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삶과 문화 요약 및 감상【 요약 】Ⅰ. 한민족의 생활과 민속 문화1. 서양인과 다른 한국인의 손짓 : 문화는 한 지역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형성되어 전해 오는 유형 ? 무형의 것 일체를 말한다. 그러므로 문화는 민족에 따라서 다르다. 그런데 민족문화는 각각의 형성 배경과 의미가 있다. 우리 민족의 문화 역시 그 나름의 형성 배경이 있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2. 운명의 네 기둥 : 사주는 태어난 해, 달, 날짜, 시각을 각각의 기둥으로 하는 연주, 월주, 일주, 시주를 말한다. 연주는 조상, 월주는 부모, 일주는 나, 시주는 자녀에 해당한다. 사주는 흔히 10간 12지를 조합한 육십갑자로 말한다.3. 꿈보다 해몽 : 옛사람들은 정신적인 꿈을 신성시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여주는 조짐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해몽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러나 꿈이란 것은 해몽하기 나름이므로 꿈의 내용에 연연하여 마음을 빼앗길 것 없이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그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4. 양기를 북돋우는 부추 : 우리나라에서는 부추를 병마나 액을 쫓는 힘이 있다 하여 김치를 담글 뿐만 아니라 각종 찬을 만드는 데 집어넣었다. 이것은 부추가 오색 채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추는 겨울에도 죽지 않으며, 뿌리를 찢어 심어도 잘 살고, 몇 번씩 잎과 줄기를 잘라도 바로 싹이 나기 때문이다. 한방에서는 남자의 양기를 북돋우는 풀이라 하여 ‘기양초’라고도 한다.5. 복을 가져다주는 두꺼비 : 우리 민속에서 두꺼비는 족제비, 구렁이 등과 함께 집지킴이 또는 재물을 관장하는 신을 상징하는데 가신 또는 수호신의 성격을 띠며 재복을 관장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두꺼비나 족제비, 구렁이는 부잣집에 꾄다고 전해 온다.6. 들돌놀이와 들돌제 : 예전에는 마을 앞 정자나무 밑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무게가 약 140~150근 되는 둥근 돌이 놓여 있는 마을이 많이 있었다. 이것이 거치는 일종의 성년식으로써 체력을 매우 중요시하는 농경사회의 일면을 짐작케 해준다. 이런 들돌 들기의 의미를 되새기며 들돌놀이나 들돌제를 지내는 마을도 있다.7. 풍농을 기원하는 볏가릿대 : 볏가릿대 세우기는 농사철이 되기 전에 미리 농사짓는 것을 가장하여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다. 장대는 천상의 신이 지상을 오르내리는 통로의 의미를 지닌다. 볏가릿대는 대나무나 소나무를 사용한다. 대나무는 마을의 운수가 대나무와 같길 바라는 마음에서, 소나무는 곧은 절개를 닮으라는 의미에서 사용한다. 장대는 짚으로 꼰 동아줄 세 가닥으로 고정한다. 짚은 땅에서 자란 다산의 식물로 신성의 의미를 지닌다.8. 풍요로움과 감사가 넘치는 추석 : 추석날 아침에는 햇곡식으로 빚은 송편과 햇과일 등 각종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 차례를 지내고, 아침 식사를 마친 뒤에 다 같이 성묘한다. 추석 며칠 전에는 조상의 묘를 찾아가 잡초를 뽑고, 잔디를 깎는데 이를 벌초라 한다. 대표적인 한가위 민속놀이로는 거북놀이, 소놀이, 강강술래, 줄다리기가 있다.Ⅱ. 한국인이 모시는 신과 신앙1. 집안에 모신 신들 : 한국인은 예로부터 살고 있는 집의 요소에 집안을 보살펴 주는 신이 있다고 믿고 그 신에게 의례를 행하여 왔다. 가신마다 각각 기능도 다르고 봉안장소와 형태도 다른데 성주신, 조상신, 조왕, 삼신, 터주신, 업신 등의 가신이 존재한다.2. 마을을 지켜주는 신들과 동신제 : 동신신앙은 마을의 수호신을 마을 신당에 모셔놓고 제액초복을 위해 마을 사람들이 합동으로 제의를 올리는 마을의 공동 신앙이다. 마을신당에서 올리는 제의를 동신제라 한다.3. 앞일의 예측과 점복 : 점복이란 인간의 생활에 따르는 모든 조짐을 신비적인 방법으로 미리 알아내어 인간의 생활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점복에는 신점, 역리에 의한 점, 상점, 몽점, 풍수점 등이 있다.4. 무당과 무속의 신들 : 무속은 민간층에서 무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 현상으로 민간신앙의 한 형태다. 흔히 무당이라고 부르는 간의 종교적 지도적 역할을 하는데 무당형, 단골형, 심방형, 명두형으로 구분한다. 무당이 몸주로 받드는 신에는 천신, 자연신, 인신 등 여러 계통의 신이 있다.5. 명당과 자손의 행복 : 풍수에는 양택풍수와 음택풍수가 있다. 풍수설은 산수가 신비로운 생기를 품고 있으면서 인간 생활의 배후에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한다고 믿고 인간 생활에 복리를 추구하려는 하나의 민간신앙이다.6. 