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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사]절대왕정 평가B괜찮아요
    《 프랑스를 중심으로 본 절대왕정 》Ⅰ. 머리말Ⅱ.본문1. 절대주의의 개념과 형성2. 왕의 두 신체(이체론)과 숨겨진 모순점3. 베르사유를 통해서 본 절대주의4. 절대왕정이 내포한 문제점Ⅲ. 맺음말Ⅰ. 머리말“짐은 곧 국가다”라는 인용구로 대표되는 루이 14세시대의 절대왕정은 경탄과 모방의 대상이었다. 비록 루이 14세가 직접적으로 한 말은 아니지만, 이 말은 당시의 이상과 사상을 적절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절대왕정은 결코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세 이래 프랑스 왕국이 창출해낸 여러 역사적 요인들의 복합적인 산물이었다.프랑스의 절대왕정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종교 전쟁과 더불어 부르봉 왕가의 앙리 4세가 즉위하면서부터였다. 앙리 4세는 낭트칙령과 함께 베르벵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평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하였고 파리 시 재건과 함께 왕의 존재와 권력을 한 곳에 고정시키기 시작했다. 뒤이어 루이 13세를 대신하여 프랑스를 통치한 리슐리외는 국가이성(raison d'etat)을 목적으로 왕권강화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루이 14세는 그가 직접 통치를 선언하기까지 마자랭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 역시 절대주의 정책을 추구했고 이에 저항한 프롱드의 난으로부터 승리를 쟁취해냈다.이렇듯 절대왕정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다져진 기반을 토대로 루이 14세 때 절정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절대주의의 정확한 개념은 무엇이고, 이는 어떠한 형태로 구현되었으며, 나아가 그 이면에는 어떠한 문제가 잠재되어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본문1. 절대주의의 개념과 형성유럽사에서는 일반적으로 16세기로부터 18세기에 걸친 시기를 일컬어 절대주의 시대라고 한다. 여기서의 절대주의란 말은 광의의 정치적 개념으로 사용될 때는 despotism이나 tyranny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 전체 정치 일반을 지칭하고 있으며, 협의의 역사적 개념으로 사용될 때는 역사 발전상의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서 형성된 역사적 정치 체제 내지는 사회 체제를 지칭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론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국가의 모든 권력이 군주의 배타적인 권위에 의존하며 오직 그것에 의해 행사되는 통치방식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즉, 절대주의 국가는 이전의 봉건 제후의 지방분권적인 정체 체제를 지양하고 국왕 권력을 중심으로 국가적 통일이 이루어졌으며 사회 전반에 걸쳐 중앙집권 체제가 확립되었던 국가이다.절대주의에 관한 정치적 사유는 중세의 법률가들이 주권의 개념을 논하면서부터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11세기 말부터 로마법사상과 황제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회 질서에 대한 기록들을 통해 황제권을 교황이나 유럽의 주요 군주들에게 이전시키려 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국왕 권력을 특징짓는 네 가지의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먼저 군사적?비군사적인 최고 명령권인 통수권, 다른 어떤 권력과도 비교될 수 없는 존엄함, 단순한 행정권과 구별되는 최고의 정치권인 권위, 그리고 법을 말하고 판결하는 권한인 입법의 능력이 그것이다. 이러한 개념들은 12~13세기에 들어서면서 공법체계에 침투하기 시작했다.절대주의와 관련된 또 다른 개념으로 ‘전권(plenitudo potestatis)'가 있다. 이는 명확한 규범과 질서 하에서 행사되는 일반권과 유사시에 제한 없이 행사할 수 있는 절대권으로 구분되는데 만약 이전의 규칙과 관행에 반하는 행위라 하더라도 전권으로써 교황의 행위는 정당화 되었다.이러한 로마법과 교회법의 개념과 공식들은 14세기에 이르러 프랑스의 정시사상 뿐 아니라 통치 관행에까지 침투하여 절대왕정을 형성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2. 왕의 두 신체(이체론)와 숨겨진 모순점17세기 프랑스 왕조국가에서는 왕권신수설로부터 출발하여 왕을 현신으로 만드는 신성화 작업에 돌입하였는데 이는 왕권을 옹호하고 절대 왕정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루이 14세는 신이 보낸 지상의 대리자였다. 그리고 신의 대리자로서 그의 명령은 최종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명령에 도전한다는 것은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성화의 가능성은 영국 튜더 왕조의 법률가들이 사용했던 ‘왕의 두 신체’라는 은유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국왕은 인간으로서 필멸할 수밖에 없는 자연적 신체와 정치적 사회와 정부로 구성되어 공공선을 관리하고 인민을 지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적 신체가 결합된 존재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신체는 국왕이 가진 자연적 신체에 의해 효력이 상실되거나 제재당하는 법이 없었다.그러나 ‘정치적 신체’에 있어서는 국왕의 대표성을 인정했지만 완전한 동일시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진정한 정치체는 제 권력들로 구성된 집합체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국왕 자체는 불완전한 상태였고, 사회의 다른 구성체와의 공동의 동의에 의거해야 했다.또한 국왕은 결국 그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국왕 역시 시간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절대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이 불멸성과 영원성의 가치를 논하기를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절대주의의 확립을 위해서 “국가는 곧 짐이다”의 주장이 가능해지기 위해서 전통적인 국왕이체론은 수정되어야 했고, 두 신체의 통합은 절대주의의 야심이 되었다.3. 