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다양한 종교문화- 목 차 -Ⅰ. 들어가는 글1. 주제선정 이유2. 연구방법Ⅱ. 여정1. 여행경비2. 이동경로Ⅲ. 말레이시아의 역사와 종교1.말레이시아의 역사 및 형성과정2. 말레이시아의 종교Ⅳ. 종교적인 갈등Ⅴ. 보고서를 마치며말레이시아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들의공존, 유입과정 및 갈등에 대한 고찰Ⅰ. 들어가는 글1.주제선정이유말레이시아의 복잡 다양한 문화 속에서 특히 종교적인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사회현상들이 많이 있다. 또한 우리는 한 나라를 여행하기 위하여 경비 산정을 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선정하였다. 말레이시아는 우선 물가가 싸고, 신변의 위험을 느끼지 않으며, 적은 돈으로도 며칠을 편하게 살수 있는 이점 때문에 선정하게 되었다.말레이시아의 특이한 문화 상대성을 이해하고, 그 문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고찰을 하기 위해 선정하였다.2. 연구방법수도에서는 각각의 종교에 따른 거주구역을 찾아보고, 현지인들과 인터뷰를 하고, 각 지역의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사원방문 및 관계자와 인터뷰를 할 것이다. 그리고 일상에서 종교적 차별로 인한 갈등 상황 조사를 인터뷰와 실제로 현지인들과 같이 지내면서 조사할 것이다. (식당, 학교, 교회, 사원, 시장 등)Ⅱ. 배낭여행 경비1. 여행경비1) 교통비교통비는 크게 항공비와 말레이시아에서 소요되는 교통비로 나눌 수 있다.일단 춘천에서 인천공항까지 버스 요금이 13,700원이 소요된다. 그리고 말레이시아행 비행기는 말레이시아 항공으로 택하였는데 그 이유는 가장 먼저 말레이시아를 접할 수 있으며, 금전적인 항공비가 저렴하기 때문이다.말레이시아의 대중교통수단에는 버스, 택시, 기차가 있다. 한 지역 내에서 이동 시, 하루에 4회 이동을 하며, 현지 상황에 맞게 버스, 택시, 기차를 이용한다. 그리고 지역간 이동 시에도 현지 상황에 맞게 버스, 택시, 기차를 이용한다.그래서 한국과 말레이시아에서 소요되는 총 교통비는 약 583,700원으로 정하였다.2)숙박비말레이시아의 숙박은 여관(20RM), 호텔(70고 그 위는 힌두교의 성지인 거대한 종류 동굴이 있다. 동굴이 두개이며 안으로 더 들어가면 다시 작은 계단이 있고 그 계단을 오르면 힌두교 사원이 나온다. 매년 1월말 타이푸삼 축제 기간에는 수많은 힌두교도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카바디스(KAvadis)라는 살 속으로 파고드는 날카로운 기구를 멘채 행진을 하고 불 위를 걷기도 하는 등의 고행을 한다고 한다.※Istana Negara 왕궁말레이시아 왕궁은 콸라룸푸르 중앙역에서 남동쪽으로 700m 떨어진 곳에 있는데 Istana Jalan(이스타나 거리)에 접해있다. 비록 국왕이 거주하는 곳이라 입장이 허용되지 않는다.(말레이시아의 왕 선출 방식은 무척 독특해서 연방을 이루고 있는 13개 주 가운데 9개 주는 아직도 세습 왕족인 술탄이 통치한다. 이들 아홉 명의 술탄이 5년마다 돌아가면서 국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나머지 4개의 주는 국광이 선출한 장관에 의해 통치된다고 한다.)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보고, 고위직 관료를 만나서 인터뷰를 해볼 예정이다.※National Museum레이크 가든의 남쪽 입구에 있는 Jalan Damansara (다만사라 거리)에는 국립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국립 박물관의 외관은 전형적인 말레이 건축 양식에서 따왔는데 건물 정면 벽에는 말레이 민화를 주제로 한 모자이크 벽화가 그려져 있어 무척 볼만하다.중앙홀을 사이에 두고 4개의 갤러리로 나눠져 있었다. 각각의 갤러리에서는 말레이의 영화, 말레이 무용극, 말라카의 중국식 가옥, 말레이의 결혼식 장면 등이 모형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또한 중앙홀을 따라 앞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여러 가지 거대하고 신기한 물고기의 박제와 뱀이나 파충류 같은 정글 동물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고대 말레이시아 왕궁의 복제품들, 오래된 철도 차량과 자동차들이 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는 말레이시아의 복합민족의 기본적인 자료를 얻을 것이다.