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代木結構Wood Constructions of the Song Dynasty송대 건축기술의 발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元符 3년(1100년)의 “영조법식”이라는 건축법규의 반포이다. 그것은 중국 고대의 오랜 건축시행에 있어서 전반적인 기술을 결집한 것으로 특히 목구조 가운데 모듈(模數制)을 정해 이후의 건축 시행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많은 고건축 조사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隋唐代의 목조건축에 있어서 ‘材’라는 표준단위의 모듈(模數制)이 형성되어있었고 공포(斗?)구조의 ‘材?’비례도 많이 쓰였다. 이것이 매우 발전해 “영조법식” 가운데 材?의 사용범위가 훨씬 넓어졌으며 이러한 양상은 설계 시공상 대규모 건물을 짓는데 유리하다.송대 목조 건축 가운데 목조 양식은 오늘날 볼 수 있는 것처럼 주요 건축물 대부분이 가구식(梁柱式) 계통의 전당식(殿堂式)과 청당식(廳堂式)이다. 隋唐代에 비해 많은 발전이 있었으며 건축조형은 唐代와 비교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컨대, 누각의 정면이나 측면에 十字로 팔작지붕(歇山屋頂)의 포하(抱廈))를 두고 각종 꽃살창(菱花?扇))을 배치하였으며, 화려하고 아름다운(柔和絢麗)의 건축 風格에 이른 것이다. 이미 송대 건축조형의 두드러진 특징을 이룬 것이다.1. 평면 기둥배열(柱網)의 발전송대 건축의 개체(單體) 평면 가운데 대규모 건축물은 대개 장방형(長方形)이며, 소규모 건축물은 대부분 정방형(方刑)이다. 기둥배열(柱網)은 수당대(隋唐代) 보다 여러 번 변화와 발전이 있었는데 대체로 아래와 같은 두 종류의 형식이 있다.1) 규칙적인 기둥배열(柱網) 평면수당대(隋唐代) 목조건축은 거의 대부분 획일적으로 종횡의 열을 이루는 기둥배치를 하고 있다. 송대의 중요 건축물은 이러한 수법을 계승받고 있다. 예컨대, 하북성(河北省) 정정현(正定懸) 융흥사(隆興寺) 마니전(摩尼殿;1052년)은 정면 7칸, 측면 7칸이며, 四面에 포하(抱廈)를 둔 중첨(重?) 팔작지붕(歇山屋頂)이다.포하(抱廈)의 합각면(歇山頂山)은 정면을 향하고 있는도면에 없다. 다만, 宋代의 여러 회화와 원서(原書) 가운데 단편적인 기록을 보면 개략적인 상황을 알 수 있다.(1) 전당식(殿堂式)“영조법식” 부록 그림에 따르면 모두 대형 건축물인데, 측면(進深)이 8椽 또는 10椽이며, 전체적인 구조는 기둥, 공포부와 보의 조성에 의하는데, 주된 특징은 전각 내외부의 기둥 높이를 서로 동일하게 한 것이다. 시공 때 수평 층의 문얼굴(安裝) 혹은 탁사(??)를 살펴볼 수 있다. 현존하는 실물 중 융흥사 마니전과 진사 성모전 모두 이러한 유형의 구조 이다.■ 마니전측면 8연으로 구조는 8가 연옥, 전후 유복이 있는 4柱 형식으로 차양칸(副階周?)이 있다. 이 건물 설계자는 노첨주간(老?柱間)의 장신(牆身)을 없애고 섬돌(?)을 고쳐 주위 회랑의 첨주 사이에 있게 하고 건물의 실내 면적을 확대하였으며 차양칸(副階周?) 형식이 매우 불명확해 졌다. 몸체부의 가구는 양쪽기둥에서 조성되었는데, 노첨주 높이는 8.65m이고, 內柱는 노첨주에 비해 足材 한 개를 높였다. 노첨주와 내주 위의 공포는 모두 5鋪作으로 특히 노첨주 위는 단초단앙(單抄單昻))이고 유복 끝의 벽면은 주두방(柱頭枋) 3層을 쓴다. 내주 위의 공포는 첨차 2출목이고(雙抄)), 유복 끝의 벽면은 주두방(柱頭枋) 2층을 쓰는데, 유복 아래부터 계산하면 2개 기둥 높이가 당연히 일치할 것이다. 예컨대, 어칸의 목조 종보 아래에 4연초복(椽草?), 4연명복(四椽明?))이다. 양쪽 협칸 구조는 4연초복을 쓰며, 양단 혹은 삼단 병접해서 쓴다. 下層 처마는 측면이 양첨(兩?)으로, 유복 후미는 노첨주 안에 끼워 넣게 되어있다. 포하(抱廈)구조 가운데 종도리(脊?), 중도리(金?) 모두 몸체부를 견고하게 하는 것으로 장부(?卯))로 연결하지 않았다.■ 진사 성모전(晉祠聖母殿))몸체(殿身) 구조가 “8架 椽屋, 6椽?과 乳?이 있는 3柱” 형식이며, 차양칸(副階周?)이 있다. 내외 기둥 높이는 같고, 유복과 6연복이 안기둥 중심부에 연해 있고, 실제상 8연복을 나눠 전후 양단으로작지붕이며, 평면 가운데 전면의 안기둥을 제거했다. 구조는 6가첨옥(六架?屋), 4첨복과 유복이 있는 3柱 형식이며, 안기둥은 외진주(?柱) 높이에 1足材를 기둥 상부 공포에 더해 보 아래 부분에서 서로 같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각의 4연복과 유복은 큰보(6연복)의 전후 양단을 볼 수 있다.■ 영수사 우화궁(永壽寺 雨花宮)평면과 외관이 청련사와 유사하다. 그 구조 역시 “6架椽屋, 乳?과 4椽?이 있는 3柱 형식”이다. 전면 안기둥 사이에만 문창(門?)을 두어 전랑(前廊) 형식을 한다.■ 초조암 대전(初祖庵 大殿)정면 측면은 각각 3칸, 단첨 팔작지붕이다. 구조는 “6架椽屋, 전후 乳?이 있는 4柱 형식”이고, 전면 안기둥은 기둥머리(柱頭) 공포 상차(上叉)에 동자주(童柱)를 세우고 바로 종보(平梁) 아래에 달하게 하였다. 후면 안기둥은 뒤로 124㎝를 옮겨 불단(佛臺) 전면의 사용공간을 확대하였기 때문에 후면 처마 유복의 실제 길이는 1椽半이고, 가운데의 보의 실제 길이는 2椽半이고, 양쪽 보는 후면 안기둥의 기둥머리 공포 위에 비스듬하게 접해 있어, 평평한 효과가 있으며 안기둥의 위치로 하여금 조금이나마 융통성을 두었다.2) 목조 기술의 새로운 성과목구조는 송대에 들어와 발전하였다. 수?당대와 비교해 기술이 완벽해 졌으며 가공 역시 정밀해 졌다. 이후 몇 부분으로 설명하겠다.(1) 주광강도(柱?剛度)의 보강중국 고대 목조 건축에서 가구는 보통 상?하층으로 나뉜다. 기둥(柱子)과 창방(額榜)으로 구성된 주광(柱?, 기둥과 벽체, 벽체부)이 하층이며, 공포, 보, 도리(?)로 구성된 양가(梁架)가 상층이다. 수?당대의 주광(柱?)은 대개 외진주(?柱) 주위나 안기둥 사이에 위치하며, 주두는 창방(?額)으로 연결하고(또는 창방 아래에 상인방(由額)을 더 둔다) 기둥 하부는 지복(地?)으로 연결하여 창방과 상인방 모두 끝 부분을 기둥 내부에 직접 끼우거나 점점 가늘게 깍아냈다. 이것은 隅柱(角柱)까지 주두가 나오지 않는 반턱맞춤(半?)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하였으며 위, 아래로 장부를 깎아서 결합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당대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기술을 발전시켜 난액(?額)의 모서리에 대한 내구성 및 안정성을 강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셋째, 기둥 안쏠림(側?)과 주생기(柱生起:귀솟음))의 작용을 강조하였는데, 중국 고대의 목조 구조물들의 외첨주(外?柱:외진주)는 수직이 아닌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게 되고 이 기울기는 기둥 높이의 1/100 정도가 된다. 또한 주위 기둥은 모두 안쪽으로 경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평면상의 기둥 하부가 머리에 비해 넓게 된다. 