베르사유를 통해서 본 절대왕정프롱드난 이후 루이는 파리에서 거의 20킬로미터나 떨어진 베르사유 시에 거대하고 화려한 궁전을 지었다. 이는 루이 14세기 이룩한 가장 눈부신 업적 중 하나로, 유럽 대다수 왕정 국가들에게 모방의 대상이 되었으며 왕의 전략적 연출의 결과가 가장 잘 드러난 곳이었다.베르사유는 건물 그 자체가 하나의 무대였다. 궁정의 외관은 그 주요부의 길이가 500미터를 넘었다. 내부는 프랑스 군대의 승전과 국왕의 승리를 기념하여 아로새긴 태피스트리와 그림들로 장식되었다. 바깥의 정원에는 1,400개의 분수와 아폴로 조각상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궁 안에서는 무도회와 만찬이 끊이질 않았다. 이로써 베르사유는 정치?문화?외교 뿐만 아니라 국제적 사교의 중심지가 되었다.베르사유 궁정은 절대주의의 표상이자 귀족에 대한 사회적인 지배의 정치적 도구였다. 거대한 정원과 성체는 그 자체가 정치적 상징으로서 국왕의 권위에 대한 메타포를 의미했고 국왕은 궁정예의인 에티켓을 통해 복잡한 행동의 제약을 둠으로써 자신의 지배와 권력을 위한 강력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였다. 또한 고위 귀족들은 지방의 영지에 있는 자신들의 성을 버려 두고 국왕의 주위를 맴돌기 위해 베르사유 시에 거주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봉건제의 특징인 동시에 왕권에 대한 큰 위협이었던 지방분권주의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반역을 모의하는 것보다 좀더 가까이 국왕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얼마나 절대군주로부터 사랑 받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했던 것이다.즉 베르사유는 개인과 집단, 당파들이 영구적인 경쟁과 긴장 상황에서 살아야 하는 게임의 무대였으며 아첨꾼이 판치는 곳이었다. 그리고 국왕은 이 가운데 사치스럽고 퇴폐적이었던 귀족들에 둘러싸인 가장 완벽한 제 1인자였다.4. 절대왕정이 내포한 문제점절대왕정이 내포한 문제점 가운데 특징적인 것인 전쟁과 재정적인 측면이다. 오랜 전쟁과 절대국왕의 군사 활동으로 재정의 지출은 증가했고 국왕은 대 금융가들을 대상으로 조세징수권을 경매에 붙였다. 그 결과 납세자들의 부담 늘어가고 국왕은 이들 재정가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절대왕정에게 있어 전쟁과 그것이 수반한 사회적 긴장감은 필수적 조건이었기에 이러한 자본의 조달은 반영구적으로 고착되는 경향이 짙었다.
    인문/어학| 2006.06.26| 4페이지| 1,000원| 조회(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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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사]프랑스혁명
    《 결코 헛되지 않았던 혁명, 프랑스 혁명 》- 목차 -Ⅰ. 들어가는 말 : ‘꿈’과 ‘현실’ 측면에서의 프랑스 혁명Ⅱ. 혁명의 배경1. 혁명의 이념 - 계몽사상2. 구제도의 모순(1) 귀족의 특권(2) 경제적인 문제3. 혁명의 성격(1)밑에서부터의 반봉건적이고 필연젹인 혁명(2) 부르주아 혁명Ⅳ.혁명이 남긴 유산1. 인권2. 근대성Ⅴ. 혁명을 돌아보며Ⅰ. 들어가는 말 : ‘꿈’과 ‘현실’측면에서의 프랑스 혁명하나의 역사적 사건은 객관적인 사건 그 자체로만 존재할 수는 없다.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가들의 분석과 시각에 따라 역사적 사실,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이다. 프랑스,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을 주었던 ‘프랑스 혁명’이라는 사건 역시도 이에 대한 여러 해석들이 존재하는데 이에 대한 논의는 크게 정통주의와 수정주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통주의는 특히 마르크시즘이 학계를 주도했던 1970년대 이전까지 프랑스 혁명에 대한 해석의 정석이라고 생각되어질 만큼 이 시각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부터는 혁명은 일으킬만한 가치가 없었고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수정주의적 해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두 시각은 바로 혁명을 ‘꿈’과 ‘현실'의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다. 다시 말해, 전자는 혁명을 통해 자유, 평등, 박애라는 열매를 맺게 되었고 혁명은 근대로 도약하게 하는 발판을 마련한 이상적이고 따뜻한 ’꿈‘이라면 후자는 폭도들에 의해 대량 살상이 이루어지고 오히려 혁명 당시나 그 이후보다 더 ’꿈‘에 가까웠던 혁명 이전의 세계를 파괴한 차가운 ’현실‘로 본 것이다. 여기서 나는 혁명에 대한 ’꿈‘을 토대로 프랑스 혁명을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혁명의 배경1. 혁명의 이념 - 계몽사상이념은 혁명이 일어나고 전개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고 이는 혁명에 있어서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에서의 이념은 바로 계몽 사상이었다. 계몽 사상은 부르주아 계층에게 자신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였고, 결국 그들의 목표를 혁명으로 정하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그리고 계몽사상은 이성에 대한 신뢰를 심어줌으로써 혁명이 일어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특히 혁명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1792년 8월부터 1974년 7월까지 루소의 영향력이 혁명을 지배했다. 특히 루소의《사회 계약론》에 나타난 정부에 관한 이론은 혁명 초기 헌법 제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루소의 글에 대해서 어떤 이는 이상적인 정치가 지배하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글이 아니었고 이는 혁명 정부의 이상을 선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루소가 혁명의 구체적이고 세세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인민주권과 민주주의적인 참여 등 근대적이고 개혁적인 사고와 개념들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혁명의 이념으로서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2. 