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진공량의 조절? 포장김치는 발효가 진행되면서 CO2를 생성하므로 포장 내부의 O2농도는 감소하고 CO2 농도가 증가하게 된다.- AP(상압포장), CV(배기포장) : 저장기간이 증가함에 따라 O2농도는 지수적으로 감소, CO2농도는 2단계 증가양상을 보인다.- DP(이중포장) : CO2농도가 일정하고 CO2농도는 2단계 증가 후 확산과 투과에 의해 다시 감소하는 양상을 보인다.- VP(진공포장) : 저장 말기에 1%이하의 저농도를 유지하는 O2와 70% 이상의 고농도를 유지하는 CO2가 일정하게 평행을 이루고 있다.? 포장재에 따른 진공도 실험에서 진공도 차이는 김치품질에 큰 영향이 없으며 head space의 공기를 제거하는 수준이면 된다.3. 포장 내 CO2흡수제의 이용① 화학적 CO2흡수제의 이용? 김치 포장에 내압조절 CO2흡수제를 선택하여 적절한 플라스틱 필름의 작은 봉지에 넣은 다음 이를 김치 포장 내부에 장착하여 CO2로 인한 부피팽창 및 압력 발생을 완화시키는 방법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또 일부는 산업에 활용되고 있다.? Ca(OH)2 - 가장 흡수능이 좋으며 현재 산업체에서 작은 플라스틱 필름봉지에 넣어 사용되고 있다.- 그 양에 따라 head sapce의 CO2 뿐만 아니라 김칫국물의 CO2까지 흡수하여 국물의 시원한 맛을 감소시킨다.② 물리적 CO2 흡수제의 이용? 물리적인 CO2 흡수제는 화학적 CO2와 달리 비가역적 화학반응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화학적CO2 흡수제가 갖는 결점인 포장 내 head space 및 김칫국물의 CO2까지 흡수하지 않는다.? zeolite - 효과는 초기에 나타나고 말기에는 일정 수준에서 CO2 흡수능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김치포장에서 장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단위량 합입량이 많고 전체 CO2 흡수능에서 한계가 있다.- 수증기는 zeolite의 흡착특성에 있어서 CO2 와 경쟁하여 우선적으로 흡착되고, 흡착되었던 CO2 를 방출시킨다. 이로 인하여 head space의 CO2 농도는 증가하, 수분이 존재하는 포장 환경에서는 그 흡착공극에 CO2 보다 수분이 선택적으로 먼저 흡착하게 되므로 포장 내의 CO2를 흡수제거하는 데에 제약이 있다. 그러나 Na2CO3와 zeolite를 함께 섞어서 사용하면, 수분은 Na2CO3에 의해서 CO2와 반응하여 제거되므로 zeolite가 지속적으로 CO2 흡착능력을 보유할 수 있다.4. 투과형 필름 및 pinhole의 이용① CO2 투과형 필름의 이용? CO2 투과도가 큰 필름을 사용하면 포장에서의 부피 팽창 및 압력발생의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포장재의 높은 기체 투과도는 조건에 따라서 산소와 질소의 유입을 초래하여 오히려 부피팽창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고 냄새의 차단성 부족으로 인해 강한 김치냄새를 외부로 유출시킬 수 있으므로 높은 CO2 투과도를 갖는 반면 낮은 O2 및 향기 투과도를 함께 갖고 있어야 한다.② Pinhole 포장의 이용? 김치 포장에 작은 pinhole을 설치해 놓으면 포장 내부로부터 완만한 가스 흐름이 존재하게 되고 포장 내외의 압력이 항상 평형을 유지하게 되어 압력발생이나 부피팽창의 문제가 심각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pinhole에 의해서 포장이 갖는 포장 외부와의 차단성이 상실되며 저장 및 최종판매 공간에 김치 냄새가 누설되는 문제점이 있다.3. 가공김치와 Home-made김치1) 설문조사① 설문대상 - 종가집 포기김치- 하선정- Homemade 김치 (일반 반찬가게에서 구매)② 소비자 기호도 조사ⅰ) 실험 설계 이유본 연구의 목적은 ‘김치 제조과정에 따른 조리과학적 차이점’이며 우린 제조과정이 다른 가공 김치와 집에서 담근 김치의 차이점을 알기 위해 김치 숙성 후 미생물, 영양소, 맛 등의 차이를 측정하고자 하였다. 미생물의 변화, 영양소의 변화 등은 문헌고찰을 통해 알아보았으며 그 중 직접 조사가 필요한 소비자의 기호도와 대다수의 사람이 느끼는 관능도의 차이를 설문지를 통해 알아보았다.ⅱ) 조사 방법종가집 포기김치, 하선정 포기김치와 같은 날 집에서 담근 홈메류의 김치는 동일한 용기에 담아 동일한 온도에서 시간에 따른 숙성의 차이만 비교할 수 있도록 하였다. 3종류의 김치를 이름을 적지 않고 A,B,C로 하여 이미 알고 있던 포장 김치에 대한 내용은 평가 결과에 반영되지 않도록 하였다. 평가 내용은 신맛(sourness), 질감(texture), 색(color), 냄새(aroma) 의 4가지이며 각각 1부터 5까지 숫자로 각 정도를 표시하도록 하였고 전체적인 맛의 순위를 매기도록 하였다. 그 밖의 기타 의견은 비고란에 각자 쓸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여대생 20명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조사하였다.③ 조사용 설문지안녕하세요.본 설문지는 ‘조리과학’수업의 프로젝트를 위한 것으로 현재 대학교에 재학중인 여러분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본 질문지는 김치의 제조과정이 맛에 미치는 차이를 알아보기 위한 것입니다.각각의 김치를 맛본 후 그에 대한 느낌을 아래 칸에 기입해주시기 바랍니다.이화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조리과학 1조◈ 각 항목에 대해 본인이 느끼는 정도를 1부터 5까지로 하여 표시해 주십시오.1 : 매우 약하다.3 : 그저 그렇다.5 : 매우 강하다.ABC신맛(sourness)질감(texture)색(color)냄새(aroma)◈ 맛의 순위를 1,2,3위로 매겨주십시오.ABC맛의 순위◈ 기타 의견이 있으면 적어주십시오.지금까지 설문에 성실히 응답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2) 설문결과① 설문 통계종갓집하선정Home made신맛1.893.283.22질감2.671.833.8색2.892.124.1냄새2.671.53.56전반적인 기호도3.11.893.94맛의 순위231② 기타의견종가집 포기김치하선정 포기김치홈메이드 김치신맛홈메이드 김치와 비교해 신맛을 거의 느끼지 못했고 갓 담은 김치의 신맛과 비슷했다.