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재 요약의복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무언의 언어로써 상징적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착용자 자신의 자아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자아개념은 의복과 인간행동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것으로 생각된다.자아개념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느낌을 말한다. 개인의 자아개념은 다른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그의 지각에 근거를 두며 그의 행동방향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주며, 다른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반영하는 것이다. 의복과 자아와의 관계를 살펴보자.첫째, 의복은 신체적 자아개념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체의 확장으로서의 의복은 자기의 신체적 한계를 설정하는 제2의 피부역할을 하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의복을 쉽게, 자주 접할 수 없었던 과거에는 개인과 의복간의 관계는 더욱 밀접한 것이다. 오늘날 처럼 의복에서의 계속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복과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둘째, 의복은 타인으로부터의 수용을 조정하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의복은 성과 역할 정체의 확립 및 유지에 필수적인 것으로서 개인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반영한다.셋째, 의복으로 자기-고양의 강한 욕루를 가지고 있으며 의복이 자기미화의 도구로 사용된다. 의복은 자기고양의 중요한 원동력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사용될 때는 자기 수용감, 자존심 및 자아존중감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의복과 자신감의 관계, 의복만족도와 자아 개념의 관계, 의복의 과시성과 자아와의 관계 등은 의미있는 관련을 갖고 있다. 몸이 병약하거나, 건강하더라도 흉터, 점 등으로 자신이 없는 몸일 때, 옷이 가려줌으로서 자신감을 회복하게 할 수 있다. 신체적 열등감으로 인한 소극성을 의복을 통해 새로운 매력을 창조함으로써 자신감을 획복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신뢰, 존중은 사회 속에서 활기차게 활동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데, 의복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2] 의복과 자아개념모처럼 새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섰을 때, 좋아하는 친구나 평소 존경진 말들이었다 할지라도 그 말들이 하루 종일 나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 것이다.새 옷에 대한 찬사와 비판이 내 마음을 이처럼 밝게도 어둡게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의복을 ‘제 2 의 피부’ 라고 부르듯이 한 개인은 자신의 의복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옷에 대한 칭찬이나 비판을 자신에 대한 찬사나 비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어떤 의복이든지 입고 있기 때문에 착용하고 있는 의복을 자기 자신의 일부분인 듯이 느끼게 된다.의복과 자아개념과의 관계를 공부하기 위해 먼저 자아개념의 기본이론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 다음에 자기 스스로가 갖는 느낌이 어떻게 의복에 반영되고 또 반대로 착용한 의복이 자기 자신에 대한 지각과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1. 자아개념의 정의와 평가적 특징)자아개념(self-concept)이란 무엇인가? 자아(self)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다소의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William James는 자아를 ‘경험적인 자아(empirical self)’, 즉 ‘나의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지는 모든 것’ 이라고 정의 하였고, Hall과 Lindzey는 ‘개인이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 및 느낌의 집합체’ 라고 하였다. Secord와 Backman은 ‘각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일련의 인지와 감정’ 이라고 하였고, McDavid와 Harari는 ‘한 사람이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획득한 조직된 인지구조’ 라고 하였다. 또한 자아개념을 정원식은 ‘한 개인이 그가 처해있는 생활의 장에서 자기 자신 및 그의 주변환경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로, 최정훈은 ‘자기존재의 한 부분이며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자기만의 독특한 지각’ 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견해를 종합해보면 자아개념이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다.자아개념의 평가적 특징에는 일관성 유지, 이상적 자아, 자아존중감이 있다. 일관성 유지란아와 사회적 자아의 두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으나 이 Report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2. 의복과 자아개념과의 관계Sontag과 Schlater는 의복과 자아의 다면적인 관계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자아에 대한 의복의 근접성’ 이라는 연구를 통해 알아내었다. 즉 의복은 자아의 한 구성요소이고, 자아가 형성되고 확인되는 외모의 한 측면이며, 자신에 대한 정체감·기분·태도를 전달하는 의미 있는 상징이며, 자기 가치, 자존심의 표현으로서 지각되며, 자기 평가의 감정적인 한 요서로서 인정되며, 신체적 만족과 관련된다는 것이다.)이 부분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자아개념이 의복과 어떠한 관계를 지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하여, 의복과 자아의 발달, 자아의 평가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1) 의복과 자아발달의복은 어린이에게 있어서 자아의 발달과 자아개념의 형성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어린이는 처음에는 자기가 입은 옷과 자기의 신체를 구별하지 못하고 의복을 자기 신체의 한 부분으로 지각한다. 따라서 어린이는 자신의 의복에 대한 평가를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인다.1) 의복의 칭찬과 꾸중아이들은 자신의 의복 행동에 따른 타인의 반응에 큰 영향을 받는다. 자신이 옷매무새를 바로 잡는 행위를 했을 때,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면 이러한 옷에 대 한 행동이 강화되고 반복된다. 반면에 의복으로 인한 비난이나 꾸중을 들으면 자신을 부정 적으로 지각하게 된다. 이처럼 의복에 대한 칭찬이나 꾸중이 자신에 대한 칭찬이나 꾸중으 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2) 역할수행 연습과 성정체감 정립아이들은 성장 초기에 남자아이는 아버지를, 여자아이는 어머니를 동일시하며, 부모들의 외모·행동·감정을 모방함으로써 부모들의 눈을 통하여 자신을 보는 것을 배운다. 