구제도의 모순(1) 귀족의 특권귀족은 명예특권과 타유세(taille), 도로부역, 병사 숙박 등의 면제와 같은 실질적인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귀족들은 이러한 특권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도덕적인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수입을 올리려고 봉건적 부과조를 인상하였고, 각종 권리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귀족 중에는 세습 귀족 외에도 부르주아 출신으로 새롭게 작위를 받은 귀족들이 있었다. 또한 혁명 전 프랑스 사회에서의 1신분인 성직자 중에서 고급성직자 역시 많은 특권을 갖고 있었다.세금 징수에 있어서의 이러한 형평성의 문제에 대해 수정주의자들은 당시 구제도 하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평등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세금 징수에 대해서 불평등하다고 느꼈다거나, 그런 의식이 혁명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시대착오적인 사고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부로써 귀족 신분을 얻은 부르주아 출신 귀족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귀족 신분이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만은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고, 이는 신분을 통해 주어지는 특권과 불평등 역시도 무조건 당연한 것이라는 틀이 깨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당시 사람들은 세금 징수에 대한 불평등 문제를 인식했던 것이다.(2) 경제적인 원인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10여 년 전부터 경제적인 질서가 흔들려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곡물 가격은 물론 포도주 값이 크게 떨어졌으며 이러한 농업 경기 하강에도 불구하고 귀족들은 봉건제도에 관계된 세금을 올렸고, 각종 권리들을 새삼스럽게 주장하였다. 그리고 1787년의 홍수, 1788년의 가뭄과 저조한 수확량은 적은 규모를 보유한 농민들의 수익을 감소시켰다. 곡식이 귀해지자 가격이 상승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786년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맺어진 조약으로 영국 상품에 대한 수입 관세가 낮아졌고 이는 프랑스 직물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이로 인해 직물 가격이 오히려 상승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농업 분야에서의 식량 기근으로 곡식 가격이 상승하자 구매력의 저하로 상업 경제 역시 침체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적인 침체는 환경적인 요인인 인구의 급증과도 관련이 있다.심각하게 침체된 경제적 상황에서 왕은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침체되어 가는 분야인 농업에 재정을 기대고 있었고, 성장하고 있던 상업과 같은 분야에는 특권과 특혜 면세를 주다보니 재정을 확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권과 특혜는 농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었고 자신들의 불운의 원인을 귀족의 특권과 귀족적인 제도의 모순으로 돌리게 함으로써 농민과 부르주아의 연대를 만들에 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Ⅲ. 혁명의 성격1. 밑에서부터의 반봉적이고 필연적인 혁명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와 농민들이 봉건적이었던 구제도를 뒤집고자 했던 정치적 혁명이었다. 혁명은 인민들이 의도했던 대로 인민의 폭력에 의해서, 그리고 인민들이 특권 계층에 대항하여 쟁취했던 밑으로부터의 혁명이었다. 그리고 이는 앞서 살펴보았던 혁명의 원인으로부터 민중들이 자극을 받았고 이로 인해 혁명이 발생했으며, 혁명은 기존의 계급 구조 기반을 흔들어놓았다.부르봉 왕조는 지정학적이고 사회-정치적인 정책에서 모두 실패하였다. 이는 왕의 정부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루이 16세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프랑스는 어떤 형태로든지 정치, 사회 분야에서 ‘변화’가 필요했다. 이러한 필연적인 상황에서 도시와 농촌에서의 민중들은 구제도의 사회, 정치적인 정책에 반대하여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켰다. 즉 프랑스 혁명은 필연적인 혁명이었던 것이다.2. 부르주아 혁명토지가 유일한 생산수단이었기 때문에 그 소유자가 토지를 경작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던 사람들에게 영주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사회 내부에서 10세기 이후 상업, 산업, 금융, 동산을 통해 새로운 계급인 부르주아가 제 3신분으로부터 파생되어 끊임없이 성장해오고 있었다. 부르주아는 경제적인 부와 더불어 지식, 교양도 겸비하고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부르주아는 기회만 된다면 부를 통해서 작위를 받아 귀족이 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바라는 이들이 모두 귀족이 될 수는 없었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특권과 우월성의 근거를 위해 자신들의 숫자를 자체적으로 제한하였고, 그들만의 순수한 귀족 혈통을 보전하기 위해 각종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으로써 부르주아가 귀족이 될 수 있는 길을 점점 더 강하게 봉쇄하였다. 이에 따라 부르주아는 귀족과 같은 권력과 자유를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특권의 폐지와 권리의 평등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즉 귀족들의 폐쇄적인 경향은 부르주아들이 혁명을 일으키게 하도록 불을 당겨준 셈이었다.
