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과서포럼의 역사인식 비판 ’-『한국 근/현대사』교과서 비판에 대한 반론1. 서 론앞서 과제의 주제인 ‘교과서포럼’은 무엇인가? 에 대하여 먼저 알아보았다.▶ 교과서 포럼이란?- 교과서포럼은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 교과서가 좌파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 고,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은 현재 우리나라 중/ 고등학교 교과서들의 일부 내용이 갖고 있는 문제점 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지식인 모임으로서 2005년 1월에 출범하였다.- 특히 중/고등학교의 한국 근/현대사 관련 교과서, 경제 및 사회관련 교과서, 그리고 도덕 및 윤리관련 교과서가 이념적으로 잘못 편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 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면서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진작시키고자 한다.이러한 교과서 포럼의 목적과 이념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교과서 포럼의 목적과 이념.- 뉴 라이트 운동 계열의 단체로서 2005년 1월 25일에 창립하였다. 교과서포럼은 창립선언 문에서 창립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역사를 바로 세우기보다 역사를 바로 씀으로써 중·고등학교 교육현장을 바로잡고 미래세대를 올바르게 인도해야 해야 하겠다는 절박감이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하였다.- 창립선언문에 따르면 이 단체의 활동 목적은 다음과 같다.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관련된 각종 교과서를 분석·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사실을 추구하는 학도로서의 성실성과 엄숙성, 및 겸허함을 견지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글에서는 교과서포럼의 『한국 근/현대사』교과서에 대한 비판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또한 교과서포럼과 현행 교과서에 기술된 역사인식이 어떻게 다르고, 이들과 또 다른 역 사인식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려 한다.-『한국 근/현대사』교과서포럼에서 제기한 핵심적인 쟁점 네 개를 중심으로 2,3,4,5장에서 검토하였다. 교과서포럼의 심포지엄에서 제 7차 교육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갖추 지 못한 원색적인 비난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비판이 제기되었 않다고 비판.→ 제 17대 총선은 2004년 4월에 있었기에 이런 사실이 반영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본문 서술이 전부인 『국사(하)』와 달리, 『한국 근/현대사』교과서는 다양한 사진과 보도자료를 활용. - 주입식 역사교육을 지양, 자기 주도적 학습과 수행평가를 가능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시도된 것. 특정 주제를 이끌어가기보다 다양한 1차 자료를 제시, 토론을 통해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주도적으로 세울 수 있도록 유도.또한 금성출판사의 교과서도 8쪽에 걸쳐 다양한 구성방식으로 6.25전쟁을 언급.→ 김일영은 교과서에서 남침설을 인정, 전쟁 발발 원인에 대한 애매한 자료 제시를 통해 남침설과 상충하는 내용을 암암리에 풍기고 있다고 주장.금성출판사가 남침설을 애매하게 설명하려는 의도로 언급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활동자료는 학생으로 하여금 전쟁 직전의 상황을 종합적이고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 김일영의 주장처럼 수업이 일방적으로 진행될 수는 없음.김일영은 교과서의 각 대단원의 첫머리에서 국제정세를 언급하는 것을 두고 지적.→ 금성출판사의 교과서는 광복 이후 한국현대사의 전개과정을 세계사와의 연관 속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아주 초보적이고 기본적인 사실, 곧 냉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제 3세계의 형성을 한 쪽씩 할당하여 사실적으로 나열하고 있음.☞ 이런 주장은 교과서의 구체적인 형식에 대한 몰이해하고 교과서의 기본구성을 알아보려 는 노력을 게을리 한 점에서도 확인 된다. 또한 김동광의 주장처럼 의도된 목표와 기획 을 갖고 서술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제변동의 설명을 위해 중국을 빼놓을 수 없 는 것이고, 한국의 대외관계를 설명할 때 비동맹외교를 제외하고는 설명이 되지 않기 때 문이다. 김동광은 이념의 과잉에 사로잡혀 비판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다.2) 개항기의 역사 - 동아시아 질서변동과 식민화.- 최문형은 “외세에게 침략당한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부분은 되도록 빼거나 줄이자는 의도”에서 교과서 서술이 이루어졌다고 단정,유럽의 여러 국가들 이 현지인들의 일상적 삶과 문관하게 자기들 편리할 대로 국경선을 긋고 지배하는 행위와 동일한 관점에서 체제전환에 실패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음. (사회진화론적인 역사관에 동조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인식 인 것)→ 조선의 내적 모순이 폭발되고 있던 개항기에 일본과 서구열강은 조선을 침략하여 이 상 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내적 모순이 일본과 서구열 강에 의해 완전히 해체되지 않은 채 조선이 식민지로 넘어갔다는 점까지 염두에 두고 국 제 관계사를 주목해야 함.3) 일제강점기의 역사 - 근대사? 민족운동사? 식민지 근대사?- 김재호는 한국의 근대가 저항만이 아니라, 학습의 과정이기도 했는데 근대화과정이 없는 민족운동사 편중의 역사서술 때문에 서구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한 학습과정이었다는 측면 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다고 주장. 또한 약탈의 의미는 ‘수탈’개념을 적극 활용하며 한국 근대경제를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활동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고 비판.- 김재호는 예로 광업법의 제정 이유는, “관청이나 왕실에 의해서 침해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 일본은 관청이나 왕실에 침해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만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 아 니었음. 