홈메이드 김치와 비교해 신맛을 거의 느끼지 못했고 갓 담은 김치의 신맛과 비슷했다.가장 맛있게 익은 정도의 신맛. 가장 맛있게 익어 적절한 신맛이 난다. 갓 담은 김치와 신김치의 중간정도.질감배추 자체는 낌. 아삭한 느낌이 없다.아삭아삭하고 적당히 절여진 느낌. 세 김치 중 질감이 가장 좋았다.색깔전체적으로 묽은 색이 나며 배추에는 약간의 양념만 배어있다. 고춧가루가 잘 배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다.배추에는 거의 양념이 배어있지 않고 물의 양이 많아서 그런지 전체적인 양념의 색깔 역시 하얗고 묽었다.양념이 많아서 그런지 붉은 색이 진하고 배추 자체에도 붉은 빛이 배어있다. 묵은지의 투명함처럼 반투명한 배추의 색깔이 투명해졌다.냄새강한 화학약품 냄새가 나며 김치 특유의 냄새와 젓갈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강한 화학약품 냄새가 나며 억센 풀냄새가 난다.A와 B가 향이 없어서인지 젓갈 냄새가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밥과 함께 먹었을 경우 신김치의 향과 음식향이 적절히 조화되어 이상적인 김치의 향을 낸다.기타숙성이 됨에 따라 배추에서 물이 많이 나와 묵은지로 활용을 하지 없을 것 같고 너무 달았다.물이 다른 김치에 비해 많고 농도가 옅다. 처음 개봉했을 때에도 물이 많았는데 숙성 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③ 설문결과 분석A군은 종갓집 김치, B군은 하선정 김치 C 군은 홈메이드 김치였는데, A군 배추는 신맛의 평가에서 가장 낮게 나왔으며 질감이나 색, 냄새와 전반적인 기호도가 평이하게 나왔다. 신맛에 있어서는 B군이 가장 높다고 나왔는데, 양념의 숙성이 과다하게 시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배추의 생 맛이 많이 느껴졌고, 질감, 색, 냄새와 전반적인 기호도가 가장 낮게 나왔다. 반면에 전체적으로 C군의 김치가 배추에 양념이 가장 잘 베어있어 숙성이 잘 되어 있으며 신맛이 다소 강했지만 맛이 조화롭고 신 맛을 제외한 질감, 색, 냄새, 전반적인 기호도에서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전체적으로 가공김치에서는 잘 절지 않은 배추 자체의 향이나 질감이 많이 느껴진다고 대답하였고, 양념과 배추의 맛의 조화가 홈메이드김치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홈메이드 김치가 가공김치들 보다 조금 더 빠르게 숙성되어 신맛의 강도가 비교적 컸음에도 불구하고 하선정 김치의 시큼한 맛에 비해 잘반적인 평가 점수가 좋지 않게 나온 것 같다.김치의 재료와 만든 장소 첨가물 등이 모두 달라 순수하게 가공김치와 홈메이드 김치의 차이점을 분리해 내기 힘들었다.Ⅲ. 결론1. 설문 & 관능검사를 통한 가공김치의 특징분석1) 가공김치가 숙성이 더딘 이유① 가공김치 제조시 첨가물에 의한 원인하선정· 식품의 유형: 배추김치 / 비살균제품· 원재료명 및 함량: 절임배추 69.4% [배추 98%(국산), 식염 2%(국산), 무(국산), 김치조미액젓(새우 함유), 고춧가루(국산), 마늘(국산), 엽경채류(국산), 양파(국산), 대파(국산), 생강(국산), 유산균배약액(류코노스톡시트리움/대두 가수분해물 함유), 전분풀(변성전분, 구아검)종가집· 식품의 유형: 배추김치 / 비살균제품· 원재료명 및 함량: 절임배추68.1%[배추(국산),무(국산)},중부식김치양념[종가집멸치액젓(국산),종가집새우액젓(국산),종가집순한다시마베이스(국산)]고춧가루(국산),마늘(국산),생강(국산), 대파(국산), 양파(국산),부추[또는 갓](국산),류코노스톡DRC0211,종가집김치전용풀,정제염(국산)㉠ 소르빈산, 소르빈산칼륨, 소르빈산칼슘곰팡이 및 효모에 효과적인 보존제이나 젖산균이나 포자형성균 등에는 효과가 없다. 초산, 젖산, 프로필렌글리콜 및 알코올 등에 녹여서 사용한다.㉡ 젖산방부작용이 있어 발효공업이나 양조식품의 이상발효억제 및 풍미개선이나 청량음료에 있어서 산미료를 겸한 혼탁방지제로 이용된다.㉢ 류코노스톡시트리움김치가 익으면서 생기는 젖산균은 김치를 숙성시키고, 효소는 채소의 유기 성분과 결합하여 맛을 내게 한다. 부패를 억제시키는 역할도 한다. 이때 류코노스톡은 젖산의 효소를 생성하는 역할을 한다. 류코노스톡 시트리움은 숙성 30일 후 최적 조건에서 1㎖당 3억2천만 개체가 생성되는 것으로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생성되지만 가공김치에는 따로 류코노스톡을 첨가하여 유산균 활동을 활발히 일으키는 동시에 김치를 시어지게 하는 산패균 번식을 더 억제하여 산패가 억제되어 숙성도 더디게 된다.
..PAGE:1가공 담금 김치의조리과학적 특성- Home-made 김치와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PAGE:2목차..PAGE:3주제선정동기..PAGE:4가공김치와Home-made김치설문조사 분석차이점 도출 및 결과 비교설문조사..PAGE:51. 연구 목적 : 김치 제조과정에 따른 조리과학적 차이문헌고찰 : 미생물의 변화, 영양소의 변화설문지 : 소비자의 기호도와 대다수의 사람이 느끼는 관능도의 차이2. 조사 방법 및 대상같은 날 담근 종가집 , 하선정 포기김치/ 홈메이드 김치 구입온도, 용기 등 변수를 통일한 후 일반냉장고에서 2주 보관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여대생 20명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조사.종가집,하선정, 홈메이드 김치를 각 A,B,C로 구분하여 담아 시식하게 하고 설문지에 1-5까지 관능도 평가를 실시함3. 평가내용 : 평가 내용은 신맛(sourness), 질감(texture), 색(color), 냄새(aroma)◈ 설문조사 분석..PAGE:6◈ 각 항목에 대해 본인이 느끼는 정도를 1부터 5까지로 하여 표시해 주십시오.1 : 매우 약하다.3 : 그저 그렇다.5 : 매우 강하다.ABC신맛(sourness)질감(texture)색(color)냄새(aroma)◈ 맛의 순위를 1,2,3위로 매겨주십시오.ABC맛의 순위◈ 기타 의견이 있으면 적어주십시오.