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학년도 2학기 과제물(온라인제출용)교과목명 : 성, 사랑, 사회학 번 :성 명 :연 락 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o 과제유형 : 특정한 여성주의나 여성주의적 사회운동의 사례를 골라서 (한국 혹은 해외 사례 모두 가능) 그 운동이 해결하고자 했던 사회적 과제는 무엇이며, 어떤 현실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게 된 것인지, 그들은 어떤 방향으로 현실을 개선해가고자 했는지를 서술하라.펠티에, 급진적 여성주의의 표상I. 서론본 과제물은 마들렌 펠티에(Madeleine Pelletier, 1874~1939)의 급진적 개인주의를 분석, 종합, 평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수 만명이 있다면 수 만명의 페미니즘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페미니즘(여성주의)는 각양각색의 유형이 있다. 1세대 페미니즘의 역사에서부터 3세대 페미니즘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맥락에 따라 페미니즘은 발전하고 진보해왔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은 파이어스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여성주의자의 표상이라 팔 수 있는 펠티어를 논하도록 한다. 본 과제물은 단지 그 인물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이 제기한 주장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그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을 종국의 목적으로 삼는다.II. 무엇이 문제였던가?: ‘여성성’의 옥쇄펠티어는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여성과 남성의 성차를 강조하는데 비하여, 오히려 반대의 방법을 사용한다. 그녀는 ‘여성성’은 여성을 옥쇄화한다고 보았다. 여성성이 오히려 여성을 옥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바로 ‘여성’이 사회적인 관념인 ‘여성성’으로부터 규정당하고, 그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여성성’은 여성을 하나의 정체로 이해하고, 그 여성의 맥락성을 은폐한다. 이와 관련하여 스콧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범주와 습관은 언어로 전달되고, 이 집단성이 개인을 억압한다. 그러나 창조적 충동은 억압될 뿐, 인간의 본질은 “삶의 약동”으로 집약된다. 이 때문에 언어와 단순한 생계를 뛰어넘을 때, 개인은 고유한 자신으로 자리매김한다. (......) 논리적으로 젠더는 이러한 상징적 표상, 즉 개인이 “본래적 자아”를 지각하지 못하게 하는 “획득된 규범”에 속한다.”다시 말해 ‘여성’은 ‘여성’, ‘여성적인 것’이라는 규정 속에 괄호처리되고, 이렇게 된즉 여성 개개인의 본래적이며 고유한 자아는 사라지게 된다. 다시 말해 남성은 개개별적 주체로 상정되는 반면에, 여성은 단지 ‘여성’이라는 큰 덩어리로 처리된다.그러한 사회적 병폐는 바로 ‘참정권’에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서프러제트를 비롯하여 많은 여성들은 남성에게만 참정권을 주는 세태를 비판하였다. 즉 여성들에게는 “어떠한 시민적이고 정치적인 주체”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펠티에는 참정권 운동을 벌였고, 여기에서 여성이 시민사회의 한 주체로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III. 어떻게 저항하려 했는가1) ‘여성성’의 부정그녀는 성차(性差)를 일종의 ‘심리적인 성’으로 규정하였다. 다시 말해 우리들은 흔히 성차를 일종의 과학적이고 생리적인 것으로 이해하여, 일종의 실체 개념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펠티에는 그러한 인식을 전복시킨다. 성차는 바로 심리적인 것, 다시 말해 가공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그녀는 관습적인 ‘여성성’을 거부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여성은 관습적인 어떤 대상에서 벗어나 여성 자체도 개인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물론 그녀의 견해는 관습적인 것을 전복한다 해서, 그 자체로 시민적 주체로 전환될 수 없다는 점에서 유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상적인 관념이라 할 수 있는 ‘여성성’이 존재하는 한, 여성이 한 존재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는 점도 동시에 유의해보아야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펠티에는 ‘여성성’을 결별하기 위해 ‘남성성’을 옹호한다는 데 있다.예를 들어 주디스 버틀러는 여성성과 남성성 즉 섹슈얼리티자체도 가공적이며 사회적인 것이라 주장한다. 즉 계보학적인 관점을 통해 성차 자체를 무화시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티에는 ‘여성성’만을 허구적인 것이라 보고 남성성을 옹호한다는데, 일종의 보편주의적 전략을 사용했다. 물론 그것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미흡한 것이기는 하지만, 시기적인 한계가 분명 있는 것이다.어쨌거나 그녀는 ‘여성’과 ‘여성성’으로 묶여지는 것들에 대해 분개했다. 이와 관련하여 신행선의 설명을 들어보자.“펠티에는 (여성) 정치 해방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 내겠다며 ”여성으로 남고자“ 했던 페미니스트들을 비웃었다. 이들의 여성적 전략 자체를 불신했던 것이다. 