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M1. 음성 데이터 신호사람이 다른 사람의 음성이나 음악, 또는 기계음 등과 같은 음성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음성 데이터 신호의 진동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즉, 사람의 음성이나 음악, 또는 기계음 같은 음성 데이터 신호는 각기 고유의 음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은 청각 속에 있는 진동 막을 통해 음성 데이터의 진동 형태를 인식하여 음성 데이터신호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음성 데이터 신호의 진동은 연속적인 아날로그 신호로 이루어지며, 아날로그 신호는 주파수와 진폭으로 구성한다.이 두 요소의 다양한 변화에 따라 서로 다른 음성 신호가 생성되고 인식할 수 있다.이러한 아날로그 신호를 컴퓨터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 주어야 된다.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시켜 주는 장치 : A/D 변환기 (Analog to Digital Converter)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시켜 주는 장치 : D/A 변환기 (Digital to Analog Converter)1-1) 주파수☞ 신호의 성분중 한 사이클(Cycle)이 아날로그 신호의 한번의 파장을 의미한다.☞ 주파수(Frequency)는 시간 단위당 사이클 수를 의미☞ 측정단위는 헤르츠(㎐)를 이용☞ 1㎐은 1사이클/초당을 의미☞ 음성데이터 신호는 높은 대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1㎑=1000㎐, 1㎒=1000㎑와 같은 단위를 이용하고 있다.1-2) 신호의 진폭음성 데이터 신호는 데시벨 수식인 dB=20log10(A/B)와 같이 주파수 대역 폭에서 신호의 크기를 가진다. (참고: A는 음성데이터 신호의 값이고, B는 음성데이터 신호의 기준값이다.)☞ 음성 데이터 신호의 크기는 진폭으로서 표현되며☞ 음성 데이터 신호의 크기를 표현하는데 사용되는 단위 :데시벨(decibel)☞ 데시벨 :음성 데이터 신호의 기본 진폭을 미리 설정하고 그 기본이 되는 진폭에 비해 측정된 음성 데이터 신호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를 결정2. 음성 데이터의 디지털화멀티미디어 시스템에서의 모열(列)을 펄스 진폭 변조 (PAM : Pulse Amplitude Modulation)라 한다.그런데 연속적인 아날로그 신호를 불연속적인 디지털 신호로 바꾸면서 그 특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얼마나 자주 신호를 추출하여야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은 Nyquist라는분이 표본추출 이론 (Sampling Theorem)이라는 것에서 밝혔다. 예를 들어, 음성 신호인경우 유효 음성 주파수 대역인 300-3.400Hz의 2배인 6,800Hz (1초당 6,800번추출)로 표본화 하면 원 신호를 문제없이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경우 많은채널을 구성할 경우 여파기의 특성이 이상적이지 못하므로 실제로는 다소 여유를 두어 2배가 넘는 8,000Hz (1초당 8,000번 추출)로 표본화하고 있다.2. 양자화 (quantization)표본화에 의해 얻은 PAM신호를 디지털화하기 위해 진폭축으로 이산값(서로 떨어져 있는값)을 갖도록 처리하는 것을 양자화(quantization)라 한다. 양자화 과정은 그림 1-3에 나타나 있으며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첫번째 0과 +1사이의 PAM 신호는 ‘0’으로 그리고두번째 +1과 +2사이의 PAM 신호는 ‘+2’의 이산값으로 양자화한다. PAM신호를 양자화하기 위한 출력 레벨의 간격을 양자화 폭(quantization step size)이라 하며 양자화 폭의 수는 이진 부호의 비트 수에 의해 결정된다. 비트 수를 많게 하면 원 신호를 충실히 부호화할 수 있는 대신에 동일한 시간에 많은 비트를 보내야 하므로 고속의 데이터 전송이 필요하게된다.따라서 품질과 경제성을 고려해서 비트 수를 결정해야 하는데 현재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일반 전화음성의 경우 표본당 8비트(최대 피크값과 최소 피크값 사이에 256(=28)개의간격)로 부호화하고 있다. 양자화시 연속되는 양을 이산값으로 근사화 시킬 때 발생하는 오차를 양자화 잡음(quantization noise)이라 하는데 디지털화에 따르는 품질저하의 요인이 되므로 이를 최대로 작게 할 필음질 부호화기의 음질평가의 기준으로 많이 사용된다.이러한 파형 부호화 방식의 음성 부호화기는 16Kbps 이상에서는 음질이 좋으나 그 이하의 전송률에서는 음질의 저하가 심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비교적 간단하게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도 여러 응용분야에서 이용되고 있다. 특히 ADPCM은 우리나라에서 상용 서비스 중인 CT-2, 유럽의 DECT(Digital European Cordless Telecommunication), 일본의 PHS(Personal Handy-phone System) 등과 같은 이동통신 시스템에 사용되고 있다.2. 