생산과 풍요 기원의 성신앙 :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나무나 돌로 남녀 성기의 모형을 만들어 놓고 받들거나 남녀 성기 모양 또는 성교 장면을 조각한 것에 제의를 올리는 신앙이 있는데 이를 성기신앙 또는 성신앙이라고 하며 다른 나라에도 전해 오고 있다.Ⅲ. 일생 동안 거쳐야 하는 의례1.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겪는 의례를 출생의례라고 한다. 출생의례에는 자녀를 갖고자 비는 기자, 임신, 출산과 산후 의례 등이 있는데 각 과정에는 그에 따르는 행위와 금기가 있다.2. 어른이 되려면 : 성년식은 나이가 된 젊은이가 부모의 슬하를 떠나 육체적 ? 정신적 훈련을 받은 다음,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의식이다. 성년식의 형식이나 절차는 민족에 따라 다르나, 분리-전이-통합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의 경우 남자는 관례, 여자는 계례를 올림으로써 성년식을 치루고 어른 대접을 받았다.3. 배우자와 함께 행복의 문으로 : 혼인은 남녀의 결합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의식으로 일생의례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혼인 절차는 의혼, 납채, 납기, 납폐, 대례, 우귀의 여섯 가지로 구분된다.4. 노인이 되는 환갑 ? 회혼례 : 환갑은 사람이 태어나서 60년 만에 맞는 생일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환갑을 크게 기쁜 날로 여겨 큰 잔치를 베푼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혼인기념일을 중시하지 않았으나 혼인 60주년의 회혼례만은 성대히 거행한다. 회혼례는 혼인 60주년을 맞는 노부모께 자녀들이 신혼 때와 똑같은 혼인예식을 베풀어 드리는 것이다.5. 부모님을 보내는 슬픔과 의 치장, 흉제의 네 가지 단계로 진행된다.6. 돌아가신 분을 위한 의례 : 상례를 마친 뒤에 돌아가신 분을 위해 드리는 제사에는 기제, 차례, 묘사가 있다. 제사의 순서는 가문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대체적으로 강신-참신-초헌-독축-아헌-종헌-유식-합문-계문-헌다-낙시저-사신-철상-음복의 순서로 진행된다.Ⅳ. 민속놀이와 예술1. 윷놀이 : 윷놀이는 정월의 대표적인 놀이로,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윷에는 장작윷, 밤윷 등이 있다. 놀이 방법으로는 말판쓰기, 덕대놀이, 모다먹기 등이 있다. 윷판은 크게 보면 날밭, 앞밭, 뒷밭, 쨀밭의 네 점을 잇는 4각형과 그 가운데에 있는 방으로 이루어진다.2. 널뛰기 : 널뛰기는 음력 정초, 5월 단오, 8월 한가위 등에 주로 부녀자들 사이에서 행하여지던 놀이다. 널을 뛰는 방법은 지방에 따라 다르며 공중 동작도 다양하다. 승부는 한쪽이 힘껏 굴러 상대편을 널에서 떨어뜨리면 이긴다.3. 연날리기 : 연날리기는 우리나라에서 겨울철(농한기) 북서풍이 불 때에 행해지는 대표적인 놀이이다. 종이에 대나무가지를 붙여 연을 만들고 얼레에 감은 실을 연결한 다음 하늘에 날리며 논다. 연놀이 방법은 높이 띄우기, 손놀림에 따른 재주 부리기, 연싸움 등이 있다.4. 그네뛰기 : 그네뛰기는 예로부터 단오절에 널리 행하던 민속놀이이다. 그네뛰기는 주로 여성들 사이에서 행해졌으며 마을 어귀나 동네 마당의 큰 느티나무나 버드나무 가지에 줄을 매고 하였다. 그네를 뛰는 방법에는 외그네뛰기와 쌍그네뛰기가 있다.5. 줄다리기 : 줄다리기는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던 대동놀이이다. 줄다리기는 주로 정월 보름에 행해지며, 암수줄다리기와 외줄다리기의 두 가지가 있다. 줄다리기는 풍년을 기원하면서 액을 막는 놀이라는 점에서 민간신앙의 기능을 지닌다.6. 판소리 : 판소리는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일관된 줄거리를 가지고 짜여진 이야기를 다양한 소리로 통일성 있게 짜서 연행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음악, 문학, 연극의 요소가 복합된 종합 예술이자 모객의 구분이 없어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등 현대 연극과 다른 특징이 나타나 있다.Ⅴ. 설화의 주인공들1. 고조선을 세운 단군 : 단군신화는 고조선의 건국 신화로 우리 민족의 우월성과 정통성을 일깨워 주고 우리 문화의 원형을 해명해 준다. 단군신화는 여러 가지 형태로 계승되어 왔으며 그 안에는 민족 고유의 신앙과 풍습의 원형이 들어 있다.2. 고구려를 세운 주몽 : 주몽 신화에는 주몽이 자신의 특출한 능력을 활용하여 고구려를 세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로 인해 주몽신화는 고구려 사람들에게 고귀한 혈통을 이어받고,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주몽의 후손임을 일깨워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해주었을 것이다.3. 