※메데르카 광장(The Merdeka Square)메은 말레이시아에 대한 영국의 식민정책이다. 영국의 식민정책은 말레이인들에게 농업이나 어업과 같은 전통적인 경제활동을 계속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면서, 한편으로는 경제적 이익이 많은 주석광산과 해상무역 부문에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의 풍부한 주석자원의 개발계획과 함께 중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해상교통로의 확보를 위한 대규모 항만 시설의 건설이 계획되었다. 그리고 영국은 이러한 식민정책을 실시하는데 필요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하여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였다. 중국 남부로부터 이주한 대부분은 가난한 노동자와 농부들로서 주석광산과 말레이인들이 기피하는 일을 도맡아서 했다. 당시 영국은 정치적 저항을 피하기 위해 말레이인들은 그들의 전통적인 경제활동에 전념하도록 배려하였다. 이어서 영국은 19세기 후반부터 남미의 아마존으로부터 들여온 고무나무가 싱가폴에 이식에 성공하자, 말레이시아에 대규모 고무농장을 건설하는 식민정책을 새로이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에 필요한 대규모 노동력을 다시 인도남부의 타밀지방으로부터 유입하였다.이러한 영국 식민정책의 결과에 따라 오늘날 말레이시아는 각 민족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언어가 혼합되어있는 복합민족사회로 형성되었다.2. 말레이시아의 종교말레이시아인들의 일반적인 종교는 이슬람교, 불교, 도교, 힌두교, 기독교, 기타 민간신앙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종교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주된 요인은 말레이시아의 형성과정과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지리적인 특성상 이곳이 과거부터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이어주는 무역, 교통로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아시아의 불교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11세기 이후 아랍상인을 중심으로 말레이반도와 상업적 교류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상인계층을 통해 이슬람교이 도입되었다.그리고 말레이시아의 종교 비율을 살펴보면, 이슬람교(53%), 불교(17%), 중국 전통 종교(12%), 힌두교(7%), 기독교(6%), 기타(5%)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슬람교의 대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Ⅳ. 종교적 갈등1. 인종간 특혜부여 사례이슬람을 국가의 종교로 삼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인들은 그에 따라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 근본적으로 말레이인들을 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책상 그들에게 많은 혜택을 부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 정책에 분노를 느끼고, 심하면 민족갈등의 형태로 유혈사태까지 일어났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민족 융화 정책의 일환으로 종교적 휴일을 정하여 각 종교를 인정하고, 헌법에도 종교의 자유(헌법 제 1조 이슬람을 국교로 하고, 모든 종교에 자유를 보장한다. 단 이슬람의 교리를 벗어나지 않는 자유이다)를 보장하는 것을 명시했다. 또한 중국계인들의 반발이 제일 큰 것을 감안하여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혜택을 보장해주기도 했다.※투자우대정책소규모기업 투자시 1965년 회사법에 따라 자본금이 50만 링기트 이하거나 말레이시아인(부미푸트라)의 지분이 최소한 70%이상인 소규모 제조업체에 대하여, 1986년의 투자진흥법에 따라 소규모 제조업체를 위한 권장제품 제조 및 권장 생산활동 참여시 개척자 지위를 획득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하였다.