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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한국의 정치통합과 정치제도
    1. 서문지난 십여년 동안 한반도주변 국제환경이 급속하게 변화되고 북한의 체제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한반도의 통일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냉전질서의 붕괴는 한반도 통일을 위한 국제적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반도의 분단이 남북한 사이의 적대관계만이 아니라 동서블럭간의 경쟁과 대립에 의해서도 초래되고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이 1980년대 말 붕괴됨에 따라 북한은 이념적 연대를 유지했던 동맹국들을 잃었고 또한 그들로부터의 경제적 지원도 얻을 수 없었다. 또한 북한 경제의 구조적 한계가 80년대 초반 이래 심각한 위기로 발전하여 북한체제의 붕괴나 적어도 전면적인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북한경제의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다수의 북한주민들이 식량부족으로 고통받고 있고, 중국으로의 대량 탈주 등 북한사회가 해체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북한체제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서도 북한의 집권층은 경제개혁의 추진을 미루거나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다. 경제 개혁이 가져올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왔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렇게 체제 개혁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킬 경우 북한 체제의 붕괴가 예고 없이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한반도의 통일은 지난 50년간 지연된 민족적 숙원이 완성되는 것이지만 남북한이 오랫동안 이질적인 정치이데올로기와 사회경제체제 하에서 살아 왔기 때문에 짧은 기간 내에 남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부문의 통합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독일의 경험이 나타내는 것처럼, 통일 이후 남북한의 통합과정은 다양한 갈등과 긴장을 초래하고, 많은 희생과 고통을 요구할 것이다. 독일과 비교할 때 지난 50년간 남북한의 적대감이 매우 높았고 실질적인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남북한의 통합은 더 어렵고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독일의 경우, 서독정부는 동독과 대화채널을 유지시켜 왔고, 전 수상 브랜트에 의해 추진된 동방정책(Ostopolitik)을 통해 재정적 지원도 제공해 왔다. 또한 북한이 동다. 첫째, 한반도 통일의 과정과 유형이 어떻게 통일한국의 정치제도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가를 논의할 것이다. 둘째, 통일한국의 주요 균열구조(cleavage structure)는 무엇인가를 논의할 것이다. 셋째, 어떤 유형의 권력구조가 통일한국에 적합한 것인가를 분석할 것이다.2. 통일과정의 예상과 북한의 체제의 움직임통일한국의 정치통합과 정치제도를 논의하는데 있어서 근본적인 어려움은 통일의 과정과 시기들이 통일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제도의 범위와 유형에 영향을 미치거나 제약하는데 통일의 과정과 시기를 예측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가변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통일한국의 정치제도를 논의하기 전에 북한 체제변화의 유형과 시나리오를 논의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북한 체제변화의 유형과 시기는 다음의 세 가지 요인들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생각된다. 첫 번째 요인은 북한주민의 체제에 대한 불만과 변화에의 요구의 강도이다. 둘째 요인은 북한 권력엘리트 내부의 갈등과 분열의 강도이다. 세번째 요인은 남한과 미국, 중국, 일본 등의 주변국이 북한의 체제변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가이다.북한의 체제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세 가지 주요 요인들이 결합되는 방식에 따라 표 1이 보여주는 것처럼 북한의 체제변화에 대한 네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첫 번째 시나리오는 북한이 주요 경제개혁이나 정치자유화를 추진하지 않고 현 체제를 유지하는 현상유지(status quo)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위에서 언급한 요인들이 다음과 같을 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북한주민들의 체제에 대한 불만의 강도가 낮거나 위로부터의 억압에 의해 불만이 표출되지 않는 상황이나 권력엘리트 사이의 갈등과 분열이 체제안정성을 위협할 만큼 크지 않을 경우 혹은 중국 등이 북한체제에 적극적인 지지를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유지는 사회주의체제가 변화 없이는 붕괴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는 없을 것이다. 시나리오 1은 시나리오 3(점진적 붕괴)이나 시나리오일으키고 마침내 미국과 남한의 군대에 의해 북한체제가 붕괴되어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상황이다.이러한 북한 체제변화의 네 가지 시나리오에 따라 통일의 과정과 시기는 달라진다. 시나리오 1의 경우 가까운 장래에 통일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적다. 시나리오 2가 발생하면,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고 통일은 타협과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달성될 것이다. 시나리오 3과 4의 경우 통일은 남한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합에 의해 달성될 것이다. 통일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가장 바람직한 통일과정은 북한이 적극적으로 체제개혁을 추진하고 남북한의 협상을 통해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지는 유형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북한 집권세력의 태도나 성향으로 판단할 때 북한이 급진적 경제개혁을 추진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 또한 북한이 경제개혁을 추진하더라도 북한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체제가 생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앞에서 논의한 다양한 형태의 통일과정의 유형은 통일한국의 정치통합과 정치제도의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통일이 북한체제의 돌발적인 붕괴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의 형태로 발전할 경우, 통일한국의 정치제도는 남한의 정치제도가 한반도 전체로 확산되는 형태가 될 것이다. 