    인문/어학| 2006.06.26| 4페이지| 1,000원| 조회(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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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사]나치즘
    < ‘일상’을 통해 살펴 본 나치 시대의 근대성 >Ⅰ. 나치 시대의 “일상”Ⅱ. 정상성의 갈구와 나치즘의 대두Ⅲ. 청소년 집단과의 갈등1. 나치로의 동원2. 청소년단과 근대성3. 청소년의 거부Ⅳ. 맺음말Ⅰ. 나치 시대의 “일상”‘나치 시대’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개 혼란스러움, 두려움과 같은 것들이다. 이제껏 나치에 관해 접해 본 것이라고는 학살의 잔혹함을 담은 영화, 사진들이 전부인 까닭 때문일까? 그 체제 속에서는 지속적인 비상사태만이 존재했을 뿐 “일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런 식의 억측은 곤란하다. 분명 그 시대에도 대다수 사람들의 ‘일상’이 존재했던 것이다. 포이케르트는『나치 시대의 일상사』에서 이러한 ‘일상’의 측면에 초점을 두고 나치 시대에 대해 기술해 나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일상은 단순히 반복성과 안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체제와 연관되는 일상이다. 그렇지만 체제와 연관되지 않는 일상이란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이에 포이케르트는 일상사의 고유한 영역은 없다고 하면서 이는 새로운 영역이라기보다는 “아래로부터”라는 새로운 방향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의 “아래”란 지배하지 않고 지배되는 사람들, 즉 “작은 사람들(Kleine Leute, little men)”을 의미한다. “작은 사람들”로부터의 역사가 일상사라면, 그들로부터 출발하여 도착하는 지점은 바로 체제이다. 즉, 일상사는 작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체제의 역사, 작은 사람들이 체제를 어떻게 경험했는가의 역사인 것이다.Ⅱ. 정상성의 갈구와 나치즘의 대두작은 사람들이 나치즘에게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정상성"이었다. 정상성은 곧 일자리와 질서였다. 나치즘은 그 정상성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회복시켜주겠노라 약속함으로써 집권한 운동이었던 것이다.나치즘이 대두했던 당시의 독일은 사회?정치?경제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그 위기는 심각하던 경제위기 이상의 위기였다. 바이마르 정치체제의 붕괴와 10년 사이에 두번째로 닥쳐온 격렬한 경제적 동요, 그리고 제2제정이 몰락한 뒤부터 진행되고 있던 전통적인 사회적 가치와 태도의 전복이 맞물린 위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포이케르트가 보는 관점에서는 나치 집권의 배경이 되는 시기의 위기는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니라 구조적인 근대화의 위기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생산의 합리화로 인한 연속 생산 체제의 관철과 기획?분절된 노동과정의 등장, 성적 노동분업의 변화, 사회 계층구조 및 사회적 지위체계의 변화, 담합주의적인 사회 정책의 도입, 사회화 과정의 장기적 변화, 특히 1920년대의 다양한 청소년 운동의 폭발적 성장과 세대간 관계의 변화, 문화의 변화, ‘폭풍의 20년대’라는 말로 표현되던 사회 문학적 양식의 변화, 특히 새로운 형식의 성적 자유와 새로운 춤과 새로운 패션이 등장하면서 보수적인 문명비평가들을 경악시키고 지방으로부터는 불신과 찬탄을 동시에 받았던 ‘타락한’ 대도시적 삶“ 등이다.나치즘을 낳은 정상성의 위기를 저자는 서구 부르주아 사회의 일반적 위기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사가들이 독일 사회가 ”정상적인“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전근대적인“나치즘이 출현했다고 파악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관점이다. 저자의 관점과 같이 나치즘을 근대성 내지 근대화와 연관지을 때에는 규범적, 해방적 측면이 문제가 된다. 근대성이라는 개념은 해방성이라는 개념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나치즘과 근대성이라는 개념과 연관시킬 때 발생하는 문제를 해방의 근대 이면에 규율과 억압의 근대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논리를 이용함으로써 나치즘의 해방적 측면과 억압적 측면을 동시에 드러내고, 더 나아가 나치즘의 야만성을 근대성의 본질적 측면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곧 살펴볼 청소년에 관련된 일상에서 역시 관찰되고 있다.Ⅲ. 청소년 집단과의 갈등1. 나치로의 동원청소년층은 나치즘이 집권한 이후 가장 유의한 사회집단이었다. 아직 때묻지 않은 청소년들은 나치의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창조될 수 있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은 앞으로 있을 전쟁의 총알받이로도 꼭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치는 청소년들을 가급적 빠짐없이 히틀러 청소년단, 제국노동봉사단, 군대에 연이어 동원하고 철두철미하게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를 교육하는 군대식 명령체계에 편입 및 예속시킴으로써 군인적인 행동양식을 주입시키려 하였다. 그리고 적극적인 히틀러 청소년 단원에게는 특권을 부여하여 미래의 핵심적인 나치로 성장시키고자 했다.나치 청소년 정책의 중심은 히틀러 청소년단이었다. 1936년의 히틀러 청소년단 법은 모든 독일 청소년을 가입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에 따라 외부 청소년들에게 입단하라는 압력을 가했고 1939년 3월 25일에 공포된 히틀러 청소년단법 시행령 두 개는 “청소년 봉사 의무”를 강제할 것과 계속 거부하는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2. 청소년단과 근대성1933년 이후 몇 년간 청소년들은 히틀러 청소년단을 강제적인 기구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청소년단은 바이마르 시절 청소년 조직의 다채로운 사업과 연결하여 다양한 여가 활동의 장을 제공했던 것이다. 