※지분 소유제한정책외국인 지분이 100% 미만인 경우, 외국인에 의하여 사업이 개시되고 현지 파트너가 선정되지 않았을 때 외국인의 지분이 70%이상이면 잔여지분은 부미푸트라에게 할당되고, 70%미만이면 30%만 부미푸트라에게 할당되는데, 이때 부미푸트라에게 할당된 지분이 30%가 모두 취득되지 않을 경우, 非부미푸트라에게 할당된다.여러 정책을 통하여 부미푸트라 즉 말레이인들을 보호하였지만, 상대적으로 경제력을 쥐고 있는 중국인들에게는 이런 정책도 그들을 통제하지 못했다.여기에 반발하여 1970년에 이슬람 과격 무슬림들이 길거리를 지나가는 중국인을 목을 베어 죽인 사건이 있었다. 이유는 경제력의 70%을 중국인이 잡고 있기 때문에 이에 상대적으로 빈곤한 말레이인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취한것이다.중국인들이 반발1-22일Hari Raya Qurban6월 4일국왕 생일2월 1일Federal Territory Day8월 31일독립 기념일2월 9-10일Chinese New Year11월 1일Deepavali2월 10-11일Awal Muharram11월 3-4일Hari Raya Puasa4월 21일모하메드 탄신일12월 25일크리스마스5월 1일노동절이슬람의 율법과 교리의 확대 해석을 두고 논란이 된 사건도 있었다.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인접한 슬랑고르주에서 열린 미스 말레이시아 선발대회에 참가한 무슬림 소녀 3명이 현장에서 체포되어 실형을 받은 데서 비롯되었다. 이들의 죄목은 이슬람법에 근거하여 무슬림 여성의 미인대회 참가를 금하는 이슬람법을 어겼다는 것이었다. (중앙일보 1997. 7. 21)말레이시아의 콘서트장에서 앞으로 남녀가 섞여서 앉을 수 없고, ?비이슬람적?이라고 간주되는 노래를 부를 수도 없게 되었다. 말레이시아의 종교부가 이런 내용으로 유흥업계가 지켜야 할 이슬람 지침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종교부의 지침에는 또 콘서트나 연예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을 때에도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의 기도 시간이 되면 몇 분간 행사를 중단해야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또한 압둘라 모하마드 전 종교부 장관은 “노래 가사도 수긍이 갈만한 내용이어야 한다. 예컨대 사랑 노래에 천상에서 만난다는 등의 가사가 들어가면 안 된다”며 “우리가 천상으로 오를지 어떨지 알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콘서트 장에서도 남녀를 따로 않게 해야 하는데 이는 이러한 모임이 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Asia Week 1997. 7. 22.)말레이시아의 무슬림(이슬람신자) 남성이 다섯 살짜리 아들을 국제 입양시킨 죄로 이슬람 법정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고 말레이시아의 일간 뉴 스트레이츠 타임즈가 1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마주리 마맛(32)이라는 남성이 2002년 12월 당시 5살이었던 아들 무이주딘을 잉글리드 안젤리카 브라운이라는 비(非).)
― 목 차 ―Ⅰ 서론1. 연구 목적 및 방법Ⅱ 본론1. 춘천 국립박물관1) 춘천 국립박물관 개관2) 춘천 국립박물관을 이용하는 관광객2. 박물관안에서의 통과 의례적 측면 (관광객)3. 유사 이벤트 및 유사체험4. 관광대상지로서의 박물관 (관광객의 인식)Ⅲ 결론Ⅳ 참고문헌Ⅴ 후기Ⅰ 서론1.연구목적 및 방법최근 박물관에서 평생교육의 차원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박물관의 유익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뿐 아니라, 일회성에 그치는 박물관의 이미지 보다는 상설전시 외에 꾸준한 특별 전시 및 행사를 통해 차별성이 시도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박물관은 어렸을 때 단체관람이나 과제를 하기 위해서 방문 하였지만 대부분은 그 이상 가지 않는 곳으로 생각한다. 또한 박물관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지루한 공간으로 인식되어져 왔다.하지만 춘천국립박물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박물관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박물관에 들어가기 전에 도시에서 벗어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녹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매표기 에서 표를 사고 들어가면서부터 도시와 분리된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 통과의례적인 분리, 전이(과도기)가 동시적인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고, 과도기 상태에서 전시관을 관람할 때 박물관의 구조가 관람객들을 어떻게 통제하는지 알아보고, 이러한 통제가 관람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알아 볼 것이다. 