반대로 통일이 남북한의 타협을 통해 점진적으로 달성되는 경우, 통일한국의 정치제도의 범위와 형태는 매우 넓고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3. 한반도의 정치적 문제①. 지역균열(regional cleavage)통일한국에서 지역균열은 가장 중요한 사회갈등의 원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일독일의 경우에도 서독과 동독 지역간의 경제적 격차와 사회문화적 이질성으로 인한 지역균열이 형성되어 왔다. 남한의 경우는 지역갈등이 주요 정치균열의 요인으로 오랫동안 작용하여 왔기 때문에, 통일이후 이러한 지역갈등이 유지되거나 새로운 차원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통일 이후에도 영-호남 지역갈등이 상당기간동안 지속되겠지만, 남-북 지역갈등이 보다 심각한 사회균열로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통일한국에서 북한지 집권세력으로부터 배제될 것이다. 이렇게 북한주민들의 이익이 정치과정에서 배제될 경우, 북한의 노동당이나 노동당과 연계된 정치세력이 영향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독일의 경우에도 상당한 정도의 동독주민들이 공산당을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독일의 경험은 전 동독정부의 관리들이나 공산당 지도부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정치적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한국에서도 북한의 엘리트들과 관리들의 처리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사회문화 영역에서는 통일한국에서 남북한 주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가치체계와 생활방식으로부터 많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남한주민들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와 다양한 가치의 공존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의 영향속에서 살아온 반면 북한주민들은 집단주의와 교조주의적인 이데올로기에 세뇌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한 주민들은 통일 후에 심각한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남한에서 살고 있는 탈북자들은 서구화된 남한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토로하고 있다. 따라서 통일은 북한주민들의 정서적 안정성과 생활방식을 파괴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의 경험도 유사한 사회갈등과 긴장을 보여준다. 통일에 대한 짧은 기간의 흥분과 기쁨 후에 바로 독일 사람들은 쓰라린 새로운 현실에 직면할 수 밖에 없었다. 서독주민들은 실업률의 증가와 주택부족 그리고 감소하는 복지혜택에 대해 불평했고 동독주민들의 좌절감은 훨씬 더 심각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어두운 측면을 경험하고 그들이 통일독일에서 2등 국민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결과 동독 주민들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북한주민들이 통일한국에서 2등 국민으로 전락할 가능성은 매우 높고, 이러한 상황은 남북한의 통합에 장애로 작용할 것이다. 남북한 주민들이 유사한 가치체계를 공유하게 될 때까지 통일한국에서 국민 화합을 이루고 새로운 국민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②. 계층균열(class c독일 통일비용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하류 계층은 높은 세금 인상과 고실업, 임금동결 등으로 고통을 겪을 것이다. 통일 이후 남한의 노동자들은 북한 지역의 저렴한 노동력의 유입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고 노동자들의 자본에 대한 협상력은 매우 약화될 것이다. 반면 자본가 계층과 상류층은 통일한국에서 새로운 부의 축적 기회를 얻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지역의 저렴한 노동력과 자연자원을 이용하고 이천만의 새로운 소비자와 신규투자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여러 가지 형태의 경제적 갈등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다. 북한 지역의 토지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나 국유 자산의 민영화 방식을 둘러싸고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4. 한반도의 정부구성통일 한국의 정부구조와 관련한 첫 번째 쟁점은 대통령제와 내각제 중 어떤 권력구조가 통일한국에 적합하느냐에 관련된 것이다.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둘러싼 많은 연구와 논쟁이 있어 왔고 한국의 정치권에서도 내각제 추진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어떤 권력구조가 통일한국에 적합한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두 권력구조의 기본적 성격과 장단점을 비교하는 것뿐만 아니라 통일한국이 직면할 정치현실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먼저 대통령제와 내각제을 둘러싼 많은 논쟁들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내각제 지지론자들은 대통령제가 승자 독식의 제로섬 게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소수의 의견과 이익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대통령제가 정치통합을 저해하고 사회갈등을 심화시킨다라고 비판한다. 또한 대통령제는 한 지도자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기 때문에 권력의 남용을 초래하고 이 결과 민주적 정치과정과 정치제도가 손상된다고 비판받는다. 이 문제는 흔히 위임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로 일컬어지는데 이 현상은 대통령제를 채택한 한국과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빈번하게 발견된다. 통일한국과 관련해서 내각제 지지자들은 대통령제가 남한과 북한 지역의 지역 갈등을 심화시킬이다.
