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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자의 예술론
    『논어』에 나타난 공자의 예술론1. 들어가며예술작품 창작의 자율성은 점차 증대되어 가고 마찬가지로 소비의 자율성도 증대되어 가지만, 한편으로 20세기 비판이론가들이 제기한 대로 인간의 깊은 심연도 드러나 있지 않고, 또 그만큼의 노고도 들어 있지 않은 예술작품들도 그만큼 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 속에서 음악소비자인 대중은 고단한 경쟁의 피로를 풀기 위해 말초적 즐거움만을 주는 대중음악을 즐기고, 그렇게 삶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해소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시대에 클래식 음악은 아무런 심미적 감흥도 주지 않으며 고리타분하고 어렵기만 한 음악으로 들리고, 시를 읊으며 자신의 인생과 삶의 터전을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모두 옛말이 되어 버렸다.이러한 작금의 실태에서, 그저 미적인 만족만을 취하는 데에서 넘어서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이 삶의 일상성을 벗어나 인생 전반을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예술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예술이 인간의 심성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며, 그것이 사회 도덕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은 오랜 옛날부터 수많은 사상가들에 의해 밝혀져 왔다. 그 많은 사상가들 중에서 ‘원로’에 속하는 공자는 예술의 심미적 성격과 사회적 성격을 이미 수천 년 전에 간파한 사람이었다. 이 글은 예술의 사회 도덕적 영향력을 강조하고, 전인적 인간으로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예술상을 제시하며, 그 스스로 예술가이기도 했던 공자의 면모를 『논어』에서 읽어내고자 한다.2. 공자 예술론의 단초공자는 주대 봉건 체제가 무력화되고 각지의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던 시대를 살았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대에 공자는 예의가 유지되고 평화로웠던 옛 주나라를 희구하였고, 그때 그 시절 주나라의 전통을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는 ‘술이부작(계술은 하되 창작을 하지 않는다)’이라는 원칙 아래 주대 이래로 전승되어 오던 시와 음악, 저술 등 예악문물들을 정리하고 재해석하여 편찬하였다.공자는 그 스스로 예술에 대한 일관되고리는 쪽에 특히 무게를 두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공자의 사상에서 사회 도덕적 측면과는 다른 인간 내면의 예술적 심성에 대한 언급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공자는 시와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회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공자의 이러한 태도는 시와 음악이라는 장르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속성을 염두에 둔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와 음악은 회화와 달리 작가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데 더욱 중점을 둔다. 공자가 그토록 강조했던 인은 사람이 그 스스로 내면을 다스림으로써 나온다. 따라서 공자는 인간의 심성을 다듬는 데에 시와 음악이 주는 효용성을 간파했고, 또 그 스스로 시와 음악에 상당히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비록 현대 회화는 철저히 작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공자와 플라톤이 살았던 옛 시대에 회화는 대상의 형태를 재현하는 데에 우선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3. 예술의 사회?도덕적 기능공자사상의 핵심은 인이다. 공자는 인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료한 정의를 내놓지 않았지만, 인은 그것을 나타내는 인(仁)이라는 글자가 보여주듯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맺는 관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인이 필연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전제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를 빼 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개개인은 사회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어른과 어린이, 친구와 친구라는 관계를 맺기 마련이며, 그 관계 속에서 자기에게 부여받은 위치에 걸맞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데에서 예(禮)가 실현된다. 때문에 공자의 인간관은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에서부터 출발한다. 공자의 제자인 유자는 이렇게 말한다.“예의 기능은 화합이 귀중한 것이다. 옛 왕들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다고 여겨서, 작고 큰 일들에서 모두 이러한 이치를 따랐다. 그렇게 해도 세상에서 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화합을 이루는 회를 이룰 수 있다. 즉, 예를 따라서 행한다 해도 화합이 없다면 예가 제대로 시행될 수 없다. 그러나 화합의 중요성을 알면서 예의 차별성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를 무시한 자가 있다면, 그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공자께서 계씨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뜰에서 천자인 양 여덟 줄로 춤추게 하다니, 이것을 참고 봐줄 수 있다면 그 무엇인들 참고 봐주지 못하겠는가?”(팔일 3)당대 노나라의 세도가인 대부 계손씨가 자신의 집 뜰에서 오직 천자만이 행할 수 있는 의식인 팔일무를 행하자 공자는 매우 진노하였다. 풍악과 가무는 반드시 예에 부합하도록 실행되어야 하나, 계손씨는 이를 어기고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했다고 본 것이다. 