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부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Ⅰ. 서론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여러 식으로 관계를 맺어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두 명만 모여도 이미 인간관계는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 사회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그러한 사회 속에서 인간관계 역시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에서부터 철학을 시작했다면 이제는 한 단계 나아가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해볼 차례다.Ⅱ. 본론1. 플라톤의 연애론1) 플라톤(기원전 428? ~ 기원전 347?)고대 그리스의 대철학자로 철학의 시조인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다. 그는 대화를 통해 진리를 찾아가는 변증법적 운동을 훌륭히 그려냈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적인 부분의 덕이 지혜, 정욕적인 부분의 덕이 절제, 이성의 명령에 복종하여 정욕을 억압하는 기개의 덕을 용기라고 하였다. 또 그는 국가를 개인의 확대로 생각하여, 개인에 있어서의 정욕의 부분은 농 공 상업의 서민, 기개 부분은 군인 관리, 이성부분은 통치자 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철학자가 왕이되거나 왕이 철학을 해야 한다’ 는 철인정치론을 전개하였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등이 있다.2) ‘사랑의 에너지’ 는 어디에서 오는가?사랑의 욕구는 상대방에 대한 강렬한 소유욕이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는 서로에 대한 욕구가 항상 존재한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의 육체적 사랑과 같은 성적 호기심의 표출이 사랑의 전부만은 아니다. 흔히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게 되면 남자는 자존심이 넘쳐 보이고 여자는 예뻐진다고 한다. 이러한 ‘사랑의 에너지’ 는 사랑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어서 정신적으로 안정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까?이에 대해 플라톤은 그리스 신화를 빌려 사랑에 대해 설명했다.애초에 인간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붙은 모습이었다. 이러한 완벽한 조화를 이룬 인간은 신들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그래서 신들의 수장인 제우스가 이러한 인간을 두려워한 나머지 완전한 인간을 반으로 쪼개버렸다. 이렇게 해서 남자와 여자는 반으로 나누어졌다. 완전한 인간에서 둘로 나눠진 인간은 신에게 맞설 수 없는 약한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둘로 쪼개어진 남자와 여자는 각각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을 찾아 전 세계를 떠돌아 다니게 되었다3) 에로스 : 완전한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 좁은 의미 : ?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를 갈구하는 충동.? ‘본래의 온전한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 ‘조화로운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 는 욕구야말로 에로스의 원천이다.- 넓은 의미 : ? 욕구란 단지 사랑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 고 싶어하는 마음도 포함된다.? 자신의 이상이나 희망은 이루기 위해 실천하는 실제적인 힘.? 현재의 자신을 뛰어넘고자 하는 힘.cf ) 사랑의 유형- Agape : 무조건적인 사랑, 자기 희생적 사랑,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 Philia : 이성적 사랑, 인간의 우정- Eros : 감성적 사랑, 남녀간의 사랑* 이데아 : 영원 불멸하며 완전하고 참된 실재.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궁극적 이상.* 에로스는 이데아를 지향한다.- philosophia(知愛, 지를 사랑함) ㅡㅡㅡ유래ㅡㅡㅡ> 철학(philosophy)철학자는 지(知)를 끊임없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남자(여자)가 여자(남자)를 끊임없이 찾아 헤맨다.- 독사(doxa, 자신의 판단)에서 에피스테메(episteme, 참된 깨달음)를 향해 나갈 때 에로스 가 작용한다.즉, 이데아는 모든 사물의 근원이다.4) 플라톤의 세계- 선의 이데아를 지향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살아가는 것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다’- 철학이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변화하려는 역동적인 활동이 다.2. 