예를 들 어, 어린 소녀와 소년은 소꿉놀이를 통해 어머니와 아버지의 의복을 흉내 내거나 빌려 입 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을 함으로써 기대되는 역할수행을 연습하게 된다.한 차원으로 포함시켰다. 외모는 자아의 개념 을 명확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서 초기 발달의 모든 단계에서 보다 중요성을 갖으며, 자기 자신의 성, 연령에 관련된 사회적 역할을 타인에게 투사함으로써 정체감 형성에 기여 한다고 본 것이다. Stone은 이러한 의복과 자아의 관계를 3단계로 나누어, 단계별로 특징 적인 의복 또는 이와 관련된 사항을 제시하였다.첫 번째 단계인 전 유희단계에는 도처에 편재하는 어머니가 모든 것을 수여하는 때라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의복을 어린아이가 직접 선택하지 못하고, 특히 항상 곁에 있는 어머니 가 일방적으로 고른 것을 입으며, 어떤 색의 옷을 어린이가 입었는가에 따라 주변 사람들 은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이다.두 번째 단계는 놀이단계로서 이 단계의 특징은 역할놀이를 위해 어린이는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꾸며서 자신을 사실과는 다른 모습으로 표현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이러한 어린이들의 역할놀이는 두 종류의 형태를 가진다. 첫째는 ‘예상된 사회화’로 어린 이가 후에 자라서 실제로 맡게 될 역할놀이이며, 둘째는 ‘공상적 사회화’로 실제생활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역할놀이이다.세 번째 단계는 게임단계로서 또래집단 가입을 나타내는 유니폼 착용이 중요한 시기이다. 이때는 자신이 옷을 입는 시기이다. 앞의 놀이단계의 의복은 그 옷을 입은 어린이가 다른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므로 어떤 면에서는 왜곡된 자아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게임단계의 의복은 실제의 자아를 그대로 표현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시기에 어린이들은 또래집단 을 강하게 의식하며 친구들과 비슷한 옷만을 고집하게 되므로 이때를 ‘유니폼의 시기’ 라 고도 할 수 있다.(2) 의복과 자아의 평가의복을 입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자아를 평가할 수 있다. 의복을 입음으로써 ‘자기 자신이 어떻게 남들에게 비추어지는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느끼는가?’ 등을 볼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자아의 평가는 일관성 유지의 측면, 이상적 자아의 측면, 자아존중감의 측면에서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다입는다고 평가되어 왔다. 그래서 자신이 굉장한 멋쟁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새로운 대학 친구들은 그녀를 옷에 대한 취 향이 좋은 멋진 여대생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그녀는 흔들리려는 ‘나는 멋진 여대생이다.’ 라는 자아개념을 어떻게 일관성 있게 유지할 수 있을 까? 그 해결방법) 으로 아래의 5가지방법 중 하나를 이 여대생이 선택할 수 있다고 다음 과 같이 적용시켰다. 즉 ① 실제로 대학 친구들이 그녀를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낙관적 으로 자신을 지각한다. ② 자신이 멋있게 옷을 입는다고 평가해 주는 사람들만 선택적으로 사귄다. ③자신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대학 친구들 모두의 의견을 무시해 버린다. ④옷을 멋지게 입는다는 것 자체를 중요시하지 않고 그 대신 스포츠나 학업 성취에서 우월성을 나 타낸다. ⑤ 자신의 의복에 더욱 신경을 써서 세련되게 옷을 입음으로써 대학 친구들로부터 멋지게 옷을 입는다는 평가를 받도록 노력한다. 이 중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자아 개념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2) 자아상과 이상적 자아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의복 중에는 그 옷을 입었을 때 아주 편안하고 즐거움을 주기 때문 에 기회 있을 때마다 자주 입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계속 옷장 속에만 걸어두고 전혀 입지 않는 의복들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자주 입는 의복과 전혀 입지 않는 의복이 있는 것은 의복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반영하기 때 문이다.의복은 착용자의 내면적인 자기를 어떻게 지각하는가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자아상은 반드시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의 나 자신의 이미지가 아닐 수도 있다. 아래에서는 자아상과 의복과의 관계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우스운 장면으로 보여주고 있다.어떤 뚱뚱하게 살찐 여자가 지나치게 꼭 끼는 원색 바지를 입고, 몸에 꼭 붙는 얇은 소매 없는 티셔츠를 입고 지나가는 모습을 생각해보자. 그녀의 몸매는 살이 곧 튀어나올 것 같 은데도
가정이란 한 집안에서 함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친족 중심의 조직체를 말한다. 가정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첫째, 친족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구성원이 있어야 한다. 둘째, 함께 숙식하는 공동장소가 있어야 한다. 셋째, 같은 울안에서 함께 일상생활을 영위해야 한다.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확대가족이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가족의 형태는 나날이 변화하고 있다. 직계가족이 감소하고 지속적으로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1인 가족이 증가하고 있다.이렇게 다변화되고 있지만 우리의 가족 관념에 의하여 결혼과 함께 분가해 나간 자식들도 부모와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며, 때로는 경제적으로 부모의 생계를 지원하기도 하고 부모가 생존하는 한 부모가 살고 있는 집은 분가해 나간 자식들을 하나의 사회적인 집단으로 통합시키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시대가 달라져서 옛날과 같은 가정을 유지할 수는 없어도 아직까진 가족들이 정서적으로나마 하나의 가정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가정의 기능으로는 첫째, 기본적인 삶의 터전이다. 둘째, 생산 활동의 중심지이다. 셋째, 가정은 동고동락하는 안식처이다. 넷째, 가정은 종교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다섯째, 교육적 기능을 하고 있다.가정의 문제에는 이혼문제, 노인문제, 아동학대문제 등이 있다.이혼문제는 결혼의 기능적 이익들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혼으로 인한 육아문제, 청소년 문제, 노인 문제 등 복잡한 문제들이 있다.물론 결혼으로 이룬 가정에서 더 이상 행복을 추구할 수 없을 때 이혼은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결혼 전에 미리 이혼에 대해 심사숙고해서 참아낼 수 없는 상대를 피한다면 이혼의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노인문제에는 개인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인이나 가족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경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므로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원인에 따라 노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개인적 차있는 아동에 대한 폭력이다. 