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 론- 세계적 흐름과 신지역주의의 대두■ 본 론- EU와 MERCOSUR의 경제통합의 추진배경▲ EU1. 배경과 과정2. 특징▲ MERCOSUR(남미공동시장)1. 배경과 과정2. 특징3. 경제통합 이후의 현황과 한계▲ 아시아의 지역 블록화 전망1. 동아시아의 특수성 문제2. 동아시아 지역 블록화의 의미와 가능성3. 협력을 위한 실질적 방안 모색■ 결 론■ 서 론- 세계적 흐름과 신지역주의의 대두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지역통합의 시대”라고 정의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지역 통합은 전 지구적인 현상이 되었다.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지역화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탈냉전 이후 세계경제는 다자체제인 WTO를 중심으로 통합되어 가는 동시에, 새로운 지역무역체제가 생겨나고 기존의 무역협정도 보다 구체적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오늘날의 지역주의는 종래의 그것과는 매우 다른 성격을 가진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즉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기존의 지역주의와는 달리 세계화로 가는 중간 매개항으로 이해되고 있는 현재의 지역주의는 다자주의를 촉진하고 보완적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으며, 이러한 신지역주의적인 협력의 확대와 심화 현상은 21세기 동안 지속될 것이고. 전 세계를 미주지역, 유럽지역, 아시아지역으로 재편 할 것으로 보인다.이미 유럽대륙은 EU를 중심으로, 미주지역은 NAFTA와 MERCOSUR를 중심으로, 지역통합의 제도화 수준이 상당부분 이루어져 있는 상황인 것에 비해 아시아 지역의 경우는 20세기에 들어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해 왔으며, 이들 국가의 GNP를 합치면 미국과 유럽연합등과 대등한 규모를 가지게 되어 더 이상 세계경제의 주변부가 아닌 중심부로서의 역할을 실행하기에 가능할만한 충분한 가능성을 보유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지역 통합의 제도화 수준은 미비한 실정이다. 물론 97년 외환위기 이후 AMF설립이나, 1999년 12월 ASEAN+3 정상회담에서 동아시아 비전그룹 등회를 맞고 있는 MERCOSUR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EU는 지역 블록 형성의 5단계 중 가장 발전된 단계인 ‘완전 경제 통합 단계’를 지나 ‘정치 통합 단계’에 들어서고 있으며 MERCOSUR의 경우엔 이제 ‘관세동맹’의 단계에 이르는 수준이나, 경제 발전 단계 면에서 한국과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브라질 및 아르헨티나 등의 경험은 한편에선 EU나 NAFTA에 비해 더욱 유익한 지침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이에 다음 글에선 EU와 MERCOSUR의 지역블록 형성과정과 지역블록 형성시 제기됐던 문제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EU(유럽연합)1. 배 경유럽공동체 구축에 대한 시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하에서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한 대항과 파괴된 유럽을 정치·경제적으로 통합시켜야 겠다는 절실한 필요성에 의해 대두되었다. 이러한 통합의지는 1950년 5월 9일 프랑스 외무장관 슈망(R. Schman)이 경제전문가 쟝 모네(Jean Monnet)의 도움을 받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창설할 것을 제안함으로서 구체화 되었다. 창설 6개국(프랑스, 서독, 벨기에, 룩셈부르크, 이태리, 네덜란드)을 주축으로 꾸준히 확대 전략을 견지해 왔다. 최초의 확대는 1973년 영국, 덴마크, 아일랜드가 유럽연합(당시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함으로써 북으로의 확대가 이뤄졌고, 1981년 그리스, 그리고 5년뒤인 1986년에는 포르투갈 및 스페인이 가입함으로써 지중해 연안 남으로의 확대가 이어졌다. 이후 유럽단일협정(SEA, 1987)과 마스트리히트 조약(1992)을 거치면서 유럽경제공동체가 유럽연합으로 출범한 이래로 스칸디나비아 3국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나중에 국민투표 결과로 부결됨) 그리고 아울러 오스트리아가 1995년 유럽연합에 가입함으로써 유럽연합은 15개의 회원국이 단일시장을 공유하는 구성체로 변모하였다. 그 후 대략 10년 뒤인 2004년 5월 1일 유럽연합은 그 동안 준회원 협정 및 워 질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은 시계 최대 규모의 단일시장을 갖춘 공동체로서 미국과 일본에 상응하여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존중 및 소수민족 보호등의 보편적 가치를 전파하는 시민적 힘의 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이는 경제적으로 이미 거대한 블록을 형성한 유럽연합이 그만큼 정치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현재 EU 27개국 회원국 가운데 유로를 사용하는 나라는 절반 정도인 15개국(유로존)이다. 영국이나 덴마크 같은 경우는 예외 조항을 부여받고서야 유럽 공동체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것은 이러한 ‘예외조항’을 두고서라도 확대된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됨으로써 회원국간 고용창출 및 생활 수준의 향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확대 집행위원회 위원인 Rehn은 기존 회원 15개국과 새로운 회원국간의 경제통합으로 인하여 무역증진이 4배 이상 증가하였다고 역설하였다.또한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확대 과정’은 경제적 요인에 있어서 각국에게 이득을 주기도 하지만 비회원국의 불확실한 정치, 경제체계까지 폭넓게 수용하는 외교적 정치도구로 사용됨으로써 약소국과 강대국 간의 입장 차이를 극복하게 만들었다. 유럽연합은 회원(Membership)이라는 가장 효과적인 외교정책 도구를 후보국에게 제공함으로써 안전 보장을 통한 경제적 번영 및 증진을 제공한 것이다. 이것은 기존회원국들의 안전과 번영 또한 보장됨을 의미한다. 특히 발칸 지역의 유럽 국가들의 경우 유럽 연합을 통한 안정이 피난민이나 범죄활동을 통한 불안정보다는 자국이나 전체 회원국들에 훨씬 유리하다. 