신라를 세운 혁거세 : 이 신화는 여섯 부족이 연합하여 신라를 건국한 역사적 사실이 들어 있으며 신라의 건국시조인 박혁거세와 알영의 출생, 그리고 그 혼인 과정이 매우 성스럽게 표현되어 있다.4. 민담의 주인공들 : 민담은 특정의 시간 ? 장소 ? 인물이 지적되지 않는 흥미 본위의 이야기로 주인공들은 일상적이며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행복을 누린다.5. 설화 속의 호랑이 : 호랑이는 설화 속에서 산신령, 산군 등으로 신성시되기도, 또는 사람을 해치는 무서운 호랑이로, 또는 어리숙하게 나타나는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설화에 나타난 호랑이의 여러 가지 모습은 사납고 무서운 동물인 호랑이에 투영된 민중 의식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것이다.6. 토끼의 용기와 지혜 : 토끼는 한국인의 정서 속에 친근하고 사랑스런 동물로 약하고 선한 동물 또는 영특한 동물, 장수의 상징, 달의 정령 등으로 인식된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마음속에 길러온 토끼의 모습으로, 이를 통해 우리 조상들은 삶의 지혜를 일깨우고 삶이 자세를 가다듬고자 했을 것이다.7. 도개비의 정체와 성정 : 도깨비는 어원을 풀어보면 수선스럽고 능청맞게 변덕을 부리는 아비라는 뜻이 되는데 이것은 도깨비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해석이다. 도깨비는 밤에만 활동하며, 신통력이 있고다.
이두, 향찰, 구결의 차이점에 대하여이두, 향찰, 구결은 그 쓰인 시기가 제각각이고 그 쓰임 역시 달라서 여러가지 차이를 보이나 차자표기라는 점에서 공통점도 몇가지 존재한다.쓰임새에 있어서 향찰은 향가라는 시가의 표기에 쓰였고, 이두는 주로 행정적인 실용문에, 구결은 경전 번역이나 한문 교육 등에서 한문을 읽기 쉽게 하기 위해 사용되었기 때문에, 표기의 방법에도 각각의 효용에 맞는 적절한 방법이 추구되었다. 이두와 향찰의 경우 한문을 우리말 어순으로 재배열하여 표기하나 구결은 한문 원문을 그대로 쓴다는 차이점이 있다.구결은 이두나 향찰과 달리 구결문에서 구결 표기를 제외하면 완전한 한문이 된다는 데에 그 나름의 특징이 있다. 문장의 창작성에 있어서 구결문은 대개의 경우 비창작성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과 구별된다.1. 논의 과제의 국어학적 가치- 이두, 향찰, 구결은 모두 한자의 음과 훈을 이용하여 우리말을 표기하려 한 노력의 산물이다. 이 세 자료는 모두 우리말 문장을 표기하는 데 쓰였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쓰임새는 서로 달랐고, 시기도 달랐다. 향찰은 주로 향가의 표기에서, 이두는 여러 가지 실용 문서에서, 구결은 한문의 이해를 위한 번역문 등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즉 주로 쓰는 사회 계층도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이 차자표기의 이해를 통해 우리는 사용 계층의 사고와 인식의 모습을 연구 할 수 있다. 또한 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형태론 및 음운론의 연구를 위해서는 이 차자 표기의 연구가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2. 현재 학교문법이나 일반적인 통설의 내용1) 이두- 이두는 한자 어휘나 한문 구절을 그대로 이용하기도 했지만 우리말 어순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한문 문장을 우리말 어순으로 바꾼 뒤에 조사나 어미를 비롯해서 때로는 부사와 같은 실사도 함께 표기하였다.이것은 순수한문도 아니고, 순수 우리말도 아닌, 두 언어의 혼합체로, 한문에서 쓰이는 말을 그대로 쓰면서, 여기에 우리말의 문법 형태와 극소수의 명사나 부사를 향가의 경우처럼 한자를 빌려 적었다.향찰은 향가라는 시가의 표기에 쓰였고, 이두는 주로 행정적인 실용문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표기의 방법에도 각각의 효용에 맞는 적절한 방법이 추구되었다. 따라서 이두분의 어휘에 한자 어휘가 많은 반면에 향찰로 표기된 향가가 차자 표기에 의하여 전면적이고도 온전한 우리말 표기를 시도한 결과인 것은 실용문과 시가라는 문장 범주에서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구결은 구결문에서 구결 표기를 제외하면 완전한 한문이 된다는 데에 구결의 특징이 있다.이두는 한글이 만들어진 15세기 중엽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지만 현실 언어와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다만, 공사 문서와 같은 특정 분야에서 글자살이의 한 부분을 담당하여 조선말까지 사용되었다. 그러나 15세기 이후의 이두 자료는 투식화된 채 일부 계층에서만 사용 되는 것이어서, 어휘적인 면을 제외하면 국어사적을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초기 이두 (5세기 ~ 7세기)壬申年六月十六日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 임신서기석 (522)- 天前誓 : 하늘 앞에 맹세한다. 