그리고 사회교육공간과 정원식 야외전시장, 야외 공연장 등 여러 가지 시설과 볼거리 행사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느끼는 유사체험에 대해 알아 볼 것이다.이번 보고서에서 박물관안에서의 통과 의례적 측면과 유사이벤트 및 유사체험 그리고 관광대상지로서의 박물관에 대한 인식을 관람객을 통해서 알아보고, 박물관을 하나의 관광지로 바라보는 것이 본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이다.본 연구는 춘천 국립박물관을 관리하는 관계자, 관람객 그리고 박물관 구조를 대상으로 한다. 춘천 국립박물관을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접근성이 용이하고, 도내 유일한 국립박단 전시 기법과 설비를 갖추어 21세기를 선도하는 선진 박물관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귀중한 강원도의 문화유산을 보존 ? 전시하는데 머물지 않고, 일반인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사회문화교육 프로그램을 확대 실시하여, 관람객들이 편안히 쉬면서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지역의 중추적 열린 문화공간이 되도록 하는데 노력하고 있다.2) 춘천 국립박물관을 이용하는 관광객지역 박물관으로서 지역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이고, 지역문화 상징의 결합을 통해 지역정체성을 확보하여 지역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지역의 특수성을 개발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최근 지방 박물관 건립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더불어 지방자치 단체가 실시되면서 지역사회에서는 지역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기 시작했고,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문화 ? 예술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져 가고 있다.)춘천 국립박물관은 지역 박물관으로 위의 견해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박물관 내부의 유물과 행사 등은 강원지역문화 상징의 결합을 통해 지역정체성을 확보하고,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으며, 그 영역을 점점 확대해나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춘천 국립박물관을 찾는 관광객들의 범위는 지역민을 벗어난 타 지역민들로 확대되고 있으며, 관광객의 연령 대 범위 역시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연령 대를 보이고 있다.“ ... 요즘은 연간 20만 명 정도가 왔다가요... 흠 작년부터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춘천 사람들보다 타지 사람들이 많이 들렸다가고 그래요... 아! 오전에는 단체 관람객들이 많이 와요. 많이 올 때는 10대(관광버스)도 오고 그래요 그리고 오후는 별로 없지만 주말에는 사람들이 많이 와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주말에는 단체 관람객보다는 가족이나 연인, 학생들 뭐 다양하게 와요... 글쎄요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춘천 분들 보다는 다른 곳에서 오시는 분들이 더 많은 거 같아요... 하하 그렇긴 하죠... 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뭐 주말에 비하면 많이 없는 거죠... 그래도 평일 오전에는 단체 관람객들이 많이 오고 그래요.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많이 오고, 주말에는 뭐 가족들이나 숙제하러 오는 학생들하고 연인들이 많이 오죠...(중략)... 평일에 시간이 없나보죠. 그리고 주말에는 강좌하고 영화상영, 문화체험이 많으니까 나라도 주말에 오겠는데요...”