학대에는 신체적 학대와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방임으로 나눌 수 있다. 아동 학대는 특수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고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기 때문에 아동 학대를 예방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법 못지않게 사회적 관심이 중요하다.가족이 소중한 것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은 가족에 대해 모든 것을 거는 시대는 지났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을 지키려는 의지가 약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족을 흩어놓고도 당당하게 개인적 삶을 앞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외면하면서 추구하는 행복이 바람직할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오늘날 가족윤리가 과거의 가족윤리로 되돌아가야 할 이유는 없지만 오늘날 가속화되고 있는 가족해체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가족윤리의 미덕을 되살리는 것이 하나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가족의 구조, 구성원의 수와 생활양식 등은 사회 , 문화, 경제적 변동에 따라 변해간다. 따라서 가족 간의 윤리도 시대에 따라 공간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 과거의 윤리만을 고집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친족들을 잊어가고 있는 측면이 강하고, 부모 자식관계조차 소운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시 전통적인 가족관계에 대한 재고와 덕목 찾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제 5장 가정과 윤리에서 나는 가정 문제에 대해 조사하였다.책의 목록에서 가정 문제의 하위구조는 이혼문제, 노인문제, 아동 학대문제로 나누어져 있는데 가장먼저 이혼문제에 대해서 조사를 해 보았다.우리 교재에서는 결온 전부터 신중을 기한다면 꼭 맞는 상대를 찾지는 못한다하더라도 맞추어갈 수 있는 상대를 찾는다면 이혼으로 끝을 내지 않아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이라고 되어 있어서 결혼준비교육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조사를 해 보았다.결혼준비과정의 필요성은 부부의 관계기술이 결혼생활 유지에 필수적이지만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이 이러한 기술을 습득할 기회는 매우 제한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부부들의 이혼율과 가족폭력은 증가하고 부부들이 건설적인 갈등해결방법을 결혼과정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기를 기대하기에는 그 대가가 너무 크다. 왜냐하면 최근의 가족문제의 증가 및 이로 인한 부부 및 자녀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특히 이혼의 부정정인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매우 급격히 변화하기 때문에 결혼과 가족에 대한 과거의 가치관과 행동으로는 현재의 생활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다. 게다가 정보화시대의 개인주의 사회에서 정서적인 안정을 제공하는 장소로서 또는 가족생활의 가치관을 교육하는 곳으로서의 가족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으나 가족의 안정성은 위협을 받고 있다. 따라서 결혼준비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건강한 결혼이란 일상생활의 상호작용에서 정서적 안전성, 유해한 공포로부터의 자유, 미래에 대한 안전함이 있는 관계로 이런 요소들이 관계를 가치 있게 한다고 한다.? 상호작용에 있어서의 정서적 안전성건강한 결혼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정서적인 지지적 관계에서 개방적으로 이야기한다. 또한 갈등의 고조, 비판, 철회, 비난 등의 부정적인 상호작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관계이다. 따라서 행복한 부부와 불행한 부부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구분점이 상호관계에서의 부정적 측면이라는 많은 연구들이 있다. 부정적 상호작용이 많은 관계는 만성적 긴장과 별거, 이혼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성인들의 부정적 상호작용은 아동의 건강문제, 학교 성취의 하락, 다양한 행동문제 등을 유발케 하는 위험한 환경에 빠지게 한다. 따라서 지속적이고 만성적인 부정적 상호작용은 갈등을 우발하고 아동과 성인 모두를 위험에 빠지게 하므로 정서적 안전성은 건강한 결혼의 중요한 요소이다.? 유해한 공포로부터의 자유(개인적 안전성)관계에서 신체적 혹은 정서적 유해나 위험에 대한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가정폭력은 여성과 아동을 특히 위험에 빠지게 하며, 정신건강, 신체건강 문제와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 따라서 개인적 안전성이 건강한 결혼의 요소이다.? 미래에 대한된다. 왜냐하면 부부들이 미래에 대한 헌신과 부부로서의 정체성이 없다면 관계가 지속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관계에 대한 헌신은 부부가 서로에게 주고, 건강한 형태의 희생이 있는 관계이다. 건강한 관계와 결혼에서는 높은 관계만족도와 낮은 부정적 상호작용과 이혼의 잠재성이 낮다. 관계에 대한 헌신, 긍정적 의사소통, 종교적 복지감, 감사와 애정표현, 시간 함께 보내기,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능력 등도 건강한 가족의 특징이며, 이러한 기술이 결혼준비교육이 추구하는 목표이다.이러한 교육을 통해 결혼예비 부부들이 그들의 장점과 성장 영역들을 평가하고, 잠재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내용들을 검토하게 함으로써 결혼을 늦추거나 혹은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다음으로 노인문제에 특히 사회적 측면에 대해 고찰, 조사해 보았다.산업화 사회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노인 역할의 감소, 그리고 이에 따른 지위의 저락과 고독, 여가, 노인세대의 증가와 빈곤 등은 중요한 사회문제이다.)그래서 노인역할의 사회적 재통합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사회 체제적 투입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노인역할의 사회적 측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인 3가지 방안이 제도적으로 투입되어야 한다.첫째,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기능주의적 윤리관을 제도적으로 변화시키는 정책지원의 제도화이다. 즉, 경제적 생산성이 높은 연령층의 사람만이 자존할 수 있거나, 가치 있다는 생각과 기대를 수정하는 인력활용 방안과 지원이 투입되어야 한다. 인본주의적 윤리관이 이 사회에서 보편화되도록 만드는 제도적 지원이 밑받침되어야 한다.둘째, 노인용 복지시설을 강화시키는 제도적 장치와 관련되어 있다. 즉, 사회적 환경 · 사회적 활동 참여에의 기회, 조건의 균등화와 시설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일이 정책적으로 입안 · 실행되어야 한다.셋째, 노인의 자결 주의적 참여의 제도적 보장정책과 관련되어 있다. 즉, 노인집단 스스로 노인관련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 방만 마련 과정에 참여케 해주어야 한다. 노인 스스로 생물학적인들은 미래의 사회에 성공적으로 재통합되며, 그들의 인력이 새롭게 활용될 수 있다. 이때 비로소 노인은 노인 스스로 자아발전뿐만 아니라 사회적 발전에 공헌하게 될 것이다.)