今自三年以後 : 지금부터 삼년이 지난 후에 忠道執持 : 충도를 지녀 過失无誓 : 과실이 없기를 맹세한다. 와 같이 문장 전체가 완전한 우리말 어순으로 되어 있다.? 후기 이두 (8세기 이후)二塔天寶十七年戊戌中 立在之- 갈항사석탑기(758)- 문법 형태소가 본격적으로 표기되고 실사까지 차자 표기가 된다.2) 향찰- 향찰은 차자 표기 방식에 의한 전면적인 우리말 문장 표기로서 어휘 요소는 물론이고 문법 요소까지 완전하게 표기한 것이다.東京 明期 月良 夜 入伊 遊行 如可) (처용가)?벌 ?긔 ?래 밤 들이 노니 다가‘?긔’의 ‘밝-’은 明, ‘달’ 은 月, ‘밤’은 夜 과 같이 뜻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중국어에 없는 우리말의 문법 형태는 주로 한자의 음을 이용했다. ‘?긔’의 ‘-의’는 ‘긔’로 읽어 ‘期’로 표기했는데, 이때 ‘期’가 가진 본래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다. ‘?래’의 ‘-애’는 ‘良’으로, ‘드리’의 ‘이’는 ‘伊’로 적은 것도 모두 음을 빌려 적은 것이다. 모든 어절은 ‘실사+허사’의 순서대로 되어 있으며 허사는 선어말 어미와 어말어미의 차례대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우리말의 첨가어적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두가 한자 어휘나 구절을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데에 비해서, 향찰은 어휘부까지 완벽하게 차자 표기하고 있다.3) 구결- 한문을 적는 한자의 소리가 우리말 음운 체계에 이끌려 변화를 하고 나면, 이것은 중국어 소리와는 다른, 중국어도 아니고 우리말도 아닌, 혼합된 형태의 새로운 문장어가 생겨 난다. 이러한 한문을 가능하면 바르게 이해할 수단으로 한문 원문 그대로에 우리말 문법 형태소를 붙이게 되었는데, 이것이 구결이다. 한문 문장을 의미단위로 나누고, 그 의미 단위들이 문장 내에서 하는 기능에 맞게 우리말 문법 요소를 첨가한 것을 말한다.차자 표기로서 이두, 향찰, 구결의 특징은 차음과 차훈의 원리에 의해 기본적으로 같지만, 문장의 창작성에 있어서 구결문은 대개의 경우 비창작성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과 구별된다. 구결은 한문 원문을 바탕으로 현토하는 방법이므로, 좁은 행간에 구결자를 기입해야 하는 제약이 따른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구결자는 원자를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약자화하여 전승되었기 때문에 구결자에 대한 독법과 원자 추정에는 불확실한 곳이 많다.불과 몇 가지 밖에 되지 않은 한문 토를 적기 위해서, 어려운 한자를 스는 것은 무척 번거로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한자의 형태를 줄여서 새로운 음절문자가 되는 셈이다. 일본어의 경우 음절 수가 적어 이러한 음절 문자가 정착할 수 있었으나, 음절 자체가 많을 뿐 아니라 음절 구조가 복잡한 우리말에는 이러한 표기가 정착할 수 없었다. . 사용 문자에 따라 한글 구결과 차자 구결로 나뉘고, 차자 구결은 다시 음독 구결(순독 구결)과 석독 구결로 나뉜다. 그외에 부호 구결도 있다.? 한글 구결- 國之語音이 異乎中國?야 與文字로 (훈민정음)? 음독 구결- 天地之間萬物之中厓唯人伊最貴爲尼 (동몽선습)? 석독 구결- 信行? 具足??? 復?? 五道? 一切衆生?? 有??? (舊仁 二 1)復?? 他方? 量??? 可???? 不???? 衆? 有??? (舊仁 二 1-2)- 구역인왕경이는 구결문이기 때문에 위에 나타난 순서는 우리말 어순에 따른 것이며 그대로 번역문이 된다. 위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信行? ?具足??? ?復???有??? ?五道? ?一切 ?衆生??·?復?? ⑭有??? ?他方? ⑫不???? ⑪可????· ?量???· ⑬衆? ·④ 부호 구결(각필 구결)- 부호 구결은 인쇄된 책에 뾰족한 것으로 눌러서 표시한 것으로 육안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일정한 부호와 점을 정해 두고 한자 주변에 일정한 위치에 눌러 표시함으로써 해당 한자의 문장 성분이 무엇인지와 부가되는 문법 형태를 나타내고자 한 것인데 아직까지 그 완전한 체계는 밝혀져 있지 않은 상태이다.* 차자표기 방식훈독자 : 한자의 훈을 빌리면서 한자의 뜻을 살려 표기하는 것.예) 善花公主主隱 : ‘선화공주’로 읽되 한자의 뜻까지 살려 씀.음독자 : 한자의 음을 빌리면서 한자의 뜻을 살려 표기하는 것.예) 善花公主主隱 : ‘님’ 으로 읽되 한자의 뜻인 ‘주인’을 살려 씀.훈가자 : 한자의 뜻은 고려하지 않고 훈만을 빌려 표기하는 것.예) 春 : 봄[see]로 읽는다.음가자 : 한자의 뜻은 고려하지 않고 음만을 빌려 표기하는 것.예) 삼춘 : ‘三春’으로 적는다.이두향찰구결어 순우리말 어순우리말 어순한자 어순문 자한자한자한자, 한자의 약자, 한글 토 사용쓰임새공식문, 실용문향가의 표기한문을 읽기 쉽게 하기 위해 쓰임(한문 교육 등)