청소년단이 벌이던 수많은 활동들과 그 활동 과정에서 존재했던 다양한 직위 역시 청소년들의 활동 욕구와 지배욕망을 실현시킬 기회를 마련해주었는데 그들이 벌이던 주된 활동들은 근대적 흐름과 맞물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야영이나 유스호스텔 건립 또한 그 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여가와 오락은 청소년들에게만 제공되었던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역시 제공되었다. 즉 이는 독일에서도 대중소비, 대중여가, 대중오락, 대중문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나치도 그 시대적 흐름에 적응했던 것이다.이러한 해방적 동력은 소녀들에게 더욱 컸다. 그들은 독일소녀단을 통해 보수적인 가정의 족쇄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고 소녀단의 임직원이 되면 남자에게 국한되어 있던 정치적 역할을 떠맡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치는 여성해방에 적대적이었으므로 일반적인 차별 정책은 계속 지속되었지만 명백히 반동적인 정책이 현실의 많은 일상적 모습에서는 근대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3. 청소년의 거부대중오락과 여가의 제공은 정상성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었던 나치가 민심의 이반을 막기 위해 채택한 수단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나치가 점차 전쟁에 고착되는 과정에서 이제껏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여가를 제공할 수 없게 되었고 이로써 나치에 대한 거부라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는 청소년의 경우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다.
    인문/어학| 2006.06.26| 3페이지| 1,000원| 조회(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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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문학]1920년대 전반기와 후반기 문학의 대비
    < 1920년대 전반기와 후반기 문학의 대비 >Ⅰ. 서론1919년의 3?1운동이 실패하자 조선 사회는 좌절과 절망적인 분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이전의 무단 통치에 대한 제고가 이루어져 통치 방법을 문화 정치로 변경하였다. 이로써 언론, 출판에 대한 약간의 규제가 완화되어 1920년 와 가 창간되었고, , , 등 동인지와 종합지가 간행됨으로써 문학의 저변이 확대되었다. 그리고 전문 문학인의 등장으로 문학적인 기반이 확립되었다. 즉, 1920년대는 3.1운동의 실패로 좌절과 불안에 빠지던 시대였으며, 지식인들은 서구의 문예사조의 영향을 근대적인 사고가 싹트기 시작한 시대였다.문학사적 성향이 칼로 자르듯이 1910년대 문학과 1920년대 문학을 나누는 데는 무리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3.1운동을 분수령으로 하여 그 전후를 1910년대 문학과 1920년대 문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10년대 문학은 1900년대에서의 계몽주의적 담론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1920년대의 근대 문학으로 접근해 나가는 과도기의 문학이었다. 그리고 1920년대의 문학은 무엇보다 전반기와 후반기의 문학적 경향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주목할만한 특징을 가진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이전의 문학의 연결선상에서 1920년대에는 어떠한 문학이 등장했으며 그 경향은 어떠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본론전반적으로 1920년대 문학은 동인지의 속출에 따라 유파가 형성되고, 본격적인 비평 활동을 포함한 장르별 분화가 뚜렷해지는 등 문학 의식이 심화되고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1920년대 초부터 사회주의 문학 사상의 수용으로 인한 신경향파 문학이 산발적으로 전개되다가, 카프의 결성과 함께 조직적인 계급 문학 운동으로 형성되어 카프가 결성되어 계급 문학이 대두하게 되었다. 이에 카프의 경향에 반발하는 국민문학파가 등장하였고 문학론의 대립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1920년대는 대개 1925년의 KAPF(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결성을 분수령으로 전후를 1920년대 전반기, 1920년대 후반기로 나눈다. 물론 대체적인 문학적 경향이 이 시기를 전후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지 칼로 자르듯이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시, 소설, 희곡, 비평이라는 4가지 장르를 통해 1920년대 전반기와 후반기의 문학적 경향을 비교해보도록 하겠다.1920년대 전반기는 대체적으로 현실적인 문학을 다루지 않았다. 만약 현실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하더라도 현실의식을 보이는 데에는 미약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때에는 미적 의식을 바탕으로 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담론’이 지배적이었다. 즉 이는 낭만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꿈(이상)을 그리는 문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기에는 현실적인 문학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현실담론’이 지배적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빵(현실)을 그리는 문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1920년대 전반기에는 개인적 의식을 표출한 작품이 대개인데 반해, 후반기에는 사회적 의식, 현실 의식, 역사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계급이라는 비순수적인 목적의식을 다루고 있다.