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주의&기하학적 조각구성주의n러시아 혁명을 전후하여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일어나, 러시아에서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 예술의 전 분야에 걸쳐 발생한 혁신적인 추상 미술 운동으로 서유럽으로 발전해 나간 전위적인 추상예술 운동n 입체파와 미래파의 영향=입체파의 추상적 조형과 절단된 면 분할법의 영향=미래주의의 현대 생활의 역동적인 면을 표현하는 중복된 이미지를 사용n 혁명 정부의 전위미술 운동에 대한 적극적 호응n 1812년에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이후 유럽의 새 경향들이 세기 초부터 러시아에 유입n 1차세계대전후 러시아에서는 새로운 혁명적 기운이 감돔n 삶의 실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예술은 두가지 기본요소에 의거 하지 않으면 안된다.곧 시간과 공간이다.-4차원 세계 지향-전통적 조각개념 붕괴, 추상조각의 탄생n 볼륨만이 공간의 개념이 아니다.n 시간의 진정한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운동 역학적 요소가 사용되지 않으면 안된다.n 예술은 모방적이기를 그쳐야 하며 모름지기 새로운 형태를 발견해야 한다.구성주의 작품의 특징n 포토 몽타주 기법n 기하학적 구조n 색채의 함축성n 비대칭적 질서조각에서의 구성주의.n 구성주의는 한 가지 또는 여러 종류의 금속, 유리, 판지, 나무, 플라스틱 등의 재료를 함께 사용하고, 양감보다는 공간이 중시되는 조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조각을 제작하는 기법은 양감을 덧붙여주거나 깎아내는 데에 초점을 두어 왔다. 하지만 구성주의시대때는 대부분 주로 용접을 이용해 여러 다른 재료를 결합하는 기법을 사용했다.초기구성주의 조각들.? 미투리치 ( 열 개의 입방체) 1919~21마분지 입방체에 과슈.G.스텐베르크 (구성) 1920 G.스???베르크(공간 구조를 위한구성) 1920철, 유리, 나무? 메두네츠키 (공간 구성) 1920~21주석 놋쇠 철 알루미늄, 높이 45㎝공간구성을 보면 각각의 세부 형태들은 최소한의 접촉에 의해 연결되어 잇고 그 선들은 구성물 전체에 담긴 양감에 대한 공간을 매개하는 변수가 되고 있다. 메두네츠키는 여러1921년 모스크바 국립미술학교 교수가 되었고 1929년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공간구성의 실험을 통해 판화, 포토 몽타주, 건축 등에 새로운 기법을 발표하면서 서유럽에 영향을 끼쳤다.Eliezer LissitzkyTitle:Proun 1 CDate:1919Tecnica:Oil on canvas. Measurements:68 x 68 cm Location:리시츠키의 프라운(리시츠키가 발명한 두문자어로서 새로운 예술을 위하여‘ 라는 뜻이다.) 회화는 위에서 내려다본 상상도시의 계획도처럼 느껴진다. 마치 말레비치가 그린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이 삼차원으로 묘사된 듯한 인상을 주는 그의 그림은 회화와 조각, 그리고 건축사이에 존재하는 ’중간과정‘ 의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그기 진정으로 공간에서 얻고자 했던것은 무한개념, 대상의 비물질화를 통한 공간의 창출, 비합리적이고 긴장을 통한역동성 . 중력 법칙으로부터의 해방, 사회적 혁명의 분위기로부터 태어난 유물론 위에서의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공간 구축의 정신이다.나움 가보 [ 1890.8.5~1977.8.23 ]러시아 출생의 미국 조각가. 모스크바에서 구성주의운동에 참가했고, 1920년 ‘리얼리스트 선언’을 발표했다.금속판·플라스틱·나일론 등의 새로운 소재로 다이내믹한공간을 구성한 그의 작품은 20세기의 조형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1916Cor-ten steel1753 x 1340 x 1226 mm'stereometric construction'로 알려진 방법은 가보의 작품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덩어리를 묘사할 필요 없이 믿게 해준 공간의 탐구였다. 그의 Head No.2와 같은 초기 작품들은 덩어리를 옮길 필요 없이 형체의 무게감을 묘사하는 공식적인 실험이었다. 'Head No.2'는 1964년에 확대제작 되었다.1917, cardboard,reassembled 1996, 61 ×48.5 ×34.5 cm1923뉴욕현대미술관소장1937구겐하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구형의 변형 (Variation전 후에도 ‘레알리테 누보(新現實)’의 창설자로서 활약하였으며, 역감적(力感的)인 선과 면의 구성에 의한 새로운 공간 창조를 완성하였다., 1923년,높이 33cm, (33×20×20 cm,)셀롤로이드, 금속파리 퐁피두 국립현대 미술관 소장.