움라우트 현상이 근대국어시기에 발생한 원인과 그 근거요 약움라우트(umlaut)는 뒤에 오는 모음이 ‘ㅣ’나 ‘j’의 영향으로 그 앞의 모음 ‘ㅏ, ㅓ, ㅗ, ㅜ’등이 ‘ㅐ, ㅔ, ㅚ, ㅟ’로 바뀌는 현상으로. 근대 국어 시기에 일어난 중요한 음운 변화 중 하나이다. 이 움라우트 현상이 일어나려면 ‘ㅔ, ㅐ, ㅚ’와 같은 이중모음이 단모음화한 이후에라야 가능하다.이중모음의 단모음화 원인에 대해 이숭녕(1949)은 이중모음 ‘?ㅣ, 의, 외, 애, 위, 에’의 변화를 축양긔 결과로 보고 이중모음의 단모음화 과정을 설명하며, 허웅(1952)은 이중모음 ‘ㅐ, ㅔ, ㅚ’에 참가하는 모음의 양 요소가 모음도상에서 거리가 멀어 발음하는 데 노력이 많이 필요해 상호동화 현상이 나타나 단모음화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기문(1972)에서는 ‘ㆍ’의 소실과 이중모음의 단모음화, 움라우트 현상 등을 계기적으로 파악하고 18세기 중엽 ‘ㆍ’가 소실된 후 이중모음의 단모음화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1. 논의 과제의 국어학적 가치움라우트(umlaut)는 뒤에 오는 모음이 ‘ㅣ’나 ‘j’의 영향으로 그 앞의 모음 ‘ㅏ, ㅓ, ㅗ, ㅜ’등이 ‘ㅐ, ㅔ, ㅚ, ㅟ’로 바뀌는 현상으로, ‘ㅣ역행동화’라 한다. ‘아비→애비, 손잡이→손잽이, 먹이다→멕이다, 죽이다→쥑이다’ 등이 그 예이다. 움라우트는 후행하는 모음 ‘ㅣ’가 자기와 먼 거리에 있는 모음을 가까이에서 발음되는 모음으로 바꾸는 현상이다. 이처럼 발음의 거리를 가깝게 한다는 것은 발음 위치상 비슷한 성질의 음으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러한 움라우트 현상이 국어에서 언제 발생되었는가의 문제는 국어 모음체계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왜냐하면 움라우트 현상은 후설모음이 전설모음에 동화되는 것이므로 전설과 후설이라는 대립구도가 먼저 형성된 이후에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18세기 이전 국어의 모음 체계에는 전설모음이 ‘ㅣ’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중모음이 단모음화되어 후설모음에 대응되는 전설모음 ‘ㅐ, ㅔ’음이 나타난 이후라야 움라우트 현상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이중모음의 단모음화 시기와 원인을 분석하고자 한다.2. 이중모음의 단모음화 시기와 원인이숭녕(1949)에서는 이중모음 ‘애, 에, 외’의 음가의 변화를 다루었는데, ‘애, 에, 외, 위, ?ㅣ, 의’가 선행할 때, 주격조사 ‘ㅣ’와 여격조사 ‘예’가 모음조화를 무시하고 나타나는 공통점을 추출하고, ‘애, 에, 외, 위, ?ㅣ, 의’가 후기 중세국어 단계에서 단모음이 아닌 이중모음이었음을 밝혔다. 이것이 중세국어에서 이중모음이었으며 현대국어에서는 단모음으로 모음화 했는지에 대한 논의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이중모음이 어느 시기에 단모음화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허웅(1952)에서는 그 중 ‘외, 위, 의’는 제1요소인 ‘오, 우’를 한층 간극을 좁혀서 울림도를 약하게 하여 반모음 ‘w’로 발음함으로써, ‘자음+모음’과 비슷한 음감을 주는 중모음이 되었으나, ‘애, 에, 외’는 그 양 요소가 모음도 상에서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발음하기에 큰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므로, [ai, ?i, oi]의 상호동화로 양 요소가 서로 매우 가까워져 결국 단모음화 하였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단모음화의 시기의 결정에 있어서 1632년에 간행된 杜詩諺解 重刊本에 ‘막대예
우리말 표현을 위한 차자표기 발달과정에 대하여고유명사 표기부터 이두 향찰 표기법과 향찰을 통한 전면적인 국어의 표기 단계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한자의 의미가 우리말로 고착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으로 보아 표음 기능을 취해 적는 방법이 앞선 것이었다. 문장표기의 첫 단계는 서기체 표기로 한자들이 각각 그들의 본래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우리말의 어순대로 배열되어 있다. 문장까지 적고 있는 이두는 문법형태를 우리말 어순으로 표기한 것이다. 반면 구결은 한문 문장에 붙는 문법 형태소만을 대상으로 한다. 향찰은 이전에 나온 고유명사표기와 이두의 확대이다. 의미부는 한자의 의미를 빌리고, 형식부는 한자의 음을 빌려 적는 것으로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1. 차자표기법한글 이외의 문자를 빌려서 국어를 기록하는 방법의 총칭.