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계획서 ♥1. 나에 대한 이해나 김공주는 어려서는 군인인 아버지를 학창시절에는 작은 배의 선장인 아버지 밑에서 엄하게 자랐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들까지 대가족을 이룬 가정에서 세 자매 중 둘째로 자라나 가운데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기 일쑤였고 그러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심이 익혀진 것 같다. 외로움이 많아서 사람들과 어울려 놀다가 혼자 집으로 돌아가기를 싫어해서 한번 놀면 밤늦도록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단점이다. 하지만 반대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다. 집에 가족들이 있으면 괜히 짜증만 내고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게 된다. 혼자 자취 생활을 하면서 훨씬 더 성격이 좋아진 것을 느낀다. 내 마음대로 내 물건을 사용해야 하고 남이 내 물건을 사용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그게 가족이라 할지라도 내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는 것은 용납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제자리에 잘 가져다 놓는다면 화의 강도는 줄게 된다. 또 내가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내 물건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비교적 허용하는 편이다. 이 경우도 제자리에 잘 돌려놓는다는 전제 하에서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편이다. 혼전에 동거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와 모든 것을 함께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2. 배우자 선택내 배우자는 우선 혈액형이 O형 이여야 한다. 혈액형에 성격을 결정하는 인자가 하나도 없다고 발표가 났지만 나는 혈액형별 성격분류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심리적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O형 이외의 남자들에게는 단 한번도 사랑을 느낀 적이 없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딸만 셋이기 때문에 아들같이 살갑게 다가가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건강은 필수고 키도 웬만큼 커야 하고 서글서글하고 외향적이며 밝은 성격의 남자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날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희생과 의무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좀 전에 언급했듯이 딸만 셋이라 조 부모님, 부모님을 모시는 일이 가장 걱정이라 내 배우자가 나의 부모님을 모실만한 능력과 사랑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나의 배우자는 나의 성격이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서 참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대부분의 생활을 둘이서 함께 하겠지만 내가 운동을 하고싶어 하거나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를 때 등 무난한 일상 이외의 것을 찾을 때 참견하고 막지 말고 오히려 함께 해주고 즐거워 해주었으면 한다. 약간의 일탈을 꿈꿀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서로 여러 취미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면 정말 좋겠다.경제적으로는 풍족하면 좋겠다. 물론 나도 일을 하고 돈을 벌겠지만 그 사람이 경쟁력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주위 가까운 사람들의 신임을 받고 있어서 주위의 도움으로 항상 모든 일이 순조로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그리고 배우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이 따뜻한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결혼이 단 둘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인생의 완전한 전환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가족들이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고 관심을 가져주어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가정의 한남자의 부인으로 살고 싶다.3. 