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nsthalWestzeedijk 341, Rotterdam, The Netherlands, 1992, Rem Koolhaas디자인 컨셉Rem Koolhaas가 이 건물을 디자인하면서 가장 고려했던 것은 공간 순환에 대한 연구로 보인다. 건물 전체 형태는 정방형을 이루고 있지만, 내부 공간은 그 정형을 수직으로 깨뜨리고 있다. 이건물의 스킨을 해체하고 슬라브의 구성만 살펴보면 그 특징을 볼 수 있는데, 전체 슬라브들은 마치 뫼비우스띠처럼 하나로 이어진 띠를 구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건축가가 건물 전체를 하나로 통합시키고자 하는 시도로서, Rem Koolhaas 건물들에서 자주 시도되는 개념이다.이 건물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외부에 표출된 경사진 오디토리움이다. 경사진 슬라브를 그대로 외부로 노출시켜 시각적 재미와 긴장감을 제공하고 있고, 다시 이곳 내부로 진입하면 다시 한번 기울어진 기둥들에 놀라움을 느끼게 한다. 이 기울어진 기둥들은 오디토리움 상부 전시실에 그대로 삽입되어 건물 전체에 강한 인상으로 작용하고 있다.프로그램로테르담 뮤지엄 파크 내에 위치한 이 건물은 위치 특성상 전시를 주 목적으로 하고 강연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이 미술관은 미술품의 수집을 주목적으로 하지 않고 전시만을 위해 계획되어 주로 기획전시나 강연을 위한 시설로 사용되고 있다.이 건물은 크게 1개의 오디토리움과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있고, 이 시설들은 서로 슬로프로 엮여 있어 전체를 한번에 순환할 수 있도록 계획되어 있다. 그리고 부속시설들은 이 주요 시설 사이사이에 교묘하게 배치되어 있고, 특히 경사로의 오디토리움 하부에는 레스토랑이 배치되어 있어 그 경사를 그대로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다.동선 순환 체계이 건물은 로테르담의 뮤지엄 파크내에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 도로측과 공원측과의 높이차를 이용하여 그 밑에는 자동차 도로가 지나가고 있고, 건물이 이곳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 건물을 관통하는 통과 동선을 제공한다. 이 건물의 전시 동선은 기존의 다른 미술관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전시실의 구성이 수평과 수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뫼비우스띠처럼 순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직으로 이동하는 별도의 동선이 제공되지 않고 전시 mfma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전체 건물을 경험하도록 되어 있다. 주 출입구는 통과 동선을 제공하는 경사로에 위치하고 있고 이곳을 지나면 먼저 오디토리움을 만나게 된다. 이곳 경사진 오디토리움에서 우측으로 이동하면 상부의 전시실로 이어지고 아래로 내려가면, 기념품 샵과 락커, 그리고 다음 2개의 전시실로 순환된다.구조 시스템이 건물 전체 구조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상부에 철골을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슬라브와 기둥, 벽체 등은 대부분 노출 콘크리트의 물성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특히 슬라브가 경사진 곳은 이 각에 수직인 기둥을 사용하여 중력에 역행하는 시작적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있다. 외부 마감은 대리석과 플라스틱 마감으로 되어 있는데 1층부분과 오디토리움의 표피는 유리로 마감하여 매스를 크게 상하로 양분하면서 상부매스가 부유하는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다.