보코딩 (vocoding)보코딩은 사람의 음성 신호의 생성모델에 근거하여 음성 신호로부터 여기원(excitation source)과 성도(vocal tract)의 특성 파라미터를 추출하고, 합성시에는 이 두 특성 파라미터를 이용하여 다시 원래의 음성을 복원하는 방법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분은 ‘통신기술 기초과정 I’이 140~141쪽을 다시 한번 보도록 하자) 보코딩에서는 신호 파형의 모양을 재생해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귀로 듣는데 있어서 원래의 신호와 차이가 없도록 소리(sound)만을 재생한다. 따라서 보코더의 성능평가에는 신호 대 잡음비가 적합하지 않으므로 주관적인 척도인 MOS(Mean Opinion Score)를 이용한다. MOS는 여러 사람들에게 원음과 보코더에 의해 변환된 음성을 들려 주고 이것이 원음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으면(excellent) 5점, 큰 차이없이 좋으면 (good) 4점, 보통(fair)이면 3점, 나쁘면(poor) 2점, 원음에 비해 형편없으면 (unsatisfactory) 1점을 주고 그 점수를 평균하여 보코더의 성능을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MOS가 4이상이면 성능이 좋은 보코더이며 64Kbps PCM이 4.2~ 4.3 정도로 알려져 있다)보코더는 저전송률 음성 부호화기로 이 분야에서는 주로 4.8Kbps 이하에서 동작하는 음성 부호화기에 대한 연구가 주도적이다람이 암호문물 도청, 평문을 유추하여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려는 수동적 공격과 도청을 통해 절단, 삽입,대체 등으로 내용을 들키지 않고 바꾸려고 하거나 발신자를 실제의 발신자가 아닌 것처럼 속이려는 능동적인 공격이 있다. 암호화는 특정인 외의 암호 해독자가 해독할 수 없도록 방법을 비밀로 해야 한다. 어쩌다 그 방법이 알려지게 되면 새로운 방법으로 암호화를 해야 한다. 또 여러 명이 같은 암호화방법을 사용하면 같은 암호화방법을 사용하는 사람들 끼리는 서로 비밀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불편을 없애기 위해 암호화방법은 대부분 알고리즘의 형태로 고정하고 필요에 따라 극히 일부분을 키(key)로 정해 이 키의 보안으로 전체 내용의 보안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2. 암호화의 두가지 방식수 천년 전부터 사용돼 왔다고 해 「관용 (conventional)암호방식」이라고 불리는 암호방식 은 암호화 및 복호화를 위해 사용하는 키가 같거나 하나를 알면 다른 것을 쉽게 알 수 있어 두 개의 키를 모두 비밀리에 보관해야 한다.따라서 이러한 암호방식을 단일키, 대칭키, 또는 비밀키 암호시스템이라 부르며 앞서 이야기한 뽀빠이, 올리브, 브루터 시나리오의 3가지 요구사항을 모두 만족시켜준다. 이러한 비밀키 암호시스템으로 대표적인 것으로는 DES(Data Encryption Standard)가 있는데 DES는1970년대 초 미국 상무부가 정부와 민간의 조달 등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공개 모집된 것 증 IBM이 제안한 것을 미국의 NSA(National Security Agency)가 개입,수정해 표준으로 만든 것이다. 종래의 암호방식과는 달리 알고리즘을 공개했기 때문에 전세계 암호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게 돼 20년 가까이 온갖 공격의 대상이 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의 길이가 짧은 경우에만 당하는 공격 이외의 다른 공격들에는 다 잘 견뎌내고 있다. 우리가CDMA 시스템에서 통화의 비밀 보장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long PN(Pseudo Noise) sequence를 이용한 암호화 방식할 두 있는 것을 외면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초래한다는 것은 비록 정보보호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물며 국가 경쟁력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암호분야에까지 외국 제품을 그대로 들여오겠다고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타국에서 만든 암호를 들여와 사용한다는 것은 내집의 열쇠를 남에게 만들도록 해놓고 그 열쇠를 받아 안전하겠거니 하고 안심하는 것과 같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암호 알고리즘이나 암호 프로토콜은 가능한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것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암호기술 수준은 외국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개발된 암호 알고리즘 등이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무척이나 중요한 점이다.또 하나 미국이 수출하는 56비트 이상의 암호 알고리즘에 사용되는 키를 예탁(미국도 키를 보관하겠다는 의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알고리즘 자체에는 뒷문(trap door: 학창 시절 학교를 몰래 빠져 나갔다 들어 올 수 있는 개구멍을 연상해 보자)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예 미국이 뒷문을 만들어 그 열쇠를 갖고 있겠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도입한 암호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모든 정보는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6. 