결혼 결정결혼은 28세 쯤 하고 싶다. 대학 졸업 후 3~4년 정도 일을 하고 결혼 자금은 내 스스로 모아서 결혼하고 싶다. 너무 늦게 결혼하는 것도 싫고 서른 전에 나의 아이를 갖고 싶다. 봄이나 초가을 선선할 때 나의 어릴 적을 보냈던 나의 집 근처 들판에서 야외 결혼식을 하고 싶다. 동네 분들을 모두 불러 파티다운 파티를 열고 싶다. 시간에 쫓기어 대답만 하고 끝나는 결혼식이 아니라 우리 사랑의 출발 신호탄을 제대로 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출장 뷔페를 불러서 음식을 준비하고 드레스는 내가 직접 만들어 입을 것이고 새신랑을 위해 직접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줄 것이다. 혼수 등, 기타 결혼 비용을 많이 들이고 싶지 않다. 열심히 몇 년 번 돈을 하루아침에 써버리는 무의미한 행동은 싫다. 그 돈으로 결혼 생활에 직접적 보탬을 하고 싶다.집은 꼭 가지고 출발하고 싶다. 경제적 능력이 될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집을 사서 둘이서 신혼생활을 보내고 싶다. 시부모님을 모실 의향이 있지만 달콤한 신혼을 놓치고 싶지가 않다.4. 결혼생활 준비결혼 전 모았던 돈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싶다. 꼭 부자가 아니더라도 모자라지 않게 부족하지 않게만 살면 충분하다. 엄마께 보고 배운 데로 열심히 저축하고 적당히 생활을 즐기면서 살 것이다. 아이는 되도록 빨리 가지고 싶다. 나는 아이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많았으면 좋겠지만 많이 낳아놓고 내가 책임지고 사랑으로 다 키울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남편과 상의해 2~3명 정도 낳고 싶다. 첫째는 아들로 둘째 셋째는 딸을 낳았으면 좋겠다. 내 딸들에게 멋진 오빠가 있었으면 한다.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한 둘 정도 공개 입양을 해서 가족으로 맞고 싶다. 맞벌이가 좋겠지만 자녀를 둔 후에는 내가 직접 자녀 양육을 하고 싶다. 그러면서 여건이 된다면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싶다.자녀 교육은 적당히 하고 싶다. 공교육 위주로 필요한 것만 하면서 건강하고 밝게 키우고 싶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학원 여러 군데 다니는 것 보다 그 이외 단체생활을 하면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과 사교를 키울 수 있게끔 해주고 싶다. 나는 가이드만 해줄 뿐 자녀가 스스로 독립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대학까지는 보낼 것이고 그 후 더 공부를 하고 싶다면 자신이 알아서 개척하게 둘 것이다.시부모님은 가까이 살면서 어느 정도 모실 거지만 우리 부모님 역시도 멀리 살더라도 딸로써 생활에 보탬을 주면서 살 것이다. 남편이 그에 응해 주길 바란다. 중년 이후부터는 풍족한 생활을 하길 바란다. 전원생활을 즐기며 하고 싶은 취미 생활을 하면서 남편과 단 둘이서 사랑하며 보듬어 주며 살 것이다. 취미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조각이나 운동 등을 하면서 보냈으면 좋겠다. 남편이 원하는 취미생활을 같이 하는 것도 좋다.5. 결혼 및 가족생활 향상을 위한 노력부부 관계에 있어서 항상 믿음과 책임감을 가지고 서로를 위해 조금씩 희생하면서 맞춰 갈 것이다. 어떤 인간관계이건 간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의무감을 가져야 관계유지가 된다. 잘 잘못을 따지고 내가 우위에 올라서려 하기보다 남편을 이해하고 높여주면서 아내의 의무를 다 할 것이다. 집안에서는 여우처럼 남편을 요리할 줄 도 알고 밖에서는 남편의 섬길 줄 아는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어 부부 관계에 있어서 최고의 아내가 될 것이다.내 가정을 아끼고 꾸미는 가정적인 아내이자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를 가지고 멋진 여성으로서도 빠지지 않을 것이며 다툼이 있을 때 한 발짝 물러서서 남편의 말을 들어주고 서로를 이해하며 이해시키며 원만한 생활을 이뤄 갈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통해 아동기 놀이의 중요성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나는 여자아이들이 주로 하는 종이인형 놀이나 마론인형을 가지고 놀 때가 있었다. 이 놀이는 다른 또래 친구들과 한 것이 아니라 자매들과 함께하였다. 그러나 엄마가 놀잇감을 잘 사주지 않아 직접 옷을 만들어 입히는 것을 즐겨했는데 그때의 놀이가 현재 전공 선택과 관련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만든 마론인형의 옷을 엄마는 지저분한 쓰레기처럼 취급하셨고 만들어 두면 자꾸 지저분하다고 버리시곤 하셨고 내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 자체를 싫어 하셔서 그만두게 하고 공부를 강요 하셨다. 