이 같은 방법을 ‘안쏠림(側?:측각)’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건축물의 각 면에 기둥이 명칸(明間:어칸)에서부터 끝쪽의 각주(角柱:우주)로 가면서 점차 높아지게 했는데 이를 ‘생기(生起:귀솟음)’이라 하였다. 이 두 가지의 기술은 건축물의 중심을 안쪽으로 쏠리도록 만들어줌으로써 건물 전체의 구조에 있어 주광(柱?)의 강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이러한 두 가지의 공법들은 수당(隋唐) 및 오대(五代) 시대에 출현하였지만 일반적이지는 못했는데, 항주(杭州)의 오대 불광사대전(五臺 佛光寺大殿:857년), 복주(福州)의 화림사대전(和林寺大殿:五代) 등에서는 귀솟음(生起)은 있지만 안쏠림(側?)은 없으며, 북송(北宋) 시대에 이러한 두 가지 공법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2) 병합구건(?合構件:합성구조)의 출현병합구건(?合構件:합성구조)의 출현은 송(宋)대에 나타난 새로운 기술로 알려져 있다. 송(宋) 시기 이전의 문헌에는 기록이 없었고, 특히 실제로 유적이 현재까지 존재하지도 않는다. 병합구건(?合構件)은 목재를 절약하기 위한 방편으로 소형의 부재를 대형의 부재로 만들어 주는 병합량(?合梁:합성보)과 병합주(倂合柱:합성기둥)의 두 종류가 있다.첫째 병합량(?合梁:합성보) :고대에서 주로 나타나는 병합량(?合梁:합성보)은 크기가 큰 보(大梁)에 ‘격배(?背:겹칩보))’를 덧붙이는 것으로 대량(大梁)의 단면부족 해결을 위한 것이다. 이 두 가지 부 바깥쪽 방향으로)연결하여 면을 정한 뒤에 다듬기를 시작한다.”오판권살(五瓣卷殺)의 경우에는 수직과 수평을 모두 5판(瓣)으로 나눈다. 이상의 방법과 같이 가공을 하면 결코 복잡하지 않으며 이와 같은 공정은 전체적인 구조상에도 많은 변화를 주게 되었다. 예를 들어, 두공(斗?:공포)의 각종 공두(?頭) 권살(卷殺)의 판(瓣) 숫자가 서로 다르다는 점으로, 화공(華?:살미첨차)), 이도공(泥道?:소첨차))은 4판(瓣), 영공(令?:행공첨차))은 5판(瓣), 체목(替木:단장혀))은 3판(瓣)으로 주두(柱頭)를 覆盆(복분) 형태로 가공하는 방법 역시도 권살(卷殺)의 방법을 통해 가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 중 가장 눈에 뛰어난 것이 “월량(月梁:홍예보)”의 마감으로서 대형 부재를 양쪽 끝은 가늘고 얇게 가공하고 중앙을 둥글고 볼록하게 처리한 가공 형식이 매우 아름답다. 특히, 조사 발굴한 수십 가지의 경우의 송(宋) 시대 목조 구조물들 중 월량(月梁), 사주(梭柱) 등의 예술적 가공을 한 목부재들은 자귀를 사용하여 가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명청(明淸) 시대에 대패를 이용해 매끄럽게 가공한 것과도 같은 상당한 기술력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송(宋) 시대의 건축물 중 대각량(大角梁:추녀), 타봉(駝峯:대공,화반), 요두(要頭:보뺄목)), 앙취(昻嘴:쇠서)) 등의 목조 양식은 당(唐) 시대에 비해 크게 증가였으며, 영조법식에 그림으로 나타나고 있는 몇몇 건축물들은 현재에도 남아있어 개략적이나마 송(宋) 시대의 예술적 가공 수준이 매우 정교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5. 두공(斗?) 구조의 새로운 변화송(宋) 시대의 두공(斗?:공포)의 발전은 전체적으로 양식의 세부적 요소에서부터 당(唐)대의 양식을 계승하는 동시에 몇 가지의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의 몇 가지 특징들로 나타나게 된다.(1) 전체의 목구조 중에서 두공(斗?)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축소된다. 당(唐) 시대의 건축에서의 “두공웅대(斗?雄大)”라는 표현은 건축의 입면상 기다.
금대(金代)의 목조 구조12세기 초, 동북지역에서 세력이 점차 강대해 진 여진족은 1115년에 금왕조를 세웠다. 건국초기, 통치지역이 날로 확장되면서 요(遼)나라와 송나라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였고, 계속해서 아성(阿城), 영성(寧城), 대동(大同), 북경(北京), 개봉(開封)을 금나라의 상경(上京), 북경(北京), 서경(西京), 중도(中都), 남도(南都)로 정하였으며, 이는 바로 요나라(遼)시대의 오경(五京)제도를 계승한 것이다.건축기술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남아있는 구조물을 관찰해 보면 금대 초기 건축은 요나라의 영향을 비교적 많이 받았다. 요나라 시대의 건축물들은 높이가 같지 않은 내외 기둥을 사용한 팔연옥(八椽屋)이고, 금나라의 불광사(佛光寺) 문수전(文殊殿), 숭복사(崇福寺)의 미타전(彌陀殿)도 이런 구조를 택했다. 요나라때 사용되기 시작한 사공(斜?)은 금나라에 이르러 더욱 보편화되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의 남송 건축물에서는 사공(斜?)의 사용이 매우 드물었다.금나라 시대에는 건축기술방면에서 북송(北宋)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예로 진사(晉祠) 헌전(獻殿)을 들 수 있다. 북송(北宋)의 술집, 상점, 공연무대 등 공공건축물의 유형이 남송과 왕래를 통해 하삭(河朔)일대의 금나라 통치지역까지 전해졌다. 산서성(山西城) 후마시(侯馬市)의 동씨(董氏) 2호 고분에선 공연무대 모형이 조각되어 있다. 이는 중국 희극사를 연극사 뿐 아니라 건축사를 연구하는데도 진귀한 자료이다. "八"자형 지붕 가옥 양 측면의 높은 벽과 옥정(屋頂:천장)이 앞으로 향하는 모습, 그리고 주(柱:기둥), 방(枋:각재), 두공의 수법 등은 당시 건축이 북송 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설명해주는 간접적인 예들이다.금나라 후기의 목조 유물은 많지 않지만 금나라 전기 건축 구조물에서 사용되던 수법들은 후기에까지 이어졌고, 명청(明淸)대까지도 전해졌다. 예를 들어 요풍단하(?風?下)의 긴 도첨방(挑瞻枋), 난액(?額:정면기둥과 기둥 사이의 연량)이 튀어 나온 부위의 조각 장식(청대의 관리들이 쓰던피하였다. 요나라와 금나라에서 성행한 이런 건축법은 원(元)과 명(明)나라 시대에도 연용 되었다.(2)목조 구조넓이와 깊이가 각각 3칸(間)인 불전의 경우, 기본 구조는 "6가연옥(六架椽屋), 4연복(연복:들보를 바치는 횡량과 양가를 조성하는 수평 기둥을 말함) 과 유복(乳?)이 있는 3주(柱)"의 형식을 사용한다7칸의 대형 불전의 경우, 그 기둥 구조의 측면 모양과 은 대청 도안에서의 "8연옥전후 유복은 4주(柱)를 쓴다"는 것에 매우 근접한다(3)두공금나라 두공은 더욱 화려함을 추구해 번잡한 느낌을 준다. 10여년이라는 단 기간 내에 드넓은 영토를 차지한 여진족의 통치자는 건축외관에 장엄하고 화려함을 추구하는 과시욕을보였다. 금나라에 목조 유물은 많지 않지만 두공 형상과 구조는 4포(鋪:鋪首로서 동으로 만든 고리)로 단앙(單昻)을 만든 것에서부터 7포로 쌍초(雙抄:화공이 이층인 것) 쌍하앙(雙下昻)을 만드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화려함의 예들이다. 