따라서 국가간 상존하는 차이는 역설적으로 지속적이고 점진적 확대 과정을 통해 차이를 좁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한편, 최근의 미국발 신용위기 후 유럽은 오히려 단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유럽의 통합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경제위기가 불거지고 유로화가 안전자산으로 떠오르면서 결과적으로 EU에 대한 기대감과 통합의 의지가 상승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2000년 국민투표에서 7%포인트 차려웠고, 석유와 밀과 같은 중요 품목에 관하여 절충이 필요한 단계에 이르러서 협상은 중단되기에 이르렀다.1967년 4월 우루과이의 Punta del Easte에서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정상들은 다시 모여 회담을 가지게 되었고, 이들 회원국들은 라틴아메리카 자유무역협정(ALALC)과 중미공동시장(Central American Common Market)을 두 개의 축으로 삼아 라틴아메리카 공동시장을 구성하기로 합의 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6개월도 못가서 각국들의 이견으로 말미암아 중단되었고, 경제통합의 노력은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었다.1978년 말에 이르러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멕시코,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1960년 몬테비데오협약의 11개 서명국들은 ALALC의 재구성을 추진하기로 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고, 이에 따라 20개월 후에 라틴아메리카연합(ALADI/LAIA)이 설립되었다. 이 무역체제는 회원국들 간의 쌍무적 무역협정을 기축으로 지역국가 간의 무역증진을 도모하는 방식을 취하였는데, ALADI의 규범 하에 체결된 가장 중요한 쌍무적 무역협정은 1986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간의 협정이었다. 그 결과 양국은 1988년에 “통합, 협력, 발전 협약(Tratado de Integracion, Coooperacion, Ydesarollo)”을 체결했다. 동 협약은 양국 경제통합의 기본원칙과 함께 식품교역부터 핵에너지 사용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품목과 거래에 간한 규정을 포함함으로써 양국간의 경제통합의 움직임은 가속화 되었다.이러한 과정에서 1990년 이들 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양국에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파라과이와 우루과이가 경제통합에 참여희망 의사를 표시하게 되었고 그 결과 1991년 3월에 MERCOSUR 설립추진을 위한 협약이 체결되기에 이른 것이다.2. 특 징-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주도적 역할남미의 경제 통합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는 특징은 각 국가들 간의 경제격차가 상당함에도 현재의 지역 경제 블록을 이루어 냈다는 점이다. 현재과의 협상력을 제고하여 협조체제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지역경제발전은 물론 이 지역의 새로운 역할과 위상을 국제사회에 제시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기 때문이다.MERCOSUR는 위와 같은 점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효과가 적지 않다. 우선 시정 규모의 확대를 들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총 인구가 3천 3백만 정도에 그치지만 공동시장을 형성함으로써 1억8천6백만에 이르는 소비자를 확보 할 수 있었다. 또한 자유로운 상품, 노동 및 자본의 국가 간 이전이 자유로워지고, 상품 특성 및 기술, 부품의 표준화로 효율 성을 제고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로서 기업의 생산 및 영업단위가 확대될 수 있었으며, 이에 따른 역외기업에 의한 직접투자 및 전략적 제휴 역시 증가하게 되었다.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역외 수입에 대한 공동관세에 대한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 국가간 노동비용과 농산물 가격의 차이에 관한 문제 등은 공동시장을 결성한 현재 그 한계는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동아시아 지역 블록화의 전망1. 동아시아의 특수성 문제97년 외환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 블록화에 대한 많은 논의가 진행되었음에도 지금까지 동아시아의 지역 블록화가 늦어진 것은 역내국 사이의 만연한 민족주의적 성격과 국가들 사이의 상당한 경제격차 등의 문제들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지역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리고 미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정치적 안보적 특수성과 북한을 둘러싼 역내 국가 간의 갈등(시각차)과 같이 철저하게 동아시아 차원의 특수성이라 생각되는 부분들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구체적으로 보자면 과거에 그랬고 현재도 여전한 패권국 미국에 대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심각한 대미 의존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지역화에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데 이는 이러한 지역화에 대해 달갑게 여기지 않는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로인해 발생 할 수 있는 무역 마찰 등, 미국과 관계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는 상황을 안
