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序 論여항인은 사대부와 대립하여 뚜렷한 신분상의 차이를 보이는 계급으로 조선후기에 경제?문화적 성장을 통해 새롭게 부각되었다. 이 때 일부 사대부는 몰락의 길로 들어섰으며 중인을 비롯한 서리 서류 등은 상업에 종사하여 부를 축적하여 지위를 상승하기에 이르러 문학도 사대부문학에서 여항문학으로 바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임병양란을 통한 사회?경제적 변화로 인한 신분체제의 동요로 문학의 주체가 변하게 된 것이다. 여항문학은 근대화로 가는 과도기적으로 가는 것이었으며, 個性을 가지고 태어나서 천기를 나타내야 하는 문학사상으로 기존에 있던 성리학적인 관점에서 벗어나는 아주 새로운 문학이었다. 이렇게 나타난 여항문학은 특히 실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그들의 신분적인 제한과 체제의 탄력적 대응의 부족 그리고 근대 사상의 등장으로 결국 여항문학은 쇠퇴기를 맞게 된다. 그렇지만 그들의 문학은 우리 한문학에 있어서 정해진 틀을 벗어나 자유로움을 추구하며 문학이 발전하는데 가장 큰 일조를 하였다. 즉 중세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 가는 교두보 역할을 한 것이다. 이에 여항인들의 의미와 그들의 문학 등장배경, 성격 그리고 쇠퇴기까지의 과정을 다루어 봄으로써 근대문학에 대한 영향력을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本 論1. 閭巷人의 定義여항인은 마을과 거리에 사는 사람들로 주로 가난한 자를 말하였지만,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주로 한양에 거주하는 기술직 중인과 京衙前, 이 이외에도 액속?市廛商人?軍校?義禁府 羅將?承政院 使令?兩班家의 ?人 등이 여항인에 포함된다. 또한 신분이 낮은 서리나 노예 등도 이에 속해 중인보다 넓은 개념의 하층민을 지칭하였다. 조선후기에 와서 경제?문화적 능력을 갖춘 중인들이 늘어남으로 인해 성장하였다. 그러면 이러한 여항인들이 어떻게 해서 등장하게 되었는지 한번 살펴보겠다.2. 閭巷人의 登場背景고려 말 안향이 들여온 주자학으로 계급의 구분이 심화되어 사대부 이외의 계급은 사회적 제한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임병양란기질과 創作경향에 있어서 약간의 편차가 보이는데, 이 시기에 여항시단의 축들이 역관 중인의 내부분화 과정에서 탈락한 부류들이었다는 것과 관련이 깊다. 그래서 자신의 갈등을 거침없이 행동으로 표현했으며, 그들의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로 내적 표현을 했던 六家詩社보다 더욱 다변적이고 외향적인 시풍이 나타났으며, 악부시의 형식과 수사법을 차용하여 豪俠한 정서를 표출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실제 삶에 근거한 생생한 언어로 구축되지 못하고, 상투적 미의식에 기반 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즉 이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소재, 수사법, 시의 구조를 짜는 방식의 동일성은 어느 작품에나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적 개성적 시세계를 구축하지는 못했던 것이다.洛社의 活動은 거의 漢詩에 국한되고, 다른 藝術活動은 거의 發見되지 않았지만 그 이후 중인에서 京衙前으로 여항시단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音樂과 書畵 등 다채로운 예술 영역이 개척된다.