분석을 해보면 다음과같다.1)두공배치:소형 불전의 칸사이는 비교적 작고 보간(補間)은 일타(一朶)를 사용하거나 혹은 제 일층 주두방(柱頭枋:주두의 중심 또는 니도공 계열의 위쪽에 있는 방)에 음각형 공(拱)을 숨겨두고 있다. 불전 개간이 비교적 클 때면 보간은 이타를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고, 배치는 비교적 산뜻하다.2)분해할 수 있는 조각 장식: 하앙(下昻) 상피(上皮)는 대부분 금면앙(琴面昻)을 새기고 있고 비죽앙(批竹昻)을 새긴 건 소수이다. 사두(要頭) 출두(出頭)는 대개 하앙(下昻)과 같은 모양을 쓴다. 금대 건축의 요두출두는 에서 기술한 메뚜기 머리 모양과 서로 근접한다. 건축물들의 요두 출두 부위는 메뚜기 머리 식과 앙식(昻式:경사지게 놓이는 두공 부재로 역학적으로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는 식)이 나란히 배열되었다. 노두(木+盧 頭), 산두(散頭: 일출목 첨차 위에 놓인 소로로 첨차의 양단에서 사용된다)의 두의(頭?)부분은 명확한 내요(內 幽+頁:오목)가 있다. 와각두(訛角頭)는 노택(潞澤) 일복(乳?)은 내주에 뻗어 지나가고, 뻗어 나간 부분이 4연복(椽?)을 받음으로써 전후 주량(柱樑)이 상호 제약을 받게 했다.6가연옥 주가(柱架) 측면(1)삼주식(三柱式);(2)사주식(四柱式) 1.차수 2.탁각3.타봉 4.두공〈화엄사(華嚴寺) 대웅보전(大雄寶殿) 보간포작(補間鋪作)〈산서(山西) 대동(大同) 선화사(善化寺) 대웅보전(大雄寶殿) 당심간(當心間) 보간포작(補間鋪作)예를 들어 대동 선화사(善化寺) 삼성전(三聖殿)의 차간 (次間:당심칸 양측의 칸) 보간포작(補間鋪作:주간포)은 외측 매 도(跳)에서의 교호두(交互斗)가 모두 45˚사공이고, 내측을 향하며 대칭연장을 하는 것은 오직 노두의 양봉(兩縫) 사공 뿐이다. 이는 구조적 관점에서 볼 때 불합리한 것이고 외관상으로도 너저분해 보인다사공의 사용 때문에 요풍단(遼風?)아래 지지하는 점이 많아졌고, 지지점의 거리는 가까워 졌다. 이는 체목(替木:장여)의 상호연결을 촉진시켰고, 전간(全間)을 관통하는 편평한 도첨방(挑瞻枋)을 형성했다. 금나라 이후, 사공의 제작은 폐지되었으나 도첨방은 유지되었고 후에 점차 1:2의 좁고 높은 단면을 형성했다.사공을 사용함에 따라, 내외 도두(跳斗)상의 횡공 공두(拱斗의 산두散斗포함)도 조화로운 외관을 얻기 위해 염료를 칠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런 횡공에 염료를 칠하는 방법은 명대까지 이어졌고, 선화(宣化), 천진(天鎭) 일대에선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물론 당시 사공은 이미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4)주방(柱枋)목재 첨주(瞻柱), 내주(內柱)의 대부분은 원형 단면에 속하고, 전탑에 사용된 목조도 원형을 이룬다. 단지 노택(潞澤)일대 산간지역은 토지산물과 석재로 인해 항상 정가운데 간(間)엔 8각형 단면의 석주를 사용했다.〈산서(山西) 삭현(朔縣) 숭복사(崇福寺) 미타전(彌陀殿) 후첨(後瞻) 보간보작(補間補作)〈선화사(善化寺) 삼성전(三聖殿) 차간(次間) 보간보작(補間補作)일반적 기둥의 배열은 고려된 측각(側脚)과 생기(生起)를 가지고 있다.주두의 간(間) 연결용 보백방((方直)의 각배(角背:과주를 양쪽으로 고정하는 삼각형의 나무)로 변했다.(6)항가(桁架) 추형(雛型:모형)의 출현금대 건축은 평면상 감주(減柱), 이주(移柱)의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주량(柱梁)하중이 직접 입주(立柱)에 전달될 수 없었고, 항상 앞 서까래 내주 사이의 대액(大額)이 주량에서전해주는 거대한 하중을 받아야 했다. 당시에는 항가에 가까운 대액을 사용해 하중문제를 해결했다. 항가 추형의 실례는 삭현(朔縣) 숭복사(崇福寺) 미타전(彌陀殿)과 오대(五臺) 불광사(佛光寺) 문수전(文殊殿) 등 개간(開間)이 비교적 큰 목조유적에서 볼 수 있다.숭복사 미타전을 예로 들어보자:미타전 당심간의 두 주량(에 의해 사연복(四椽?)이라 부를 수 있다)의 하중은 앞 서까래 기둥에 직접 전해지지 않으며, 상하 두개의 횡방(D,B- 에 의해 내액內額 과 유액由額이라 칭한다)과 두자(斗子)타봉(R) 및 약45˚의 사재(S- 에 의해 차수라 칭할 수 있음)을 사용해 공동으로 주량 하중을 금주(金柱)로 전달했다.하횡방 단부의 절단력 영향을 낮추기 위해, 주(柱) 상단에 두개의 견비량(懸臂梁)을 더 사용해(에 의해 작막방(綽幕枋)이라고 칭할 수있음), 횡방과 금주사이를 지탱한다.만약 횡방에서만 압력을 받으면 하횡방이 받는 압력은 비교적 크다. 하중추산에 근거하면 약 넓이 30cm, 높이 130cm의 단면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재(斜材)를 더 쓰면, D,B,R,S가 항가를 형성할 때, 하횡방은 30cm면 충분하다.사실상, 단면이 작고, 축선 방향 부정확 등 사재(斜材)의 사용이 항가 요구에 도달하지 못함으로 인해 현재 하횡방이 구부러지는 현상이 나타났다.숭복사 미타전 앞 서까래의 금주(金柱)사이 횡방 구조는 여전히 불완전한 항가이다. 하지만 8백년 전 금나라 시대에 이런 실례가 있었다는 건 목조구조기술 발전과정에선 획기적인 일이었다.두자타봉(斗子駝峰당심간1240전철전주(前撤前柱계산 횡단폭1120산서 삭현 숭복사 미타전 횡방 하중분석 (단위:cm)2. 금대목구유물 (金代木構遺物)(1)의 끝자락을 받혀주는 데 쓰인다. 주유주(侏儒柱:동자기둥) 머리에는 한 부재로 된 방목(枋木)을 사용하였고 방목(枋木) 양끝은 차수(叉手:솟을합장)가 지탱해 주고 있다. 이로써 계단형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는 대담한 시도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기 드문 예라 할 수 있다.문수전 전후첨(前後?:전후면처마) 밑 두공(斗?:공포)은 사공(斜?))으로 이루어져있다. 건물 전첨(前?:전면처마)의 어칸(當心間)과 협칸(次間)의 보간포작(補間鋪作))은 오포작(五鋪作) 중공(重?)구조를 기본으로 하며, 사공(斜?)을 더했다. 노두(?斗:주두)로부터 3갈래의 화공(華?:살미)이 사용되어 하나는 정면, 둘은 45° 방향으로 뻗어나오고 있다. 3갈래의 화공(華?) 위에는 각기 제2출목이 있고, 정면으로 향한 화공(華?) 위에는 사공(斜?) 2개가 첨부되어 있다. 따라서 제1출목은 공두(?斗) 3개가 있고 그 위에 횡으로 운형공(雲形?)이 놓여 있으며, 제2출목은 5갈래 공두(?頭)에, 그 위는 영공(令?))이 횡으로 놓여져 있다. 또한 각 갈래의 윗부분에는 사두(?頭)가 나와 있으며, 영공(令?)과 교차하고 있고 그중 중간의 3개의 사두(?頭)는 마엽운(麻葉雲)무늬와 양측면은 마책두(??頭)가 새겨져 있다.문수전 내에 도리하부에는 금천회십오년중수“金天會十五年重修”라는 글이 있다. 이것과 상술한 건축적 특징을 비교해 보면 금나라시기 이후 큰 변화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2) 삭현 숭복사 미타전과 관음전 (朔縣 崇福寺 彌陀殿 與 觀音殿)숭복사는 삭현 동문리에 위치해 있으며, 대규모의 건축군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지금은 산문(山門), 천왕전(天王殿), 종고루(鐘鼓樓), 장경각(藏經閣), 문수전(文殊殿), 지장전(地藏殿), 왕보전(王寶殿), 지원방(祗園坊), 좌우선방(左右禪房), 미타전(彌陀殿)과 관음전(觀音殿)등의 단체건축물(單體建築物)이 현존해 있다. 건축적으로 보면 대부분이 명나라, 청나라 시기에 증축(增修)된 것이며 미타전과 관음전만이 금나라 시기에 건축(建築)된 것으로있다.