채널 코딩 (channel coding)1. 채널 코딩이란?채널 코딩이란 그림 1-1의 채널 부호화(channel encoding) 부분과 채널 복호화(channel decoding) 부분을 합한 것을 말한다. 그림 1-6에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원천부호화와 암호화 그리고 지금부터 배울 채널부호화의 소포(parcel) 비유가 있다.(우리가 보통 코딩이라 함은 그림 1-6의 source coding, secrecy coding 그리고 channel coding 중의 하나를 의미한다)소포를 보낼 때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소포의 무게가 가벼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포에서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작업(data compression)이 필요한데 이108
경영 조직론발표자 :정주영, 그의 리더쉽나는 생명이 있는 한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있고 건강한 한 나에게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 -정주영- 목 차 -1. 현대 연구에 관한 개관 1) 정주영의 그룹 “현대”의 역사 2) 정주영의 일대기 3) 정주영의 업적 2. 정주영의 경영원칙과 리더쉽 1) 타고난 검소함과 절약정신 2) 성실함과 신용 3) 아이디어와 발상의 전환 4) 무섭게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강력한 리더쉽 5)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 6) 민족애적 기업가 정신 7) 함께 가는 리더 8) 책임 9) 모험정신, 1%의 가능성 3. 정주영의 리더쉽유형 4. 정주영의 영향1. 현대(정주영) 연구에 관한 개관1)정주영의 그룹 “현대”의 역사 · 1947년에 모태인 현대 토건사가 설립 · 1950년 현대토건을 현대건설로 사명을 변경 · 6.25전후 복구 사업 진출로 성장기반을 구축 · 제 1 한강교 복구공사와 수 많은 미군공사 · 1965년 해외시장 개척(한국의 첫 번째 해외진출) · 1972년 조선소 사업 계획, 중공업 창설 · 90년대 자동차, 기계, 조선, 전자에서 비약적인 성과 · 1998년 소떼방북을 비롯한 본격적인 남북경협사업 · 1999년 금강산관광, 개성공단사업 등 경협사업 · 2000년 정몽헌 회장에 의해 남북경협사업 지속적 추진2) 정주영의 일대기·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리 아산마을에서 장남으로 태생. · 가난한 살림살이로 인하여 열 살부터 농사일. · 1930년 열다섯 살 나이로 송전소학교 졸업 후 농사일. · 1937년 9월 경일상회라는 미곡상으로 사업을 시작. · 1940년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인수. · 1946년 4월 현대자동차 공업사 설립. · 1947년 5월에 현대 도건사를 설립하면서 건설업 시작. · 1950년 현대건설주식회사 설립. · 1964년 6월 시멘트 공장 준공. · 1970년 1월 현대시멘트주식회사로 독립. · 1971년 현대그룹 회장을 지내며 여러 사업추진. · 1987년 명예그룹회장, 1992년 통일국민당 대표최고의원. · 1993년 위원직사임 후 현대그룹 명예회장. · 2000년 5월 명예회장직 사퇴, 2001년 급성호흡부전증 사망3) 정주영의 업적-정주영은 '현대를 통해서 기업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냈다' 라고 말했을 정도로 현대에서 많은 일들을 이루어 냈다. 그일들은 하나같이 그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이 무모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일들이었으나 정주영은 그의 '하면된다'는 굳은 의지와 리더쉽으로 역사를 이룩하였다. ·고령교 공사 ·태국 진출 ·주베일 항만 공사 ·서산 물막이 공사 ·울산 조선소 건설2. 정주영의 경영원칙과 리더쉽1)타고난 검소함과 절약정신 · 30여년 전에 지은 그의 집, 20년이 넘은 소파, 10년이 다 된 17인치 TV, 17년 전 작업복. “자린고비… 헤퍼서는 기업을 유지할 수가 없다…” 2)성실함과 신용 ·신의와 실력만이 당당히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길.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생활 철학과 '기업인은 주판알을 엎고 일할 때도 있다'라는 신용 최우선주의. 