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서론본론1.작가 유현종2.「들불」 속에 나타난 동학사상1)동학의 영혼문화(1)개벽사상(2)인내천 종지(3)시천주 주문과 궁궁을을 부적-신군 의식과 불사 의식-제국주의 신무기 앞의 죽음2)동학의 상무 문화결론서 론유현종의 소설 「들불」은 여진 민란에 참가한 천하 무도한 반골 임호한이 현감을 살해하고 은결 조세 징수에 불만을 가진 폭도들을 모아 여진 관아를 습격했으나 중과부저긍로 대패한 것에서 시작된다. 즉 임호한은 동학의 당원이 되어 재산을 분배한다든지 죄수를 석방하고, 고을의 치안을 맡고, 부정 부패에 정면 반항함으로써 농민들의 저항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은 관로가 되고, 특히 그의 아들 임여삼은 아버지와 달리 팔자소관 의식을 갖고 관노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가 임여삼은 우연히 민란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우며, 점점 동학의 사사을 깨달아 가다가 끝내는 투철한 동학군으로 변해 간다. 「들불」속의 1890년대 전라도 고을에서는 탐관오리와 사또들의 민중에 대한 가혹한 착취 그리고 환곡의 도용 등이 치자의 일방적인 처세 방식이었고, 장사꾼과 결탁한 왜놈들의 약삭빠른 발놀림 속에서 일본 자본의 침투가 약육강식의 논리로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동학군의 활약상이 민족 주체적인 측면에서 전개되기 시작하고 있다.유현종의 「들불」에서도 그렇지만, 대부분 문학의 제재로 선택된 동학은 동학 혁명이 주요 내용이다. 해방 이후 우리 문학에 있어 동학은 갑오 동학 혁명이 지닌 역사성 때문에 면면이 강조되어 왔다.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왔던 민중, 민권 운동과 동학의 갑오 혁명이 그 정신사적인 면에서 같은 맥을 지닌 것으로 해석되었고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문학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들불」의 작가 유현종은 그의 창작 후기에서 동학 운동이야말로 우리 민족사에서 최초로 제기된 최대의 민중 운동이었고 근대적 민권 자각 운동이라 밝히면서, 진정한 민의가 어디 있으며, 한국의 서민 정신이 무엇인지 그 폭발적인 힘과 뜻을 나타내 준 민중 혁명이라 제1심의위원회 위원장, 성루문인단체총연합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1999년부터 2002년 12월 현재까지 중앙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있다.그의 소설 대부분은 부조리한 현실 상황에 대한 비판과 강한 대결 의지를 담고 있는데, 1975년 《동아일보》에 《연개소문》(뒤에 《대제국 고구려》로 제목을 바꿔 출간)을 연재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역사소설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후 《천년 한》《천산북로》《임꺽정전》《묘청》《대조영》《사설 정감록》《난세부》《낙양성의 봄》과 같은 역사소설을 출간하였고, 《양반전》《우리들의 광대원》 등 희곡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현대문학상(1969), 한국일보문학상(1976)을 받았다.2.「들불」 속에 나타난 동학 사상1)동학의 영혼 문화동학 지도자들의 사상 문화가 지식인이나 동학 지도자층의 지도논리, 실천논리, 철학적 배경 논리로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동학의 영혼 문화는 지식인, 백성에게 모두 복합적으로 수용된 정신적 양상을 띠면서 집단의 논리로 나타난다. 이 측면은 또한 집단의 응집된 힘을 이끌어 내는 지도 논리로 개벽세상, 인내천 종지, 시천주 주문과 궁궁을을 부적 등으로 언급되고 있다.(1)개벽세상동학의 개벽세상 의식은 절망적 현실에 처한 당대 민중의 탈출구에 대한 열망이 반영되어 있다.「들불」에서는 천지 개벽론이 백성들의 탈출구로서 양이와 왜국 침략에 대한 저항, 동학쟁이 수천 명의 교조 신원 운동 전개, 삼례 땅의 민란을 일으키는 대의에 동조하면서 펼쳐지고 있다. “지친 백성은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었다. 아니 있다면, 바라는 것이 있다면 기적뿐이다. 그 기적은 천지 개벽이어야 한다. 현실은 지나가면서 언제나 속여 왔을 뿐이다. 현실을 믿고 살아 보아야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다. 근본적인 천지 개벽이 되어야만 살아날 수 있다.”(「들불」 120쪽)에서 보여지듯이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탈출구로서 천지 개벽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었다. 계속되는 흉년과 탐관오리들의 탐학과 민란에 지친 백성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적 같은 천지 개벽)농투성이들의 혁명 실천 의지를 관찰한 이진악은, 과거로 조정에 나아가려 했으나 부조리한 현실에 불만을 품고 새로운 개혁 의식을 소유하게 된 청년 지식인이다. 그가 바라본 동학도들의 천지 개벽에 대한 의식은 농민들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생활의 비참함을 탈피하려는 분노와 결심이며, 개벽 세상은 절망한 백성들에게 새 세상을 열어주는 탈출구였던 것이다. 즉 청년 지식인은 새 세상을 열어 줄 천지 개벽에 대한 소망을 보면서 당대 백성들에게 개벽 세상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2)인내천 종지인내천이란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뜻이다. 이는 수운의 오심즉여심과 시천주, 위천주, 그리고 해월의 양천주와 사인여천을 토대로 의암이 정리한 것이다.인내천 사상의 대종지는 ‘시천주’의 ‘시’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되는데 ‘시’한 글자 속에는 인간과 우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의 자연적, 사회적, 혁명적 사상이 통일적으로 구현되어 있다.「들불」에서는 삼례땅으로 가는 전라도 길목에 전라도 각군의 동학 군사가 밀려오고, 십만 군사가 몰려든 상황에서 동학구에게 인내천 종지가 설파되고 있다.「삼례 장터 객주집에서 만난 동학꾼도 그 비슷한 말을 혔어. 헌데 동학은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정신을 찾자고 세운 거니 우리 교라 할 수 있다. 더구나 그 교리가 인 무슨 내천 수시 무슨 정기라 하여 사람이 곧 하늘이고 하늘이 곧 사람이라.」 「하늘이 사람이고 사람이 하늘이라고?」 「허허. 하늘이 사람이고 사람이 하늘이란다. 양반이고 상놈이고 원래 모두 하늘처럼 귀한 사람이란다.」(「들불」 92쪽)친구 곽무출이 임여삼에게 해 준 말에서 동학의 주체성과 더불어 인내천과 수심정기가 강조되고 있는 장면이다. 인내천은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간 존귀성의 사상으로, 수심정기는 수도 각성의 방법으로 피력되고 있다.다음으로 남접 지도자 김계남이 인내천 종지를 강조하는 장면을 보자. 남원성 공격시 남원 부사와 대치한 상황에서 김계남은 이렇게 절규하고 있다.「백성이 없는 나라와 상감이 어딨으며 백성 없 두 방향으로 드러나 있다.-신군의식과 불사의식“양반 상놈이 모두 하늘처럼 똑같이 귀하다니. 더욱 놀라운 것은 아버지가 외우던 주문을 암송하고 「궁궁을을」자를 쓴 부적을 몸에 붙이고 그것을 태워서 먹으면 만병이 나을 뿐만 아니라 창칼이 다가와도 다치지 않고 그 무서운 조총의 탄알도 날아오다가 피한다는 것이었다.”