명,청목구조 (明靑木結構)중국 명청시대 목구조건축은 이전시기 보다 가장 수가 많고 가장 완전한 보존상태이다. 이 시기에 지어진 많은 민가건축이 현재 계속 사용되어지고 있다. 더욱이 엄청난 양의 돈과 인력에 의해 건축된 궁전과 단묘, 사관, 원림등이 본래대로이다. 명청 고궁(故宮)은 보존되어 내려온 규모가 크고 또 완전한 궁전건축군이다. 심양(瀋陽)의 궁전이 비록 규모는 작으나, 역시 동북지구의 건축특징을 잘 반영한다. 북평(北平)의 북해(北海)), 신화원(?和園)) 및 소주, 양주등 남방원림은 각종 정(亭), 대(臺), 루(樓), 각(閣), 청(廳), 당(堂), 헌(軒), 사(?) 등등 목조건축과 가산(假山) 석재들이 모두 모아져 있다. 각종 사관과 능묘, 단묘 등의 목구조건축은 규모가 크고, 결구가 정교하다. 그래서, 명청시기의 목구조 건축 실물은 고대목구조건축유형과 결구의 풍부한 실례를 갖고있고, 중국 봉건사회 후기 목구조기술상의 성과를 표현한다.명청 양 시기는 정치제도방면으로 등급관념의 진일보 강화가 있었고, 성시규획과 궁정제도, 건축장식 각 방면에 있어서 모두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반영한다. 바로 이 기술성이 더욱 강화된 목결구에서 보면, 역시 같은 선명한 반영을 볼 수 있다. 명의 홍무제(洪武) 28년 : 평민은 3칸 5량을 넘지 못했고 공포와 색채를 사용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1, 2품의 관원의 주택 청당은 5칸 9량이고, 3품과 5품 관원의 청당은 5칸 7량이고, 6~9품 관원의 청당은 3칸 7량 등등인 엄격한 제한과 규정이 있었다. 심지어 명청황궁의 건축은 또한 황제(皇帝), 후(后), 비(妃), 빈(嬪) 등등 등급으로 나뉘었고, 이와 전조(前朝), 후침(後寢), 유락(遊樂) 등등. 칸의 대소와 양주의 척도, 공포의 급별 사용 모두 엄격한 규정이 있었다. 청 공부(工部) 《工程主法》은 또한 바로 기술방면에서 체현건축에 이르기까지 상등급관념이다.1. 명청 목구조 기술의 발전과 변화명청시기의 목구조건축기술은, 당시의 정치와 경제, 문화예술 상황이 송, 요, 금 시기의 목조건축 모두 이런 중요한 결구특징을 갖는다. 《營造法式》 역시 명확한 규정이 있다. 명청시기에 이르러 기둥 귀솟음이 이미 보이지 않고, 안쏠림은 비록 여전히 보유되어 내려오나, 단지 기울어진 측면의 각도가 이미 매우 작아져서 쉽게 보이지 않는다.(5) 목조부재의 가공수법의 단순화: 중국 고대건축공장은 예술적 역량을 얻기 위하여 목조부재 각 부분 가공수법의 예술적 재능을 충분히 발휘했다. 주두의 권살(卷殺))에 따르면, 단지 주두 위는 본래 압력을 받지 않는 주변부분을 조각하고, 주두는 둥근 효과를 생산하게 되고, 기둥은 위는 작고 아래는 크게하여, 역시 안정적 효과를 받는다. 월량(月梁)) 만드는 법은 동일한 모양으로 단지 보머리를 베어내고, 다만 휘어진 부분이 위를 향하여, 천균의 무게를 실은 느낌이 있다. 기타로 두공(斗?))과 체목(替木))의 ?과 살(殺)에 대해서, 역시 모두 구조재의 기능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둥근 예술적 효과를 얻는다. 명청시기, 이러한 목구조재의 감할수법은 점점 사라져갔다(감화, 소실). 명초의 이런 건축 외에, 두공의 아래부분을 깎아냄 : 주두권살과 월량의 만드는 법은 이미 점점 소실되어져갔다. 이런 변화는 비록 예술적 효과를 갖으나, 다만 시공이 비교적 간편하여 역시 합리적인 면이 있다.그 외 세부조작에 대해서, 예술가공수법등등 역시 모두 약 일정 정도의 변화를 갖는다. 이러한 변화로 말미암아 명청시기 건축의 풍격에 역시 큰 영향을 가져다 주고, 당송시기 그런 종류의 두공은 원대해지고, 출첨은 깊어지고, 측각과 생기가 현저해지고, 보와 기둥의 감할수법이 둥글게 형성된 곡선윤곽등, 강경하고 강직한 풍격으로 대체되었다.명청시기 목결구의 변화는 하나의 과정을 갖는데, 명에서 청에 이르기까지 500~600년 중,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고, 점점 쫓아가는 것이고, 결국 이런 결구 기술상의 변화는 청대 말기에 이르러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상 설명한 명청시기 목결구기술의 변화에 있어서, 주요 표현은 관든 큰 보는 그 가운데 칸의 하나의 목재는 비교적 크고, 양 변은 비교적 동일한 크기의 재료이며, 역시 장부와 철띠를 사용해 견고함을 더하거나 혹은 배구(?鉤 : 쇠갈고리)를 사용하여 견고함을 더한다.(2) 두접주자(斗接主子 : jointed column): 2개 혹은 3개 이상의 나무를 연결해 하나의 기둥을 이룬다. 두접(斗接)은 통상 돈접(墩接)이라 칭하고, 접두하는 곳에는 암순(暗?)을 쓴다. 즉 산장(山牆))내부에 처리를 하며, 외부표면은 처리하지 않는다.(3) 포양양(包?粱 : encased colums): 속에 비교적 큰 재료를 1개 사용하고 사방에 몇개의 작은 재료를 사용하여 감싸만든다. 선을 접하는 곳에는 순묘(?卯 : 장부맞춤) 혹은 쇠갈고리를 써서 큰 띠를 연결하고, 밖은 철띠를 더한다.(4) 포양주자(包?柱子 : encased beams): 중간에는 한 근의 비교적 큰 목재를 사용하고, 심주로서, 둘레에는 많은 덩어리의 목재를 사용해 포양을 이룬다. 포양목재 내부는 심주 모양을 따라 깎아야 하고, 외부 표면은 모양을 따라 깎고, 철못을 사용하여 포량목재를 주심 상부에 박고, 외부는 철띠를 더해 긴밀하게 한다. 포양주는 대부분 원주이나 방형 혹은 다각형의 것도 있다.(5) 두접포양주(斗接包?柱子 : jointed and eccased colums): 심하게 굵고 큰 기둥으로, 두접과 포량의 두 방법으로 지을 수 있는데, 먼저 2개 혹은 여러개의 나무를 두접하여 심주를 만들고, 이후 밖에 포양을 지으며, 포양 목재 역시 두접을 한다. 이런 종류의 두접은 포양을 더한 병합재(倂合構件)로, 압축력에는 상관없지만 휨에는 약하므로 기둥으로는 적당하였고 보로는 적당하지 않았다.병합, 두접, 포양의 양주부재들은 매우 높은 제작기술을 필요로하는 것이다. 장부, 못, 쇠테두리의 제작도 세심한 주의를 요하는 것으로서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견고한 효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결국 병합 목결구부재의 많은 사용으로, 건축의 외부 표면에는 기름으로 채색하는 공정 역시 발을 해결함에 있어서, 이것은 두공에 비교해 가볍고 편리하며 영활하고 기교할 뿐만아니라, 역시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다. 목결구 기술발전의 규율에 근거해, 공(?)과 앙(昻)은 아마도 원시적인 도출부재로부터 발전하였을 것이다. 도첨주법은 도방(挑枋)이 기둥을 뚫고 지나가 도름(挑?)(즉, 첨름(??))를 받고, 다른 한쪽은 내주에 끼워지거나 혹은 천방의 아래를 누르고 있다. 천방출두(穿枋出頭)를 사용한 도첨도 있다. 도출한 도방은 두공과 비교해 결구상 변위가 안정적이고, 공능 역시 현저하다. 출첨 길이의 필요에 근거해 1挑와 2挑와 3挑의 것이 있다. 2挑와 3挑의 본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천두식 배가를 구성한다. 