지금까지 설문에 성실히 응답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PAGE:7종갓집하선정Home made신맛1.893.283.22질감2.671.833.8색2.892.124.1냄새2.671.53.56전반적인 기호도3.11.893.94맛의 순위231◈ 맛의 결과..PAGE:8종가집 포기김치하선정 포기김치홈메이드 김치신맛홈메이드 김치와 비교해 신맛을 거의 느끼지 못했고 갓 담은 김치의 신맛과 비슷했다.가장 신맛이 강했지만 배추에서는 생배추의 맛이 났다. 양념과 배추가 함께 숙성되지 못하였다.가장 맛있게 익은 정도의 신맛. 가장 맛있게 익어 적절한 신맛이 난다. 갓 담은 김치와 신김치의 중간정도.질감배추 자체는 힘이 없고 쳐져있으나 단단하고 질긴 느낌. 하지만 씹으면 금방 입에서 뭉그러진다.절여지지 않은 듯 질긴 느낌. 아삭한 느낌이 없다.아삭아삭하고 적당히 절여진 느낌. 세 김치 중 질감이 가장 좋았다.색깔전체적으로 묽은 색이 나며 배추에는 약간의 양념만 배어있다. 고춧가루가 잘 배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다.배추에는 거의 양념이 배어있지 않고 물의 양이 많아서 그런지 전체적인 양념의 색깔 역시 하얗고 묽었다.양념이 많아서 그런지 붉은 색이 진하고 배추 자체에도 붉은 빛이 배어있다. 묵은지의 투명함처럼 반투명한 배추의 색깔이 투명해졌다.냄새강한 화학약품 냄새가 나며 김치 특유의 냄새와 젓갈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강한 화학약품 냄새가 나며 억센 풀냄새가 난다.A와 B가 향이 없어서인지 젓갈 냄새가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밥과 함께 먹었을 경우 신김치의 향과 음식향이 적절히 조화되어 이상적인김치의 향을 낸다.기타숙성이 됨에 따라 배추에서 물이 많이 나와 묵은지로 활용을 하지 못할 것 같고 너무 달았다.물이 다른 김치에 비해 많고 농도가 옅다. 처음 개봉했을 때에도 물이 많았는데 숙성 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각 김치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PAGE:9하선정· 식품의 유형: 배추김치 / 비살균제품· 원재료명 및 함량: 절임배추 69.4% [배추 98%(국산), 식염 2%(국산), 무(국산), 김치조미액젓(새우 함유), 고춧가루(국산), 마늘(국산), 엽경채류(국산), 양파(국산), 대파(국산), 생강(국산), 유산균배약액(류코노스톡시트리움/대두 가수분해물 함유), 전분풀(변성전분, 구아검)
중남미 지역은 최근의 정치 사회적 발전과 금융시장의 급격한 성장에 따라 투자대상으로 주목받고 있음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중남미 시장도 위축되고 있으나 장기적 관점에서는 여전히 낙관적인 전망이 유효 중남미 시장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이 고조되어감에 따라 이 지역 국가들의 주식시장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요구되고 있으나, 중남미 주식시장에 대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조사․연구가 수행된 바가 없는 실정 목적-브라질, 멕시코, 칠레의 중남미 3개국을 주요 대상으로 하여, 각 국가의 경제동향, 주식시장 개황, 시장 거시구조, 시장 미시구조를 차례로 조사․분석I. 서론경제동향-각국의 경제정책, 대외거래, 국가신인도 등 경제전반의 현황을 소개하고 GDP, 물가수준, 실업률, 환율 등 기본적 경제지표의 추이 분석 각국 주식시장 개황-증권 거래소의 역사 소개, 주식시장 관련 통계량을 제시하고 분석 주식시장 거시구조-주식시장을 둘러싼 제도적 환경, 주식시장의 운영구조를 소개 주식시장 미시구조-증권의 상장 및 거래와 관련된 규정 및 체계 소개, 매매제도, 청산결제제도, 상장 제도, 공시제도, 외국인투자여건 등으로 구성I. 서론41개국, 약 6억명의 인구로 구성 GDP 총액-4조 4천억 달러(전 세계GDP의 8%)II. 중남미 시장의 개요2000년대 초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낮은 GDP 성장률을 보인 이후 4% 이상의 성장률 수준을 회복II. 중남미 시장의 개요주로 금속, 연료, 식품, 농축산물 등 1차 생산품을 수출하며, 공산품을 수입II. 중남미 시장의 개요1980년대 이후 경제개발정책의 패러다임을 국가통제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시장기반의 정책 패러다임으로 전환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40여 차례의 잦은 금융위기를 경험 2000년대 이후 정치, 경제적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한 결과, 과거에 비해 정치적 안정성, 경제정책의 신뢰성 측면이 상당히 개선됨 제반 조건을 고려할 때 중남미 경제의 향후 전망은 대체적으로 낙관적II. 중남미 시장의 개요II. 중남미 시장의 개 바탕으로 성장세를 지속해 왔음III. 브라질상파울로 주식거래소(이하,Bovespa)- 남미의 가장 큰 주식거래소 392개 기업이 상장,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은 약 5,880억달러 수준(2008년 말) 일평균 거래대금-31억달러(전년대비 22%증가) 일평균 거래건수-24만 5천건(전년대비60% 증가) 최근 들어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다시 증가 BM Fbovespa-세계 7위 파생상품거래소로서 전 세계 장내 통화 및 금리 파생상품시장에서 각각 25%와 7%의 높은 비중을 차지III. 브라질증권시장법, 회사법, CVM 지침에 의해 규제가 이루어짐 Bovespa와 시장분석 및 감독, 조사업무 수행기구인 BSM을 통해 자율규제활동이 이루어짐 BM Fbovespa-Bovespa는 2007년 Bovespa Holdings Group의 자회사가 되었으며, 2008년 선물거래소인 BM F와 합병III. 브라질매매제도 Bovespa에서는 1997년 도입된 전자 주문주도형 거래시스템인 MEGA BOLSA를 통해 가격/시간우선원칙에 따라 연속경쟁매매 방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짐 규거래시간 중 접속매매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루어짐 모든 주문과 거래데이타의 실시간 공개를 원칙 거래수수료와 중개수수료 부과 개별주식에 대한 일일가격제한폭제도와 매매정지제도, 시장전체 수준의 서킷브레이커제도가 있음III. 