(「들불」 91-93쪽)에서 볼 수 있듯이, 임여삼은 가내의 주문으로 아버지에 의해 시천주 주문을 읊어진 것을 상기하고, 무병의 약으로 사용하고 있다.다음은 전봉준의 동학군 지도 의식에서 시천주와 궁궁을을이 군인들 의식 무장의 수단으로 쓰고 있다. “수도장이다. 이곳에서는 직접 전봉준이 앉아서 천도교의 교리에 대한 대강을 강의하고 동학군은 신군이란 신념을 불어 넣는다. 즉 십삼자, 팔자 주문을 가르치고 외도록 하며 싸움에 임해서도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란 십삼자 주문만 외며 불사한다고 가르친다. 여기서 입도 의식을 하고 교육이 끝나면 부적을 나눠 준다. ‘궁궁을을’이 부적만 몸에 가지고 있으면 탄환도 비켜가며 모든 일이 소원대로 성취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거짓말일지 모르지만 거짓이라고 믿는 자는 하나도 없다.”(「들불」 209쪽)는 장면은 무장 땅 수도장에서 전봉준이 동학군에게 정신 면에서 성과를 보고자 신군 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는 부분이다. 신군 의식은 정신 면에서의 성과, 하나하나의 동학도 군사들에게 정신의 집중력을 응집시키는 힘으로 작용하였다.우리 동학군은 신군입니다. 하늘이 점지하고 하눌님이 내려주신 귀신군대인 것이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이 십삼자 주문만 지성껏, 하눌이 감동할 만큼 지성껏 외면 무엇이든지 만사형통합니다. 그리고 궁궁을을, 이 부적만 몸에 붙이고 있으면 총알도 피해가는 것이오. 이 부적이야말로 신군이 되었다는 표적인 것이오. 우리가 맨주먹으로 황토치 싸움에서 이긴 것도 다 그 때문인 것이오. 이제 두고 보면 알게 되오. 우리가 그와같은 신군의 표적을 받은 이상 관군과의 싸움과 주문의 효력에 대한 신군의지를 재단속하게 한다. 결국 남접 지도자였던 김계남 역시 주문 강조론을 펼쳐 궁궁을을 부적을 전투에 임하는 동학군들의 사기 진작시키는 방법으로 쓰고 있다. 또한 김계남포는 패전 수습 방법으로도 부적을 이용하고 있다. 관군과 두 번째로 싸우는 전투에서 신군 의식을 다시 고취하고 있는 것이다.그도 그럴 것이 동학군은 누구나 죽지 않으려고 십삼자 주문을 쉬지 않고 외쳐대고 있었던 것이다.「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수천명의 입에서 쏟아지는 주문소리가 산비탈을 덮었다. 여삼은 선봉군의 보졸로서 제일 앞장선 채 기어나가고 있었다.「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주문을 외면서 꽹과리를 두드겼다. 여삼은 아예 저고리를 벗어 등판을 가슴 복판에 와 닿게 돌려입고 있었다. 대포알 아니라 무슨 탄알이 날아온대도 부적은 그것을 막을 수 있다는, 자신이 넘치고 있었다.(「들불」 245쪽)이 장면은 동학군의 대승과 동학군의 사기 진작을 강조했던 김계남의 패전 수습 방법에 부적이 이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부적과 주문의 이용 전법은 동학 지도자 전봉준, 김계남에 의해 활성화되었으며, 이때 시천주 주문과 궁궁을을 부적은 역사의 소용돌이 현장에 백성들을 응집시키는 힘으로 작용하였고 것이 전투 의지나 관군과의 싸움에서 효력이 발휘된다.이렇게 볼 때 동학의 주문과 부적은 농민군을 내면적으로 무장시키는 정신적 사기 진작 방법으로, 초월적 힘을 드러내는 신군 의식과 불사 의식으로 유효히 활용되었다.-제국주의 신무기 앞의 죽음그러나 시천주 주문과 영부는 제국주의와 대치된 상태에서 무참하게 그 무효성이 드러난다.대포의 위력과 주문이 관련된 부분을 보면 먼저 “황토치에서는 승전했지만 이번 월평리 싸움에서는 여지없이 깨졌던 것이다. 그것은 죽은 자의 거의가 대포알에 맞아 급사했던 것이다. 문제는 심각해졌다. 몸에 부적을 달고 십삼자 주문만 외면 불사한다고 가르친 전봉준의 말이 거짓이라는게 드러났던 것이다. 게다가 전봉준 자신이 가장 걱정하고)
김성동 소설「만다라」속의 불교사상과 목 명 : 한국현대문학정신사학 부 : 인문학부학 번 : 05340056이 름 : 나병숙제 출 일 : 2009년 10월 23일 (금)담당교수 : 강찬모 교수님-목차-1.서론2.본론1)작가 김성동의 생애2)불교문학으로서의 「만다라」3)작품 속에 나타난 불교사상4)작중인물들을 통해서 본 불교사상3.결론서론70년대 후반기에 발표된 소설 「만다라」는 발표되면서 문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또한 종단에서도 파문을 던졌던 작품이다. 이 소설은 종래의 여타 불교문학과는 달리 불교문학과는 달리 불교사상에 천착되면서 아울러 문학의 심미적 가치가 함께 구족된 문학소설로서 불교적 장르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된다. 내외적으로 많은 문제제기와 주목을 받으면서 이 작품이 발표 된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제기하였던 한국불교의 제반 문제점들은 여전한 상황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당시에 비하여 이제는 불교계 내에서 각성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높아졌다는 사실일 것이다.본 원고는 이 작품의 문학성이나 심미적 가치보다는 작품 속에 나타난 불교사상과 종단현실과의 관계 등을 중심으로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전형화 되어 있는 이 작품의 주인공들의 모습과 의식의 변천을 들어 출가의 궁극적인 의미와 구도자의 자세 및 한국불교의 제도적 문제점 등에 대해 다시한번 환기해 보는 것도 다소 의의가 있을 듯싶다.본론1.작가의 생애1945년 11월 8일 충청남도 보령에서 농촌 지식인의 아들로 태어나, 6·25전쟁 때 아버지와 큰삼촌은 우익에게, 외삼촌은 좌익에게 처형당하면서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르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맹자》를 읽기도 하였다.1964년 서울 서라벌고등학교에 편입하였으나, 3학년 때 연좌제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학교를 그만둔 뒤 도봉산 천축사로 출가해 '무'자 화두를 붙잡고 6년 동안 선방과 토굴을 오가며 지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다시 지효선사 문하로 들어가 계속 공부에 정진하였으나, 뚜렷한 진전이 없자 이후 방랑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1975년 첫 단편소설 「목탁조」가 《주간종교》현상모집에 당선되었는데, 이때 소설의 내용을 문제 삼은 종단에서 등록하지도 않은 승적을 박탈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후 한국기원의 월간지 《기계》 편집부 등 출판사와 잡지사를 전전하던 중 1978년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만다라」가 당선되었고, 이듬해 장편으로 개작해 출간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주요 작품 중 「만다라」는 청소년기에 불가에 몸담은 젊은 수도승이 도를 얻기 위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고뇌와 방황 그리고 진정한 깨달음이란 어떤 것인가를 그린 불교소설로 종교를 소재로 한 한국문학의 성과라는 평을 받았다. 청소년기에 불가에 몸담은 젊은 수도승이 도를 얻기 위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고뇌와 방황 그리고 진정한 깨달음이란 어떤 것인가를 그린 불교소설로, 이문열(李文烈)의 《사람의 아들》과 함께 1970년대 말 종교를 소재로 한 한국문학의 성과로 평가받는다.1992년에는 「만다라」가 프랑스어(語)로 번역 출간되었고, 우리말에 대한 애정도 강해 《녹색평론》에 '말을 찾아서', 신문 《한겨레》에 '우리말 바르게'를 연재하기도 한다. 