일반적으로 1挑의 출첨은 1m 이상에 달하고, 2挑의 출첨은 2m에 달하고, 3挑의 출첨은 3m에 달한다. 1挑출첨이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항상 내민 보 아래에 사탱(斜撑)이 더해져 있다. 미관을 더하기 위하여, 항상 사탱 위에 미술가공을 진행하는데 새기고 채색을 행한다.* 천두식(穿斗式) 집의 골조(房架)는 중국 목조건축기술상의 중요 창조물로 많은 특징을 말할 수 있다.제1, 천두식 골조는 대부분 작은 부재로 만들어졌는데, 즉 큰 목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비교적 작은 부재를 가지고도 큰 집을 지을 수 있었다.제2, 시공이 간편하다. 먼저 천방과 기둥을 잡아 한줄 한줄의 옥가를 이루고, 후에 두방과 견자를 써서 전체 골조를 구성한다. 기둥과 천방과 두방과 견자와 름자등의 길이는 모두 일정한 규율이 있어서 사전에 치수에 따라 일을 끝내고, 현장에서 가공을 하여, 매우 빨리 집의 골조가 지어져서 공기를 단축시킬 수 있었다.제3, 결구가 견고하다. 천두식 집 골조의 결구는 천방과 두방이 많은 기둥을 뚫고 지나가 틀을 구성해 비교적 견고하다. 비록 움직이기는 하지만 쉽게 뽑을 수는 없으며, 양두와 같이 장부를 뽑기만하면 골조를 해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지진과 태풍의 피해에 견딜만큼 강한 강도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기둥과 천방 사이의 담7m, 높이가 13m로, 이렇게 큰 우수한 재질의 목재는, 현존하는 중국 고대건축 가운데 다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능은전의 외첨두공은 유금두공을 사용하였으며, 앙의 후미는 금름 아래까지 길게 뻗어있고, 앙의 전단부는 아직 가앙을 만들지 않은채, 뒤로는 금름을 받고 있으며, 앞부분은 첨름(??)을 받는다. 이것이 명초 유금두공의 중요한 실례이다. 신무문(神武門) 성루(城樓)의 하첨두공 역시 동일하다. 더불어 명 장릉의 명루(明樓) 역시 매우 웅장하다.(2) 명청 고궁 태화전(太和殿) : 태화전은 고궁(故宮) 가운데 가장 큰 건축이다. 명조 초년에 봉천전(奉天殿)이라 하였고, 중기에는 황극전(皇極殿)이라 하였으며, 청대 중수기에는 태화전이라 하였다. 매 새로운 황제가 등극하고, 중요한 조서를 반포하거나 중대한 예를 치를때 모두 이 곳에서 거행하였다.태화전의 높이는 33.05m로, 보화전(保和殿), 중화전(中和殿)과 함께 높이가 7m인 3층 공자형((工字形)) 백색 기단 위에 건립되었고, 전면은 30,230㎡의 광활한 광장이며, 양 옆으로 동서 회랑과 고각(高閣)(체인각(體仁閣)과 홍의각(弘義閣))을 거느려, 대전건축으로서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명대 초기 건축인 봉천전은 명대 장릉 능은전의 규모로 미루어 현재의 태화전 결구에 비교해 더욱 웅대하다. 현재의 태화전은 결구상에 있어서 현존하는 목조 대전 가운데 최대의 건물으로, 전의 규제 등급이 궁전건축중 최고이다.태화전의 목가구는 능은전과 같은 전형적인 양주식 결구에 속한다. 평면 주망의 배치는 전면 11칸, 깊이 5칸이며, 전첨랑(前?廊)의 평면은 목결구상으로 실제는 전면 폭이 9칸이며 주변이 랑(周圍廊)으로 된 결구이다. 동서 산장(山牆)과 후첨장(後?牆)은 모두 하층 첨주(?柱))의 위치에서 쌓아 만들었기 때문에, 첨주는 낭첨주(廊?柱)(송식 부계(副階)))의 결구형식에 속한다. 노첨주(老?柱)) 안은 깊이가 3칸, 12보가(步架)이며, 금주가 7가량을 지지하고, 앞뒤 노첨주와 금주 사이에 각기 3보가를 사용
지역주의적 다양성과 현대건축The Diversity of Regionalism in Modern Architecture1. 서 론1.1 연구의 배경 및 목적건축은 물질적 측면뿐만 아니라 비물질적 측면을 포함한 예술적, 기술적 전반의 지표로서 그 시대와 지역의 특징을 반영하며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건축은 일반적으로 과거 양식의 재현에서 탈피하여 더욱 편리하고 경제적인 방향으로 변모하려는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근대적 건축의 변화는 새로운 재료나 기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론들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이로 인한 예술적 공간구성과 형태표현의 보편적 합리성과 기능성은 절대적인 “틀” 안에서 획일화되어 대량으로 건축을 양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지역의 전통적 구조방식과 디테일 역시 점차 그 특징을 잃어가게 되었다. 즉, 근대건축은 그 이전의 모든 건축과 구별되는 새로운 기술공학적 미학 개념을 제시하였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에게 ‘과거와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요구하게 되었다.기존의 연구를 통해 장소성과 지역주의에 대한 분석은 다양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왔다. 하지만 대부분은 도시 계획적 범위에서의 도시성(姓)과 Master plan 측면에 집중됨으로써 건축은 장소성의 구현을 위한 ‘서프라이즈 박스(surprise box)' 개념의 이벤트(event)로 유형 분석되었고 그 결과 지나친 독창성의 강조 등으로 인한 혼란을 불러오기도 하였다.따라서 본 연구는 ‘기억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패러다임 및 전이(轉移)의 개념을 통해 장소성과 지역성을 정의하고, 단순한 물리적 단위인 위치(location) 이상의 독특한 정체성(Identity)을 이해하도록 한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시각적 단서(visual cue)와 추상적 연속성의 측면에서 사례를 분석하여 제시함으로써 장소성과 지역주의적 개념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현대건축에 합리적 적용 및 분석도구로써 활용하는데 목적이 있다.1.2 연구의 범위 및 방법장소성과 지역성은 ‘기억의 회복’ 이라는 등을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지역성의 의미에는 풍토에의 적응, 토속재료의 사용, 지역전통의 현대적 해석, 사용자 중심의 건축과 같은 확장된 개념까지도 포함되며, 그 표현방식의 특징은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즉, 자연환경요소와의 조화, 맥락의 존중을 통한 지역의 전통성 구축은 지역성의 근원적 목표가 되며, 이러한 포괄적 원리와 경험은 건축 공간과 형태의 구성 과정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재해석된다.건축은 시간적으로는 역사와 전통의 위에 놓여있고, 공간적으로는 도시 공간체계의 관계 속에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역성에 의한 공간은 ‘무명의 공간’이 아니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Identity)을 바탕으로 환경적 맥락, 사회 및 문화, 역사적 의미와 같은 포괄적 존재가치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3. 