더불어 공자는 악의 형식적 사용의 측면 뿐 아니라, 내용의 측면에서의 사회 도덕적 의미의 중요성 역시 지적한다.안연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라의 역법을 쓰고, 은나라의 수레를 타며, 주나라의 예관을 쓰고, 음악은 순임금의 것을 따르며, 정나라의 음악을 몰아내고, 교묘하게 말 잘하는 사람을 멀리 해야 한다. 정나라의 음악은 음란하고, 교묘하게 말 잘하는 사람은 위태롭기 때문이다”(위령공 10)남을 위주로 언행을 도모하고, 오로지 남의 환심만을 사기 위한 인간, 즉 교언영색한 인간들은 말에 온갖 기교를 부리며 아첨을 떤다.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음란한 음악은 정서를 어지럽히며 단지 관능적 쾌락만을 가져다 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음악을 향유하는 사회는 결국 위태로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정나라의 음악이 도대체 어떤 화음으로 들리는지는 지금으로선 알 방도가 없지만, 정나라의 음악에 대한 공자는 음악의 심미적 기능을 간파하면서 동시에 음악에 높은 윤리적 가치를 요구한다.4. 인격의 도야를 위한 예술그러나 공자는 예와 악도 그것이 인함에 도달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지적한다.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사람이 되어서 인하지 못하다면 예의를 지킨들 무엇하겠는가면, 천하가 인에 귀의할 것이다. 인을 실천하는 것이야 자신에게 달린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달린 것이겠느냐?”(안연 2)예가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로부터 비롯된 질서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의지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인의 실현은 외적인 규범이나 의식,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도덕적 주체의 자발적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참된 의미를 갖는다. 인간이 예의규범을 행할 때에도, 그 자신의 마음 속에 상대방에 대한 공경의 마음씨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저 형식적겉치레에 불과할 뿐이다.이와 같은 공자의 언급은 이상적 인간상인 군자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으로 외적 예의규범의 실행 뿐 아니라 자발적인 인격수양을 통해 자신의 성품을 정화할 필요성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바탕이 겉모습을 넘어서면 촌스럽고, 겉모습이 바탕을 넘어서면 형식적이게 된다. 겉모습과 바탕이 잘 어울린 후에야 군자다운 것이다”여기서 ‘겉모습(文)’이 격식과 예의, 예악문물 등을 뜻한다면, ‘바탕(質)’은 사람다운 사람으로서의 품성을 뜻한다. 이처럼 내용과 형식의 동등한 추구를 강조하는 공자의 정신은 그의 제자 자하와의 대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자하가 여쭈었다. “‘고운 웃음에 보조개가 아름답고,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또렷하니, 흰 바탕에 무늬를 더하였네’ 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다음이라는 것이다”자하가 말하였다. “예는 나중 일이라는 말씀이십니까?”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으켜 주는 자는 상이로구나! 비로소 자네와 함께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팔일 8)공자는 그의 제자가 어떤 성품의 인간인가에 따라 각각 다른 언급을 한다. 그래서 소소한 예절과 준칙을 잘 따르는 자하에게, 형식적 예의의 중요성만큼 그것을 행하는 마음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던 것이다.문(文)과 질(質)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군자가 될 수 있다면, 인간의 심성의 내재한 고유한 윤리적 품성을 뜻하는 질(質)의 개념으로부터불러 일으킬 수 있고, 사물을 잘 볼 수 있으며,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고, 사리에 어긋나지 않게 원망할 수 있다.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며,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된다”(양화 9)젊은이들의 감성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시인을 국가에서 추방할 것을 주장한 플라톤과는 달리, 공자는 시의 긍정적 효용성을 본다. 하이데거가 인간은 시를 통해서 존재를 기술하고, 존재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보았던 것처럼, 공자 역시 시를 통해서만 새와 짐승, 초목 등 이 세상 만물의 제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시를 통해서 나와 상대방이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인간임을 깨달음으로써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본다. 시를 그토록 예찬했던 공자는 그 스스로 주대 이래 내려오던 시들을 정리해 『시경』을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다.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시경』에 있는 삼백 편의 시를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생각에 거짓됨이 없다’는 것이다”(위정 2)이 문구에서 공자는 시를 지을 때 생각에 거짓됨 없는『시경』의 시들처럼 시를 창작하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앞서 언급했던 바탕(내용)과 겉모습(형식)의 논의에서 보았듯이, 시 창작에 있어서도 내용적인 측면과 형식적인 측면이 있다. 공자는 시 창작에 있어서 형식은 두 번째 문제이며, 인간의 내면을 꾸밈없이 드러낼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 같다.그러나 공자는 춘추시대라는 사회적 혼란기에 삶을 살았던 인물이고, 또 그러한 혼란의 시대를 극복하고 주대의 예를 회복하고자 정치 일선에 나서기 위해 전 중국을 돌아다니며 제후들을 설득했던 사람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시경』의 시 삼백 편을 외운다 해도, 정치를 맡기면 잘 해내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도 독자적으로 대응을 할 수 없다면, 비록 시를 많이 외운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자로 5)이러한 공자의 언급은 신유학 사상을 국가적 이념으로 채택한 조선 시대 문인들의 수신을 위한 예술 활)