또한 참정권 확대를 위한 거리 행진에서 잘 꾸민 마차를 타고 예쁜 옷을 입은 여성들이 군중에게 꽃을 던지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격분했던 바 있다. 펠티에는 베일, 드레스, 모자, 꽃 등이 [가공적이며 관습적이] 여성성을 강화시킨다고 생각했다.”여성이 나약하고 우둔한 존재로 인식될 때, 그러면서 남성을 접대하는 존재로 그려질 때, 펠티에는 그러한 인식이 사회적인 것임을 주장한다. 따라서 그러한 가공적인 여성성을 강화하는 어떠한 맥락을 반대하였다. 그것이 바로 ‘드레스’, ‘모자’, ‘꽃’ 등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강화물들은 기본적으로 여성이 ‘가정’, ‘아름다움’, ‘나약함’과 연관되게 하며, 그러한 연관은 근본적으로 가공적인 ‘여성성’을 강화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여성을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키울 것을 강조하였다.그녀는 참정권 운동을 줄기차게 벌였는데, 주지하다시피 서구에서도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20세기 초엽의 일이라 하겠다. 그녀는 여성에게만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는 것을 비판하고, 여성이 정치적인 주체로 취급되기 위해서는 남성에게 주어지는 참정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나름대로 보편주의적 시각 속에 여성의 권익을 신장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다.2) ‘남성’ 되기그녀는 1914년 이라는 책을 집필하였다. 여기에서 그녀는 ‘反 여성성’의 교육을 주장한다. 여성이 참정권을 얻듯이, 바로 여성 스스로도 독립적인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여성 역시 남성과 동일한 처지에서 병역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자기의 지적능력을 계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모두 사회참여적인 남성과 동일한 시민주체가 되고자 함이었다. 또한 여성은 마땅히 ‘남성복’을 착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조선시기에도 임윤지당이란 사람이 있었고, 또한 울스턴 크래프트 역시 이러한 보편주의적 관점에서 남성을 보편으로 삼고 여성 역시 그 보편항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펠티에 역시 유사한 논법을 진행한 셈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펠티에의 ‘반(反) 여성성’의 주장은 나름대로 동료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상당한 공격을 받기도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2018학년도 2학기 과제물(온라인제출용)교과목명 : 한국한문학의 이해학 번 :성 명 :연 락 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o 과제유형 : 한국 한시의 발달과정을 시대별로 정리하여 서술하시오.韓國 漢詩의 發達過程에 대한 小考I. 序論文化的 普遍主義의 表象이라 할 수 있는 동아시아 表記文字인 漢字를 공통으로 사용한 한문학은 중국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민족 정서와 사상을 담아내려 했다. 漢詩는 우리나라 선조들이 한자를 표기 수단으로 하여 중국에서 만들어진 형식에 맞추어 지어진 시를 일컫는다. 중국의 한시는 당나라 때 만들어진 近體詩의 형식으로 가장 발전된 형태이고, 이 형식에 맞지 않는 모든 한시는 古體詩라고 일컫는다. 시라 함은 작가의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 및 작가 내부의 정서를 일정한 형식에 맞추어서 含蓄적인 방법론으로 표현해 내는 것을 일컫는다. 전통적으로 글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美文 의식과 글에는 올바른 道理를 담아내야 한다는 載道之文의 가치관이 토대하면서 한문학은 크게 詩와 文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또한 시는 국가가 생기고 지배층이 형성되면서 계급이 생겨나고, 다시 말해 왕권과 지배계급이 생기면서 자신들만의 정서로 표현하고자 했으며 그들만의 차별화를 둘 필요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韓國 漢詩의 發達過程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도록 한다.II. 本論1. 三國時代 이전의 한국한시나라가 안정되고 평화가 지속되자, 新羅의 문화 발전이 최고의 수준으로 이루었다. 또한 사상적으로는 중국 대륙에서 유입한 佛敎가 國敎로 정착되었다. 더불어 외교 방면에 있어서 당나라가 門戶를 개방하고 또 해외 학생을 받아들이게 되자 신라 왕족을 중심으로 入唐 유학이 증가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벼슬길이 막힌 六頭品 출신 사람들이 당나라를 통해 진출하게 된다.문학 중에서 詩를 중시한 당나라는 과거의 시체로부터 새로운 형식의 近體詩를 개발하였다. 이에 그러한 근체시는 우리나라 문학계로 들어왔고 漢文學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특히 崔致遠 등을 중심으로 한 입당 유학파들에 의해서 수입되었다.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이른 한시는 四言四句의 시경체인 고구려 琉璃王의 “黃鳥歌”와 駕洛國 건국 신화의 “龜旨歌”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公無渡河歌도 포함 된다. 더불어 古體로 된 한시로는 작자미상의 “인삼찬”은 일찍이 중국까지 알려졌다. 그리고 乙支文德의 “與隋將于仲文詩는 을지문덕을 포함한 고구려 사람들의 기상을 잘 보여 준 작품이다. 