작가주의 영화에 대하여.‘작가주의 (Auteurisme)’ 라는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용어이긴 하지만 사실 꽤나 문제적 소지가 많은 단어이다. 작가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호함과 다소 집합적이 뉘앙스 혹은 느낌은 이 용어를 명확히 정의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그 태동인 1950년대 말 이후부터 현재까지도 그 추상성은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있기도 하다.하지만 페이지의 한계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작가주의의 논쟁적 측면보다는 작가주의 이론의 배경에 대해 알아보고 그 영화사적 의의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영화 사조로서의 작가주의는 훗날 누벨바그의 명감독으로 성장하게 되는 프랑수와 트뤼포가 1954년 프랑스의 영화전문지인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기고한 ?프랑스 영화의 한 경향?에서 그 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이 글에서 트뤼포는 전 세대 프랑스의 품질 영화 및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에 대해 비판하는데 그는 이 비판의 말미에서 영화전체의 제작과정을 지휘하고 책임질 수 있는 한 사람의 ‘작가’(auteur)가 필요하며 작가에 의한 작가영화만이 진정한 예술로서의 영화를 가능케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작가의 역할은 다름 아닌 감독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그 후 작가주의는 영화 이론가 앙드레 바쟁에 의해 작가의 정치학 이라는 용어로 다듬어지면서 하나의 영화 비평 용어로 자리 잡는다. 작가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당대의 젊은 비평가들은 형식적인 탐구없이 심각한 주제들만 반복하는 유럽영화보다 통속적이라고 일컬어지던 미국의 대중적인 장르 영화들을 지지했고, 프랑스의 알려지지 않은 감독들을 발굴해내 세상에 알리게 된다. 당시 B급 영화감독으로 치부되던 하워드 혹스, 알프레도 히치콕, 존 포드 같은 미국 감독들과 장 르느와르, 마르셀 파뇰, 장 비고 등의 프랑스 비주류 감독들을 작가주의 감독의 모델로 삼은 것이다.작가주의 이론은 프랑스 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어 가고, 특히 미국의 평론가 앤드류 새리스는 이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좀 더 구체화 시켜, 작가주의 이론이 당시에 하나의 확고한 영화 이론으로 자리 잡는데 기여한다. 그는 특히 작가로써 감독의 조건에 대해 보다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는데 작가란 반복해서 나타나는 독특한 스타일로 자기의 개성을 표현해야 하며 또한 자신이 선택한 소재 혹은 장르와의 사이에서 생기는 긴장을 통해 내적 의미를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러한 작가주의에 대한 담론은 수업시간에 배웠던 프랑스의 누벨바그와도 관련이 깊은데 이는 프랑수와 트뤼포가 작가영화의 필요성을 역설한 시대적 배경인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러니까 프랑스 영화계의 전반적인 위기상황에서 제기한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은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젊은 영화인은 그들은 자신이 기성세대와는 다르다는 차별성 자체에서 자신들의 영화적 정체성을 찾았고 마침 이러한 시점에서 매너리즘을 탈피하려는 작가주의 운동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상징적인 중심축이 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새로운 물결’은 단순히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사회학적 현상을 넘어서서 미학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는 ‘대안 제시적’ 성격이 내재되어 있기도 했다.이후 누벨바그 감독들이 표방하고, 작가주의자들이 그 기치로 삼았던 ‘독창성’은 중요한 영화 미학적 가치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영화를 만드는 주체인 감독의 예술성이 영화의 아름다움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임을 대중들은 본격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오늘날 영화를 감독의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지만 사실상 이러한 생각이 일반화 된 것은 작가주의 이후 본격화된 현상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은 영화감독, 이론가, 그리고 평론가들에게 ‘영화예술’이라는 주제에 본격적으로 매진할 수 있는 폭넓은 토양을 마련해 주었다.하지만 작가주의를 순수하게 영화사적인 의미로 국한시켜 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까지 프랑스에 존재했던 구체적인 영화 사조 및 비평의 한 경향으로 단순화 시켜 정의 내리는 것은 영화 이론사적 측면에서 볼 때 정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작가주의가 이후의 영화미학에 끼친 영향은 창작뿐만 아니라 이론 및 비평의 분야에 있어서도 지대하고 방대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주의의 정신은 오늘날 까지 영화예술을 지향하는 기본 이념으로서 계승, 발전되고 있으며 이러한 정신사적 의미를 살펴볼 때 작가주의라는 용어는 우리 시대에 있어서 영화 예술을 이해하는 기본 틀 중의 하나로 평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 분석 : 연극적 측면에 주목하여이 영화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실험적인 영화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관을 드러내며 일반적인 주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영상기법을 사용했는데, 지금까지 익숙하게 보아온 영화들과는 표현 방법이 너무도 달라서 명확하게 ‘영화’라고 단정 짓기에는 조금 당황스러운 측면이 있을 정도다.모든 촬영이 연극무대와 같은 하나의 세트에서 이루어 졌다는 점과 모든 스토리의 전개가 내레이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 연극과 같이 막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기존 영화와는 다르게 감독이 연극적인 요소와 특성을 영화에 끌어 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감독은 인터뷰에서 브레히트의 음악극 ‘서푼짜리 오페라’에 복수의 내용을 담은 ‘해적의 제니’라는 노래에서 영감을 받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따라서 필자는 기존영화에서처럼 플롯이나 스토리, 캐릭터에 의존한 분석 보다는 연극적인 측면에서 이 영화를 분석하고자 한다.1.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과 관련하여감독이 사용한 베르톨드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서사극 이론’은 일종의 변증법적 연극 이론으로서, 서사성을 가미함으로써 연극에 놓여 있는 상황에 관객이 빠져들지 않도록 감정이입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서사극은 감정이입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깨우는 연극을 말하며 그런 의미에서 ‘비 아리스토텔레스 연극 이론’이라고도 불린다. 