③ 閭巷文學의 全盛期洛社 이후에 京衙前,書吏 등이 여항시단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여항문학은 한층 더 풍부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譯官?醫官 등 기술직 중인이 쇠퇴한 것은 아니다. 譯官史家와 정민교?정내교 형제?조희룡 등 文名 있는 사람들은 이 시기에 활동을 하였으며, 昭代風謠?風謠續選?風謠三選 등 3대 시집을 비롯하여 조희룡의 壺山外記?이경민의 熙朝逸事?유재건의 里鄕見聞錄 3대 전기집도 이 시기에 나와 후인들에게 모범이 되게 하였다.신분갈등에서 벗어나 다른 사회모순에 관심을 가지면서 여항문학에 지평을 열게 된 것도 이 시기이다. 정민교 ? 정내교 형제가 대표적인데, 여항인의 의식이 그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그들의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즉 신분갈등에서 사회의 현실적 모순으로 그 주제가 확장되고 있으며, 표현 방식도 전면에 부각된다.이 시기의 전성기는 천수경이 중심이 된 玉溪社가 결성된 때이며, 18세기 후반에 활동하였다. 이들의 특징은 현실주의적인 사회현실에 대한 작품들이 다수 있다는 것이다. 소재가 더 확대 어울려 다니며 자신의 처지를 시로 지었다. 하지만 그 또한 항상 風月만 읊은 것은 아니었다. 白大鵬처럼 현실에 대한 괴로움을 시로써 내뱉었다. 세상에 버림을 받고 그 울분을 시에다 쏟은 그의 세계를 작품을 통해서 여지없이 보여준다.② 三淸詩社風月香徒 劉希慶의 제자 최기남이 조직한 詩社도 한시를 지으면서 奴婢들의 한과 괴로움을 달래었다. 하지만 風月香徒와 다른 점이 있다면 譯官과 醫院들이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중인 중심의 시사가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또한 이 때에 여항문학의 최초의 시집 六家雜詠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최기남을 비롯한 동인들이 서로 주고받은 시 261편을 모아서 만든 것으로 三淸洞에 주로 모여서 한시를 지었기 때문에 삼청시사라 하였다. 최기남은 신익성 집안의 노예였지만, 나중에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면서 사대부 사이에 인정을 받았고, 자기 집에 서당을 열어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의 집으로 여러 시인들이 모여 들어 이들이 지은 시에는 三淸洞 모임을 다룬 것이 많았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시인이 譯官과 醫院 출신이어서 물질적으로 넉넉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풍부한 문장력을 자랑하기도 하였는데 五言古詩와 七言古詩를 각각 8편씩이나 남겼으며 당시 유행하던 律詩와 絶句 중심의 근체시를 즐겨 짓던 당시 유행에 비해 모두 고체시를 남겼다. 그 중에 가장 뛰어난 시를 지었던 때는 황자의 탄생을 축하하러 일본에 가는 통신사 일행을 따라 수행원으로 다녀왔을 때였다. 일본 사람이 그의 시를 얻으려고 했을 정도로 아주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다. 최기남 뿐만 아니라 三淸詩社의 정남수의 경우에는 醫院 출신인 만큼 여러 가지 약 이름을 넣어서 시를 짓기도 하였으며 3?5?7언 集句絶句 ? 回文絶句 등에 이르기까지 지을 수 있는 한시의 형태는 모두 도전하였다. 이들 최기남과 정남수를 포함한 三淸詩社는 이렇게 고시를 엮음으로 인해 六家雜詠이 탄생한 것이다. 이들은 이경석과 친분을 나누기도 하였는데 이때 이경석이 이들에게 六家雜詠의 서으며 개인적인 문제에서 사회전반의 문제로 눈을 돌린 것도 이들 이후의 일이다. 