‘마스크’는 수학적인 면 분할을 응용한 기하학적인 방식 을 택하였다. 질서와 정돈된 방법으로 추상적인 얼굴을 만든 것이다. 특히 당시에는 최첨단의 산업 재료였던 플라스틱을 사용한 것이 획기적인 일이었다.Portrait of marcel duchamp, 1962작품을 면을 분할하여 나타낸 것 같고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 는 것은 1923년에 만든 MASK와 비슷해보인다.Head circa 1923-4Plasticobject: 770 x 590 x 920 mmsculpture그의 작품은 공간 간격과 동적인 느낌을 주기 위하 여 부피감을 없애는 구성주의 양식을 발전시켰다.AnchoredCross, 1933.Marble, brass painted black, and crystal, 33 5/16 inches (84.6 cm) long, diagonally.페브스너는 '빈 공간을 활용하고 빽빽한 부피감을 느끼지 않게 할 수 있는' 미술을 실험했다. 그는 직선과 곡선을 사용하여 이 판들을 서로 접합시켜 복잡하고 엉클어진 모양들을 만들었다. 페브스너는 진정한 의미의 구성주의 조각가로서, 형태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비교적 비인격적인 기하학적 양식과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다.포포바 [Lyubov Popova 1889. 4. 24~1924. 5. 25]러시아의 아방가르드 미술가. 입체주의, 미래주의, 절대주의, 구 축주의를 두루 거쳤으며 '회화적인 건축학'이라고 칭한 독자적인 화풍을 선보였다. 자유롭고 역동적인 공간 구성과 생동감 있는 색채의 상호작용을 통해 화면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LyubovPopova:TheMagnanimousCuckold,1921,from ArtIntoLife, Catalogue of the exhibition at 8~1953.5.31]- 러시아의 조각가·건축가. 구성주의의 중요 멤버로 예술의 사회 적 유효성을 강조했다. 현실 공간에 신선한 소재를 직접 구성하 여 조형적인 장(場)을 형성하려 했다. 이로써 조형이 생활공간 으로 연결되는 가능성을 열어 현대의 디자인·건축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10년 모스크바아카데미를 졸업하여 1913∼1915년에는입체파의 영향으로 철판 ·유리 ·철사 등에 의한 공간구조를만들어, 구성주의의 선구적 인물이 되었다. 그를 결정적으로공간구성자로 만든 것은 1920년에 공표한 《제3인터내셔널 기 념탑》 계획이다. 이것은 약 400 m 높이의 경사 나선형인 철골구조체이며, 그 속에 원통이나 각뿔 외형을 지닌 큰 공간을 안고 그것들이 일정 주기로 회전하는 내용의 작품이다.구성주의의 중요 멤버로서 활약하던 그는 곧 예술의 사회적 유효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동지인 N.가보나 A.베브스네르 등은 그와 대립하여 서유럽으로 떠났다. 그도 1929년에는 정부로부터 비판받았으나, 그대로 조국에 남아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의 조형은 현실 공간에 신선한 소재를 직접적으로 구성하여 조형적인 장(場)을 형성하려고 한 점이 특징이며, 거기에서 조형이 생활공간으로 연결되는 가능성이 생겼다.그와 같은 의미에서 현대의 디자인 ·건축 등에 끼친 영향은 크다.타틀린타틀린의 탑은 제 3인터네셔널을 위한 기념물로서 주문된 것인데, 이는 파리의 에펠탑을 연상시킨다. 제 3인터네셔널은 국제적 사회주의를 전쟁에 의해 야기되었던 적대관계에서 벗어난 하나의 협동단체로 재결속시키기 위하여 1919년 3월에 결성된 조직이다. 에펠탑은 선전과 오락을 위한 것이었으며 300m 높이로 되어 있었다. 타틀린의 탑은 400m 높이에 달했으며 세계적 기구의 에너지와 열망을 상징하는 동시에 코민테른의 본부 역활을 하는 곳으로 설계되었다. 소용돌이의 구조 각 부분은 격자형의 거대한 형틀로 지지되고 있는데 이 형틀은 수평선에 대하여 60도로 기울어져 있다. 구조 전체가 땅으로부터 솟아나오도록 되어 있으므!!바우하우스는 제1차 대전의 발발과 함께 [청기사]는 해산하였다. 하지만 그 이념은 살아남아서 [바우하우스]에 계승되어져 갔다.그것은 패전의 체험과 전후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인 혼란과 불안의 한가운데서의 종합 건설이었다. 생활과 예술의 통일과 일치였다. 예술적 의지이며, 페시미즘과 니힐리즘의 암흑을 극복하려고 하는 파우스트적 파토스였다.이 [바우하우스]운동은 대체로 약 3개의 시기를 구획하면서 일관해서 전개되었다.1919년 건축가 그로피우스가 바이마르에 개설하였다, 그후[국립 바우하우스]는 사회민주주의 정부하에 기존의 바이마르 대공립미술학교와 고등공예학교를 합병해서 새로이 창설된 종합조형대학, 미술공예학교=조형예술아카데미=예술문화센터,, 말하자면 “근대”에서 “현대”까지의 거대한 가교로 되었다.