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생은 아름다워, 감상 과 줄거리나에게 지금까지 관람한 영화중에 가장 감명 깊었던 영화를 꼽으라 하면, 나는 주저 없이 ‘인생은 아름다워’를 선택한다. 처음 이 영화에 대해 접했을 때는 ‘로베르토 베니니’감독이 제작한 20세기말 최고의 걸작이며, 각종 시상식을 휩쓸며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라는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였다.6 처음, 제목을 보면서 프랑스 특유의 인생에 대한 기쁨을 담은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이를 완벽하게 빗나갔다. 영화에서는 귀도의 삶을 통해 20세기 비극 ‘유태인 학살’에 대한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시골에서 상경한 귀도는 아름다운 여인 로라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녀와 우연찮게 마주치게 되면서사랑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이후 그는 운명을 가장한거짓말 같은 이벤트와 언변으로 그녀와의 사랑에성공하게 된다. 귀도는 세월이 흘러 사랑하는 아들조슈아를 얻게 되고, 셋은 한가정을 이루어 어려운가정형편 이지만 화목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귀도는나치정권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태인을 포로수용소에 강제로 잡아들이면서 아들 조슈아와 함께 어려움을 겪게 된다. 로라역시 귀도와 조슈아를 따라 수용소에 자발적으로 입소하면서 귀도의 가족은 포로수용소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귀도 특유의 긍정적 사고는 여기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아들 조슈아에게 현재 처해진 끔찍한 현실을 게임이라고 설명하고, 1000점을 획득하면 1등상을 받아 탱크를 선물로 받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귀도의 임기응변은 영화 내내 인상적으로 나타나는데, 수용소속 상황에 맞추어 적절하게 아들을 설득하는 그의 모습은 실로 대단했다. 수용기간 동안에도 귀도는 로라와 조슈아에게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므로 수용소라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귀도가족은 서로를 그리워하며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한편, 연합군의 공격으로 나치군의 전세가 불리해 지자 독일군들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유태인들을 학살하기에 이른다. 귀도는 영화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탈출을 시도하던 귀도가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사살 당하러 가는 장면이다. 귀도가 곧 총살당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향해 윙크를 하고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팔다리를 힘차게 휘젓는 모습, 정말 훌륭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죽을 때까지 슬퍼하지 않고 항상 웃으면서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을지켜보는 아들을 위해 장난감 병정흉내를 내는 아버지의 모습이 감동적이었고, 가슴이 뭉클해졌다.영화의 첫 부분은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귀도가 아들과 수용소에 끌려가고, 유대인은 아니지만 남편과 아들을 따라 수용소에 들어가는 아내의 모습, 그 수용소에서 귀도의 행동과 모습 그리고 마지막 귀도의 죽으러 가는 장면을 보면서 최고의 찬사와 수많은 상을 받은 이영화의 진면목을 보았다. 아버지인 귀도는 아들에게 수용소에서의 생활이 재밌는 게임이라고 느끼게 해준다. 자치 군에게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으며 지내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귀도의 가족은 행복하고 아름다워 보였다.인간의 인생은 어떠한 상황에서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러면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한 사람의 인생은 아름답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귀도가 보여준 흔치 않은 태도 때문이 아니다. 전쟁 속에서도 귀도는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란 말이 있지만 정말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상황이 안 좋으면 안 좋을수록 그 일에 대해 더 얽매이게 되고 신경을 쓰게 되는 게 사람이다. 하지만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귀도의 행동은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떡해보면 가장 현명한 것이었다. 