    인문/어학| 2011.05.02| 8페이지| 1,000원| 조회(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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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의 사회적 기능과 문화산업. 평가A+최고예요
    음악의 사회적 기능과 문화산업들어가며예술작품 창작의 자율성은 점차 증대되어 가고 마찬가지로 소비의 자율성도 증대되어 가지만, 한편으로 인간의 깊은 심연도 드러나 있지 않고, 또 그만큼의 노고도 들어 있지 않은 예술작품들도 그만큼 늘어가고 있다1).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 속에서 음악소비자인 대중은 고단한 경쟁의 피로를 풀기 위해 말초적 즐거움만을 주는 대중음악을 즐기고, 그렇게 삶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해소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오늘날 대중들에게 클래식 음악은 아무런 심미적 감흥도 주지 않으며 고리타분하고 어렵기만 한 음악으로 들리고, 귀를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주지 않은 음악이 TV나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면 즉각 채널을 돌리거나 전원을 꺼 버린다.이러한 현실은 자본주의라는 사회 체계 속에서 우리 삶의 조건으로 우리가 음악을 듣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도대체 음악의 어떤 속성들이 사회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질문은 음악소비자로서의 대중인 우리가 음악을 청취하는 방식을 반성하고자 한다면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글은 음악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음악소비자인 대중의 음악 청취 방식에 대해서 아도르노의 음악사회학 이론을 토대로 고찰할 것이다.음악과 소통인간이 언어를 통해 상호 소통하는 동물이라는 점은 인간과 여타 동물들을 구분해 주는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언어는 사람의 소리 즉 음성으로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수단 및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음악 역시 언어와 마찬가지로 소리를 소재로 감정을 전달하는 예술의 한 장르이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을 전달한다는 목적의 동일함과 소리라는 전달수단의 동일함의 측면에서 적어도 목적과 그 기능에서 동일함이 인정되므로 음악을 언어적 예술로 이해할 타당한 이유가 있다2).비록 음악의 의미는 일상언어에서의 의미와는 달리 추상적이기 때문에 음악을 통한 의미전달은 상당한 난점 음악을 듣고 이해하는 과정은 서로 공통적인 속성이 있음도 분명하다. 우리가 낮선 국가에서 통용되는 외국어를 들으면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가 접해 보지 않은 외래 문화권의 음악을 처음 들으면 그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음악을 듣는 방법도 말을 이해하는 것처럼 문화 속에서 배워 나가는 것이며, 우리는 일상언어적 혹은 음악적 맥락을 이해하여야만 그것이 우리에게 단순한 말소리나 음악소리가 아닌 의미를 띤 메시지로 다가오는 것이다3).언어가 인간과 인간의 소통의 매개체로 기능한다는 사실은 언어의 사회성을 설명해 준다. 언어는 인간이 타인과의 소통을 위하여 만들어 낸 산물이다. 언어는 특정 시대와 특정 문화를 반영하며, 인간은 그가 속한 문화 속에서 언어의 규칙을 배우고 사용한다. 따라서 한 개인이 새로운 언어 규칙을 만든다고 해서, 예컨대 어제까지 ‘고양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우던 대상을 ‘토끼’라는 명칭으로 바꾸어 부르자는 제안을 한다고 해서, 그가 속한 사회가 그가 만든 규칙을 즉각 수용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감정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수용하는 소통의 매개체인 음악 역시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음악창작자나 음악수용자 모두 그가 속한 사회 체계의 음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음악사회학앞서 우리는 음악도 언어와 마찬가지로 인간 상호간에 감정을 전달하고 수용하는 소통 체계임을 살펴보면서 이러한 소통성은 결국 사회성을 수반함을 살펴보았다. 전통 음악미학에서는 사회가 음악의 방향에 약간의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파악하지만, 이러한 관계를 뒤집어 보는 것이 음악사회학이다. 음악사회학은 음악은 사회의 산물이며, 사회를 반영하는 예술이라는 입장에서 음악을 연구한다. 음악사회학의 관점에서 모차르트는 천재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 안에서 만들어진 천재이다. 사회학자 엘리아스는 모차르트가 살던 시대에 궁정 사회의 귀족적 취향과 관습의 취향에서 자유롭고자 한 모차르트의 창조성과 그의 아버지의 엄청난 후원이 모차르트를 천재 예술가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와 그 결과물도 모두 사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5).이처럼 음악은 고대로부터 종교적·정치적·사회적으로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고, 오늘날에도 음악의 사회적 파급효과와 기능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는 음악사회학은 막스 베버의 저서 『음악의 이성적 사회적 토대(1921)』에서 태동하였다6). 그는 서양 문명 속에서 나타나는 경향 중 하나가 합리화를 지향하는 움직임이라고 보면서, 서구 음악의 음악 체계 속에서 합리화 경향을 발견해 내려고 하였다. 그는 음악의 합리화를 강화하는 요소로 선율과 화성의 관계, 음계, 음악 구성에 있어서의 다 음조성 평균율 악기 등을 들고 있다7).아도르노는 음악사회학의 아버지로 일컫어질 만큼 1960년대에 음악사회학의 강렬한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20세기 중반 이후 오늘날까지 음악 분야에서 가장 많은 논의를 몰고 온 철학자이자 음악학자였다. 