문자 체계는 물론 그 운용의 규칙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는 현대 국어의 로마자 표기도 포함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한자를 빌려 국어를 기록하는 문자의 운용을 일컫는다.2. 머릿말옛날 기록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이 문자를 쓰고 있었던 듯 한 흔적이 있으나, 믿을 만하지는 못하다. 훈민정음이전에 우리 조상들이 우리말을 적기 위하여 가장 먼저 사용했던 문자는 한자였다. 일찍이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하나가 들어왔고, 우리 조상들은 이것을 우리말을 적는 데에 이용하였다. 이때 한자의 뜻을 빌려 쓰기도 하고, 한자의 소리를 빌려 쓰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 한자가 전래된 것은 대체적으로 3세기 경으로 알려져 있다. ‘먹, 붓, 글’이라는 말이 당시 중국에서 차용된 어휘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참고하면, 문자와 더불어 그들의 문화가 함께 들어왔으리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후 고구려의 , 백제의 , 신라의 가 편찬되었다는 기록과, 한자를 일본에까지 전하였다는 기록을 참고해 보면 한자가 당시의 우리 생활에 깊이 뿌리박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말 구조와 전혀 다른 중국의 한자를 가지고 제대로 된 문자 생활을 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한자를 가지고 우리말을 적으려는 노력으로 여러 가지 방법이 고안되었는데, 이들은 고유명사 표기, 서기체, 향찰, 이두, 구결로 나누어 볼 수 있다.3. 발달 과정ⓛ고유명사 표기일반적인 사상 감정의 표현은 한문의 이용으로 가능했을 것이지만 고유명사의 표기는 문자 생활에서 제일 처음 부딪친 어려움이었을 것이다.한자는 음절적 구조의 표의 문자이기 때문에 한자를 이용한 차자 표기법은 먼저 우리말을 음절로 분석하고, 분석된 음 형태에 가장 근사한 한자를 대비 시키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는데 대등의 예가 발견되지 않을 때에는 부득이 암시적인 방법을 사용하였으므로, 아직도 그 독음이 완전히 구명되지 못한 채로 전해 내려온다.이들 고유명사는 음차자만으로 적은 것과 훈차자만으로 적은 것, 그리고 음차자와 훈차자를 혼합하여 적은 것 등이 있다.국내외의 역사책과 금석문 및 약간의 문서에 의해 한자로 기록되어 있는 고유명사 및 고유 어휘 표기이다. 우리나라의 인명과 지명은, 지금은 대개 중국식으로 되어 있으나, 옛날에는 이러한 이름들도 모두 우리말로 불렀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에 ‘居柒未 或元荒宗(거칠미 혹원황종)’이라 하였으니, ‘居柒’은 우리말 ‘거칠’을 소리로 적은 것이고, ‘荒’은 그 뜻을 따서 중국어로 번역하여 적은 것이다.고구려는 국초로부터 문자가 있어서 史書를 기록하였다 하였으므로 이때 이미 고유명사에 대한 표기가 가능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한자를 차용한 고유명사의 표기는 상당히 이른 시기로부터 일반화되었던 듯하다그러나 이와 같은 고유명사 표기는 신라 경덕왕대의 지명 변경으로 사라져 가게 되는데 이와 같은 현상을 우리 문자 생활의 한자화로 간단히 해석하기 보다는 한문 문장 안에 이질적인 차자 표기가 삽입되는 불합리성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노력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②서기체한문 문장 안에 고유명사만을 차자 표기로 적어 넣던 단계에서 일보전진하여 우리 국어 문장 그대로를 표기하고자 하는 욕구는 한자를 우리말 어순대로 나열하는 특이한 훈차 표기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소위 임신서기석(552, 612추정)으로 불리는 이 금석문 자료는 한자를 우리 어순에 따라 배열하였을 뿐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요소의 표시는 없기 때문에 완전히 문장 표기로 보기 어려운 점도 없지 않으나 다음에 서술할 이두식 표기의 모체로서의 의의가 크다. 이와 같은 표기법의 사용은 한문과 우리글의 구문의 차이를 파악하고 있었던 우리 선인들의 국어의식과 한자, 한문의 보급이 상당히 일반화되어 있던 這間의 사정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③이두한자를 국어의 어순에 다라 배열하여 국어 문장을 표기하던 서기체의 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은 한자어 사이사이에 적당한 문법적 형태소를 삽입하여 문맥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루어진 문장을 이두체라 하는데 초기 이두의 모습은 경주 瑞鳳塚銀合杆(451)(서봉총은합간)에서부터 나타난다.延壽元年 太歲在卯三月中 太王敬造合 用三斤六兩윗글에서 ‘三月中’의 ‘~中 ’은 처격 표시로 볼 수 있고 그 뒤의 임신서기석에서도 ‘若國不安大亂世可容行誓之’의 ‘~之’가 동사종결형 표시로 해석된다. 