브라질청산․결제제도 CBLC를 통한 청산 986및 결제업무를 수행하며 주식의 결제주기는 T+3일 상장 및 공시제도 강력한 상장규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CVM을 통한 상장절차를 따르도록 되어 있음 CVM과 Bovespa의 웹사이트 내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제공 GAAP은 IFRS로의 수렴과정에 있으며 연결재무제표는 2010년부터 국제회계기준위원회(International Accounting Standards Board:IASB)의 기준을 따라 작성되어야 함III. 브라질외국인 투자제도 2000년초 National Monetary Council은 결의안 2689를 발표하면서 투여타 시장에 비해 조정폭이 제한 사회적 증권거래소의 운영III. 브라질2007년 GDP는 1조 230억달러로 전 세계에서 14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3.9%의 경제성장률을 기록IV. 멕시코물가지수는 2004년 이후 경제안정화 정책에 힘입어 하락세로 돌아섰으나 2007년 이후 재상승 추세를 보임IV. 멕시코BMV(Bolsa Mexicana de Valores)-멕시코 유일 S.A.)는 2008년 6월 IPO를 통한 기업상장을 완료 총 376개 기업(국내기업 122개, 해외기업 254개)이 상장(2008) 시가총액은-약 4,110억달러 연간 주식거래대금-약 1,420억달러로 (GDP대비 15%) BMV의 주요 지수- BOLSA 지수, INMEX ,IPC(Indice de Precios Cotizaciones), BMV의 외국인 투자비중-47.1%(시가총액기준, 2008년)IV. 멕시코금융관련법은 모두 연방법의 적용을 받야야 함 증권시장법에 의하여 증권시장 및 산업이 규제 CNBV(증권거래위원회)-증권시장의 관리․감독기구는 Capital market과 Global market으로 구분 운영 BMV에서 거래되는 금융상품-주식,채권, 뮤추얼펀드, 주식워런트, ETFIV. 멕시코매매제도 전자주문장을 이용한 순수경쟁매매방식 채택-BMV-SENTRA Capitales, 브로커,SETRIB을 도입․운영 거래시간은-평일 오전 8:30~ 오후 3시 최소호가단위-/100페소 거래수수료, 중개수수료 없음 일일가격제한폭(전일종가±15%), 매매정지제도 유동성 높은 주식에 한해 공매도를 허용IV. 멕시코청산․결제제도 청산업무는 CCV가, 예탁 및 결제에 관한 업무는 Indeval에서 담당 결제일-T+2(국내주식), T+3(해외주식) 상장제도 BMV의 Capital market에 상장하고자 하는 기업은 증권등록위워회(RNV)에 등록되어 있어야 하며 중개회사를 통해 규정된 상장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함 단, BMV의 Global market에 상장시킬 경우에는 CNBV 또는 이에 준하는 다른ystem의 도입으로 해외기업의 유치활동에 적극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음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비중이 상당히 높음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제한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 엄격함IV. 멕시코2007년 실질 GDP는 1,625억달러로 전 세계에서 42위를 차지 실질 경제성장률은 5.1%로 비교적 높은 성장세V. 칠레2007년 소비자물가지수는 4.4%, 실업률은 7.0%를 기록V. 칠레세 개의 주식거래소 중 SSE(Bolsa de Comercio de Santiago, Santiago Stock Exchange)가 가장 큼 SSE에는 총 238개 기업(국내기업 235개, 해외기업 3개)이 상장 상장기업의 시가총액-1,289억달러 일평균 주식거래대금 성장률-약 74%(2002~2007) 일평균거래건수 성장률- 약 42% 대표적 주가지수-IGPA, IPSA, Inter-10V. 칠레정부 및 칠레중앙은행의 관할 하에 증권시장법과 SVS 규정에 의해 규제 직접적인 관리감독은 재무부 산하의 SVS에 의해 이루어짐 SSE는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 전체시장-주식, 채권, 통화 및 귀금속, 단기채권, Investment Funds, Quotas Market(CFI), 선물, 옵션시장V. 칠레매매제도 SSE의 주식거래는 모두 브로커를 통하여 이루어짐 매매체결방식의 구조-floor system에 의한 경매방식+전자거래시스 템을 통한 자동주문방식 Pregon 시스템과 Telepregon 시스템이 함께 운영 거래시간은 평일 오전 9:00~오후 4:30(여름에는 오전 9:00~오후5:30) 중개수수료, 거래소수수료(최대 0.5%),세금 부과V. 칠레청산․결제제도 거래소내 청산시스템을 거쳐 외부 DCV(Deposito Central de Valores SA)로 송부되어 처리 결제일- 실행당일(장외거래) T+2일(장내주식거래) T+1일(채권) T+0(단기채권) T+5일(해외주식) T+3일(해외예탁증권)V. 칠레상장 및 공시제도 SVS에 주식(해외기업주식 포함)등록 후,30일 이내에3년으로 제한 외국인 주식보유비율에 대한 제한은 없음 어업, 미디어 등에 대한 투자 금지 통신업은 면허 취득 후에 투자가 가능V. 칠레전형적인 이머징마켓의 특징을 보임 주식시장은 기관투자자 위주로 성장 기업지배구조와 투자자보호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음 객장 거래가 여전히 존재 외국기업의 주식시장을 통한 자본조달이 매우 저조V. 칠레1차 생산품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인해 지역의 경제적 성과가 상품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시장의 변동성이 큼 소수의 대형 종목의 시장점유율이 높아 전체적인 시장유동성이 낮음 거래시스템과 관련 제도에서 지역 거래소간 차이가 큼 최근 주식시장의 상승은 경제의 성장에 비해 지나치게 급격하여 시장 과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됨VI. 