하버마스의 의사소통1) 하버마스 (Jurgen Habermas 1929∼)독일 철학자·사회학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제2세대를 대표하는 이론가이다. 아도르노·H. 마르쿠제 등 제1세대의 사상을 계승·발전시킴과 동시에 정력적으로 그 이론 전개에 힘썼으며, K.R. 포피 등에 대한 실증주의 논쟁, H.G. 가다머에 대한 해석학논쟁, N. 두만에 대한 시스템논쟁 등 많은 논쟁을 통해 국제적 각광을 받았다. 근대 합리성이 자연 지배를 모델로 하는 ‘목적 합리성’ 일변도에 빠져있다고 비판하고 ‘합의의 합리성’을 제창한다. 근래는 <비판적 이론>의 커뮤니케이션론에 의한 기초다지기, 근대화학론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공공성의 구조전환(1962)》 《이론과 실천(1963)》 《인식과 관심(1968)》 《커뮤니케이션적 행위 이론(2권, 1981)》 등이 있다.2) 의식철학으로부터의 탈피의식철학이란 칸트에서 시작해 마르크스나 베버에게까지 깊이 스며들어 있는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다. 의식은 곧 이성이었다. 20세기 들면서 의식철학은 다양한 각도에서 비판을 받았다. 특히 언어철학의 등장은 의식철학을 낡은 철학으로 만들어버렸다. 언어적 전환은 유럽이나 미국 모두에서 일어났다. 하버마스는 이 같은 성과들을 무비판적일 정도로 고스란히 수용한다. 한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두 사람 이상의 의사소통 행위에서 이성의 토대를 찾아낸 것이다.3) 의사소통은 상대와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다.발화행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의 동의나 반대 의견이 필요하다. ‘합의를 이루는 과정’ 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이 합의를 이루는 의사소통이 하버마스가 말하는 의사소통의 행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혼잣말도 역시 합의를 목표로 하는 내면의 의사소통행위라고 볼 수 있다.4) 의사소통은 곧 행위이다.- 발화행위의사소통 없이 일상생활은 불가능하다. 업무, 약속, 상대방 걱정 등 의사소통 자체가 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의사소통이 성립되려면 말이나 기호가 필요하다. 즉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은 동시에 무언가를 ‘행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사전에 실려 있는 의미가 아니라 누가 어떤 상황에서 발언하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발화행위’에 의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의사소통이 가능해 진다.- 전략적 행위의사소통 행위와 반대 의미로 소위 상대를 구실로 삼거나 도구로 취급하는 행위를 말한다. 상대에게 자신의 본래 목적은 숨기고, 마치 합의한 사항에 동의하는 것처럼 가장하면서 상대를 속이는 거짓말이 바로 이 전략적 행위이다.
인간을 위한 경제과목명 : 경제질서와 국제관계학과 : 체육교육학과학번 : 200506017이름 : 김은영Ⅰ. 한국의 경제구조1. 한국경제의 현실과 전망주지하는 바와 같이 1987년 우리나라의 수출은 462억 달러, 수입은 385억 달러로 경상수지 흑자만 해도 98억 5천만 달러로 크게 늘어났으며, 1987년 1인당 GNP도 2,817달러에 이르러 10년전의 우리나라 경제규모와 비교하면 그 양적인 성장은 실로 괄목할 만한 것이다.최근의 급격한 경제 규모의 팽창이 1986년부터 시작된 3저 현상 즉, 저달러, 저금리, 저유가로 대표되는 국제경제 여건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지만, 이를 통해 나타난 우리 경제의 잠재적 역량은 이제 무시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동안의 경제 성장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경제 성장이었나 하는 사실과 지금 우리에게 보여지는 가시적인 경제 규모가 과연 우리 경제구조와 긴밀한 유기적 관계 위에 조성된 것인가 하는 것은 이 시점에서 분명히 한번 되돌아보아야 할 사실이다.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장애물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의 극복을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의 경제가 양적인 팽창을 거듭하고 있으면서도 많은 구조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는 그 연원을 살펴보면 ①미, 일 의존의 자본형성 ②대외의존적인 국제분업체계 ③ 대일 의존적 고도성장 정책의 문제점 ④소득분배의 양극화⑤누적되는 노동문제 등을 들 수 있겠다.2. 한국 노동 시장의 구조1) 한국 노동시장의 형성과정1945년 해방 이후 일제가 남긴 식민지적 경제구조는 남북분단과 대외의존의 심화 등으로 청산되지 못했을 뿐 더러 파행적 성격이 더욱 증대되게 되었다. 또한 해방 직후에 공업생산의 급격한 위축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노동자수도 크게 감소하게 되었다. 그 후 1950년대에 와서는 해방 직후에 비해 산업시설의 가동 및 증설이 있긴 했으나 괄목할 만한 것은 되지 못했으며, 고용수준도 크게 증대되지 못했다. 즉 1963년한 장기적이고 합리적 정책이 시급히 수립,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2. 