초과이윤 등을 가져가기 위함이고, 이를 위해 각종 법률을 제정한 것.- 우리가 검토하고자 하는 교과서의 내용은 식민지조선의 역사이자, ‘식민지적 근대인’으로 살아간 조선인의 역사이지, 일본인이 만든 일본사 교과서는 아님.- 이주영은 오도된 신념으로 윤치호와 김활란같이 일본의 앞잡이 역할을 한 사실을 왜곡하 면서 까지 친일파의 역사를 정당화시키고 부활시키려고 시도했음.- 김재호는 ‘식민지적 근대화라는 개념 역시 가능’하다고 주장. 그는 “식민지 지배를 통해 서 비자주적인 변화과정이었지만, 한국사회는 근대사회로 변해갔다”고 봄.- 교과서포럼의 주장처럼 일제강점기 역사상을 재구성하여 민족문제를 본질로 하지 않는 현대사는 대한민국사? 민족사?한국근현대사는 “우리 민족이 근, 현대의 세계 속에서 발휘해온 역량을 주체적,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미래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역사적 사고력을 심화시키며 슬기롭게 생활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과목이다.▶ 교과서포럼의 입장은?- 이명희는 1969년 국가인식의 주체를 “국민 혹은 국가 대신에 민족으로 설정하고 민중을 강조하는 인식”으로 지속. →1980년대 이후 엄청나게 바뀐 시대적 환경 때문에 재고되어 야 한다고 주장.- 이대근은 우리 사회 잘못된 흐름의 원인을 ‘반일 민족주의’에서 찾고 있으며, ‘민족주의’ 를 버리고 ‘국제주의, 글로벌리즘’으로 방향을 트는 데서 대안을 찾고 있음.-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는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성을 절대적 가치로서 추구하는 역 사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선진문물의 수용과 국제협력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 화, 예술의 각 방면에 걸쳐 근대화를 추진하는 역사였다”라는 주장과 연결.- 역사교육도 “이러한 성공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되어야 하며, 적어도 균형감 있게 가르 치는 것 이어야한다” 는 것이 교과서포럼의 입장.▶ 필자의 입장은 ?- 사회적 민주화를 진척, 개인의 인권을 향상, 통일문제를 풀어가는 원동력으로 민족주의의 순기능을 확대하는 방향에서 민족을 강조하는 역사교육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국가와 민족은 공동체의 가장 기본 단위, 국제사회에서도 여전히 지배적, 기본적인 기능.우리만 왜 민족사 교육 대신, 국가사 교육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한국사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역사상을 제시하고 그에 걸맞은 한국사 교육론을 전개하 지 못하면서 현대사에서만 그렇게 하는 것은 무리한 역사 교육개편이 아닌가?→ 위의 주장은 교육적 차원에서 제기하는 주장이 아니라 < 이데올로기공세, 정치공세 >- 교과서포럼의 주장대로 민족사 대신 국가사를 쓰게 되면, 일제강점기의 친일파는 부활, 광복 후의 식민지 잔재 청산이라는 ‘정당한 역사적 과제’조차 쓸데없는 행위가 돼버리며, 민주문물을 수용하는데 기여한 것이 됨.☞ 이처럼 민족사 대신 국가사를 쓰자는 교과서 포럼의 주장은, 독재와 민주주의 탄압을 옹 호, 참여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역사인식이다. 그렇다고 권위주의적 체제를 바탕으로 한 박 정희 식 경제개발에 대한 역사적 자리매김을 완전히 거부해서도 안된다. 박정희 식 경제 개발은 한국을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바탕이었기 때문이다.5) 한국현대사에서 북한의 역사 - 배제? 일부?제 7차 교육과정에서의 북한에 대한 서술은 민족사의 일부로 북한의 역사를 포함하려는 통일지향적인 관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제 6차 교육과정 때와 달리 부정적 이미지로 북한을 묘사하지 않았고 적대적이지 않게 서술하도록 했다.▶ 금성교과서 입장은 ?- 1인 체제를 중심으로 한 북한 정치사와 최근의 변화, 그리고 남북대화와 통일정책 등을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있을 뿐.- 남한사회 내부에 통일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있고, 그것이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 고 있다는 현실 자체를 설명하고 있는 것에 불과.▶ 교과서 포럼의 입장은 ?- 북한을 찬양했다는 것이다.- ‘북한과 무조건 화해하고 협력하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 이명희는 교과서가 막연한 평화통일, 맹목적인 화해와 협력 또는 교류를 주장한다고 비 판. (북한사 인식의 문제는 북한의 역사를 『한국 근/현대사』교과서에 기술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 김영작은 북한과의 적대적 상호관계라는 측면에서 남한의 현대사를 보아야 더욱 객관적 인 한국근현대사를 서술할 수 있다고 지적. (북한을 일시적 변수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 본질적인 통일관은 “민족의 완전 자주와 민족의 통일”이 “실현성이 없는 명분”이라며 통 일 자체를 부정한다는데 있다는 것. (내부에는 반통일집단이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 현행 교과서는 통일정책의 측면에서만 남북관계를 설명한다는 한계는 있지만, 교과서에 서 북한의 역사를 서술한 것 자체는 적절하며, 한국현대사 부분의 1/4도 되지 않는 분량 으로 구성한 것 역시 타당.
'정보사회의 고용과 노동의 변화'나 ! 노동자 !!농경 사회수공업 생산, 소품종 소량생산체제, 좁은 시장, 주문을 받아 손으로 직접 제작하는 생산방식.산업 사회대량 생산 체제, 소품종 대량생산, 국가 시장을 대상, 공장의 고정된 대량 생산 라인에서 기업이 일방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정보 사회대량 맞춤 생산 체제 나 다품종 대량생산, 글로벌 시장을 대상, 변형이 자유로운 유연한 생산방식, 고객이 중간요소를 조합해 주 문, 고객이 샘플을 보고 주문 등 고객의 다양한 욕구 충족에 유리.1.정보사회의 노동에 대한 견해산업사회 포드주의 체제의 산물인 단순 반복적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소수, 지식수준이 높고 일터에서의 자율성을 보장받는 노동자들이 다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 → 산업사회 : 공장노동자 사회 / 정보사회 : 전문가, 지식노동자의 사회. 정보사회에서도 지식을 요하는 직업은 한정되며, 많은 사람들이 단순노동자로 남아 있거나 또는 주변적 노동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 → 정보사회는 대량실업의 사회.2. 고용구조의 변화산업별 취업자 구성의 변화 - 서비스 부문 취업자의 증대 정보사회의 특징 : 3차 산업 서비스업 취업자 비중이 크게 증대. ( ex. 미국의 경우 - 1929년 : 40% → 1967년 : 55%로 증대 ) 정보사회 - 2차 산업 취업자는 정체, 감소하기 시작, 서비스업 취업자는 빠르게 증가.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2차 산업의 생산성을 더욱 비약적으로 증대. → 컴퓨터 기술이 단위기계의 자동화, 라인자동화를 넘어 공정 전체의 자동화, 공장 전체의 자동화를 실현. 