    인문/어학| 2008.11.20| 6페이지| 1,500원| 조회(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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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옥의 탄생
    연옥과 중세 사회적 관계1. 서론2. 연옥의 성립과정1) 연옥의 기원2) 연옥의 탄생(1) 연옥개념의 확고한 정립(2) 연옥에 대한 도전과 확산3) 연옥과 중세3. 결론1. 서론‘죽음’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된 순간부터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사람이 죽으면 더 이상 현실에서 이루었던 모든 것들이 멈추게 되자 사람들은 막연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고대이집트에서 파라오가 죽으면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미라를 만들어 보관했던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사후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이 가장 많이 나타난 곳인 종교이다. 어느 종교이던지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 냈다. 각각의 종교에서 비춰지는 사후세계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사후세계를 통해서 신도들의 삶을 통제하고 종교에서 원하는 방향의 삶을 살게 하기위한 하나의 방책인 것이다.기독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의 상이한 개념을 통해서 현재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심판하여 잘못된 행동을 한자는 지옥으로 그렇지 않고 성실하게 의무를 수행했던 자는 천국으로 간다고 믿어왔다. 천국-지옥의 중간개념으로서 연옥이 탄생하게 되는 것은 12세기의 일이다. 연옥은 천국-지옥으로 갈라지기 전의 중간적 공간이다. 여기서 이전의 삶을 반성하고 노력하면 구원을 받을 수도 있다. 이것은 기독교의 교리와는 상반되어 아이러니하게 보인다.그렇다면 지금부터 연옥이 어떤 배경으로 탄생하게 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연옥과 당시 사회적 기반들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2.연옥의 성립과정1)연옥의 기원고대서부터 연옥의 탄생은 시작되었다. 성서에는 연옥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성서에 의지하여 연옥에 대한 개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연옥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고대의 다른 세계에서의 여러 이미지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 테면 이집트의 지옥, 로마의 하데스, 유대교의 스올, 바울의 계시록과 같은 이경 내지 외경 수많은 민족전승과 종교적 이상, 예화, 신학자들과의 교부 철학자들의 저작들)속의 이미지와 상징들이 함축되었다.연옥에서는 천국-지옥의 사이에서 결판에서 구원을 받기에는 부족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기엔 아까운 영혼들이 ‘불’로서 정화, 즉 죄를 씻고서 천국으로 간다고 한다. 이런 연옥의 개념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us, 354.11.13 ~ 430.8.28]이다. 당시 아우구스티누스는 연옥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당대인들의 관심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네 부류로 구분 할 수 있다. 전적으로 선한 자들, 전적으로 악한 자들, 전적으로 선하지는 않은 자들, 전적으로 악하지는 않은 자들이다. 전적으로 선한 자들과 전적으로 악한 자들은 죽은 뒤에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 끼여 있는 자들-전적으로 선하지는 않은 자들, 전적으로 악하지는 않은 자들-에 대해서 연옥은 자신이 정해진 것보다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들은 불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불은 자신이 지은 죄들을 태워주는 역할을 하는데 매우 고통스러운 것으로 현세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이다). 또한 연옥은 장소가 아닌 시간의 개념으로 정의 하였다. 이처럼 아우구스티누스는 연옥에 대한 기틀을 정립시켰다.2)연옥의 탄생연옥은 12세기에 이르러서 더 분명해 진다. 이런 연옥의 변화는 당시 사회하고도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12세기에는 게르만족, 이슬람, 바이킹족들에 의한 혼란이 극복되고 안정을 찾아가는 시기이다. 서유럽은 봉건제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켜 중세의 절정의 시기가 되었고 기독교는 베네딕트회의 노력을 통해서 이전의 세속적인 모습을 차츰 벗어나 성장해갔다. 기독교의 성장은 정치적으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교회는 사후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통해서 일반신도들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레고리우스 7세는 삼분법적인 사회신분을 확정짓게 된다. 1신분으로서 기도하는 자, 2신분으로서 싸우는 자, 3신분으로서 일하는 자라는 체제가 중세 신분의 바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또한 당시는 중세의 전성기이기도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내포 되어 있는 것처럼 도시들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자치권을 허용받게 된다. 