시를 살펴보면, 먼저 시대적으로 3.12운동의 실패에 따라 지식인들이 좌절과 현실 도피의식을 갖게 되었고, 서구의 상징주의 시의 영행에 의한 세기말 퇴폐주의가 만연하였다. 그리고 당시 , 에 이은 , 등의 시 중심 잡지가 간행되었다. 특히 동인의 시가 대표적인데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 이상화「나의 침실로」, 박종화「사의예찬」, 박영희의 「월광으로 짠 병실」등이 있다. 특히 낭만적이고 퇴폐적인 상징시가 유행하였는데 이는 3.1운동 실패로 인한 좌절과 절망과 이 시기에 소개된 서구의 낭만주의 및 상징주의 문학의 영향이 눈물, 애수, 절망, 밀실, 어두움 등 퇴폐적인 정서를 통해 시속에 유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의 시는 대개 사춘기 소녀적인 감정과다현상, 센티멘탈한 경향을 보인다. 죽움, 절망, 어두움, 병약, 한숨 등이 그 제재이다. 이 시기의 시들은 감정의 무절제한 발산을 보이기도 했지만 형식상의 구애를 받지 않고 시인의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근대적 자유시가 뿌리내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정리하여 말하자면 1920년대 전반기의 시는 낭만적인 시가 그 주류를 이루었다. 후반기의 시는 카프의 결성과 함께 본격적인 사회주의 문학 이론이 도입되어 경향파 시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는 기존의 탐미적인 경향의 낭만시로써는 시대적인 모순과 고뇌를 드러낼 수 없다는 철저한 반성을 바탕으로 등장하였다. 이는 적극적인 현실 변혁과 사회 정의 등을 주장하였다.1920년대 전반기와 후반기의 소설은 그 특징을 대표적인 소설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현진건의 경우 전반기에서는 「유린」「희생화」등 전반적으로 센티멘탈한 분위기의 작품을 썼으나 후반기에는 「운수 좋은날」「고향」등 현실의식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염상섭의 경우, 전반기에는 「표본실의 청개구리」,「임야」,「제야」등의 작품을 썼는데 「표본실의 청개구리」의 경우는 1인칭 관찰자가 미치광이를 관찰하면서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그려낸 것이다. 그리고 「임야」,「제야」의 경우 감정적이고 지식인 내면의 우울함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반면에 후반기의 작품인 「해바라기」,「전화」등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치밀하게 묘사하여 세세하게 드러내는 트리비얼리즘(Trivial Realism)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나도향의 경우에는 전반기에는 「젊은이의 시련」「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과 같이 시 제목을 연상하게 하는 제목의 작품들이 있었고 내용은 센티멘탈하고 감정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후반기에 와서는 「뽕」,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의 갈등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1920년대 후반에는 프로 문학으로서의 소설이 등장하는데 이기영, 조명희, 한설야, 송영 등이 대표적이다. 작품으로는 박영희의 「철야」, 조명희의 「농촌 사람들」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식민지적 현실 아래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빈궁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하층민의 가난과 고통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들은 이러한 식민지적 가난이 단순히 일본의 착취 때문으로만 보지 않고 가진자와 못 가진자, 즉 지배와 피지배의 계급구조 때문에 생긴 것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계급 투쟁을 통한 프롤레타리아 혁명뿐임을 주장하였다. 1910년대의 문학은 넓게 보면 파토스적인 낭만적 상상력에 함몰된 소설인 시적인 소설을 썼다고 할 수 있다. 앞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1920년대 전반기의 소설은 감정적이고 센티멘탈한 특징을 보이고 있는 ‘예술적 담론’인데 반해, 1920년대 후반기의 소설은 현실적인 모습을 보이는 ‘현실담론’이라고 하겠다.1920년대 전반기의 극은 1920년에 극예술협회, 1922년에 토월회가 결성이 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근대극으로의 발전을 이루었다. 즉 신극 단체가 결성이 되고 근대 희곡이 창작되었던 것이다. 극예술협회와 토월회가 결성이 되면서 나운규의 「아리랑」, 심훈의 「먼동이 틀 때」 등의 작품과 「춘향전」,「운영전」 등의 작품이 각색되었다. 이러한 근대극의 바람은 도쿄의 유학생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점차 확산되었다. 특히 극예술협회는 김우진을 중심으로 도쿄 유학생들이 만든 단체로 리얼리즘극의 도입을 제창하였다. 이는 지성인이 대거 참여한 최초의 신극운동 단체였던 것이다. 이들은 서양의 고전극과 근대 연극 작품 등을 연구하고 토론하였으며 순회극단을 조직하여 사실주의적인 희곡 연출 기법과 무대 장치 등을 선보였고 한국의 연극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즉 이는 1920년대 초 서구 근대극을 전파하는 맹아가 되었던 것이다. 토월회는 박승희가 중심이 되어 조직한 전문극단으로 백조동인들과 손을 잡고 당시 무대 시설 등을 획기적으로 만들어 내어 한 단계 발전된 극의 풍토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새로운 극을 계속 이어나가지 못하고 이후 신파극을 바탕으로 근대극을 만들게 되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1920년대 후반에는 계급주의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경향극이 등장하였다. 이는 계급주의적인 혁명을 위한 선동과 선전의 수단으로 공연되는 연극을 일컫는 것으로 목적극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김영팔의「부음」, 김태수의「노동자」등이 있는데 이는 빈부의 대립과 노동자 계급의 삶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인문/어학| 2006.06.26| 4페이지| 1,000원| 조회(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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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문학]리얼리즘소설의 구조와 특징 평가C아쉬워요