기술혁신에 따라 2차 산업의 생산규모는 늘어나더라도 취업자 수는 감소하는 현상, 서비스 부문의 비중 증대는 더욱 현저하게 나타남.어떤 서비스 부문?전통적 서비스업과 근대적 서비스업으로 구분 가능. → 이중 정보사회를 특징짓는 것은 '근대적 서비스업'이다. 다니엘 벨 정보사회의 서비스업은 교육, 건강 및 여러 사회서비스를 포함하는 인적 서비스(human service)와 시스템 분석, 디자인, 정보처리 등의 전문서비스(professional service). 현대사회에서 서비스업 취업자가 늘어나는 이유!1. 서비스에 대한 수요 자체의 증대. → 사람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재화에 대한 수요보다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더 빨리 늘어나기 때문. 2. 분업이 가속화됨에 따라 산업부문에 포함되었던 서비스적 활동이 서비스업으로 독립. → 과거에 제조기업이 직접 담당하던 광고 같은 것이 별로의 회사로 독립하기 때문. 3. 서비스 산업의 노동생산성 증가가 느림. → 농업, 제조업에서는 기계화와 자동화에 따라 적은 수의 사람이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것에 비해 서비스업은 기계화가 쉽지 않음. 따라서 수요 및 생산규모에 변화가 없더라도 서비스업 취업자의 비중이 늘어나게 됨.각국에서의 산업별 취업자 구성의 추이1. 서비스 부문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계속 증가하여 근래에 와서는 전체 취업자 중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 → 미국 - 71.8%, 영국 - 69.5%, 일본 - 58.4% 2. 2차 산업 부문의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감소하고 있음.1950년1970년1980년1990년미 국35.6%33.8%30.6%25.3%영 국-48.5%38.9%29.3%일 본22.7%34.5%33.9%33.8%3. 서비스업 중에서는 근대적 서비스업 취업자의 비중이 크게 증가. 미국 - 1970년 8.2% → 1990년 14.0%로 증가 영국 - 1970년 5.1% → 1990년 12.1%로 증가 일본 - 1970년 4.8% → 1990년 9.6%로 증가 ▶ 정보사회론 또는 탈산업사회론에서 제시하는 변화가 1970년대 이후 실제로 나타나고 있음.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나라에 따라 산업별 취업자 구성의 변화가 상이하다는 것.2) 직업별 취업자 구성의 변화전문직의 사회로? 단순직종보다 전문직, 기술직의 비중이 크게 증가될 것으로 예상. 이유 : 1. 정보화에 따라 새로이 등장하는 산업에서는 전통산업보다 높은 지식을 요구하는 활동의 비중이 크고, 여기에 종사하는 인력이 많기 때문이다. 2. 기존 산업에서도 정보기술의 도입에 따라 전문적 지식을 가진 근로자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 자동화 장비를 도입하거나 운용하는 엔지니어의 수는 상대적으로 증가. 각국에서의 직업별 취업자 구성의 추이1. 전문기술직 취업자가 증가하고 생산직 취업자가 감소하는 현상. 2. 관리직, 전문기술직, 판매직, 사무직을 포함하는 화이트칼라 취업자의 비율이 증가. → 1960년과 1990년의 비교 미국 - 45.0% → 57.3%, 영국 - 34.4% →56.7%, 일본 - 31.7% → 48.6% 3. 직업별 취업자 변화의 양상은 나라에 따라 상이하다. → 이유 : 직업구성의 변화가 고용관행 및 정책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 전문기술직 비중 증가 미국 - 1960년 : 11.8% → 1990년 16.9%로 증가 영국 - 1960년 : 8.7% → 1990년 21.8%로 증가 일본 - 1960년 : 5.0% → 1990년 11.1%로 증가→ 생산직 비율은 감소 미국 - 1960년 : 30.2% → 1990년 21.8%로 감소 영국 - 1960년 : 43.1% → 1990년 22.4%로 감소 일본 - 1970년 : 34.2% → 1990년 31.8%로 감소3) 고용형태의 변화 기업 내부노동시장의 약화 현대 자본주의 고용구조의 한 가지 특징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내부노동시장이 발전, 근로자도 한 기업에 오래 머무는 현상. → 정보화는 기업 내부노동시장을 약화시킬 가능성. 가장 큰 요인은 '기업 내 숙련의 퇴화'. 정보기술의 확산에 따라 지적 숙련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증가. 인력조달이 주된 고용방식, 고용관계는 매우 시장 지배적 관계로 변화. 생산직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덕목 – 육체적 책임감 중요. 불안정 고용의 증가.임시직과 파트타임 노동자 등 불안정 고용이 증대되는 것은 현대사회 고용구조의 중요한 특징. 1. 기업의 입장에서 임시노동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한 직종은 번한의 차이가 큰 직종. 2. 정보기술이 집약적으로 이용되는 첨단산업은 기술변화 및 시장의 변화가 빠름. 기업으로서는 핵심 인력 외의 단순인력은 비정규노동으로 고용하여 시장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경향이 있음.3. 노동의 질이 변하고 있다.1) 숙련화 논쟁 '숙련화론' 많은 사람들은 정보기술이 노동자의 숙련화를 가져온다고 봄. ex) 포드주의적 노동체제 하에서 단순반복적인 노동만을 하던 생산직노동자가 정보기술을 사용하는 복잡한 기계를 감시하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는 숙련노동자로 변화된다는 것. 숙련화론은 마르크스를 위시하여 자본주의 비판가들이 항상 제기해온 '노동소외'가 정보사회에서는 크게 줄거나 해소된다는 입장. 탈숙련화론정보기술의 도입, 특히 자동화로 인해 노동자에게 소속되던 숙련이 기계로 이전되고 노동자는 단순한 보조 작업만을 하게 된다는 것.'정보기술''탈숙련화''노동자'2) 정보기술과 노동의 관계기술결정론 비판 정보기술의 도입, 나아가 신기술이 인간의 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문제는 '역U자 가설' 자동화의 정도가 높아짐에 따라 처음엔 노동소외가 증가하나 자동화의 정도가 높아지면 노동소외가 낮아진다는 것. 정보기술에 따른 노동의 질의 변화는 여러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음. 중요한 것은 숙련화 경로는 인간이 선택한다는 점. 정보기술도입과 경영자의 의도정보기술도입의 결과가 인간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는데, 이때 인간이란 누구인가? 기술도입이나 노동조직에 대한 기본적 의사결정권은 경영자에게 있기 때문. 경영자들은 정보기술 도입에 있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하는가? 1. 경영자가 정보기술을 도입하는 중요한 목적이 노동자들을 탈숙련화 시키고 자본에 대한 종속성을 강화하는 데에 있다는 것. 2. 경영자들이 숙련화 경로를 선택한다는 것.1. 시장조건. 2. 기업 내 노사관계. 3. 사회제도. 노동의 질 변화의 사회적 맥락정보기술 도입에 따른 노동조직의 형태에 대한 경영자의 선택에 매우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4. 노동자층 내부의 불평등도 확대되고 있다.정보사회에서는 노동자층 내부의 불평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큼. 노동자층 내부 불평등이 확대되는 가장 큰 요인은 부가가치의 원천이 생산노동으로부터 지식과 정보로 이동해 가고 있기 때문. 정보사회에서는 내부노동시장이 약화되고 고용불안정이 증가하는 추세 역시 불평등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 그러나 불평등의 확대가 정보시장의 필연적인 결과인 것은 결코 아님. 정보기술의 발전과 확산에서 뒤처져 낙오자가 되는 사람들에게 재훈련 교육이 주어지고 사회복지제도가 유지된다면 불평등은 크게 완화될 수 있음.참고 자료서비스업 지형 변화 | Daum 미디어다음 권태환, 2000, [정보사회의 이해], 미래 M B – 6장 고용과 노동의 변화.저희의 발표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ㅡ^)/ * . ' ~ + ,{nameOfApplication=Show}