백제의 작품으로는 능산리고분에서 발견된 “수세가”와 신라 眞德女王의 치당태평송 등이 남아 우리들에게 전해지고 있다.2. 南北國 시대의 한시한 민족의 南北으로 분단된 시기는 7세기 초에서 9세기 초이다. 고구려 유민이 북쪽에 발해를 세웠으나 발해의 문학은 자료가 몇 편 남아있지 않는다. 남쪽에는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통일하였다. 640년 신라 善德女王 재위시기에 국교를 대륙에서 유입된 불교로 공인하였다. 외교적으로는 당나라와 문호를 개방하였다. 신분적 한계로 벼슬길이 막혀있는 육두품 출신인 宿衛學生은 당나라 국학에 유학생을 파견하게 되었다. 최초의 인물로는 김풍운이였다. 그 당시 당풍의 한시가 유행하였고 고려 초기까지 이어졌다.발해 사람들이 남긴 한시로는 석정소가 지은 한시 한 편이 있다. 또한 당나라 유학 당시에 만난 일본 유학승인 레이센의 인연으로 그가 죽은 뒤 애도의 심정으로 지은“곡일본국내공봉대덕영선화상시병서” 작품이 있고 주로 일본으로 사신 갔던 문인들이 주고 받은 작품들로 양태사와 왕효렴이 있다. 왕효렴은 일본에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그의 작품을 몇 수 소개 한다화판령객대월사향견증지작 왕효렴寂寂朱明夜 쓸쓸한 여름밤에團團白月侖 두둥실 달은 밝네幾山明影徹 밝은 그림자 몇 산에 비추는고萬象水天新 물과 하늘 사이 만물이 새롭네棄妻看生恨 홀로된 여인 슬픔만 새록새록羈情對動神 발 묶인 나그네도 마음만 상하는데誰云千里隔 누가 천리 밖 떨어졌다 하리能照兩鄕人저 달빛 두 사람 비추이니달을 보고 고향을 생각하는 그는 寂寞하기만 한 밤에 쓸쓸한 마음을 달을 보며 반가운 심경을 드려내 보인다. 달은 고국을 그리는 매개체로 타국에 있는 자신을 여인의 외로움에 비유하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가 아닐 수 있겠는가?이어 통일 신라에 讀書三品科를 만들어, 五經, 論語, 孝經, 文選 중에 文選을 선택하여 글을 아름답게 꾸미고 騈儷文을 짓게 되는 契機가 振作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高麗 중기 唐宋의 시문이 성행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 즈음 신라의 여류시인 설요는 15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여의게 되자 佛敎에 歸依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반속요”라는 시를 짓게 되었다. 이후 佛戒를 버리고 還俗하여 俗世로 돌아온 후 그녀는 시인 곽진의 부실이 되었다.합천의 은사로 알려진 王巨人은 왕실을 비판했다는 죄인으로 옥에 갇힌 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를 지었고, 그 이후 하늘이 응답하여 석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시가 바로 “분원시”인데 삼국사기에 실려 있다.다음은 唐에 유학하여 及第한 신라인들 중 신라말에 이름을 떨친 이들은 최광유, 최승우, 박인범이다. 그들의 저작으로 신라로 돌아와서 칠연율시 10편과 찬 두편이 있다. 그는 승려 문사 다른 사람에게 지어 주었다. 晩唐 시풍의 시인으로 평가되어 해동한문학의 비조로 불리는 최치원의 한시는 많은 수가 전해지는데 그 중에서 당나라의 현실을 노래 한 “강남녀”가 유명하다3. 高麗시대의 한시고려는 송악 開城을 근거지로 한 호족출신인 신라 말 王建이 세운 국가이다. 시문학으로는 만당풍이 유행하였으고 중기에는 송시풍이 대세였고 후기에는 송나라 性理學이 새롭게 유입되면서 염락풍이 세력을 떨치게 되었다. 고려시대의 한시 특징을 살펴보자. 신라의 불교가 여전히 高麗의 국교가 되면서 형이상학적 이념을 토대로 한 선시가 활발하게 전개 되었다. 특히 개인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곱고 아름답게 표현한 만단풍과 과거제도 시행으로 文風이 일어나면서 詞章학이 영향력을 뗠치게 된다. 고려전기의 시인 가운데 후대까지 시명을 떨친 인물들은 朴寅亮, 鄭襲明, 高兆基, 鄭知常, 崔惟淸이다. 박인량은 문장이 뛰어나며 시상이 맑고 어운이 淸節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그의 시 “사송과사주귀산사”는 속세의 바쁨과 선계의 한가함을 대비시켜, 시인의 정서를 한층 고조시켜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였다.고려 중기의 문신인 다른 작가인 鄭襲明의 작품을 감상하자석죽화 정습명世愛牡丹紅 세상에서는 목단의 붉음을 사랑하네裁培滿院中 정원을 가득히 채울 정도로 기른다네誰知荒草野 누가 알리 거칠고 황량한 들판에도亦有好花叢 또한 좋은 꽃 한 떨기가 있는 줄을色透村塘月 색깔은 마을 연못 달빛에 스며들고香傳娘樹風 향기는 언덕나무 바람에 실려 오네地偏公子少 편벽한 지역에는 귀공자가가 적으니嬌態屬田翁 고운자태 오직마을 늙은이 몫일세1151년 그가 추밀원지주사가 되었을 때 선왕의 의지를 받들어 의종의 잘못을 諫諍하다가 왕의 미움을 받았다. 그리고 김존중, 정함등 으로부터 비방을 받자 그로 인해 병을 얻게 되었고 金存中이 대신 직책을 맡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 시를 읽은 睿宗이 크게 感動하여 그를 즉시 玉堂으로 불러오도록 했다는 일화가 있는데, 이 시는 분명 자신의 심경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고려 중 후기는 武臣의 정변으로 무인들의 세상이 되자 文人과 文風이 크게 위축 되었다. 그러다가 송시학 유입으로 송동파 詩風을 따르는 시인으로 임춘, 이인로, 진화, 최자 , 김양경, 죽림고회 이인로, 임춘, 오세재, 김극기 등이 있다. 무인의 정변 이후 한문학은 하층민의 억압된 삶을 소재로 한 애민시, 영웅서사시, 불교시, 시화집, 가전문학이 활발하게 저술되었다. 생몰 연대가 미상인 진화는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으며 李仁老와 더불어 絶秀의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늦 봄 진화小梅零落柳?