그가 아들과 아내를 위해 하는 행동들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누가 언제 학살당할지도 모르는 수용소 상황, 그런 공포 속에서 인생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는 아버지, 어머니일 것이다.‘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또 하나 느낀 점은 어떤 힘든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비 인륜적이고 패륜적인 사건 속에서 로베르토베니니는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어두운 현실을 벗어나려 하는 사람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불행들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워나간다. 그 중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방법 중 긍정적 사고는 가장 유명하고, 동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긍정적 사고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어서 실제로 우리가 큰 위협과 고통에 담겼을 때 이 사고를 발휘 하려면 계속된 연습이 필요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감독이자 주인공인 로베르토 베니니는 슬픔의 상황에서 웃음의 역설로 더욱 비극적인 ‘인생은 아름다워’를 만든 것이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여러 가지 기법과 장치를 가지고 영화를 좀 더 가치 있게 만들고 있다.1) 긍정적 사고란 무엇인가‘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제목을 살펴보자. 앞서 언급한 대로, 영화의 내용은 암울한 시대배경과 지독히도 맞물리는 불행의 연속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주인공인 귀도의 긍정적인 사고만이 ‘아름다울’ 뿐이며, 제목은 역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안타까움을 증가 시키고 있다. 영화는 고통 속, 고뇌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며 묻고 있다. 긍정적인 사고라는 것은 사람이나 사물 등 매사에 긍정적인 행동으로 살아가는 것이다.긍정적인 사고는 최근 들어서 그 효용성을 높게 평가 받고 있는데,미국의 잭 윌치는 자신의 저서에서, “ 쾌활하고 낙천적인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 승진이 보장되지 않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앞서 이야기했던 많은 요소들, 즉 탁월한 성과, 업무 영역의 확장, 훌륭한 성품, 주목을 받는 것, 멘토 그리고 이 외 나머지 모두가 필요하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승진하기란 아주 어렵다. 왜냐하면 아무도 캄캄한 구름 아래에서 혹은 옆에서 일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구름이 아주 영리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라고 긍정적 사고를 평가하였다. 이는 현대 시대적 관점에서 긍정적인 사고를 설명한 것이지만,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마라.” 라는 말이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은 빨리 채념 하고, 부정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이처럼 부정적 사고란 긍정적 사고의 정 반대말 같으면 서도,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조금도 심리적 안정을 취하려 한다는 데에는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다. 부정적 사고의 장점은 항상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아 자신이 실패 할 수 있다는 상황을 가정하여 방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게 됩니다. 매사에 '내가 실패 할 수도 있어.' 등의 생각을 하여 행동이 신중해지며 '이것을 성취하기는 힘드니 더욱 더 노력 해야겠어' 등의 생각을 하여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꾸준히 자각하기 때문에 더욱 더 노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 사고가 지나칠 경우 '나는 할 수 없어.', 내가 하는 것이 다 그렇지 뭐' 등의 생각을 하게 되며 자신감을 잃게 되고 좌절의 늪에 빠지게 된다.3. 영화 속에 담긴 철학사상그러면 이 영화와 수업시간에 배운 베이컨과 스피노자의 철학사상과의 연관 지어 생각해보겠다.- 베이컨의 철학베이컨은 참되면 보편적인 지식, 참된 지식과 행복한 삶을 말하면서 이런 참된 인식을 방해하는 편견과 선입견 즉, 4가지 우상이 있다고 설명하였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때이다. 