■ 위치 : 서울 종로구 부암동 210-8■ 지역 : 일반주거지역■ 지구 : 풍치지구■ 대지면적 : 2812 ㎡(852.12평)■ 건축면적 : 593 ㎡(179.7평)■ 연면적 : 1494 ㎡(452.72평)■ 건폐율 : 21.90 %■ 용적율 : 30.30 %■ 규모 : 지하 1층, 지상 2층■ 구조 : 본관 / 철골조별관 /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 벽 / 화강석, 고압벽돌지붕 / 납코팅동판■ 내부마감: 바닥 / 마루판, 화강석.벽, 천장 / 석고보드1. 배치 및 형태우리나라의 고건축의 특성을 보면 지형을 잘 이용해서 작은 규모의 건축으로도 적절한 외부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주변환경과의 조화를 나타내고 있다. 주변환경과의 조화이외에 나타나는 특성으로는 자연환경과 건물의 조화, 내부공간적 외부공간, 긴장과 이완, 공간의 중첩이 있다.이들 요소는 환기미술관의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로 전통성을 잘 나타내며 현대감각과도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요소를 기본적으로 염두하며 환기미술관의 공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풍수지리를 따른배치.마을이나 택지의 선정에서부터 마을의 패턴, 건물의 좌향 및 다른 건물과의 연관성등을고려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대지의 조건에 있어서 환기 미술관은 풍수지리설에 부합되고 있었다. 북한산성과 인왕산의 바위가 보이는 곳, 서울의 아름다운 자연을 생생하게 접하며 풍수상의 배산임수 조건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 위치에 있었다.이러한 풍수지리설의 영향으로 인한 건축에 있어서의 자연과의 조화는 환기미술관의 위치 선택 이외에 외부공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주변환경과의 조화를 이루며 그에 알맞은 상호보완적 공간구성을 하고 있었다.자연환경과의 조화. (기와를 연상케 하는 지붕의 형태.)자연과의 조화는 옛 전통건축에서 볼 수 있는 요건중의 하나인데 자연을 닮은 지붕의형태, 색, 건축물 외부공간에서 활용되고 있는 정원등이 그것이다.환기미술관의 건축은 직각을 이루며 간결하고도 미니멀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반면 자연의느낌을 주는 지붕을 갖추고 있었다. 지붕은 우리나라 옛 건축의 기와를 닮은 듯 했다. 동그란 반 원 옆에 삐죽이 나온 양 옆 사각형으로 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인 지붕의 모습은기와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그 색채또한 기와의 색으로 자연의 푸르름에 대하여 거부감없이 자연스레 다가왔다. 전통건축 지붕의 장식성을 희화한 것으로 느껴졌다. 현대적인 느낌과 전통의 느낌이 잘 조화되고 있었다.비대칭성.주건물은 여러개의 덩어리가 이어져 있는 건축물로써 그 덩어리간의 배열을 보면 언뜻보기엔 대칭으로 보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비대칭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와의 모양을 지닌듯한 건물 두 개는 나란히 대칭으로 붙어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자세히 보면 그 두 건물이 대칭적으로 보이면서도 조금 비켜나져 있어서 비대칭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고건축의 특징처럼 조금씩 변화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환기미술관의 계단에서 볼 수 있는 '긴장과 이완'처럼 여기에서도 한국인의 특성을 엿볼수 있다. 이러한 대칭적 비대칭성은 한국인의 희화성을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공간의 중첩.환기미술관에 있어서의 공간의 중첩은 문의 표현에 의해 나타내어지고 있다. 내부공간에서의 이러한 중첩은 외부공간에서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보여지고 있으나 외부공간에서도 이러한 공간구성을 엿볼 수 있다. 우물가 같기도 하고 대청마루같이도 한 이 곳 옥상중정의 공간구성이 바로 그러하다.우물을 중간에 두고 사면이 문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공간간의 연속성을 보여주며 그에 따른 깊이를 준다. 또한 이 곳 옥상중정은 내부와 통하는 중간적 공간으로 내부에서외부로 통하는 문을 통유리로 처리함으로써 내부와 외부를 연결해주고 있다.옥상정원의 연출.