垂 작은 매화 떨어지고 버들은 드리웠는데閑踏靑嵐步步遲 한가로이 푸른 기운 밟으니 걸음 더디네漁店閉門人語少 고깃집은 문 닫고 사람 소리 드문데一江春雨碧絲絲 온 강에는 푸른 봄비 실같이 내리네위의 진화의 시는 그림 그리듯 정경을 잘 그려내고 있다. 늦은 봄 날 일상의 모습을 통해 시인의 맑고 참신한 시상을 한가로운 어촌의 풍경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고려 후기에 와서는 안향의 성리학에 의해 李載現, 李穀, 鄭夢周, 鄭道傳 등과 이색의 제자로 정몽주 길재 이숭인 정도전 하륜 권근 등 일부는 고려에 忠節을 일부는 조선건국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4. 朝鮮시대의 한시조선전기를 넘어오면서 고려시대 송시학의 영향으로 송시풍의 시단으로 강서시풍이 주도 해 나갔다. 조선의 학자이며 시인이었던 柳方善은 시학에 뛰어난 인물로 성리학에 기반을 둔 천지 만물 인간사의 이치를 담아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서회 유방선門巷年來草不除 집 앞 골목길은 여러 해 풀도 베지 않았더니片雲孤木似僧居 조각구름 걸린 절간 비슷하구나多生結習消磨盡 여러 생에 쌓인 습관 모두 닳아 없어졌는데只有胸中萬卷書 가슴속에는 오직 만권의 서책만 남아 있네이 시에 대해서 徐居正은 청신하고 아담하며 고고하고 간결하다는 평가를 했는데 그 이유는 풀, 구름, 나무 등의 자연과 불교의 색채가 잘 베어났기 때문이다. 서거정은 유방선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조선시대 官人문학에 큰 업적을 남기었다. 유방선에 이어 서거정, 金宗直, 金時習 등이 조선 초기 시단을 이끌어 나갔다.宣祖때에 이르러 한시가 다양하면서도 한층 더 빛을 발하던 시기이다. 鄭士龍 중심으로 하는 강서시파가 등장하는 시기로 申光漢, 羅湜, 金麟厚 등이 활동하였다. 선조 시대를 지나면서 정치의 혼란 속에도 시단은 더욱 다채롭게 이어졌다. 특히 당풍을 이끈 박순은 삼당시인 이달, 백광훈, 최경창 등의 後學들을 양성했다. 이달은 허균과 허난설헌의 스승이기도 하다.
2018학년도 2학기 과제물(온라인제출용)교과목명 : 현대시론학 번 :성 명 :연 락 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o 과제유형 : 다음 시집 중 한 권을 선택하여 읽고, 주요 작품을 중심으로 시를 분석하여 비평문을 작성하시오. 아래 유의사항을 반드시 숙지하여, 선택 시집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한 편의 글을 쓴다.시선(視線)으로 말걸기:문보영의 『책기둥』을 중심으로I. 서론본 과제물은 문보영의 『책기둥』을 비평적인 시각에서 분석, 종합, 평가하고자 한다. 문보영의 시는 참으로 어렵고 그 표현적 수법이 다소 수사적이고 현학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는 ‘시선’이라는 측면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논의할 거리들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녀의 시는 다소 정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적임 가운데서 울림을 준다. 그리고 울림 속에서 ‘관찰했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감상을 우리에게 제공한다.II. 살펴봄, 그 관찰의 시선에 대하여그녀의 시는 일종의 3인칭 관찰자의 시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녀는 그녀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의 시선에서 잠시 빠져나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대상을 관조한다. 그것은 관점의 변화인데, 관점이 변화하게 되면 대상이 다르게 보이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보자.그녀의 시 ‘그림책의 두 가지 색’에서는 이렇게 말한다.책장을 넘기는 것은 관 뚜껑을 여는 행위이며/ 관 뚜껑을 열 때마다/ 누워 있는 자의/ 세상의 바라보는 관점이 변한다.위 표현에서 책장은 관 뚜껑과 같은 행위로 표현된다. 위 비유적 표현을 통해 궁극적으로 책을 읽는 독자의 관점의 변화한다는 것을 나타난다. 그것은 독자가 [그림]책을 보는 관점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인데, 그녀의 시에서는 그 관점에 대한 조건으로 ‘판형’, ‘색깔’, ‘인물의 등장’, ‘삽화’ 등으로 표현된다. 여러 가지의 조건에 대해 독자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책을 쓰는 작가의 입장이면서, 그 작가의 입장에서 잠시 탈피하여 ‘독자의 시선’을 빌려 다른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또 다른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거리 한복판이다 사랑하는 사람 S에게서 몹쓸 소리를 들은 Z의 두 귀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지나가던 개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Z의 두 귀를 주워먹었다 Z의 두 귀는 Z보다 먼저 죽어 천국에 도착했다 동시에 귀의 몸은 배 속에 남았으므로 Z는 개의 배에서 나는 소리를 평생 들어야 했다.위 시는 ‘귀’가 개의 배 속에 들어가 개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제 귀는 S의 귀가 아니라 개의 귀가 된 셈이다. 귀는 이제 개의 소리를 듣는다. 귀는 이제 개의 시선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재조직한다. 동일한 사안이라 할지라도, 보는 자, 듣는 자의 시선에 따라 재조직된다. 왜냐하면 ‘대상’은 ‘구성’되고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문보영의 시는 일종의 관찰자적 기법을 활용하고 있는데, 다만 그 표현력이 진부하고 지루하여 미흡한 점이 아쉬운 점이다.