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공공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공공 公共(public)'이란 말의 뜻부터 풀어보아야 할 것이다.공공이란 말은 모두,전체,사사로움이나 치우침 없이 공평함을 뜻하는 공(公)과,함께 함 또는 같이 함을 뜻하는 공(共)의 합성어로 되어 있다. 한자어 공(公)의 어원을 보면 내 것을 열고 나눈다는 뜻으로 내것이 아닌 모두의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두 사람이 물건을 맞들고 이TSms 모습을 형사화한 표의문자로 일을 함께하거나 같이 나눔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영어의 Public 의 뜻을 보면 다양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사적이지 않고 공적임, 개인이 아닌 공중, 폐쇄되지 않고 개방됨, 숨기지 않고 널리 알림 등의 뜻이 담겨 있어 함께 함의 뜻이 빠진 것 되에는 한자어 공공과 거의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결국, 건축의 공공성이란 첫째, 모두에 대한 건축의 태도와 둘째, 함께 함에대한 건축의 태도라 정의 할 수 있을 것이며, 요약하자면 나만을 생각하고 따로따로인 닫힌 건축이 아닌 모두를 생각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열린 건축이 곧 공공성이 있는 건축이라 할 수 있다.덧붙여 건물이 아닌 도시에서의 공공성은 도시공간이란 특정집단의 점유물이 아니며 도시에 거주하고 도시공간에서 활동하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도시공간은 공공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도시에는 개인 또는 특정집단을 위한 사적 공간 뿐만 아니라 일반대중을 위한 공간과 시설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하겠다. 여기서 공공을 위한 공간을 '공적 공간이라고 정의하기로 한다면, 공적 공간은 공간 사용에 있어서 일반대중이 계층적, 시간적 제한을 받지 않고 사회적 규범과 법규를 따르면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건물 내부 및 외부의 공간을 말한다. 공적 공간은 다양한 공적 활동을 수용함으로써 도시공간에 활력을 주는 도시환경의 중요한 구성요소라고 생각한다. 구성요소 중에서는 건물의 로비, 오픈 스페이스, 주변과 가로, 공공 건물, 문화재 등 많은 사람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대중들이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그러하다면 건축에서 공공성은 어떻게 표현될까?건축의 공공성은 덩어리, 또는 형태를 통해서 드러나는 ‘건축형태’의 공공성과, 빈 곳 또는 공간을 통해서 드러나는 ‘건축공간’의 공공성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건축형태의 공공성은 주로 도시경관의 관점에서 볼 수 있으나, 공공성이 큰 건축형태가 어떤 것인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공공성이 적을뿐더러 공공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이른바 문제건축, 또는 문제경관을 지적할 수는 있는 것이다.예를 들면 지나치게 위압적인 거축이나. 시야를 가로막는 건축, 구릉지나 녹지를 장식하는 건축 등이 있다.건축공간의 공공성은 건축의 내부공간이나 외부공간에 모두를 생각하고 ,이웃과 함께 하는 열린 공간이 얼마나 또 어떤 양상으로 담겨 있는가에 따라 건축공간의 공공성이 커지거나 작아질 수 있다.건축공간의 공공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지난 1991년 건축법 개정시 법제화된 ‘공개공지’이다. 공개공지란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저만 아는 거인에 나오는 거인의 정원처럼 본래는 개인 소유의 사적인 공간이었으나, 담을 열고 개방함으로써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고 이용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처럼 된 곳을 말한다.