환기미술관에서 이러한 이원성을 지닌곳은 옥상중정으로서 미술관내에서 외부공간으로서의 연결점이자 공간의 연속선상이기도 하다. 외부공간인지 내부공간인지 명확하게 구별이 안되는 공간으로써 가운데에 전통성을 느끼게 해주는 우물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곳은 폐쇄와 개방사이의 적절한 조율에 의해 내외부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양성적 공간으로 느껴진다Landmark적인 성격..■ 대지 구성 및 배치북 - 북한산성서 - 인왕산■ A - 본관B - 별관 (아트샾, 카페테리아,기획전시실)C - 강의실2. 1층 평면도■ 외부에서의 주출입은 동일.■ 내부에서는 동선이 분리됨.(관람객/관리자)■ 외부공간과 전시실 사이에 홀을 두어 각각의홀을 유기적으로 연결■ 3층높이의 중앙 전시실은 미술관의 중심적공간- 환상체계의 동선을 통해 각 전시실로 연결.■ 계단이 한쪽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좌우 두개가 있어 관람자가 선택 할 수 있다.- 중심축인 상설 전시장 - 안내 데스크 - 중정의 우물모양 천장3. 2층 평면도■ 수직이동이 어려움.■ 관람객 동선은 중앙 홀을 감싸는 계단으로순환동선 체계를 이룸.■ 2층 외부공간과 상설 전시장은 홀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 2층 외벽을 통해 반사되는 일광을 유도■ 주전시실을 감싸고 올라가는 계단부에서 보면 지하 1층과 지상 1층의 전시실로 연결되는 개구부가 보인다.■ 지상 2층의 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부에서다시 주전시실을 돌아볼수 있는 기회가 있다.- 3층 상설 전시장으로 가는 계단 - 홀- 상설 전시장에서 홀을 본 모습4. 3층 평면도■ 건물외부를 순환할 수 있는 동선.■ 옥상정원으로 인한 내, 외부의 연결.■ 2개의 볼트를 연결시켜 하나의 큰 전시장을형성 - 볼트사이와 벽면의 전창을 통해 빛을 내부로 유입
가나 아트 센터가나 아트 센터 내부* 지하 1층 주차공간수장실 (미술품의 출입/반출)* 1층상설전시장, 로비, 샵, 레스토랑 (관람객을 위한 동선)* 2층관람객, 직원동선 분리 (ㄷ자형 건물배치중 관 리,전시부분의 분리)* 3층세미나실 출입동선의 분리관람객 출입구관리자 출입구햇살 가득한 건물발걸음 소리가 또각 또각3층 야외 테라스 조형물전시품을 파는곳야외 공연장미술관 같은 카페북한산 자락의 평창동에 위치한 가나아트센터는 연건평 8백 50여 평 규모의 아름다운 갤러리 공간입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Jean Michel Wilmotte)가 설계한 가나아트센터는 다목적 전시기능의 수행에 최적인 내부시설을 갖추고 기능성과 심미성의 조화를 고려한 모던 건축양식의 정수를 보여줍니다.2개 층, 3개의 주 전시장으로 구성된 전시 공간은 단아한 내부와 천장매립형의 깔끔한 조명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전 건축에 주로 이용되었던 중정을 도입한 건축물은 고전적 요소와 현대적 미감이 어우러진 매력있는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3백석에 달하는 관람석과 최첨단 음향시설을 갖춘 야외공연장에서는 미술 이외에도 클래식과 대중음악 공연, 명사 초청강연, 마임 등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행사를 펼쳐나가고 있습니다.또한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는 열린 문화 공간을 지향하는 가나아트센터는 시민의 휴식공간 역할을 하는 레스토랑과 다양한 휴게시설, 그리고 아트샵을 갖추고 시민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유도합니다.가나아트센터는 독일의 건축전문기관인 타슈(Tasche)에 의해 2000년 밀레니엄 건물로 선정된 바 있으며, 한국의 문화적 뿌리를 바탕으로 한 절제되고 부드러운 현대 건축미의 모범을 제공하고 있습니다.건축가 장-미셸 빌모트 Jean Michel Wilmotte (1948, 프랑스)건축적 프로젝트 및 역사적인 건축물의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가구와 디자인 상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빌모트는 공간의 디자인과 인테리어 뿐 아니라 세세한 소품과 가구까지 디자인하는 총체적 시각예술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1975년 인테리어 디자인 사무소 "Governor"를 설립한 이래 미국 워싱턴의 프랑스 대사관, 파리 국회 국제회의실과 도쿄 끌로드모네 스페이스, 님므 보자르 미술관, 리옹 보자르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런던 대영 박물관 등 세계의 다양한 미술관, 박물관 건축 및 인테리어 작업에 참여했고, 1998년 가나아트센터, 2000년 인사아트센터, 2003년 서울옥션센터를 건축했습니다.