시는 관측된 현상에 대한 설명을 오직 자연적인 원인에서만 찾는다/ 시는 관측된 현상을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하는 자연의 모형을 만들고 시험하면서 발전한다‘과학의 법칙’이라 이름 붙인 위 시에서, ‘시는’ 일종의 관찰과 동의어라 할 수 있다. 시는 어떤 대상을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수사어는 없이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 대상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좋은 ‘시’이다. 그러나 그 표현이 만약 대상과 상이하게 된다면, 저자의 표현대로 그 “시는 수정되거나 폐기되어 버린다.” 이는 관찰, 혹은 시선의 문제가 시의 핵심적 문제임을 표명한 것이다.그런데 그 관찰의 시선이 정작 자기 자신의 마음을 적확하게 표현하고 대변할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빵”이라는 시에서 잘 드러난다.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A가 다 했다 따라서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궁금할 땐 을 꺼내 읽었으며 마음을 잊고 싶은 땐 을 침대 아래 던져 두었다.시인이 하고 싶은 말은 A의 에서 모두 근거한다. 시인의 주체성은 잠시 A의 에서 대신하게 된다. 이제 시인의 시선은 A의 을 거쳐서 전개된다. 이러한 점은 단지 시선의 중첩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인생의 한 부분을 소설가가 눈치채길 기대해 보는 것이다” 시선의 변화는 사유의 변화이다. 시인의 생각은 이제 A의 이란 구도 속에서 재편된다.그리고 이 관찰은 ‘내’가 대상이 되어 ‘내’가 ‘나’를 관찰할 수 있기도 하다. 이것은 ‘불면’이라는 시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누어서 나는 내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내 옆의 새벽 2시는 회색 담요를 말고 먼저 잠들었다.위 시에서는 ‘내’가 인식/관찰의 주체이면서 ‘내’가 인식/관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에게서 흘러가는 [목]소리들이 나의 귀에 들려온다. 그러나 그것은 죽은 것 같지만 살아있는 그런 존재의 목소리이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 나의 모습속에서, 무엇인가 죽은 것 같지만 또 그렇지만 담담한 그 모습을 관찰하게 된다. 이 관찰의 시선 속에서 이야기는 꾸며진다.III. 결론에 부쳐: 관찰과 이야기 만들기시선/관찰은 중층적인 것이다. ‘내’가 ‘나’를, ‘남’이 ‘나’를, 그리고 ‘내’가 ‘남’을 비출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선 속에서 이야기는 꾸려진다. 때론 이야기가 바뀔 수도 있고, 또 완전히 다른 맥락으로 전개될 수 있다. 문보영의 시는 ‘시선/관찰’이 주고 있는 ‘기기묘묘’한 상황을 분명하게 전달해주었다. 박상수의 평론에서도 언급하지만, 이러한 문보영의 “이러한 쓸데없는 시 쓰기”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녀의 시는 평범한 시선을 잠시 유보하면서, 제 3의 시선을 빌려옴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2018학년도 1학기 과제물(온라인제출용)교과목명 : 문화통합론과 북한문학학 번 :성 명 :연 락 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o 과제유형 : 월북작가 박태원과 정지용 문학의 존재방식(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고, 북한문학사에서의 위상평가에 대해서도 비교분석해 보시오.o 과 제 명 : 박태원과 정지용 문학의 동이에 관하여박태원과 정지용 문학의 同異에 관하여I. 서론본 과제물은 월북작가 박태원과 걸출한 문학가 정지용의 문학의 존재방식을 비교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비교 연구(Comparative Study)는 매우 어려운 것인데, 왜냐하면 서로 다른 철학, 사상, 문학, 양태 등을 비교하는 것은 분명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이기 때문이다. 박태원과 정지용은 비록 한반도에서 생활하였을 지라도, 그 생활환경, 가치관, 문학태도 등에서 상당 부분 차이가 있고 또한 유사점도 가지고 있다. 만약 세심한 해석학적 관점을 가지지 않은 채, 박태원과 정지용의 문학을 비교검토하게 되면 양자의 동이(同異)는 부조되어 버릴 것이다. 물론 본 과제물 제출자는 문학 분야에 있어 식견이 없음을 고백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2차 자료를 활용하기로 한다. 이를 통해서 박태원과 정지용 문학의 동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논하도록 하겠다.II. 박태원/정지용의 문학의 공통점박태원/정지용 문학에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발견되지만, 본 과제물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별하여 논하도록 하겠다.(1) 근대적 가치에 대한 동경박태상(2017)은 박태원과 정지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특히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느끼게 된 것은 바로 근대적 풍경 속에 드리워지고 있던 ‘군중 속의 고독과 우울증’의 발견이었다.흔히 박태원을 가리켜 ‘모더니스트’라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근대적인 풍경에 사로잡혀있었다는 것에 있다. 