극단적으로 동화되지 않는 표현법이 서사극적인 것이다. 서사극의 기법에는' 해설자의 개입' '노래의 삽입' 등이 있다. 그는 서사극 이론체계의 핵심적인 개념인 소외효과를 효과적으로 이룩하기 위하여 이런 것들을 사용한다.(※ 소외효과 : 관객이 마치 사건의 현장에 와서 우연히 그곳에서 일어나는 어떤 실제의 사건을 참관하게 되었다는 완벽한 환상을 목표로 하는 연극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진행되기 때문에 자기의 판단이나 상상력을 가지고 끼어들 수가 없다. 하지만 브레히트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을 사진과 같이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표면 뒤에 숨어있는 실재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항상 예술과 현실의 구분을 강조했고 현실의 인식과 그것의 실제적 변화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장했다. 무대상의 사건과 인물에 대해서 거리를 유지하면 제시된 사건 그리고 그것의 인위성까지 동시에 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소외효과'의 개념을 찾을 수 있다. 감정이입은 보는 이의 비판능력을 상실하게 됨으로 '소외효과'로 인해 관객은 눈에 보이는 것과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객관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된다.)한편 영화 ’도그빌‘에서 내레이터에 해당하는 '해설자'는 공연에 참여하지는 않고 연극 밖에서 연극적 사건을 연결해 주거나 또는 해설하는 서사적보고자로서 기능을 발휘하는데 '해설자'는 관객에 대해서 우월한 위치에 서서 사건 전반에 관한 개관을 하고 이에 대해서 침착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무대 위의 사건 진행은 관객에게 간접적으로 중개되어 무대 위의 사건진행에 직접적으로 말려들지 않는 관객은 이에 대해서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2. 세트의 효과에 관련하여이 영화에서 독특한 세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영화는 하나의 세트에서, 그것도 연극보다도 더 단순해 보이는, 선만 그어져 있고, 단순한 몇 개의 사물만이 놓여 있는 세트에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감독은 단지 분필로 구획을 지은 이 마을을 도그빌이라는 마을이라고 믿으라 하고 있으며, 배우는 가상의 벽과 문을 마임을 통해 표현해 내고 있다. 하지만 관객은 이처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허술하기 짝이 없는 상황 때문에 다른 사물들과 배경들로 인해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모든 시선을 카메라에 의해 비쳐지는 인물들의 표정, 대사, 행동에 주목하게 되고, 실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고 상상해야만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이는 관객을 앞서 이야기한 감정이입을 통한 무비판적인 수용이 아닌 능동적인 입장에서 영화를 감상하게하려는 감독의 의도에 의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미국의 경제위기목차Ⅰ. 서론Ⅱ. 본론1. 현재 미국의 경제위기 상황2. 미국의 경제위기가 다른 나라에 미친 영향(1) 러시아(2) 중국(3) 홍콩(4) 유럽3. 미국의 경제위기가 한국에 미친 영향4. 미국의 경제위기 원인5. 미국의 경제위기가 유난히 한국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1) 수출주도형 경제(2) 원유와 곡물의 높은 수입 의존율(3) 중산층의 몰락 및 내수시장의 축소Ⅲ. 결론 - 대안 제시Ⅰ. 서론세계 경제의 주도자였던 미국의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단순한 위기 이상으로 미국은 위상도 잃고 그 힘을 잃고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의 대표주자로서 투자은행과 금융회사의 강세를 보였지만 미국 3,4위의 은행이 처참히 무너지면서 그 아성은 깨지고 말았다. 이러한 미국의 경제 행보는 전세계로 하여금 큰 피해를 주었고 동시에 미국 그 자신의 위상에도 타격을 주었다. 만약 미국의 뒤를 이을 경제대국이 있었다면 그 주도가 바뀌었겠지만 아직 부동의 세계 최대 강국으로서의 위력은 잃지 않고 있다.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지면서 월가도 최악의 기간을 보내고 있는데 앞으로 또 어떤 희생양이 생길지 모르는데다 그러한 공포와 위기감이 증시를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우리가 한번 미국의 경제위기속에 세계경제위기와 우리나라의 경제위기를 연구해 보았다.Ⅱ. 본론1. 현재 미국의 경제위기 상황현재 미국의 경제위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경제의 발전과정, 특히 1990년대 이후 미국경제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구조적 모순에 대해 이해가 필요하다.1991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경제는 호황을 경험했다. 이 호황은 1990년 초반 경기침체 이후 이윤율이 회복되고 정보통신과 관련한 투자가 증가하고 노동생산성이 향상되면서 다시 이윤율이 상승함에 따라 시작되었다. 또한 미국의 노동자계급의 실질임금이 정체되면서 이윤율 상승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런데 이 호황은 1997년 이후 이윤율이 하락함에도 불구하고 2001년까지 지속되었다 석유가격과 원자재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거세지자 FRB는 이자율을 높였고 이로 인해 주택시장의 버블의 붕괴로 주택 가격이 급전직하했고 모기지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이자상환의 부담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빈민들에게 모기지를 대출해주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서 위기가 촉발되었다. 위기가 발발하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사람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대출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원금과 이자상환 부담을 견디지 못하게 되어 집에서 쫓겨나 길거리에 내앉게 되었다. 