이후에는 잠시 시사의 흐름이 끊기지만 정내교 정민교 형제가 등장하면서 현실에 대한 모순을 더욱 부각 시켰다.④ 玉溪社洛社 이후 잠시 詩社의 소강상태를 이루다가 정조가 규장각을 세우고, 문학을 장려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서리들을 채용하였는데 이들 중에 장혼 ? 김낙서 ? 이양필 ? 천수경 등이 중심이 되어, 玉溪에서 정기적으로 모여 시를 지었다. 장혼과 그의 친구들은 이전에도 玉溪에서 자주 모였는데, 1786년 7월 16일 모임에서 詩社를 결성하고 그 이름을 玉溪社라고 하였다. 그들은 나이에 따라 序次를 정하고, 詩社의 凡例를 정하였다. 이때 정한 그것들은 玉溪社 수계첩에 실려 있다. 이 수계첩에는 이름과 字 ? 號 및 생년월일과 관향까지 나이순으로 나열되어 있으며, 이들의 관향이 대부분 이름 없는 지방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 달에 한번 씩 미리 날짜를 정하여 모였는데, 대보름 ? 봄가을의 社日 ? 삼짇날 ? 초파일 ? 단옷날 ? 流頭 ? 七夕 ? 重陽節 ? 午日 ? 冬至 ? 섣달그믐에 모였다. 또한 詩會 때에 시를 짓지 못하면 벌을 받았으며, 이때 지은 시들을 모아서 詩軸을 만들었다. 시들이 玉溪나 松石園에서 대한 것이 이들의 문집에 많이 보이는데, 주로 그곳에서 모였던 것 같다. 그리고 松石園의 주인 천수경이 죽은 뒤에도 이들은 그곳에서 모여 시를 지었다. 정기적으로 모인 결과 1797년 천수경과 장혼이 중심이 되어 風謠續選을 간행하게 되었다. 그보다 앞서 고시언을 중심으로 한 洛社의 선배 시인들이 위항시인 162명의 대표적인 시를 뽑아서 昭代風謠를 간행했었다. 그로부터 60년 후에 그 사이에 세상을 떠난 위항시인들의 시를 모아 엮은 것이며, 333명의 시 723수를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그들의 중심인 천수경은 집안은 가난했지만 글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玉流川 위 소나무와 바윗돌 아래에 초가집을 짓고는 스스로 松石道人이라고 칭하였다. 그는 서당의 훈도로도 있었는데, 자기가 제 이 화재사건에 유다르게 관심을 가졌던 것을 보아서, 그??? 아마도 市廛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시전 상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가 장욱과 함께 錦西社를 결성한 것은 열여덟 살 때였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나이가 어렸었다. 그런데도 그가 주동인물로 활동한 것은 주로 그의 집에서 술자리를 마련하여 모였기 때문이다. 그의 시문집은 열 책이나 되지만, 전부 편집하지 못한 초고가 되지 못한 상태이며 시를 지은 순서대로 모아진 것도 아니어서, 그의 일생을 살펴보기도 힘들다. 열 책 중에 일곱 책은 그의 순수한 작품집이며, 나머지 셋 책은 만장록, 기 서 설을 모은 것, 愼?齋를 그리워하며 장욱과 함께 지은 시들을 모은 것이다. 정수혁을 중심으로 모인 금서사의 대표적인 작업을 꼽는다면 바로 錦西社甲乙選을 편집하여 간행한 일이다. 이들은 40여 일에 걸쳐서 평성 30운을 내어놓고 시를 지었다. 운 하나에 아홉 수의 시가 지어졌으니, 40여 일 동안 288여수가 지어진 셈이다. 이들은 날마다 지은 시를 품평하였으며, 평에 따라 자기의 잘못을 고쳤는데, 이렇게 갑과 을을 받은 시들만 모아서 1818년에 엮어서 나온 것이다. 이 책은 정수혁이 편집하고, 장욱이 교정하였다. 이 책에는 전부 64수의 시가 실렸는데, 장욱의 아버지이자 이들의 정신적인 스승이었던 장혼에 의해서 활자가 간행되었다. 