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장보고의 무역사상』.담당교수:제출일자:학 과:학 번:이 름:10-1-목 차-I. 장보고의 출현과 해상무역1. 장보고의 출현2. 청해진의 설치II. 장보고의 해상활동1. 장보고의 무역로2. 해상세력의 기반3. 장보고의 해상활동III. 신라시대의 무역활동1. 중국과의 교역2. 일본과의 교역3. 중동아시아-이슬람과의 교역IV. 장보고의 몰락과 신라의 사무역1. 장보고의 몰락과 청해진의 붕괴2. 청해진이 소멸된 후의 사무역V. 참고문헌I. 장보고의 출현과 해상무역1. 장보고의 출현청해진(淸海鎭) 대사 장보고(張保皐)는 삼국사기, 신라본기(新羅本紀)에 이름이 궁복(弓福),성은 장씨(張氏)라 하였고, 삼국유사에는 궁파(弓巴), 중국사료(中國史料)에는 장보고(張保皐), 일본사료에는 장보고(張寶高)라 기록되어 있다. 그는 어렸을 때의 이름이 궁파(弓巴), 궁복(弓福)라 하였으며 활 잘 쏘는 특기와 지략을 소유한 인물이었고, 또한 궁마에 재질이 뛰어난 바닷가의 무인(武人)가문에 태어났다.장보고는 당에 건너가 서주(徐州) 위군(衛軍)인 무령군(武寧軍) 소장(小將)으로 발탁되어 지략과 용맹을 떨치면서 탁월한 통솔력과 용병술을 다졌으며 이때 그는 중국(中國)에서 널리 알려진 '장'(張)성과 '보고'(保皐)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것이다. 적산법화원등의 건설로 재당 신라인들의 지도자였으며, 흥덕왕때 신라인을 당나라에 노예로 파는 국제 해적단의 만행을 고발하면서, 청해진 설치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이를 관철시켰다. 그리고 1만여 군사조직을 갖춘 청해진의 대사(大使) 직에 취임하여 해적퇴치에 종사하였다.장보고는 그 출신과 고향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으나, 당시의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서남해안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보고와 호형호제(呼兄呼弟)의 관계에 있던 정년(鄭年)이 바다 속 잠수에 매우 능숙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중국에서 기아에 허덕이던 정년이 "고향에서 죽는게 낫다"고 하면서 청해진의 장보고를 찾았던 것은 이들의 고향이 완도 주변이었음을 전해준다. 또한 후에 문성왕 군사를 얻어한반도 연해는 물론 동지나해에 이르기까지 해상무역의 장애가 될 뿐 아니라 비인도적 행위를 서슴치 않은 해적들을 말끔하게 소탕하는 공적을 세운다.그는 백제의 고토에서 천대받는 지방민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고 중국에서는 적산법화원을 통해서 당나라로 오는 당, 신라, 일본의 유학생, 무역상, 사신 등과 교류하면서 세력의 기반을 굳힐 수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김우징(문무왕이 됨)을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한 장보고의 심복 부하들의 출신이 대부분 백제의 고토, 특히 오늘날의 다도해의 연안 지방임을 볼 때 장보고의 기반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2. 청해진의 설치해상무역의 요로인 완도를 중심으로 하여 군사를 기르면서 당, 일관계를 보다 원할히 하면서 18년동안(828-846), 신라인을 괴롭히던 해적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신라인이 중심이 된 해상무역이 번성하였으며, 당나라와 일본의 관원들조차 그의 원조를 받았다. 장보고는 유학생과 유학승들에게 배를 내주고 해외에 있는 동포들에게 사원을 짓고 그 관리비를 충당치 위한 토지를 내어놓는 등 그 명성을 동양 삼국에 떨치게 되었다.837년에 청해진 세력은 무주[광주]와 남원을 공격하고, 이어 염장(閻長)·장변(張弁)·정년(鄭年)·낙금(駱金)·장건영(張建榮)·이순행(李順行) 등으로 하여금 신라의 지방 군단이 주둔해 있던 미다부리정(未多夫里停)을 공략하게 함으로써 전남 일대를 완전 장악하였다.그러던 중 중앙에서 김명이 다시 정변을 일으켜 희강왕을 죽이고 즉위하는 사건이 발생하자[민애왕(閔哀王)], 청해진 세력은 왕경으로 진격해 들어가 왕을 죽이고 우징을 새로 즉위시켰다[신무왕(神武王)]. 이에 장보고는 일등 공신이 되어 신무왕에 의해 감의군사(感義軍使)에 봉해지고, 신무왕의 아들로서 뒤를 이어 즉위한 문성왕에 의해 진해장군(鎭海將軍)에 봉해지는 등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그를 추종하던 정년과 염장 등도 전공에 비추어 중앙에서 상당한 예우를 받았다. 