의 빼앗긴 자들의 노동의 대가로 천국을 소유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상세계를 움직이는 자본가의 아들 프레더가 우연히 비밀의 문을 통해 끔찍한 지하세계로 내려가 천사 같은 소녀 마리아를 알게 된다. 그녀는 노동자들의 유일한 성녀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프레더의 아버지 프레더슨은 노동자들을 파괴적으로 선동하고 계급투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용하기 위해 악마적인 과학자 로트방에게 마리아와 똑같은 로봇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로트방은 마리아를 납치하고 마리아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지하세계로 내려 보낸다. 가짜 마리아는 노동자들을 선동하고, 로봇에게 이용당한 노동자들에 의해 공장은 파괴되고 홍수가 난다. 그러나 이후 로봇의 정체를 간파한 노동자들은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해 자본가와 악수한다. 즉, 21세기의 노예제도로 지배되는 거대도시인 “메트로폴리스”에서 지상세계와 지하세계의 화해를 추구한다는 이야기이다.이제 영화의 내용 그 자체로 들어가서 기계와 인간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설명을 하자면, 에서 인과관계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 진다. 영화 속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로 구별되는 신분구분 속에 "마리아"의 존재는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지 않으며, 마리아가 지상세계로 올라와 프레더를 만나게 되는 장면이나, 프레더가 마리아를 만난 후, 지하세계에서 만난 모습들로 인해 생각을 고쳐먹게 되는 등은 다소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어두운 색상의 똑같은 의상과 얼굴도 들지 못하고, 팔은 축 쳐져있는 왜소한 모습의 군중으로 도시의 흰색배경과 대비되어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들의 노동 장면은 기계적인 반복 동작으로 과장되게 표현하여 부품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반면, 자본가의 아들인 프레더가 살아가는 공간은 상당히 자유롭고 여유로운 느낌을 주고 있다. 하지만 에 대한 비판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문제를 너무 간단하게 풀어내고 있다는데서 시작한다. 중개자인 프래더의 정체성이 모호하고, 그가 노동자 계급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는 "마리아에게의 끌림"으로 설명되고 있으며 자본가와 노동자가 화합으로 끝났어야 하는 부분을 자본가와 그의 아들의 화해로 설명되는 결말은 다소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중개자로 정한 프레더는 애초부터 노동자가 아닌, 마리아에게 정신적 영향을 받은 자본가이기 때문이고, 실제 계급 간 갈등은 영화 속의 아버지 아들의 갈등보다 훨씬 깊기 때문이다. 프레더가 지하세계에서 내려가서 보게 된 기계노동자들의 폐기처분되는 일상과 반복되는 일상, 그리고 쓰러진 부품노동자 대신 들어간 기계 속에서 그가 완전히 노동자에게 정신적 영향을 받고 자본가들에게 적개심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부분역시 인과관계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하지만 기술철학적 관점에서 무엇보다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영화에서는 처음으로 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받는 미래상을 그려냈다는 것에 있다. 이것은 그 전까지 인간의 지배하에 또는 대등한 입장에 있던 기계(혹은 기술)가 오히려 인간을 지배 한다는 것으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계 문명의 발달로 인해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종속관계 속에서 인간이 창조자가 아닌 거대한 공장의 일개 조립공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이 영화는 시종 음울한 분위기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계(기술)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보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고 이후 등장하는 공상과학영화인 , , 등과 같이 인간과 기계의 상호관계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만드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그 배경이 비록 나치가 당시 독일의 계급적인 갈등의 심화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인 수단의 하나로 등장하지만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관찰하고 해석했다는 점에서 기술에 대한 획기적인 인식전환의 계기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2. 와 를 통해 본 인간과 기계의 상호관계인간과 기계, 우리는 이 둘을 어떠한 관계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은 기계를 통하여 현대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누리고 있고, 기계는 인간의 힘으로는 해내기 어려운 많은 일들을 도와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과 기계를 필요충분 관계라고는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것은 아직까지는 인간 중심적인 방면에서 기계를 필요에 의해 쓰고 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기계 자체에 대해 생각을 갖지 않은 물체 그 이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 와 같은 인조인간이 출연하는 영화를 보고나면, 그 의견에 약간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두 영화는 미래라는 공통적인 시간에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각기 다른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점에 주안점을 두어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한다.사실 라는 영화는 제목만 들어왔을 뿐 딱히 볼 기회가 없었다. 물론 이번에도 어떠한 목적에 의해서 보게 된 영화였지만, 그래서 더욱 내용과 감회에 있어서 색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듣기에는 어렵게 느껴지면서, 막막했던 인공지능이란 주제와는 다르게, 영화 속에서는 인간과 기계의 따뜻한 내용도 담겨져 있었다. 또한 인간과 기계의 관계라는 주제로 다시 보게 된 란 영화 또한 그 옛날 어렸을 적 별다른 생각 없이 보았을 때와는 다르게 새로운 시각으로 보아서였는지 그냥 액션영화로만 생각해왔던 는 나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참고적으로 이 글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영화에 대한 줄거리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판단되어 과감히 이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설명하도록 하겠다.먼저, 에서 보여준 인간과 로봇의 모습은 처음에 너무나도 유사점이 많을 정도로 흡사했다. 인간은 로봇에게 인공지능과 함께 감정을 실어주었고, 그로 인하여 기계는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로봇의 무한한 발전 욕구에 대한 열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기계의 감정은 인간의 조작에 의한 인공 감정이 될 뿐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뒤엎고, 이 영화에서는 인공지능을 가진 “데이빗”이 엄마로 생각하는 모니카에 대해 따뜻한 사랑을 품고 있다. 이는 인간과 기계라는 딱딱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재로 하는 다른 영화와는 상당히 많은 차이를 가진다고 본다. 에서도 처음에는 기계가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물체에 불과하다는 내용이 강하지만, 결국엔 두 가지가 서로 공존 할 수 있게 되는 긍정적인 부분이 그려진다. 이런 점에서 나중에 등장한 이라는 영화도 많은 점에서 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