공개공지를 통해서 우리는 모두에 대한 건축의 태도라 할 수 있는 건축의 공정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공공성의 또다른 측면이라 할 수 있는 이웃에 대한 건축의 태도, 즉 공성은 공개공지에서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모두에 대한 배려는 개개의 건축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나, 이웃에 대한 배려는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여러 건축이 함께 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그에 안좋은 예를 들자면 여의도의 증권1타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 블록 안의 건축일지라도 필지 단위로 시차를 두고 이루어지는 개발의 결과는 대부분 너는 너, 나는 나인‘따로따로’건축일 뿐이다.
스톤헨지의 기능1) 천체관측소의 기능예전부터 천체의 운동과의 관계가 지적되어 왔다. 이를테면 북동부 입구의 통로 부근에 있는 많은 기둥 구멍에 대하여, 월출의 북쪽 한계 위치 변화(18.6년 주기)를 관측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 때 힐스톤은 그 움직임의 중간점에 위치한다고 한다.선사 시대 사람들이 달에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예는 그 밖에도 있다. 예컨대 스코틀랜드 북동부에는 리칸벤트 스톤 서클 이라는 독특한 건조물이 있다. 그 리칸벤트(옆을 향한 돌)는 달이 가장 낮게 통과하는 방향에 맞춰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스톤헨지의 경우 그 기둥 구멍의 무리(주혈군)가 실제로 달의 북쪽 한계 위치와 합치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확실한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통로 부근의 기둥 구멍 무리의 설명 중 하나로서, 또 그 밖에도 달의 운동과 연결되는 배석이 있다는 점에서 달에 대한 어떠한 신앙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스톤헨지의 축은 제1?2기와 제3기가 서로 다르다. 고리 모양 도랑의 중간선을 사용하여 얻은 원의 중심점과 북동부 입구 도랑의 양쪽 끝 중점을 이은 선이 제1?2기의 축이다. 제3기의 축은 사센의 고리 모양 배열의 중심점에서 아베뉴 양쪽 도랑의 각각의 중간선의 중점을 연결한 것이다. 제3기의 축선이 하지의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으로 봐도 사센의 건조물은 태양을 의식하여 건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제2기 후반에 이 곳에 화장에 의한 매장이 많이 행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제3기 석조 건조물의 배경에 죽음과 재생의 의례와 태양 신앙이 연결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더 나아가 풍작을 기원하는 의례와도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센의 마제형을 형성하는 돌구멍 중 하나에서 남근(남자 생식기)을 본떴다고 생각되는 백악(석회석의 일종) 조각이 발견된 것은 흥미롭다. 어쨌든 태양이나 달의 움직임의 주기성에 선사 시대 사람들의 관심이 높았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어쩌면 스톤헨지를 건설한 사람들은 남서 방향으로 지는 동지의 태양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마제형 배열의 가장 높은 삼석탑은 동지의 태양이 지는 방향에 세워져 있다. 이 방향에 가장 높은 배석이 행해졌다는 것은 마제형 내부에서 실시된 동지의 태양에 대한 의례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동지의 태양이 중요시되었다면, 스톤헨지의 의례는 아일랜드의 거석묘 뉴그렌지 등과 기본적으로 공통되는 부분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2) 기하작도판의 기능기원전 3000년기 중반 경에는 특징적 청회색을 띤 '블루스톤'이라 불리는 돌이 쓰이게 되었다. 