무주 출신의 재지세력이 장보고로 인해 중앙 정계에 진출하는해사단항로'와 겹치는 뱃길이다.해적을 소탕한 장보고는 우선 당에 대하여 외교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일본에는 일종의 무역사절단으로서회역사(廻易使)를 파견하였으며일본 정부의 묵인 아래에 사무역을 행하게 되었다. 이때 매매된 수량은 매우 커서 일본의 민간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고 관청에서도 장보고가 보낸 물자를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러한 일본과의 무역은 약 10년간 계속되었으며 일본의 무역중심지는 규슈섬의 다이사이후(太宰府)였다. 특히 장보고는 중극의 물품을 일본에 중개해주고 회역사를 상주시키다시피 하고 있었다.또한, 당에도 비슷한 사절단으로서 遺唐買物使를 보내어 당의 지방관원은 물론 지방절도사까지 만나도록 하였다. 특히 이 사절단교관선이 갈 때는 꼭 교관선을 보내었는데 이는 일종의 무역선으로서 장보고가 해상권을 장악하고 해적을 일소한 후 당 정부의 승인과 왕조의 호응 아래서 사무역을 크게 촉진시키는 매개체가 되었다.10-42. 해상세력의 기반장보고는 한국 무역사에 있어서 최대의 황금시대를 실현한 위대한 인물이나 그의 해상활동은 기반없이 이룩될 수 없었다.그의 한 중 일본에 있어서의 해상세력 기반은 다음과 같다.① 국내의 기반장보고는 한반도 연해의 해적퇴치를 위해 상주하였는데 왕은 그를 청해진 대사로 삼고 만 명의 병력을 거느리게 하는등 절대적 권한을 부여하는 점으로 보아 해상무역의 독점을 특허받은 것이며 그의 해상활동의 기반은확고부동하게 되었다. 신라 조정은 장보고에게 大使, 感義軍使, 鎭海將軍 등이 칭호를 부여하였다. 하나 이것은 신라의 관제에 의한 관명이 아니며 그의 공로를 치하한다는뜻도 있거니와 그의 세력이 강대한 것에 대한 경의의 표시라는 의미가 강한 것이라 하겠다. 또한 장보고를 일본에 견사하여 독자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토록 하였는데, 이와 같은 것을 볼 때 장보고는 신라정부의 통제하에 속하지 않는,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자유로운 입장에 있었다.② 당에 있어서의 기반장보고의 세력이 당의 해상무역 요지에 확고하게 부식되어 있었으며, 그의 당에 있독자적인 정부수준의 외교활동을 하였으며 일본정부는 그의 해상권 독점에 대해서 크게 존경하였고 그와의 교역을 환영하였던 것이다. 이것으로서 장보고의 해상무역의 일본에 있어서의 기반도 개방적인 당나라에 비할 수는 없으나, 독립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0-53. 장보고의 해상활동9세기 무렵 신라는 新·唐·日 간의 각종 해운무역과 인적 왕래에서 거의 독보적인 중개 역할을 수행하였다. 탁월한 조선술과 항해술, 기동력 있는 선단 운영으로 명실공히 극동의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하였다. 그 밑바탕에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하는 다도해 주민들의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 살았던 삶의 지혜와 경험이 크게 기여했을 것임은 의심할 바 없다. 이같은 우수한 조운(漕運)기술을 무기 삼아 장보고는 신라와 당나라간의 쌍무적 교역에 그치지 않고 일본을 대신한 조공선 운행과 유학생 및 승려, 사신의 왕래 수송 등을 도맡았다. 당시 일본의 유당선(遺唐船)도 실제론 신라인들의 도움을 받아 운행되었다. 이렇듯 장보고 때의 羅·唐·日 간의 공적무역과 사무역은 거의 전부 청해진 사람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다.한편 신라인들의 중국 대륙 무역기지격인 집단 거류지나 신라방은 산동성 적산촌과 대운하 요충지인 초주(楚州), 연수항, 양주를 비롯 연운항 일대에 뻗쳐있었고, 나아가 페르시아 상인이 출입하는 양주, 영파, 천주에까지 요소 요소에 박혀 있었다. 한반도 청해진에서 이들 지역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황해나 남중국해를 항해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최소한 세 개의 고정항로가 있었다. 그 가운데 당시에 가장 많이 애용된 항로가 이른바「황해 횡단 항로」였다. 이 항로는 백제와 신라가 가장 많이 이용했던 항로이기도 하다. 장보고 시절엔 羅·唐·日 간의 물길목인 완도의 청해진을 떠나 한반도의 서남 해안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충청도의 당진이나 또는 옹진에서 황해를 횡단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던 듯 하다.