이는 곧 중세가 시작되며 사라졌던 상업의 발달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 즉, 서서히 근대의 씨앗이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1) 연옥 개념의 확고한 정립12세기의 사회적 상황들 속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던 연옥은 더욱 분명하게 된다. 연옥의 중간적 범위는 매우 모호했다. 정확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중간의 범위를 설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에 대한 기준이 정해지는데 사면 가능한 죄의 범위이다. 사면 가능한 죄의 범위를 논의 하는 것에 있어서는 그리 큰 논란거리는 아니였다. 이는 기독교적 범위 내에 있었을 것이다. 당시가 기독교 사회이기 때문이다.)또한 연옥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들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연옥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개념, 죄의 정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이 필요한 것인지도 이야기 되었다. 연옥에서의 정화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 참회와 고해도 등장하였다. 때문에 사람들은 연옥에서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교회에 더욱 의지하게 되었다. 교회는 이런 면들을 통해서 신도들을 통제하고 교회의 권위를 높여 나갔다.(2) 연옥에 대한 도전과 확산13세기가 되면 더욱더 근대로의 태동이 눈에 띄게 된다. 도시들의 성장과 수공업, 신흥 상업들의 등장과 발달로 인해서 중세의 봉건제 기반은 점점 흔들리게 된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다시 법규들이 만들어 지기 시작하고 통제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더군다나 십자군 전쟁으로 인하여 들어온 고대 그리스?로마의 철학과 이슬람의 철학은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흡수되었다.사회의 변화에 따라 연옥은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비판자들은 당시의 다시 되살아나는 이성과 합리주의적인 면에서 연옥이 가지고 있는 중간적 개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다. 하지만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25? ~ 1274.3.7]는 연옥의 편이었다. 스콜라 철학의 특성은 이와는 달랐지만 정치적인 배경을 통해서 결국 승리하게 된 것이다. 이후에 단테의 『신곡』을 통해서 연옥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강렬해 졌고 단단히 자리잡게 되었다.4. 연옥과 중세연옥의 개념은 아주 오래 된 것이지만 12세기부터 자리를 잡으면서 기독교에게 종교적 생명력을 부여받음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연옥에 대한 개념은 교회의 권위를 신장시켜 주었다. 그들은 면죄를 통해서 정치권과의 대립에서 우위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군주들에게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서 그들을 길들일 수 있었다. 또한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인 동시에 그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이러한 특권을 통해서 교회는 면죄부를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면죄부는 교회를 황폐화 시킨 가장 악질적인 부분이었다. 교황은 면죄부를 판매함으로 인해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계속된 교회의 부패에 후에 루터는 면죄부가 성립될 수 없는 반박문을 만들게 되었다.
    인문/어학| 2008.11.20| 4페이지| 1,500원| 조회(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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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레니즘의 파급효과
    Ⅰ. 서론Ⅱ. 본론- 배경- 특성- 비주류의 헬레니즘Ⅲ. 결론Ⅰ. 서론헬레니즘 세계는 일반적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B.C. 323년)부터 기원전 30년까지의 시기를 지칭하는데 이 시기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이어가는 과도기적 단계나 그리스의 연장선상으로 이해되기도 하는 등 고대세계에서의 마케도니아의 역할과 영향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독일의 역사학자 드로이젠에 의해 조명 되면서 헬레니즘 시대의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이렇듯 헬레니즘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헬레니즘 용어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고 정확한 이해또한 부족하지만 통상적으로 헬레니즘 시대는 개인주의적이며 세계시민적(cosmopolitanism))이고 세계주의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특성들은 일반화 된 것이지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성립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동전의 앞과 뒤에는 전혀 다른 그림이 새겨져 있는 것과 같이 헬레니즘의 일반화된 특성 또한 어느 한 면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헬레니즘은 알렉산더의 의해 정복된 동방에 도시가 확산되며 그리스적 요소들이 동방에 전해지게 되는데 이 과정에 있어서 도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도시의 지배계급들은 거의 대부분이 그리스-마케도니아 인이고 그들밑의 하층계급은 토착인 이었다. 