블루스톤은 Q구멍, R구멍이라 명명된 쌍을 이루는 구멍에 원호 모양의 배열로 배치되었는데 후에 제거되었다.'사센'이라 불리는 단단하고 거대한 돌을 직사각형으로 정형하여 놀랄 정도의 건축을 완성하게 된다. 30개의 돌기둥이 지름 30m의 원둘레 위에 배치되고, 더욱이 그 꼭대기에 수평으로 문미석(문?창출입구 등의 윗부분에 가로 댄 나무 구실을 하는 돌. 여기서는 두 기둥 꼭대기에 걸쳐진 가로돌)이 얹혀져서 공중에서 연속하는 둥근 고리 모양을 만들어 냈다. 지상에서 문미석 윗면까지의 높이는 4.8m나 된다. 내부에서는 사센을 이용한 5조의 삼석탑(트리리톤)이 마제형(말굽형)으로 배열되었다. 삼석탑은 북동쪽에서 남서쪽 축으로 대칭으로 배열되고, 그것들이 구성하는 마제형은 북동쪽 입구 방향으로 열려 있다. 열린 부분에서 중앙부를 향하여 높이가 차츰 높아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사센 건조물은 건축학적으로 몇 가지 실로 흥미롭고 세련된 기술을 보여 주고 있다. 문미석은 장부(한쪽끝을 다른 한쪽 구멍에 맞추기 위하여 얼마쯤 가늘게 만든 부분)와 장부 구멍으로 고정되고, 특히 고리 모양 배열 돌기둥 위의 문미석은 서로 은촉이음(한 쪽에 홈을 파고 다른 한 쪽에 그 홈에 맞도록 돌기부를 만들어 두 돌을 접합하는 방법)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들은 당시의 목공 기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고리 모양 배열 위의 문미석은 원둘레와 일치하도록 원호 모양으로 정형되어 있다. 문미석을 지탱하는 돌기둥은 꼭대기를 향하여 약간 좁아져 있다. 조잡하기는 하지만 건조자는 엔타시스(그리스?로마 건축 기술의 일종으로, 기둥 중앙을 부풀게 하는 방식)와 같은 기교를 의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삼석탑의 문미석은 바닥 부분 보다 꼭대기 쪽이 폭이 넓다. 요컨대 그 단면이 지면을 향하여 약간 경사져 있는 것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봤을 때 수직으로 보인다는 눈의 착각을 고려한 것 같다.그 후 몇 번인가 블루스톤의 배열 이동이 반복되고, 마지막에는 현재처럼 사센의 고리 모양 배열 안쪽과 사센의 마제형 안쪽에 각각 대응하도록 배열되었다. 마제형으로 배열된 블루스톤 안쪽에도 돌이 배열되었다. 오르타석 이 그 보기이다. 사센 바깥쪽에는 동심원 모양으로 두 주혈군(柱穴群, Y구멍과 Z구멍)이 패였다. 그 수는 각각 20개씩이고, 블루스톤의 재배열이 계획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실행되지는 않은 것 같다.또 제3기에는 주체부 외에도 배석이 행해졌다. 입구 북동부에 힐스톤 이 있는데, 1979년의 조사에서 그 왼쪽 약간 뒤쪽의 2m 간격 위치에서 돌구멍이 발견되었다. 힐스톤이 이와 쌍을 이루고 있다고 간주하면, 제3기의 축선은 이들 사이를 지난다. 고리 모양 둑 내부에는 직사각형을 형성하는 네 스테이션석이 배치되었다. 그 짧은 변은 축에 병행하고, 긴 변은 축과 직각으로 만난다. 그 후 힐스톤과 두 스테이션석이 고리 모양 도랑으로 둘러싸였다. 또 북동부 입구에서 에이번 강까지 2.8km에 걸쳐서 계속되는 아베뉴(행렬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이를 가지고 입구부터 뻗어 있는 참배길)가 구축되었다. 그 밖에도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가까이에 있는 스로터석과 2개의 큰 돌구멍, 또 입구 약간 바깥쪽에 있는 돌구멍 등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여겨지고 있다.앞에서 살펴본 건설 순서의 최신 견해는 유효하다고 간주된 52점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이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구조에 대하여 연대를 밝힐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층위학적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오브리 구멍이 제1기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고 있지만, 그 중요한 근거는 그것이 고리 모양의 둑이나 도랑과 동심원 모양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또 배석 유구(配石遺構)는 모두 제3기에 만들어졌다고 여겨지고 있는데, 그 중에는 단순히 이 시기에 돌이 선호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약한 이유에 의한 경우도 있다. 