다음으로는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고찰, 조사해 보았다.아동학대의 문제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하는 이류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고자 하였다.첫째, 부모로부터 학대당하는 아동의 수가 상상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숨겨져 있어서 그 정확한 빈도는 어느 나라에서도 알 수가 없다. 아동 학대가 어느 한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긴 하나 그 수가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면 그것은 한 사회의 문제로 제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둘째, 학대 결과가 치명적이다.학대당하는 아이는 제대로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두통, 복통, 소화 장애, 소화성 궤양, 천식, 류마티스성 관절염, 말더듬이, 야뇨증 같은 정신신체 증상을 나타내는 아이들, 우울증, 자살행동, 공포증상, 불면증, 정신집중장애, 정신병 같은 정신증상을 나타내는 아이들, 학습지진, 등교거부, 공격행동, 도둑질, 성적문란 같은 행동장애를 나타낸다.셋째, 아동 학대는 온갖 폭력의 온상이 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하나의 사회문제로 부각된다. 아동 학대는 대부분 가정폭력의 일환으로 일어난다. 아내 구타의 67%가 아동 구타와 더불어 일어나고 있고, 설사 아동 학대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내 구타를 통해 폭력의 두려움과 폭력을 학습하게 된다.넷째, 아동 학대를 해결하고자 할 때 그것을 가정 안의 문제 혹은 개인문제로만 다루어서는 해결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학대가 발생하면 가족이나 그 밖의 발견자가 경찰에 신고해야하고 이 사실을 발견한 의사나 변호사 그리고 상담원은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어야 하고 법원은 학대 자를 법에 의해 치료받거나 감옥에 가도록 명령해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폭력의 희생자들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치료도 제대로 받도록 지역사회가 주선해 주고 보장해 주어야 한다. 병원, 상담소, 학교, 경찰, 법조계 등이 이 문제의 본질과 심)
전통적 가족은 가족성원들에 대해 재생산과 사회화기능, 경제기능과 유대기능 등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근대화과정을 거치면서 가족생활주기, 부부관계 및 부모자녀관계 그리고 가족가치관이 변화되면서 가족규모는 축소되고, 생활양식도 산업적응적 모델로 바뀌어 오늘날에는 가족이 독자적으로 담당했던 전통적 기능들이 사회로 많이 이전되었다. 그런 결과 한편으로는 가족의 부담이 감소되는 측면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만큼 가족성원간의 연대감과 결합력이 약화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가족의 변화요인으로는 여성들의 교육기회 확산과 취업모의 증가, 피임약과 피임기술의 보급증대, 산아제한정책의 성과, 그리고 성에 대한 사회적 태도의 변화를 대표적으로 언급할 수 있다. 여성들의 취업 확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취학전의 어린 자녀를 둔 주부들의 취업률 증가는 기존의 전통적 가족 내의 분업구조가 흔들리게 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로 인한 변화양상들은 후기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더욱 심화되어, 내적으로는 성역할이나 가족관계, 가족가치관의 변화를 보이게 되었고, 외형적으로는 전통적 확대가족의 감소, 부부와 자녀중심의 핵가족에서 파생된 한부모가족, 동거가족, 독신가구 등의 다양한 가족의 확산으로 나타났다. 이제 혼인과 가족이라는 삶의 영역을 독점해왔던 ‘정상가족('The Family')’이라 불리는 전통적 핵가족유형은 이제 그 지배력을 잃고, 전근대적 사회에서는 금기시되어 왔던 결혼과 가족형태들이 차츰 사회적으로 묵인 또는 공인되고 있다. 그래서 이혼이라든가 재혼 또는 동거, 독신생활 그리고 한부모, 비동거 가족유형등 가족생활적 변수들에 대한 관용의 폭이 확대되어 정상가족이라는 가족적 이상형 이외에도 ‘다양한 가족들 (’Families')'이 병립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아서 근대가족의 특성이라 여겨지는 가족의 다양성이 근대이후에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정상가족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가족유형들(Shorter, 1977)가한 뒤 노부부만 남게 되는 빈둥지기간이 길어지는 추세이다(전체가구중 1세대가구의 비율: 13.0%). 이는 결혼은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자녀가 없이 살거나, 자녀들이 성장하여 분가한 뒤 노부부끼리만 사는 가족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결혼의 전단계로서 오늘날 사실혼, 즉 동거가 늘고 있고, 혼인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이혼율의 증가)로 인한 한부모와 재혼가족의 증가도 괄목할만한 변화이다.가족변화로 인한 파생현상중 현재 사회적으로 가장 이슈화되고 있는 것은 저출산과 고령화문제이다.2000년을 기점으로 한국은 최저출산국의 대열에 합류하면서 전체 인구가 줄어들 가능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또한 노년부양비는 중가(2005년: 12.6%. 통계청, 2005)되나 가족의 규모는 전반적으로 축소되고 개인중심적 가치관이 부상함에 따라 가족구성원간의 결속력이 약해져 노인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미래에는 저출산과 인구의 고령화가 더욱 심화될 전망이므로 노인부양문제와 노인을 위한 복지시설의 확충, 그리고 가족을 위한 사회보장체계의 새로운 정비와 복지서비스의 확대는 앞으로 국가와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은 더 이상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로 규정되어서는 안되며 이제는 가족의 불안정성을 국가사회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그렇다면 현대사회의 가족 구성원의 역할와 위치를 알아보고 대리모제도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상적 가족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우선 아버지의 역할을 설명해 주는 이론으로는 대표적으로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정신분석 이론과 사회학습 이론, 그리고 Parsons의 이론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아버지의 역할은 아버지 단독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가족 내에서의 역할로 봐야 한다.Freud의 정신분석이론은 3-5세 소년의 외디푸스 갈등과 관련하여 아버지의 역할을 설명하였는데, 소년들의 경우는 아버선경지명이다. 현명한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는 밝고 깨끗한 눈을 갖고 있다. 그는 사태를 바로 보고, 사물의 이면을 볼 줄 알고, 먼 앞날을 내다 볼 수 있고, 또한 물욕, 지위욕, 명예욕 등에 의해서 흐려지지 않는 눈을 가지고 있다.위인의 어머니들은 맹목적인 사랑, 본능적인 사랑, 이기적인 사랑, 혹은 과보호나 익애하는 그러한 사랑에 사로잡히지 않고, 지성과 덕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루었으며, 이러한 것을을 올바르게 활용할 줄 알았다. 섬세하고 재치있고 예민하면서 지성과 덕성을 갖춘 여인들은 권세욕과 명예욕에 양심과 판단력이 마비된 남편이나 자식들을 올바르게 충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충고를 받아들인 남자들이 화를 면한 경우가 있다.