그리스-마케도니아 인들은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졌지만 도시 내에서 그리스적요소로 그들의 문화를 이룩하였다.그렇다면 하층민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농업에 종사하였던 토착인 들은 어떠했을까? 그들에게도 헬레니즘은 세계시민적인 시대였을까? 하층민의 생활에서도 헬레니즘의 일반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헬레니즘을 형성할 수 있었던 배경과 일반화된 헬레니즘의 특징들을 이해한 뒤 하층민에게도 헬레니즘의 일반화된 시각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도록하자.Ⅱ.본론-배경신라의 문무왕이 무열왕의 토대위에서 삼국통일의 완성했듯이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알렉산드로스의 부친인 필리포스2세의 밑거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도 보이듯 각각의 폴리스들의 전쟁과 분열로 인해서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때 필리포스2세는 뒤쳐져있던 변방 왕국이었던 마케도니아를 그리스의 중장보병제와 상비군을 도입하여 왕권을 강화시키고 목축인 이었던 이들을 정착 농경민과 도시 주민으로 탈바꿈시킴으로 인하여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해주었음은 물론 이로 인해 마케도니아의 인구를 증대시킬 수도 있었다. 인구의 증가는 곧 마케도니아의 군대가 성장할 수 있게 하여 코린토스 동맹)에서 군사적으로 그리스를 장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마케도니아의 성장으로 인하여 아테네에서는 필리포스를 견제하려는 세력도 등장하였다. 데모스테스는 후에 대 필리포스 연설이라 칭해지는 연설에서 반마케도니아 연합군 조직을 촉구하기도 하였으나 이미 기운을 다한 그리스는 필리포스의 야심을 저지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소크라테스는 연설에서 필리포스의 정책노선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바탕위에서 알렉산드로스대왕은 동방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비록 필리포스2세와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무력을 통해서 점령하였으나 그 문화를 동경하였다. 이는 알렉산드로스가 전투에 승리하여 얻은 전리품들 중에서 300여벌의 갑옷을 아테네에 보내 아테나 여신에게 바친 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또한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마케도니아인과 동방의 토착인 들을 동일한 지배층으로 연대시키기 위해 수사에 머무는 동안 성대한 제전을 열어서 제전을 통해서 마케도니아인 들은 페르시아인의 아내를 얻게 하였고 마케도니아식의 군대훈련을 받은 아시아인들을 기병으로 편입시키려는 조처를 취하였다.도시의 확산은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동안 그리스-마케도니아인의 용병들이 정착하여 그곳에서 도시를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알렉산드로스 사후에도 그리스적 도시-그리스의 폴리스들과 동일하다고는 볼 수 없으나-들이 확산되었다. 이들의 출신은 매우 다양하였으나 곧 새로운 지배층으로 통합되어갔다.-특성알렉산드로스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뒤이을 후계자 또한 정확하지 않아서 알렉산드로스사후에는 여러 장군들이 후계자를 자청하며 혼란스러운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는 곧 많은 시련을 거친 마케도니아의 안티노고스왕조와 비교적 일찍 세력을 거머쥔 이집트의 프롤레마이오스 왕조, 셀레우코스 왕조로 분리된다. 강력한 힘을 가진 알렉산드로스가 전제주의 적이 되었던 것처럼 헬레니즘시대의 후계자들은 각 왕국마다 제각기의 형태와 구조를 지니긴 하였지만 근본적으로는 군주정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이후에는 폴리스는 고유한 기능- 폴리스인 들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써의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해내지 못한다.이전의 아리스토텔레스가 폴리스내의 정치적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주장은 폐쇄적 시민공동체인 폴리스가 무너짐에 따라 이제 행복한 삶은 정치적인 문제와 독립되었고 각자가 추구해야할 문제가 된 것이다. 행복한 삶의 추구가 개인이 해결해야할 문제가 되어버리자 철학에서는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나 에피쿠로스학파의 쾌락주의가 등장하였다.) 폴리스의 붕괴는 수호신들에 믿음 또한 무너지게 되는데 이를 동방의 신들이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였다.국제적으로는 그리스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도시간의 상호이동성이 용이하였다. 