비정규직 노동자1) 비정규직의 규모통계청은 작년 8월‘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실시했다. 부가조사는 매달 실시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의 설문 문항인 종사상 지위(상용?임시?일용) 이외에, 계약근로, 파트타임, 호출, 독립도급, 파견, 용역, 가내근로 등을 추가로 질문함에 따라, 우리나라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에 접근할 수 있는 최초의 조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부가조사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채 노동부가 연구용역을 의뢰한 노동경제학회 소속 몇몇 학자들만 공유해 왔다. 최근 부가조사 원자료가 부분적으로 공개되어 이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2000년 8월 758만명(임금노동자의 58.4%)이고, 정규직은 539만명(임금노동자의 41.6%)이다. 10명중 6명이 비정규직인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96%(758만명 가운데 728만명)가 임시근로 내지 임시근로를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을 보이고 있다.2) 문제의 제기1980년대를 기점으로 세계적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한 고실업과 비정규 근로자의 증가 등 노동시장과 고용 패턴의 변화, 가족의 복지기능의 약화와 가족 형태의 다양화, 그리고 인구 노령화 등 경제?사회?인구학적 변화는 50-60년대에 상당한 수준의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해 놓은 서유럽은 물론 사회보장제도의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던 개발도상국에게도 기존 사회보장체계의 재편과 적응을 강요하는 힘으로 작용해 왔다(Esping-Andersen, 1997: 66-70; ILO, 2000: 31-49). 이러한 변화하는 경제?사회구조에 대응하여 유럽 각국에서는 사회보험의 수급자격 요건의 강화, 일을 통한 소득보장의 강화(공공부조), 미래세대의 부담 완화(연금), 비용효과성의 제고(의료보장), 그리고 직업훈련 및 교육기회 접근을 강화하는 조치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European Community, 2000). 유럽연합 집행부 차원에서는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원자료 : ?경제활동 조사연보? 각년호다른 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면 1998년 기준으로, 호주 63.9%, 덴마크 75.0%, 영국 67.8%, 미국 70.7% 등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도 59.8%로 역시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높다.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절대수치가 낮음은 물론이고, 연령대별로 나타나는 경제활동참가 현황에서 그 심각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래 〔그림 1〕에서 보여지듯이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사이에 경제활동 참가율은 오히려 급속하게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시기는 결혼, 출산, 육아가 집중되는 시기로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를 전적으로책임지면서 자신의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것이며, 이 시기에 단절된 경제활동은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새로운 경제활동에의 참여는 매우 주변적이고 따라서 열악한 노동환경인 경우가 대부분이다.〔그림 1〕연령, 성별 경제활동인구 및 참가율출산과 육아에 대한 여성의 책임은 여성 경제활동에의 낮은 참여를 비롯한 여성노동자들의 고용 현실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이와 관련하여 올해 4월에 있었던 맥킨지 보고서 ‘우먼코리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하는데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육아부담’을 꼽았으며 98년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통계 조사보고서’에서도 응답자의 31%가 ‘육아부담’을 여성취업 장애요인으로 들었다.(그림2 참조)〔그림 2〕주요국의여성경제활동참가율 및 여성이 생각하는 여성 취업 장애 요인출처 : 매일경제(2001.4.24) ?우먼코리아 보고서?(1) 일할 나이에 은퇴결국 여성의 절대적으로 낮은 경제활동 참가, 낮은 경제활동 참가의 원인을 보여주는 'M커브‘ 그래프는 여성들의 전문성을 약화시키고 하위직종으로 집중되는 현상, 나아가 성희롱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낮고 차별적인 경제적 지위를 양산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조금 더 부연하자면 ‘M러나 대부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적용 받을 수 없음. 