그 밖에도 금석문 자료에서 ‘節以 敎 在’ 와 같은 이두가 발견된다. 이와 같이 초기 부득이한 문법 형태만을 표기하였으나 이두는 점차로 적용 범위를 넓혀서 명사, 부사까지도 포함시키게 되었다.이두체 표기는 통일 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초기의 ‘대명률직해(1392)’에 이르러 그 체계가 완성되었다. 한문 서책의 번역에 사용되고 있음은 한문을 외국어로 생각할 때 이두가 국어 국문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표기의 원칙은 훈차자로 국어의 의미소를 표기하고, 음차자로는 형태소(문법토)를 기록하는 것이다.④구결구결은 우리말 ‘입겾’을 나타내는 차자 표기다. 한문을 읽을 때 문의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문의 구절 사이에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는 요소를 차자로 표기하여 삽입한 것을 말한다.15세기 이후의 문서에서 나타난 이 명칭은 한문의 허사에 일치하는 토와 같은 것으로서 한문을 읽을 때 우리말을 구절에 달아 읽는 것을 말한다.
우리말 높임법의 국어사적 변천 과정에 대하여요 약15세기 경 높임법은 주체높임법, 객체높임법, 청자높임법의 셋으로 나뉘며, 이 세가지 높임법은 각각 선어말어미 ‘-으시-’ ‘-?-’ ‘-으이-’등을 통해 실현되었다. 그러나 16, 17세기 들어서면서 객체높임법의 ‘-?-’이 그 기능을 잃고 청자높임법을 실현하게 되었으며, 종래 세 등급이던 청자높임법이 네 등급으로 분화하고, 19세기에 ‘-어-요’와 같은 비격식체가 등장하여 지금과 같은 높임법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논의 과제의 중요성외국인이 우리나라 말을 접할 때 가장 이질감을 느끼는 것이 ‘높임법’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말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높임법의 정교함이다. 비록 현대에 와서 점차 간략해져가는 경향이 있지만, 과거, 아니, 최소한 70, 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높임법이 국어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상당히 높았고, 지금도 상당한 수준이다. 이 높임법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곧 우리나라 국어사의 중요한 부분을 살피는 일이 될 것이다.1. 높임법의 종류높임법은 화자가 발화 중에 등장하는 여러 대상, 즉 청자와 주체, 객체를 높이기 위한 문법 범주로, 청자와 주체, 객체 중 무엇을 높이느냐에 따라서 청자 높임법과 주체 높임법, 객체 높임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현대 국어와는 달리 중세 국어에서는 이 세 가지 높임법이 모두 선어말어미를 통해 실현되었다. 아래 문장을 보자.世尊하 摩耶夫人이 엇던 功德을 닷?시며 엇던 因緣으로 如來? 나??시니잇고 (석보상절 11:24)아래 문장에서는 청자인 世尊을 높이기 위해서 ‘-잇-[-으이-]’이라는 선어말 어미를 사용하고 있으며, 주어인 마야부인에 대한 높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시-[-으시-]’가 결합되어 있으며, 목적어인 如來를 높이기 위해서 ‘-?ㅸ-[-?-]’가 나타나 있다. 이 중에서 ‘-으이-’는 청자 높임법이 되고, ‘-으시-’는 주체 높임법이 되며, ‘-?-’은 객체 높임법이다.위 문장에서 볼 수 있듯이 주체 높임법, 객체 높임법, 청자 높임법 이 세 가지 높임법 선어말어미는 한 문장에서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며, 동시에 나타날 경우 객체 높임이 제일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주체 높임이,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청자 높임이 오게 된다.2. 15세기 국어의 높임법(1) 주체 높임법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15세기에 주체높임법은 선어말어미 ‘-으시-’를 통해 실현되었다. ‘-으시-’는 ①동사, 형용사, 그리고 지정사 ‘이다’에 두루 결합할 수 있으며 ②‘-아/어-’ ‘-오/우-’와 결합할 때 ‘-으샤-’로 변이된다. 이 때 ‘-아/어-’ ‘-오/우-’는 생략된다. ③비록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주체가 높임의 대상이 되면 사용한다.① 이제 부톄 …이런 祥瑞? 뵈시?니라 (석보상절 13:27)世尊이 엇던 젼?로 이런 光明을 펴시?뇨 (석보상절 13:25)太子ㅅ 모미 傷?야 命이 머디 아니?시이다 (월인석보 21:218)大菩薩 아니시면 能히 證知 몯?실 젼?라 (법화경언해 4:70)佛은 부톄시니라 (석보상절 서 1)② 出家?샤[出家?시어 - 出家?샤어 - 出家?샤] (석보상절 6:17)??샤[??시어 - ??샤어 - ??샤] (용비어천가 1)③ 世界예 잇? 地獄애 分身?신 地藏菩薩 (월인석보 21:30)부텻 道理로 衆生 濟渡?시? 사?? 菩薩이시다 ??