오직 신라인들이 남중국 항로와 북중국 항로를 장악하고 황해와 동중국해를 주름잡게 된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다도해를 중국에서 보내온 '회사품목'도 현존사료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것은 진 멸망 이후, 더욱 빈번하게 교빈하였던 수(581∼617)와의 교역(7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이른바 조공무역이 전성기를 이루었던 당대(618∼907)에도 국사의 왕래는 매우 빈번하였지만 '공물·회사품'의 품목을 전해주는 자료는 그렇게 많지 않다. 당이 건국되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까지 반세기 동안 양국의 교빈은 기록상 34회 가량 되지만 교역품목을 명기한 자료는 찾기 어렵다.다만 이 시기 왕이 승하하거나 왕족이 사망하였을 때 부의로 보낸 물품이나 답례품이 이때의 주요한 무역품임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될 뿐이다. 진평왕이 승하하였을 때(632)당 고종은 비단 200필을 보내어 부의하였고, 이창 문왕이 죽었을 때(665) 당 고종은 자의·요대를 비롯하여 채릉라(빛갈 무늬 비단) 100필과 생사 200필을 보내왔다. 신라도 답례로금박을 더욱 두터이 보냈다. 당 초부터 이 기간 동안 신라는 금·비단 등 원료적인 토산품을 보냈고, 당은 나·능·채·금 등 고급 비단직물과 의복·금은세공품을 보내왔다.신라는 삼국을 통일함으로 산업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무역량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이 결과로 신라의 경제는 크게 변화해 갔다. 통일 전에는 그 수출품이 원료적 토산품인 데 반하여 통일 이후에는 고급비단직물과 금은세공품 등의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한 예로 성덕왕 22년(723) 당에 진공한 물품을 보면 '과하마·반황·인삼·미체·조하주·어아주·류응령·해표피·금·은' 등 고급기술품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은 그 답례품으로 '금포·금대·채견·소견·공2,000필'을 보내왔다.신라수출품의 이와 같은 질적 변화는 성덕왕·경덕왕대를 중심으로 공예품 생산과 관계된 직관의 변혁에서도 알 수 있다.「삼국사기」(권39 잡지8, 직관 중)에 보면 견직물과 염색에 관계된 직명이 20여개나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고급견직물의 생산을 위한 관영공장의 설립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세분화되고일이다.
{과목 : 현대인의 식생활소속 : 법과대학 행정학과학번 : 2003036042성명 : 함승원{목 차{5 - 1서 론올바른 식생활의 중요성식생활 분석 및 평가초기 비만도 측정나의 식생활 분석나의 식생활에 대한 문제점올바른 식생활을 위한 개선방안결 론2주일이 지나고 난 후..나의 식생활에 대한 반성과 각오서 론{5 - 2올바른 식생활의 중요성세계보건기구 헌장에서는 건강이란 신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으로 완전히 양호한상태로서 단순히 질병이 없다든가, 허약하지 않다든가 하는 것만이 아니다. 라고명시하고 있다. 즉 복합적인 상황에서 이에 대응하는 반응과의 관계가 조화됨으로써유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식생활은 건강의 모든 단계에서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신이 먹은 식품이 바로 당신이 된다. 는 말은바로 이러한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인간은 생명유지와 건강한 삶을 영위하려면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균형이 잡힌식사를 하여야 하며, 이에 필요한 영양소는 약 40여 종에 달한다. 그리고 이들 영양소의역할은 다양하며, 또 영양소 상호간에 서로 유기적인 관계가 있어서 한 영양소라도부족하거나 과다하면 영양의 균형이 깨지게 되므로 영양소가 골고루 갖추어진균형있는 알맞은 영양 섭취가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중요하다. "식품을 잘못 섭취하여생긴 병은 의사도 치료할 수 없지만 올바른 식생활을 하면 의사가 필요 없게 된다."