용이한 상호이동성을 통해서 헬레니즘은 보편적이고 세계시민적인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 폴리스가 무너짐으로 인해 시민들은 폴리스의 공동체로부터 벗어나 헬레니즘의 일반적인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하층민의 삶헬레니즘시대의 사회구조는 도시의 부유한 지배계층인 그리스-마케도니아인과 농업에 종사하는 가난한 피착취계급인 아시아 토착인 으로 구분된다.) 그리스-마케도니아 인들은 이질적인 환경에서 도시를 만들어 그들의 문화를 누리지만 아시아 토착인 들은 거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면서 그 문화에 융화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토착인 들이 피지배계층으로 그 문화에 융합되지 못한 큰이유중 하나는 그들이 그리스-마케도니아인 에게 정복당했기 때문이다.그리스-마케도니아인 들은 아시아 토착인 세력과 융합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때문에 알렉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 식으로 훈련된 아시아 병사들을 기병에 편입시키려고 하자 정복자들은 격분하였고 결국 항명을 일으켰다. 또한 아이카눔에서 발견된 돌기둥의 내용의 보면 토착주민들에게는 학원의 입장이 허락되지 않았던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학원은 청소년들이 체력을 단련하고 사회화를 위한 교육공간이었으나 헬레니즘시기에 들어와 일반인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변모하여 도시마다 필수적인 시설이 되었는데 이러한 중요 사회화 기관에 토착인의 입장이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헬레니즘의 군주정에는 왕의 자문기관과 같은 친구들이라는 집단이 존재하였는데 이는 그리스 도처의 사람들로 대부분이 그리스-마케도니아 인들이었다. 프롤레마이오스 왕조인 이집트에서의 친구들은 부유한 토착 이집트인들조차도 소외되었으며 이러한 차별적인 측면은 제논의 문서 속에도 자신이 그리스인이 아니라서 노임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셀레우코스 왕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의 친구들 또한 토착인 들과는 동떨어진 존재였으며 셀레우코스왕조의 두세대 후 요직에서의 토착인 비율은 2.5% 미만이었다.)
    인문/어학| 2008.11.20| 4페이지| 1,500원| 조회(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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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세수도원의 역할-장미의 이름으로 평가A좋아요
    중세 수도원의 역할1. 중세속의 수도원2. 종교적 측면1) 수도원의 기원2) 수도원 개혁운동3. 지적 측면1) 샤를마뉴의 르네상스2) 에 나타난 장서관의 양면성4. 중세의 연결고리1.중세속의 수도원흔히들 서양사에서 중세는 ‘암흑의 시기’ 또는 고대와 근대사이의 끼인시기라고 하며 중세는 서양문명에 있어서 질적으로 격하된 시기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중세의 시기에도 모든 것이 차단되었던 것만은 아니다. 분명 중세에도 고대와 흐름을 같이하는 부분도 있었으며 더군다나 서양의 정신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인 기독교의 영광이 찬란했던 시대였다. 이런 역할을 수행했던 곳이 바로 수도원이다.수도원은 〈장미의 이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테면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교황청과의 논쟁의 장소를 제공하며, 수도사들은 그곳에서 필사를 통해 후대에 문화유산을 물려주고, 수도사 전체의 삶을 종교적으로 총괄한다. 이렇듯 중세 수도원은 서양의 문화에 다양한 역할을 하고있다.수도원의 다양한 역할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인 종교적?지적측면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수도원이 중세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알아보고자 한다.2. 종교적측면1)수도원의 기원수도원모습은 3-4세기에 이미 나타난다. 안토니오와 동료, 추종자들이 기독교가 대중화 되는 것과 박해를 피하기 위해 사막으로 숨어버렸다. 그러나 이의 대한 열정을 본받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어 곧 은수사원을 세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수도원의 모체가 된다.)초창기 수도원 생활은 세명의 인물을 통해서 변형?확산된다. 첫 번째 인물로 파코미우스[Saint Pachomius, 290 ? ~ 346]는 금역제를 만들어 세속과 단절시킴은 물론 세칙을 제정하고 수도사들에게 정결, 청빈에 순명을 덧붙이고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 ~ 373]는 『성 안토니오 전』을 저술하여 제도를 전파하였다. 마지막으로 바실리우스 [Basilius, 330? ~ 379.1.1]는 수도원 생활이란 기독교적 생활의 틀을 마련해주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틀을 세웠다.)더불어 베네딕트 [Ruth Fulton Benedict, 1887.6.5 ~ 1948.9.17]는 ‘회칙’을 통해서 서구 수도원의 성립에 큰 공헌을 하였다. 베네딕트의 회칙의 이전보다 현실적이고 단순하며 보편적 성격)을 통해서 수도원 제도를 확산 시켰다.후에 영국에서 나타나는 수도원의 성격에는 이전 수도원과는 달리 선교의 목적도 가미되었지만) 결국, 수도원은 속세를 떠난 은둔생활속에서 고행과 기도를 통해서 순수한 종교생활을 할수있는 장소로서 탄생하게 된것이다.2) 수도원 개혁운동바이킹과 마쟈르와 같은 외적들의 침입으로 인하여 교회들은 크게 위협을 받았다. 