    Ⅰ. 서론한국의 근대소설은 리얼리즘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리얼리즘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리얼리즘 자체에 대한 선험적 파악이 우선 시 되어야한다. 리얼리즘이란 서구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대두되었던 18, 19C에 등장하였다. 어원은 라틴어 ‘realis'로 實物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는 허황된 환상이나 관념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철학적 개념으로는 실질적으로 사물이 존재하고 있는 본질을 캐냄으로써 보다 정확한 인식에 도달하고자 하는 실재론(實在論)으로 명목론(名目論)과 대응되고, 양식적인 개념으로는 이상주의인 아이디얼리즘(Idealism)과 대비되는 현실주의(Realism)으로 파악된다.한국에서는 1920년대 들어서면서 김동인과 나도향 중심의 유미주의 소설과 최서해를 거쳐 카프 중심으로 확대되어 나온 프롤레타리아 문학으로 변모되어 나온 아이디얼리즘 계열의 소설과 더불어 염상섭, 현진건, 김유정 등으로 대표되는, 현실을 그대로 솔직하게 인식하려는 경향을 지닌 리얼리즘 소설이 대두되었다. 이는 문학을 자신의 이상과 이데올로기 선양의 도구로 생각했던 것과 비교해 본다면 실로 엄청난 변화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관에 따라 선택된 현실이 아니라 현실에 내재되어 있는 진실성(reality)이 중요하다는 것을 자각한 데에서 나타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리얼리즘 소설에서는 현실을 주관화하거나 왜곡시키지 않고, 인생의 암흑과 추악한 것을 철저히 객관화하여 현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묘사함으로써 앞서 전개된 아이디얼리즘 소설과는 상이한 세계를 구축하였다. 이처럼 현실에 대한 인식태도가 주관에서 객관으로 바뀜으로써 개화이래 한국 소설은 참다운 변화의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리얼리즘 소설은 앞서 언급한 리얼리즘의 본질을 바탕으로 한국만의 독특한 토양 위에서 생성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주제, 시점, 플롯, 배경, 인물, 표현기법 등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Ⅲ. 본론1. 리얼리즘 소설의 구조와 특징먼저 플롯은 작가가 조형하는 제일 중요한 세계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작가 개인의 의도나 이상에 따라 대상을 조작하려는 방법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의 모습을 충실하게 엮어 나가려는 태도와의 차이에 의해 상당한 변화가 유발된다. 전자는 아이디얼리즘 소설에서 나타나는 플롯으로 작가가 흥미유발을 위해 돌발적인 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후자는 리얼리즘 소설에서 나타나는 플롯으로 작가의 개입력이 전자에 비해 작고 현실과 거의 흡사한 사건을 가능한 현실세계에 따라 엮어 짜고자 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사건이 잦게 돌발하지 않아 전자에 비해 흥미는 떨어지지만 훨씬 현실적이다. 이광수의 장편소설「무정」에서는 이형식과 김선형을 중심이 되는 플롯이 진행되는 도중에 새로운 박영채를 중심으로 한 플롯이 겹쳐지고 거기에 다시 배학감을 중심으로 한 플롯이 겹쳐진다. 마지막에 하나로 합쳐져 완결된 구조를 이루는 매우 복잡한 플롯을 가지는 데에 반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서는 김첨지가 겪은 하루 동안의 일을 중심으로 진행되다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아내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터지면서 하나의 클라이막스를 가지는 단순한 플롯의 형태가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주제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아이디얼리즘은 작가가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나 이상 등을 주제로 삼고 있는 데에 비해, 리얼리즘 소설은 작가의식에 의한 주제가 아닌 현실의식에 의한 주제를 담고 있다. 즉, 처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과정을 통해서 주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아이디얼리즘 소설인 이광수의 「무정」에서는 소설을 통해 작가 이광수가 추구했던 민족의식 고취, 계몽의식과 신문물 도입 등을 주제로 나타내고 있는 것을 살펴 볼 수 있고,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장돌뱅이 생활의 애환을 통한 인간 본연의 애정을 주제로 나타냄으로써 작가가 추구하는 자연적 서정미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서는 가난한 인력거꾼의 삶과 애환을 표현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침투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1920년 당시 민중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인물은 리얼리즘 소설에서 대체로 현실적, 구체적인 인물로 현실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평범한 일상인으로 나타난다. 이는 아이디얼리즘 소설의 비현실적, 추상적인 인물과 대조되는 것이다. 