아도르노의 기본 전제는 막스 베버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서구 문화 속에서 어떠한 형식의 음악도 사회와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음악의 사회적 기능은 예술음악 이외의 영역 예컨대 광고음악, 백화점이나 레스토랑 등 공공시설의 배경음악, 영화음악, 노동운동이나 집회에서 사용되는 음악 등에서 특히 잘 드러나는 법이다8). 이같은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주목하면서 아도르노는 현대 대중음악을 고찰한다.대중음악과 문화산업대중음악은 전통적인 음악학에서 도외시되어 왔다. 그러나 음악사회학은 예술음악에 집중된 음악학 연구를 비판하면서 많은 청중이 가지는 대중음악을 학문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렸다9).대중음악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지만, 과거에는 대중이 결코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아니었다. 그러나 TV, 라디오, 컴퓨터 등의 새로운 매체를 탄생시킨 정보기술의 진보와 함께 대중들은 그 이전 시대의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쉽게 음악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값비싼 악기와 이를 다룰 줄 아는 연주자가 있어야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던 전근대 사회에서되면서 평범한 소시민들도 손쉽게 음악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10).아도르노의 정식 직함은 철학자였지만, 그는 부전공으로 음악을 공부했고 작곡가로 활약했었다. 그는 예술음악 뿐 아니라 대중음악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음악청취자의 유형을 훌륭한 청취자, 교양적 청취자, 교양 소비자, 감정적 청취자, 복수형 청취자, 오락형 청취자의 여섯 가지 범주로 구분하면서, 음악 청취자의 대다수는 오락형 청취자에 해당되며, 이들에게는 음악이 흡연과 비슷한 일종의 오락적 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11). 아도르노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댄스음악들을 들은 그의 경험에 비추어 대중음악은 반복적이고 표준적인 것으로 들었고, 대중들에게 최면적인 효과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다12).대중음악은 상업적 성격의 문화풍토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아도르노가 보기에 대중음악은 문화산업의 일부분이다. 그는 문화산업의 부정적 성격을 지적하며 이를 혹독하게 비판한다. 문화산업은 타락이며 들뜬 재미에 헌정된 성전이며, 단순히 장사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며, 하자 없는 규격품을 만들 듯이 인간들을 재생산하려 든다는 것 등이다13). 문화산업의 주된 수요층인 오락형 청취자들은 생산노동의 공정 속에 감금되어 버린 자신들의 위치로 인해, 순수음악과의 관계를 지닐 수 없으며 대량생산되는 신물나는 음악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14).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의 체계 속에서 대중음악은 다음과 같은 원리에 따라 제작된다고 말한다. 대중음악 제작자들은 대중음악의 소비자들을 철저하게 조사하여 대중음악 소비자들의 취향을 학력·연령·직업 등으로 나누어 그 기호에 부합하는 ‘맞춤식 음악’을 생산한다. 이처럼 규격화되어 제작되는 대중음악은 익숙함을 낳고, 익숙함은 어려움 없는 수동적 청취를 조장한다. 이같은 대중음악의 창작 양식은 창의적 시도가 없음을 의미하며, 기존 질서에 심리적으로 적응시키는 역할을 한다15). 서 예술적 감수성을 넓혀 나간다. 결론적으로 대중음악은 피상적으로 정해진 규칙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할 뿐이다16).이같은 아도르노의 대중음악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실험적인 대중음악 창작자들은(예컨대 인디 음악에서)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소재로 새로운 시도를 무한히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의 대중음악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대중음악의 생산 근원에 있어서 특수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상이한 문화 생산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상이한 음악 산업에 유행하는 경쟁적 시장 관계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17).그러나 아도르노의 대중음악 비판의 핵심은 고통을 잊게 하는, 즉 마취적 문화산업의 역할에 대한 경각심이다. 그는 문화산업의 문제에서 ‘고통’을 거론하면서, 순진한 사람들은 마취제에 취하여 그것을 행복이라 생각하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18).마치며우리가 소리로 나타나는 언어에 자신의 메시지를 담아 상대방에게 전달하듯이 음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메시지로 전달할 수 있으며, 따라서 언어와 음악은 상호 유사한 기능이 있다. 언어와 음악 사이의 상호 유사성을 인정한다면, 언어가 사회 체계를 전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악 또한 사회 체계를 전제하고서만 창작, 감상, 비평의 활동이 가능함을 뜻한다.음악사회학자들은 음악적 활동과 그 결과물이 사회를 떠나서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음악사회학의 대표주자로 인정받는 아도르노는 예술음악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전통 음악학의 방법론에 그치지 않고 기능적 음악들을 고찰하면서, 음악은 사회의 지배적인 관념과 사회적인 상황을 그대로 그려내고, 그 안에서 음악은 창작되어지고 수용되어진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도르노는 대중음악이 자본주의의 문화산업이라는 체계에 종속되어 부를 생산하는 도구로 전락하였음을 지적한다. 특히 음악 청취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락형 청취자들은 흡연과 비슷한 청취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대중음악 제작자들은 이러한 소비한다.
