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모히칸』에 나타난 남성 우월주의『라스트 모히칸』은 옛 영국과 프랑스가 현재의 미국 영토를 놓고 서로 차지하려 싸우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다른 인디언과 손잡고 서로를 배척하며 영토를 넓히고, 맞붙어 싸우기 까지 한다. 그런 가운데 자연스레, 현재 미국의 바탕이 된 정신 및 사상과 여러 문화현상들이 나타나며 많은 부분이 예로 보여진다. 한 예로 현재의 미식축구 즉 풋볼은 이 당시의 영토 다툼을 스포츠로 형상화 하여 만들어진 게임 이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 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 외에도 많은 현상들이 보여지지만, 필자는 여성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 남성 우월주의에 관해 적어보려한다.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주변국가인 일본을 비롯해 유럽, 아메리카의 수많은 나라에서 여성의 권위를 신장하려는 운동이 일어나고있다. 즉, 성차별을 반대하는 운동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그중에서도 미국에서 그 운동이 가장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으며, 현대 여성의 권위 신장 운동의 첫 발판이라고들 생각한다. 왜일까? 물론 발전이 두드러져 여성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해본다. 바로 ‘가장 억압이 심했기 때문’인 것이다. 다짜고짜 왜 미국인가 라고 생각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뿌리는 미국이 아닌, 유럽사회이다. 하지만 미국의 뿌리 역시 유럽사회이고, 미국이 세워질 명분 역시 ‘자유에 따른 평등’ 을 바탕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옛 유럽사회에서는 여성의 권리가 심하게 묵살되었다. 특히나 신분이 높은 귀족들은 더 심했다고 볼 수 있겠다. 겉으로 보기엔 그렇지 않겠지만 집에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고, 밖에 나갈 때엔 하인들을 거느리고 다녔던 것은 일종의 이동의 제한 및 감시였으며, 코르셋 역시 여성을 하나의 보기에 좋으라고 꾸미는 물건으로 취급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도 묵살되었던 문화를 가지고 아메리카라는 대륙으로 건너갔던 것이다.게다가 아메리카 인디언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주로 사냥이나 농사를 지었을 인디언들에게 일이란 남자의 전유물이었고, 그에 따라 여자는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아이들이나 돌보는 역할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자연스레 남자에게 속해지는 존재밖에 될 수 없었던 것이다.이런 두 문화가 서로 만났다.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당연히 여성의 권리는 무시되어 질 수 밖에 없었다. 영화의 장면 중, 영국인들이 백작의 딸 둘을 모시고 이동하는 중에 적국편의 인디언들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자를 배려하여 죽이지 않는듯하게 보여지지만 결국엔 생존한 남성 병사들을 처치한 후 마지막에 죽이려는 의도를 볼 수 있다. 또한 마지막 부분엔 여성을 잡아와 그저 하나의 물건으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여성을 남성 인디언에게 주어 화풀이 대상으로 쓰려는 것과 죽여서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장면 등, 그 어디에도 여성을 배려하고 보호해주려는 모습은 볼 수 없다. 조금 볼 수 있다면 단지 사랑하는 딸이라는 이유, 단지 사랑하는 여자라는 이유뿐이다.영화가 얘기해 주는 장면은 여기까지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상식을 덧붙이자면 그 후 얼마나 더 여성이 남성에게 ‘이용’되는 존재였는지는 짐작 할 수 있다.Lady First라는 말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안다. 심지어 툭하면 거론되는 Lady First에 남자들은 종종 발끈 하곤 한다. 하지만 Lady First의 배경은 남성이 여성을 이용한 하나의 이유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서부개척시대 즉 골드러쉬 즈음해서 총싸움이 빈번했었다. 소위 말하는 결투를 신청하면 우리가 잘 아는 장면, 뒤돌아서 몇 발자국씩 걸어간 다음 먼저 총을 쏘는 사람이 이기는 그런 행위가 벌어지곤 했다. 당연히 평소에도 어디서 총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타난 게 Lady First다. 술집 등에서 문 밖으로 먼저 나가면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니, 자신보다 앞서 여성을 먼저 내보낸 것이다. Lady First라는 명분하에 말이다.