권세를 탐하고 어진 선비들을 모해하는 영의정 집에서 발을 끊으라는 사임당의 충고를 들었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은 화를 면했던 것이다. 우수한 아들을 상감에게 보이기 위해서 미리 경치좋은 곳에 아름다운 집을 지은 양사언의 어머니, 장차 아들이 큰 인물이 되고 집안이 번창하게 될 줄 알고 가난한 형편에서도 큰 집을 미리 지은 서약봉의 어머니, 아들이 지존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연금의 반을 저금해 둔 나폴레옹의 어머니, 아들에게 날마다 몇 해나 계속해서 편지를 쓰게 한 로망롤랑의 어머니, 밤마다 어린 아들에게 이야기를 읽어주고, 또 그 이야기의 결론을 창작하게 한 괴테의 어머니, 형은 바로 그 아래 동생에게, 동생은 또 그 아래의 동생에게 가르치는 방법을 사용해서 19명의 자녀들을 모두 가정에서 훌륭하게 교육시킨 웨슬래의 어머니는 지혜 있는 어머니들의 훌륭한 사례들이다.위인의 어머니들은 금전이나 일시적인 영달보다는 지성과 덕성과 신앙심 같은 높은 차원의 가치에 목표를 두고 전력을 다 기울려서 한결같이 풍부한 사랑과 지혜와 용기로써 자녀들을 올바르게 잘 육성했다는 점이 현명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들은 어린 시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 시기의 요구를 이해하고 그 과업을 완수한 일이 무엇보다도 지혜로운 일이다.위인의 어 아버지(생물학적 아버지와 불임의 남편)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에 하나를 더하여 3명의 어머니(생물학적 어머니, 불임의 부인 그리고 아이를 임신한 여성)를 가지게 되기도 한다. 얼마전에는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였다.비배우자간 인공수정보다 대리모 제도가 더욱 심각성을 가지는 이유는 AID가 단지 정자나 난자만을 기증하고 나머지 아이가 태어나는 모든 직접적인 절차에는 제3자의 개입이(시행자인 의사를 제외한) 없으나 대리모출산에 있어서는 다른 제3자 여성을 통해서 태어난 아이를 대리모의 '친권종료'라는 입양의 절차를 거쳐 얻게 되며 대리모와 태아와의 유대관계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계약이 예상치 않게 파기되는 수도 있다. 실제로 Baby M사건에서 처럼 대리모는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럴 경우 아이를 포함한 거기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게 된다.그리고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시 여겨져야 하는 것은 대리모를 지원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돈을 빌고자 자신의 몸을 사용하며 돈으로서 아이를 판매한다는 것이다. 대리모 출산이 이용되는 이유는 불임부부가 자기의 자식을 가지거나 기르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 일반 입양이 수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입양이 입양아의 부모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과는 달리 자신들이 원하는 대리모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이 점에 대해서는 정자은행을 통한 AID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선호된다.) 9개월이라는 단기간에 아이를 얻을 수 있고 특히 남편의 유전적 형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있는 방법이다. 또한 대리모 측에서 보면 출산의 대가로 지급되는 일시불의 거금을 얻고자 하는 경제적인 이유가 주된 동기가 된다. 간혹 불임부부의 친척이나 친구들 중에서 불임부부를 위하여 사랑의 마음으로 대가없이 대리모 역할을 자원하는 수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경우 아이와 대리 출산을 하는 여성은 판매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될 수 있으며 잘못하면 비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거나 지선 근대를 넘어 탈근대적 가치까지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 공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인 변화경향은 근대적 가치의 확산으로 볼 수 있으며, 형태와 행동과의 일치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사실 사회변화의 속도가 빠른 경우 상반되는 힘이 동시에 작용하여 서로 상반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문화적 이미지는 변화하나 실제 행동은 변화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행동은 변화하나 문화는 변화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가족 변동은 그 동안 압축 성장의 과정에서 때로는 전통 지향으로, 때로는 근대 지향으로 변화를 강요받아 왔다. 그 결과 형태는 변화하나 행동과 가치는 지속되는 경우도 있고, 가치의 변화에 비해 가족행동은 이에 뒤따르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한국 가족의 구조변동 시점은 장기지속의 관점에서 볼 때, 이른바 ‘전통’ 가족이 구조화되는 조선중기 이후와 ‘근대’ 가족이 구조화되는 1960년대 이후를 들 수 있다. 조선중기 이후의 구조화 요인이 유교이념의 전사회적 용해과정이라면, 1960년대 이후의 구조화 요인은 바로 산업화ㆍ근대화 과정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전통적 가족가치와 가부장적 권위주의 문화를 확산시키고 지속적으로 재생산시킨 한국적 산업화의 성격이다. 이에 따라 우리의 가족 변화는 산업화 초기의 전통 가족가치의 지속(위로부터의 강압적 구조화), 80년대 산업화의 패턴 변화에 따른 가족 구조의 다원화ㆍ다양화 경향(아래로부터의 자발적 구조화), 90년대 정보화와 지구화에 따른 새로운 가족 ‘만들기’의 확산으로 각각 시기를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첫 번째는 산업화 초기 시기이다. 주지하듯이 우리의 산업화 추진 전략의 핵심은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 개의 축과 결합시켜 ‘물질/현대/서양/남성/핵가족’, 그리고 ‘정신/전통/동양/여성/전통가족’이라는 분리된 가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산업화를 통해 물질적으로 부강해지는 사회는 지향하지만,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나 개인주의에 기반한 문화나 정신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것이다.
Ⅰ.서론한 인간이 늘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듯, 한 국가는 늘 전쟁과 평화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인간이 죽음에 대해 고민할 때 비로소 삶의 소중함을 알 수 있듯이, 전쟁에 대해 고민하는 국가만이 평화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인류는 엄청난 전쟁을 거쳐 이렇게 성장해왔다. 그 많은 전쟁 중에서 엄청난 피해를 가지고 왔으며 아직도 그 흔적이 사라지지 않은 전쟁이 세계대전이다. 제1,2차 세계대전의 전체적인 것을 살펴보고 서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Ⅱ.본론1.제 1차 세계대전(1)1차대전의 시기와 장소1914년에서 1918년 까지 벌어진 전쟁으로 그전과는 달리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었으며 시작에 대해서는 각국마다 그 견해가 다르다. 1914년 6월29일 사라예보 사건을 그 시작으로 보는 견해와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그 시작으로 보는 견해, 그리고 8월1일 독일이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시점을 대전발발시기라 보는 견해가 있다. 