패러다임의 변화와 지역주의3.1 기계화 시대의 합리성산업혁명과 근대 사회의 급속한 변화는 사회 전반에 걸쳐 과학적 사고와 실질적 가치를 요구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모든 분야의 지속적인 발전은 보편적 합리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건축을 포함한 예술 전반에까지도 지나치게 기능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게 됨으로써 예술적 다양성과 순수예술의 고전적 가치는 기계와 대량생산 앞에서 점차 힘을 잃어가게 되었다.근대적 패러다임의 개념변화이렇게 등장한 새로운 개념의 시각예술은 고전양식의 근간을 이루는 자연주의와 양식미를 새로운 현대적 형태언어와 상징성으로 재해석하였다. 특히 입체파 이후 등장한 기하학적 단순화와 내면적 왜곡 등은 전통의 시각적 리얼리즘 대신 개념의 리얼리즘 제시하였고 대상을 표면적 시각뿐만 아니라 내면의 상대적 개념을 통해 인식하고자 하였다.새로운 개념의 시각적 예술발전근대건축의 이러한 기능적 합리주의는 보편적 객관성의 확보에는 성공했지만 인간 행태의 다양성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특히 근대건축에 있어 장소성(sense of place)의 상실, 획일화된 구축성(tectonics), 독자성(origin되었던 지역성(地域性), 전통성(傳統性), 상징적 의미, 장식(裝飾) 등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이념과 원리를 초월하는 새로운 건축양식을 모색하게 되었다. 즉, 맥락주의(Contextualism)는 장소성 및 지역성과 더불어 주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지역주의(Regionalism)의 중심적 개념으로 작용했다.4. 지역주의 전이(轉移) 및 사례분석보편적 합리성과 기능성이 요구되는 특성상 완전하게 새로운 건축이란 사실상 불가능 할 뿐만 아니라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낸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건축은 인공적 요소와 자연적 요소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영역을 대상으로 하며, 창조와 모방의 측면은 오랜 기간 형성되어진 패러다임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패러다임은 건축 행위의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자(motivator)인 동시에 행위를 추진하는 근본적인 목적의식(sense of purpose)이며, 건축가의 목표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된다.)전이(轉移)는 유사성을 바탕으로 은유와 유추를 통해 발생한다.) 유사성은 표면적 유사성(Surface similarity)과 구조적 유사성(Structural similarity)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중 표면적 유사성은 일차적인 인식에 관한 시각적 단서(visual cue) 등이 대표적이며 대부분 유추(analogy)를 통해 이루어지는 반면, 구조적 유사성은 좀 더 중심적 개념과 내면적 속성의 측면으로서 추상적 연속성과 은유(metaphor)적 사고(思考)에 관한 것을 의미한다.4.1 시각적 단서(visual cue)와 유추(analogy)적 측면유추(analogy)는 일반적으로 비슷함, 혹은 성질 따위가 근사함(kinship), 관계들의 유사함(likeness of relations) 등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유추적 전이의 기본 요소들을 일반적으로 프로토타입(prototype) 또는 선례(precedent)라 한다. 인지심리학적으로는 지식이 하나의 영역(base area))에서 또 다른 영역(target면의 다주실과 파르테논 신전의 주실은 웅거스(O.M.Ungers)가 설계한 독일 건축 박물관의 평면에서 기둥으로 둘러싸인 파고라의 형태로 재생된다. 또한 내부의 중심 공간으로 접근하는 과정에서는 웅거스가 주장했던 ‘집속의 집’ 개념이 형상화됨으로써 유형학적 차원에서의 공통된 접근 형태가 나타난다. 즉, 각각의 평면은 그 용도와 시기 및 장소를 뛰어 넘어 외부에서 내부로의 공통된 공간 진행과 변화 있는 구성을 통해 지역주의의 형태학적 특징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웅거스(O.M.Ungers)의 형태학적 유추와 지역주의O.M.UngersGerman Architecture Museum디자인전이형태학적 분석 및 유추방법론활용형태의 재현과거 규범의 새로운 해석목 적유형학적 분석을 통한 지역성부여디자인전개시각적 단서(visual cue)의 해석패러다임고전주의의 재해석4.2 추상적 연속성과 은유(metaphor)적 측면비유(figurative speech)의 방법으로서 은유(metaphor)는 희랍어 metaphora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다.) ‘Meta'의 의미인 ‘넘어서'와 ‘phoerein'의 의미인 '가져가다'와의 합성어로서 은유는 일련의 의미를 내포하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며, 이러한 은유적 사고는 인간의 상상력을 통하여 표면상으로는 관계성이 없는 두 가지 이상의 구성 성분들이 서로 결합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인지학적 이론에 따르면 은유는 지식 데이터베이스(Knowledge base)와 추론엔진(Inference Engine), 그리고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로 구성된다. 또한 은유가 있기 전에는 서로 관련되지 않았던 두 체계가 결부되는 것으로써 사고가 이루어지기 전의 개념을 source, 은유에 의하여 갖는 관계성의 목표를 target이라 한다.쥬제페 테라니(Giuseppe Terragni)와 안톤 프레독(Antoine Predock)은 기존의 지역주의에 대한 수용과 비판의 상반된 개념을 바탕으로 이를 제3의 관념으로 재해석했다 재해석함으로써 이러한 비판적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활동의 영역을 확대해 나감과 동시에 현대건축의 탈 모더니즘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그는 기존의 비판적 지역주의와도 많은 특징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모더니즘 건축을 무조건적으로 배격하지도 않으며 때로는 근대 건축 유산의 진보적 측면을 수용하는 보완적 자세를 취했다.건축에 대한 환경 및 생태학적 접근 자세에 있어 프레독은 토속적인 요소를 건축에 직접 끌어들이기도 함으로써 항상 인간과 건축물의 존재를 장소성과 결부시켜 생각했다. 