다른 한편 모기지 대출회사들은 주택을 차압해서 경매에 내놓아 손실을 만회하지 못하고 2007년 상반기 이후 줄줄이 파산하기 시작했다.또한 위기는 금융시장으로 번졌다. 모기지 회사들이 대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시장에 모기지론을 판매했고 이를 구매한 금융 기관들은 증권화된 상품을 바탕으로 '주택저당증권(Mortgage-Backed Securities: MBS)'이나 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채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CDO)'과 같은 구조화된 채권을 만들어 연기금, 보험회사, 뮤추얼 펀드, 투자은행, 헤지펀드와 같은 금융자본에 판매했다. 그런데 모기지 대출연체율이 높아지고 대출회사들이 손실을 보면서 파산하자 금융시장에서 모기지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금융상품들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이와 관련된 금융기관들도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서 발발한 위기가 부동산시장을 넘어 금융시장으로 전면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투자은행들의 붕괴였다. 모기지와 관련한 파생상품을 다루던 투자은행들은 위기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2008년 9월 14일 메릴린치가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500억 달러에 인수되었고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해서 상업은행의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황이다. 따라서 미국경제의 실물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동산시장이나 금융시장의 위기가 복합적으로 다시 미국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결론적으로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지금은 공포스토리의 1막인 미국 모기지시장의 붕괴와 2막인 금융 시장 전체의 혼란과 타격이 지나고 실물부문의 위기라는 3막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 3막에서는 1막과 2막에서처럼 혼란과 공포, 패닉과 심리적 발작이 주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생산, 투자, 고용, 소비 등 경제의 실물부문에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1막과 2막에서 발생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물위기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3막에서는 어떤 일이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아주 불확실한 상황이며 따라서 향후 미국발 세계경제의 위기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도 농후한 상황이다.2. 미국의 경제위기가 다른 나라에 미친 영향(1) 러시아러시아는 지난 9월 금융위기 이후 시장안정을 위해 860억 달러를 집행했다. 하지만 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은행간 대출금리가 3~4%에서 10%대를 상회하고, 유동성이 부족한 소규모 은행들의 파산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금융부문의 위기는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주어 건설, 유통업 등 일부 중소규모업체들의 도산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해 러시아 정부는 총 190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 지원안을 마련했지만,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의 하락과 외국인 투자가 이탈, 은행들의 연쇄 부도 가능성으로 인해서 러시아 경제 위기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2) 중국2008년 제3분기 공업경제운행발표회에서 공업과 정보화부 운행감독협조국 주굉임(朱宏任) 국장은 현재 및 향후 일정한 시기 내에 중국의 공업, 통신업 발전은 준엄한 환경에 직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국제금융 불안정이 중국경제에 대한 불리한 영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공업영역에 대한 영향이 더욱 뚜렷하다. 그는 공업영역에서 나타난 문제들을 4가지 불구하고 독재정권 유지에만 신경 쓰는 중국 공산당으로 인해 중국은 주식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그림1 상해종합지수그림2 위안/달러 환율(3) 홍콩‘홍콩 금융계의 빙하기는 이제부터다.’홍콩 의 대부분의 금융계 인사들은 각국의 공조로 대형 금융기관의 부도 가능성은 크게 줄었지 만 홍콩 내 금융업 규모는 최대 50% 가량 줄 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일반 예금이나 수출입 금융 등 ‘기본적인 업무’외에 그동안 투자은행이 해왔던 많은 업무가 시장 에서 사라지거나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 무라증권이 리먼브러더스 자회사를 합병하 듯 금융회사 수도 줄고 인력 또한 크게 줄 것 이기 때문이다.한 금융계 전문가는 “살아남은 금융회사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조직과 인원의 대폭적인 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홍콩 정부는 2010년 말까지 홍콩의 23개 은 행이 보유하고 있는 약 6조 홍콩달러의 예금 을 지급 보증한다고 발표했다. 2007년 이후 계좌별로 10만 홍콩달러까지만 보증하던 것을 무한대로 확대한 것이다. 존 창(曾俊華) 재정 사장은 “다른 국가들이 예금 보호를 강화 해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한다.홍콩의 최대 부촌으로 꼽히는 미들랜드 지역 에서는 주택은 물론 사무실 거래도 5년 내 최 저치로 떨어졌다. 대형 부동산 중개회사인 센 트럴라인에 따르면 3분기(7∼9월) 사무실 중 개 건수는 476건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40.7% 떨어졌으며, 분기별로는 2003년 4분기(10∼12 월) 이후 최저치다.불황으로 센트럴라인도 2600여 명의 직원 중 500명가량을 줄일 예정이다. 