《한국문학》 신인상과 행원문화상, 신동엽창작기금 등을 받았고, 중편 《황야에서》가 소설문학작품상으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하였다.2)불교문학으로서의 「만다라」먼저 불교문학의 개념과 그 범주가 정립되어야 하며 전문적인 문학연구방법론을 필요로 하나, 여기에서는 다만 일반론에 국한시켜 서술하고자 한다.근대 소설의 원조인 S.리챠드 손은 문학의 기능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 “①소설은 종교, 도덕을 포함한 교훈적 의미를 지녀야 한다. ②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③소설은 인ㄴ생을 정확히 그려야 한다”고 했으며, 문학평론가 김운학은 불교문학의 개념을 서술하는 가운데 불교문학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어 질 수 있는가에 대하여 이렇게 쓰고 있다.“불교문학은 본질적으로 불교 제일의를 가지고 현대의 인간상과 사회상을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러한 소재는 다루려 하지도 않으려니와 설사 다룬다 할지라도 이는 문학가가 아닌 불교학자들에 의한 표현이기 때문에 문학적이니 참신한 멋은 없고 불교사상의 고답적 표현방법에 의한 동화적 작품이 되고 만다. 또한 불교사상의 전문가가가 아닌 문학가는 이 심오한 제일의를 체험하기 힘들기 때문에 불교사상을 자기의 개성에 완전히 융합하지 못하고 이승, 삼승의 뒷전에서 속문학을 제작하기 쉬운 것이다. 이 불교의 제일의를 체득하고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현역 작가들은 그 선천적으로 발달한 감각으로 이해하는 상식만을 가지고 작품을 쓰려고 한다.”이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고 또 이러한 요구에 충족한 소설이 바로 김성동의 「만다라」이다. 종래 소설 등의 불교문학이 대부분 종교적이거나 교리전파를 위한 목적문학이며, 설령현대 소설의 문학적 내용을 제법 갖추고 있더라도 대부분이 흥미를 끌기 위한 소재유용이나 불교의 비리들이 무분별하게 등장하는 등 부정적 요소가 심해, 앞의 두 인용문에서 시사하는 불교문학으로서 참다운 가치-심미적 가치와 사상적 깊이를 구현한 작품이 드문 것이 사실이었다.그런데 김성동의 「만다라」는 이러한 의미에서 한껏 발전한 작품이다. 작가 자신이 불교계, 특히 승단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사고가 불교적 시련에 의하여 도야되어 있고, 거기에서 얻은 체험을 형상화시킨, 다시 말해서 자기의 투영으로써 시화한 작품으로 탄생했다고 보여진다. 「만다라」는 일관된 절실한 주제의식과 예리한 역설, 뛰어난 심미감각 및 신선한 감수성, 인생에 대한 치열한 대결자세 등으로 인해 뛰어난 문학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하여 서양에서의 기독교의 미학적 역할과 같은 소재로서 불교적 전통이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작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3)작품 속에 불교사상김성동의 「만다라」는 우리 시대에 있어 본격적인 불교 소설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의 파블라는 작가의 전기적 사실들과 가까이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만다라」는 어느 면에서는 작가의 환속의 변을 소설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불교문학이 밖에서 본 불교 세계에 대한 기록이라면 이 소설은 불교 안에서 불교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발표되자마자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조시대 이래로 우리들이 마음속에서 지워버린 우리들의 본래의 모습인 듯 하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한 구도하는 자의 초상을 핍진감이 넘치도록 그려 보여주고 있다.서술자인 법운과 도반인 지산은 작가 자신의 이분화된 자아이다. 법운은 수행 중 화두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으나 산문의 규율을 지키면서 황성의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붙잡고 살아가는 범승이다. 지산은 지계인이다. 그의 법명이 암시하고 있듯이 그는 황산 지시산의 경지를 이미 흘깃 쳐다본 듯 하면서도 그것을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로 끌고 자기 못하고 있다. 이 세간과 출세간 사이에서 한 여인과 만나 승적을 박탈당했으나 하산할 수 도 없는 이중의 경계지대에서 자멸해 가고 있는 파계승이다.작가는 서술의 표면에서는 법운에게 자신의 눈과 입을 의탁하고 있으나 내면적으로 번뇌 망상의 끝이 어디인가를 보려는 듯 술과 여인의 살 속으로 자신을 내몰고 있는 지산에 자신의 존재를 일치키시고 있다. 결국 서사의 내부에서 작가는 법운과 지산을 하나가 되게 하고 이 두 자화상의 통합체인 법운으로 하여금 자신의 내부 세계를 기술해 나아가게 하고 있다. 시점에 있어서도 부차적 인물인 법운의 일인칭 형식을 취하고 있다, 불교와 소설을 하나로 일치시켜 보려는 구도소설의 구조와 시점의 형식으로 는 매우 적절하다 할 수 있다. 우리의 내면세계로의 여행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과 만나는 일을 기술하고자 할 때 즉 우리의 아라야식이 그 흐름 속에서 번뇌 망상과 만나 고통 받다가 그것의 끊어짐에서 오는 비움의 황홀함에 오르는 과정을 기술하려 할 때 리얼리즘의 삼인칭 관찰자 시점은 채택될 수 없을 것이다.그리하여 지산은 수행자의 미망에서 벗어나 깨달음으로 쉽게 다가갈 수 없음에서 오는 자기파괴적인 모멸감 즉 이라는 처절한 절망의 인식으로부터 라는 요설적인 격외선소식의의 경지를 거쳐 에서 보든 견성오도의 떨림 즉 화두를 깨우친 법열에 이르는 의식의 격류를 따라 자유롭게 자신의 내면세계를 투영시킬 수 있는 서사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4)작중인물들을 통해서 본 불교사상「만다라」는 전반적으로 선적인 인식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인다. 물론 밀교적 사상도 엿보이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고, 선적 언어가 주로 구사되고 있다. 또한 작가가 이 작품을 낳게 된 객관적 환경을 살펴보아도 선적 인식이 짙게 잉태될 수 있었으리라 유추될 때 더욱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그러나 한국불교 역사 속에서 밀교와 선이 회통한 사실을 감안할 때, 그 복합성이 존재하리라 생각된다. 지산의 무애는 선정신으로부터 비롯되는데, 그 무애행이 철저한 자기체험으로부터 일탈되어 있을 때는 공허감을 준다. 무애행이란 불교에 있어서 보살행으로 귀착되어야 하는데, 보살의 이상을 모색하는 과정 속에서 기존제도와의 갈등관계가 불가피해진다. 또 선은 근본적으로 어떤 규정을 정하고 유지시키기 보다는 ‘안티’적인 요소가 강하며, 선을 추구하는 인간은 자기에 대해서는 지극히 엄격하고 절제된 모습이지만 사회에 대해서는 소위 ‘풍랑’이란 형식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마랗는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실천양식보다는 부정의 형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승가 유지와는 달리 개인적으로는 반문화적인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선적 인식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야 할 것이다.