이에대해 위협을 느낀 교회는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귀족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이런 상황속에서 수도원의 타락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생활은 기사들과 다를바 없이 중세 봉건제 속으로 편입되어 정치적으로 그들과 밀접하게 되었다.이후 10세기 절정에 이르러 드디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어느정도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종교의 부패와 타락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수도원을 통해서 시작되었다.당시에 여러 노력을 통해서 개혁을 이끌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클뤼니 수도원은 봉건적 봉사의 댓가로 토지를 원하지 않았다.) 토지는 곧 속세의 부와 밀접한 연관을 가졌는데 이를 거부함으로서 본래 속세권력과의 연결고리를 약화 시킨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수도원장을 선출함은 물론 조직을 구성)하였는데 이는 수도원 스스로 독립적인 권리를 행사할수 있어 독립적인 성격을 가졌다. 이런 조항들을 바탕으로 하여 클뤼니 수도원은 집단예배를 통해서 수도사들에 나태한 생활을 방지함은 물론 경건하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였다. 곧 클뤼니 수도원의 세력은 급속하게 신장하여 다른 수도원들도 클뤼니의 계율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클뤼니 수도원은 빠르게 팽창하였다. 다른 개혁운동들도 있었으나 그중에서 클뤼니의 개혁운동이 가장 광범위 했으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런 흐름은 교황청이 주도한 개혁운동과 더해져서 중세 교회의 구조를 새롭게 하였다.)즉,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은 수도원에서 시작되었다. 수도원은 그만큼 종교적으로 가장 순수한 곳이었으며 이상이 머무르는 곳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개혁을 주도하였던 클뤼니 수도원이 세속에 물들자 시토수도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등장하여 개혁을 단행했던 것도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3. 지적 측면1)샤를마뉴의 르네상스고대세계가 무너지고 샤를마뉴의 대관식의 있기까지 고대의 문화유산들은 모진 풍파를 겪었다. 그리스?로마의 높은 문화수준이 풍파속에서 와해되어 갈 무렵에 등장한 샤를마뉴는 그의 의도가 어찌되었던 고대 지적 기반을 중세와 근대에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였다.샤를마뉴의 시대에는 로마의 분열,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혼란한 시기를 지난터라 로마의 학문적 바탕이 거의 소멸되어 교육을 받거나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이 드물었고 제국의 인민들은 야만적이었고 대부분이 문맹자였다.) 그러나 다행이도 샤를마뉴는 다른 게르만 왕들과 달리 학문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또한 자신의 제국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제국을 실제적으로 운영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지적 관심과 제국의 통치를 위해서는 그는 학문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학문의 명맥을 유지해오던 곳은 수도원이었고 수도사들은 학자로서 교양을 갖추고 있었기에 샤를마뉴는 베네딕트 수도사 앨퀸과 학자들을 초빙하였다. 앨퀸을 비롯하여 샤를마뉴가 끌어모았던 학자들은 학교를 설립하고 로마 고전에 대한 연구를 진행 하였다. 또한 당시대의 수도승들은 필사를 통하여 문화를 보존하였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로마 고전들이 전해질수 있었다.)카롤링 시대의 문예부흥운동은 수도원을 통해서 이루어 질수 있었다. 이는 당시 수도원들이 지적으로 높은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수도사들은 학자로서의 지식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2) 에 나타난 장서관의 양면성소설 에서 호르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이 장서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기 위해 아델모, 베난티오, 베렝가리오, 세베리노, 말라키아를 살해한다. 즉 은 시학을 세상에 내놓으려는 인물과 그것을 감추려는 인물들이 대립하게 되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수도원은 높은 지적문화가 있었고 그중에서도 장서관은 지식의 보고이다. 하지만 장서관은 고대의 지식을 보관함과 동시에 그것을 세상에 내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서관이 미로와 함정들로 가득 찼던 것이다.중세 시기는 신학은 철학의 시녀로서 받아 들였다. 기독교적 문화가 사람들을 지배했고 그 영광 역시 찬란하였다. 때문에 고대의 저서들이 세상으로 나왔을 때 자신들의 신학적 믿음을 흔들 수도 있었기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극중 인물인 호르헤 또한 이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같은 수도사들을 희생시키면서 까지 시학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으려 했었다.