마그리트의 생애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의 르시네에서 태어났다. 그의 나이 14살이던 해, 그의 어머니 아들린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고 그는 벨기에의 부뤠쉘예술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짧은 군복무후 1922년 그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Georgette Berger와 결혼하고, 벽지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던 그는 우연히 데 키리코의 의 복사본을 보게 되었다.그전에는 초미래파와 입체파의 경향을 띤 화가였다. 이 그림에 그는 거의 충격에 가까운 감명을 받았고, 화가로서의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마그리트는 형이상학적 예술세계를 접하면서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한 파리의 초현실주의 운동에 대한 반응으로 1926년 벨기에에서 결성된 초현실주의 그룹에 마그리트도 참여하였다. 그들은 1928년 라는 잡지를 창간하였다.마그리트는 1927년에 브뤼셀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이때 그는 데 키리코를 따른 자신만의 양식을 세상에 선보였다. 그리고 초현실주의 운동을 주도하던 주요 예술가들, 즉 호앙 미로, 폴 엘뤼아르, 앙드레 브르통, 쟝 아르프 등과 친분을 맺게 된다. 1929년 마그리트 부부는 폴과 갈라 엘뤼아르와 함께 스페인 까다께즈에 있는 달리의 저택에 한동안 머물렀다. 그에게있어서 1929년은 중요하다.그해 유명한 의 첫번째 판본을 제작한 해였다. " 이후 마그리트는 철학적 혹은 의미론적 주제를 상기시키는 다수의 그림들을 제작하였다. 40년대엔 양식의 변화를 몇번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원래의 양식으로 돌아오곤 했다. 1953년엔 벨기에의 Knokke-le-Zoute에 있는 카지노의 의뢰를 받아 벽화를 제작하였다. 마그리트는 1960년에 브르통을 만나러 파리를 방문했는데, 마르셀 뒤샹, 만 레이, 막스 에른스트도 만나게 된다. 이 시기엔 이미 거장의 반열에 들었던 마그리트. 뉴욕, 파리 등 예술의 중심지에서 회고전을 열었다. 그리고는 1967년 8월 15일 숨을 거두엇다마그리트작품세계에대한 분석.마그리트의 외화는 모든사고의 지배체계와 논리의 횡포를 그림을 그리는 것에 의해 그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일상적인 감각을 근본부터 바꾸는 것. 그가 그린사물은 일상 안에 잇는 평범한 사물이지만, 마그리트의 화면 속에서 새로운 시점으로 표현되면서 사물에 또 다른 힘이 생기는 것이다.그는 그림속에 쓰여 진 글이나 그림의 주제와 아무런 관련없어보이는 제목의 사용은 바로 이와 같은 그의 사물을 다르게 보고자하는 비일상성에서 기인한다.담배파이프, 중절모자, 유리컵, 방울 등 일상 오브제들이나 집, 창문, 새, 나무, 나뭇잎 등의 친숙한 소재들을 주로 그리면서 두 개의 익숙한 오브제가 결합되거나. 이미지를 중첩시키거나 부조화 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한다 이처럼 일상의 물건들이 낯선장소에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또 다른 물건과사물의 일상성을 파괴의 만남으로서 우리는 일상성으로부터 벗어나 심리적 충격을 받게 된다. 이 충격은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오는 충격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갖고 잇는 일상적인 사고체계의 논리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그림은 일종의 이성적 논리의 위반이라고 볼 수 있다. 