즉, 식품을 잘 알고 알맞은 영양을 섭취하는 올바른 식생활이 우리의 건강에얼마나 소중한가를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레포트는단순한 레포트의 차원을 넘어서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따라서 나의 식생활의 분석하여 문제점을 알고, 이 문제들에 대한 개선방안에 대해알아보자. 기간(5. 14 ∼ 5. 27)식생활 분석 및 평가초기 비만도 측정비만도 측정우선 나의 비만도를 측정해 보고자 한다. 비만도 수치와 이를 통해 도출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05. 5. 14나 이키몸무게성 별23 세184 cm82 kg남비만도판 정필요열량표준체중110.00 %과체중2606.9 kcal74.4 kg{비만판정기준90% 미만저 체 중90 ~ 110% 미만정 상110 ~ 120% 미만과 체 중120% 이상비 만- 비만판정기준 -{5 - 327일자 자료는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지금 결과를 본다면 나는 이제 막 과체중의범주에 들려고 하고 있다. 표준체중이 74.4kg이니 8kg이 더 나간다는 소리다. 확실히내가 1월달에 군 제대를 한 후 2∼4월까지 운동을 하나도 안하고 나태한 생활을한 건 사실이지만(밤에 야식을 먹고 자는걸 매우 좋아함) 원래 76kg였던 내가 이렇게체중이 늘었을 줄은 몰랐었다. 그리고 마침 수업시간에 체지방을 재는 기구로 재어보니내가 체지방률이 20.6이 나왔었다. 솔직히 충격을 받았는데 이제 제대하고 쉴만큼 쉬었으니식생활 조절과 운동을 통하여 건강해지기로 결심했다.나의 식생활 분석나의 하루 식단먼저 식생활 분석을 위하여 하루를 정해 문제점을 파악해보기로 하였다.{05. 5. 15식 단음 식 명섭 취 량칼로리(Kcal)아 침쌀 밥1인분313.2김튀김1인분75.2소고기무국1인분76.8점 심참치볶음밥1인분464.1멸치튀김1인분157어묵조림1/2인분101.4배추김치1/2인분5.4햄구이1인분52.4저 녁쌀 밥1인분313.2고등어구이1인분189.7마늘쫑무침1/2인분75.3쥐포조림1인분84.8간 식소보로빵1인분300.8우 유2인분240야 식소 주1병380족 발2인분400나의 식생활에 대한 문제점{5 - 4나는 하숙을 하기 때문에 아침과 저녁은 챙겨 먹는 편이다. 비록 입에 맞지 않아 손대는음식이 몇 개 없긴 하지만 그래도 끼니를 잘 거르진 않는다. 그러나 반찬이 거의 고정이므로아무래도 여러 가지 영양소 섭취에 제한이 많다. 그리고 중간에 불필요하게 간식을 자주먹게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빨리 고쳐야 할 문제가 밤에 술 한잔을 해야 잠이 잘 오는 습관이다.이것 때문에 체중이 늘었으리라 가장 의심되는 부분인데 불필요한 칼로리 섭취로 판단된다.영양소 면에서 살펴본다면(1) 칼슘섭취량이 적다. 칼슘은 골격구성과 중요한 생리조절기능을 담당하는 영양소다.골격과 치아를 만들고, 혈액이 응고되는데도 필요하고 근육 수축과 이완, 심장의 규칙적인 박동,신경의 흥분과 자극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또 체내의 효소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한다.칼슘을 부족하게 섭취하면 뼈의 밀도가 적어지고 뼈의 무게도 적어지게 된다. 이것이 심해지면골감소증과 골다공증이 걸리기도 한다. 칼슘을 꾸준히 섭취해서 골질량이 많을수록 뼈의 손실이적으니 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골격 구성에 필요한 영양소를 지속적으로 오랜 기간동안섭취해야 한다.(2) 지방섭취량이 많다. 지방은 농축된 열량 공급원으로 체중감량을 원하는 사람들과 비만인들에게부분적으로 제한되는 영양소이다. 하지만 너무 부족하면 지방을 통해 섭취가능한 지용성비타민의흡수가 잘 되지 않아 성장과 더불어 피부의 정상적 기능과 생식기능의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줄 수 있다. 지방섭취가 많으면 비만, 고지혈증, 동맥경화증, 심장병 등 심혈관계질환, 암이 생길수 있다. 체중을 줄이고자 한다면 지질섭취량을 줄이고 고체상태의 지질 섭취를 줄여야 한다.올바른 식생활을 위한 개선방안일단 식습관을 줄이고 운동을 통해 정상범위내의 체중으로 감량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래서헬스장에 회원권을 끊고 트레이너와 상담을 했다. 그의 말로는 하루에 물을 2∼3ℓ이상 마시고단백질을 160g 이상 섭취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충분한 유산소운동 후의 근력운동을 제안했다.그리고 식단은 칼로리를 신경써서 먹기로 하였다. 