3)아이디어와 발상의 전환 ·아산만 방조제 공사 때 폐유조선을 사용해 험한 바다물살을 가로 막음. ·세계최단기간내에 경부고속도로를 건설. ·한 겨울 보리를 심어 잔디를 대신했더 UN 묘지 공사. · “상식에 매달리지 않는 신선한 발상의 성공”4)무섭게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강력한 리더쉽 ·1970년 울산 모래벌판에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조선소를 설립. ·항상 남보다 먼저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는 시야. ·과감히 승부수를 던져 망설임 없는 리더쉽. ·성실과 신용, 검소한 노동자적 생활, 민족애적 기업가 정신, 희망의 철학 등을 노동자들과 현장에서 몸소 실천. · 한번 마음먹은 사업을 무섭게 밀어붙이는 추진력. 5)끊임없는 도전과 노력 ·건설, 조선, 자동차, 철강, 기계 등 중공업 분야에 집중시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춤. ·전쟁으로 피폐한 한국땅에 건설,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건설을 통해 수익력과 성장잠재력을 키움. ·도전하는 자만이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6) 민족애적 기업가 정신 · 노동자들에게 기업인과 노동자는 단순히 이윤과 임금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민족애적 사명감을 갖고 일해야 한다고 강조. · 경제는 한 나라의 모든 분야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기업인과 노동자는 부국에 일익을 담당하는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며 노동자들에게 역사적 사명의식 고취. 7)함께 가는 리더 · 경부고속도로 세미터널 대붕 공사 현장에서 계속 되는 낙진 사고로 인부들이 죽어나가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고 하자 자신과 부회장, 이명박 이사가 솔선수범해서 먼저 삽을 잡고 일을 하면서 돌에 맞고 뼈가 부러지기를 여러 번 했지만 현장에서 떠나지 않음. · 사장과 직원의 사이가 상하적 개념에서 동지적 개념으로 바뀜.8)책 임 ·일을 잘못했을 경우 서류더미가 직원의 얼굴로 직행, 큰소리 침. ·철저한 상명하복 속에서 책임을 다 하는 한도 내에서 창의 발휘. ·가족이라고 해서 봐주는 법이 없었음. 첫째아들 9년근속 하다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암 발병 사망. ·이런 리더쉽 모델은 신속성과 정확성 보장. ·구성원의 사기에 고려 안 할 경우 반발,스트레스로 조직에 타격. 9)모험정신, 1%의 가능성 ·99%의 실패 가능성보다 1%의 성공 가능성에 주목한 기업인. ·1%가능성이 현실이 되면서 엄청난 대가. ·복잡한 계산은 그에게 필요 없었다. 다만 모험정신.3.정주영의 리더쉽 유형저 고 생산(일)에 대한 관심98*************789고 사 람 에 대 한 관 심 저4. 정주영의 영향·우리나라 최초로 자동차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등의 가능성 제시. ·천 마리의 소떼를 몰고 방북, 금강산 개발 사업 등 대북사업. ·특유의 기발함과 추진력, 기업가 정신은 기업인의 한 표준모델. ·상명하복자세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효과로 조직을 강화시키는 것은 좋지 않은 평가. · “빨리빨리 신드롬”의 발생.(성수대교, 삼풍 백화점, 대구 참사) ·그의 살아있는 신화는 후대 기업인들의 산 지식이 될 것이다.{nameOfApplication=Show}
윈드서핑이란 !보드만으로 파도를 타던 서핑에 마스트(돛대)를 달고 세일(돛)로 바람의 힘을 이용해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는 수상 레포츠이다.?세일링 스포츠로서 보드 세일링이 탄생한 것은 1968년이다. 먼저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키며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1976년 바하마 세계 윈드서핑 선수권 대회에서 현란한 기교를 선보이기 시작하면서 전세계에 급속히 확산되어 지금은 세계인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포츠가 되어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88서울올림픽 이후부터다. 올림픽 개회식전 행사인 강상제에 참여하여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면서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 현재 많은 동호인들이 활동하고 있다.?*윈드서핑의 특징·장비가 간단해 운반이 편리하고 조작이 간편하여 누구나 손쉽게 배울 수 있다.?·물에 떠있을 정도의 수영능력과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안전수칙만 지킨다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장비값이 저렴하며 활동비도 적게 들어 어떠한 레포츠보다 경제적이다.?·물과 바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즐길 수 있어 현대인들의 건강증진과 스트레스 해소에 더 없이 좋은 레포츠이다.???*윈드서핑의 역사?새로운 세일링 스포츠로서 보드 세일링(윈드서핑)이 탄행한 것은 1968년이다. 발명자를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의 부사장 호일 슈바이처와 초음속기 설계가 짐 드레이크 두 사람이다. 동기는 서핑과 요트를 즐기는 두 사람이 서핑과 요트의 장점을 접목시킬 수 없을까 하고 연구한 결과 360°회전이 가능한 마스트풋(유니버셜 조인트)을 구상하였고, 이것과 활모양의 붐(Boom)으로 마스트를 움직임으로써 세일링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호일 슈바이처는 이것을 ‘윈드서퍼’라는 이름을 붙여 전세계에 보급시켰는데, 그뒤 이의 유사한 것들이 수백 종이 생겨 나면서 이들을 모두 통털어 보드 세일링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 이에 사용되는 보드는 세일보드라 불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세일보드라는 말보다는 윈드서퍼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고 또 보드세일링과 마찬가지로 윈드서퍼를 타fe jacket) - 물 속에서 부력이 생기는 구명조끼. (초보자 및 수영에 미숙한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준비를 해야할 장비임.)