마그리트의 작품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일상적인 시점에서 벗어나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다다이즘 [dadaism] 1915~1922다다이즘에 대한 해석 1기본적 원칙은 부정이다.예술은 죽었다. 無에의 정신.항의의 외침. 자유의 표현20 C 유럽 문학이나 미술운동의 하나 '다다'란 아무런 뜻이없다는 말로 ,'다다'의 주장은 문학,미술에 있어 전통 어법등 일체 제약을 벗어나 개인을 도그마 형식,속박으로 부터 해방시키자는 것으로 기존의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무방향의 운동으로 나타났다.미래주의에서 나타났던 과학과 과학기술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는 정반대의 부정적 입장을 취했으며, 이성과 합리에 대한 외의, 부정, 파괴, 즉 '반예술'의 태도로 우연에 의거한 제작 태도를 견지하였다. 특유의 유머가 있고 오브제를 사용하여 기성관념을 부다. 이제 유럽인들은 그 전까지 찬양해 마지않았던 과학과 경제의 발전이 결국 자신들의 세계를 파괴하는 데 쓰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존 문화, 문명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반성을 가하기 시작했다.미술계에서도 그 이전의 전위 미술- 표현주의까지도-전쟁을 일으키는데 일조를한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이 모든 과거의 미술들은 전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 했다.다다운동은 스위스, 미국,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일어났고 행위들은 공연이나 행사 자체가 미술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방법상의 다양성을 특징으로 그 영역을 빠르게 확산시켰다. 다다 미술가들의 공통점은 모더니즘의 전통을 이어받아 새롭고도 도전적인자세를 취하며, 미술이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기존관념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시기에 나타난 '다다이즘'은 양식이라기 보다도 일종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즉 미술 한 부분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문학과 음악 등의 다른 예술 분야 에서도 동시에 시작되며, 모든 예술장르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표현하는데 수단으로 삼았다. 이로서 다다는 총체적 예술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다다이스트들의 목적은 단 하나, 기존 문화에 대한 철저한 부정, 더 나아가 파괴였는데, 합리주의적이고 이성적인 아카데미 미술에 대한 거부로 이들은 '우연의 원리'를 선택했다. 소음주의 음악, 아프리카 부족의 토속어로 지어진 시, 언어가 아닌 음성으로만 만들어진 음성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읊어 대는 동시시 등이 만들어지게 되고,아무런 뜻도 알 수 없는 연극과 퍼포먼스가 상연되기도 했다.뒤샹, 아르프, 피카비아, 슈비터스 등이 조형예술 분야의 주요 작가이며, 그들의 작품은 환상적, 상징적, 풍자적이어서 무정형 또는 기계 형태적인 구성을 취하였다. 차바퀴, 돌, 구두, 차표 등을 본래의 일상적인 용도에서 떼내어 보는 사람으로하여금 잠재한 환상이나 욕망를 불러 일으키게 하는 상징적 기능를 마르셀 뒤샹의 작품 "자전거 바퀴"에서 볼 수 있다. 이렇듯 오브제등의 자유로운전람회, 평론발표 등을 통해 서구 문화 전통을 신랄히 비판했다. 전쟁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이들은 매우 염세적이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쮜리히 다다의 세 가지 특징적 요소는 소음과 동시성, 그리고 우연성이었다.음악에서의 소음, 문학에서의 동시성, 그리고 미술에서의 우연성은 각각 그분야의 성질에 맞게 각색된 새로운 시도였다.전쟁이 종반에 들어서면서 쮜리히 다다는 종말을 고하게 되고 마르셀 뒤샹과 피카비아가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뉴욕 다다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다.