영국에선 영국이 참전을 선언한 8월4일의 다음날인 8월5일을 진정한 세계대전의 시작이라 하기도 한다. 전쟁이 끝난 시기는 1918년 11월11일 전 전선에 걸쳐 휴전을 선언한 시점으로 보는데 무리가 없을듯하다.1차 대전의 주요전선은 4군데로 보고 있다. 우선 당시 독일이었던 알자스-스위스국경에서 벨기에의 해안까지 뻗은 서부전선, 동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루마니아를 포괄하는 동부전선,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지대와 전쟁초반의 세르비아전선과 후반 그리스 살로니카지역의 남부전선,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타인 그리고 갈리폴리반도를 포함하는 중동전선이다.그 외에도 동아프리카 전선 카메론 전선이 규모는 작지만 형성되어 있었고 중국과 태평양지역의 독일령과 조차지대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다. 심지어는 전쟁말기 연합국과 러시아 볼셰비키와의 전투도 극동지역에서 벌어졌다.(2)1차 대전의 배경식민지 쟁탈전으로 여러 번의 국제분쟁의 위기(모로코사건대전 초기 전쟁에 참여한 모든 군인들은 크리스마스 전까지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 했었다. 독일군은 프랑스, 러시아와의 전쟁에 대비해 슐리펜계획 이라는 전쟁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단기전으로 전쟁을 끝내려 했지만 전쟁초반 마른전투에서의 패배이후 앤강 유역까지 철군한 후 견고하게 구축된 참호라인을 구축하였고 연합국측도 반대편에 참호라인을 구축하면서 연합군과 동맹국모두 지루한 참호전을 전개하게 되었다.이러한 고착상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많은 공세들이 벌어지는데 대부분 공격하는 측에서 더 많은 피해를 낸 후 실패하게 된다. 이러한 공세는 엄청난 사상자를 냈는데 대표적으로 독일군의 베르덩공세, 영국군의 솜므공세, 프랑스군의 니벨르 공세가 있었다.전쟁은 소모전으로 흐르게 되고 이 과정에서 많은 신무기들이 선보이게 되었다. 독가스, 탱크가 등장하고 비행기가 널리 쓰이게 되었고 또 이러한 소모전을 타개하기 위한 후티어 전술과 같은 다양한 전술과 전략들이 등장하기도 했다.한편 제해권을 장악한 연합군과는 달리 독일군은 물자부족에 시달리게 있었고 1917년 미국이 연합군 측에 가담함으로서 전세는 연합군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게 되는데 러시아가 혁명으로 전쟁에서 이탈했음에도 전황은 그다지 호전되지 못했다. 이는 처음부터 단기전을 예상하고 전쟁을 벌인 독일군과는 달리 연합군은 처음부터 장기전을 예상하고 있는데도 기인하고 있다.(5)1차 대전의 종결1918년 들어 독일은 미군의 대규모 병력이 유럽에 도착하기 전에 프랑스를 굴복시키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다. 하지만 이 공세는 약간의 진격을 하는 데는 성공 하였지만 곧 연합군의 새로운 병력들이 배치되었고 연합국의 반격이 시작되곤 했다. 반면에 독일은 많은 고참병들을 전투에서 잃었고 물자부족도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되고 이탈리아전선, 중동전선, 발칸전선 등에서는 연합국이 동맹국에 대해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1918년 중순이후엔 연합군은 미군의 전선 투 끝내기 위해 벌어진 전쟁"이라고 정의 내리기도 했다. 당시 언론과 역사학자들은 1차 대전을 최초이자 최후의 대규모 전쟁이라고 생각했기에 Great War라 부르게 되었다. 이 Great War라는 단어는 1차 대전을 의미하는 고유명사화 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2. 제 2차 세계대전(1)2차대전의 배경1929년에 비롯된 세계 경제 공황은 온 세계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그러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미국은 뉴딜 정책을 실시하였고, 영국과 프랑스는 관세율을 높이는 등의 방법으로 자기 나라의 경제적 이익을 꾀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자본주의 경제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했던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은 심각한 경제난에 빠지게 되었다.그럴 즈음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았고, 독일은 경제 위기와 사회 혼란을 틈타 히틀러가 정권을 잡아 독일 재무장을 선언하고 나섰다.한편, 일본은 대륙 침략 전쟁을 일으켜 만주 지방을 점령한 다음 중·일 전쟁을 일으켰다. 그와 같이 식민지를 가지지 못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대외 침략으로 경제적 위기를 벗어나려 꾀하였다.1937년 이탈리아와 일본, 독일은 삼국동맹을 성립하였으며, 그즈음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하고 영국과의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또한, 독일은 영국과 대립이었던 소련과도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그리하여 세계는 다시 두 세력의 대립양상을 띠게 된다.(2)2차대전의 전개과정독일·이탈리아·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전체주의 국가들로 구성된 추축국의 침략에 의해, 민주주의 국가군인 연합국과의 사이에 일어났던 전쟁. 그 도화선이 된 것은 독일의 단찌히 및 폴란드 회랑에 대한 요구였다.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폴란드의 단치히 항에 정박해 있던 독일 순양함이 별안간 항구의 요새를 공격했다. 그와 동시에 독일군 정예 부대가 폴란드 국경을 넘었고 독일군은 삽시간에 폴란드를 제압했다.그러자 9월 3일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하여 전쟁이 시작되었다. 독일은 곧 폴란드를 압도하여군은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입성했다. 히틀러는 전날 자결하였고, 독일은 5월 7일 항복, 이로써 유럽에서의 전쟁은 끝이 났다. 한편 일본은 연합국의 무조건 항복 권고를 거부하고 최후의 항전을 하다가 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국이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8월 8일 소련이 선전포고를 하여 만주로 진격하자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이로써 6년에 걸친 제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다.(3)2차대전의 결과①전쟁결과와 책임추궁제2차 세계대전은 문자 그대로 세계를 전장(戰場)으로 하고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끌어들인 전쟁이었다. 참가국은 연합국측이 49개국, 동맹국측이 8개국이며, 중립국은 스위스 등 6개국에 불과하였다. 동원병력 1억 1000만 명, 전사자 2,700만 명, 민간인 희생자 2,500만 명으로, 그 중에서 독 ·소 양국의 희생이 가장 많아 소련의 전사자 1,360만 명,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 2,000만 명, 전인구의 약 1/10, 독일의 전사자 500만 명,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 550만 명, 전인구의 약 1/10이라고 알려졌다. 일본의 전사자는 185만 명,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 250만 명, 전인구의 약 1/40이라고 한다. 이 개수(槪數)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과 비교할 때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동원병력수는 약 2배, 전사자는 약 5배, 민간인 희생자는 약 50배이다.요컨대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민간인의 희생자가 현저히 많다. 이것은 나치스의 인종론적 절멸(絶滅)정책에 유래한다. 