앞으로의 연구로 새로운 수정이 가해질지도 모르지만, 현시점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편년(編年)일 것이다.즉, 네 개의 정삼각형을 중심 초점 주위로 돌려서 얻어진 것이다. 그 결과 스톤헨지 안에는 삼각형, 사각형, 육각형, 십이각형의 여러 도형이 내접하게 된다. 스톤헨지에는 기하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3, 4, 6, 12이라는 네 개의 숫자가 복잡하게 어우러지면서 구성질서를 형성한다.3) 주술적, 종교적 기능최근 영국 셰필드대학을 비롯한 6개 대학의 합동 연구팀은 2007년 9월 스톤헨지에서 2.8㎞ 떨어진 더링턴 월스에서 8채의 집터를 발견하였다.연구틈의 파커 피어슨 교수는 “스톤헨지는 고립된 거석 기념물이 아니었으며 목재와 거석이 한 쌍을 이루는 대규모 종교의식을 행한 지역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2. 피라미드의 형성과정과 각 피라미드의 축조 방법1)피라미드의 형성과정먼저 그 피라미드의 중심인 이집트 건축의 배경을 본다면,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첫째로, 지리적 상황을 본다면 이집트는 나일 강을 모체로 이루어진 문명인데, 세계에서 가장 긴 나일 강은 비옥한 토양을 퇴적시켜서 농사가 잘 되고 풍부한 사냥감을 제공했으므로 이집트인들의 의식 속에 신과 생명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이로써 좀 더 신에게 다가가고 영혼의 불멸이라는 의식 속에서 피라미드는 성장한다.두 번째로는 종교적 상황을 들 수 있는데, 이집트는 다른 부족들 보다 종교에 있어서 특히 더 중요한 점을 가지고 있다. 태양신을 섬기면서 그의 영원성을 동경하는데, 인간의 영혼도 영원하다고 생각하며 인간이 죽으면 그 영혼이 'ka'는 육체에 영원히 산다고 믿으면서 그 육체의 보관과 분묘를 파헤져지지 않게 하기 위해 피라미드를 지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나친 종교심은 영혼 불멸이나 내세 개념과 깊이 연관되었다. 이집트인들은 죽음 후에 오시리스 신앞에서 생전의 일을 심판 받으면 내세에 대한 행복을 추구하는데 사후세계의 안전과 행복을 확보하는 것에 몰두 하였고 사후의 삶을 중요하게 여겼다.마지막으로 세 번째 상황은 역사적·사회적 상황을 들수 있는데, 권력이 높아짐에 따라 피라미드의 규모와 그 높이 또한 더 커져만 갔다.이집트는 초기왕조시대의 안정을 바탕으로 첫 번째의 강력한 파라오인 조세르가 고왕국을 세웠는데, 이 고왕국이 남긴 최고의 문명은 피라미드 이다. 이 시기의 피라미드는 매장과 종교라는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가졌는데, 피라미드의 기본 기능은 파라오의 무덤이였다.그러나 피라미드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종교 건축물로써 자리매김또한 하였다. 피라미드를 탄생시킨 종교는 태양신 숭배와 피안의 종교, 즉 내세관이었다.파라오와 결부된 태양신 숭배사상은 파라오에게 종교적 권위를 부여 했는데, 피라미드는 파라오가 태양신 레를 만나는 장소로 믿어졌다.피라미드를 탄생시킨 또 다른 종교적 배경은 내세관을 들 수 있는데, 이집트 사람들은 내세의 존재를 굳게 믿었다. 내세관은 이집트 사람들의 세계관과 인생관 그리고 일상생활에까지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이집트에는 내세관이 대표적 종교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사후세계를 믿는 내세관은 죽은 자를 위한 무덤건축의 발전을 가져왔다.피라미드는 죽은 파라오가 내세를 다스리는 궁궐이었다. 내세관의 산물로 생겨난 피라미드는 이처럼 무덤이자 신전이었으며 궁전이었다.피라미드의 완성된 상태에 대한 기준은 세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피라미드 윤곽의 기하학적 형태이며, 두 번째는 묘실의 위치,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크기이다.