결론지금까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중남미 주식시장의 기본구조, 규제체계, 주식거래제도 등을 전반적으로 소개함으로써 투자자들의 보다 합리적인 투자활동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됨 중남미 주요국 증권시장 제도의 이해를 통해 각 시장의 장단점을 분석함으로써 보다 경쟁력 있고 효율적인 국내 증권시장 구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됨VI. 결론국내문헌 곽재성, Mortimore, M., 2007, 한국의 대중남미 투자와 진출전략 연구, KOTRA. 김종섭, 2003, 라틴아메리카에 있어서 개방화와 소득분배, 『Asian Journal of Latin American Studies』16-2, 5-30. 전병근, 고금리·경제 급성장-해외자금 브라질 몰린다, 조선일보, 2006 (12. 1). 한국선물협회, 2008, 『2008년 상반기 세계 장내파생상품 거래량 동향』, 한국선물협회 조사보고서 2008-07. 해외문헌 Agosin, R.M., Pasten, E., 2003, Corporate governance in Chile, Central Bank of Chile working papers No. 209. Best Brazil, 2008, Brazil Market Profile. Black. B.S., Garvalho
1)역사 및 유래테니스의 유래테니스는 직사각형 코트의 중앙에 네트를 사이에 두고 마주 대한 경기자가 라켓으로 공을 서로 치고 받아 넘김으로써 득점을 겨루는 구기의 하나이다. 원래 코트면이 잔디였기 때문에 론 테니스(Lawn Tennis)라고 일컬어 졌는데, 관리상의 애로점이 많아서 잔디 코트가 줄어 들었기 때문에 현재에는 단지 테니스로만 호칭하게 되었다.테니스는 언제, 어디에서 시작하였다는 것은 명화하게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기원은 지금부터 600-700년전 특히 프랑스에서 귀족들에게 성행되었던 'La Paume'이라는 Ball game이 있었다고 한다. 이 경기는 손바닥으로 공을 때린다는 것에서 이러한 명칭이 붙여진 것이라 하겠다.세계 테니스의 역사12세기부터 16세기까지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라뽐므(La Paum)’라는 경기가 테니스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이 경기는 당시 귀족과 사원의 수도사 들에 의해 행해지던 볼 게임으로 손바닥으로 공을 치고 받는 형태의 스포츠였다고 한다. 이것이 13세기 경 프랑스 귀족과 성직자들 사이에서 ‘쥬 드 폼므’라는 손바닥 게임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쥬 드 폼므는 털이나 천을 채워 둥글게 만든 공을 맨손이나 장갑을 끼고 손바닥으로 때리던 경기로써, 코트의 중앙에 만든 경계 벽을 넘어서 반대쪽 3방향의 벽 어디에든지 손바닥으로 공을 쳐 넣으면 상대방은 이 공을 직접 또는 한 번 바운드 된 공을 손바닥으로 다시 쳐서 넘기는 경기였다. 1360년 경 영국 사람들이 이 경기를 자국에 소개할 때 ‘테네즈(tennez)' 즉, ‘공을 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에서 테니스라는 명칭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테니스 명칭의 효시가 되었다. 당시의 경기는 맨손으로 할 경우 손바닥이 너무 아파 장갑을 끼고 시행했는데 이것이 조금 더 발전하여 15세기 후반에 라켓을 개발하게 된다. 그 이후 테니스는 폭발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1596년 프랑스 파리의 인구가 30만명일 때 테니스 코트는 250개에 달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영국 중산층들이 여가 시간에 즐길 수 있는 적당한 스포츠를 원했는데, 당시 크리켓이 인기를 끌었지만 경기장을 특별히 마련해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있어, 넓은 잔디밭에서 할 수 있는 운동으로서 테니스가 적당했으며 체계를 세워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1873년 인도 주재군 소령이었던 영국 사람 윙필드가 경기 체계를 세우고 그 이후 테니스는 급성장하게 된다. 윙필드는 일정한 코트와 네트를 만들었으며, 1875년에는 메릴리본 크리켓 클럽(Marylebone Cricket Club)에서 규칙을 통일함으로써 근대 스포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어 1877년에는 제1회 영국 선수권 대회가 윔블던에서 열려 지금까지도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이어져오고 있다. 1896년 제 1회 아테네 올림픽 대회에서 정식 경기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나, 프로 선수의 참가가 문제 되어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 대회부터 경기 종목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다가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서 64년 만에 다시 정식 경기 종목으로 부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한국 테니스의 역사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테니스 경기가 시작된 것은 1900년대부터였다. 1908년 4월 탁지부(현재 재경부) 관리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회동구락부를 조직한 뒤 테니스 코트를 마련해 경기를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 테니스의 시초라 한다. 1927년 9월 24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용산의 철도국 코트에서 일본 오사카 매일신문사 경성지국 주최로 제1회 테니스 선수권대회가 열렸으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열린 최초의 테니스 경기이다. 1948년 6월 16일에는 서울운동장에서 대한 테니스연맹이 주최한 제1회 전국 일반학생 테니스대회가 열렸으며, 1949년 4월 17일에는 테니스연맹이 일반인과 대학생의 경기를 개최한 바 단복식 모두 학생팀이 승리를 하였다. 