    예체능| 2010.09.15| 6페이지| 1,000원| 조회(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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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세기 러시아의 역사(당대 고려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13세기 러시아의 역사 - 동방에서 온 '재난' 서방에서의 '배신'국사학과 20046300##공국(公國)의 형성과정13세기의 러시아는 여러 공국들로 이루어진 중세 봉건 체제를 형성하고 있었음 고대 끼예프 러시아: 8세기경 끼예프 지역의 동슬라브인들이 러시아의 고대국가 '끼예프 러시아'를 형성 끼예프 러시아를 통치했던 대공들이 자신의 아들들에게 도시와 마을이 딸린 분령지를 상속영지로 주었음13세기 러시아 공국(公國)노브고로드, 블라디미르 수즈달리, 뽈로쯔끄, 스몰렌스끄, 노브고로드 세베르스끼 대(大) 노브고로드: 볼호프 강 인근 위의 러시아의 여러 공국 중 가장 강한 공국동방에서 온 재난몽고-따따르의 西進따따르란? 1206, 징기즈칸의 몽고족 통일 1220, 중앙아시아의 최대 도시 사마르깐드 정복 1223, 깔까강 전투 카스피해 인근의 도시국가 뽈로베쯔가 러시아 공국에 도움을 요청, 패배바투칸의 러시아 대습격1227, 징기스칸의 사망으로 그의 손자 바투가 전쟁 지휘권을 넘겨받음, 본격적인 유럽 정복 시작 1237, 바투 세력, 라쟌 공국 침략 치열한 접전 끝에 몽고-따따르 승리1242, 바투는 서유럽 공격 준비 완료. 그러나 원 태종 오고타이 칸의 사망으로 동방으로 군사를 철수하고 볼가강 하류의 도시 사라이에 도읍. 금 한국(金汗國). 노브고르드 공국은 해빙기로 인한 주변지역의 진흙수렁 때문에 몽고군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았음.몽고-따따르 치하의 러시아 (바투칸의 러시아 공국 통치)러시아 제공국(諸公國)에 징세리를 파견하여 사정 없이 공납을 징수해 감 무수히 많은 러시아 장정들이 몽고군에 강제 징집되어 병역에 복무 몽고인들은 러시아인 고래의 관습이나 법률은 인정하였으며, 교회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태도를 유지몽고-따따르의 침략에 대한 러시아 공국들의 태도“이것은 우리들의 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속되고 잔인한 궁정,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 도둑질, 간통 등 갖가지 악마적인 소행 때문에 하나님의 노여움이 현실화되었다”러시아에 미친 문화적 영향이전의 러시아인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중앙집권 정치체제를 몽고인들을 통해 경험 레닌의 부계 혈통에 따따르인이 있었음 키릴 문자와 몽고어 문자 형태의 유사성러시아어에 나타난 몽고어의 흔적 (주로 억압과 관련된 단어)'수갑, 족쇄(깐달르이)', '채찍(니가이까)', '노예 신분(까발라)' 무역과 관련된 용어: '젠기(돈)', '따모즈냐(세관)'스웨덴과 독일 기사단의 러시아 공국 침략러시아에 대한 로마 교회의 인식1054년 교회가 로마와 비잔티움으로 분리된 이후, 로마 교회는 비잔틴 교회에 속한 러시아인에 대해 '이교도' 보다는 약간 나은 '이단자', '이교자'로 간주 당시 교황은 독일과 스웨덴의 기사들에게 '십자가의 적'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고 싸울 것을 호소몽고-따따르와의 싸움으로 지친 틈을 타, 독일과 스웨덴의 봉건 영주들이 러시아의 영토를 노렸음. → 네바강 전투, 추도호 전투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를 통해 본 13세기의 러시아네바강 전투 (스웨덴군과의 싸움)1240년, 스웨덴 국왕 에르흐 까뜨라보이의 사위 비르게르가 지휘 하에 스웨덴군이 노브고로드를 침략 노브고로드의 공후 알렉산드르는 기병과 보병부대를 동원해 네바강 인근에 정박해 있던 스웨덴 함대를 격파. 이 전쟁에서의 승리로 알렉산드르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라 불리게 되었음.