바이마르 시대(1919~24년) 독일공작연맹(베르크본트, 1907~33년, 제2차대전후 재건) 의 이념을 계승발전시켜 건축을 주측으로 이론,기술,예술의 통일을 목표로 하고 예비적 기초교육(반년간),공장교육(3년간), 건축이라는 3개의 단계를 마련하였다.예비과정의 교육에는 잇텐(Joha-nnes Itten, 1888~1967)이 임하고 조형상의 기본적 여러 요소를 가르쳤으나 후에 그의 뒤를 이은 모홀리=나기 등에 의해 그것은 구성주의적 경향을 지녔다. 다음의 고장교육에는 직물, 목공, 금속, 도자기, 벽화 등의 여러 공방이 있어공작교사와 디자인교사에 의해 실기와 조형이론의 양명에서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마지막에는 이들 교육은 건축이라고 하는 종합체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올리는 것이다.1923년에는 바우하우스 제 1회전이 개최되고, 또 이리하여 1923년부터는 출판활동으로서 [바우하우스 총서]의 간행이 시작되었다.데사우 시대(1925~32년) 제 1차대전 후의 경제적 위기와 1924년의 정변에 의한 보수세력의 대두 때문에 바이마르, 바우하우스는 해산하여 1년의 공백 뒤에 데사우시의 [시립바우하우스]로서 제출발하였다.그것은 교수학생숙사, 무대, 식당, 공장, 건축과 교실, 이다
팝아트 Pop Art (1950-70)1. 용어-팝아트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소비문화의 대중미술이다. 1960년대 초기에 미국에서 발달하여 미국화단을 지배했던 구상회화의 한 경향으로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런던의 '현대미술협회'에서 인디펜던트 그룹 (Independent Group)이라고 지칭하는 그룹에 의해 열린 연속토론에서 출발였으며 영국의 비평가 Lawrence Alloway가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팝아트는 현대 산업사회의 특징인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미술로 수용한 사조로 예술성 자체의 의미라기 보다는 광고, 산업디자인, 사진술, 영화 등과 같은 대중 예술매개체의 유행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에 대해 언급된 명칭이다. '팝 pop'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경향이 있지만 'popular'의 약자로 보는 경향이 유력하다. 즉 통속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서 일상 생활에 범람하는 기성의 이미지에서 제재를 취했던 이 경향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용어이다.2. 배경-1950년대 미국과 영국등지에서는 대량생산과 소비가 절정에 달하게 된다. 자연대신 광고판과 대중매체를 통해 넘쳐나는 각종 이미지들이 '자연'이자 '환경'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다.-추상표현주의에 식상한 화가들이 경쾌하고 가벼운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을 그림에 등장시켰다. 이들은 만화나 텔레비젼 또는 잡지광고들에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기호로 채택하였다.-팝은 대중음악과의 관련성을 의미하며 특히 대중음악의 가수나 그룹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영역과 관련을 맺게 되었는데 대중음악가들이 이례적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성공하였던 것은 1960년대의 괄목할 만한 현상이었다.3. 팝아트의 특징팝아트의 특징은 '개방' 과 '비개성' 으로 집약된다. 이미지의 대중화, 형상의 복제, 표현 기법의 보편화 등에 의해 예술을 개인적인 것에서 대중적인 것으로 개방시킨다. 팝 이미지는 광고, 상표, 만화, 영화등의 대중적 이미지를 한번 더 보기 위한 시각적인 재현으로 대중적인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현대 추상성이 강하다. 팝아트 작가들은 일상의 이미지를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기호나 기호체계로 사용한다. 특히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스타인, 클래스 올덴버그 등은 사회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 즉 예를 들면, 마릴린 먼로의 얼굴, 미키 마우스의 이미지, 세븐 업의 트레이드 마크, 그리고 디크트레이시의 연속만화 따위를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기호체계와 그들 자신의 테마를 겹쳐서 표현했다.