아침과 저녁은 어쩔 수 없으니 가장먼서 빵은끊고 우유는 매일 마시기로 했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야식은 끊었다. 자기 4시간전부터는 아무것도먹지 않고 아침과 점심, 저녁의 식사비율을 2 : 3 : 1로 맞추어서 먹기로 했다.그래서 5월 15일부터 그동안의 생활패턴을 완전히 바꾸었는데 아침식사 후 학교가기전에 사과1개를먹고, 물은 통을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계속 마셔주었다. 점심도 지방이 많은 것은 피하고 해물류나된장찌개 같은 음식을 위주로 먹었다. 헬스장에 가서는 1시간정도 유산소 운동을 하고 마치고와서는 계란흰자를 10개씩 먹었다. 단백질 보충엔 계란이 싸고 좋다고 해서.. 저녁은 되도록 반공기이상은 먹지 않도록 신경썼다. 복부지방을 없애기 위해 가루녹차를 마시고 싶었으나 생각보다비싸서 그냥 현미녹차를 자주 마셨다.이런 방식으로 생활했고 이동할때도 일부러 돌아서 먼 거리를 걸어다녔다. 5월 15일부터 계속계획대로 진행했다.결 론{5 - 52주일이 지나고 난 후..안그래도 이제 운동을 시작해야 겠다는 참에 레포트도 쓸 타이밍이어서 기분좋게 2주를 보냈다.그동안 신경써서 영양섭취에 노력을 기울였고 운동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그래서 다시
{과목 : 조직론소속 : 법과대학 행정학과학번 : 2003036042성명 : 함승원{목 차{10 - 1서 론본 론우리나라의 행정조직중앙행정기관지방행정기관특별지방행정기관공기업한국 행정조직의 문제점정부 산하 기관의 비대화정부조직의 경직성정부조직의 복잡성지방행정 계층구조의 문제점개선방안결 론참고문헌서 론{10 - 2우리나라는 정부수립 후 현재까지 약 50회에 이르는 행정개혁을단행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지속적인 개혁이 우리나라의 행정조직을변화시킨 성과는 공무원의 규모를 약간 축소시켰다는 점을 제외하고는뚜렷하게 내세울 수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도 1980년대 초부터 논의되기시작하고 문민정부 들어 강조되어온 작은 정부 의 구호에 비추어 볼 때그 성과 역시 그리 큰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 행정조직의 문제점은 표면적으로 크게 드러나는 것이기보다는 지속적이고만성적인 것이다.그런 면에서 행정은 자신들이 수행할 적정한 범위를 정하고, 이에맞는 행정의 역할을 결정, 평가, 조정해야한다. 이는 부문별로 달라 질수 있는데, 과거 행정권이 집중되었던 경제부문에서는 기능감축을추구하고 교육, 복지, 환경, 정보화 등 국가개입이 미흡하였던 부문에서는행정기능의 확장을 시도했던 것이 정부가 추구한 정부기능조정의 기본 축이다.이렇게 행정조직의 기능을 간략히 알아보았다. 이제부터 이러한행정조직에 어떠한 문제점들이 산재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정부 산하 기관의 비대화, 정부조직의 경직성, 정부조직의 복잡성,관리·간접인력의 과다, 그리고 지방행정 계층구조의 문제점등이 다섯 가지 측면을 검토해보고 그에 대한 해결책도 알아보자.본 론{10 - 3우리나라의 행정조직우리나라 행정조직은 거대한 관료제 조직이다. 구조적으로는 중앙행정기구와 지방행정기구로 나누어 볼 수 있고, 중앙과 지방에서함께 볼 수 있는 공기업이 존재한다.중앙행정기관중앙행정기구의 두상구조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국무총리그리고 국무회의로 구성되어 있고, 이러한 두상구조 밑에 중앙행정기관이있다. 중앙행정기관은자치단체와 시와 군 및 자치구(특별시와 광역시의 구에 해당)의 기초자치단체로 나뉘어진다.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이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도록 하는 권력분립형의체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지방의회는 주민직선으로 구성되고, 집행단체는단체장, 부단체장과 행정기구 등의 보조기관, 직속기관과 사업소, 출장소 등의소속기관, 읍·면·동장 등의 하부행정기관으로 구성된다.특별지방행정기관{10 - 4특별지방행정기관이란 특정한 중앙행정기관에 소속되는 지방행정기관이며그 관할구역 내에서 소속 중앙행정기관의 행정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중앙행정기관은 그 관장업무를 지방에서 처리할 때 전국적인 통일성이요구되거나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위임하여 처리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특별지방행정기관을 설치하는 방법을 쓴다. 