‘정보사회의 고용과 노동의 변화’농경사회 - 수공업 생산으로 소품종 소량생산체제이며 좁은 시장이며 주문을 받아 손으로 직접 제작하는 생산방식이다.산업사회 - 대량 생산 체제로 소품종 대량생산을 주로 했으며 국가 시장을 대상으로 하고 공장의 고정된 대량 생산 라인에서 기업이 일방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이다.정보사회 - 대량 맞춤 생산 체제 나 다품종 대량생산 을 주로 하며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고 변형이 자유로운 유연한 생산방식으로 고객이 중간요소를 조합해 주문, 고객이 샘플을 보고 주문 등 고객의 다양한 욕구 충족에 유리하다.1.정보사회의 노동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 산업사회 포드주의 체제의 산물인 단순 반복적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소수가 되고, 지식수준이 높고 일터에서의 자율성을 보장받는 노동자들이 다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 산업사회 : 공장노동자 사회 / 정보사회 : 전문가, 지식노동자의 사회● 정보사회에서도 지식을 요하는 직업은 한정되며, 많은 사람들이 단순노동자로 남아 있거나 또는 주변적 노동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 정보사회는 대량실업의 사회2. 고용구조의 변화1) 산업별 취업자 구성의 변화● 서비스 부문 취업자의 증대- 정보사회의 특징 : 3차 산업인 서비스업 취업자의 비중이 크게 증대되고 있다.( ex. 미국의 경우 - 1929년 : 40% → 1967년 : 55%로 증대 )- 정보사회에서는 2차 산업 취업자는 정체하거나 감소하기 시작하며, 서비스업 취업자는더욱 빠르게 증가한다. 그리고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2차 산업의 생산성을 더욱 비약적으로 증대시키고 있다.→ 컴퓨터 기술이 단위기계의 자동화, 라인자동화를 넘어 공정 전체의 자동화, 공장 전체의 자동화를 실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에 따라 2차 산업의 생산규모는 계속 늘어나더라도 취업자 수는 감소하는 현상을 볼 수 있고, 이에 따라 서비스 부문의 비중 증대는 더욱 현저하게 나타난다.● 어떤 서비스 부문?- 서비스 부문은 전통적 서비스업과 근대적 서비스업으로 구분 가능하다로 독립.→ 과거에 제조기업이 직접 담당하던 광고 같은 것이 별로의 회사로 독립하기 때문이다.3. 서비스 산업의 노동생산성 증가가 느림.→ 농업이나 제조업에서는 기계화와 자동화에 따라 적은 수의 사람이 많은 양을 생산할수 있게 되는 것에 비해 서비스업은 기계화가 쉽지 않다. 따라서 수요 및 생산규모에변화가 없더라도 서비스업 취업자의 비중이 늘어나게 된다.● 각국에서의 산업별 취업자 구성의 추이1.서비스 부문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계속 증가하여 근래에 와서는 전체 취업자 중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 71.8%, 영국 - 69.5%, 일본 - 58.4%2. 2차 산업 부문의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감소하고 있음.1950년1970년1980년1990년미국35.6%33.8%30.6%25.3%영국-48.5%38.9%29.3%일본22.7%34.5%33.9%33.8%3. 서비스업 중에서는 근대적 서비스업 취업자의 비중이 크게 증가.→ 미국 - 1970년 8.2% → 1990년 14.0%로 증가영국 - 1970년 5.1% → 1990년 12.1%로 증가일본 - 1970년 4.8% → 1990년 9.6%로 증가▶ 정보사회론 또는 탈산업사회론에서 제시하는 변화가 1970년대 이후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나라에 따라 산업별 취업자 구성의 변화가 상이하다는 것이다. 이는 정보사회에서의 고용구조가 주어진 경로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의 제도와 정책에 의해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2) 직업별 취업자 구성의 변화● 전문직의 사회로?단순직종보다 전문직, 기술직의 비중이 크게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유 : 1. 정보화에 따라 새로이 등장하는 산업에서는 전통산업보다 높은 지식을 요구하는 활동의 비중이 크고, 여기에 종사하는 인력이 많기 때문이다.2. 기존 산업에서도 정보기술의 도입에 따라 전문적 지식을 가진 근로자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섬유산업에서도 자동화가 진전되면 단순 육체노동자의 수가 감소하는 대신 자동화 장비를감소일본 - 1970년 : 34.2% → 1990년 31.8%로 감소2. 관리직, 전문기술직, 판매직, 사무직을 포함하는 화이트칼라 취업자의 비율이 증가한다.→ 1960년과 1990년의 비교미국 - 45.0% → 57.3%, 영국 - 34.4% → 56.7%, 일본 - 31.7% → 48.6%3. 직업별 취업자 변화의 양상은 나라에 따라 상이하다.→ 이유 : 직업구성의 변화가 고용관행 및 정책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3) 고용형태의 변화● 기업 내부노동시장의 약화- 현대 자본주의 고용구조의 한 가지 특징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내부노동시장이 발전, 근 로자도 한 기업에 오래 머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 정보화는 기업 내부노동시 장을 약화시킬 가능성.- 가장 큰 요인은 기업 내 숙련의 퇴화. 기업 내에서의 경험과 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숙련 은 기업 내부노동시장의 경제적 기반이었다. 그러나 정보기술의 확산에 따라 경험적 숙련 보다 지적 숙련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증가한다.ex) 기업 내 장기 근속자보다는 대학에서 교육받은 젊은 신참 노동자가 훨씬 업무를 잘하는 일이 벌어짐. 기술혁신이 빨라지면 기존의 숙련은 쓸모없게 됨. 외부시장은 그때그때 필요한 인력을 조달하는 방식을 선호.- 인력양성보다 인력조달이 주된 고용방식이 되며, 고용관계는 매우 시장 지배적 관계로 변 화한다. (컴퓨터, 첨단산업에서 두드러짐.)- 정보화로 인한 기업조직의 변화도 간접적인 요인이다.