이처럼 피라미드는 오랜 기간 변천의 산물이었는데, 거기에는 네 단계의 발전 과정이 있었다. 첫 번째 단계는 마스터바 이다. 마스터바는 이집트 최초의 지상무덤으로 정의 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계단형 피라미드 이다. 실제로 피라미드가 시작된 것은 이 단계 부터이다. 마스터바의 높이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계단형 피라미드로 발전했다. 계단형 피라미드는 마스터바에서 정사각뿔로 가는 중간단계의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조세르의 계단형 피라미드에서 정사각뿔로 발전하는 과정(중간형 피라미드)이다.이 과정은 제3왕조에서 제4왕조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 다음 단계는 메이둠의 피라미드인데, 이 피라미드에서부터 계단형이 사라지고 정사각형 형태가 나타났다. 다음 단계는 스네페루의 남피라미드와 북 피라미드였다. 이 피라미드들에서는 형태와 축조방식이 모두에서 계단형이 완전히 사라지로 경사선이 일직선을 이루었다. 그리고 묘실도 지상으로 올라왔다. 네 번째 단계는 이 전 단계들을 거쳐서 완성된 상태의 피라미드가 나타난 과정이다. 그것은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나타났는데, 기자에는 쿠푸, 카프르, 멘카우레 세 기지의 피라미드가 지어졌다. 이 중에서도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앞의 피라미드 완성의 상태인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완성된 상태에 도달한다.쿠푸의 피라미드는 완벽한 정사각뿔 형태를 했다. 경사면은 완전 일직선을 이루었다.묘실도 무게 중심에 위치했다.그 뒤 피라미드는 카프르 이후부터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제 7왕조를 마지막으로 피라미드 축조가 중단되었다가 중왕국 제11왕국부터 많이 변형된 형태로 다시 지어졌다.2)각 피라미드의 축조방법○마스타바마스타바의 상부구조는 길이 20~50m, 폭 15~37m이며, 벽돌의 크기는 23cm×12cm×7cm였다. 복잡한 내부에 비하여 형태는 단순한 입방체였고 안정감을 위해 외벽은 안쪽으로 70°정도 경사졌고 지붕은 평탄했다. 마스타바는 사체의 영구 보존과 사후생활에 필요한 생활자재의 저장이란 두 가지가 특별히 의도되었다. 마스타바의 단순한 입체 형태는 자신을 초월하여 존재와 삶을 영원히 이어가고 싶어 하는 영원함과 안정성에 대한 갈망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다.마스타바는 벤치형의 육면체 매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마스타바에서도 관이 묻히는 묘실은 여전히 지하에 위치했다. 지상부분은 순장에 따른 부속 식수들의 묘실과 창고 등으로 채워졌으며 후에 마스타바가 커지면서 제실과 행사실이 추가되었다.마스타바는 흙벽돌을 사용하다가 3왕조부터 석조를 사용하였다.○계단형 피라미드계단형 피라미드를 처음 세운 것은 고왕국의 창시자 조세르 왕이었다. 마스타바는 그 높이가 아직 10여 미터 안팎에 불과해서 파라오 조세르의 계단형 피라미드도 처음에는 마스타바로 시작했다. 이후 다섯 번의 확장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 최종형태는 마스타바 여섯 개를 포개놓은 계단형이며 크기는 밑변이109m×125m, 높이가 62m였다. 최종 완성 상태에서 묘실은 지하 28m까지 내려갔다.조세르 왕의 복합건물군을 살펴보면, 그 구조와 형태는 임호텝이 설계한 사상 최초의 석조 건물이며, 여러 개의 마스타바가 중복된 계단 피라미드이고, 엄격한 직교 배치지만 축에 의한 대칭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ka’의 영원성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였으며, 출입구 홀에는 최초의 의미가 있는 실내공간으로써 빛을 이용하고, 필라스터라는 벽에 부착된 기둥을 사용하였다. 이시기에는 독립기둥은 시도되지 못함을 의미한다.그리고 기술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기능적으로는 실패 했고, 영원성과 연속성을 형태적으로 표현하였다.○중간형 피라미드- 메이둠 피라미드메이둠에는 계단형이 사라지고 정사각뿔의 형태가 나타났다. 경사면의 각도는 51° 52‘으로 52°에 거의 근접했다. 그러나 그 축조방식은 아직도 불완전했다. 메이둠의 피라미드에서는 8단으로 구성되는 계단 피라미드를 먼저 만든 후 단과 단 사이를 석회화와 석회암으로 메우는 방식으로 사각뿔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경사를 메운 부분이 떨어져나가 지금은 두 단의 계단형 피라미드 모습으로 남아있다. 묘실 또한 아직 지하에 위치했다. 크기는 조세르의 피라미드보다 커져서 밑변 144m, 높이는 92m였다.