-목차-1.서론2.본론1)조지훈의 생애2)조지훈의 시세계의 특성-전통과 초월의 문제-불교미의 형상화-현실과 선비정신3)「풀잎단장」에 나타난 반야사상4)대표작 「승무」 작품분석3.결론- 승무 창작배경서론조지훈은 우리에게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진 시인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당대 문인으로서 일본의 억압에도 꿋꿋했던 인물이다. 그런 모습에서 우리는 유교적 선비정신을 볼 수 있으며 그의 많은 작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선비정신도 중요하지만 선비정신 이전에 불교적 측면에서 자기성찰을 하는 조지훈의 시세계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선비정신 이전에 자기성찰과 사상적 기반이 되었던 불교사상이 어떤 모습으로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는지 알아보고 조지훈의 시세계의 특성과 「풀잎단장」에 나타난 반야사상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본론1.조지훈의 생애《청록집》《풀잎단장》《조지훈시선》《역사 앞에서》《여운》등 그가 남긴 시집들은 모두 민족어의 보석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특히 〈승무〉〈낙화〉〈고사〉와 같은 시들은 지금도 널리 읊어지고 있는 민족시의 명작들이다. 전통적인 운율과 선(禪)의 미학을 매우 현대적인 방법으로 결합한 것이 조지훈 시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조지훈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느 누구도 훼손하지 못할 만큼 확고부동하다. 매천 황현과 만해 한용운을 이어 조지훈은 지조를 목숨처럼 중히 여기는 지사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서대문 감옥에서 옥사한 일송 김동삼의 시신을 만해가 거두어 장례를 치를 때 심우장에 참례한 것이 열일곱(1937년)이었으니 조지훈이 뜻을 확립한 시기가 얼마나 일렀던가를 알 수 있다.조지훈은 민속학과 역사학을 두 기둥으로 하는 한국문화사를 스스로 자신의 전공이라고 여기었다. 조부 조인석과 부친 조헌영으로부터 한학과 절의를 배워 체득하였고 혜화전문과 월정사에서 익힌 불경과 참선 또한 평생토록 연찬하였다. 여기에 조선어학회의 큰사전 원고를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국어학 지식이 더해져서 형 있는 것은 생 부정적인 허무주의이다. 하지만 조지훈 시의 참모습은 사변적 세계가 아니라 동양적 미의식에 있다고 볼 수 있다.는 한에 뿌리를 둔 허무라고 할 수 있다. 「조지훈시선」의 후기에 의하면 ‘살아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애수. 민족정서에 대한 애착’에서 씌어진 것이다.은 , 과 마찬가지로 민족적인 것을 소재로 하고 있고, 이 머금고 있는 고전성은 신화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에서 보아 온 한국적인 여성미의 고전에 처절한 원한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은 과 마찬가지로 전설이나 신화적인 소재에서 얻고 있다((1940)과 (1957)은 10여 년의 차이가 있음에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 탑의 비밀을 통한 불교적 환상과 신비, 그것은 전통에 대한 향수와 초원에 대한 집념이며, 조지훈 시의 핵심이다.2) 불교미의 형상화조지훈의 불교미학은 소멸(존재의 멸망)하는 것에 대한 무상성과 그것을 초월하려는 집념으로 요약된다. 는 존재의 소멸에 대한 체념을 노래하고 있다. 한시적인 요소와 두보류의 영탄과 불교적인 무상, 선적요소가 곁들여 있다. 이 작품은 월정사 강원생활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의 불교적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이 무렵 월정사에서 씌어진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글은 불교의 교리에 많이 접하고 있다.는 다정다한의 하염없는 애수의 정조, 운수심성(雲水心性)의 떠도는 그림자를 읊은 영탄조의 가락이다. 시인의 허탈한 감정을 ‘외로이 흘러가 한송이 구름’에 비유하고 있으며, ‘구름’은 나라 잃은 시인의 어두운 마음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비약해 버린 공즉선(空卽禪)의 경지를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시인의 감상이나 좌절은 별로 문제되지 않으며, 찰나적인 황홀한 초극을 맛보게 한다. 이런 선의 방법은 한시의 교양에서 얻어진 것으로 보인다(왕유의 녹시(鹿柴)와 비슷).조지훈의 시에서 멋과 선은 방법상 중요한 기틀이 되며, 월정사 강원시절에 씌어진 시편들은 거의 선의 방법에 기초한다. , , , ,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선영향은 실로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지훈 역시 스스로 비승비속이라 자칭할 만큼 불교에 경도한 시인이다. 그에 있어서 외적으로 나타난 불교적 인연은 1938년 한용운을 찾아 본 것을 비롯하여 1941년 3월 현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오대산 월정사에서 외전구사를 지냈던 것 등이다. 그의 시에서 「고시」를 비롯한 일련의 시들은 이 시기에 쓰여진 작품들이다. 여기에는 시의 표면에 그 불교적 경향이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고사」「범종」「승무」등 시에서 의도적으로 불교를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이 당시의 시들은 기법이나 소재로서 불교를 택했을 뿐, 그것의 시적 형상화ㅔ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견해들이다.그런데 우리 고유의 전통저인 것으로의 위인적인 지향이나 불교에 대한 인위적인 지향을 극복하여 자기의 내면을 응시한 「풀잎단장」의 시들에 불교의 전통적 세계관이 메타구조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주지해봄직한 사실이다.반양사상이라 함은 반야바라밀다심경에 나오는 사상으로서 그 요체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줄일 수 있다. ‘모든 것이 자성이 없으므로 무라 하며 비록 자성은 없으나 원연화합하여 나타나므로 영 없는 것은 아니니 이를 유라 하는 것이다. 자성이 없다는 말은 무아라는 말과 통하며 무아가 반야사상을 낳는 근본이다. 즉 모든 것이 공이므로 모든 것은 다 같은 자주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실 존재로서의 인간은 허망한 환화이지만 원초의 실재로서의 인간은 진실불허하다.풀잎단장의 시들에서 드러났던 ‘나’의 이미지의 축소에서 확장으로의 전환, 닫힘에서 열림으로의 전환을 가능케 했던 시들의 진의는 통털어 반야심경의 근본인 무아라고 할 수 있다. 