정보사회에서는 조직형태가 위계적 조직에서 평판형 조직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 은 사무직 및 중간관리직의 내부노동시장을 약화시킬 것이다.ex) 근로자가 한 기업을 평생직장으로 알고 오래 머무는 경향은 크게 약화, 근로자들은 이 기업, 저 기업, 이 직종, 저 직종을 옮겨 다니며 유연한 커리어를 추구하게 됨.- 정보기술의 도입과 자동화는 생산직 노동자의 직무도 감시노동으로 변화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생산직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으로는 육체적 숙련보다 책임감이 더욱 중요해 진다. (Oste화에 따른 서비 스업 취업자는 증가는 불안정 고용이 증대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2. 정보기술이 집약적으로 이용되는 첨단산업은 기술변화 및 시장의 변화가 빠르다.기업으로서는 핵심 인력 외의 단순인력은 비정규노동으로 고용하여 시장변화에 유연하 게 대응하려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고용형태로서의 재택근무정보사회를 상징하는 고용형태로 제시되는 것이 재택근무이다. 재택근무는 근무형태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족생활, 나아가 지역공동체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견된다. (Haddon & Silverstone, 1995 : 앨빈토플러, 1991).3. 노동의 질이 변하고 있다.정보사회에서는 고용구조가 변화하여 노동자의 ‘부류’가 변화하는 것과 동시에 같은 부류의 노동자가 하는 일에도 커다란 변화가 초래될 수 있다.1) 숙련화 논쟁● 숙련화론많은 사람들은 정보기술이 노동자의 숙련화를 가져온다고 본다.ex) 포드주의적 노동체제 하에서 단순반복적인 노동만을 하던 생산직노동자가 정보기술을 사용하는 복잡한 기계를 감시하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는 숙련노동자로 변화된다는 것.- 자동화에 따라 생산직 노동자들이 ‘시스템 컨트롤러’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다.- 숙련화론은 마르크스를 위시하여 자본주의 비판가들이 항상 제기해온 ‘노동소외’가 정 보 사회에서는 크게 줄거나 해소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사회주의나 사민주의 또는 산업 민주주의 같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제도적 변화가 없어도 기술혁신에 의해 노동소외가 해 소 될 수 있다는 함의를 담고 있기 때문에 주목된다.● 탈숙련화론- 정보기술이 노동자를 탈숙련화 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브레이버만은 독점자본주의에서 생 산노동 및 사무노동이 탈숙련화 된다는 점을 주장, 자동화기술 도입을 탈숙련화의 중요한 요인으로 들었다(Braveman, 1974).- 셰이큰 같은 학자가 컴퓨터수치제어(CNC) 같은 정보기술 도입이 현장노동자를 탈숙련화 했다고 주장했다(Shaiken, 1989).- 정보기술의 도입, 특히 자동화로 인해 노동자에게 소속되던 의 선택에 의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정보기술에 따른 노동의 질의 변화는 단일한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 로 나타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숙련화 경로는 기술이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선택한다는 점이다.● 정보기술도입과 경영자의 의도정보기술도입의 결과가 인간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는데, 이때 인간이란 누구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역시 경영자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기술도입이나 노동조직에 대 한 기본적 의사결정권은 경영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은 정보기술 도입에 있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하는가?1. 경영자가 정보기술을 도입하는 중요한 목적이 노동자들을 탈숙련화 시키고 자본에 대한 종속성을 강화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ex) 노블(Noble), NC기술이 도입된 이유는 효율적이 아니라, 노동자를 탈숙련화하고 이 를 통해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통제를 강화하는 기술일 것으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라 주장.2. 경영자들이 숙련화 경로를 선택한다는 것이다.ex) 아들러는 기업 간 경쟁의 압력이 경영자로 하여금 탈숙련화 경로보다는 숙련화 경로를 선택하고 있다고 주장. 상황조건에 따라 경영자의 선택이 다양할 수 있지만 숙련화라는 전반적 추세는 뚜렷하며, 이런 경로를 선택하지 않는 경영자는 경쟁에서 뒤지게 될 것 이라고 말하고 있음.● 노동의 질 변화의 사회적 맥락정보기술 도입에 따른 노동조직의 형태에 대한 경영자의 선택에 매우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1. 시장조건이다. 기업이 고가격, 고품질 시장에서 경쟁하는가, 저가격, 저품질 시장에서 경쟁하는가에 따라 노동조직 전략이 상이할 것이다. (전자-숙련화경로(유연전문화), 후 자-탈숙련화경로(컴퓨터 의존 대량생산))2. 기업 내 노사관계이다. 노동자들이 생산방식의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숙련화 경로가 선택될 가능성이 많고, 반대로 생산방식의 결정과정에서 배제되어 있는 경우에는 탈숙련화 경로가 채택다.
【 현대 한국문화의 특질 】( ①음식문화 ②여가문화 ③대학문화 )< 목 차 >Ⅰ . 서 론Ⅱ . 본 론1-1 . 음식 문화.2-1 . 여가 문화.3-1 . 대학 문화.Ⅲ . 결 론Ⅰ. 서 론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는 그 구심점에서 밀려 났고 산업 사회·도시화 사회·정보화 사회 과정 속에서 종교의 권위와 영향력은 약화되어졌고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문화 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로 들어오면서 우리 한국의 문화와 여러 생활반면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서양의 근대 문물이 들어오면서부터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나 삶 그리고 생활양식에 깊숙이 파고들어 한국문화에 특질이 바뀌어져 왔다. 그러한 특질을 더 알아보고 영향을 미친 몇 가지의 사례를 들어 현대 한국문화의 특질을 알아보았다. 음식문화, 영화문화, 대학문화를 큰 중심으로 잡아 알아보겠다.Ⅱ. 본 론1-1. 음식문화.문화란 예술이나 학문처럼 뭔가 고상한 것으로서, 평소의 사소한 음식에 관한 것은 문화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문화는 어떤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행동양식으로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습득되어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것이다. 