인종간의 충돌 ‘Crash'내가 ‘Crash'라는 영화를 처음 본 것은 2005년 겨울 쯤 으로 기억된다. 친구와 같이 격한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가 제목만 보고 고른 이 영화는 처음엔 내가 바란 내용이 아니어서 실망했지만, 영화가 끝난 후 영화관을 나설 때엔 감정에 복받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고 말았다.이 영화에서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 내용은 미국 내에서 심각한 인종 차별의 문제 이다.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발생한 문제가 바로 타 인종간의 배척 및 충돌이었다. 특히 여러 인종이 한데 어우러져 한 나라를 이루고 있는 미국과 같은 영우는 언제나 인종 간에 겪는 문제로 시끄럽다.보통 우리는 인종 차별 및 충돌이라 하면 주로 백인이 흑인에게 대하는 잘못된 감정이나 태도만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영화를 들여다보면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질적인 충돌들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간의 문제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있지 않고 서로 간에 그물처럼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로 간에 물고 무는 순환형의 문제 인 것이다. 또한 이 문제들 사이에는 단순히 인종간의 감정만 엮여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인식과 정치적 문제, 그리고 부가적으로 많은 이유 등이 연관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음식점에서 흑인이란 이유로 푸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두 흑인 청년에게 총이 겨눠지고 차를 빼앗긴, 의원 출마를 준비중이던 백인 부부는 두려움으로 인해 현관문의 자물쇠를 바꾸는 과정에서, 열쇠전문가의 생김새를 가지고 범죄자란 생각을 해 잘못된 감정을 가지고 대한다. 후에는 마약을 다루는 흑인 경찰을 총을 쏴 죽인 백인 경찰에게 오히려 죄를 씌우고 정치적으로 붉어진 인종차별 문제를 덮어버린다. 또한 이 열쇠전문가는 후에 한 아랍인에게도 범죄자란 인상을 주어 공포탄이긴 했지만 총에 맞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이 백인 부부의 도난 차량을 조사하던 백인 경찰은 운전중 애무를 나누던 애꿎은 흑인 부부를 잡아 그 중 부인에게 여자로서는 치욕스러운 일을 겪게 한다. 공교롭게 이 백인 경찰은 후에 이 부인을 교통사고 현장에서 구해내게 되는데 그 전에 행했던 악행으로 부인이 거부를 하게 되면서 이 경찰은 사죄를 하고 또 구해낸 후에도 잠시 생각에 잠긴다.게다가 백인 부부의 차를 강탈한 두 흑인 청년은 후에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아시아계 사람을 치게 되는데 나중에 드러나는 사실에 의하면 이 한국인은 캄보디아 출신등의 동남아시아계 사람들을 밀입국 시켜 돈을 받고 파는 인신 매매범이다. 그리고 두 흑인 청년 중 한명은 백인 경찰과 사소한 감정 싸움을 하다가 오해를 사 총에 맞아 죽는다.물론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관계의 복잡함이 아니라 그 복잡함 사이에서 드러나는 여러 인종간의 대립과 마찰, 그리고 충돌이다. 겉으로 표현되기에 인종차별이란 주로 흑인이 고통받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사실은 흑인이 백인에게 감정을 가지면서 서로 감정을 주고 받기도 하며, 백인과 흑인뿐만이 아닌 아시아인과 아랍인들까지 포함되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사이가 되는 것이 바로 인종차별이다.