(P.139) 가구-집을 만드는 뼈대의 얽기-구성주요부재 : 지붕, 보, 도리(세 부재의 구성방식에 따라 가구법 세분)-평면규모와 형식에 의해 결정(현대 건축의 ‘단면도’개념)-가구숫자: 단면상의 도리숫자(주심상 외출목과 내출목이 여러개가있어도 하나도 계산)(=출목도리는 가구법 산정에 포함 안됨)(P.140) 삼량가 (三樑架)-양쪽으로 경사진 지붕을 만들려면 최소한 도리가 세줄로 걸려야 하는데, 이를 삼량가라함.-한국건축 지붕을 구성하는 기본단위 (*이량가: 수원화성의 봉돈에 부속된 건물-편경지붕)-도리 : 서까래를 받치는 부재-규모가 작은 건물이나 살림집 중 홑집형태의 문간채나 행랑채, 광채 등의 부속채에 사용*홑집: 1 한 채만으로 된, 구조가 간단한 집. 2 방을 한 줄로만 넣어 폭이 좁은 집.*문간채: 대문간 곁에 있는 집채. ≒행랑채*광채: 안채에서 따로 떨어진, 광이 있는 집채.-맞배지붕이 대부분, 포가 없는 민도리집이나 익공형식에서 많이 사용.-앞뒤 기둥에 대들보를 건너지른 다음 양쪽 처마에 각각 도리 하나씩과 대들보 중앙에 대공을 세우고 종도리를 얹은 다음 세 도리에 의지해 서까래를 양쪽으로 거는 구조.▶삼량집(P141) 평사량가(平四樑架)-종단면상 도리가 네 줄로 걸리는 가구구조.(=오량가국에서 종도리가 없는 형식)-일반 서민들의 살림집.-대들보 위에 동자주를 세우고 종보를 건 다음 종보 중앙에 대공을 두지 않고 중도리 사이에 서까래를 수평으로 건 가구형식.▶평 사량집▶1고주 사량집4량집(四樑架)은 실제로는 기본적인 가구체계의 한 유형이라기 보다는 변형된 형식으로 나타난 일종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다.4량집에는 고주사량과 평사량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주사량은 3량가에 툇간을 덧달아 낸 것으로 3량가의 변형으로 '반3량'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구성은 3량집의 구성에 전면이나 후면으로 툇기둥 하나를 두고 이 툇기둥 사이에 퇴량(툇보)을 연결한다. 일반 서민주택에서 많이 사용된 가구법이다.평사량은 전후의 평주상부에 전후 두개의 대공을 두어 도리를 받도록 한 구조로 종도리를 사용하지 않은 특수한 형식의 가구이다.(P.142) 오량가-종단면상에 도리가 다섯줄로 걸리는 가구형식.-구성; 앞위의 기둥으로 대들보를 건너지른 다음 대들보 양쪽에 동자주를 세워 종보를 건너지르고 종보 중앙에는 대공을 세워 대공과 동자주, 평주 위에 도리를 건다, 처마도리와 중도리에는 장연을 걸고 중도리와 종도리에는 단연을 건다 (서까래도 두 단으로 걸린다)-살림집 안채, 일반 건물, 작은 대웅전-오량가 = 이평주 오량가-살림집 대청: 이평주오량가-일고주오량가 : 전면은 동자주 대신에 고주를 세우고 뒷면은 대들보 위에 동자주를 세워 고주와 동자주에 종보를 거는 경우 :-조선시대 살림집 안채, 사찰(봉정사 대웅전, 여주신륵사 극락보전, 칠장사 대웅전 등)-맞보 : 고주 없이 중앙에 평주를 하나 더 놓고 앞뒤로 길이가 같은 보를 중앙기둥에 연결하여 거는 경우-삼평주오량가 : 앞뒤 맞보 중간에 동자주를 세우고 종보를 거는 구조-이고주오량가 : 전후 퇴칸이 있는 평면구조에서 고주가 두 개 있는 오량집(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강화 정수사 법당)-반오량가 : 삼량가에 전퇴를 붙여 후면은 삼량가인데 전면은 오량가인 가구.▶무고주오량가▶1고주오량가▶2고주 오량가(P144) 칠량가-사찰이나 궁궐등 큰 건물-이고주칠량가가 대부분: 지림사 대적광전, 금산사 대적광전, 봉정사 극란전의 정칸 가구,무위사 극락전 등▶일고주칠량가▶이고주칠량가(P.145) 구량가-이고주구량가: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조선시대와 다른 가구법 ; 기둥이 아닌 튓보 위에도 도리가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