문화를 이와 같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식생활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행동이나 물건은 거의 다 문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매일 먹는 먹 거리를 생각해보자. 매일의 식단이 매우 비슷함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아침식사에 쌀밥, 국, 김치를 먹는 사람과 빵과 우유를 먹는 사람이 늘 같은 형태의 아침식사를 먹고 있다. 또 전날 저녁식사로 쌀밥, 생선이나 쇠고기 요리, 채소 요리, 김치, 찌개를 먹은 사람은 그 이전의 저녁식사와 비슷한 식단일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식사는 매일 마찬가지로 되풀이되며, 이러한 식사법은 다름 세대에 전달된다. 아침식사로 밥, 국, 김치를 먹는 것은 우리나라의 가정에 널리 퍼져있고, 앞으로의 세대에게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위에서 말한 문화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이 아침식사법은 명백히 문화이다. 이와 같이 었다. 동물성 식품의 섭취 무족에서 오는 단백질 결핍은 콩을 이용하여 만든 장류와 두부로 보통 하였으며 참기름, 들기름, 콩기름 같은 식물성 유지도 많이 사용하였다. 반찬의 조리법으로는 구이, 전, 조림, 볶음, 편육, 나물, 생채, 젓갈, 포, 장아찌, 찜 전골이 있다. 김치, 장, 젓갈은 철에 맞추어 담갔다가 한 해 내내 빠지지 않고 상에 올린다.한국 음식의 특징은 나물 요리에서 쇠고기구이까지 이른 바 '갖은 양념'이라고 하여 간장, 파, 마늘, 깨소금, 참기름, 후춧가루, 고춧가루가 모두 들어가는 것이다.음식의 재료가 가지고 있는 맛보다는 여러 가지 양념을 많이 하여 생긴 새로운 맛을 즐긴다. 물론 곰국이나 영계백숙같이 소금과 후춧가루로만 맛을 내어 즐기는 음식도 많이 있다. 또 한국 음식에 쓰이는 재료의 어울림이나 조미료의 쓰임새를 보면 한방에서의 약식동원의 말처럼 좋은 음식은 몸에 약이 된다는 근본 사상이 나타나 있다. 보통 음식에 한약의 재료 곧 인삼, 생강, 대추, 밤, 오미자, 구기자, 당귀 따위가 흔히 들어간다.조선 시대의 유교 사상은 한국 음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유교 의례를 중히 여겨서 통과 의례로 잔치나 제례 음식의 차림새가 정해졌으며 보통 때의 반상 차림도 반드시 한 사람 앞에 한 상씩 독상을 차렸다. 그리고 조반을 중요하게 여겨 요즘까지도 생일에 손님을 아침에 대접하는 풍습이 남아 있다. 풍속에서 한국 음식의 특징을 살펴보면 철에 따른 시식과 절식이 있다. 이것은 제 철에 나는 식품으로 별미를 즐기는 풍류였다. 집안의 경사나 제사 같은 의례가 있을 때에는 음식을 풍성하게 장만하여 이웃과 친척에게 나누어 주는 아름다운 풍습도 있다.한국의 음식문화는 여러 세대의 가족이 모여 웃어른들을 섬기며 예의 규범을 지키는 식생활을 하던 대가족제도에서, 궁핍한 일제시대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 간신히 끼니를 때우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게 다행인 식생활이 되면서 잘 갖추어 먹던 우리 전통 음식문화가 상실되어갔다. 분식장려, 우유보급, 급식제도로 빵, 국고, 일본에서는 밥그릇을 놓고 먹으면 ‘개’취급을 당한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식문화 가운데 하나의 단적인 차이이다.▶ 한국에서는 커다란 밥식기와 숟가락을 주로 사용한다.- 커다란 밥식기를 쓰니 쉽게 들고 먹을 수가 없다. 무거워서 그럴 뿐 아니라, 뜨거워서도 그러기 어렵다. 그래서 밥상에다 놓고 먹게 되니 숟가락을 써야 한다. 젓가락으로 밥을 집어 먹다간 흘리기 쉽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작은 밥공기와 젓가락을 주로 사용한다.- 작은 밥공기를 쓸 경우에는 숟가락을 사용할 수 없다. 밥먹기를 중단하기 전까지는 숟가락을 밥그릇에 늘 올려두어야 하는데, 그럴 경우 밥이 얼마 남지 않았으면 밥공기가 기울어져 넘어지기 때문이다. 국을 먹을 때조차 젓가락을 쓰는 까닭도 이 작은 밥공기 탓이다. 숟가락은 음식을 덜어 담을 때나 쓰는 것이다. 게다가 작은 밥공기에다 어느 정도 식은 밥을 담고 있으니 손으로 받쳐 들고 먹는 것이 더 기능적이다. 젓가락을 사용해도 흘릴 염려가 없을 뿐 아니라, 국을 담은 공기도 거의 입에 가까이 대고 마시니 젓가락으로 건덕지를 걸어먹으면 된다. 결국 국을 먹을 때조차 숟가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밥솥에서 바로 식기에다 밥을 가득 퍼서 밥상 위에 차린다.- 밥솥에서 식기에 그득 담은 밥은 따뜻함이 오래간다.▶ 일본에서는 큰 양푼에다 퍼 온 밥을 제각기 공기에다 조금씩 덜어 먹는다.- 양푼에다 몇 차례씩 덜어먹는 밥은 쉽게 식어버리기 마련이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문화적 전통과 특질에서 비롯된 것이다.6. 음식문화의 과제와 개선방안.우리의 식생활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음식문화로, 곡류를 중심으로 김치, 나물, 생선, 고기 등 부식을 곁들어 먹는 우리만의 고유한 음식문화를 3000년 이상 가꾸어왔다. 이런 전통 음식문화는 균형된 영양 공급뿐만 아니라, 온화하고 부지런한 국민성을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는 국과 찌개를 즐겨 찾는 음식문화로 유명하다. 고기를 원료로 하거나 채소를 재료로 하여 국을 끓이고, 재료가 부왔다는 점과 분단국가라는 점 등이 현대 한국의 여가문화를 규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3S정책(sex, screen, sports)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여가의 상업화 현상이 독재정권이 애용하는 이른바 우민화 정책과 맞물려간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우를 찾아보면 대표적인 것으로 프로야구를 발견할 수 있다. 프로야구가 처음 발의된 것은 1981년 5월 청와대 비서진으로 구성된 11인 수석회의에서였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야구 또는 축구의 프로화에 대해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바 있고, 1982년 1월 20일 프로 구단주들이 청와대 오찬에 초대되었을 때 전두환 대통령은 ‘지방유지들이 관심을 갖도록 지역적 특성이 있는 응원을 하도록 하라.’, ‘국민들을 보다 즐겁게 하라.’, ‘문교부와 문공부는 합동하여 언론기관을 통한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하라.’ 라고 하는 등의 지시사항을 내렸다.3) 향락, 퇴폐업소의 급격한 팽창한국에서 향락, 퇴폐업소는 정부차원에서도 간접적으로 조장해 왔다는 점에서 그 특수성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외화 획득을 목적으로 한 정부의 기생관광에 대한 묵인, 방조, 조장이라는 현상이다. 기생관광을 전문으로 하는 대형 관광 요정이 정부지원 하에 80년까지 27개소가 번창하였다. 