(자원봉사, 여)실제로 평일과 주말에 박물관을 관찰한 결과 평일에는 초 ? 중학교 학생들이 많이 방문을 하며, 주말에는 가족과 학생들이 많이 방문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이처럼 춘천 국립박물관을 이용에는 그 지역 내에서의 교통이나 인지도 여부, 그리고 박물관에서 운영되고 있는 주말 프로그램들이 박물관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의 방문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2. 박물관안에서의 통과 의례적 측면 (관광객)관광객들이 박물관에 입장에서부터 통과의례적인 측면, 즉 일상과 분리, 전이(과도기), 통합이라는 과정으로 관광을 하며, 관광객들을 통제하는 것은 안내하는 사람이 아닌 구조를 통해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박물관에 입구에서부터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있고, 도시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을 주는 녹지가 조성되어있다. 일상적 시공간에서 비일상적 시공간으로 안내된다. 즉 관광의 시선이 박물관을 향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박물관이 일상적 시공간에서 분리된 비일상적 시공간을 만들고 있는 데에 있다.“우두 동에 살고 있는데, 춘천에 살면서도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죠... 박물관에 온 것 같지 않고 마치 산을 등산하다가 중턱에 절이 보이는 느낌이네요... 바로 옆에는 아파트와 건물들이 많은데, 정말 잘 꾸며 놨네요. 자주 와야겠어요...”(이○○, 29세, 주부). 춘천 국립박물관 1층 상설전시실 관광객 동선 평면도박물관을 들어오게 되면서부터 관광객들은 도시와 분리 되면서 비일상적 경험을 하게 된다. 또한 자동발매기에서 표를 구입하고 들어가면서 그들은 분리와 전이가 동시에 일어난다. 들어가면서부터 그들은 아무 통제를 따르지이 아니라, 여기에는 연표와 지도, 해설판, 그리고 터치스크린 등이 시간여행을 하는 것을 도와준다. 유물을 특정시대와 사회의 기호로 해석하고, 그것을 연표와 지도에 올려놓음으로써 비로소 유물의 연대기적인 배열은 특정 시대와 지역을 재현하게 된다.“(박물관에 만약 유물만 있고, 설명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하하하.. 당황스럽죠... 뭐 그럼 박물관 유물을 보고 상상하며... 설명이 없는 유물이라.. 그게 유물일까? 그럼 우리 집 냉장고도 선사시대에 놓아도 유물이 될걸요...”(유○○, 34세, 가족과 함께 온 남)또한 관광객들이 일상과 분리 되고 전이(과도기)에서 차례대로 관광을 할 수 있도록 통제하는 것은 안내자가 아니라 화살표(방향표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물이 연대기적 배열을 하고, 연표나 지도, 해설판이 있더라도, 화살표가 없다면, 관광객들은 제멋대로 이동해서 관광을 하고, 제대로 된 시간여행을 할 수 없을 것이다.“처음 들어갈 때부터 표시가 있어서 쭉 보면서 나갔더니, 상설전시관Ⅳ까지 봤네요... 안내하는 사람이 있는 것 보다, 여유 있게 그리고 조용히 볼 수 있어서 박물관 느낌이 드네요... 나처럼 처음 온 사람도 쉽게 볼 수 있을꺼예요.”(이○○, 29세, 주부)관광객들이 들어가면서부터 나가기 전까지 관람을 하면서 외부와는 다른 공간에서 그들이 안내원이나, 설명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통제되고, 순서대로 관람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박물관에 가서 관찰을 한 결과 안내원이 따로 없으며, 화살표시에 의해 관광객들은 시간순서대로 유물을 관람하고, 연표, 지도, 해설판, 터치스크린 등이 유물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3. 유사 이벤트 및 유사체험박물관이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주로 교육적인 성격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말하는 박물관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 이상의 대중들의 지적, 정서함양을 위해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빌려 정보제공의 포괄적 의미를 내포하고 리 이해하는 것 같아서 참 좋네요.”