민간인의 희생자 가운데 약 500만 명은 유대인인데 이것은 나치스 지배하의 유대인 총수의 약 70%라고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현대의 전쟁이 민간인을 제외하지 않은 제노사이드(genocide:대량살륙)전쟁으로 된 데에서 찾을 수 있겠다. 전비(戰費), 파괴된 재산을 오늘날의 물가에 맞추어 재평가한다면 너무나 방대하여서 아마도 계산할 수가 없을 정도일 것이다.제2차 세계대전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최초부터 전쟁 책임의 소재가 명료하47년 말의 런던 4국 외상회담은 결렬되었다. 1949년에는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수립되었고, 미·영·프는 1952년 5월 서독과 ‘평화확정조약’을 맺었으며 1954년 10월 파리협정에서 서독의 주권을 회복하고 사실상의 단독강화를 체결하였다. 이에 대하여 소련은 1953년 5월 동독에 자립권을 주었고, 1955년 9월 동독의 주권을 회복하였다. 이리하여 두 개의 독일은 고정화되었다.1945년 7월 26일의 대일 포츠담선언에 명시되었으나, 대일 강화문제에서도 미 ·소는 일치되지 않았으며, 또 일본 여론도 분열하였다. 그러나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대일 강화조약이 조인되었다. 소련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는 조인을 거부하였다. 중국은 초청되지 않고 인도 ·미얀마 ·유고슬라비아는 회의에 참가하지 않았다.(중화민국·인도·미얀마와는 별도로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4)2차대전의 영향‘제 2차 세계대전’이후 1945년, 국제 연합(UN)이 탄생하였다. 국제연합은 국제연맹과 달리 강한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패전국 일본·이탈리아는 물론, 전승국 영국 ·프랑스 뒤이어 식민지를 잃었다. 더욱이 영국에는 노동당내각이 성립되었고,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저항운동 가운데에서 공산당의 힘이 신장되었다. 미국만이 ‘민주주의 병기창’으로서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최대최강의 자본주의국으로서 세계를 지도하기에 이르렀다.이리하여, 자유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미국과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소련이 세계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되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갈라져 '냉전' 체제를 형성하였다. 그리하여 강대국을 중심으로 세계는 양대 진영으로 나뉘고, 양극체제가 형성되며 유럽을 포함한 세계 지도가 재편성된다.한편, 패전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독일은 동서로 갈라졌는데 그중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으로 알려진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뤄 서유럽 에서 가장 번영된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1990년 베를린 벽이 허물어지고 통일되었다. 소련은 1991년 소련을 구성하고 있던 공화국들이 .
Ⅰ.서론공자는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중니'이고 이름은 '구'이다. 공자의 ‘자’는 존칭이다. 우리나라는 옛 부터 교육 담당자들을 존경의 대상으로 삼았다. 전통적으로 교사는 모든 사람의 표상이기도 하였다. 그런 교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아내며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공자일 것이다. 이런 공자의 제자는 과연 몇 명이었을까? 3천명이라고도 하고, 72명 혹은 77명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논어집주에서는 문하, 문도로서 공자학당을 한번이라도 출입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보고 그 수가 매우 많았다는 상징적 의미로서 3천이니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이번 과제에서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의 제자들을 공자는 어떻게 평가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Ⅱ.본론♧끼니는 굶어도 학문을 좋아했던 ‘안연’?공자는 말했다. “안연은 나와 하루종일 마주앉아 공부할 때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난 저가 어리석은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물러가 행동하는 것을 보았더니 내가 가르친 것을 제대로 실천하였다. 안연은 절대로 어리석은 바보가 아니다.”-위정?공자가 안연에게 말했다. “기용하면 나아가 행동하고 버리면 은둔하는 것은 오직 너와 나만이 할 수 있을 뿐이다.”-술이?애공이 물었다. “당신의 제자가운데 누가 가장 학문하는 것을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안연이란 자는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거듭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는 단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없으니 아직 학문을 좋아하는 제자가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옹야?공자가 말했다. “안연은 그 마음이 3개월 동안 인을 떠나지 않았고, 나머지 제자들은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인에 이를 뿐이었다.”-옹야?공자가 말했다. “어질구나 안연이여! 밥 한 그릇과 물 한 바가지로 누추한 곳에서 사는 것을 다른 사람 같으면 그것을 근심하며 견디지 못할 터인데, 안연은 그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어질구나 안연이여!”-옹야?공자가 말 것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고 소인이 용맹한 것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도적이 된다.”-양화?공자가 말했다. “한마디 말로 송사를 결단할 수 있는 사람은 자로일 것이다. 자로는 승낙하는 것을 묵히지 않았다.”-안연?자로는 좋은 말을 듣고 아직 미처 실천하지 못했으면 혹시나 다른 말을 들을까 두려워하였다.-공야장?공자가 음란하기로 소문난 남자를 만나자 자로가 화를 내었다. 그러자 공자가 맹세하며 말했다. “내 맹세코 잘못된 짓을 하였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실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리실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리실 것이다.”-옹야♧스승보다 높게 평가된 ‘자공’?자공이 물었다. “가난하면서 아첨함이 없고, 부유하면서 교만함이 없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자이면서도 예의를 좋아하는 자만은 못하다.”-학이?공자가 말했다. “자공과 더불어 비로소 시를 논할 수 있게 되었구나. 지나간 것을 말해 주자 다가오는 것을 아는 구나.”-학이?숙손무숙이 조정에서 대부들에게 말했다. “자공이 공자보다 낫다.” 자복경백이 말을 자공에게 일러주자 자공이 말했다. “나의 담장은 겨우 어깨 정도만한 높이에 지나지 않다. 그래서 누구나 집안의 좋은 것들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런데 선생님의 담장은 여러 길이나 되어 도저히 볼 수 없다. 그래서 그 문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집안의 아름다운 모습과 수많은 사람들의 오가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문안으로 들어가 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러니 숙손무숙의 말이 또한 당연하지 않겠는가.”-자장?숙손무숙이 공자를 비난하며 헐뜯자 자공이 말했다. “그렇게 하지 말라. 