러닝(Running) - 바람이 진행 방향의 정후면에서 불어올때의 세일링 포인트러핑 업(Luffing up) - 보드의 머리부분을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돌리는것.론칭(Launching) - 보드를 물에 뛰우는것.리치(Leech) - 세일 톱과 아웃홀을 잇는선.리그(Rig) - 세일, 마스트, 조인트, 붐으로 이루어지는 부분.리슈코드(Leash cord) - 조인트가 벗어졌을 때 리그를 매어두는 시트 또는 고무끈.■ ㅁ마스트 슬리브(Mast sleeve) - 세일의 앞부분에 있는 마스트를 꽂는 주머니 모양의 것.마스트 트랙(Mast track) - 보드위에 있는 움빅이는 레일. 조인트를 여기에 꽂아 앞뒤로 움직인다.마스트 풋(Mast foot) - 마스트 밑을 받쳐주는 부품.■ ㅂ바람 축 - 바람이 불어오는 쪽과 바람이 불어가는 쪽을 연결한 가상선.바우 아이(Bow eye) - 보드 전체에 붙어 있는 끈을 꿸 수 있는 고리. 구조될 때는 여기에 끈을 매어 당긴다.배튼(Batten) - 세일의 모양을 갖추기 위해 꽂는 수직 막대기. 길이는 세일의 디자인에 따라 달라진다.밸런스 포인트(Balance point) - 달리기 전에 리그를 끌어당기는포지션. 이 포인트에서는 리그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베어링 어웨이(Bearing away) - 보드의 머리부분을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돌리는 일.보드(Board) - 세일러와 리그를 지탱하는 부력이 있는 평평한 판자.보드 택(Board tack) - 보드의 옆으로부터 바람을 받아 달리는 상태. 마스트 손은 왼손.보퍼트 풍력급(Beaufort scale) - 바람의 세기를 그 물리적 영향과 관련시켜 나타낸 시스템.붐(Boom) - 쇄골과 비슷한 모양의 조립 부품으로 세일을 지탱하고 리그를 조절하는데에 사용한다.붐 엔드(Boom end) - 붐의 끝 부분붐 조(Boon jaw) - 붐의 앞끝 마스트스피드를 떨어뜨리지 않고 보드의 머리부분을 바람이불어가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방법.(상급 세일링)조인트(Universal joint) - 보드와 리그의 접속부품. 마스트 베이스와 조인트 베이스로 이루어진다.진행풍 - 전진에 의해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 ㅋ쿼터 리(Quarter lee) - 바람의 센터라인에 대해 후방의 대각선 방향에서 불어오는 세일링 포인트.클로즈홀드(Closehauled) - 데드존에서 되도록 가까운 곳을 달리는 세일링 포인트.클루(Clew) - 세일의 붐엔드 부분클리트(Cleat) - 시트 위크를 사용하지 않고 로프의 끝을 꽂는 밧줄걸이.■ ㅌ태킹(Tacking) - 보드의 머리 부분을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돌리는 방향 전환법.테일(Tail) - 보드의 후단부트림(Trim) - 보드나 세일을 조절하는 것.■ ㅍ포트 택(Port tack) - 보드 머리부분을 향해서 보드의 좌측(포트에 바람을 받아 세일링 하는것)풋(Foot) - 세일 아랫부분풋 배튼(Foot batten) - 세일의 풋 모양을 갖추는 배튼.풋 스트랩(Foot strap) - 강풍일 때 발을 보드에 고정시키는 데에 사용하는 벨트.(탈부착이 가능함)풍압중심 - 세일에 따라 생긴 힘의 대분분이 집중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세일 위의 포인트.피벗 포인트(Pivot point) - 보드가 회전하는 중심점. 이것은 바람의 세기, 보드 위에 있는 세일러의 위치 등 갖가지 변수와 관련하여 변한다.■ ㅎ하니스(Harness) - 강풍바람이 세게 불 때 붐을 당기기 위해 사용하는 안전밸트. 힘을 절약할 수 있다.하니스 라인(Harness line) - 붐을 조립한 시트로 여기에 하니스 고리를 건다.*윈드서핑의 장소?윈드서핑은 강, 호수, 바다 등 물과 바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할 수 있다. 먼저, 강은 변화하는 물의 흐름이 있고 도심지에서 가깝기 때문에 짧은 주말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대표적인 장소가 한강인데, 서울에 있는 동호인 클럽 중 3분의 2이상이 잠실대교 부근 및 광나루 지구면 비로소 윈드서핑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윈드서핑을 한다면 즐거움이 한층 더 할 것이다.?1)스피드?윈드서핑을 하기에 알맞은 풍속은 초속 5~8m정도이다. 하지만 풍속이 그 이상 되면 스피드를 즐길 수 있다. 강, 호수에서도 강풍이 불면 스피드를 즐길 수 있으나 더욱 짜릿한 스피드를 즐기고자 하면 바다로 나가면 된다. 바다에서는 강, 호수보다 바람의 속도가 더욱 빨라 최대 시속 80km이상의 스피드를 맛볼 수 있다.?2)하이 테크닉?윈드서핑의 기본 테크닉을 익힌 다음 하이테크닉의 프리스타일을 하나하나 익혀 시도해 보면 좋다. 