시의 전반부에서는 현상계에 집착하는 현재존재로서의 시적 자아가, 스스로 허망한 환화임을 발견하는 계기를 통해 원초의 실재로서의 진실불허한 존재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세계를 대상으로 의식할 때에 느껴지던 갈등이나 존재의 미약함이 세계와 동류가 되어서는 거대한 바다나 지구도 ‘접싯물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파르라니 깎은 머리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두 볼에 흐르는 빛이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문장 11호, 1939. 12)4. 작품분석조지훈의 시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착상한 지(당시 그의 나이 19세) 열한 달, 집필한 지 일곱 달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동양적인 신비와 한국적인 정조가 깃들어 있는 이 시에서 우리말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율동미를 느낄 수 있으며, 전통에 대한 향수와 사라져 가는 민족 문화에 대한 시인의 애착을 발견할 수 있다. → 불교적 세계, 선적 세계1-3연은 춤추려는 찰나의 모습이다. 고깔의 아름다움(1연)과 고깔을 쓴 머리의 모습, 고깔을 쓴 여승의 애련한 볼의 모습(3연)이 차례대로 드러난다. 춤추기 직전의 정적인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나빌레라, 파르라니, 감추오고' 등의 표현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교묘히 살린 것으로, 시의 고전적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다. 특히 1~2행의 “고깔은 나빌네라”라는 표현은 ‘고깔은 나비다’라는 표현인데 ‘나비’에 ‘-ㄹ네라’라는 의고적 감탄어미가 추가되고 있다. 따라서 얇은 비단으로 만든 하얀 고깔의 곱게 접힌 모습이 너무 고와 한 마리의 나비라고 해야 옳은 것 같다. 파르스름한 윤기가 감도는 깎은 머리를 고깔에 감춘 여승의 상기된 양 볼은 너무 아름다워 도리어 서러운 느낌(역설적 언어)을 준다. 또한 “두 볼에 흐르는 빛”은 눈물을 의미하므로 하강의 이미지를 제시한다.4연은 무대 배경이다. 텅 빈 무대에서주치게 하기 위해 달빛과 황촉불이 매개가 된다. 까만 눈동자가 응시하는 별빛이야말로 지상적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고뇌를 별빛으로 초탈시키고자 하는 의지의 상징적 대상물이다. 그런데 하이얀 고깔을 투시하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을 응시하는 것은 내면의 빛이다. 따라서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내면의 빛’이라고 할 수 있다.- 황촉불: ‘황촉불’은 ‘소멸’을 뜻하는 유한적 존재인 동시에 ‘희생’과 ‘구원’을 상징하는 영원적 존재라는 이원적 의미를 지닌다. 이는 탈속하고자 하는 중생들의 비원이자, 속세를 초극하려는 인간들의 이상을 표상하는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밤’은 서정성과 한 층 깊은 공간성을 불러 일으켜 ‘황촉불’을 더욱 빛나게 해 준다.- 선의 미학: “돌아설 듯 날아가며”에서 동중정(動中靜)이, “사뿐이 접어 올린”에서 경쾌한 날렵함이 표현된다. 나아가 “외씨보선”에서는 사찰의 기와지붕과 탑의 곡선이 한국적 여인의 보선코에 집약되어 선의 미학이 압축적으로 나타난다.- 귀또리소리: 『밤하늘의 별빛은 너무 멀고 너무 조용해서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발밑에서 우는 가냘픈 귀또리소리에 의해서만 어둠에 둘러싸인 그 빛의 감응을 겨우 짐작할 수가 있다. 춤을 굳이 언어로 바꿔놓은 이 시의 경우처럼 말이다.그러므로 승무의 진정한 메시지는 한국의 고전미나 불교의 열반을 나타내는 '승무'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시의 의미는 그 침묵하는 것들을 귀뚜라미같은 가냘픈 소리로 옮기는데 있다.'누가 춤을 보면서 춤과 춤추는 사람을 떼어낼 수 있는가'라는 유명한 말대로 의 세계는 번역 불가능한 것이다.하늘의 별빛을 땅의 귀또리 소리로 옮기는 작업,그것이 시인 조지훈이 평생을 두고 썼던 그 시의 의미였을는지도 모른다.』- 이어령의 ‘에세이 시화전’ 에서이 시의 주제연이라 할 수 있는 7연은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의 해석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한다. 과연 이 시의 주인공이 번뇌를 초탈한 것인가 아니면 결국 번뇌를 초탈하지 못했다는 것일까?.
-목 차-1.서론2.본론1)기독교 세계관과 기독교 문학의 의미2)윤동주의 기독교 수용3)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살펴본 윤동주의 시세계4)기독교 문학으로써의 윤동주의 시세계①창조②타락③구속④부활3.결론서 론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어떠한 형태로든 세계관을 갖고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세계관은 삶의 인도자 역할을 한다. 인식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구체화 되었든 구체화 되지 않았든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사건과 쟁점들, 우리 문명의 구조와 우리 세대를 평가하는 방식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따라서 어느 한 개인이 창작한 문학 작품 속에는 그 개인이 사고하고 따르는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현 시점을 바라보고 글을 통해 외부 세계로 그의 내면의식을 표출하는 것이다. 많은 문학 작품 가운데에서도 시 장르는 특히 그 영향 한 가운데 놓여 있다. 따라서 시는 시인의 정신세계를 비롯한 삶 자체를 총체적으로 구현할 때 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으며, 시세계와 시인의 생이 일치 될수록, 시인의 생으로써 체화된 작품일수록, 진정한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시란 시인의 정신세계, 즉 사상과 감정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시인은 그가 속한 시대의 사회적, 역사적 존재로서 시인의 정신세계란 그 시대의 상황과 무관할 수 없다. 외부의 상황과 갈등을 내면화시키는데 있어 어떠한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는가에 따라서 그 시인의 세계관을 결정지을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세계관의 개념으로서 우리는 종교를 세계관의 연장개념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윤동주(1917~1945). 그는 그가 믿고 삶의 가치관으로 삼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그의 문학작품들을 창작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이라 함은 “하나님의 계시에 중심한 진리에 대한 반성으로 심오해진 ‘체계화된 지혜’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그에 따른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의 구속 사역 함께 실은 작품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의 목적 아래 씌어진 작품은 순수한 작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전자는 기독교 문학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그것은 마치 계급 투쟁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문학이나 다를 바가 없다. ‘문학에 있어서의 기독교’ 이것만이 기독교 문학이다. 