그 후 1953년 9월 테니스협회는 대한체육회에 정식으로 가입했으며 대한테니스협회(The Korean Lawn Tennis Assocition)로 명칭을 바꾼 협회는 1954년 5월 16일 서울운동장 코트에서 한미 친선 테니스대회를 개최하였다. 1960년부터는 국제 경기의 진출도 활발해졌으며, 1970년 이후부터 테니스 붐을 타고 우리나라에 급속히 보급ㆍ발전하여, 1982년 2월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되었던 제9회 아시아 경기 대회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은 4개 종목에서 우승, 테니스 한국의 앞날을 밝게 해주었다.2)운동방법 or 규칙시설 및 용구, 복장코트는 세로 23.77m, 가로 8.23m의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코트는 네트를 중심으로 2등분되며 네트는 지름 0.8cm 이하의 코드나 메탈 케이블로 매달며, 그 양쪽 끝은 지름 15cm이하인 두 개의 포스트 위를 넘겨서 맨다. 이 포스트는 네트 코드 위보다 2.5cm이상 높아서는 안 된다. 포스트의 위치는 양 사이드라인으로부터 0.0914m 바깥쪽에 위치하며, 포스트의 높이는 코드의 윗부분으로부터 1.07m가 되도록한다. 복식 코트에서 단식 경기를 할 때는 지름 7.5cm 이하의 싱글스 스틱 2개를 1.07m 좁히고 단식 사이드라인으로부터 0.914m 바깥쪽에 설치한다. 네트 중앙의 높이는 0.914cm이며, 그 이하로 너비 5cm 이하의 흰색 밴드로 씌워야 한다.라켓은 스트링을 메고 난 뒤의 형태가 전체적으로 균일해야 하며 중앙 부분의 밀도가 다르면 안 된다. 라켓 면에는 진동이나 스트링의 마모를 억제하기 위한 합리적인 크기의 부착물 이외는 아무것도 부착할 수 없다. 충격 완충 기구의 부착 위치는 스트링의 + 자형 바깥쪽의 가장자리이다.볼은 지름이 6.35-6.67cm이고 무게는 56.7-58.5g이다. 색깔은 흰색 또는 노란색이며 볼 바운드는 254cm높이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뜨렸을 때 135cm이상 147cm이하까지 튀어 올라야 한다.플레이어의 복장은 깨끗하고 관습적으로 인정되는 테니스복을 착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깃이 달린 셔츠에 쇼츠, 여자의 경우 원피스 또는 셔츠에 쇼츠를 말한다. 기온이 낮을 때의 경기 또는 베테랑 경기 등에서는 레퍼리의 승인에 따라 웜업 옷 등을 착용할 수 있다. 코트에 알맞는 테니스 전용 신발을 신어야 하고, 윔블던 경기에서는 흰색의 테니스복을 착용해야 한다. 복식경기에서는 파트너끼리 거의 같은 테니스 복을 착용한다.경기 방법테니스 경기에는 2명이 겨루는 단식, 2인 1조의 4명이 겨루는 복식, 남녀 1조의 4명이 겨루는 혼합복식 등이 있다. 시합의 승패는 게임의 경우 포인트가, 세트의 경우 게임 득점이 많은 쪽이 승자가 된다. 국제 시합이나 정식의 시합에서는 남자는 5세트, 여자와 주니어는 3세트로 한다. 테니스 경기는 포인트, 게임, 세트, 매치의 4단계로 구성된다. 시합 도중 공격에 성공하거나 실패하면 1점을 얻거나 잃게 되는데, 이때의 점수를 포인트라 한다. 4포인트를 먼저 얻으면 1게임을 이기게 되며, 만약 3 대 3의 포인트가 되면 듀스라 하여 2점을 연속해서 먼저 얻은 선수가 그 게임을 이기게 된다. 6게임을 먼저 얻으면 1세트를 이기게 된다.두 선수가 각각 5게임씩 이겨 5 대 5가 되면 게임 듀스가 되어 어느 선수이든 2게임을 연속해서 얻어야 승자가 된다. 그러나 2게임을 연속해서 이기지 못하고 서로가 1게임씩 이겨 6대 6이 되면 타이브레이커 시스템에 의해 승자를 결정하게 된다. 완전한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남자 단식의 경우는 5세트 중 3세트를 먼저 이겨야 하고, 여자 단식과 혼합 복식은 3세트 중 2세트를 이겨야 승자가 된다. 이와 같이 완전한 승자가 되기 위하여 겨루는 시합 횟수를 매치라 한다.타이 브레이커 시스템은 두 선수의 게임 스코어가 5대 5가 되면 게임 듀스가 되어 2게임의 차이가 날 때까지 계속해야 되지만, 두 선수의 실력이 백중하면 한없이 길어질 경우가 있어 시간을 절약하고 선수의 체력소모를 방지하기 위해 게임 스코어가 6 대 6이 되거나 8 대 8이 되었을 경우(대부분 6 대 6에서 적용)에 먼저 1게임을 이기면 승자가 되도록 하는 제도이다. 시합에 들어가기 전에 가위ㆍ바위ㆍ보 또는 동전을 던져 서브권이나 코트를 결정한다.시합은 서브를 넣는 것으로 시작되며, 베이스라인과 사이드라인, 그리고 센터마크가 표시된 안쪽에서만 넣어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때의 서브는 오른쪽에서 대각선으로 넣으며, 그 다음 서브는 왼쪽에서 넣는다. 즉, 득점이 없거나 짝수 득점일 때는 오른쪽에서, 홀수 득점일 때는 왼쪽에서 넣는다. 서브는 1게임이 끝날 때까지 같은 사람이 계속해서 넣으며, 1게임이 끝나면 상대편 선수가 넣는다. 라인을 밟거나 넘어서 서브했을 때, 서브하기 위해 던져 올린 공을 헛쳤을 때, 걷거나 달려가서 위치를 변경하며 서브했을 때, 서비스 코트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폴트가 되며, 2회 폴트하면 1점을 잃는다.