팝아트에서 유의할 점은 그들의 모방된 사물들은 대체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한쪽이 시사성이나 정보 미디어로서 효용성을 지니고 있다면, 또다른 한쪽은 오락, 취미, 쾌락과같은 단순한 감각적인 자극제 구실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팝아트의 가장 특징적이고 소란스러웠던 측면은 팝이 형상성을 띠지만, 그러나 그것은 직접 관찰된 실재 그대로의 이미지가 아니라 인공적인 제2의 이미지를 그대로 채택한다는 것이다. 실재로부터 직접 관찰된 이미지는 화면에 옮겨지기 위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가공과정을 거쳐야 했다.고급문화 영역에서 대중문화를 다룬 최초의 사조로 기록될 팝아트이지만 실제로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경계를 허물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고급문화의 체계를 고수하면서도 대중과 친숙한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그 심리적 경계를 허무는 효과가 있었다.4. 영국과 미국의 팝아트의 성격● 영국의 팝아트: 부분적으로는 장엄한 낭만주의에 대한, 1940년대에 영국에서 풍미했던 화풍-지나친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던-에 대한 반작용.영국의 팝아트는 발생초기부터 사회비판의 의도를 뚜렷이 갖고 있었다. 이 운동은 구태의연한 사회질서에 대한 비판으로서 사회와 예술을 접목시키고자 했던 젊은 작가들에 의해서 전개되었다. 이 때문에 영국의 팝아트에서 나타나고 있는 아이러니컬한 성격이나 표현의 직접성 등에는 전통에 대한 다다이즘적인 반응이 보인다.-영국의 대표적인 팝작가는 해밀튼, 파올로찌, 키타이 R.B. Kitaj(미국태생), David Hockney, Allen Jones, Peter Black, Pe인 미학에 대한 반동.미국의 팝아트는 미국의 전위적인 작곡가 존 케이지의 지극히 평범한 것조차도 미적, 예술적인 가치가 있다는 사상에 고무하여 미국의 팝아트는 미국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테크놀로지 문명에 대한 낙관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다. 미국의 팝아트는 흔히 발견되는 일상의 이미지나 물체를 미술작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흘러넘치는 영상 또는 물체를 이용한다는 것 자체는 반미학적이고, 다다적인 사고방식이다.5. 팝아트 작가들● Claes Oldenburg ( 1929~)클래스 올덴버그는 미국의 조각가로 팝 아트의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다. 1950년 말부터 1960년대 초에 오브제(objet)가 관객과 일상적 환경 속에서 전개하는 일련의 충격적인 작품을 시도하였다.일상의 오브제를 거대하게 확대하여 관객의 심리에 충격을 준다든지, 전기청소기나 선풍기 등의 경질기계제품을 부드러운 천이나 비닐로 모조한 해학적 작품을 전시하는 등의 발상은 그의 일관된 방법론이다.1962년 작올덴버그의 처음 3차원 물체들은 도드라지게 만든 석고에 색을 칠해놓은 것들이었다. 튀기고, 얼룩진 것같은 석고의 겉부분을 보면 선보다 색체를 강조하는 추상 표현주의를 떠오르게 하지만 올덴버그는 사물을 생생하게 그대로 옮겨놓기 위해 명암, 색깔 등을 고려하였다.올덴버그는 일상용품을 확대, 변형시킨 작품(타자기, 욕실용구, 선풍기, 석고·헝겊으로 만든 대형 햄버거, 아이스크림, 담배꽁초등)을 제작하였다. 이 작품들이 이례적으로 대규모적이면서도 주제는 상대적으로 무가치한 속성을 드러내어 해학성과 함께 대중 문화·제품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1963그는 자신이 모조하고자 하는 것의 본을 떠서 사용할 원료에다 옮긴다. 본을 뜬 원판은 꿰매지고 잘라지며 부풀려진다. 그가 본을 뜨는 것은 딱딱한 물체로부터 조각되어 지거나 어떤 토대 위에 점토나 밀납으로 빚어지는 독창성 없는 작업과는 다르다. 그의 모형 제작 작업은 안으로부터 이루어지며 그는 얼마나 부풀릴지 무엇으로 속을 채울 사용하였던 것과는 달리 말랑말랑한 소재를 사용하여 조각을 하였다. 그러므로 예전의 사람들이 암시적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부드럽고 현재 작가들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처럼 실재적인 느낌을 모두 갖추고 있다.