다만 오는 7월부터 산재보험이 5인 미 만에도 확대 적용되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있고, 근로기준법의 경우 5인 미만까지 의 확대 적용이 빨리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음.▶ 연수생 - 최저임금법, 산재보상보험법 등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것들만 적용 받고 있음.(연수생들이 일하는 사업장은 비교적 규모가 있는 사업장임에도 불구하고). 공 고출신 기술실습생보다 못한 법적용을 받고 있는데 하루빨리 실질적인 노동자(노동 법상 노동자)임을 인정하고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여야 함.Ⅲ. 한국의 노동 운동1. 노동운동의 의미근대적인 임금노동자 계급이 생활조건을 유지·개선시키기 위하여 전개하는 조직적인 운동.자본주의는 잉여가치의 창출 및 증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노동력의 상대적인 과잉화를 초래하여 산업예비군(産業豫備軍)을 만들어 내고, 필연적으로 약자인 노동자계급의 상대적·절대적 궁핍화를 불가피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이에 따라 자본축적에 따른 빈곤의 축적과, 노동조건의 악화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항과 투쟁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조직적인 투쟁이 바로 노동운동이다. 즉,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의 일상적인 요구, 끊임없는 자본의 공격에 대한 방어, 임금 등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을 기본목적으로 하면서, 크게는 노동자계급이 임금의 노예 상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이러한 노동운동은 목적에 따라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 생산자로서의 임금노동자들이 임금 등 노동조건의 유지·개선을 목적으로 벌이는 노동조합운동, 둘째, 영국의 노동당과 같이 정치적 시민으로서의 노동자들이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정치 활동을 전개하는 노동자 정당운동, 셋째, 로치데일의 소비조합운동과 같이 노동의 재생산(再生産)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전개하는 노동조합운동이 그것이다.2.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1) 제1기(해방 이전)1910년 한일합방 후 일본은 토지조사로운 노동운동이 보장되기 시작되었다.3) 제3기(1961년~1971년)1961~1971년은 이제까지의 자유기업주의적 정책이 경제개발계획을 통하여‘지도받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이름 아래 정부주도형, 외자의존형, 수출주도형, 저임금의존형, 국력배양형의 개발정책으로 전환된 시기로, 고도성장을 이룩하여 경제규모 확대 및 산업구조 고도화를 기했지만 한국의 사회?경제에 유해한 충격을 던져줌으로써 노사관계는 새로운 시기를 맞게 되었다.1961년 5?16혁명 직후 혁명포고령 제6호에 의해 해체되었던 노동단체가 어용간부의 배제와 파벌지양 및 전국 단일산별노조의 형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임시조치법이 공포됨으로써 11개의 산업별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으며 현재의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조직되었다.1969년 12월에는 외국자본의 유치를 위해 외국인 투자기관에서의 노동조합의 설립과 활동을 제한하는 임시특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외국인 투자기업체에서의 노동쟁의가 제약을 받게 되었다. 1971년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의 선포와 함께 12월 27일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통과됨으로써, 단체교섭과 단체행동권이 크게 제약받아 사실상 합법적인 노동쟁의가 불가능하게 되었다.4) 제4기(1972년~1979년)1970년대의 노사관계는 정부의 노사협조정책과 노사문제의 해결을 위한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하여 외관상 안정적이었지만 근로자의 근로조건은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못하였다. 1970년대의 평균 실질임금상승률은 9.6%로 국민총생산의 성장률을 약간 앞서 있으나 이것이 주로 성장산업의 고급인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산업, 학력 및 남녀 간 임금격차를 심화시킴으로써 계층 간 임금격차의 합리적 유도가 정부의 정책이나 개별기업의 경영관리면에서도 보다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다.5) 제5기(1980년~1987년)1979년 10?26사태 이후 정치적 격변을 거치면서 노사분규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노조를 중심으로 한 체계적 운동이 되지 못하고 사업장 중심의 자연발생적 쟁의수준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