그래서 내가 이 전공을 선택하기 까지 많은 길을 돌아서 왔고 어릴 적 욕구를 발산하지 못해 엄마의 말에 항상 반항하고 쓸데없는 것을 꼬투리 잡아 때를 쓰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티셔츠를 바지 안에 단정히 집어넣어 입히는 엄마에게 티셔츠에 주름이 져서 싫다며, 밖으로 빼서 입는 것도 싫지만 주름지게 집어넣어 입는 것도 싫다며 아침부터 짜증을 냈고 온 가족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런 것들이 욕구를 충족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추측을 해 본다.그리고 초등학교에 가서 많은 아이들과 신나게 어울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엄마는 엄하셨고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군것질을 절대적으로 못하게 하셨고 초등학생 때부터 귀가 시간이 엄격하여 4교시 수업이 모두 마치면 그 즉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그로 인해 제대로 된 또래아이들과의 사회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용돈은 10원 한 장 주시질 않아 나는 언제나 친구들 사이에 낄 수 가 없었다. 집에서 윽박지르고 뭐든 안된다고만 하시는 부모님의 밑에서 기가 죽어서 밖에서는 남에게 눈치를 보며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내 할 말 한번 제대로 못해서 항상 조용하게 지내며 새로운 친구들에 대한 적개심이 있었다. 방과 후 아이들은 공기놀이나 고무줄을 하며 몇 시간을 더 학교운동장에서 놀거나 여름이면 바다가 바로 앞이라 친구들이 함께 모여 해수욕을 즐기다 옷이 젖은 채 늦게 귀가하곤 했는데 나는 그런 시간을 거의 즐겨본 적이 없다. 그래서 정해진 틀 이외의 생활에 겁이 많았고, 지금도 고치고는 있지만 새로운 사람, 새로운 상황, 새로운 장소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편이다.그래서 혼자 생활하는 것이 더 편한 것처럼 여겼고 삼삼오오 여자 친구들끼리 모여 다니며 수다 떠는 것이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혼자일 때에는 나 혼자 결정해서 나 혼자 즉시 실행하고 빠른 시간 안에 일을 처리할 수 있지만 그룹 안에서는 여러 의견이 종합해 지고 실행해 지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잘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시간들이 나에겐 낭비인 것 같아 불안해 지고 결국 자꾸 혼자 해결하고 싶어 하게 되어 그룹에서 도태되어 졌다. 대학에 들어와서 과제 중 조원들이 함께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의견이 분분해 시간이 많이 빼앗긴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손해를 보는 것 같았고 혼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다른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서 나왔을 때 나는 그것을 조율하고 받아들이기를 잘 못하였고 트러블을 해결하는 능력도 떨어졌다. 보통 트러블이 생기면 회피하고 싶어 한다. 이런 현상은 과제뿐만 아니라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저녁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실 때에도 있다. 여러 친구들이 모여 밥을 먹으러 가면 뭘 먹을지 부터가 분분하다. 일단 시간이 혼자 있을 때 보다 많이 지체가 되니까 불만스럽게 되고, 또 매번 저녁을 친구들과 밖에서 사먹기엔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고 낭비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기분 날 때 술 한잔씩 하는 것도 비생산적이고 불필요한 일이라고 느끼곤 했다. 사회생활의 기초가 부족했던 것이다. 지금은 여자 친구들 끼리 소그룹으로 노는 것이 많이 익숙해 졌지만 그래도 나와 성격이 조금 맞지 않는 친구가 끼게 되면 바로 우울해 지고 그룹에서 빠지고 싶어 하게 된다.어릴 적 나는 태권도를 했다. 여자 친구들은 아무도 하지 않는 운동을 하다 보니까 다른 여자 친구들과 나는 생활 패턴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운동을 해서 더 활발 할 꺼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나와 다른 남자아이들 속에서 운동을 하면서 더 소심해 져 갔다. 