그가 평민문화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목활자를 만들어 많은 책을 간행하고 있었는데, 이 책도 그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다.이들의 작품을 보면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데 만족하였으며, 사회체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세계또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의지를 볼 수 없었던 등의 한계를 지녔다.⑥ 斐然詩社장혼의 제자였던 장지완과 손자인 장효무를 중심으로 여러 동인들이 모여 詩社를 결성하고 활동한 모임이 바로 斐然詩社이다. 斐然詩社는 장혼의 제자인 장지완의 호를 딴 詩社인데, 이들은 진나라 때 죽림칠현에 비유하면서 함께 모여서 詩었다.
朝鮮時代의 漢文學Ⅰ 時代槪觀1. 조선시대 한문학의 융성가. 문학을 향유하는 계층이 두터워졌다나. 한글의 창제 → 문학 향유 계층 확대. 한문학 발전 촉진Cf) 한글창제 목적 : 백성들의 문자 생활, 한자의 이해 원활[ex) 『東國正韻』의 간행] → 한문학을 침체시키지 못함2. 문학의 구분가. 士大夫 : 館閣文學處士文學 → 조식(남명), 서경덕(화담) 등나. 方外人 → 김시습, 김삿갖다. 閭巷(中人, 常人, 賤人) → 서고청, 어무적 등라. 女流 : 士大夫 → 신사임당, 허난설헌 등妓女 → 황진이, 이매창 등Ⅱ 詩文學의 盛旺과 그 狀況1. 盛旺의 原因가. 과거제의 실시로 출세의 목적으로 士族子弟들의 한문학에 의지를 지님1). 初場 : 四書五經(詩經제외), 통감 → 경전에의 통달여부 ; 정도전2). 中場 : 文學(시경포함) → 학문의 넓이, 글짓는 정도의 능력 여부 ; 변계량3). 終場 : 策問 → 직언, 직간 등의 노리적인 글 짓는 능력 여부나. 지나친 事大主義 때문에1). 성리학의 우주관에 따라 세계의 중심을 중국으로 보고 중국을 섬길 것을 주장2). 실학이 들어옴에 따라 우주관이 세계는 둥글다라고 하여 세계의 중심을 중국으로 보지 않음다. 서민계층의 문학의식이 漸高되어, 서민이 직접 문학 활동에 참여함으로써1). 이양법에 의해 생활 여유2). 상류층의 문학 및 생활상 모방하여 모두들 문학을 할 수 있게 됨3). 따라서 한시문학의 사회적 영역이 확대되어짐라. 右文左武정책이 주류 → 기본적으로 文治主義마. 외교상에 唱和를 함1). 북경 : 燕行錄2). 일본 : 海行總載, 海?錄바. 상류층의 자기표현이나 消閑의 자료2. 시문단의 상황▶金?? : 高麗詩文 詞麗氣富 而體格生疎[자유분방], 近代著述 辭纖氣弱 而義理精到[얌전한 특성]▶洪萬宗 『小華詩評』: 麗朝規模大 而近宋, 我朝格調淸 而近唐▶沈守慶 『遺閑雜錄』: ‘한유, 소동파’의 시에서 ‘이백, 두보’의 시(송시풍→당시풍)로 경향이 바뀜(宣祖 時)▶權應仁 『松溪漫錄』: 今世詩學 專尙晩唐(선조시기 전야의 시문학풍)Ⅲ 조 문학▷盧守愼 : 당시풍을 따른 선구자의 한사람▷黃廷彧 : 임진왜란때 왕자를 데리고 피신하였다 포로가 되기도 했었다次玉堂小桃韻無數宮花依粉墻 遊蜂戱蝶?餘香 老翁不及春風看 空有葵心向太陽― 수 많은 궁궐의 꽃들 흰 담장에 의지하고, 떠도는 벌 희롱하는 나비는 남은 향기를 좇는다. 노인이 봄바람 보는데 미치지 못하나, 헛되이 해바라기의 마음은있어 태양을 향하네 ―▷宋翼弼(1534 ∼1599) : 출신이 미천하여 벼슬은 못했으나 성리학의 대가로 율곡과 어깨를 겨뤘다.山行山行忘坐坐忘行 歇馬松陰聽水聲 後我幾人先我去 各歸其止又何爭― 산을 가면 쉬는 것을 잊고 앉으면 걷기를 잊어(목적없이 그냥 가는 모양), 말을 소나무 그늘 아래 세우고 물소리를 듣네. 나의 뒤에 올 사람 몇 명이요, 나를 앞서 간 사람 몇 명인가? 각자 그칠 곳에 돌아가니(죽게됨) 무엇 때문에 다투는가 ―?감상 : 당시 사람들이 파쟁을 일삼음을 경계한 시▶三唐詩人(최경창, 백광훈, 이달) : 현실생활에 불만을 품었던 사람들로서 현실불만으로 이상향 추구의 만당시풍을 따랐으며, 방랑생활. 