특히 확대된 지역적 전통의 재해석 개념은 새로운 기술 및 콘크리트의 가소적 특성과 같은 자유로운 조형적 상상력을 지역적 맥락에 맞게 사용함으로써 그 지역의 특징을 다양하게 연출하고자 노력하였다.안톤 프레독 (Antoine Predock)의 풍토적 재해석Antoine PredockMcNamara Alumni Center디자인전이비판적 지역주의를 통한 분석적 은유방법론활용환경적 친화 및 재료적 가소성기존 지역주의에 대한 보완적 자세체험을 통한 장소성의 부여목 적다양한 지역의 독자성 획득디자인전개분석적 태도와 복합적 공간구성패러다임탈 모더니즘, 탈 근대건축McNamara Alumni Center는 지면위로 반 쯤 노출된 거대한 바위의 형상을 함으로써 콘크리트의 가소성과 함께 미네소타의 다층적, 지질학적 역사를 반영한다. 불규칙한 다면체는 연속적인 변형을 이루면서 표면의 구조체에도 이중적 효과를 부여하는데, 이러한 시각적 독창성과 장소성의 표출은 그 지역의 중심적 상징성으로 구현된다.프레독의 비판적 지역주의를 통한 분석적 태도는 건축을 총체적 경관의 일부로 인식는 동시에 자연 조건에 대한 복합적 해석을 통해 내부 공간에도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즉, 맥락적 공간의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대지의 환경과 특성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에 따라 유기적인 공간을 구성하거나 내, 외부가 연속성을 갖도록 여러 켜(layer)의 복합적 공간을 형성하기도 했다.5. 결 론건축은 사회, 문화, 역사 등
디자인의 키치(kitsch)적 특성과 현대건축A Characteristics of Kitsch in Modern Architecture1. 서 론건축을 포함하는 모든 디자인은 아름다움(美, beauty)과 기능(用, usefulness)의 조화를 본질적인 목표로 일정한 관념을 실체화 하는 과정이다. 이는 곧 형식과 기능의 합일(uniting form and function)을 의미하지만 현대의 디자인에서는 그 자체가 불명확한(ill-defined) 문제로 간주되기도 한다. 즉, 처음부터 완벽하게 기술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주관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특징이 있고 일반적으로 가장 좋은 해답(the best)보다는 만족스러운(satisficing)) 해답을 구하는 것으로 규정된다.건축은 인류의 기원과 함께 시작되어 인간의 거주(dwelling) 및 정착(settlement)의 개념을 실현하고 여기에 형태를 부여하는 복합적 개념의 종합예술이다. 건축은 물질적 측면뿐만 아니라 역사 및 사회, 사상과 종교 등 비물질적 측면을 포함한 예술적, 기술적 지표이며, 시대적 패러다임이다.)19세기 말, 산업혁명과 시대적 변화에 따라 고전의 순수 예술적 가치를 대신해 등장하기 시작한 실질적 개념의 근대건축은 보편적, 중성적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고 키치(kitsch)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현대건축의 효과적 도구로써 재조명되었지만 저급함과 같은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그 논리가 소홀히 취급되었던 것이 사실이다.본 연구는 이와 같은 키치(kitsch) 예술의 의미와 다양한 유희적 시각 이미지의 객관적 분석을 통해 현대 디자인 및 응용예술로서의 키치(kitsch)를 정의하고 1950년대 이후 비판적 지역주의의 심층적 본질과는 구별되는 현대건축의 독창적인 표현과 보편적 한계의 극복을 위한 형태지식 개념의 변화를 이해하도록 한다. 또한 이것이 다양하게 적용됨으로써 나타나는 디자인 언어의 특징을 분석함으로써 현대건축에서 나타나는 건축디자인 언어의 키치(kitsch)적 유희성을 이들의 논리 규범과 관련지으려는 태도를 보였는데, 키치(kitsch)는 그로 인해 ‘모조품’을 지칭하는 단어로서 기능주의적인 모던 디자인에 대립되는 ‘bad’의 개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또한 참된 가치보다는 대중의 요구에 따라 특정한 문화적 오락을 위해 생겨난 ‘대용문화’인 팝아트(Pop Art) 개념과도 구별된다.그림2. 키치(kitsch)와 팝아트(Pop Art)의 개념 비교키치(kitsch)란 어떤 구체적인 사물이나 단편적 양식에 대해 단순히 규정하기보다는 인간의 존재방식에 관한 일련의 행태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키치(kitsch)는 20세기 이후 더욱 본격화되었고, 그 의미가 확장되어 이제는 단순한 ‘2류 문화’가 아닌 일상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술뿐만 아니라 건축, 공예, 패션, 심지어는 TV프로그램이나 광고, 음악,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있어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2.3 키치(kitsch)의 한계와 과제키치(kitsch)는 고급문화 요소를 저급하게 또는 단순화시켜 모방하거나 단지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된 용어이다. 또한 예술적으로 타락한 낭만주의의 결과물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산업사회가 낳은 필연적 산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키치(kitsch)는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에 치중함으로써 예술의 본질에 소홀했고 디자인 자체를 지극히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수용자들로 하여금 지나친 개인화를 부추겼다고도 할 수 있다.키치(kitsch)는 예술적 가치와 규범에 대한 부정적 의미를 갖는 것이 사실이며 그로 인해 많은 현대예술에 있어 단순화와 모방과 같은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창조에 대한 고민보다는 즉흥적 감정 표현이나 무분별한 실험 등이 지나치게 시도됨으로써 본질적 가치를 잃고 피상적인 유희에 매달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3. 현대건축의 배경 및 디자인지식의 변화근대건축은 고전양식 규범이 해체되고 과거 양식의 재현에서 탈피함으로써 더욱 편리하고 경제적으로획일화 극복을 위한 전통의 재해석 및 재현이나 회귀와도 관계된다. 물론 그 특성상 적용범위는 매우 한정되지만 환상적 현실주의를 창조하는 자기기만적 성격을 가지고 대부분의 본질적 대상에 대해 자유로운 사고를 중요시하는 키치(kitsch)적 경향은 당시까지의 건축이 가지고 있던 결정론적 관점)에도 급격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즉, 키치(kitsch)적 표현의 다양성은 곧 이상적 모델(ideal model)을 통한 실험의 시대를 의미하며, 고유의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에 따라 건축에도 기호론적 상징성을 부여함으로써 건축가의 세대교체) 등 일련의 시대적 요인과 함께 새로운 현대 건축의 변화를 이끄는 주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3.3 절충적 경향과 다원주의(pluralism)다원주의(pluralism)는 1970년대 이후의 디자인을 대변하는 패러다임이다). 