물론 김미지(2014:16)는 박태원을 가리켜 모더니스트라 국한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박태원이 일단은 모더니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예를 들면 박태원의 단푠 소설 ‘애옥’ 창작의 뒷 이야기를 들어보자.주인공은 젊은 화가로 하웅이라 일컬었다. 하웅은 종로에서 다방을 경영하고 있었다.위 박태원의 인용문에서 드러나는 것은, ‘화가’, ‘다방’으로 대표되는 도시적인 가치에 대한 비유물이다. 서양화를 그리는, 그리고 다방을 운영하는 점은 전근대적인 것과는 구별되는 것들이다.정지용의 시 ‘슬픈 汽車’ 중 일부를 살펴보자.우리들의 기차는 아지랑이 남실거리는 섬나라 봄날 왼하로를 익살스런 마도로스 파이프로 피우며 간 단 다.위 정지용의 시는 지금보면 우스꽝스러운 표현을 가지고 있지만,‘마다로스 파이프’로 연기를 뿜는 기차는 근대성의 표상이라 할 것이다. 특히 해당 시 가운데 ‘마담·R’이란 이름의 등장은, 전통·시골이라는 가치와는 대별되는 것이다.그렇다면 이러한 모더니즘적 경향은 그 둘의 어디에서 기인했는가? 논자가 보기에 그것은 고등교육에 관한 경험 특히 일본유학으로 보인다. 박태원은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의 제일고보를 졸업했고, 또한 일본의 호세이 대학에 유학한 바 있다. 정지용은 1923년 5월에 일본 도시샤대학으로 유학한 바 있으니 분명 근대적 가치에 대한 동경이 있었으리라.(2) 전통적 가치에 대한 혼재그러나 단지 그 둘이 근대적 가치에 대해 동경만 한 것은 아니다. 일련의 전통적 가치에 대한 잔류는 불가피했고, 오히려 근대와 전통이라는, 도시와 고향이라는 이중적 의식이 미묘하게 남았다고 평가하는 것이 더 올바를지도 모르겠다. 먼저 정지용의 시 ‘향수’ 중 일부를 살펴보자.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위 시에서 보면 분명 정지용은 고향을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해 일본으로 유학 간 지용의 머리 속에는 분명 근대적인 가치를 동경하지만, 동시에 고향에 대한 의식이 남아 있었다. 이것은 필시 격동기에 갖는 지식인의 미묘한 정체성 문제였으리라. 그래서 정지용은 그의 시 향수에서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사철 발 벗은 안해가/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이라 말한 것이다.이러한 정지용의 시에서 드러나는 고향의 모습은, 어쩌면 박태원의 소설 ‘방란장 주인’과 비견될 수 있다. 박태원이 단지 어떤 서구적 가치만을 존숭한다는 견해에 반증을 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망랑장 주인, 미사에, 다방 손님인 수경선생 등은 근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적인 인물이다. 이것은 어떤 식민화/식민화에 동조하는 인물이 아니다. 이러한 견해는 분명 정지용과 마찬가지로 박태원이 근대적 가치와 전통적 가치가 미묘하게 혼재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3) 生平의 유사성박태상(2017)은 백태원과 정지용이 갖고 있는 생평상의 유사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본 과제물에서는 이것을 인용하여 이 문제를 갈음하고자 한다.지용이 술을 즐겼고 고집이 상당히 센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 구보도 음주를 즐겼던 것으로 생각된다.지용이 시를 암송하기를 좋아했고, 구보가 노래 부르기를 즐겼다는 사실을 보면 두 사람이 모두 리듬을 타면서 풍류를 즐겼던 동질성이 있다. 이러한 취향 이외에도 두 사람은 초기에 서정시를 창작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일제 강점기에 모더니스트로서 문명을 휘날리다가, 군국주의가 말기 증세를 보이던 1930년대 말부터 자신의 문학적 흐름을 변화시켜 동양적 은일의 세계로 옮겨간 것도 대동소이한 양상으로 생각된다. 또 해방 이후 한국전쟁의 시기에 두 사람 모두 자의반 타의반으로 평양으로 가게 된 것도 공통점이다.박태상(2017)은 그 둘의 작가 개인의 성격을 지적하는 것 이외에도 여러 문학적 집필의 궤도성이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것은 “작가 개인의 개성보다는 시대적 환경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III. 박태원/정지용 문학의 차이점 ?이미지즘과 리얼리즘을 중심으로-정지용의 문학은 이미지스트로 불리는 반면에, 박태원의 문학은 리얼주의적 경향이 있다고 평가된다. 여기에서는 리얼리즘과 이미지즘을 중심으로 하여 두 사람의 문학적 경향성을 비교하여 보도록 하겠다.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정지용의 대표작인 ‘향수’는 분명히 고향을 시각적 이미지로 잘 구체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질화로’, ‘재’, ‘밤바람 소리’, ‘엷은 졸음’ ‘짚베게를 돋아 고이시는 곳’과 같은 비유적인 표현들은 고향을 이미지적으로 잘 구체화하고 있다. 그리하여 김기림은 조선의 문인 가운데 선구자로 찬양하지 마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정지용의 ‘슬픈 기차’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나는 車窓에 기댄 대로 옥토끼처럼 고마운 잠이나 들쟈.靑만틀 깃자락에 마담·R의 고달픈 뺨이 붉으레 피었다. 고은 石炭불처럼 이글거린다.위 시에서는 ‘옥토끼’, ‘청만틀 깃자락’, ‘붉으레 핀 고달픈 뺨’, ‘고은 석탄불’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이러한 시각적 표현들은 기차 안의 상황을 적실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청만틀 깃자락’과 ‘고달픈 뺨’의 靑紅의 이미지적 대비는 곱씹을 만 하다.정지용이 이미지즘적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면, 박태원은 리얼리즘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어제 한나절을 내려 곱게 쌓였던 눈이, 어쩌면 그렇게도 구중. 