강서시풍 버림, 주제 접근을 암시적, 정서 중시, 생활과 시 모두 낭만적, 풍류적. 唐詩文學을 가장 잘 체득. 우리문학 사상 최초의 전문시인들▷崔慶昌次大洞江韻水岸悠悠楊柳多 小船遙唱採菱歌 紅衣落盡秋風起 日暮芳洲生白波― 강 둑 아득하고 버들 빛 푸르른데, 멀리 있는 작은 배에서 마름캐는 노래소리 들려오네. 낙엽 다 지고 가을바람 불어오는데, 해 저문 섬에 흰 물결 생기네 ―▷白光勳弘慶寺秋草前朝寺 殘碑學士文 千年有流水 落日見歸雲― 가을 풀은 전 왕조 절의 쓰러진 비석에 (한림)학사의 글이로다. 천년 동안 흘러온 물이 있는데, 지는 해에 돌아오는 구름을 본다 ―▷李達 : 사회적 지위를 얻지 못하고 불우한 인생을 살다 갔다(어머니가 관기 출신).?시풍 : 고독과 절망을 반영, 仙界를 지향贈因雲釋山在白雲中 白雲僧不掃 客來門始開 萬壑松花老― 산이 흰 구름속에 있는데, 흰 구름을 스님이 쓸지 않도다. 손님이 와서 문이 비로소 열리니, 온 골에 버려 두었네 ―?감상 : 허공에 떠 있는 반달을 이별한 직녀의 빗에다 비유한 시이다.▶車天輅 :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도맡아 명으로부터 ‘東方文士’라고 불리워 졌다.▶權? : 관각문인과 산림문인 사이에의 시 경향(사회시를 씀). 詩禍를 입은 대표적 인물過鄭松江墓有感空山木落雨蕭蕭 相國風流此寂廖 ??一盃難更進 昔年歌曲卽今朝― 빈 산에 낙엽지고 비가 쓸쓸히 내리니, 재상의 풍류가 여기에 적막하구나. 한잔 다시 올리기 어려움을 슬퍼하니, 옛날의 가곡이 곧 오늘 아침이라네 ―宮柳詩宮柳靑靑鶯亂飛 滿城冠蓋媚春暉 朝家共賀昇平樂 誰遣危言出布衣― 궁궐 버들 푸르고 꾀꼬리 어지러이 나는데, 성안에 가득한 높은 사람 봄 햇살에 아첨하네. 조정에서 함께 축하하며 태평성대 오른 것을 즐기는데, 누가 바른말하여 포의로 쫓겨났나 ―3. 熟爛期(숙종:1675∼순조:1834)가. 특징⑴ 우리 사회 각 분야가 역사의 변혁의 의지로 충만한 시기, 모순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많은 사람이 노력⑵ 중국의 한 시대의 시풍으로 고정할 수 없이 다양 : 개개인의 개성에 맞는 시를 지음⑶ 朝鮮詩를 지음(다산) : 각 개인의 개성에 맞게 우리나라의 시를 지음, 우리나라의 속어를 즐겨 사용(일종의 민요적 성격), 자아의식을 지니고 詩作, 爲民詩를 즐겨썼으며 민중지향적인 시가 등장(민중시)⑷ 실학시대로 朝鮮詩(우리나라 것이어야 함), 社會詩(사회의 비리나 모순을 풍자)나. 대표적 詩人?詩家 : 四家(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정약용▶申緯 : ‘詩書畵 三絶’이라 이른다. 소악부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한시의 새로운 기풍을 진작 시키는데 노력했다.觀劇詩二首春香扮得眼波秋 扇影衣紋不自由 何物龍鐘李御史 至今占斷劇風流― 춘향이 분장하여 추파의 눈길을 얻으니, 부채 그림자 옷무늬가 부자유스럽구나. 어떤 것이 못생긴 이어사요, 지금까지 연극의 풍류를 독점하고 있구나 ―激賞時時一聲哄 廣庭人海疊人山 今宵莫漫勤添炬 早有雲頭掛月彎― 심히 상을 주고 때때로 한번 소리질러, 넓은 뜰엔 인산인해로다. 오늘밤 게으르 繞堞寒鴉大點兵 弱國君臣千載恨 異時中外一家情 登臨此日重?? 漢上高樓已失名― 백제의 궁궐가에 눈이 성안에 가득하고, 삼전도 바깥에는 다니는 사람도 적구나. 창고를 뚫은 늙은 쥐는 곡식을 찾고, 성가귀 두레에는 서리맞은 갈가마귀가 크게 군대를 점호하네. 약한 나라의 임금과 신하의 천년토록 한스러움은, 때에따라 안팎이 다르나 한 집안의 뜻이로다. 이날 올라 임하니 거듭 슬픈 것은, 한강가의 높은 누대 이미 이름을 잃었음이라 ―高靈歎人生會止此 至此亦大難 恩封府院君 大匡議政官 子孫數十人 一一登朝端 賜宅第一區 賜號稱保閑 ...중략... 英陵好孫子 聖人曾有言 千秋萬歲後 望卿念此孫 此孫在何處 此事不可論 淸冷浦水淸 子規啼夜月 ...