뉴욕 다다는 쮜리히 다다와 거의 같은 시기에 출연한 운동이지만 뒤샹의 활약으로 독특한 특성을 갖게 된다. 'ready made'나 반 미학사상이 그의 중요 특성이 되고 이런 활동은 뉴욕다다에 이어 나타난 미국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독일 다다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좌익의성향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정치선진의 활동과 결부하게 된다. 미술의정치도구화가 여기서 발견된다. 독일 다다의 기법적특징으로 콜라주 사진기법이 있는데, 이것은 명확한사실성을 가진 요소들로 인하여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하려는 데 의도가있었다. 이것은 입체파의 파피에 꼴레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photo -montage라고 불리우게 된다.다다운동의 마지막 정착지는 파리였는데, 파리 다다의 특징은 문학적인 데가 있다. 잡지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이들의 운동은 선언문, 정기 간행물,사건등으로 수입된 다다양식이 아닌 프랑스 문학을 토대로 일구어 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문학성이 강했던 이들의 운동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1924년경 '초현실주의'라는 이름 아래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다다는 1915년부터 1922년까지 계속된 국제적 규모의 문학 그리고 미술운동으로 虛無主義 예술운동이다. 다다는 시대적 위기상황의 근거인 이성을 존중하고 그 이성을 합리화 시켰던 모든 과거의 예술형식을 타파하고 본질적으로 모순된 예술형태를 지향하는 반예술을 창조하려는 데 전위적인 역할을 다한다.다항의한다. 새로운 예술가는 이미 설명적·상징적인 복제(複製)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는 돌이나 나무나 쇠로[鐵]로 직접 창조한다. 특급기관차(特急機關車)와 같은 새로운 예술가의 유기체(有機體)는 순간적인 감동을 싣고 모든 방향으로 향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여기에 오늘날 말하는 자유분방한 오브제(objet)가 등장하는데 그것들은 문자 그대로 중립(中立)을 선언하면서 스위스에 모인 망명자들의, 밖에서의 참혹한 살육을 의식한 발언이며, 그들은 종래의 예술작품이 외적(外的) 폭력에 대해 얼마나 무력했는가를 전쟁 체험을 통하여 느끼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잡지 《다다》가 발간되고 우연을 이용한 추상시 ·음향시가 발표되는 등 이 취리히 다다는 1920년까지 계속되었다.독일에서의 다다이즘은 베를린·하노버·쾰른 등 세 곳의 중심점을 가지고 있다. 베를린에서는 R.하우스만, G.그로스, W.메링 등이 주된 예술가였는데, 여류인 H.헤히도 여기에 가담하였다. 취리히와는 달리 베를린은 정치적 중심지이기도 하였으므로 다다이즘도 혁명적 요소를 갖추고 하우스만의 아상블뢰즈(assambleuse:여러 가지 오브제 모음)나 헤히의 포토몽타주(2장 이상의 사진을 붙여 중복인화 ·중복노출 등으로 새로운 시각효과를 노림. 고안자는 J.하트필드라고도 한다) 이외에 그로스의 격렬한 반전(反戰) 시리즈인 《이 사람을 보라》 등을 탄생시키고 있다. 《이 사람을 보라》는 제1차세계대전 중의 군부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전후의 황폐, 그리고 다시 권력자로 변해가고 있는 사회 상층계급에 대한 공격을 내포하는 무산계급의 옹호를 그 특색으로 한, 예리한 시각의 소묘집(素描集)이다.베를린에서의 다다이즘은 대전이 끝난 1918년부터 1933년까지 계속되었다. 하노버에서의 중심 인물은 K.슈비터스였다. 슈비터스도 시와 조형(造形)에서 다채로운 활동을 나타내어 1923~1932년 잡지 《메르츠》를 간행하고 있었는데 주목되는 작품은 《메르츠바우》이다. 이것은 길에서 주운 널조각과 잡동사니를 소재로 하여 만하였다.