예로 고소설의 「홍길동전」에서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소설에서 이루어내기 위해 비현실적인 자질을 가진 인물인 홍길동이 등장하는데 반해, 리얼리즘 소설인 「운수 좋은 날」에서의 김첨지는 가난한 인력거꾼으로, 당대 하층민의 참상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리얼리즘은 대체적으로 인물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창조하는데 이는 보여주기(showing)에 해당된다. 이는 장면을 중심으로 묘사함으로써 독자 스스로가 인물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갈등은 아이디얼리즘 소설에는 선과 악(고소설), 신과 구(신소설), 미와 추(유미주의소설), 빈과 부(프로소설) 등의 대립적인 갈등 양상 구조로 작가가 어느 한 쪽(선, 신, 미, 빈)을 편애함으로써 작가가 마련한 이상 쪽으로 주제를 유도해 내고있다. 그래서 대게 천편일률적으로 행복한 결말을 맺는데 반해, 리얼리즘 소설에서는 혹 선과 악, 빈과 부 같은 대립적인 갈등구조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한 쪽만을 편애하지 않고 현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염상섭의 「두 파산」에서 문방구점을 경영하던 정례 모녀의 물질적인 파산과 그와는 대조적으로 돈놀이를 하며 동업조건을 내세워 문방구점을 팔아먹는 김옥임의 정신적인 파산을 통해 리얼리즘에서는 현실적으로 결말을 맺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리고 리얼리즘 소설에서 배경은 시간적으로 짧고, 공간적으로 좁은 공간은 대체로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설정한다. 아이디얼리즘 소설인 고소설에서 시간적으로 일대기를 보여준다거나, 공간적으로 현실뿐만 아니라 천상의 공간, 신선의 세계와 같은 비현실적인 공간을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염상섭의 「탁류」에서 공간적으로 우리 민족의 열악한 삶의 현장인 금강과 군산항을, 시간적으로 일상적인 시간을 설정함으로써 당시 일제 수탈로 비참해진 한 일가의 삶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서술방법을 살펴보면, 리얼리즘 소설은 직접 서법에 의해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로 한다. 아이디얼리즘에서는 작가가 주관적으로 서술하려는 (telling)태도로서 직접 제시하는 방법을 쓰는 데에 반해, 리얼리즘 소설은 객관적으로 묘사하여 보여주려는(showing) 태도에서 간접적으로 서술한다. 예를 들어 “철수는 배가 아프다고 말한다.”와 같이 화자를 통해 전해듣는 것이므로 이는 화자의 주관성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철수는 ‘배가 아프다.’고 말한다.”에서는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소설의 시점은 크게 주관적 시점과 객관적 시점, 즉 작가에 의해 주도되는 작가 관여자적 시점과 작가의 입김이나 목소리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작가 소멸자 시점으로 나뉠 수 있는데, 리얼리즘 소설에서는 작가 소멸자적 시점을 사용하여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보여주고 있다. 아이디얼리즘의 작가 관여자적 시점에서는 편집자적 논평이 자주 가해지는데, 그 예로 김동인의 「감자」에서는 “그 뒤 1년이 흘렀다.”와 같이 작가가 소설 속에서 독자에게 해설조로 관여하여 말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리얼리즘 소설인 현진건의「운수 좋은 날」에서는 클라이막스인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아내의 비참한 죽음을 작가의 입을 통해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극적으로 형상화하여 보여줌으로써 당시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리얼리즘 소설에서는 작가의 관여를 소멸시킴으로써 보다 현실성과 객관성을 획득하고자 했던 것이다.문체는 리얼리즘 소설에서 동적인 묘사체가 대체로 쓰이고 있다. 아이디얼리즘 소설의 문체는 서술체나 정적인 문체가 대부분인데 이는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해 나가기 위한 형태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얼리즘 소설에서는 묘사체를 사용함으로써 작가의 의도를 배제하여 현실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주관 없이 객관적으로 작품을 보여주고(showing)있는 것이다.2. 한국의 리얼리즘 수용과 전개한국의 리얼리즘 문학의 성립은 『창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리얼리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내적 요구와 외적충격이라는 양면적 고찰이 있어야 한다. 창조 동인들은 문학은 “道學先生의 代言者”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전대 문학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으며, 문학이 “인생을 그대로 表現”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3?1운동 이후 당대 작가들은 식민지하의 현실과 정치적 질곡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그것이 문학에 반영 될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리얼리즘 정신과 관련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처럼 리얼리즘에 대한 내적 요구와 동시에 서구 리얼리즘에 대한 관심이 증대로 나타나면서 1920년대 서구 리얼리즘의 수용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는 일본을 통해 재수용되어 많은 굴절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나라 작가들도 충분히 그들의 원천으로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이해의 폭이 좁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다.
    인문/어학| 2006.06.26| 3페이지| 1,000원| 조회(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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