헤드 딥, 레일 라이드 등 약 60여 종류가 되는데, 짧은 시간에 마스터할 수는 없으나 꾸준히 연습과 경험을 쌓으면 충분히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물위에서 고도의 테크닉을 사용하여 윈드서핑을 즐긴다면 하는 사람, 보는 사람 모두 함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3)파도타기?바다에서의 파도 타기는 절정의 곡예 세일링이다. 강풍으로 이는 집채만한 파도를 타고 날아가거나 회전 등의 곡예 세일링을 할 수 있다면 그 짜릿한 맛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4)크로스 컨트리?해협횡단, 대양횡단 등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을 통하여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세일링이다. 또한 공익행사를 위한 크로스 세일링도 있다. 예로, 지난 서울 올림픽을 위한 한강 크로스 컨트리 세일링등은 윈드서핑을 통해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세일링이다.??*특허 와 분쟁윈드서핑의 역사적 개요을 좀더 명확하게 알아보기 위하여 1967년 이전인 1965년 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 홀리 슈와이처와 짐 드래이크는 서핑과 항해의 특성을 접목하고 싶어했다. 그것은 서핑에서의 문제가 파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가장 큰 이유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함이었다.항공기 설계사였던 짐 드래이크는 분명 새로운 시스템의 마스트를 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1967 - 1968년 처음으로 윈드서핑 보드를 개발하였습니다. 이 보드의 이름은 " 치열한 법적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서로가 많은 법률 비용을 소비 하여야 했다. 결과적으로 홀리 슈와이처는 윈드서핑에 대한 국제 특허를 얻게 되었고, Darby는 그 후 스스로 새로은 윈드서핑 세일(리그)를 만들어 냈다.*짐 드래이크의 리그장치?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서핑보드 제조자인 케리 세만은 3m에 이르는 세로형 서핑보드를 만들어 "어글리(Ugly)"라고 불렀다. 이 서핑보드는 옆선은 똑바르고, 보드 앞쪽은 둥글 게 하였으며, 뒤쪽은 사각이었다. 홀리 슈와이처는 "플리퍼(물갈퀴)"라는 항해선을 만들기 위하여?섬유유리로 제작된 마스트를 구입하였다. 당시 짐 드래크는 세일의 ?조종 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그것이 고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출장 갖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견인식 세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문득 떠올리게 되었다. 짐 드래이크는 자신의 생각대로 홀리 슈와이처의 보드 디자인에 맞추어 조립을 한 후 항해사들이 창사골(새의 Y자형 앞 가슴뼈) 이라 부르는 형태로 돛의 활대를 두 개 만들었다. 그리고?두 개의 견인식 세일를 배열하였다. 첫 번째 것은 세일이 전 후로 기울도록 하고, 중앙의 대거보드는 세일이 기울 때 그 반대로 흔들리게 하였다.( 즉, 돛이 기울면 중앙의 ?대거보드는 뒤로 흔들리게 된다.) 두 번째 디자인은 완전히 고정된 대거보드(Daggerboard)로 이루어졌으나, 세일이 어느쪽 방향으로도 흔들리게 하였다. 두 디자인 모두 세일의 회전과 붐대가 조립 될 수 있도록 하였다.짐 드래이크는 세일 제조업자에게 밝은 황색의 5.2제곱 평방미터의 세일을 주문 하였고,?그 위에 번호 1번과 항해 서프보드를 표시하는 로고를 붙이도록 했다. 이것은 짐 드래이크와 홀리 슈와이처가 1966년 윈드서핑을 상상하고 1년이?지나는 동안 거의 6차례의 파티를 치르면서 얻은 아이디어의 결과였다. 그리고 ?다시 그들은 ?파티에를 통하여 최초의 윈드서핑인 프리세일시스템을 선보였고, 이 후 짐 드래이크는 두 번의 실험없었다.
경영 조직론정주영, 그의 리더쉽나는 생명이 있는 한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 있고 건강한 한, 나에게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 정주영윤 성 민200221068변 종 철200221049최 윤 석200221115우 세 영2004315601. 현대(정주영) 연구에 관한 개관1) 정주영의 그룹 ‘현대’의 역사현대 그룹은 1947년에 모태인 현대토건사가 설립되었으며 1950년 현대토건을 현대건설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6.25 전후 복구 사업 진출로 그룹 성장기반을 구축하였으며 제 1 한강교 복구 공사와 수많은 미군 공사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국제적 감각 습득, 기계화 시공과 첨단 기법 도입 등으로 기술 향상을 이루었고 인력 관리에서 많은 노하우를 체득하였다. 1965년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섰는데 한국 기업의 첫 번째 해외 진출이었다. 태국에서 파타니 나리티왓 고속도로, 괌의 주택 건설사업, 월남의 항만공사 성공리에 수행하며 훗날 중동 오일 딜러 수입의 기반을 형성하였다. 