또 정부 투자기관인 국제관광공사가 후원하고 관광협회가 주최하는 관광기생 지원자들에 대한 대규모의 소양교육이 정기적으로 실시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오늘날의 여가사회를 만드는 또다른 요인이 된다.4) 전통적 요인한국인은 한말 이후 격변기를 거쳐오면서 전통문화의 여가가 붕괴되었다고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새로운 놀이문화를 창출할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갖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늘날 대중이 대중매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일상적으로 자기가 직접 즐길 수 있는 놀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치열한 생존 경쟁의 상태가 지속되는 사회에서, 생의 에너지를 소진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은, 오늘날의 한국인에게 지적 숙련이나 미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여1시간 내(28.6%)로 가장 많았고, 2시간 이상 ~3시간 이하(10.2%)로 조사되었다. 여가활동비는 월 평균 약 233,400원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40%이상이 4만원이상~ 5만원이하라고 답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주 5일 근무제에 따른 여가활동의 시간이 단순 휴식이 아닌 자기개발의 장으로 활용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단계임을 알 수 있다.네 번째로 직장인과 여가활동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말을 해보도록 하겠다.1) 문화소비 소외층 발생문화소비의 격차가 발생되어 예컨대, 대도시, 여유층, 정규근로자, 남자, 미혼자들이 대량 참여하고 그 반대층은 상대적 소외감을 가질 것이다. 또 여가 시간 및 여가활동의 여유 정도에 따라 여가활동의 빈부현상이 발생될 가능성도 있다. 저소득층,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직장인의 경우 저가의 프로그램이 빈곤한 상태여서 여가생활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2) 불안정적 소비 발생자발적인 프로그램 개발이 여의치 않을 경우 우선, 경마, 카지노 등에서의 시간 소비 및 사행성 오락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3) 시설 및 인력의 부족여가 희망자 급증에 따라서 생활권에 인접하는 문화체육시설이 여전히 부족하고, 근무하는 인력 또한 부족하다. 비용절약적 문화관광 수요 급증에 따라서 테마형 관광시설 및 중저가 가족휴양용 숙박시설 부족이 예상된다. 문화시설 종사자들의 경우 특별한 인력 보가이 없으면 추가근무 시간증가에 따른 업무부담이 따라온다. 문화활동을 지원할 문화촉매 요원이 부족하다.4. 결 론 : 나아가야할 방향.결론을 말하자면 주 5일 근무제로 인하여, 사람들은 점점 개인적인 문화욕구가 강해지고, 자유여가시간이 많아지더라도 단 시간내에 문화소비증가로 이어지기는 어렵지만, 문화소비 희망층이 많아 중장기적으로 자연스럽게 문화소비 증가의 계기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문화생활의 증대는 개인적 요건의 충족 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건이 함께 충족되어야 한다.여가활동은 당장 새로운 형태의 소비가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시간소비형, 관람형,.
<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 >Ⅰ. 서 론- 식민지 근대화론의 정의.Ⅱ. 본 론- 일제 식민지정책과 ‘근대화’의 검토.( 학술 부문,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근대화 )- 광복이후 한국사회와의 연관성.Ⅲ. 결 론- 결론 및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우리의 생각.Ⅰ. 서 론◎ 식민지 근대화론(植民地近代化論)이란?- 일본의 조선 침략과 식민 지배가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주장.- 일본 식민통치가 단순히 조선을 착취한 데 그친 게 아니라 조선사회를 근대화시키는 데 에도 기여를 했다는 이론.- 한국의 역사학계에서 사용하는 용어, 넓게는 최근의 동남아 신흥공업국가에서 보여 지듯이 세계사적으로 과거 피식민국가들이 식민지하에서 근대화되었다는 것을 통칭하는 것. 좁게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가 식민지하에서 근대화되어갔다는 것.- '식민지 수탈론'에 대칭되는 말로서, 종래 일제하에서 일방적으로 수탈당하기만 했다는 역사인식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오게 된 '식민지 자본주의화론' '식민지 개발론' '식민 지 공업화론' '식민지 산업화론' '식민지 미화(낡은 것, 뒤떨어진 것을 그럴듯하게 꾸며 본질을 가림.)론' 등을 총칭해서 역사학계에서 사용.Ⅱ. 본 론- 학술 부문 - “한국은 구한말(대한제국부터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기전까지)에 스스로 자 주독립할 능력은커녕 저절로 무너지게 된 나라로, 일본이 한국인의 요청에 따라 떠맡아서‘개발’시켜주고 ‘근대화’시켜준 ‘혜택’을 베풀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수출 하여 보급. 광복 60년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비약적 발전의 동인(어떤 현상을 일으키거나 변화시키는 데 직접 작용하는 원인. )을 천만뜻밖에 일제‘식민지근대화의 연속’이라고 설명, 오늘날 한국사회의 비약적 발전의 역사적 동인이 일제 식민지정책의 ‘식민지근대화’에 있다고 설명.◎ 일제 식민지정책과 ‘근대화’의 검토.1) 정치적 근대화- 정치적으로 ‘근대화’란 독립한 국가 또는 정치체를 전제군주체제(군주에 의해 통치되는 체제)에서 입헌대의체제(근대적 국민국가로 점기에, 조선 총독이 법률에 대신하여 발포한 명령).이라 이름 하여 총독이 제령으로 통치함을 선언. → ‘명령’에 의한 폭압 통치 강행.(전근대 형태)- 한국의 주권 자체를 말살, 한국인의 정치 근대화 운동(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의병운동) 을 주적으로 규정, 말살, 탄압.→ 한국의 ‘정치적 근대화’를 말살시키는 정책을 강행한 것.2) 사회적 근대화- 사회적으로 ‘근대화’란 신분제사회로부터 시민권을 가진 시민들이 구성하는 시민사회로변동 이행하는 것을 보편적으로 가리킴.- (무엇을 폐지??)1894년 동학농민혁명운동과 갑오개혁으로 폐지. 시민의 기본권은 법률에서도 급속히 제정, 보정되기 시작. 급속히 성장. → 1910년 8월 일제 강점 후 시민권은 원천적으로 말살. 시민사회의 성립과정은 갑자기 중단, 저지당함.- 일제 식민지 통치는 기본권인 생명과 신체의 자유권, 평등권, 언론과 출판의 자유권, 집 회와 결사의 자유권, 시민 저항권, 국민 주권, 국민 참정권 모두 말살, 허용하지 않음.→ 무권리한 상태의 예속민적 생활.- ‘민족 차별’을 제도화, 억압. 한국인은 일본인과 동일 직장에서 동일한 시간의 동일한 작업을 해도 ‘조센징’이란 이유만으로 임금을 일본인의 약 50%만 지불, ‘민족 차별’ 을 제도화. 직장 생활, 교육, 공공 활동 등 모든 사회생활에 제도화하여 가시적으로 적 용.