직원 수 3200여 명의 미드랜드홀딩스도 약 1000명을 줄일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홍콩 섬의 대표적 명품 쇼핑몰인 퍼시픽플레이스 직원들은 “최근 몇 개월 사이 고객과 판매액이 2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최소 일주일 전 예약해야 했던 시내 고급 음식점도 예약이 필요 없고 지난달 매출도 전년 대비 20∼30% 줄었다.업체 부도도 잇따랐다. 62년 역사를 가진 전자제품, 유럽도 경기 침체가 본격화 될 것이라는 전망 과 더불어 10월초 EU 정상 간의 금융 위기 대응방안에 대해 이견이 노출되면서 금융위기에 빠져 들고 있다. 금융권내 상호 신뢰 부재 및 미래 유동성 우려감으로 자금경색 심화되고 일부 금융기관은 유동성 위기로 인해 정부 구제금융 지원 및 국유화가 추진되고 있다.그림 달러/유로 환율또한 유럽 주요국의 주가지수가 급락하고 유로화 도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발트 3국 에서는 경제위기가 증폭되고 있으며 실물경기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EU 집행위는 9월초 EU 27국의‘08년 GDP 전망을 하향 조정한 바 있으 나 (당초 2% →1.4%) 금번 금융위기로 추가 조정 불가피 전망했으며, 자동차산업의 부진과 유럽제철소, 수주감소로 감산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3. 미국의 경제위기가 한국에 미친 영향우리나라의 금융시장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미국 발 금융위기의 전 세계 확산 등에 따른 유동성 경색으로 급변동을 경험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 및 시장금리는 크게 상승한 반면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증대되었고 금융회사와 기업의 외화유동성이 악화되고 대출금리 상승으로 금융비용이 높아지는 등 시장참여자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원/달러 환율은 주식투자자금 유출 및 글로벌 유동성 경색 등에 따라 크게 올랐으며, 이 과정에서 KIKO 계약으로 인한 기업 손실이 확대되었다. 외부 충격에 따라 외환은행이 크게 요동치고 있으며,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인해 수출대금보다 KIKO 계약에 따른 지급비용이 더욱 증가했다. 계약에 따라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환율이 주로 950~970원대에 몰려 있어 KIKO 가입에 따른 기업 손실이 확대될 것으로 우려된다.시장금리는 유동성 경색 및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불안 우려로 크게 상승했으며 이에 따라 기업의 금융비용이 상승했다.주가는 글로벌 유동성 경색에 따른 투자자금 유출과 미국 발 금융위기의 전 세계 확산 등으로 인해 약세를 시현했다.2008년 하반기장이
북아일랜드 분쟁북아일랜드 분쟁은 ..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지속적인 문제로 1921년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의 독립과정에서 영국령으로 남게 된 북아일랜드의 귀속을 놓고 벌이는 두 국가의 (영국과 아일랜드) 분쟁이며, 동시에 두 계파 (신교도와 구교도)간의 갈등과 분쟁북아일랜드 ?북아일랜드 ?북아일랜드 6개주의 구성1.앤트림 (Antrim) 2.데리 (Derry) 3.티론 (Tyrone) 4.퍼매너 (Fermanagh) 5.아마 (Armagh) 6.다운 (Down)북아일랜드의 종교분포북 아일랜드 분쟁의 역사적 배경섬의 대부분의 주민은 켈트계 아일랜드인, 인구의 95%가 로마 가톨릭 교도아일랜드 카톨릭 전통과 정체성의근원이 된 성 패트릭 (432년)북 아일랜드 분쟁의 역사적 배경북 아일랜드의 프로테스탄트화1171년 헨리 2세의 아일랜드 침공, 13C 중반에는 아일랜드 전체의 ¾이 영국의 지배하에 놓임. 16세기 초 헨리 8세는 영국 교회를 교황으로 분리시켜 영국성공회를 만들고 이를 아일랜드에 강요 17세기 초 영국은 북부 얼스터지방(현재의 북아일랜드)에 개신교도들을 대량으로 이주 시킴 이에 따라 얼스터 지방은 개신교가 지배하는 지역이 되었으며, 오늘날 북아일랜드문제의 기원헨리 2세헨리 8세북 아일랜드 분쟁의 역사적 배경영국의 아일랜드 합병17C 말 아일랜드 가톨릭 교도들이 명예혁명으로 왕위에서 물러난 영국의 제임스 2세를 지원하자 새로 왕위에 오른 윌리엄 3세가 이끄는 영국군이 아일랜드를 침입, 영토의 80%를 영국인이 소유 가톨릭교도에 대한 박해와 차별이 심화 1776년 미국의 독립 1789년 프랑스대혁명 등으로 아일랜드인(구교도)의 자주 정신을 고취, 반영(英)운동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남 하지만 영국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1801년 아일랜드를 영국에 합병시키고 직접통치에 들어감 19C에 들어오면서 아일랜드인의 저항이 거세어지자, 영국은 가톨릭 해방령을 발표. 가톨릭교도들은 참정권, 공직에 취임할 권리 등의 공민권을 획득 그러나 아일랜드인은 자치권과 토지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며 계속 저항운동을 펼쳐나감영국령으로 남겨진 북아일랜드는 제한된 주권과 독자적인 의회를 갖는 것이 인정되었으나, 의회 및 정부를 프로테스탄트계 주민의 정치 조직인 유니오니스트당이 독점. 이들은 게리 멘더링, 지방세 납부액에 따른 제한 선거, 기업 법인의 이름으로 선거권부여 등으로 가톨릭계 대료가 의회에 진출하는 것은 저지해 옴.게리 멘더링 -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정해진 불공평, 부자연한 선거구 확정 제한선거, 법인 선거권 - 법인의 사장은 이중으로 투표권을 행사아일랜드 독립 이후북아일랜드 분쟁의 전개특히 1968년부터 94년 신•구교간의 첫 번째 휴전이 선언되기 까지 끊임없이 자행되어온 공공연하고 제도적인 폭력으로 인해 많은 사회적 문제를 유발 사망자가 약 3,500명 부상자가 35,000 이상 재산 피해는 수십억 파운드에 달하고 이 지역 경제 발전 저해는 물론 하부구조에 영향 북아일랜드의 민권은 심각하게 손상, 안전이라는 이유로 국민들의 자유도 제약북아일랜드 분쟁의 전개북아일랜드 분쟁의 전개북아일랜드 분쟁 주요 세력종교적민족적정치적군사적사회적vs평화를 위한 노력, 끝나지 않은 분쟁영국 정부로부터 합법적 자치권을 획득 아일랜드 자치법이 정식법이 됨,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신페인당 주도하에 부활절 봉기가 일어남 아일랜드 공화국 선포, 공화국군(IRA) 창설 아일랜드 독립 북아일랜드 영국령 유지 (신/구교 갈등 유발) 아일랜드 공화군(IRA) - 얼스터 민병대와 대립 1972 영국 치안군 구교도에 무차별 총격 (피의 일요일) 북아일랜드 의회, 정부 해산 영국의 직접통치 아일랜드 공화군의 보복 테러 (피의 금요일)평화를 위한 노력, 끝나지 않은 분쟁1993 다우닝 가 선언 1998 4월 북아일랜드'성금요일 평화협정' 타결 1999 북아일랜드 자치 정부 출범 2002 신-구교 충돌로 자치정부 기능 정지 2003 총선에서 강경파 득세로 긴장 고조 2005 IRA 무장해제 선언하여 긴장 완화 2006 성앤드류 평화협정 2007 신/구교 협상결과 권력공유에 동의 공동자치정부 출범사회 갈등의 구조적 재생산 요소종파에 따라 분리된 학교 교육 / 생활거의 모든 학교들이 상이한 종파에 의해 설립되고, 각 교단이 학교 운영에 깊숙이 관여 -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민족적 / 종파적 역사관을 교육받음VS민족 간 대립구도를 재현하는 기념일과 의례오렌지 퍼레이드 vs 성패트릭 데이개인적 차원의 연결망 부재종파별로 그룹화된 거주지 실태 종파별 단합으로 직업군내 계층 형성 종파간 친족관계 형성의 어려움평화를 위한 대안- 현재 5%정도에 머물고 있는 통합학교(교육기관) 의 확대평화를 위한 대안- 공동 거주지역 확대평화를 위한 대안- 고용차별 금지법 제정 정부차원에서 민족-종파간 화합을 이룰 새로운 문화적 행사 마련{nameOfApplication=Show}