러시아 발레에 대하여1. 러시아 발레의 탄생과 발전과정발레는 원래 프랑스 부르봉왕조 하에서 크게 발전했는데, 그래서 발레라는 말도 이탈리아의 발레로란 말이 프랑스에 전해짐으로서 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러시아에 발레가 들어 온 것은 18세기초 새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건설되고 표트르 대제의 지휘아래 서유럽 문화를 받아들일 때였다. 사실 1673년 알렉세이 황제를 위해 독일 무용단이 러시아에서 공연을 했는데, 이것이 러시아에 발레가 최초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발레가 러시아에 들어 온 것은 1738년 새 수도에 세워진 귀족 자제들을 위한 유년학교에 프랑스인 랑데 Jean-Baptiste Landet(? ~ 1746 또는 1748)의 청원에 따라 발레반이 개설되고, 모스크바에서는 1773년 이탈리아인 베카리 부부를 초빙하여 고아양육원에서 무용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이 무용교육은 처음에는 유럽인들이 맡았지만 몇 년 후에는 러시아인들 중에서 유능한 무용수와 조교사가 배출되었고, 이어서 러시아의 전설과 민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 상연되었다. 1738년 러시아 최초의 발레 학교가 세워졌고, 1756년 예카테리나 2세는 발레 부문 제국 극장을 세웠다. 1773년에는 페테르부르크에 볼쇼이 극장이 들어섰으며, 1779년 제국 극장에 발레 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배우려는 의욕은 여전하여 19세기에는 유명한 무용수와 안무가들을 활발히 초빙하여 러시아가 서양무용사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크게 향상되었다.이렇게 발레가 러시아에 도입된 후 상당기간 동안 러시아는 유럽식 발레를 모방하면서 성장했다. 18세기에 이르러 이반 발리베르흐 발레 감독이 명성을 얻으면서 페테르부르크 스타일의 발레를 만들었는데 '실 베르테르', '로미오 줄리엣'등 많은 작품을 내놓으면서 활약했다. 그의 뒤를 이어 디들로는 낭만주의적 경향의 발레를 만들었는데, 그의 발레의 화두는 판토마임이었다. 디들로를 통해 러시아 발레의 마임의 기초가 다져지게 되었다.러시아에서는 피터대제(大帝)가 무 《목신의 오후》 《유희》 《봄의 축제》를 만들었다.1917년 10월 혁명과 더불어 러시아가 사회주의의 길을 걸으면서 러시아 발레는 위기에 놓였다. 볼쉐비키들은 예술인들을 부르조아로 분류하고 그들의 사상성을 의심했다. 그러나 소비에뜨정권의 문화유산 계승 및 극장 국유화 정책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음악극장은 곧 새로운 체제를 갖추었다. 1927년에는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발쇼이 찌아뜨르)이 '붉은 양귀비꽃'으로 새로운 혁명적 주제를 발레화하는데 성공했고, 1930년대에서 1940년대에 걸쳐 레닌그라드(현 쌍뜨 뻬쩨르부르그)에서 '파리의 불꽃', '로미오와 줄리엣'등이 상연되어 새로운 쏘비에트 발레시대를 열었다.이무렵 아그피나 바가노바가 등장하면서 러시아 발레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바가노바는 독특한 교수법으로 페테르부르크 무용수들을 가르쳤는데, 이러한 바가노바 교수법은 러시아 발레의 기본이 되어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스탈린 시대에 바가노바 교수법이 확립되면서 러시아 발레의 토대가 굳혀졌지만, 1930년대부터는 레닌그라드의 발레 교사, 무용가들, 심지어 간부급 안무가들까지 모스크바로 이동하여 제 2차대전을 전후한 모스크바의 발쇼이극장은 명실공히 소련발레의 중심지가 되었다.그러나 레오니드 라브로프스키는 새로운 발레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그의 작품중 가장 성공한 것은 갈리나 울라노바가 줄리엣역을 맡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갈리나 울리노바는 안나 파블로바, 마리나 세묘노바등과 함께 20세기에 발레를 빛낸 러시아 무용수들이다.러시아 현대 발레를 이끈 사람은 최근 25년간 소련발레계의 지도자인 그리고리비치이다.그는 끼로프극장의 '석화', '사랑의 전설'로 그 비범한 재능을 인정받았고, 1964년에는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볼쇼이극장 수석 발레마스터로 발탁되었다. 이후 '스파르타쿠스', '이바뇌제'등의 신작, 치이꼽스끼의 3대 발레를 개작, 연출하면서 판토마임으로 스토리를 진행하는 것을 극력 피하고 모든 것을 춤으로 처리하는 클래식 수법에 의거하면도 처음에는 군무의 일원으로, 나중에는 작은 역할을 맡아 마린스키 극장에 출연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동궁(冬宮)의 예르미타슈 극장과 차르스코예셀로의 중국극장에서 황제 앞에서 춤을 추었다.1907년 봄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한 뒤 같은 해 7월 1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마린스키 극장에 독무자로 입단했다. 그가 처음 출연한 작품은 러시아 발레리나 줄리아 세도바와 함께 공연한 〈샘 La Source〉이었고 관객들과 비평가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크셰신스카·파블로바·카르사비나는 모두 마린스키 극장에서 니진스키의 상대역으로 나왔던 유명한 발레리나들이다. 그는 수석 남성 무용수로서 〈이바노치카 Ivanotschka〉·〈지젤〉·〈백조의 호수〉·〈잠자는 숲속의 미녀〉·〈쇼피니아나 Chopiniana〉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에서 주역을 맡았다. 1907~11년 그는 마린스키 극장과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의 객원 무용수로서 모든 작품의 주역을 맡았다. 그의 성공은 실로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이전에 러시아의 여러 황실극장의 행정을 보조했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는 1909년 블라디미르 대공으로부터 마린스키 극장과 볼쇼이 극장의 단원들로 발레단을 새로 조직해 보도록 의뢰받았다. 디아길레프는 이 발레단을 파리로 옮기기로 작정하고 니진스키에게 수석 무용수로 참여하도록 요청했다. 그들은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 1909년 5월 17일 첫 공연을 가졌고, 파리 사람들은 니진스키에게 매혹되었다. 그의 신체가 창조해내는 표현력과 아름다움, 솜털처럼 가벼운 경쾌함과 강철 같은 강인함, 엄청난 도약력과 공중에 떠올라 머물러 있는 듯 보이는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재능, 비범한 묘기와 극적 연기력 등으로 니진스키는 발레의 천재로 평가받았다. 