공자는 비난할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의 똑똑함은 언덕과 같아서 넘을 수 있지만, 공자는 해와 달과 같아서 넘을 수 없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관계를 끊고자 하여도 어떻게 해와 달이 해가 되겠는가? 다만 자기의 분수를 알지 못함을 보일 뿐이다.”-자장으면 예가 반드시 무너지고, 3년 동안 음악을 익히지 않으면 음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묵은 곡식은 다 없어지고 새 곡식이 오르며, 불씨 만드는 나무도 바뀌어 지니, 1년이면 그런대로 족할 것 같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3년상을 치르지 않고서도)쌀밥을 먹고 비단 옷을 입는 것이 너는 편안하냐?” 재여가 대답했다. “예, 편안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네가 편안하면 너는 그렇게 해라. 군자가 상을 당하면 맛있는 것을 먹어도 그것을 알지 못하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처함에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인데, 네가 편안하면 너는 그렇게 하거라.” 재여가 나가자 공자가 말했다. “재여의 인하지 못함이여! 자식은 태어나서 3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게 된다. 3년 상은 온천하의 공통된 상례인데, 재여에게도 그 부모에게서 받은 3년의 사랑이 있었는가?”-양화?애공이 재여에게 토지신 제사에 쓰는 위폐의 나무종류에 대해 묻자 재여가 대답했다. “하후씨는 소나무를 심어 사주로 사용하였고, 은나라 사람들은 잣나무를 사용하였고,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를 사용하였으니, (밤나무를 사용한 이유는)백성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지 하려고 해서였습니다.”-팔일♧겁쟁이면서도 효자였던 ‘증삼’?“증삼은 아둔한 인간이다.”-선진?공자가 말했다.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고 있노라.” 증삼이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공자가 나가자 증삼에게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말입니까?” 증삼이 대답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과 서일 뿐이다.”-이인?증자가 말했다. “선비는 넓고 굳세지 않을 수 없다. 임무는 막중한테 갈 길은 멀구나.”-태백?증자가 말했다. “나는 하루에 세 가지로 나를 돌아본다.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는데 충성스럽지 않았는가? 친구와 사귀는데 성실하지 않았는가? 스승에게서 전수받은 것을 복습하지 않았는가?”-학이?증자가 말했다. “마지막을 삼가며 잘하고,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분을 잘 추모하면 백성의 덕은 후한 데로 돌아간다.”-학이♧닭 잡는데 나 실제로는 위배되며 그대로 머물면서 위심하지 않는 것이니,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며,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이다.”-안연?자유가 말했다. “나의 벗 자장은 어려운 일을 잘하나 인하지는 못하다.”-자장?증자가 말했다.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그러나 함께 인을 실천하기는 어렵다.”-자장?자장이 말했다. “선비가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며, 이득을 보면 의로운지 생각하고, 제사할 땐 공경을 생각하고, 상사엔 슬픔을 생각한다면, 괜찮다.”-자장?자장이 말했다. “덕을 잡음이 넓지 못하고, 도를 믿음이 독실하지 못하면, 어찌 있다고 말하며, 어찌 없다고 말하겠는가?”-자장♧대기만성형 자하?자하가 물었다. “(전해져 내려오는 시구 가운데)‘아름답게 웃는 얼굴에 보조개가 예쁘며, 아름다운 눈의 맑은 눈동자가 선명하구나! 흰 비단으로 광채를 내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먼저 흰 바탕이 있는 뒤에 색을 칠해 다듬는다는 뜻이다.” 자하가 말했다. “예가 뒤라는 말이군요.” 공자가 말했다. “나를 불러일으키는 자가 자하로다!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팔일?자하가 효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얼굴빛은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 부형에게 일이 있으면 제자가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밥이 있으면 부형을 잡숫게 하는 것을 일찍이 효라고 할 수 있겠는가?”-위정?자하가 말했다. “ 온갖 노동자들은 공장에 있으면서 그 일일 이루고, 군자는 배워서 그 도를 지극히 한다.”-자장?자하가 말했다. “큰 덕이 한계를 넘지 않으면, 작은 덕은 출입하여도 괜찮다.”-자장?자하가 말했다. “군자는 신임을 얻은 뒤에 그 백성을 부리니. 신임을 얻지 못하고 부리면 자신들을 괴롭힌다고 여긴다. 신임을 얻은 뒤에 간해야 하니, 신임을 얻기 못하고 간하면 자기를 비방한다고 여긴다.”-자장?자하가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속성으로 뭔가를 하려고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으나, 말재주를 어디에다 쓰겠는가?”-공야장♧말 많고 근심많던 ‘사마우’?사마우가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인이란, 그 말함을 참아서 하는 것이다.” 다시 물었다. “그 말하는 것을 참아서 하면 인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이것을 행하기 어려우니, 말함에 참아서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마우가 군자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걱정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사마우가 또 물었다. “걱정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으면 군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안으로 반성하여 조그마한 하자도 없으니, 어찌 근심하며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사마우가 걱정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나만이 홀로 없구나!” 자하가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하더라. 군자가 공경함에 잃는 게 없으며, 남에게 공손함에 예절이 있으면 사해 안의 모두가 형제인데, 군자가 어찌 형제 없음을 걱정하겠는가?”-안연♧공자집안의 가신 ‘원헌’?원헌이 가신으로 있을 때 녹봉으로 곡식 9백을 주었지만 원헌이 이를 받지 않았다. 공자가 말했다. “사양하지 말고, 너의 이웃집과 마을 및 향당에 주려므나!”-옹야?원헌이 부끄러움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 녹만 먹으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 녹만 먹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또 물었다. “이기기를 좋아하고,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며, 원망하고, 탐욕을 행하지 않으면 인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도)어렵다고는 할 수 있으나, 인인지는 내가 알지 못하겠다.”-헌문♧전과자이면서도 공자의 사위로 선택된 ‘공야장’?공자가 공야장을 평가하면서 “그를 사윗감으로 삼을 만하다. 비록 그가 푸승줄에 묶여 옥중에 있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다.”하고는 그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공야장♧능력있고 근실해서 조카사위로 삼은 ‘남궁괄’?남궁괄이 공자에게 물었다.”-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