쿤스트할 (KUNSTHAL, 렘 쿨하스)■ 개 요1) 위 치 :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 위치한 대규모박물관공원인 Museum park의 남단2) 대지면적 : 3,600㎡3) 연면적 : 7,000㎡ (2,117.5평)4) 층 수 : 지하2층, 지하7층 (전시공간 2개층)5) 구 조 : 철골, 철근콘크리트6) 외벽마감 : 대리석, 플라스틱, 유리■ 주요 구성 및 특징쿤스트할은 1992년에 완공되었으며, 우선 3개의 전시공간과 오디토리움, 그리고 레스토랑이 요구되었다. 높은 레벨의 남측면 도로와 접하고 있어. 약 6m의 지형적 레벨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지형의 낙차에 의한 레벨의 연결은 내적으로 이 건축의 중요한 개념이 된다. 즉 미술관을 관통하는 주 경사로는 외부에서는 공원을 향해 연결되는 주축을 이루며, 내적으로는 전시동선의 시발점이 되며,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로 이루어진 띠 구성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이와는 대조적으로 건물 전체형태는 정방형으로 순수 기하학적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내부공간은 그 정형을 수직으로 깨뜨리고 있다.1층평면도평면의 구성은 2개의 축에 의하여 나뉘어 짐에 따라 동서축을 중심으로 북측에 전시실과 오디토리움, 레스토랑 등의 시설이 위치하고 남측에 사무동이 위치하게 된다. 남북축에 따라서는 서측에 강당과 레스토랑과 1개 전시실이 위치하며 동측에 2개의 전시실이 위치한다.배치도3층평면도2층평면도1) 동 선쿤스트할에서는 주변의 대지 조건으로 인하여 남북과 동서축으로 확장된 도로가 건물로 침투를 하고 있다. 이렇게 도로가 건물로 침투함으로 건물은 4개의 부분으로 나누워진다. 이렇게 나누어진 공간을 어떻게 연결시킬것인가에 대하여 렘 쿨하스는 ‘연속적인 순환’이라는 모티브로 가운데 램프를 시발점으로 쿤스트할의 동선을 뫼비우스적 동선으로 풀어나간다.이리하여 전체적으로는 건물을 동선의 흐름으로 하나의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의도는 형태적 측면에서 건물을 하나의 단일한 BOX로 구성하여 기능에 의한 공간적 분절을 하나의 매스로 통합하려고 하였던 렘 쿨하스의 시도에서 읽을 수 있다.그리고 특이한 사항은 건물의 주입구의 배치인데, 시각적으로 건물의 주입구는 명확히 알 수 없으며 보행자 경사로를 따라 박물관공원으로 향하면서 기둥에 의한 동선의 흐름유도 및 반대방향의 경사를 가진 오디토리움을 통해 우연적인 출입이 이루어진다.관람자의 동선은 이에 따라 1전시실-경사로-2전시실-Himmelsleiter-3전시실로 이어지게 되고 보행자경사로의 방향과 역행하는 경우 2전시실-경사로-1전시실-오디토리움-경사로-3전시실이라는 순서로 이루어져 전시공간과 다른 강당을 중간에 경험하게 된다.2) 오디토리움건축을 관류하는 경사로의 중간에서 인입되는 주 현관이 오디토리움과 만나는 설정은 이례적이다. 따라서 오디토리움은 집회기능과 함께 인입 체계의 전처공간이다. 오디토리움은 오픈된 상태이며, 필요에 따라 가동 간벽이 독립된 공간을 만든다. 이와 같이 입구를 통해 건물에 들어서면 일반적인 홀이 아닌 오디토리움으로 관람자가 진입하게 되는 이유는 기존의 전시 중심의 미술관에서 전시기능만이 아닌 교육 및 문화 등의 다기능이 도입되고 이러한 것이 부속시설이 아닌 전시와 동일선상에서의 위상을 가진 것으로 현대의 도시적 해석을 통한 새로운 전시관의 전형으로 이해되어진다.오디토리움의 형형색색의 의자들은 이미 하나의 조형적 오브제를 형성한다.또한 정면창을 통한 빛 유입을 통해 경사면 아래 방향으로 움직임을 유도하고 있으며, 수직적인 요소(기둥, 벽)와 함께 빛에 의한 움직임 유도는 공간의 재미를 부여한다.3) 전시실3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있으며, 오디토리움을 따라 처음으로 만나는 제1전시실은 전망이 공원을 향해 열려 있고, 홀 전체는 자체적으로 전시 연출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는 Free plan 형식이다. 1전시실의 경우 비대칭적인 배치의 5개의 나무형상의 기둥이 배치되어 있다.제 2 전시실로의 과정에서 직사작형의 작은 홀(일종의 독립 전시실)을 만나게 되는데, 이 공간은 하부에서 투시되어 올라 볼 수 있게끔 바닥이 철망으로 되어있어 1-2층간에 걸쳐 오픈된 공간이다.제 2 전시실은 가장 큰 홀로서 남측광을 꺽어 투입시키는 천창에 의해 매우 밝은 환경이며, 이 전시실은 전망이 도시 쪽을 향해 열려 있어 제1전시실과는 달리 도시의 일상적인 정경을 보게 하여 도시적인 느낌을 받게 되며 무주의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