특별지방행정기관은 중앙행정기관의연장이며, 일선기관의 성격을 가지므로 소속 중앙행정기관의 직접적인지휘·명령을 받는다.{) 위의책, 62면또한, 지방자치단체와는 달리 국가사무만을처리한다. 국세행정, 우편·통신행정, 국토건설행정 등의 분야에서그 예를 볼 수 있다.공기업공기업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공공복리의 증진을 위해 기업적으로운영하는 조직이다. 정부에서 일반적으로 결정 또는 승인한 재화·용역을생산하기 위해 정부주관으로 운영하는 조직이지만 정통행정조직보다는큰 자율성을 누린다.한국 행정조직의 문제점정부 산하 기관의 비대화그 동안 정부 각 부처는 경쟁이나 하듯 산하기관을 늘려 왔다. 그 결과현재 산하기관이 없는 정부 부처가 없고, 이제는 그 숫자가 너무 늘어나 거의관리 불가능의 상태에 있다. 하지만 정부 어느 부처에서도 산하기관에 대한전반적인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곳은 없다. 따라서 정부산하에 몇 개의기관이 있고,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얼마만한 예산과 인력이 사용되고 있는지,관리 실태는 어떤지에 대한 전반적인 파악이 사실상 안 되고 있다. 그만큼정부 산하기관이 비대해졌다는 얘기다.{10 - 5정부 산하 기관의 비대다. 정부출연 연구소의 경우, 연구주제의선정이나 연구결과의 발표에 있어 정부로부터 상당한 규제를 받는다. 간단한 저널을출간하는 데 있어서도 출판물에 기고될 원고의 내용을 미리 주관 부처에 보여줘서사전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외에도 연구 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나 간섭이 대단히 심하다.정부 산하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이 철저하지 못한 주원인은 감독해야 할주관부처와 감독을 받아야 할 산하기관 사이의 유착 관계 때문이다. 서로이익을 주고받는 공생관계에 있기 때문에 엄격하게 감독하기 어렵다는 말이다.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정부 산하 기관은 정부기관에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있다.산하기관이 늘어나면, 감독관청에게는 직접 간접적으로 여러 가지 혜택이 늘어난다.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 동안 각 부처는 경쟁적으로 산하기관을 늘려 왔다.정부출연 연구소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어째든 이러한 상황 하에서 감독할입장에 있는 정부 부처가 산하기관을 엄격하게 관리·감독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둘째로 정부 산하기관의 비효율성 측면을 살펴보자. 정부 산하기관의 비효율성의발생원인 역시 정부 산하기관의 독점적 지위 때문이다. 경쟁에 시달리지 않아도된다는 말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조직 치고 효율적인 조직은 없다. 정부 산하기관도 마찬가지다.정부조직의 경직성{10 - 6정부조직의 경직성의 문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중가장 심각한 것은 행정여건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 한다는 점이다.행정수요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 하고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행정환경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행정수요란 국민이 정부에무엇을 요구하는가 하는 것을 의미한다.국민의 요구는 점점 변하고 있다. 과거처럼 경제와 안보에 중점을 두는것이 아니다. 깨끗한 물과 공기, 안락한 노후생활, 지옥 같은 교통전쟁으로부터의 해방, 값싼 주택, 범죄 없는 사회, 물가안정 등 과거의 요구와는전혀 다른 것들이다. 이제는 좀더 다양화되고 고급화된 욕구구조가 힘을발휘하고 있다.기업의 는데, 그것이 어렵다.정부조직은 각종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조직을 개편하게 되면 적지 않은경우, 자리 수가 영향을 받게 된다. 자리수가 늘어나는 경우는 환영이지만,줄어들게 되면 엄청난 저항이 뒤따르게 된다. 자리 수를 유지하면서조직을 개편한다는 것은 그 성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정부조직의 복잡성{10 - 7정부조직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복잡성을 들 수 있다. 