이것은 기독교 모럴과 문학의 모럴을 함께 살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견해는 T.S. 엘리어트가 말하는 「종교와 문학과의 바람직한 관계」에 입장을 같이하는 것이다. 엘리어트는 문학과 종교의 바람직한 관계로서 종교적 대의를 전제적으로 나타내는 작품, 계획적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기독교적인 문학정신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야말로 기독교 문학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 문학은, 즉 ‘문학에 있어서의 기독교’적 입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예술의 창조적 상상력의 소산이 종교적 상태로 나타나야 한다는 말이다.이처럼 기독교 정신이 예술적으로 승화된 문학 작품, 작가의 실존과 내면세계가 신앙의 바탕 위에서 구현된 작품, 작가의 의지와 의식의 방향이 기독교 정신에 의해서 문학적으로 해결되고 극복되어지는 작품을 기독교 문학이라고 정의 할 때, 기독교 문학의 작가는 진정한 크리스챤이어야 함이 전제되어진다. 즉 크리스챤인 작가의 체험이 신앙의 체에 걸러져 작품으로 형상화되어야 함이 기독교 문학의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이다.그렇다면 기독교 세계관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기독교 문학의 본질은 무엇일까?기독교 문학에 있어서 기독교의 3대 속성, 즉 ‘믿음’, ‘소망’, ‘사랑’이 신앙이라는 직접 체험에 죽음의 간접 체험이 합치되어 완전히 작품에 투영되어야 한다. ‘성경이 영문학에 대하여 큰 문학적 영향을 끼쳤던 것은 그것이 문학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으로 믿어졌기 때문이다.’라고 엘리어트는 말했다. 단순히 성경속의 소재만을 채택하여 쓴 문학 작품과 성경을 진리의 말씀이라 굳게 믿고 쓴 문학 작품은 차이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기독교적 상상력은 성경에 기초하이후에도 윤동주가 다닌 은진중학교와 숭실학교 역시 이러한 영향하에 있었으며 특히나 연희 전문학교는 그에게 사상적·문학적 영향을 많이 준 곳이다. 윤동주의 연전 입학은 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간도의 명동, 용정 지방이 나라 밖에서의 독립 운동의 현장이라면, 연희 전문은 국내의 민족 교육과 민족운동의 진원지로서의 교육 목표를 구현하려는 고풍을 전통으로 삼고 있는 민족주의 학교였다.윤동주가 연전 문과를 택한 것은 기독교적 교풍과 민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한글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고,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에 들어서기 위함 이었다. 연희전문은 3·1운동 당시 그 주동적 근거지로서 일제의 주목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만큼 연희전문을 입학한다는 것은 일제의 요시찰적인 주목을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심정에 굳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학교의 분위기 또한 그러한 학풍과 자세를 교시로 삼고 있었다. 일가의 개교 정신이며, 또 선교자측의 정신적인 후원과 국제적인관심 등이 학교의 발전과 자유로운 학문 연구의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문익환은 윤동주의 종교적 측면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그들은 기독교에 진지한 자세로 다가선다. 그들에서는 어떤 새로운 가르침이라도 진지하게 알아보려는 구원의 정신이 있었다. 신교육의 모체인 기독교를 소화시키다 보니 기독교와 유교를 민족애라는 용광로 속에서 완전히 녹여서 새로운 세계관, 인간상을 찍어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찍어낸 작품 가운데 가장 원숙한 작품이 동주 되었던 것이다.)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윤동주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기독교는 윤동주의 생활과 가치관의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종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익환은 「동주형의 추억」이란 글에서 "그와 나는 콧물 흘리는 어린 시절의 6년 동안을 함께 소학교에 다니며 민족주의와 기독교 신앙으로 뼈가 굵어 갔다")고 회고하고 있다. 윤동주는 그의 신앙을 통해 먼저 진정한 삶의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3)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바라 본 윤동주의계,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자유로운 세계를 의미한다.에서는 ‘십자가의 길’에 대한 더욱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하얗게 눈이 덮이었고전신주가 잉잉 울어하나님 말씀이 들려온다.무슨 계시일까.빨리봄이 오면죄를 짓고눈이밝아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데를 가리고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이 시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보다 기독교적 표현에 더욱 접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하나님, 계시, 죄, 이브, 무화과’ 등의 직접적인 표현을 쓰고 있으며, 내용면에서도 창세기 설화에 직접적 연상을 시도하고 있다. ‘빨리/봄이 오면/죄를 짓고/눈이/밝아’는 주어진 운명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보속 의지를 나타낸다. 이는 윤동주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피하지 않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기다림의 자세로 해석되어진다.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 ‘이마에 땀’ 등은 바로 십자가의 길을 의미하는 시어로 시인이 가야할 고난의 길을 의미한다. 이것은 ‘원죄’에 의한 십자가를 의미할 수도 있고,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과 사명감에 대한 부분일 수도 있다.그러나 ‘십자가의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수난과 고통이 따르는 길이므로 나약한 인간의 본성으로는 피하고 싶은 무서운 시간인 것이다.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가랑잎 잎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나 아직 여기 호홉이 남아있소.