중하게 녹은 거리 위를, 그들은 전차도 타지 않고 터덜터덜 걸. 어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는 고무장화를 신은. 사람조차 있었다. 눈이 완전히 녹아 구중중하게 질척거리는. 한 길 위를 무겁게 터벅거리고 가는 고무장화의 광경은, 물. 론, 보기에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나는 그 고무장화의 피곤한 행진을 보며, 그것을 응당 물로 닦고 솔질을 하고 할 그들의 가엾은 아낙들을 생각하고, 또 그들의 아낙들이 가끔 드나들어야만 할 전당포를 생각하고, 그리고 그곳에 삶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위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것은 바로 경성의 삶 자체가 피로하다는 것에 있다. 박태원은 리얼한 경성의 모습을 문학 속에 녹여내고자 노력했다. 도시의 군상을 어떠한 가감 없이, 아니 꾸며도 더 ‘사실’ 같게 표현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나름의 거리를 두고 경성의 모습을 아주 미세하고 세밀하고 살필 수 있데 되었다. 이러한 점의 연장선상에서 그의 소설 ‘방란장 주인’ 역시 근대화/서구화에 적응하지 못한 군상들을 면밀하고 리얼하게 표현해냈다. 이것은 박태원 소설이 갖고 있는 리얼리즘적 속성을 잘 설명한 것이다.IV. 북한 문학사에서 위상평가그렇다면 북한 묵학사에서 정지용, 박태원의 위상에 대한 평가는 어떠할까? 박태원과 정지용은 분명 1930년대 조선문학을 대표하던 인물이다.일단 박태원은 남한 출신이라는 점, 다시 말해 숙청당했던 박헌영과 가까운 남로당계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사실상 좌천, 숙성되었다. 예를 들어서 ‘조선문학통사’에서 박태원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북한문학사’가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에서 저술되었는데, 1편(1959~1966편)에 등장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바로 갑오농민전쟁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2018학년도 1학기 과제물(온라인제출용)교과목명 : 우리말의 역사학 번 :성 명 :연 락 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o 과제유형 : 우리말의 역사와 관련된 학술논문을 1편 찾아서 읽고 그 내용을 요약하시오.o 과 제 명 : “우리 나라의 문자사의 흐름”을 읽고“우리 나라의 문자사의 흐름”을 읽고이기문(2005), “우리 나라의 문자사의 흐름”, 『구결연구』 14, 구결학회, 233~251쪽.I. 서론본 과제물은 이기문(2005)의 “우리 나라의 문자사의 흐름”에 대해 분석, 종합, 비평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본인은 를 수강하게 되면서, 더욱 더 깊고도 체계적인 논의를 섭취하길 원했다. 따라서 의 저자이면서도 저명한 국어사 전공자인 이기문 교수의 논문 가운데 “우리 나라의 문자사의 흐름”(『구결연구』, 14)을 일독하고자 하였다. 본 논문은 크게 해당 논문의 얼개를 논하면서, 그것에 대한 본인의 분석, 종합, 평가를 더하고자 하겠다.II. “우리 나라의 문자사의 흐름”의 주요 얼개본 논문에서는 고대 삼국이 한자, 한문을 수입(收入)하게 되는 과정을 기술함으로 시작된다. 다만 본인이 여기에서 ‘수입’이라 했지만, 이 교수는 이것을 교섭(交涉)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한자, 한문이 없었던 고대 삼국시대에 언어가 없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의 언어와 새로운 언어가 교착하게 되고, 따라서 두 가지 형태의 언어는 공존하게 된다. 이것에 대해 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그런데 고대 삼국에서는 고유어는 구어로, 한문은 문어로, 매우 특수한 이중 체제가 성립되었습니다. 고유어의 기반이 웬만치 튼튼하였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입니다(234~235쪽).이러한 관점은 역사적 발전 가운데 자율성과 타율성을 고루 응시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민족의 고유성을 전제하면서도, 동시에 한자/한문으로 대표되는 중국문화의 수입을 모두 고려한다. 이러한 관점은 지나치게 國語 혹은 漢文의 어느 일방만을 강조하는 관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단지 한문만이 한민족의 언어생활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요, 또한 한민족이 한문을 배척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한문이 구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다른 편으로는 한자, 한문에 구어의 영향이 침투하게 되었습니다(235쪽).그렇다면 한문과 구어(토착어)가 상호 관계를 갖았다고 한다면, 그 중간적 매개작용이 발생해야 한다. 만약 한문 그 자체가 구어를 밀어내지 않았고 구어가 한문의 수입을 봉쇄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구어한문이란 이질적 두 대상을 매개할 어떤 것이 요청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반드시 해명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이 교수는 ‘새김[釋, 訓]’의 기능을 강조하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今俗訓京字云徐伐.”[오늘날 민간에서는 京자의 훈을 서벌이라고 발음한다.]