    인문/어학| 2008.11.20| 4페이지| 1,500원| 조회(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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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물었을 때 흔히들 한국적인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것은 무엇이며 과연 그 무엇이 한국적인것일까?라는 의문을 이책에서는 제기하고 있다. 나또한 마찬가지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나의 외형은 예전의 사람들과 다르다. 나는 청바지를 입고 짜장면, 피자, 쌀밥을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시점에 한국의 정체성은 과연 어떤것인가? 이책에서는 크게 세장으로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있는가에 대한 고찰을 적어두고 있다.첫 번째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들은 대게 한국인들이 모인 집단이 한국이고 그들의 정신이 한국인이라면 그것또한 한국의 정체성이라고 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정체성과 한국의 정체성은 다른것이라고 이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만득이와 김유신은 같은 한국인이지만 서로다른 외양을하고 있다. 그는 불교를 숭상하며 신라식의 한복복장을 하고 있지만 만득이는 청바지를 입고 코카콜라를 마시고 있다. 과연 외양과 정신모두 다른 이들에게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는 없다. 이렇듯 한국의 정체성은 개인의 정체성과는 다른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개인이 한국의 정체성을 논할 수는 없다. 또한 한국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합성의 오류와 분할의 오류이다. 합성의 오류의 대표적인 예는 개개인의 최고의 축구선수가 모였다고 해서 세계최강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일본인이 나쁘다고해서 모든 일본인이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은 분할의 오류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의 정체성은 어디서 찾아야할까? 필자는 집단의 동질성에 주목하고 있다. 첫째는 한국어이며 두 번째는 각각의 생산되는 정신?물질적인 것들에서의 공통점이다. 한국어는 한국의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공용어이기 때문에 정체성을 말해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 보고 있다. 두 번째의 경우는 공통점을 추출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추상화될 우려가 따른다.두 번째장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있는가에 대하여 적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것이란 말은 옳지않다. 세계화는 미국의 주도로 흘러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서양의 문물들이나 정신들이 세계화란 포장을 싸서 한국으로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세계적인 것은 미국적인것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또한 보편적인 것을 찾아서는 안될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인간이 되자란 구호는 가장 요상한 말인 것이다. 우리는 인간을 본적이 없다. 하지만 영희, 철수는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되는 것은 어떠한 것인지 알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편적인 것은 합의점에 도달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 진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세계시장에서 환영받을수 있는 속성, 즉 세계적인 보편적 속성을 알아내서 역으로 그것을 한국적인 것에서 찾는 방법이다. 이방법은 홍콩영화가 보편적인 액션의 속성을 이용하여서 세계적으로 성장한곳에 있다. 이렇듯 우리가 해야할일은 우선은 한국의 특수성을 찾아내는데 주력해야한다는 점에 있다.마지막 장에서는 정체성 판단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체성을 알아가는 것은 시원이 아니다. 나의 증조부, 고조부를 거슬러 올라가 조상을 찾는 것이 아닌 개성의 문제인 것이다. 즉 독특함이 바로 개성이고 고유성이기 때문에 더 이상 시원의 문제에 몰두해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정체성을 판단할 때 이중잣대를 근거로 하면 안된다. 이중잣대는 자신의 일은 옳고 남의 일을 틀렸다는 식의 결론을 이야기한다. 책에서는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가 보이는 일본과 중국에 대한 입장차를 보여준다. 우리는 과연 동등한 시선과 잣대로 그들을 같이 바라보고 있지 않다. 이러한 행동은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모호하고 할뿐더러 정체성을 파악하는 작업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또한 우리는 세계화의 시대에 살아가기 때문에 외래문물을 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들을 너무 겁내해서도안된다. 그 문물을 우리가 한번 소화해서 섭취하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창의성-창조적 수용-에 해당하는 문제인 것이다. 정체성판단에 큰 기준은 현재성과 대중성이다. 한국의 정체성을 판단할 때 현재성을 배제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그일은 이상이나 옛 이야기의 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져야한다. 또한 현재성을 논할때에는 대중적인 것을 논해야한다. 이렇다면 한국의 정체성을 파악할수 있을 것이다.
    인문/어학| 2008.11.20| 2페이지| 1,000원| 조회(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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