그 동안 정부는 조직을만들고, 키우는 데만 주력했지, 이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에는크게 관심을 갖지 못했다. 그 결과 정부조직은 비대해지고 복잡해졌다.이와 관련한 문제점을 지적하면, 정부조직은 인력 규모에 비해 기관이나기관 내 단위 부서의 수가 과다한 편이다. 정부조직은 그동안 국가기능의확대와 더불어 커 왔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최소 인원만 되면 새로운기구를 만들고, 또 기관 내에서는 부서를 신설하였다. 자리를 늘리기 위한 것이다.지방행정 계층구조의 문제점지방행정 계층구조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 논의한 문제들과는 약간다른 차원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짚고 넘어가고자 함이다. 우리나라의 지방행정 기관은 특별시·광역시·도, 시·군·구, 읍·면·동의 3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다른 나라의계층구조 보다 긴 편이다. 계층구조가 길면 정부기관간의 의사결정이지연되고, 의사소통이 왜곡될 소지가 크다. 또한 대민행정 차원에서도문제가 발생한다. 그 이유는 상당부문의 대민 행정업무가 여러 기관을거쳐서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많은 계층구조로 인하여행정업무의 비능률과 낭비초래, 그리고 정책결정의 어려움과 의사전달의왜곡·지연을 초래하고 있다.행정 계층구조가 다단계로 되어 있어서 야기되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점은엄청난 유휴 인력의 발생이다. 앞에서도 지적되었듯이, 현 행정계층 구조하에서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읍·면·동을 제외한 그 이상의 계층에 속하는기관들은 대체로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장 행정기관이라기보다는 지휘·감독하는 기관, 중계기관으로서아니라경비를 절감하고 서비스를 개선하며 조직 내의 민주화를 촉진한다.{) 오석홍, 한국의 행정, 법문사, 2002, 45면구조의 적응성 제고기술진보와 행정수요의 변화에 적시성 있게 대응하는 기구개혁을 단행하여구조의 적응성·융통성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행정조직의 적응부문을 주도할연구개발구조를 강화하고 개혁의 확산을 구조적으로 보장해야 할 것이다.구조의 경직성을 타파하려면 단일계서제적·일방통행적 통제구조와 기능별분립방식·획일적 방식에 의한 구조설계에 많은 수정을 가해야 하고 사업과문제를 중심으로 한 유기적 구조의 기동성 있는 활용을 늘려야 하며 협동적인작업집단 발전을 의해 노력해야 한다.복합구조(matrix structure)와 같은 구조적 쇄신도 필요에 따라 도입해야 하며행정서비스 구조를 소규모화하여 인간적이고 대응성 높은 서비스 전달을 실현하는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환경변화에 민감한 대응이 요구되는 국제관계 업무나개발 조직 등의 경우에는 애드호크라시(adhocracy)조직으로 보완하는 것이필요하다.{) 최승호, 행정학, 문성, 2003, 164면또한 상황적 요청에 따라 조직설계를 달리하는 다원조직제의 발전을용인하거나 유도해야 한다.제도적 측면{10 - 9중앙과 지방의 역할분담 조정지방자치시대의 요청에 맞게 중앙행정업무의 지방위임을 확대하고, 위임업무의자치단체 고유사무화를 점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행정의 현지성·능률성·봉사성을 높여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예산·인적자원·권한 등 자원의배분을 확대함으로써 책임과 자원의 괴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지방재정 자립도를 높임으로써 지방자치단체의 자치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또한 특별지방행정기관들의 기능을 수요에 맞고 적시성 있게 조정하고,전산망을 통해 필요한 중앙의 행정산출을 모든 지역에 고루 전달하여 지역 간의격차를 줄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행태·문화적 측면인사제도의 합리화승진상의 불공정성과 문책위주의 감사활동에서 벗어나 모범적인 공직자를발굴·보상하는 감사활동의 새로운 방향정립이 필요하다.{) 박천오,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