추도호 전투 (독일기사단과의 싸움, 영화에서의 배경)노브고로드의 대귀족들은 네바강 전투로 주가가 상승한 네프스키를 경계 대귀족들의 횡포에 질린 네프스키는 노브고르드를 떠나 뻬레야슬리블리 잘레스키라는 한적한 마을에서 낚시를 하며 살았음영화에 나타난 몽고-따따르의 흔적노브고로드 공국은 몽고-따따르로부터의 침입을 받지 않았음 하지만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를 비롯 상당수 노브고로드인은 몽고-따따르의 잔혹한 전술이 두려워 저항을 원치 않았음 노브고로드 공국은 금 한국에 조공을 바치게 되었으며, 대공 자리 역시 금 한국의 칸에게 승인을 받아야 했음1240년, 독일의 봉건영주가 조직한 튜튼 기사단이 러시아를 침략하였음 노브고로드의 주민들은 '두마'에서 튜튼 기사단과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며, 네프스키에게 전쟁을 지휘해 줄 것을 요청1242년, 노브고로드 인근 쁘스꼬쁘의 시장 뜨베르질라가 튜튼 기사단에 항복.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는 튜튼 기사단과 맞서기 전에 '배신자' 뜨베르질라를 처단. 1242년 5월, 추도호의 얼음층 두께가 얇아지자 네프스키는 튜튼 기사단을 얼음층으로 유인하여 전몰시킬 계획을 세움, 작전이 성공하여 튜튼 기사단 기병대 상당수가 호수에 수장되었음. 이후 독일의 봉건 영주들은 동진정책을 미루거나 취소{nameOfApplication=Show}
    사회과학| 2010.04.05| 29페이지| 1,000원| 조회(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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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르네스트 르낭, [민족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서평.
    에르네스트 르낭, 민족이란 무엇인가 서평이 책은 르낭이 쓴 ‘프랑스-독일간의 전쟁’과 ‘민족이란 무엇인가’의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장에서는 프랑스-독일의 전쟁(일명 보불전쟁)에 대한 르낭의 입장을 다루었고, 두 번째 장은 보불전쟁이 끝나고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감정이 격해 있던 1882년에 소르본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이다.르낭은 종족과 민족을 혼동하는 당시의 세태에 대해 지적하면서 문제제기를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민족국가라는 개념은 근대에 들어와서 형성된 개념이기 때문에 과거의 종족 개념과는 관계가 없다. 게르만족의 이동을 비롯하여 역사상에는 종족과 종족 간의 이동이 자주 일어났고, 갈리아인이라는 인식은 이미 2세기에 사라져서 고증학적인 관점에서만 발견된다. 때문에 순수한 종족이란 존재치 않는다. 그래서 근대 프랑스는 켈트족이기도 하고 이베리아족이기도 하며 게르만족이기도 하다.언어 역시 민족을 구성하는 요소로 볼 수 없다. 미국과 영국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하나의 민족을 구성하지 않는다. 반대로 스위스는 같은 민족을 구성하는데도 서너 개의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 집단과 민족을 결부시키는 것은 곧 언어의 한계를 정하고 좁은 곳에 우리를 가두는 것이다.종교 역시 근대 민족의 확립과 관계가 없다. 고대 아테네인은 아테네의 종교 의식을 실행하여야 했고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아테네인임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국가 차원의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톨릭 신자도, 개신교 신자도, 프랑스인, 영국인, 독일인이 될 수 있다. 종교는 더 이상 인민들의 경계선이 아니다.르낭은 민족이라는 개념의 근거를 ‘해당 지역 주민들의 함께 살고자 하는 의지’로 보았다. 민족을 문화적 귀속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정치적 선택의 문제에 맡긴 것이다. 이는 르낭의 보불전쟁에 대한 주장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의 통일은 큰 실수였다. ‘엄격하고 타산적이고 관용적이지 못한’, 또 ‘봉건적이고 편협하고 호전적인’ 프로이센의 성향과 알자스, 로렌 지방의 ‘인민들의 소속의지’를 무시한 독일 영토 병합은 비판받아 마땅했다.