1907~12년에 그는 발레 뤼스(Ballets Russes)의 안무자 미셸 포킨과 함께 일했다. 성격묘사의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포킨이 만든 〈사육제 Le Carnaval〉·〈레 실피드 Les Sylphides〉·〈장미의 정 Le Spec인 면에서의 호사스러운 취미도 물려받은 듯하다. 그는 자신이 완전한 쾌락주의 철학을 따른다고 여러 차례 밝히곤 했다. 계모 헬렌 발레리아노브나 파나예바에게서는 규율감과 지배 본능을 물려받았으며, 어린시절 그의 예술적 감성은 그녀가 음악과 많은 관련을 맺고 있는 덕분에 발전했다. 학생시절에 피아노 교습을 받고 청중들 앞에서 슈만의 협주곡을 연주했으며, 어렸을 때부터 작곡에도 재능을 보였다.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1890년부터 사회과학·음악·회화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이는 그가 한평생 주도한 여러 지성적인 모임 가운데 첫번째 모임이었다. 당시의 친구 가운데 화가 알렉산더 베노이스, 레온 바크스트는 후에 디아길레프의 발레 제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와 발레의 첫 만남은 엉뚱하게도 그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1890년 무렵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 Sleeping Beauty〉를 별 감흥없이 보았던 것이다(나중에 이 작품을 공연하여 큰 성공을 거둠).1893년 첫번째 해외여행에 나서 독일·프랑스·이탈리아를 돌다가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와 오페라 작곡가 샤를 구노, 주세페 베르디를 만났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훌륭한 예술인들을 찾아다니며 자극을 받았다. 1896년 법과대학을 졸업했으나 그는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청중들 앞에서 발표된 그의 성악곡이 신통하지 않자 작곡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그가 작곡가가 되는 데 찬성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유명한 베이스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의 후원자를 만나 샬리아핀이 등장하는 오페라 제작을 위한 혁신적인 무대장치를 제안했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재능에는 확신을 갖지 못했으나 로마 시대의 매세나 같은 위대한 예술 후원자의 역할을 자신의 사명으로 확신했다. 오페라·발레·문예행사 같은 공연사업에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했으므로 사적인 수입 없이 이 일을 시작한 그는 많은 장애에 부딪혔다. 더구〉에서 스트라빈스키는 디아길레프의 주장에 따라 자신이 종래 작업해오던 진부한 개념의 피아노 협주곡을 마임 형식의 발레곡으로 바꾸어 연예물에 나오는 꼭두각시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실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는 디아길레프가 함께 일하는 제작진들에게 매우 큰 심리적 영향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 〈봄의 제전〉에서 스트라빈스키는 20세기의 가장 혁신적인 관현악곡을 작곡했는데 이 작품이 파리 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자 대소동이 일어났다. 이 음악의 불협화음과 거친 리듬은 세련된 관객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켜 관현악단 가까이에 있는 무용수들도 음악을 듣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무대 곁의 의자 위에 서서 고함을 치며 몸짓으로 리듬을 지시한 안무자 니진스키 덕분에 무용수들은 공연을 계속했다.디아길레프는 조국 러시아를 떠나 끝내 되돌아가지 않았고, 파리에서 특히 프랑스의 시인 장 콕토와 일했다. 자신의 발레단을 이끌고 유럽·미국·남아메리카를 순회하였으며 그의 발레 시즌은 1909~29년 동안 계속되었다. 후기의 시즌에는 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 출신의 진보적인 작곡가와 화가들의 작품을 발레에 도입했는데 그의 레퍼토리에 포함된 작곡가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클로드 드뷔시, 모리스 라벨,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가 있다. 그는 큰 영향력을 지녔지만 가난했으며, 개인적으로 불행했고 고독했으며 불만이 많았다.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결코 완벽함을 실현하지 못했으나 늘 개척정신을 지녔다. 그는 오랫동안 당뇨병을 앓았는데,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 1929년 시즌이 성공적으로 끝날 즈음 건강이 악화되어 베네치아로 휴가를 떠났으나 고열로 혼수상태에 빠져 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는 산미켈레의 섬 묘지에 묻혔다.포킨본명은 Mikhail Mikhaylovich Fokine.1880. 4. 23(구력 4. 11)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1942. 8. 22 뉴욕 시.러시아의 무용수·안무가.20세기의 고전 발레 레퍼토리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1905년 러시아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를 위해 독무 〈빈사의 백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