1972년에는 조선소 사업 계획서와 울산 미포만 백사장 사진 1장을 들고 외자 유치를 나서, 런던 바클레이스 은행, 영국 수출보증국 승인 획득, 조선소 착공과 동시에 26만톤급 유조선 2척 건조의 신화를 이룩라고 현대 중공업을 창설한다. 90년대에 들어서 현대그룹은 매출액 10% 이상의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자동차, 기계, 조선, 전자에서 비약적인 기술성과를 시현하였고 특히 자체 기술에 의한 자동차 엔진 개발, 자기 부상 열차와 전기 자동차, 수소 자동차, 알코올 자동차 개발, 선박 기술의 총아인 LNG 선 건조, 인수용 헬기 제작 등, 또한 IMF 시대를 맞아 한국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아차를 인수해 조기 정상화 시켰으며 LG 반도체를 합병하여 현대전자를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으로 재탄생 시켰다. 1998년에는 소떼 방북을 비롯하여 본격적인 남북 경협 사업의 물꼬를 텄다. 1999년에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사업, 남북 영농 사업, 평양 체육관 건립 등 남북 모두에게 도움이월 제14대 대통령선거에 통일국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하였다. 1993년 초 통일국민당 대표최고위원직을 사임하고 1993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되었다. 2000년 5월 명예 회장직을 사퇴하였으며, 2001년 폐렴으로 인한 급성호흡부전증으로 사망했다. 1969∼1989년 지역사회학교후원회 회장, 1977∼198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1982∼1984년 대한체육회 회장 겸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1983∼1987년 한국정보산업협회 회장, 1989∼1992년 한·소 경제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1975년 경희대학교에서 명예공학박사, 1982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명예경영학박사, 1985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경제학 박사, 1985년 서강대학교에서 명예정치학박사, 1986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1995년 고려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1995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명예인문과학박사 등 학위를 받았다. 1998년 6월 16일 정주영은 판문점을 통해 북한 방문길에 오름으로써, 분단 이후 정부관리의 동행 없이 판문점을 통과한 최초의 민간인이 되었다. 특히 그는 ‘통일소’라고 불린 소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넘는 이벤트를 연출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여러 차례 더 방북하며 남북 민간교류의 획기적 사건인 ‘금강산관광’을 성사시켜 1998년 11월 18일 첫 출항하였다. 우수경영자상(1968), 제1회 한국경영대상(1987), 국민훈장 무궁화장(1988), IOC훈장(1998), 노르웨이 왕실훈장(1998) 등을 수상하였고, 타임지 선정 ‘아시아를 빛낸 6인의 경제인’(1996), 매일경제신문사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뽑은 ‘20세기를 빛낸 기업인 1위’(1999)에 올랐다. 주요저서에 회고록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1991),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나의 살아온 이야기》(1998) 등이 있다.연 도주 요 내 용1940. 3합자회사 아도서비스 공장 설립1946. 4현대자동차공업사 설립1947. 5현대토건사 설립195골칫덩어리로 변하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계절에 따라 다른 낙동강 수심과, 예기치 못한 홍수, 열악한 장비시설 등이 공사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모두 공사를 중단하자고 말했으나 정주영은 ‘사업에는 신용이 최우선’ 이라는 신념으로 집을 팔고 얻을 수 있는 빚은 모두 얻어 1955년 계약한 기한보다 2개월 늦게 공사를 완공했다. 적자는 6500 만환이었는데 그는 고령교 공사 결손 빚을 청산하는데 20여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정부로부터 크게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현대건설은 그 후에 정부공사 대부분을 수주하는 계기가 되었다.태국 진출국내 정치 상황이 급변동하면서 세무조사 등의 곤욕을 치른 정주영은 해외에서 활로를 찾았다. 첫 성과가 1965년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따 낸 것이다. 선진 16개국 29업체 와 겨뤄 따낸 이 공사는 공사 계약금이 국내외 공사 전체 계약액의 60%를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큰 것이다. 태국의 엄청난 비와, 나쁜 토질, 기술의 낙후성 등 때문에 공사는 진척이 안됐고 현대건설은 또 다시 큰 손해를 보는 시련이 닥쳤으나 이 것은 나주에 고속도로 공사의 경험이 되어 경부 고속도로를 수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베트남 감란만 준설 공사 등을 거치면서 현대 건설은 해외 진출을 확장했고 나중에 ‘중동특수’를 일궈낼 바탕이 됐다.