『투모로우』에 나타난 환경 문제: 환경의 대 재앙우리는 종종 뉴스나 신문 등을 통해 이상기온에 대해 접한다. 뿐만 아니라 올해만 하더라도 가을을 거의 느끼지 못한 채, 추운 겨울로 넘어왔다. 여름은 갖은 기록을 경신하며 무더위 행진을 계속 했고, 지금 겪고 있는 겨울 또한 어릴 적 기억 속의 겨울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눈사람을 만들었던 기억이 많은 것을 토대로 하면 눈오는 것을 몇 번 보지 못한 채 지나가버리는 요즘의 겨울과는 무언가 달라도 분명히 다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일까? 아마도 엘리뇨나 라니냐 같은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해 불과 십몇년 사이에 지구의 날씨체계가 바뀌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엘리뇨와 라니냐 같은 이상기후 현상은 각종 매체에서 잊혀질만하면 다시 나타나는 문제여서 잘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기후가 바뀌었으면 바뀌었지, 왜 이런 현상에 대해 난리들인 것일까?? 우리는 그 이유를 영화『투모로우』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다.영화는 멀지 않은 미래이다. 도시 풍경도 그렇고 모든 것이 현재와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관측된다. 너무도 갑작스러울 정도여서 처음엔 관측하는 과학자들이 ‘기계가 고장났다.’ 정도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러나 그런 현상들이 더 넓은 지역에서 더 많은 횟수가 기록됨에 따라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눈치를 차린다. 하지만 그 뿐이다. 이런 기상 데이터는 기록 사상 처음이어서 어디가 잘못되었으며, 어떻게 될 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대비 또한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단지 이상기후에 대해 연구하던 학자만이 어느 정도의 미래를 예상한다. 그나마 사람들에게 인정받지도 못하지만 말이다.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로 기후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다. 전문 학자를 제외한 그 어느 누구도, 갑작스레 변하고 있는 기후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는 영화 속에서 만의 일이 아니다. 굳이 기후변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환경오염에 대해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주 접한다. 길거리에 작은 휴지조각을 무심코 버리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도 그 범주에 속하겠지만, 좀 더 심각한 사안들도 별 것 아닌 양 마구잡이로 행하는 사람들을 뉴스나 고발프로그램을 통해 종종 볼 수 있다. 산업 폐기물을 처리도 하지 않고 강으로 그냥 흘려보내는 공장, 대기오염을 상당히 심화 시킬 수 있는 가짜 휘발유를 파는 사람 등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유는 거의 똑같다. ‘돈’ 때문이다. 돈을 조금 절약해 보겠다고 그런 짓들이 행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명심해야한다. 자연은 그런 것들을 모두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에게 돌려준다는 것을.영화에서도 그렇다. 사람들은 오랜 기간 동안 문명을 발전시킨다는 명목 하에 자연을 엄청나게 훼손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지구 곳곳에서 이상 기후가 보여진다. 자연이 그동안 받은 고통을 되돌려주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던 그때,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수많은 허리케인과, 엄청난 강우 그리고 해일까지. 환경은 그동안 받았던 고통을 한꺼번에 돌려주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기록적인 기온 강하가 시작되어 지구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다. 시간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추위가 전 세계를 뒤덮었다. 뉴욕시의 모든 건물은 얼어붙어 창문이 깨져나갔으며, 바닷물 역시 얼었으며 심지어는 헬기의 기름연료까지 꽁꽁 얼었다. 사람들은 대책이 없다. 조금이나마 따뜻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동하지만 도착도 하지 못한 채 모두가 얼어죽는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아주 작은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었다.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다.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인간은 그저 환경이 주는 고통에 따라야만 했을 뿐이다.영화에서 볼 수 있든 인간은 환경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다. 비록 우리가 환경을 뜯어고치고 훼손하며 살아가고는 있으나, 그 환경이 우리에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 여름마다 찾아오는 태풍에 우리는 해마다 적지 않은 피해를 입는다.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했었던 쓰나미는 몇몇 나라 인구의 절반을 바다 깊은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불과 몇일전 필리핀에서 발생했던 태풍은 사망자만 천명을 훌쩍 넘어갔다. 그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항하지 못한다.우리는 환경에 대한 조건으로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해야한다. 모든 것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다는 것 말이다. 우리는 그동안 자연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쳐왔다. 대기, 토양, 수질을 비롯해 갖가지 것들을 인간이 사용하기 편하게 바꾸어버렸다. 그로인해 환경에는 엄청난 변화가 생겼고 환경 속에 사는 우리 인간 역시 스스로가 한 일에 의해 변화를 겪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해일과 강우, 토네이도와 기온 급강하로 표현 했지만 현실에서는 어떻게 다가올 지 모르는 사실이다. 어쩌면 아무도 눈치 차리지 못하도록 천천히 변화하여 인간이 점점 살기 힘든 조건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도 인간은 깨닫지 못한 채 자연을 계속 훼손해 가고 있으며, 자연은 단지 묵묵히 참고만 있을 뿐이다.