- 한국의 ‘사회적 근대화’와 시민사회의 성립을 원천적으로 말살, 획책한 것.3) 문화적 근대화- 문화적으로 ‘근대화’란 특권층 중심의 귀족문화에서 일반 시민, 민중 중심의 민족문화 로 변동 이행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가리킴.- ‘동화 정책’(본국 또는 지배민족이 식민지의 원주민이나 또는 국내의 소수민족을 자기의 문화에 동화시키려는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민족과 민족문화의 말살정책을 교활, 폭압적으로 강제. → 한국 언어, 한글, 한국민족문화, 한국역사, 한국 문학, 예술을 말살, 획책.- ‘민족별’분류 고찰을 반드시 수행해야 함. → 일제 ‘식민지정책부문’과 ‘한국 네모딱지먹 활자와 xxx표의 검열불통과 삭제부분이 이를 증명.- 이육사, 이상화, 윤동주 등 수많은 문학, 예술인들이 투옥. 고문당한 사실이 잘 증명해 줌.- 일제는 한국민족과 민족문화의 소멸 위해 한국어 말살정책 강행. 일본어를 상용어로 강 제. 관청은 물론이고 상점, 극장, 운동장에서도 오직 일본어만 사용하여 방송하도록 함. 우체국, 철도, 통신, 교통, 통신에서도 일본어 사용하지 않으면 매표와 통화를 금지.→ 한국어 말살과 일본어 사용은 전체 사회생활에 강제.- 1943년 일본어 해득자는 조선인의 약 22%에 불과.→ 말 못하는 벙어리 생활 강제당한 것.- ‘문화적 근대화’를 저지, 탄압했으며, 아예 한국민족문화를 말살시키려고 획책한 것이 역사적 사실.4) 경제적 근대화- 경제적 근대화란 일반적으로 중세적 봉건적 경제 조직과 생산 방식으로부터 산업자본주의 공업화의 달성을 가리킴.- 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①식량 공급지 ②원료 공급지 ③독점적 자본 시장 ④식민지 초과 이윤의 수탈지 ⑤ 저렴한 노동력 공급지 ⑥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군사 작전에 필요한 인원과 물자를 관리, 보급, 지원하는 근거지 )기지로 개편→ ‘수탈의 극대화’를 달성하려는 것.- 1930년대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중 ①공출제도 ②징용 ③징병 ④여자 정신대, 종군 위안부 징발 → 악랄한 식민지 정책을 자행.- 경제정책 중 식민지 농업정책으로 1910~1918년 ‘조선토지사업’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 권력이 한국 국토 총 면적의 50.4%를 무상으로 일제 조선 총독부 소유로 약탈한 토지 약 탈 정책.-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일제 총독부는 조선 내 최대의 지주가 됨과 동시에 식민지 통치 권 력에 의거, 한국 소작농을 가장 조직적으로 가혹하게 수탈한 대관료 지주가 됨.→ 이러한데도 일본의 신 팽창주의 옹호자들과 국내 내응자들은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을 근 대화 정책으로고 적극 옹호하고 있음.- 일제의 식민지 농업정책은 구한말의 반봉건적 지주제도(토지의 소유권을 개인이나 단체가 점유할 수 있는 제도 )를 폐의 저항운동을 극심하게 탄압, 식민지 반봉건 지주 제도를 적극 엄호.- 저항투쟁을 무력으로 탄압하면서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적극 엄호한 것은 일제의 ‘무상 토지약탈’을 위한 것.- 식민지 반봉건 지주제도를 적극 엄호한 것은 한국인의 식량 소비수준을 극도로 절하, 최 대한의 잉여 생산물을 짜내어 수집, 일본으로 공급할 수 있었음으로 일제의 목적에 적합 한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 일제의 식민지 공업정책은 1910년 회사령 제정 공포 → 조선총독의 사전 허가 받도록 제 도화 → 한국 공업의 발흥을 사전에 권력으로 억압, 한국을 일제의 완전한 독점적 상품시 장으로 개편하는 것.- 1931년 ‘대륙전진 병참기지’로 개편 → 대륙침략을 위한 군수공업 단지를 만들기 시작.일본인을 제외하고는 한국인 강제 징용자들을 투입, 저임금의 강제노동 강요.- 1930~40년대 한반도 북부 군수 공업 (일제의 만주 침략, 중?일 전쟁, 소?일 전쟁에 군수물 자와 무기를 공급하기 위한 병참 공장) → 일본군의 공업.- 농업 부문에서 식민지 반봉건 지주제도를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엄호.공업부문에서 산업자본주의도 확립하지 못한 채 한국을 독점적 상품 시장으로 개편한 일 제의 식민지정책은 본질적으로 경제적 근대화를 저지한 정책.▶ 정치적 - 한국의 전제군주체제를 입헌대의제로 근대화가 아닌→ 한국의 주권자체를 강탈, 소멸. 한국인의 망명 임시정부의 근대체제를 ‘주적’으로 박멸, 탄압. 총독의 전제적 ‘명령’에 따라 식민지 통치를 자행한 것→ 한국의 정치적 근대화 저지, 소멸시켜 버린 것.▶ 사회적 - 한국의 신분제사회를 해체, 한국인들의 기본적 시민권인 생명과 신체의 자유권, 언론 ? 출판의 자유권, 집회 ? 결사의 자유권, 주권, 참정권, 시민 저항권 등 시민의 모든 기본권을 박탈, 무권리한 예속민으로 떨어뜨린 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사회적 근대화를 이룬 것 아님 → 사회적 근대화를 저지시켜 버린 것.▶ 문화적 - 식민지 정책이 귀족 중심의 문화로부터 한국의 민중 중심민족문화를 발전시국인의 산업자본주의 형성을 저해한 것 → 한국의 근대화 추진 실현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경제적 근대화 저해, 저지한 것.→ 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이 시기 한국의 근대화를 저해하고 저지한 정책.⇒ 한국민족의 진정한 근대화는 1945년 8.15 광복 ? 해방이후에야 가능하게 되었음.◎ 광복이후 한국사회와의 연관성.- 신군국주의자, 신 팽창주의자들과 일부 친일파들은 1960년대부터 한국의 고도성장과 경제 발전의 기원이 일제의 식민지정책에서 나온 것임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음.① 일제의 중화학공업 자본 시설은 주로 38도선 이북의 북한지역에 배치되어 있었고 남한에는 배치되어 있지 않았음. → 북한 (화학, 금속, 요업, 가스전기업), 남한 (인쇄 제본, 방직, 식료품, 목제품공업)② 직접지배의 유형이어서 일본인만 기술자로 교육, 훈련시켰고 한국인들에게는 ‘기능’이외의 ‘기술’은 교육시키지 않았음. → 광복 직 후 기관차가 있어도 운행을 제대로 하지 못 함.③ 일제가 남긴 자본 시설은 1950~1953년의 한국전쟁으로 남, 북에서 모두 철저히 파괴되었음. → 미 공군의 폭격은 일제의 자본 시설, 철도, 교량, 도로 등 철저히 파괴.④ 1960년대 한국 고도성장의 주역이 된 기업들은 거의 모두 광복 후에 새로 창립하고 발전하였음. →1000여 개의 한국 고도성장, 경제발전의 기업은 창립연도와 내용을 보면 99% d이상이 광복 후 새로 창립된 것.Ⅲ. 결 론- 일본의 신 팽창주의자들(국가의 영토 확장을 지향하는 이념이나 정책. 흔히 대내적으로는 국가주의를 강조하고 대외적으로는 침략 정책을 써서 결국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신국주의자들이 구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과 식민지 강점 및 식민지 수탈정책을 합리화, 정당화하고 미화하기 위한 유사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 한국민족이 스스로 독립하고 스스로 근대화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 제국주의가 자 비를 베풀어 한국을 식민지로 껴안아서 식민지 정책을 통해 근대화 시켜주고 개발시켜주 는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