주베일 항만공사1976년 사우디아라비아가 발주한 주베일 항만공사는 공사 금액만 당시 우리나라 예산액의 절반에 맞먹는 9억 3000만 달러(당시 환율 4600억원)로 세계 건설 업계가 ‘20세기 최대의 역사’로 불렀던 일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9억 3114만 달러로 낙찰 받았다. 공사를 진행하던 정주영은 모든 기자재와 콘크리트 슬래브를 울산 조선소에서 제작해 세계 최대 태풍권인 필리핀 해양을 지나 걸프만까지 대형 바지선으로 운반하는 생각을 하였다. 오일 쇼크로 침체돼있던 울산 조선소에도 일거리를 주고 공사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내놓은 극악 처방이었다. 그리고 19번에 걸쳐 이 거대위크지와 뉴욕타임즈에도 소개되었을 정도였다. ‘유조선 공법’에 힘입어 공사기간은 45개월 예정에서 무려 36개월을 단축시킬 수 있었으며, 경비도 2백 80억원이나 절감할 수 있었다. 간척 사업에는 연인원 2백 35만 명이 동원되었고, 토석은 덤프트럭 51만 4천 3백 대분에 달하는 3백 60만 톤 이상이 투입되었다. 길이 7천 7백 4m(A지구 6,476m, B지구 1,228m)나 되는 방조제에 최대 높이 28m의 석축을 쌓은 공사에는 토석만 8백50만㎥가 소요되었다. 방조제 완성으로 농경지는 물론 4천9백22ha에 달하는 2개의 인공담수호와 3천 3백여만평의 개펄까지 얻게 된 것이다. 또한 놀랄만한 것은 방조제 사업은 안전사고가 수시로 발생하는 공사였음에도 B지구 간척 사업 현장에는 단 1건의 재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울산 조선소 건설그의 일생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바로 울산조선소를 착공할 때이다. 그는 배가 무슨 재료로 만드는지도 모르고 국내 최대 규모의 조선소를 세울 계획을 세웠으며 그 규모는 14만평짜리 공장, 노동자 5천명이 살 수 있는 기숙사를 포함해 60만평의 조선소를 짓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획은 했지만 막상 짓자니 돈이 없었다. 국내에는 그만한 돈을 빌려줄 곳이 없어서 외국 자금을 빌리기로 한 그는 차관도입문제를 앉고 애플도어의 회장을 만나 교섭을 했으나 거절당하였다. 그때, 바지 주머니에 있던 5백원짜리 지폐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펴 보이며 말했다. "이 돈을 보시오. 이것이 거북선이요. 영국은 1800년대에 만들었으나, 우리는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던 실적과 두뇌가 있소" 이때 애플도어의 회장은 빙그레 웃으며 차관도입을 도와 주었다. 그러나, 한 개의 바늘구멍이 더 남았다. 이는 영국 은행이 차관을 받을 때 영국수출보증기구 총재의 보증을 받아야 했다. 그것을 받으려면 배를 사줄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총재는 누가 유수한 조선소를 젖혀놓고 배라고 만들어 본 적이 없는 현대에 주문하겠냐는 것이었다. 그가 갖고 있 ‘기업인은 주판알을 엎고 일할 때도 있다’라는 신용 최우선주의의가 그의 중요 경영원칙의 하나였다.3) 아이디어와 발상의 전환정주영은 우리나라의 여러 기업가 중에서도 전형적인 창업기업가다. 조선소를 세우기도 전에 건조할 배를 수주한 일이나 아산만 방조제 공사 때 폐유조선을 사용해 험한 바다물살을 가로막은 일, 세계 최단 기간 내에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일 그리고 한겨울 보리를 심어 잔디를 대신 했던 부산 UN묘지 공사 등은 그의 독창적인 개척자적 정신을 나타내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자동차 사업도 독자적으로 국산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결심했고 그로부터 6년 뒤 마침내 최초의 국산 고유 자동차 모델인 포니를 선보였다. 사람들의 비웃음을 일거에 날렸고 10년 후인 86년에는 한국 자동차업계의 숙원이었던 미국 시장에까지 진출했다.정회장이 부하직원을 야단칠 때 늘 하는 말은 "하기는 해봤어?" 라는 것이다. 과거 부두 노동자 시절 몸으로 익힌 정회장의 철학이 담긴 욕설이다. 부두 노동자 시절, 몸에 기어오르는 빈대를 피하기 위해 네 개의 물그릇에 상다리를 담궈 놓고 상위에서 잠을 자던 정회장은 며칠 되지 않아 다시 빈대에게 시달리게 된다. 살펴 본 즉 빈대들이 벽을 타고 올라가 천정 위에서 몸으로 뛰어 내린 것이었다. 그는 이를 통해서 빈대도 머리를 쓰면 되는데, 사람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그의 성공은 상식에 매달리지 않는 신선한 발상의 성공이었다. 아이디어가 없이 어떻게 새로운 사업을 벌일 수 있을까.4) 무섭게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강력한 리더쉽조직을 구성하고 조직의 목표를 실현시키는데 조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기업가의 능력이 리더쉽인데 정주영은 이 리더쉽의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소유자였다. 항상 남보다 먼저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는 시야를 갖고 있던 정주영은 주변 사람들이 매사업마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고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사업진출을 망설일 때 과감히 승부수를 던져 망설임 없는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