(전○○, 영호분교 선생님)11/12(토) ~ 12/30(금) 탁본 체험 교실을 하고 있으며, 관찰자들은 11/24(목)에 탁본 체험을 하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했다. (대학생과 자녀를 둔 부모) 다음의 사례가 박물관의 이미지 변화와 문화 체험의 장으로 변화된 것을 잘 보여준다.“지금 보상화 문전을 탁본하고 있구요. 박물관이라는 곳은 아무 때나 올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막상 와보니깐... 관람뿐만 아니라 실제로 벽돌도 만져보고 탁본도 떠 보니깐 박물관에 자주 오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 있져... (중략) 제가 예전에 가본 박물관하고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좋네요.”(최○○, 22세, 국어국문학과학생)“저도 박물관에 호기심에 들렸어요...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숙제라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탁본을 두드리며)쉬울 것 같았는데... 조금 힘드네요. 예전에 박물관 하면보고 가는 곳으로 생각 했는데, 저도 숙제 때문에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행사가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박물관도 이젠 많이 변했구나! 하고 느꼈죠.”(김○○, 24세, 사학과학생)박물관은 관람만 하고 가는 곳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문화체험을 하는 장으로 변화되고, 관광객들에게 인식되어 진다. 또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벽화 만들기, 탁본, 민화그리기) 여러 행사를 열면서, 관광객들의 인식을 변화 시키고 있다. 상설 전시실이 끝나는 앞에 국립 춘천박물관 로고가 찍힌 도장(3종류)을 종이에 무료로 찍을 수 있게 놓여있어서, 박물관을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유사체험과 이벤트를 통해 관광객들은 그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고, 체험하면서 만드는 법이나, 생활상을 체험했다고 한다. 그 결과 한번 오고 마는 곳이 아니라 다시 오고 싶어 하는 곳으로 인식된다.4. 관광대상지로서의 박물관(관광객의 인식)박물관이라고 하면 과거의 인간과 삶에 관한 흔적들을 한곳에 모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박물관은 방문하 있다.
모스의 증여론모스 [Mauss, Marcel, 1872.5.10~1950.2.10]프랑스 에피날 출생. 사회학자 E.뒤르켐의 조카이다. 1902년 에콜 프라티크 데조트 에튀드(cole Pratique des Hautes Etudes)의 원시종교학 교수가 되었다. 1925년 파리대학 민족학연구소를 세웠으며, 1931~1939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를 지내고 고등연구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뒤르켐의 협력자로서 뒤르켐학파 확립에 공헌하였으며, 이 학파의 기관지 《사회학 연보》를 새로 편수하여 뒤르켐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의 업적은 종교사회학의 영역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19세기 말 위베르와 《희생에 관한 연구》를 공저하고 이어 《주술(呪術)의 일반이론》(1904)을 공저, 기존의 종교 ·주술 2원론에 대하여, 더 근원에 있는 신비적인 힘(마나)에 관하여 주장하였다. 또 뒤르켐과의 공저 《원시분류》에서는 사물의 분류가 사회생활의 여러 구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고, 인식론에 선험론(先驗論)이나 경험론과 다른 제3의 입장을 도입하였다. 주저로는 《증여론 Essai sur le don》(1925)이 있다.서문 증여, 특히 선물에 답례해야하는 의무에 관해서●제사(題詞) : 책의 첫머리에 그 책의 내용에 관련된 내용을 시문으로 적은 글선물을 받지 않을(39), 서로 선물에 답례하는 자들은 친구이다(41) 선물에 대해서는 선물로 답례를 한다(42).마음과 마음을 함께하고 선물을 교환해야 한다(44). 인색한 사람은 언제나 선물을 걱정한다.(48)등등...선물이나 반대급부는 그 차체가 그 전체의 일부분이기도 한 계약을 강화시키는 재물인 동시에 수단이다.●연구 주제미개 또는 태고의 유형의 사회에서 선물을 받았을 경우, 의무적으로 답례를 하게 하는 법이나 이해관계의 규칙은 무엇인가? 받은 물건에는 어떤 힘이 있기에 수증자는 답례를 하는 것인가?