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나를 부르는 것이오.일을 마치고 내 죽은 날 아침에는서럽지도 않는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나를 부르지 마오.시의 제목인 이란 바로 십자가의 때를 말한다. 닥쳐올 수난 앞에서의 고뇌와 번민의 과정이 이 시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예수가 겟세마니 동산에서 십자가를 두고 번민하며 기도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예수는 십자가의 길을 위해 겟세마니로 향하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할 수만 있다면 수난을 이것은 다시 ‘죽음’으로 극복된다. 이러한 해결이 뜻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십자가의 길’로 자신의 삶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십자가의 길은 또한 ‘극복’의 의지를 내포함으로써 강한 희망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볼 때, 구원(부활)을 의미한다.윤동주 시 전체에서 구현되는 ‘부끄러움 - 죽음 - 극복’은 하나의 종적인 질서를 이루고 있으며, 이것은 기독교적 질서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부끄러움 - 죽음 - 극복’의 과정은 기독교의 기본 질서인 ‘회개 - 십자가 - 구원(부활)’과 상통하는 것으로 그 질서의 중심에는 바로 십자가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윤동주 시에 나타나는 기독교적 요소는 이처럼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갈등을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윤동주는 이라는 시에서 ‘십자가의 길’이 의미하는 바를 역설적인 표현으로써 강조하고 있다.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위의 시는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의 내용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똑같은 행을 8번 반복해서 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성경의 팔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 등이다. 시행의 언어 구조와 반복된 표현이 마치 이상의 와 흡사한 형태로 패러디의 기법을 나타냈다.기독교적인 가치관으로 볼 때, 보다 많은 고통과 슬픔, 희생, 핍박 등이 전제될 때 받을 수 있는 것이 복이다. 따라서 윤동주는 이 시를 통해 일제의 억압과 핍박의 슬픔과 고통을 기독교적 산상수훈을 비유하며 암시적인 비판의식 즉, 시적 저항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구절을 나열함으로써 슬퍼하는 자의 강복의 가능성은 고조되고, ‘복이 있나.
-목 차-서론본론1.문학의 원형으로서의 샤머니즘의 세계2.불의 상징적 의미1)삶의 죽음의 대립적 이미지로서의 불2)창조적 파괴자로서의 불3)성적 충동 및 금기로서의 불결론※참고문헌-한승원, 「불의 딸」, 문학과 지성사-샤머니즘의 이해, 김영민, 박이정-서희숙, "현대소설에 나타난 샤머니즘 양상 연구:김동리의 , 와 한승원의 을 중심으로", 한국교원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차경애, "1920년대 소설에 나타난 불의 이미지 연구", 경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임철우 외, 「한승원 삶과 문학」, 문이당-심영의, 한승원 소설 「불의 딸」 연구, 명지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김주연, "샤머니즘은 한국의 정신인가"-「불의 딸」 해석, 문학과 지성사서 론「불의 딸」은 민족의 혼이나 정신의 뿌리, 인간의 근원적인 뿌리를 찾아 몸부림치는 한 인간의 고뇌와 그 구원을 그린 소설로서, 1981년에 발표한 「불배」, 「불곰」, 「불의 딸」, 「불의 아들」과 1982년의 「불의 문」 등 이상 5편의 독립된 중편들로 엮어진 연작 장편 소설이다.이 작품에서 작가는 특히 '불'의 생명력과 신화적 의미를 천착하고 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1983년에 처음 간행되었는데 본 연구 텍스트는 이렇게 연작 중편 형식으로 발표한 것들을 1996년에 다시 고쳐 만든 장편소설이다.연작소설 「불의 딸」의 첫 작품인 불배의 작품 일기에서 작가는 "세상에는 두 가지의 불이 있다. 몽환의 불과 뜨거움의 불이다. '불배'란 집어등을 켠 배다. 그것은 고기잡이 불이다. 고기들 쪽에서 보면 몽환의 불이다. 고기들은 그 불에 홀린다. 부나비들은 몽환의 불에 홀려서 등잔불로 뛰어들었다가 타 죽는 수가 있다. 나는 어떤 불에 홀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중략) 나는 타 죽을 때까지 내 몽환의 불을 향해 질주해야 한다."라고 적고 있다. 자신의 숙명적 모습에 대한 이러한 토로는 그의 「불의 딸」 연작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본고에서는 작가가 「불의 딸」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도자기 공기와 무녀도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대부분의 김동리의 작품의 배경과 무대는 도시가 아닌 오지인 전원이며 작중 인물들은 인구 밀집 사회와 거리가 먼 사람들인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형적인 소재를 사용해서 작품의 주제를 보편화시킴은 물론 민족 문학의 향취와 개성을 유지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특히 신덕룡에 의하면 무녀도 에서 무속의 세계관과 그 특징이 극적으로 나타난 부분은 굿의 장면이라 할 수 있다.무당에게 있어 굿의 현장은 세속적 시공을 벗어난 상태, 즉 신성한 시간과 공간을 의미한다. 접신 상태의 제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신성한 제의에 세속적 존재가 끼어든다. 그의 행위는 금기를 깨고 신성한 공간에 뛰어든 방해자일 뿐이다. 따라서 욱이는 응징을 면할 수 없다. 접신 상태에서 욱이에 대한 모화의 응징은 굿이 끝난 뒤 인간 모화의 내면에 갈등의 씨를 뿌린다. 신의 자식으로서의 자아와 어머니로서의 자아가 상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물속으로 들어 감은 현실적인 죽음을 의미하지만 모화에게 있어서는 분열된 자아를 극복하고 본연의 못브을 찾아가는 절실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그런데 이 모화의 죽음이 몰락이 아니라 재생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낭이가 모화의 뒤를 이어 세속적인 존재조건을 버리고 상징적이니 죽음을 통해 신성한 시공에서 행해지는 것이며, 굿의 파함은 신성한 시공에서의 상징적인 죽음을 통해 세속의 세계로 돌아온다는 환원구조라고 설명하고 있다. 모화의 죽음과 낭이를 통한 재생의 구조야 말로 무녀도가 철저한 무속의 세계에 기초해 있음을 말해 준다는 것이다.