    독후감/창작| 2010.04.05| 1페이지| 1,000원| 조회(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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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철학 리포트] 전통미학의 기본 가정들에 대한 도전과 대안으로서의 여성주의 미학
    Ⅰ. 여성주의 철학과 여성주의 미학의 시작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로 내건 프랑스 혁명을 필두로 서구 사회는 중세 봉건제 사회를 종식하고, 원리적으로는 모든 권력이 시민들로부터 행사되는 근대 시민사회로 이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의 초기 근대 시민사회에서 이러한 정치적 권리들은 어디까지나 재산을 가진 백인 남성들에 한정된 것이었고, 여성들에게는 가당치 않은 주장이었다. 이처럼 프랑스 혁명기 자유주의 인권관의 불완전한 자유·평등·박애의 기치를 극복하기 위한 여성주의 운동은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수백 년간 계속되어 왔으며, 오늘날 수많은 국가들에서 법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한 수준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성학과 여성주의 이론들이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여성학과 여성주의 이론들이 등장한 뒤 이들은 점차 상당한 학문적 발전을 쌓아갔지만, 여성주의 철학은 훨씬 늦게 출현했다. 전통 서구 철학에서 섹스와 젠더의 문제는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른 적이 없었다. 여기엔 보편성을 추구하는 철학이 성별과 같이 부분적이고 편향적인 요소를 진지한 탐구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전통 철학의 저항이 한 몫을 했다1). 그러나 보편성과 객관성, 동일성과 같은 근대 철학의 기치에 대한 회의감이 팽배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경향이 등장한 20세기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여성철학은 짜임새를 갖추고 철학의 분과로 취급받게 되었다.여성주의 철학이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철학의 분과 영역인 미학에서도 섹스와 젠더의 문제가 쟁점화되었고 1990년대 초기에 이르러 여성주의 미학이라는 영역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여성주의 미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만큼 연구자들 사이에 상당한 이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으로 분류되는 이 다양한 미학적 논의와 주제들로부터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성별 정체성의 문제의식의 공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2). 여성주의 미학은 전통 미학이 암묵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남성 가부장적 전제들에 대해 도전하는 동시 위시한 비합리주의적 경향의 철학이 등장하고 포스트모던이 작금의 사상적 주류를 형성하기 이전까지, 플라톤 이래 이천여년간의 서구 철학은 인간의 이성에 대해 강한 신뢰를 보냈고 그에 반대되는 감성적 요소들은 이성적 판단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치부하였다. 말하자면 인간임을 규정하는 본질적 속성은 이성이며, 이성은 자연, 감정, 신체보다 훨씬 우월한 위치에 있다3). 플라톤의 이성/감성의 이분법적 도식은 이후의 서구 사상에서 변화하고 혼돈스런 세계 속에서 불변의 객관적 진리를 깨닫고 그럼으로써 변화하는 세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지성적 인식 능력은 남성의 몫이며, 감각과 감정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확실한 대상만을 보기 때문에 혼돈이나 무질서를 야기할 수밖에 없으므로 수동적으로 지성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여성 이미지로 연결된다.이러한 이성중심주의적 관점에서 예술적 창조나 미적 경험을 주관하는 능력은 이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술적 천재들이 작품에 투여하는 직관, 감수성, 광기 등과 같은 것은 자연적·문화적 한계를 초월하기 때문에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전통적인 미학 담론에 있어서 미적 쾌의 개념은 남성주의적 관점이 암암리에 내포되어 있으며, 이성의 원리에 부합하는 합리성의 개념으로 논의되었다. 이들은 예술의 가치와 미적 경험의 보편성과 객관성에 주력해 오면서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 세계에서 우연성을 배제하고 근본적이고 일반적인 속성을 찾아 왔다. 콜스마이어(Carolyn Korsemeyer)는 특히 감정·신체·자연과 여성을 이성과 대립적인 위치에 놓는 이분법이 전통 미학 담론에서 가장 명시적으로 나타나는 지점이 천재와 숭고 개념이라고 말한다4).천재는 기존의 예술 규준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법식을 만들어 내는 천부적 능력을 뜻한다. 천재적인 예술가가 보여주는 감수성, 테크닉, 직관, 광기 등과 같은 것은 이성적 판단과는 거리가 먼 것이지만, 이들 천재의 작품들은 자연과 문화가 제공하는 것을 초월하기 때문에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천재 개념는 우월한 것, 장엄한 것이다. 이처럼 숭고는 항상 장대한 대상들에서 발견되는데, 신은 가장 장대한 대상으로서 공포와 찬양의 대상이다. 숭고미를 경험할 때 우리의 마음은 경악이나 황홀경, 외경으로서 감각된다6). 17세기 말부터 비평적으로 사용된 숭고의 개념은 미의 자매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숭고를 미적 범주로서 정식화한 버크(Edmund Burke)는 숭고미를 형식미의 여성성에 대한 반대 개념인 남성성으로 규정했다. 예컨대 숭고는 크고 강하고 각진 남성적 속성인 반면, 미는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곡선의 속성을 갖고 있다.천재와 숭고로 대변되는 남성중심주의적 전통 미학의 관점에서, 예술적 창조성은 오직 지성적 능력을 갖추고 있는 남자들에게만 한정된 것이었다. 미술사가인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이 1971년에 자신의 논문 에서 지적했듯이, 가부장제적인 역사가 여성에 대한 ‘2등 인간 존재론’을 구성하면서 그 존재론의 평가적 기준들이 여성예술사를 공백에 남겨두었다. 