당시 독일의 나치정권은 유대인을 학살하고 수용소에 몰아넣었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그들이 가진 막대한 자본, 재산을 몰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히틀러가 유태인을 학살한 소위 ‘홀로코스트’) 못지않은 학살 사건이 역사적으로 수도 없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대량학살의 대명사로 남아 있는 것은 짧은 기간 동안에 전쟁의 와중에서도 모든 국가기관들을 총동원하여 과학적인 방법으로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였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유태인을 학살한 이유에 대해선 명확한 답이 없다. 다만 ‘반유태주의’라고만 알고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귀도를 통해 그 당시 나치에 의해 유대인들이 통하여 사람들은 점성술과 같은 미신을 좋 아한다고 비판한다.b.동굴의 우상 - 개인적인 사고는 습관의 반복과 정신이 감옥에 갇혀서 받은 교육에서 오 는 것이다. 각자의 동굴속에서 생각하여 동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기 꺼려하는 것을 이야기 한다.c.시장의 우상 - 언어의 우상이라고도 하는데, 단어가 사물들을 분류하기를 바라지만, 얼 마나 단어들이 혼동된 의미를 갖는가를 말한다. 그리고 얼마나 단어들이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응하는가를 말한다.d.극장의 우상 - 철학자들의 독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비실재적이고 극적인 형식을 빌어 자신들이 만들어 낸 세계를 묘사하는" 장문의 철학적 논문들과 거대한 체계적 독단을 말 한다. 베이컨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을 겨냥하고 있다.)② 베이컨의 귀납적 방법론- 귀납은 개별적인 특수한 사실이나 현상에서 그러한 사례들이 포함되는 일반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추리의 방법이다. 베이컨은 한문연구에 앞서 진리는 경험에서 출발한다고 생 각 하였고, 경험과 사실을 수집함으로써 원리와 법칙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스피노자의 철학스피노자는 행복을 이성의 최대 환성이라고 보았는데, 그 행복은 바로 자연에 대한 참된 인식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의 평화라고 하였다. 귀도는 행복한 삶을 강제로 빼앗기고 독일군에 의해 강제로 수용소에 잡혀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가 즐겁게 지내고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이유를 스피노자의 윤리에서 보면 쉽게 이해된다. 바로 스피노자의 해탈 윤리사상이 귀도에게도 있었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행복에 이르려면 모든 존재는 무한한 실체의 일부이며 인간의 삶도 영원의 한 부분으로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그런데 귀도 역시 그의 수용소의 삶에 억매이지 않고 이런 정념에서 탈해 자기만의 자유와 기쁨을 누린 것이다. 전시에 유태인가족의 질긴 삶의 모습을 통해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묵묵히 제시했다. 하루하루 원초적인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가족과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 인간낀다.
시대의 오도(誤導) 조조를 다시 바라보다○ 목 차 ○Ⅰ. 서 론 (緖 論) - 새로운 만남- 조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필요성Ⅱ. 본 론 (本 論) - 인간 조조와 리더 조조1. 인재를 아낀 리더, 조조2. 명확한 결단력의 소유자, 조조3. 조조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Ⅲ. 결 론 (結 論) - 조조가 남기고간 군주론- 조조를 통해본 리더쉽(Leader ship)Ⅰ. 서 론 (緖 論) - 새로운 만남- 조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필요성조조(曹操)에 대한 시선은 언제나 곱지 않았다. 항상 그와 함께하는 “난세의 간웅(奸雄)”이라는 닉네임조차, 그를 도덕적 측면에서는 형평 없는 이로 꼬집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조조는 인간적이었으며 문학적이었고, 나약한 본성에 충실하면서도 얼음처럼 차가운 사람이었다. 다만, 사람들은 그동안 인간적인 면보다는 비인간적인 면을, 문학에 심취하여 창을 끼고 시를 읊는 문학전인 면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학살을 일삼는 면을 조조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역사적 기술(記述)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라는 나관중의 소설에 의한 것이었다. 실제로 한번쯤은 다 읽어 보았을 서적에서의 삼국지는 나관중의 것에 기초한 것으로서, 조조에 대한 평가는 악인(惡人)중에 악인(惡人)으로 밖에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조조의 아버지 조숭(曺嵩)은 조등(曺騰)의 양자였다. 조숭과 조등 사이에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데, 어떻게 조조가 조참의 후손일 수 있겠는가? 사실 당시에는 조숭의 친부모가 누구인지 수수께끼였다.”) 처럼 조조는 한(漢)나라의 중신의 집안이었으나, 내관의 양자였다. 이것은 유교(儒敎)적 사관에서 후일 역사가들에게는 출생이 불분명한 정통성이 없는 혈통으로 비추어 졌을 것이다. 