니 (월인석보 1:5)또한 마치 현대국어에서 ‘있다 - 계시다’나 ‘먹다 - 드시다’와 같이 ④특정한 동사의 어휘적 대립을 통해서도 주체높임법이 실현된다. ⑤높임의 대상이 되는 것과 관련이 있는 물건이나 신체부위, 또는 주체의 행위 등을 높이는 간접높임법 상황에서도 ‘-으시-’가 활용된다. ⑥의존용어 구문에서 ‘-으시-’는 의존용언에만 결합하지, 본용언에는 결합되지 않는다.④ 太子ㅣ 므슷 罪 겨시관? (석보상절 24:51)하?해셔 飮食이 自然히 노나? 夫人이 좌시고 (월인석보 2:25)⑤ 부텻 德이 至極?샤? (석보상절 6:25)부텻 뎡바깃? 노?샤 ?머리 ??실? (월인석보 8:34)⑥ 우리 父母ㅣ 듣디 아니?샨 고? (석보상절 6:7)부톄 … 得?샨 妙法을 이? 니?고져 ?시?이닛가 (법화경언해 1:88)(2) 객체 높임법객체 높임법역시 다른 높임법과 마찬가지로 선어말어미로 실현되었다. 객체높임법을 실현하는 대표적인 선어말어미는 ‘-?-’이다. 이 ‘-?-’은 ①목적어, 부사어 등에 대해 실현되며, 주체 높임법과 마찬가지로 겉으로 ②객체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높임의 대상이 존재한다면 ‘-?-’이 나타난다.① 벼슬 노? 臣下ㅣ 님그믈 돕?? (석보상절 9:34)世尊하 내 … 如來? 묻??며 (월인석보 21:100)② 다시 듣?? 法 得호? 깃그니라 (법화경언해 6:127)또한 객체 높임법의 ‘-?-’은 음운 조건에 따라서 형태가 굉장히 다양하게 나타난다. 변화 조건을 표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후행 선행ㄱ, ㅂ(ㅍ), ㅅ, ㅎㄷ, ㅌ, ㅈ, ㅊㄴ, ㅁ, ㄹ, 모음자음-?--?--?-모음-?ㅸ--?ㅸ--?ㅸ-객체 높임법은 ‘-?-’ 뿐만 아니라 격조사나 특정 동사의 어휘적 대립에 의해서도 실현되며, 높임의 대상이 되는 객체와 관계되는 물건이나 일 등을 객체로 하는 서술어에도 나타나서 간접높임법을 실현한다. 이는 현대국어에서도 나타나는 요소이다.주체높임법과는 달리 객체높임법의 ‘-?-’은 의존용언과 결합하는 양상이 상당히 다양하게 나타난다. 부정문 구성인 ③‘-디 아니?/몯?-’에서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며, ④다른 의존용언 구문에서는 본용언에 결합한다.③ 비록 佛法을 맛나?와도 그 化? 좃?디 아니??고 (법화경언해 2:65)부톄 ?로 니?샤도 從??디 아니?더니 (석보상절 6:10)부텨를 전혀 念티 아니??오면 (능엄경언해 5:88)④ 如來? 어셔 가??? ?리로다 (석보상절 23:40)(3) 청자 높임법청자 높임법 역시 다른 높임법과 마찬가지로 선어말어미를 통해 실현되었다. 대개 ‘-으이-’로 실현되었는데, 현대 국어와 마찬가지로 높임의 정도에 따른 몇 등급이 존재하였다. 현대 국어의 네 등급과는 달리 15세기 국어에서는 높임, 약간 높임, 높이지 않음의 세 등급으로 실현되었는데, 문장 별로 실현 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그 방법은 아래 표와 같다. 이 외에는 격조사 ‘-하’를 통한 청자높임이 있다.①서술법②의문법③명령법④청유법높임-?이--?잇--으쇼셔-사-이-약간 높임-ㆁ--ㅅ--어쎠높이지 않음xx-으라-져, -져라① 聖孫? 내시니이다 (용비어천가 8)三世옛 이? 아?실? 부톄시다 ???다 (석보상절 6:18)이제 世尊이 … 큰 法義를 펴려 ?시?다② 내 이젯 몸과 ??과? ㅅ도 이 엇던 物이잇고 (능엄경 언해 2:45)그딋 아바니미 잇?닛가 (석보상절 6:14)? ? ?디 이실? 가져가니 엇뎨 잡?다 (월인석보 2:13)③ 첫소리? 어울워 ? 디면 ??쓰라 (훈민정음 언해 12)엇뎨 부톄라 ??닛가 그 ?들 닐어쎠 (석보상절 6:16)님금-하 아?쇼셔 (용비어천가 125)④ 우리 이제 안? 出家 말오 지븨 닐굽 ?? 이셔 오욕? ?? ?장 편 後에? 出家하져 (월인석보 7:1)淨土애 ?? 가 나사?다 (월인석보 8:100)3. 16세기 이후의 변화(1) 주체 높임법주체높임법은 큰 변화 없이 현대 국어에 이르러, ‘-으시-’의 존재 여부를 통해 높임과 높이지 않음을 실현한다. 다만 몇 가지 변화가 발생하였는데, 15세기 국어에서 통용되었던 ‘-으시-’와 ‘-으샤-’ 중 ①‘-으샤-’가 16, 17세기 경 소멸하였으며, ②객체높임어미 ‘-?-’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으시-’에 결합하여 주체를 더욱 높이는 표현으로 사용되게 되었으며, 17세기경에 새로이 ‘-께서, -께옵서’가 ‘-?-셔, -겨셔, -겨오셔'에서 새로이 파생되었다.① 父母ㅣ … 깃거?셔든 다시 諫홀디니라 (소학언해 2:21)② ?ㅣ 므스 일이?관?ㅣ 이대도록 어렵사리 니??시?고 (텁해신어 5:21)(2) 객체 높임법객체높임법은 객체높임법을 실현하던 선어말어미 ‘-?-’의 기능이 점차적으로 불분명해져서 주체높임법이나 청자높임법 등에까지 나타나게 되면서, 사실상 그 기능을 잃게 되었다. 16세기 말 경부터 ①‘-?-’은 객체높임의 상황에서 사용되지 않고 오히려 청자높임법을 실현하는 선어말어미로 활용되기 시작하여, ‘-?-’과 그 다양한 변이형들은 청자높임법을 실현하는 기능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결과 현대 국어의 객체높임법은 격조사나 객체 높임을 실현하는 동사를 통해 실현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