영화 속에 나타나는 ‘마이너리티(비주류)의 삶’에 대한 조명I. 영화 속 마이너리티(비주류)의 삶최근 주류, 비주류 영화를 구분 할 것 없이 마이너리티(비주류)의 삶을 소재로 하는 영화가 꽤나 많이 만들어 지고 있다. 비주류 영화는 주류영화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흥행과는 거리가 먼, 상업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만든 영화라 할 수 있고 따라서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낄만한 소재들을 마음껏 선택할 수도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마이너리티의 삶이 이들 비주류 영화들 속에서 보다 많이 보여 지는 경향이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마이너리티의 삶(여성, 노동자, 깡패, 청소년, 동성애자, 장애인 등)이 주류 영화들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 지고 있는 실정이다.여기서는 개봉당시 나름대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고, 또한 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굉장히 의미가 깊은 두 편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헤드윅)울 통해 마이너리티의 삶(비주류의 삶)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왜 우리가 이들의 삶을 영화에서 만나야하는 지, 그리고 비주류의 삶을 통해 감독은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인지 알아보자II. 영화에서 나타나는 마이너리티의 삶■ 헤드윅 (Hedwig And The Angry Inch, 2000)1) 시놉시스동 베를린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한셀'은 미군 라디오 방송에 심취하면서 '데이빗 보위', '루 리드', '이기 팝' 등의 음악에 열광하는 평범한 소년이다. 좁은 아파트에서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엄마를 피해 오븐 속에서 미국의 락 음악을 듣는 것.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미군 병사가 그에게 '여자'가 되는 조건으로 결혼을 제의한 것. 이에 그는 성전환 수술을 받기로 하지만, 싸구려 수술의 실패로 인해 그에게는 여자의 가슴 대신 일인치의 살덩어리만이 남게 된다.몇 년후, 캔사스 트레일러에 사는 '헤드윅'은 의 주인공 '파라 포셋'의 가발을 쓰고, 록 밴드인 '엥그리 인치'를 조직하여 변두리의 바를 전전애니메이션을 통해 표현해주었다. 독일에서의 헤드윅이 반한 음악과 미국, 권력의 이미지를 색색들이 젤리를 통해 대신해주었고, 자신과 같은 주변인 ? 상대적 소수인, 억압받는 민족으로서 한국인을 함께 포장해주었다. 드랙퀸 뿐 아니라 드랙킹을 함께 등장시키고, 한 인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주관적이지만 미래까지 묶어서 선물해주었다. 무엇보다 영화 헤드윅의 가장 큰 선물은 음악이다. 때로는 Rock으로 Rock을 노래하고, 6인치가 아닌 1인치의 살덩이로 남은 자신의 성기를 노래하고, 나아가 까지 노래한다. 감독은 음악을 통해 영화를 전개해나가고 노래를 통해 메시지를 전해준다.하지만 반듯하게 포장된 선물세트처럼 이것과 저것의 사이에 벽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애니메이션을 보이며 노래를 들려주고, 플라톤의 지식을 노래하고, 한국인이 노래하고, 드랙킹이 드랙퀸과 함께 노래한다. 영화에서 과거와 현재는 중첩되고 사실과 환상이 뒤섞인다. 박스가 흔들려 내용물이 뒤섞인 종합선물세트를 받았을 때, 불쾌하지만 하나하나의 맛과 향은 퇴색되지 않는다. 현란한 영상과 음악이 뒤섞인 헤드윅의 삶이지만, 순간순간의 의미와 메시지는 우리에게 그대로 다가온다.태초에 세상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중성의 세 가지 성(性)으로 창조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오만불손으로 양성은 단성이 되고, 그 이후로 단성은 잃어버린 반쪽을 찾기 위해 헤매게 된다. 독특한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표현되는 플라톤의 「향연」은 그 본래적 의미가 왜곡되었을지라도 헤드윅의 삶을 잘 표현해준다. 플라톤은 향연을 통해 실재적 양성을 추구하는 육체적 합일이 아닌 정신적인 면을 이야기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헤드윅은 향연을 해석하면서 의 가사를 통해 양성을 모두 지닌 자신을 사랑의 근원으로 노래하고 있다.헤드윅은 토미와의 관계 속에서 사랑의 근원을 찾아간다. 더 나아가 자신이 창조주인양 토미를 자신을 통해 재창조시킨다. 가톨릭의 중요한 의식 중 하나인 세례는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토미에게 지식을 뜻하는 그리스어인 성공과 비교했을 때도 무능력한 인물이었다. 헤드윅은 주변국의 락커였다. 록음악의 제국으로부터 고립된 지역 출신의 록큰롤 드림이었다. 헤드윅은 남자다. 하지만 자유를 위해, 음악을 위해, 달콤한 젤리를 위해 남성이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여성, 실패작이었다.감독은 영화내내 이러한 대립항목을 제시하면서 헤드윅을 경계인으로 표현한다. 베를린이 있기에 동독과 서독이 나눠지듯, 남성과 여성 사이에 헤드윅이 없다면 그 구분은 없어져버리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자신이 꿈꾸던 바를 이루었지만 동시에 행복하지 않은 헤드윅이 없었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과 불행의 의미는 모호해진다. 자신의 고향을 버리고 갈망하던 미국인이 된 헤드윅이 없었다면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조국과 의식을 지배하는 이국이 뒤섞여버린다.헤드윅은 민족적 소수자이면서 성적 소수자이다. 