또한 언제든지 변형이 가능한 듯한 부드러운 형태로 작품을 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소재들을 실물 크기가 아닌 거대한 크기로 변형시켜 관객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작품을 바라볼 때 일종의 괴리감에 사로 잡히게 된다. 그 당혹스러움은 굉장히 낯익은 것이면서도 아주 낯선 어떤 대상을 대하고 있는 이질적인 느낌에서 파생된다.1970년대 초부터 올덴버그는 다수의 공공 조각을 제작했다. 그는 실외의 대형 조각물 역시 일상적 소품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시청 건물 앞에 서 있는 거대한 빨래집개를 보자. 배경의 건물과 비교되어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올덴버그는 야구 글러브, 호미, 플러그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우리가 항상 사용하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물들을 대형조각물로 제작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무가치한 대상들에 기념비성(monumentality)을 부여하였다. 통상 기념비라는 것은 어떤 상징성을 띠는 중요한 대상이라 하겠는데, 올덴버그의 대형조각들은 그러한 상징성을 갖고 있지 않다.Clothespin, 1976Saw, Sawing, 1996Claes Oldenburg and Coosje van Bruggen, TokyoCorridor Pin, 1999Stainless steel and aluminum painted with polyurethane enamel Courtesy of Grant Selwyn Fine Art, New York and Los Angeles클래스 올덴버그는 대량소비와 물질숭배, 인간소외의 위기의식이 팽배했던 1960년대 미국사회에서 부와 편리성을 추구하며 대중적 이상에 몰두하던 사람들에게 그들이 머무는 일상의 실존을, 해학적이면서도 아이러니컬하게 들어내는 작업들을 진행로 만들고, 그들의 관념적 정체성을 흔들어 놓음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비로소 자신의 일상을 새롭게 돌아보게 하는 ‘되돌려놓음’의 효과를 이루어냈던 것이다.● Andy Warhol(1928-1987)-워홀은 현대미술의 아이콘이다. 살아있는 동안 이미 전설이었던 그는 동시대 문화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이를 시각화해내는 직관을 가지고 있었다. 워홀은 자신의 예술을 '세상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기계이기를 원했던 워홀은 기계와 같은 미술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기계를 통해 무한히 복제되는 세계 속에서 그의 이미지도 그의 명성과 함께 증식을 거듭하고 있다. 60년대부터는 활동영역을 확대하여 영화제작, 무대장치, 록음악 그룹에 참여, 자신의 실크스크린 공방을 세운 뒤 작업지시서를 통해서 작품을 대량으로 생산해 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에 사인을 해서 판매. 예술은 비즈니스라고 공공연하게 언표하며 예술의 상업성을 강조하였다.- 영화배우와 같은 유명인들(마릴린 몬로, 엘비스 프레슬리, 엘리자베스테일러) 그외의 공적인물(재키 케네디, 워홀 자신 등), 또는 범죄인들, 공포스러운 소재인 전기의자나 자동차 충돌장면, 그리고 소나 꽃과 같이 평범한 형상들은 캔버스위에 반복함으로써, 그리고 많은 경우에서와 같이 거의 임의적인 색채를 첨가함으로써 지극히 애매모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됨. 그 형상은 보다 평범한 것이 되기도 하는 동시에 눈에 띄는 것이 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끔찍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 이러한 형상의 진부함에 혐오감을 느끼기도 하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쉽게 이용한다는 사실을 깨닫게도 되며, 또한 우리가 교통사고에 의해 매일 일어나는 사고사를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의식하게도 된다. 워홀은 항상 자신의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1962제작 방법역시 자동 기계복제방식인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사진처럼 무수한 복제가 가능하고, 누가 제작하든 상관없는 작가의 개입이 배제된 익명성, 복수의 형태로 진행하는 반복성이 지루함과 단조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