작가 한승원이 서라벌 예술대학에서 김동리로부터 문학수업을 받았음은 우리의 주목을 요한다. 1966년 신아일보에 「가증스런 바다」가 입선되고, 1968년 대한일보에 「목선」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한승원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출생하여 고향에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라벌 예술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던 것이다. 김주연은 한승원이 "김동리 이후 이 문제(샤머니즘은 정노력을 기울였다. 그녀의 성안에서는 그녕의 거대한 신이 살고 있었다. 문제는 '나'가 "내 세계는 내 세계이고 그녀의 세계는 그녀의 세계인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있었다고 진술하며, "내 불행은 여기에 있었다. 그들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한데 어우러지고 맞물리려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설렁탕 집 -그들만의 신이 존재하는 곳을 떠나 고향으로 흘러가는 고속버스 속에 실리면서부터 비로서 '정상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삶 찾기가 그에겐 귀향의 첫 번째 이유가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다음으로는 이 이유가 가장 근본적이라 할 수 있는데- 아버지 혹은 어머니 찾기라 할 수 있다. '소복한 어머니, 음습하고 신비한 환몽 같은 시간 속에서 내내 갇혀 지냈던, 혜성 같은 혼 불의 이미지로 남아 있는 어머니'의 중적을 찾아가는 길, 아울려 '내 어머니의 뱃속에 나를 심어준 아버지'를 찾아보자는 것. 「불의 딸」 에서이것이 「불의 딸」의 주인공 '나'의 귀향의 두 번째 이유가 된다. 기실 한승원의 소설의 두 기둥은 장일구의 지적처럼, '귀향' 모티프와 '아버지의 탐색'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소설에 있어 갈등의 원천은 늘 가족사에 있으며 그 원흉은 늘 아버지다. 따라서 한승원 소설의 주인공 '나'는 늘 아버지를 '경멸'하고 있다.'나'의 귀향의 이유는 결국 어머니 찾기를 통한 토속적 샤머니즘 세계의 추구라 할 수 있다. 작중화자는 홍제동으로 무당굿을 보러 가서, "무당이 칼을 들거나 넋전을 들고 뜀박질을 할 때면 내 몸이 그 무당의 춤사위를 따라 새처럼 가벼워졌다"고 말한다. 같은 작품에서 '나'는 급기야, "나는 무당의 아들이므로 무기가 있어도 아주 진하게 있을 것이다."고 토로한다. 작가의 육성이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불의 딸」의 주인공 '나'는 영등제를 취재할 겸 자신의 어머니를 찾기를 위해서 진도에 간다. '나'의 아내 역시 교회 사람들과 함게 진도에 가서 현대판 모세의 지적이라고 떠들어대는 영등제 세계 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에는 「불의 딸」에 나타나는 원형으로서의 샤머니즘의 세계가 어떻게 불의 이미지로 표상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2.불의 상징적 의미사물을 통하여 인간적 이미지 혹은 인간형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볼레이크는 상상력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문학에 있어 상상력이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물들 사이에 어떤 의미가 있는 관계가 있음을 파악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작가 한승원이 「불의 딸」을 통해, 그의 경험이 제공하는 무수한 재료들을, 어떻게 선택 배열하여 새롭고 의미 있는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그런데 한승원 소설에서의 이미지는 은유를 기본 가닥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소설에 은유를 동원한다. 「불의 딸」 말고도 그의 소설 문장에 은유가 쓰인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용례는 천관산 꼴짜기에 불타는 듯하던 철쭉이 지고, 연초록의 잎사귀들이 온 산을 뒤덮은 어느 날 몸을 풀었는데, 아들이었다. 머리를 쭉져얹지도 않은 채로 용례는 아기에게 젖꼭지를 물린 것이었다. 삼월 삼짇날을 이틀 앞둔 초저녁의 일이었다. 으스름달은 산마루에 걸려 있었고, 흙 담에 기대선 배나무에는 눈가를 같은 꽃이 피었다. 그 배나무는 밤 내내 소복한 여인처럼 마당을 환히 밝혔다.무논에서는 개구리들이 귀 아프게 울어대고, 숲에서는 소쪽새와 호랑지빠귀새가 밤새도록 피를 토하면서 울어댔다. 사람들은 '호요요오오오흐으'하는 호랑지빠귀새의 울음소리를 귀신의 울음소리라고 말하곤 했다. - 「불의 딸」 중에서위 인용 부분은 주인공 '나'가 고향을 찾아가서 만난 대장장이 노인에게서 '나'의 어머니에 관해 전해들은 내용 중 일부인데, 직유와 은유가 혼용되고, 사물이 활유를 통해 인간적 속성을 얻고 있다.은유는 의미생성의 거대한 그릇이다. 기존의 논리적인 경직된 의미가 은유의 그릇 속에서 불타고 녹아나고 그리고는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며 소용돌이치는 것이다. 소설은 본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독자와 더불어 어떤 사상에 대해 진지한첫 문장에서부터 '어머니는 늘 울긋불긋한 꽃송이들과 타오르는 불 길 속에서 살았었다.'고 진술함으로써 '나'의 어머니의 삶이 불의 이미지로 표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에게 불꽃처럼 살았던 '나'의 어머니 이야기를 해주었던 대장장이 영감은 그 후 화덕의 이글거리는 불을 끌어안은 채 죽었다.'나는 항상 자네 어무이하고 함께 사네. 화덕에다가 불을 일으키기만 하면은, 자네 어무이가 그 불 속에서 얼굴을 내밀곤 하닌께 말이여.'하고 생각하는 그 자신의 말처럼, 대장장이 영감은 자신의 대장간 화덕 속에서 뭉환의 불로 그를 불러대고 있는 옛날의 여인에게로 돌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대장장이 영감이 간직했던 불구멍은 그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면서도 한편 죽음의 세계로 유혹하는 타나토스적인 충동을 나타낸다.대장장이 영감과 함께 살던 '나'는 어머니가 의붓아버지 똘쇠에게로 오던 때의 장면을 보자.불길이 맹렬해짐에 따라 여자는 들썩 거렸다. 나뭇가지를 다시 안아오고 또 안아왔다. 불가에 엉거주춤 선 채 불길 속에다가 나뭇가지 한 개씩을 던져 넣었다. 여자의 얼굴에 땀이 흘렀다. 불길이 키를 넘게 치솟았다. 여자는 신명이 났다. 뙤밭 안을 춤추듯이 너울거리며 뛰어다니면서 마른 나무 뿌리 토막들을 주워다가 불에 던졌다. 콧노래를 불렀다.(중략) 불이 그렇게 이글거릴수록 여자는 그 불 속에 던져 넣을 것들을 찾아서 뙤밭 안과 주변의 숲속을 더욱 부산스럽게 뛰어다녔다. 그녀 스스로가 불이 되어갔다. -「불의 딸」 중에서위에서 보듯이 '나'의 어머니는 유난스레 불길을 보면 신명이 나고 삶이 희열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그 불길에 휩쓸려 재가 되어가는 데 그녀에게 있어 불은 삶과 죽음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스스로가 불이었던 '나'의 어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그 상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나'의 어머니가 종적을 감추기 바로 그 전날 밤, 허드렛물을 마당 아래 갯바닥으로 버리고나서 '나'의 어머니는 물통을 땅에 내려놓은 채 노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