미술품 복원, 옳은 일인가? 그릇된 일인가?영국의 세계적인 작가 대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1200만 달러짜리의 설치작품 ‘상어’(원제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가 부패해서 한바탕 소리가 일고 있다.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은 이미 논미 논란이 시작됐다. 백남준 작품의 보존 및 수리를 맡고있는 이정성 씨는 “옛날 LD로 제작한 소프트웨어를 DVD로 바꾸어 놓지 않은 상태에서 망가져 버리면 수리할 방법이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상설 전시중인 그의 비디오 설치작 ’다다익선‘(1988)은 2002년에 모니터 일부가 고장 나 모니터 1003개를 모두 교체했다.- 2006. 07. 11 조선일보 -이탈리아에는 IRC라는 학교가 있다. ISTITUTO CENTRALE PER IL RESTAURO가 풀 네임인 이 학교는 미술품 복원 학교다. 미술품 복원 쪽으론 상당히 유명한 학교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학교에 입학하여 미술품 복원의 기술을 배우고, 그 기술을 인정받고 싶어한다.이처럼 미술품 복원가 전문 양성 학교까지 생겨날 정도로 오늘날에는 미술품 복원이 상당히 많이 행해지고 있다. 그럴수록 붉어지는 문제가 바로 미술품 복원의 여부이다. 과연 손상된 미술품을 복원해야 하는가? 아니면 손상된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많은 대립된 의견들이 있다. 손상된 것을 고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과 손상되었더라도 함부로 고쳐서는 절대로 안된다 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나의 생각은 후자인, ‘고쳐서는 안된다’ 라는 쪽이다.현대까지 전해지는 미술작품들은 상당히 많다. 물론 오랜 시간을 거치게 되면서 전쟁 중에 파손된 작품도 있을 것이고, 도난과 회수를 반복하여 상태가 나빠진 작품도 있을 것이다. 또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적으로 손상된 작품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작품들을 꼭 복원해야만 하는 것인가?르네상스를 비롯한 옛 시대의 서양 미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목숨과도 같이 여겼다. 심지어는 어느 부분이 잘못되면 그 작품을 폐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미술가의 작품은 미술가의 육체와 정신과 일치한다.’ 이는 유럽 등의 서양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양에서도 같은 이유로 작품을 폐기하기도 하였다. 가장 좋은 예로 우리나라의 도자기공을 들 수 있겠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은, 망치와의 마지막 키스를 끝으로 산산조각이 났으니 말이다.물론 지금은 생존해 있지 않은 옛 미술가들의 생각을 내 마음대로 짐작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만약 물을 수만 있다면 이렇게 묻고싶다. ‘만약 당신의 미술 작품이 후세에 회손 된다면,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복원되어지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작품이 수명을 다한 뒤 기억 속에 보존되길 원하십니까?’미술의 종류가 다양해진 지금, 필자는 미술품의 복원을 하지 말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미술품의 복원이 아니라 미술품을 만든 미술가의 정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무슨 차이가 있겠냐 싶겠지만, 엄연히 다르다. 서두에서 말한 대미언 허스트의 ‘상어’(‘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라는 작품과 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을 예를 들어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대미언 허스트의 ‘상어’라는 작품은 포르말린 용액 안에 상어를 담가둠으로 해서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어버렸다. 물론 작가의 의도는 원제에서 알 수 있듯 죽은 것의 육체적 불가능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그 표현의 대상이 된 상어는 이미 부패해버렸다. 말 그대로 죽은 것의 육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적으로 회손 된 것이다. 이런 경우에 복원 할 경우, 작가의 의도를 건드리는 것이 된다. 이런 경우의 복원은 반대한다.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은 이미 한차례 복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미술적인 영상을 모니터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에 비추는 작품이었는데 그 매체인 모니터를 교체했다. 이 경우 교체 한 것은 매체인 모니터였다. 어찌 보면 모니터는 단지 액자에 불과하다.이 액자가 다른 것으로 바뀐다고 해서 작가의 의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물론 LCD등의 다른 종류의 매체라면 또 모르겠지만, 같은 종류의 브라운관 모니터로 바꾸었기에 액자만 바뀐 이 작품은 작가의 의도가 변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라면 반대하진 않겠다. 하지만, 만약 저장 매체인 LD를 새로운 저장 매체인 DVD로 바꾸려 한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적극 반대하겠다. 물론 시대적인 배경도 있겠지만, 작가는 LD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저장했다. 한마디로 캔버스를 LD로 정한 것이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곤 하지만 작품을 다른 캔버스로 함부로 옮긴다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다. 액자를 바꾸는 건 상관없지만 말이다.