●적용된 방법비교방법을 적용하였다. 폴리네시아, 북서부아메리카와 같이 한정되고 선택된 영역과 약간의 주요한 법전에서만 우리의 주제를 연구.체적인 급부 : 남자 쪽의 재산과 여자 쪽의 재산(사모아 섬)사모아 섬에는 이 계약상의 증여체계가 결혼 외에도 아이 출생, 할례, 질병, 계집아이의 성년식, 장례식, 통상 등에 뒤따른다.포틀래치의 두 가지 본질 요소는 부가 주는 명예, 위세, 마나(비인격적인 초자연력)의 요소와 답례하지 않으면 부의 원천 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답례를 해야 하는 절대적인 의무의 요소또한 증여는 의무적이며 영속적이지만, 증여를 강제하는 권리 상태이외의 다른 반대급부는 없다.올로아(oloa)와 통가(tonga)는 남자 쪽의 재산과 여자 쪽의 재산 뜻하며, 여자형제와 결국 처남(아이 쪽에서 보면 외삼촌)이 기르기 위하여 그녀의 남자형제이자 처남이 되는 이에게서 받는 아이 자신은 통가 즉 여자 쪽의 재산이라 부른다. 이 아이는 대대로 전해지는 재산 즉 통가가 아이의 가족에서 이 가족으로 계속 흘러들어가는 통로이다. 다른 한편으로 아이는 그 부모에게서 아이가 살아있는 한 그 아이를 양자로 삼는 부모한테서 외래재산(oloa)을 획득하는 수단이다. 즉 여자 쪽의 재산은 여자 쪽 가족의 재산과 남자 쪽 가족의 재산을 교환하는 수단이다. 그 아이는 그곳에서 생활할 권리가 있으며, 그의 외삼촌의 재산에 대해 일반적인 권리를 갖는다.통가는 아내의 지참금 이외의 영구적인 재산 특히 혼례 돗자리, 장식품, 호부 등이며 나중에 반환할 의무가 있다. 올가는 사물, 대부분의 경우 도구를 가리키는데 그것들은 특히 남자의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동산이며 현재는 백인들에게서 얻은 물건들에 적용된다. 또한 부, 권력, 위세를 주는 모든 것, 교환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확대되며 때로는 전통, 제사, 주술의식인 경우도 있다.●주어진 물건의 영(마오리족)A가 B에게 일정한 대가도 받지 않고 물품(타옹가)를 준다.물품(타옹가) 물품(타옹가)→ →← ←그에 상응하는물품 그에 상응하는 물품(A) (B) (C)(B)가 (C)에게 이 물품(타옹가)을 주면 일정한 시간이 지난다음에 (C)가(B)에게 타옹가에 상응하는 어떤 보낸다. 그렇게 해야 그것들은 그해에 죽은 사냥거리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다음해에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사람들 사이의 계약 ? 교환과 인간과 신 사이의 계약 ? 교환의 관계는 공희이론의 모든 면을 분명하게 밝혀준다. 특히 계약상 ? 경제상의 의식이 사람들 사이에서 행해지면서도 이 사람들이 자기들이 지닌 이름의 원래 소유자인 정령들의 가면을 쓴 화신 이며, 종종 샤먼적이고 아울러 그러한 정령에 사로잡히는 사회, 즉 그들이 실제로는 정령의 대리인으로서만 행동하는 사회에서 그 관계를 가장 잘 이해 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들과 계약을 맺기 위해 존재한다고 하며, 그 집단 가운데 하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죽은 자들의 영혼과 신이다. 그들과의 교환이 가장 쉽고 안전하다고 생각함.공희의 파괴는 바로 증여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 증여에는 답례가 있으며, 포틀래치의 모든 형태의 파괴가 있다. (노예를 죽이거나, 값비싼 기름을 태우거나, 바다에 동판을 버리거나 호화로운 집을 태운다) 이것은 정령과 신에게 공희를 바치기 위한 것이다.●그 밖의 고찰 : 희사(기꺼이 재물로 내놓음)희사는 한편으로는 증여 및 재산의 도덕적 관념과 또 한편으로는 공희 관념의 소산이다. 후하게 주는 것이다.제2장 증여 체계의 발전 - 후한 인심, 명예, 돈1. 후하게 주는 규칙(안다만 제도)안다만 섬의 사람들은 교환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역집단과 가족은 그 밖의 경우에는 도구 등등을 사실상 자급자족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선물의 교환은 더욱 발달한 사회에서의 교역, 교환과 똑같은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 그 목적은 무엇보다도 도덕적이며, 그 교환 대상은 문제의 두 사람 사이에 우호적인 감정을 생기게 한다. 하지만 누구도 제공된 선물을 마음대로 거절할 수 없으며 남녀 모두 후함에서 서로 상대방을 능가하려고 애쓴다.선물은 혼인이 이루어졌음을 보증하며 두 쌍의 친족 간에 친족관계를 형성한다. 