여자친구들에게는 내가 모르는 생활이 있었고 거기에서 난 소외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초등학교 때 왕따여서 혼자 생활하는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친구들에게 다 하지 못하는 소심한 아이였던 것은 맞지만 시골 작은 학교라 모두가 친구였고 6년 동안 반장, 부반장, 전교 여부회장을 역임하면서 그나마 또래집단에서 입지가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 그나마 밝은 아이로 살고 있는 것 같다.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내가 가장 많이 했고 가장 생각나는 놀이는 비석치기, 병뚜껑 치기, 돌 깨기 등 비교적 남성적인 놀이를 많이 했다. 그것도 촌구석에 살고 있어서 동네에 유일한 한 친구와만 놀이를 하곤 했었다. 그 특정 친구가 남자아이라서 남성성이 강한 놀이를 주로 했다. 나는 학교가 파하고 나면 30분여를 걸어 집으로 곧장 와야 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항상 자매들과 그 남자아이와 놀게 되었다. 하지만 언니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와 놀아주지 않았고 동생은 너무 어려서 부모님이 밖에서 오래 놀지 못하게 하여 늘 그 남자아이와 놀게 되었다. 하루 종일 바닷가나 길가를 돌아다니며 주워 모은 병뚜껑을 돌로 납작하게 만들어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 되어서야 우리는 본격적인 놀이를 시작했다. 납작한 병뚜껑을 쳐서 뒤집힌 병뚜껑을 상대에게서 뺏어오는 딱지치기와 같은 방법의 놀이였다. 그때 나에겐 열심히 주워 모아 예쁘게 납작해진 그 병뚜껑이 재산이었다. 하나라도 잃기 싫어서 승부욕을 발산하며 놀이를 했고, 그 친구 역시 남자아이의 보통 기질이 그렇듯 엄청난 승부욕 때문에 서로에게 자존심을 건드리며 놀이를 했다. 그때 내 병뚜껑을 모두 빼앗겼을 때의 굴욕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남자아이, 여자아이의 차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우리는 동등한 상대로 게임을 한 것이었고, 그 영향으로 인해 그 후로도 계속적으로 남자에게 승부욕을 느껴온 것 같다. 남자아이가 하면 나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뜀뛰기를 잘 하던 나는 남자아이들이 높은 철봉에 뛰어 매달리거나 높은 곳에 뛰어 오르는 것을 보면 참지를 못했다. 나도 할 수 있다고 앞에 나서서 남자아이와 똑같은 것을 해내고야 말았다. 놀이에서 배운데로 나는 남자와의 승부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여성스러운 소재의 이야깃거리 보다는 남성적인 소재의 상황이나 이야기에 더 참여를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주먹으로 펀치를 때려서 점수가 올라가는 게임기가 있었는데 당연히 남자가 여자보다 선천적으로 힘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남자아이가 하고 나면 나도 해보이겠다며 덤벼들었다. 처음 해본 나는 당연히 남자아이보다 점수도 적게 나왔고 손을 다쳐 피를 흘리기 까지 했다. 그때도 나는 다친 것 보다 남자아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 것에 창피해 했던 것 같다.내가 태권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장래희망 때문이었다. 아들이 없는 집안의 둘째딸로 태어나서 아버지는 나를 항상 아들처럼 키우길 바라셨고 엄했던 집안에 남성성이 강한 놀이만 하던 나는 내가 원한 것인지 아닌지 아버지의 바람 데로 경찰대학교를 가기로 마음먹고 태권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여자아이로는 사춘기가 가까운 나이인 13살 초등학교 6학년시절, 나는 처음 태권도 도장에 다녔다. 나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이 벌써 검은띠를 메고 있었고 내 또래는 거의 없었다. 여자도 나 뿐 이었다. 승부욕은 있었지만 수줍음이 많던 나는 어린아이들이 나보다 높은 급수에 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운동시간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운동만 했고 내 얘기상대는 도장의 아이들이 아닌 사범님 뿐 이었다. 도장에서는 가끔 태권도를 하는 대신 아이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여러 가지 놀이를 했다. 풍선을 가지고 우리 편 골대에 넣는 게임을 하거나 작은 공으로 밖에 있는 편이 안에 있는 편을 맞추어 죽이는 게임을 했다. 다른 게임도 있었겠지만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런 게임을 하면서도 나는 내 연령대에 맞지 않는 아이들 속에서 당연히 열심히 하지 않았다. 속된말로 쪽팔렸다. 아이들은 자기 연령대에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연령에 맞는 놀이를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동발달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