『에린 브로코 비치』에 드러난 환경문제간혹 TV의 고발프로그램을 보다보면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할 때가 많다. 이름 깨나 큰 기업들이 자신들 잇속 채우기에 급급해 주변의 환경은 무시한 채 폐기물들을 마구 버리는 현장들이 끊이지 않고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으로서 돈이 적게 드는 처리방법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해져야 한다. 에빈 브로코 비치』는 이것이 지켜지지 않아 법정으로 까지 가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영화 『에린 브로코 비치』는 허구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가 아니다. 미국에서 2003년 실제로 있었던 소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크게 흥행하진 못했지만 미국에서는 큰 화제 거리가 되었던 영화이다.영화는 돈을 벌기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구하던 주인공 ‘에린 브로코 비치’에 의해 시작된다. 그녀는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아주 이상한 데이터를 발견한다. 최근 들어 동네에 환자가 급격하게 늘어 난 것이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에린 브로코 비치는 조사에 들어갔고, 근처의 대기업 PG&E 공장에서 유출되는 중크롬에 의해 발병되는 것으로 알아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PG&E 공장에서는 그동안 주민들에게 공장에서 발생되는 중크롬을 몸에 이로운 크롬으로 속여 아무렇지도 않게 버텨온 것이다. 공장에서 취하는 이러한 음모를 주인공 에린 브로코 비치가 주민들에게 알리고 소송을 제기를 하면서 일은 붉어지게 된다.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과거 일본에서 있었던 미나마타 사건을 생각해보면 쉽겠다. 사람들을 속이면서 행한 일은 아니었지만, 수은을 배출 하던 공장에서는 사람 몸에 해롭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던 수은을 배출했다. 하지만 바닷물 속으로 흘러들어간 수은이 미생물들의 작용을 거쳐 몸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수은으로 바뀌어 먹이사슬을 통해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낙동강 페놀 사건만 하더라도, 한 공장의 페놀 무단 방류로 인해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오염의 매개체가 물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영화 속 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은 종류의 피해라고 볼 수 있겠다. 공장의 관리자는 잇속을 챙기기 위해 한 일이겠지만 그 댓가는 너무나도 컸다. 이익에 비해 피해액은 상상을 초월하고 말았다. 미국에는 이런 갑작스런 사고 등에 대비하기 위해 Super Fund 라는 것이 있다. 큰 사고 등으로 인해 환경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을 때를 대비하여 보험개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것의 배경은 Love Canal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한 돈 많은 갑부가 운하를 만들고 있었다. 운하의 이름은 Love 즉, Love Canal 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이 갑부가 파산을 한 것이다. 이 운하는 폐기물 처리 업체의 손에 넘어갔고, 이 업체는 폐기물 매립을 마친 후 한 초등학교에게 1$에 이 땅을 팔아넘긴다. 하지만 그 이후 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알 수 없는 이상한 질병에 걸리게 되면서 조사에 들어갔고, 매립되었던 폐기물의 유출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면서 미국은 이 Super Fund를 긴급히 만들어 대처했던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갑작스런 환경오염에 대해 긴급조치를 취해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영화『에린 브로코 비치』는 주인공이 3억3000만$, 우리 돈으로 약 3300억원에 이르는 돈을 중재금으로 받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어찌보면 힘겨운 싸움 끝에 얻어낸 값진 결실이겠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이것은 힘겨워야 할 것이 아니라 당연히 보상 받아야 하고 앞으로는 보상받을 일이 있어서는 안 될 문제이다. 감히 어떻게 기업이 시민의 건강과 목숨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돈을 챙길 수 있겠는가? 절대로 용납되지 못 할, 용납되어서는 안 될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겠다.이 영화를 보고나서 참으로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이런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잘 못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앞에서 말했듯, 미국은 긴급하게 Fund까지 만들어가며 유출된 폐기물을 처리하고 그 구역을 봉쇄하는데 이르렀다. 하지만 비슷한 예로 미군기지의 기름유출 사건을 들어보자. 과거 용산 미군기지 구역에서 발생한 기름 유출 사건을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결했었던가? 용산구는 미군부대의 책임이라며 회피하는 동안 유출된 기름은 점점 흘러들어 지하수까지 오염시키기에 이르렀다. 늦장대응에 대한 보상은 어는 누구도 해주지 않는다. 상황의 긴급성을 이해하고 토양오염의 심각성을 생각 할 줄 아는 행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 신문에서 시멘트 혼합에 사용하기 위해 발암성 물질이 포함된 폐기물들을 해외에서 들여와 사용하는 시멘트 회사들이 상당수 고발당한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각 나라들 마다 처리 못해 안달인 폐기물들인데 그걸 해외에서 들여올 생각을 하다니, 정말이지 행정에 대해 잘 모르는 필자가 보아도 무엇이 크게 잘못되었음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