그는 자신의 슬픔을 감추기 위해 화려한 외모를 꾸몄으며,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짙은 눈 화장을 하고, 그의 삶을 부정하고 감추기 위해 파운데이션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으며, 빈곤의 삶을 탈피하고자 거북스러운 가발을 쓰고 다녔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외로움에 대한 절망을 감추려는 몸부림이었으며, 자신의 아무것도 아닌 성(性)을 감추기 위해 토마토를 가슴에 넣고 다녔다.헤드윅은 자신을 동독에서 온 동성연애자라고 노래한다. 민족이 다르고 이데올로기가 다르고 성정체성까지 다른 그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성과 이데올로기와 마주하게 된다. 영화 대부분에서 헤드윅을 감싸고 있는 드랙은 모방이나 차용이 아닌 그 사람만의 창조물이다. 헤드윅이 딛고 있는 땅이 먼 이국땅이고 그가 향유하는 문화가 이민족의 문화이며 자신의 모습이 남성도 여성도 아닌 추한 드랙퀸의 모습일지라도, 그는 그의 목소리로 자신이 가슴에 담고 있는 정체성을 노래하고 있다.알뛰세르(Althusser)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문제, 즉 성의 이데올로기는 의식의 차원이 아닌 무의식의 차원이기에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여성성과 남성성은 우리대학생 츠네오는 어느 날 길에서 소아마비로 걷지 못하는 다 큰 손녀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는 노파를 만난다. 계란말이를 잘 만들고 방 안에 갇혀 주워온 책들을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인 손녀딸의 이름은 프랑소아즈 사강의 소설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조제.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집에서 할머니와 둘이 사는 그녀와 친구가 된 츠네오는 동정심과 애착 사이에서 점점 그녀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캠퍼스에서 가장 예쁜 여자 후배가 츠네오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화려한 외모도, 건강한 다리도, 변변한 집도 없는 생활보호대상자 장애인 조제에게는 훨씬 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은 한동안 장애와 세상의 모든 고정관념, 제약을 뛰어넘어 아름답게 꽃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늘 조제를 업고 다녀야 하는 츠네오는 점점 자신의 등에 업힌 그녀가 무겁다고 느끼기 시작한다.2) 상징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여자주인공의 사랑과 꿈을 상징화했다. ‘조제’는 여자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소설 속의 인물을 뜻하며 ‘호랑이’는 주워온 책들을 읽으면서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좁은 현실에서 벗어나, 동시대의 사람들과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의지이며 그녀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조제는 호랑이를 보고난 후 세상에 지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강인함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물고기’는 조제가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자신을 투영한 대상, 혹은 자신의 처지를 반영한 것으로 그녀의 아픔을 보여준다.위와 같은 상징성에서 감독은 장애인들(혹은 소외받은 계층이) 사랑과 꿈을 이루는 것에서 행복을 찾지 않고, 사랑과 꿈을 찾으려는 노력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아가기를 바라고 있는 듯 하다.3) 호랑이, 물고기, 그리고 이별영화는 필름 카메라가 담은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을 보여주는 듯, 그리고 그것을 회상하는 듯 시작한다. 그들이 대화 나눴던 장소, 사랑을 확인했던 장소, 그리고 이별을 예감 할 수 있는 복선을 그려놓은 장소, 그렇게 그것은 하나의 장소의 역할이라기 보다, 두 사람의 수 있는 그 멀쩡해 보이는 청년은 그렇게 당당하면서 연약한 여자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감을 느낀다.조제는 우리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다. 단지 무능력해 보이는 다리와 보잘 것 없는 집안 환경이 극단적으로 표현되었다고 느껴질지 모르나, 조제의 행동에서는 우리가 방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삶의 치열한 현장의 내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조금만 눈여겨 본다면 알 수 있다. 조제는 당당하고 여러 권의 책을 독해 하면서 다박다식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다박다식하고 대학생이나 되는 츠네오를 바보로 만드는 그녀는 여행도 한번도 떠나보지 않았으며, 유모차안에서 말고는 밖으로 이동해본적도 없는 그렇게 갇혀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녀는 세상을 다 알면서도 세상에 나갈 수 없다고 억압받고있는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다.츠네오는 그녀를 방문하고 도움을 주며 때로는 더 큰 도움을 받기 시작하고, 그런 세계를 호기심으로 들여다보는 츠네오는 그 광엄하고 자신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듯 매료되어 간다. 하지만 옷장 속의 조제는 스스로 문을 닫으면서 누구의 도움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에 의해 문을 열수 있다는 것을 츠네오는 가르쳐 준다.그녀가 원하던 책을 구해다 줌으로써, 그녀를 태우고 도로를 미친 듯이 질주함으로서 그녀는 또 하나의 세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고, 그 세계 속에 그는 이제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게 그 둘은 함께 있게 되고, 조제는 그때부터 또다시 다른 세계에 경험을 그리고 생각을 갖게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후 그녀를 다시 찾아온 그에게 “해도 좋다..”라고 이야기 하는 그녀는 그에게 성관계를 할 수 있음을 얘기해 줌으로써 그는 그녀의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의 사랑역시 충족시킨다.이 영화의 제목에서 나오는 호랑이와 물고기는 그녀가 자립해 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영화 내용 안에서 알 수 있다. 조제는 츠네오와 함께 호랑이를 보러 가고, 그녀는 그에게 사랑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