위 문장에서 訓은 한자와 구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서로 다른 기표가 존재하지만, 사실 기의(시니피앙)는 같다. 그러므로 이질적인 기표가 사실은 같은 기의를 지시하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새김’이 중요하다. 특히 그가 236쪽에서 (4)의 예시로 든 군에 대한 새김으로 尼音今(님금)을 든 것은, 君의 새김이 임금임을 분명하게 한다.이어서 그는 고구려 지명에 천착하는데, 여기에서 그는 고구려 지명 표현은 음독 표기(자음 표기)와 석독 표기(새김 표기)가 공존했다고 본다. 이 점은 분명 구어와 한문이 한반도에서 공존했음을 드러낸다. 다만 이 교수는 김방한, 김수경 교수 등의 몇몇 논의를 비판하는데, 이 점은 해당 논문의 논지전개를 어지럽힐 뿐만 아니라 몇몇 논지 전개에 논의될 여지가 상당히 보인다. 이러한 ‘새김’에 대한 논의를 통해 이 교수는 일본의 훈(kun 訓)독이 사실상 우리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추측한다(240~241쪽).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체계적이고 명확한 근거제시를 필요로 한다. 마찬가지로 242쪽에서 간체자와 구결자를 비교하면서 전자를 가치절하하고 구결자를 상당한 가치평가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도 적절한 근거제시가 수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계속해서 이 교수는 훈민정음의 창의성, 특히 音素性에 주목한다(242~243쪽). 그는 “훈민정음이 기본적으로 음소문자이면서 음절단위로 묶어 쓰게 만들어졌다(243쪽)”고 말하면서 이를 통해 훈민정음의 세계문자사상에서의 의미를 음미한다.세계문자사는 표의문자에서 음절문자로, 다시 음소문자로 발전해 왔는데 세종은 모처럼 표의문자에서 음절문자로 후퇴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자는 언어를 표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훈민정음은 우리 국어를 표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종은 우리 국어의 진상을 꿰뚫고 습니다. 우리 국어는 고유어와 한자어로 되어 있는데 한자어 표기에는 한자를 쓰지 않을 수 없음을 직시하여 한자와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특이한 합자법을 만든 것입니다.즉 세계문자는 ‘표의문자→음절문자→음소문자’의 순으로 발전하지만, 세종은 음절문자로 후퇴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한자와 잘 어울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며, 이것은 세종이 문자에 대해 얼마나 사려가 깊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점이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문자 생활은 크게 3층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이를 도식화하여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1층漢文吏讀 포함2층한자와 한글의 혼용체시조, 가사 등3층순한글암클, 민간소설, 부녀자들의 편지그런데 개화기 이후에 사실상 2층에 해당하는 한자와 한글의 혼용체가 주류를 이루게 되고, 이것은 학문과 문화의 전영역을 포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즉 한자나 한글 어느 일방이 배척되지 않은 것인데, 이 교수는 이 예를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을 든다(245쪽). 주시경은 한글전용론자였고 순한글로 쓴 저서들을 남겼고, 그 정신은 제자들에게 이어졌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 주시경의 한자어 배척은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한자 전용정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전개한다. 이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한자의 부재는 결국 삼급(三級)의 언어로 전락될 수 있기 때문이다.더불어 그는 최현배 교수의 가로풀어쓰기에 대해서도 비판하는데, 일단 그것이 “한자가 외국 문자라 매척하면서 한글을 외국 문자와 같이 고치자고 한 것(247쪽)”과 같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서구문화에 대한 존숭과 같은 탈아입구적 견해와 유사한 것이다. 더불어 기계화를 위해 한글을 고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물론 최현배가 활동했던 당시는 아직 컴퓨터의 등장이 본격화되지 않았는데, 이러한 주장은 고도의 컴퓨터의 등장으로 사실 무의미하게 되었다.그러면서 이 교수는 한글을 오로지 가로쓰기[縱書]하는 세태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긴다. 물론 그가 가로쓰기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한글 자체가 종서와 횡서를 모두 할 수 있는데 모두 가로쓰기만 하는 행태를 지나치게 다양성을 저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우리 나라 문화의 한 큰 결점은 단일성, 획일성입니다. 이것을 다양성으로 하루 빨리 고쳐야 합니다. 현재 쓰고 있는 기계로도 종서를 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음을 저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런데도 횡서만을 고집하는 것은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닙니다(238~2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