중략... 先王在我上 謹甫在我傍 仁?與太初 伯高與仲章 人生會止此 此事難又難 願世爲臣者 勿復有此嘆― 인생이 여기에 이르니, 여기에 이르는 것 또한 크게 어렵도다. 은혜스럽게도 부원군에 봉해지고, (벼슬은) 영의정이라. 자손 수십인이, 하나하나 벼슬에 올랐고, 제일 좋은 구역에 저택을 하사하시고, 호를 내리시어 보한이라 일컬으셨다...중략...영릉(세종)께서 손자를 사랑하시어 성인(세종)께서 일찍이 말씀하시되, 천만년 뒤에(내가 죽은 뒤에), 경들에게 바라노니 이 손자를 생각할지어다. 이 손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고, 이 일은 논할 수 없구나. 청랭포(단종이 죽은 곳)의 물은 맑고, 자규새는 달밤에 우는 구나...중략...선왕은 내 위에 계시고, 근보(성삼문)는 내 곁에 있도다. 인수(박팽년)는 태초(유성원)와 함께 있고, 이개는 하위지와 함께 있도다. 인생이 여기에 이르니 이일은 어렵고 또한 어렵다. 원컨대 세상의 신하된 자는, 다시 이런 한탄이 있지 말지어다 ―⑴ 형식 : 5언 고시(역사 서사시, 풍자시)⑵ 수사법 : 대구법, 문답법⑶ 주제 : 변절자에 대한 경계⑷ 감상㈎ 이 시는 작자가 우리 역사를 읽다가 그 아우의 청에 따라 지어준 작품㈏ 내용은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집현전 학사 신숙주가 단종을 돌보라는 고명을 저버리고, 수양대군의 정권찬탈 계획에 목표는 이상세계의 건설, 풍자를 통해 서민의식을 옹호㈐ 주된 표현 기법 : 사실주의(진실 추구). 독창성(세태와 역행). 자주성(내 것을 추구). 풍자와 골계(현실의 지혜로운 고찰)㈑ 고문 정신을 본답아 당대의 현실을 그대로 표현할 것을 주장㈒ ‘法古創新’ 주장 : 고문의 정신을 본받되 새롭게 창조⑷ 판소리 소설 →『춘향전』㈎ 제도화된 탐관오리 풍자, 庶女 출신 인물을 주인공으로 선정 → 참다운 근대성 발견다. 대표적 작품⑴ 박지원 소설 : 『양반전』『허생전』『虎叱』『廣文者傳』『閔翁傳』『烈女咸陽朴氏傳』『穢德先生傳』『金神仙傳』『虞裳傳』『易學大盜傳』 『鳳山學者傳』㈎『양반전』: 몰락한 양반과 신흥부자, 양반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변혁표현. 양반의 무능을 고발 폭로㈏『허생전』: 현실사회를 진실하게 반영하고 당시 사회문제를 제기하였다. 독서계층은 현실을 인식해라. 나라의 생산력이 너무나 미약하다. 도적떼가 일어나는 것은 생업을 얻지 못해서이다.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하나 현실에서는 뜻을 펼 수 없다.㈐『호질』: 북곽선생과 東里子 그리고 호랑이를 등장시켜 양반계층의 모든 가식과 위선을 폭로. 풍자와 해학이 동일 질서위에 구축되었다㈑『예덕선생전』: 똥 푸는 사람인 예덕선생이 자기의 분수에 알맞게 빈천한 생활을 하면서도 대인 군자에 못지않게 의리와 덕행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통하여 양반들의 허식적 생활을 비판㈒『광문자전』: 가장 천한 걸인의 삶에서 인간적 진실성과 정서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 → 양반의 위선을 풍자하려는 태도⑵ 판소리 소설 :『춘향전』6. 終結期가. 시기 : 조선말기(순조 이후∼ )나. 특징⑴ 『채봉감별곡』 : 가곡체 소설㈎ 조선말기의 양반관료층의 부패성과 정치적 혼란을 드러냄㈏ 비현실성의 완전한 소멸과 더불어 인물묘사, 사건의 처리 등에 거의 신소설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古小說과 新小說의 교량적 역할의 작품)⑵ 『배비장전』 : 판소리의 소설화, 풍자와 야유로 점철다. 대표적 작품 :『채봉감별곡』『배비장전』※ 한국 고소설은 그때 그때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