마샬 맥루한(Marshal Mcluhan)과 벅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와 같이 다원주의(pluralism)를 바탕으로 하는 포괄적 태도)는 다양한 사고에 기초를 둔 창조적 해석을 바탕으로 기존의 텍스트와 절대적 관념들을 무너뜨렸다.다원주의(pluralism)의 복합성(Complexity)은 단순화(Simplification)와는 반대되는 개념인 동시에 다의성(Ambiguity)과 일맥상통한다. 이것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인하여 그 의미와 해석이 풍부해지는 건축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원적 경향은 현대건축의 근원적 개념조차도 고정적인 것에서 유동적인 것으로, 명확한 것에서 모호한 것으로 변화시켰다.다원주의(pluralism)는 건축과 예술의 범주에서 절충적 성격도 함께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건축을 포함한 많은 예술 분야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분화시켰다. 키치(kitsch)의 개념이 “모두를 조금씩 갖되, 하나에 너무 치중해서는 안된다”였다면 다원주의의 특징은 각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중시하는 것으로, 관련성이 없는 두 개 이상의 것이 합쳐 새롭고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나기도 와 상징성목표치(±α)Style합리적 모델, 기능주의이상적 모델, 다원주의건축적패러다임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 및 키치(kitsch)장 점활용성 측면의 오류의 최소화상징성 및 장소성의 구현단 점획일적 경향보편적 기능성과균질성의 부족현대건축의 조각적 사고는 시각 디자인 언어를 중심으로 키치(kitsch)적 유희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키치(kitsch)는 사실상 저급 문화로부터 시작된 쾌락주의가 깊이 배어 있다. 즉, 유희는 즐거움을 통해 자기만족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태도로서 단순히 현대건축의 시각적 과시와 차별화 욕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자기위안으로서의 문화적 욕구를 의미한다.아우라(aura)의) 상실은 자유로운 감각적 향수를 느끼는 대신 그 본질적 가치는 잃게 되는 것을 뜻한다. 아우라(aura)가 사라진 유희적 표현은 이질적인 재료, 스케일, 형태 등을 허용함으로서 때로는 혼란스럽고 기존의 관습적 체계에 대한 파괴적인 충동을 표현한다.그림3. 키치(kitsch)적 유희성과 아우라(aura)의 상실의도적으로 아우라(aura)를 제거하고 건축을 하나의 미술조각품과 같은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에는 현실의 구속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현실의 세계가 너무나 심각한 데서 오는 인간적인 반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환상적 이미지들을 통해 사회의 억압적인 요소들로부터 대리 만족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4.2 역사적 전통성의 재해석 및 모방역사적 전통성이란 쉽게 변하지 않으며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생성, 발전되어온 일종의 문화적 산물로서 모방 및 복제의 대상인 동시에 창조적 가능성을 제공한다. 건축의 역사 또한 우리가 그것을 행함으로 생기는 하나의 “흔적”이므로 건축가에게 전통적 모델은 새로움을 창조해낼 수 있도록 디자인 사고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그림4. 역사적 전통의 역할역사적 전통의 재해석은 키치(kitsch)의 환상적 현실주의를 창조하는 자기기만적 성격을 잘 나타낸다. 즉, 주관성과 객관성 사이를 분리시킴으로써 지화시각적 유사성 및 상호관련성M&G Ricerche Research LaboratoryBeached HousesReyes HouseARK, 다카마츄, 1983, 도쿄 (선로변에 위치, 기관차의 연상작용)그림8. 장소성과 기호론적 심벌(Symbol)부여건축은 근본적으로 안정적 구조물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보편적 일상생활이 가능해야 한다는 점에서 경제, 산업, 법규 등 다양한 구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사회적 상식과 관습에도 강하게 얽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초현실주의적 왜곡과 키치(kitsch)의 유희적 결합은 이러한 다양한 예술적 제약(制約)과 기존의 질서에 얽매인 수동적 개념에 과감히 맞서 새로운 건축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도덕적 콤플렉스와 규범적 한계로부터 건축가의 디자인 사고를 자유롭게 해주는 역할을 하였다.4.4 장소성과 기호론적 심벌(Symbol)부여장소는 건축이 놓이는 ‘터’로서 인간의 시각과 사고를 통해 체험되고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형성된다. 장소는 환경의 한 단위로서 위치(location)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큰 맥락 속에서 구분될 수 있는 자체적 질서를 가지고 있다. 장소성은 자연기후, 역사 및 문화 등의 요인까지도 포함하는 광범위한 의미의 지역성과는 구별되며 특정 사건(Event))이나 시각적 결절점(Node) 등을 통해 확보된다.)기호론적 심벌(Symbol)은 유사성 및 상호관련성 등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도록 해주는 매개(媒介)의 개념으로서 정체성(Identity)과 차별성(Oneness, Individuality)을 부여하는 디자인 언어가 된다. 즉, 심벌(Symbol)로서 형태가 갖는 고유의 기능은 사라지는 대신 건축물의 용도나 시각적인 명료성이 상대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사유와 존재 사이의 거리를 메워주는 도구로써 사용자와 구체적 건물형상(공간) 사이에서 일종의 의미전달 체계가 형성되는 것을 뜻한다.심벌(Symbol)로서의 키치(kitsch)적 유희성은 사용자의 시각을 강하게 자극시키고 소비욕구를 유발시킬 뿐만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