이러한 남성 중심적 예술 개념에서 건축, 조각, 회화는 남성적 특질을 갖고 있으며, 꽃 그림이나 미니어처 류의 공예품들은 여성적 특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7).Ⅲ. 관점주의의와 맥락주의전통 철학이 기반하는 보편성과 객관성, 이성 중심주의는 현대 포스트모더니스트 사상가들에 의해 허구적 이상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된다. 관점주의를 취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이 나의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는지, 초개인적이고 초인간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적 입장을 취한다8). 이러한 철학적 맥락에서 여성주의 미학자들은 천재나 숭고와 같은 개념들이 노동의 구속에서 벗어나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소유할 만한 여력이 되는 상류층 지배 계급 남성의 관점이 투영된 것으로 본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적 경험을 남성주의적 관점으로 이성의 원리에 부합하는 합리성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은 특수자들의 관점을 보편자의 관점으로 가장하는 것일 뿐이다.전통 미학의 규준에 따른다면 성별을 비롯한 특개념들조차 특정 시대와 사회의 정치적 구조를 근간으로 구성된 것으로서 미학의 원리가 보편적이고 성을 초월하며, 정치적 관심이야말로 미적 기준을 위반한다는 전통미학의 주장은 역설적으로 미학이 더 관점적이고 정치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Ⅳ. 여성주의 비평과 여성예술1970년대에는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었는가?”라는 린다 노클린의 질문과 함께 미술사에서 여성 예술가들의 작업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문화 예술계 안에서 여성들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1970년대 중반에 여성주의자들은 '여성비평(gynocriticism)'이라고 불리우는 접근방법을 시도한다. 여성비평은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것’으로 고려되어 왔던 작품들의 지위를 탐구한다9). 여성주의 비평은 여성성 이론과 성별 이론이라는 두 가지 입장에서 전개되었다.여성성 이론은 여성 예술의 특징이 작가의 여성적 정체성에 근거한다는 입장이다. 1970년대 중반의 여성주의 비평가들(gynocritics)은 남성주의 전통 안에서 창작 활동을 하는 재능 있는 여성들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분석하면서 가부장적 규범들과의 정면 대결을 외쳤다. 시수(Helene Cixous)와 이리가레(Luce Irigaray)와 같은 프랑스의 여성주의 비평가들은 서구 사상에서 여성적인 것의 재현과 표현들을 탐색했다. 이들은 여성의 본질적인 언어는 초탈과 거리두기를 통해 객관성을 추구하는 남성적 언어와 구분된다고 주장하며,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를 발견하고 탐험하고 또 여성의 신체의 언어로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10). 이처럼 여성성 이론은 여성의 예술적 정체성을 본질화하는 접근방식이다.1980년대 후반에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을 비교 연구하고, 생물학적 시각보다는 성차의 사회적 구성 요소들에 초점을 둔 성별 이론(gender theory)이 등장하였다. 성별 이론가들은 여성성 이론이 본질주의에 경도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성별 이론은 인종, 계급, 관습과 무관한 심리적, 현상적, 생리적인 본질이 있다는 것을 거부한다. 여성적 는 것은 발견되어야 할 어떤 본질적인 여성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여성 개개인의 고유한 시각만을 중시하면 기존의 남성 중심주의가 범했던 이분법을 그대로 차용하는 여성 중심주의로 흐르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12).그러나 공통된 여성적인 미적 성질들을 찾는 것은 여성적 본질을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주의 미학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과정적 작업이 되어야 할 필요성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탐색의 과정은 여성들의 작품을 연구하기 위해 올바른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리스 와이츠(Morris Weitz)의 주장대로, 예술 일반에 해당되는 공통된 본질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예술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예술 개념을 정의할 수 없다는 소극적 주장을 넘어서, 예술의 정의불가능성은 곧 예술의 자율성과 개방성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함을 뜻한다13). 따라서 여성주의 예술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예술가, 감상자, 전시 기획자 등 예술계의 구성원들의 관심사와 목적에 따라 임시적으로 답변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예술이라는 영역 역시 근본적으로 열려져 있고 가변적이며 개방된 영역인 것이다.맺음말여성주의 미학은 전통 미학의 가정들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이에 도전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플라톤 이래 서구 철학의 위계적, 이분법적 관점은 이성과 감성의 영역을 구분하고, 전자를 남성적 속성으로, 후자를 여성적 속성으로 귀속시켰다. 전통 미학은 이러한 서구 철학의 남성중심적이고 이성중심주의적인 전통에 근거하여 미적 쾌의 보편성과 객관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천재와 숭고 개념은 전통 미학의 남성중심적 성격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다.그러나 여성주의 미학은 전통 미학에서 미적 경험의 보편성과 객관성을 찾으려는 일련의 시도들에 문제를 제기한다. 여성주의 미학자들은 인간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현실세계를 넘어선 초월적 관점을 취할 수 있다는 전통미학의 주장에 대해 회의적다.
    인문/어학| 2010.03.01| 5페이지| 1,000원| 조회(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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