선물은 양쪽에게 동일한 성질을 주며, 두 친족 집단이 서로를 방문하거나 말을 걸지 못하게 하는 자기 가족의 사회적 지위도 놓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법과 경제 체계에서는 막대한 부가 끊임없이 소비되고 이전된다.틀링깃족과 하이다족의 포틀래치는 서로간의 봉사를 명예로 생각하는 것에 있다.북서부 아메리카의 포틀래치는 종교적, 신화적, 샤머니즘적인 현상이며, 경제적인 현상이다. 또한 사회형태상의 현상이며, 계약의 물적 대상이다.북서부 아메리카 포틀래치의 네 가지 형태1)포족과 추장의 가족만이 또는 거의 그들만이 참가하는 포틀래치(틀링깃족)2)포족, 씨족, 추장, 가족이 거의 동등한 역할을 하는 포틀래치3)서로 대립하는 씨족들의 추장들간의 포틀래치(침시아족)4)추장들과 단체들의 포틀래치(콰키우틀족)주어야하는 의무는 포틀래치의 본질이며, 받아야 하는 의무도 주어야 하는 의무 못지않게 강제적이다. 포틀래치가 순수한 파괴로 성립되지 않는 경우에는 답례의 의무가 포틀래치의 전부이다. 파괴 자체는 정령에게 바쳐진 공희이며 정령이 은혜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파괴의 씨족 내 상위의 추장이나 이미 상위로 인정받고 있는 씨족의 추장에 의해서 행해질 때에는 무조건 답례할 필요가 없다.그러나 대개 포틀래치는 언제나 받은 것보다 더 성대한 포틀래치로 답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선물도 받은 것 보다 더 많은 것으로 답례하지 않으면 안 되며 상당한 정도로 답례를 하는 의무는 절대적이다.북서부 아메리카 연안 사회에서의 포틀래치는 선물제도의 일종의 기형적인 산물에 불과하다. 까닭 없이 의식 때마다 선물이 교환되며 심지어는 그 자리에서 답례되어 즉시 재분배되기도 한다.물건의 힘-귀중한 재물 전체가 주술적인 조상 전래품을 구성하는데 그것들은 종종 그것들을 증여하는 자, 그것들을 수령하는 자, 그리고 이 호부를 씨족에게 준 정령이나 이 정령한테서 그것들을 받는 씨족의 시조영웅과 동일시된다.(범고래씨족의 신화)귀중한 재물과 부의 상징 각각은 개성, 이름, 특성, 권위를 가지며, 그 속에 생산적인 효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생명의 표시이자 증거일 뿐만 아니라 부의 표시이자 증거인오늘날의 우리 자신의 법과 경제 형태로의 변천을 제공하였다.우리는 물건에 관한 법과 사람에 관한 법, 사람과 물건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또한 셈족, 그리스민족, 로마 민족의 문명 이래로 우리의 문명은 한편으로는 채무 및 유상급부와 또 한편으로는 증여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아주 최근에 나타난 것이고, 인간과 물건이 혼합되는 증여 교환의 관습을 행한 적이 없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인도유럽어족 법의 몇몇 특징을 분석하면, 이러한 변천을 거쳤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1. 사람에 관한 법과 물건에 관한 법아주 오래 전의 로마법이들 원시사회의 사회규범이 역사에 출현하기 이전 시대의 로마법 그리고 역사에 나타난 시대의 게르만법과 비교하면, 사람에 관한 법과 물건에 관한 법이 명료해 진다. 먼저, 보충적인 담보와 특히 게르만법의 바디움은 담보물의 교환 그 이상이며, 주술적 영향력을 가하기 위한 생명의 담보 그 이상이다. 담보로 제공되는 물건은 대부분 가치가 없다. 예를 들면 로마법의 문답계약에서는 막대기 교환을 하며, 게르만법의 계약에서는 페스튜카 노타타(상징의 꽃줄기)를 교환한다. 이 물건들은 생명이 있는 물건이며, 고대의 의무적인 증여제의 잔재이다. 이러한 연유로 보충적 담보의 교환은 영혼 및 그 영혼과 합쳐진 물건이 이처럼 오고가는 것을 허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넥숨, 즉 법적인 ‘구속’은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에도 유래한다는 것이다.고대로마의 시민법에서의 재산 인도는 집단적으로 행해지며, 순수하게 법적이고 근대경제적인 관념과는 무관한 갖가지 종류의 고려가 섞여있다. 그리고 인도에 의해서 확립되는 넥숨은 종교적 표상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주술적, 종교적인 구속 이외에 물건 자체에도 하나의 구속이 있다.로마에서의 가족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물건도 포함한다. 이러한 정의는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도 있으며, 어원을 살펴보면, 파밀리아(familia)라는 말이 심지어는 가족의 음식물과 생계수단까지도 가리킨다. 그리고 물건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