특히 원나라 말기와 명나라 초기를 살았던 나관중에게는 유방의 한나라 건국 이후, 한족(漢族)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첫 번째 왕이 출신도 불분명한 조조 였음이 불쾌하였을 것이다. 좀 더 정통성이 있는 유비(劉備)를 진정한 덕장 기약할 수 있다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조조가 백성들의 안정된 생활을 도모하고자 실시한 둔전제(屯田制)가 시행초기 여러 가지 착오를 겪자, 책임자를 처벌하여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신하들의 말에 답한 것이다. 처음부터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군주에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재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조조의 이러한 처사는 인재들의 경험을 통한 발전을 도모하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과감하게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는 열정의 장(場)을 만들어 준 것이라 하겠다.이처럼 조조가 자신의 부하들을 감싸는 몇몇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데, 207년 북방의 오환족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기주(冀州)에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날은 춥고 인적은 드문데 물 한 방울 구경하지 못한 채 200~300리를 행군하는 동안 양식마저 다 떨어졌다. 그래서 결국 말 수천 필을 잡아 식량으로 쓰고, 얼음을 30여 장(丈)이나 파들어 간 끝에 겨우 물을 얻었다. 그런데 조조는 업성으로 돌아온 뒤 오환 정벌을 반대했던 이들에게 오히려 큰 상을 내렸다. “이번 승리는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소. 옳은 권고를 해준 제군들에게 감사하오. 앞으로도 어떤 의견이든 마음껏 말해주길 바라오.”) 라고 했다고 한다. 자신의 판단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였지만, 큰 모험이었고 하마터면 큰 패배를 면치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겸허히 수용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신하에게 자신을 굽히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거침없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인재등용은 당대 수많은 명사(名師)들을 위(魏)나라로 향하게 만들었으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여 주는 주군을 앞 다투어 섬겼다고 한다. 그중 곽가(郭嘉)를 특히 총애하였는데, 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지략과 병법으로 조조를 보좌했다. 그러나 곽가는 적벽대전이 있기 직전 병으로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달리 한다. 이때 조조는 사흘밤낮을 통곡하였으며,접 헌제 밑에서 일하는 조정의 신하 가운데는 조조의 전횡(專橫)을 미워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느 날 밤 약속대로 군대를 동원하여 승상 조조의 관저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반란은 너무 쉽게 진압되고 관련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에 조조는 궁중의 고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체포하여 이렇게 명령했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밤, 불을 끄러 달려온 자는 왼쪽에 서고, 그렇지 않은 자는 오른쪽에 서라.” ) 이 말에 당황한 고관들은 불을 끄러 달려온 자는 무죄가 될 것이라 믿고 모두 왼쪽으로 섰다. 그러자 조조는 “불을 끄려고 도와준 자들이야말로 역적이다.”)라고 말하면서 이들도 모두 죽였다고 한다. 인간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반란을 도모한 이들을 처단한 것이다. 지도자로써 반역자는 엄히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후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조조의 이러한 기지 있는 처벌은 단순히 벌을 가하는 것 보다 효과적으로 상대가 쉬이 역모를 꾀 할 수 없게 하였다.이처럼 조조는 필요한 인재는 발 벗고 나서서 예(禮)를 다했고, 항상 능력이 있는 자를 흠모 하였으며 나라의 정세를 어지럽히거나, 오만과 방자한 이는 과감히 처단하였다. 그동안 조조는 자신의 부하도 믿지 못하는 소인배로 여겨져 왔으나 실제로는 인재를 사랑하고 그의 업적을 잊지 않았으며, 자신의 몫으로 내려진 포상도 일개 병사들과 유족(遺族)에게 나누어 주었다. 항상 실무자에게 공을 돌렸으며 잘못이 생기면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이러한 조조의 성품은 진정 인재를 아낄 줄 알며, 넓은 도량을 가졌다 하겠다.2. 명확한 결단력의 소유자, 조조조조가 아직 세상에서 이름을 떨치기 전, 관상가 허자장(許子將)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의 관상평을 듣기 위함인데, 허자장은 조조를 보자 “ 그대는 평화로운 시기에는 유능한 신하일 것이고, 난세에는 간웅이 될 걸세”) 라고 했다. 그러자 조조는 크게 웃으며 “그럴 리가 있겠소?”라고 했다 한다. 이것이 조조가 난세의 간웅이라고 불리게 되는 일화이다 여남에서 유비를 격파하고, 하북과 하남까지 평정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포고령을 내렸다.“나는 폭정과 혼란을 제거하고자 의병을 일으켰으나 이곳 고향땅에 돌아와 보니 대부분의 양민들이 목숨을 잃어 하루 종일 길을 걸어도 낯익은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진정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내가 의병을 일으킨 이래 전사한 병사 중에 후손이 없으면 친척중에서 후사를 잇게 하고, 좋은 전답을 주어 농사를 도와주어라. 농우를 관에서 내려주고 학사(學師)를 두어 자제를 교육시키도록 하라. 유족을 위하여 묘(廟)를 세우고 죽은 이들을 제사지내게 하라. 지금은 가고 없는 혼령들이여! 나의 조그만 뜻을 살피소서. 그대들 영혼에 안식이 된다면 나는 백년 뒤에도 후회하지 않으리라.”) 이는 자신이 승리를 얻은 이면에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백성들이 있었음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점과 정치적인 자신감이 이 포고령에 잘 드러나 있다. 대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특히 민심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는 적절한 때에 백성을 위한 배려를 잊지 않았고, 그동안 한나라의 폭정 속에서 고뇌하던 백성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었다.또한 그는 둔전제를 실시하였는데, 이는 조세와 군역을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정책이었다. 타 군주들은 전쟁에서의 승리만을 위해 병력과 군비 증강에 노력했다면 조조는 좀 더 장기적인 계획을 과감하게 시행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고 할 수 있다. 둔전제는 진시황이 시도했던 변법책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데, 주인 없는 황무지를 유민들에게 나눠주어 이동을 금지하며 둔전민으로 편재 시키고 개간을 하는 기간 동안에는 적은 세금을 부여하고, 다른 세력과의 전쟁시에는 5할에 가까운 세금을 거둬들였으나 백성들은 종전보다 훨씬 윤택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유민들은 전시에 전쟁에 참여 하였고 군역에 대한 보상도 실시하여서 보다 충성스러운 군대를 이룩할 수 있었는데, 이들이 조조 군세의 근간이 된 청주병,유주병 들이다. 이간이다.”고 언급했다.이처럼 조조는 매사에 결단력 있고 소신 있는 자세로 임하였다. 그동안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던 간사(奸邪)하다는 부정적 이미지는, 오히려 철저하고 결단력 있는 그의 성격을 반증(反證)하는 표현일 것이다.3. 조조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앞서 이탁오와 노신의 발언을 빌어 알 수 있지만, 조조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가 항상 나관중의『삼국지연의』 와 같았던 것은 아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부분이 많은데, 그중 참고 문헌을 조사하다가 조조에 웃음에 대한 흥미로운 두 견해가 있어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이중텐(二中天)은 허자장의 평가를 들은 조조가 크게 웃은 것을 호탕한 성격 때문에 웃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능신(能臣)과 간웅(奸雄)에 차이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과화(?華)는 조조가 호탕한 일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엄숙한 면도 갖고 있어, 그가 쓴 시를 보면 웅장한 기개가 넘치는 가운데 세상에 대한 쓸쓸한 감정을 내비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예언적 평가를 듣는 순간 벅차면서도 비장한 마음이 몰려와 무거운 마음이 컸을 것이란 이야기다. 과화는 조조의 웃음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고 평가 하였는데 첫 번째는 호탕한 웃음, 두 번째는 비감한 웃음, 세 번째는 두려움의 웃음 이라는 것이다. 기록에 조조가 호탕한 웃음을 많이 지었다는 부분에 주목하여 그의 웃음의 종류를 분석해 본 것이다.이것은 조조의 성격을 간사하고 무뢰배가 아니라, 호탕하고 군자의 모습을 한 조조에 대한 역사적 재해석의 일부인 것이다. 실제로 과화와 이중천 뿐만 아니라 많은 역사학자들이 조조의 업적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의 난세에서의 뛰어난 용병술과 인사관리, 경제 시스템 등 시대를 앞서갔던 그의 선택을 재조명하기 시작한 것이다.이 중 조조의 용병술은 당시의 책사들 사이에서도 높이 평가 받은 바 있다.제갈량 : 조조는 용병술에 능하니 그를 따를 자가 천하에 없다.공융 : 조조는 대단한 군대를 가지고 있고 용병술에도 능하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