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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토피아(발표문)
    유토피아(Utopia)이상향을 의미하는 유토피아라는 용어는 1516년 출판된 모어의『유토피아(Utopia)』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모어는 그리스어로 ‘없다’는 뜻의 ou와 ‘장소’의 의미를 갖는 topos를 합쳐서 ‘어느 곳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의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만들었다.『유토피아』에서 유토피아 섬은 신세계에서 발견된 ‘어느 곳에도 없는 곳’, 새로운 곳을 가리키지만 이것이 곧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유토피아의 의미, 즉 이상적인 완전한 사회를 뜻하는 지는 분명하지 않다. 흔히 생각하듯이 모어가 말하는 어느 곳에도 없는 신세계가 곧 모어가 주장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사회였는지에 관해서는 좀 더 조심스러운 독해와 분석이 필요하다.)1. 유럽의 현실적 문제점(1권)가. 라페엘과의 만남 그리고 현실참여의 문제모어가 왕명을 받고 협상을 목적으로 플랑드르)에 갔을 때 에라스무스는 그 사절단에게 안트베르펜 시의 사무관이자 사업가인 자일스(Peter Giles)를 소개해주었다. 플랑드르에 있는 동안 모어는 자일스와 친하게 지냈는데 실제 인물인 모어와 자일스, 그리고 가상의 여행가 히슬로다에우스)가 『유토피아』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이야기는 어느 날 안트베르펜에서 교회 예배 후 세 사람이 만나면서 시작된다. 자일스는 모어에게 본래 학자였으나 세상 문물을 다양하게 접할 생각으로 베스푸치(Amerigo Vespucci)와 함께 여행을 했던 히슬로다이우스(Raphael Hythlodaeus)를 소개한다. 히슬로다이우스의 경력에 관심을 가진 모어는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대화의 한 축은 당시 르네상스 유럽에서의 논쟁들이며 다른 축은 히슬로다이우스가 가보았다는 유토피아라는 섬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토피아』1권은 주로 당시 유럽의 논쟁거리에 관한 모어와 히슬로다이우스 간의 대화이며 2권은 히슬로다이우스에게서 들은 섬 이야기를 옮긴 것이다.자일스를 통해 처음 만난 히슬로다이우스와 모어가 제 1권에서 처음으로 나눈 대화는 철학자에 의한 정치 참여의 적실성에 관한 것이민들이 일할 터전을 잃어버린 상황과 소비를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절도범의 증가를 막는 방법은 절도범에게 지나치게 엄한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자에게 토지를 주고 소수 부유한 자들의 시장 독점을 방지하며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히슬로다이우스는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조처들이 없어 사회가 절도범을 양산하고 그들을 처벌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심한 형벌을 내리는 것은 범죄 예방책이 될 수 없으며 범죄의 원인을 찾고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히슬로다이우스는 범죄를 증대시키는 가장 근복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사유 재산의 인정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특히 모어와 히슬로다이우스가 보다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인다. 히슬로다이우스는 정의가 실현되는 국가를 만들고자 할 때 사유 재산은 가장 큰 걸림돌이라면서 사유 재산 제도의 폐해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어쨌든 제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자면, 친애하는 모어 씨, 사유 재산이 존재하고 모든 것이 돈이라는 관점에서 판단되는 한, 저는 진정한 정의나 진정한 부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 지 알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사유재산제도가 완전히 폐지되기 전에는, 공정한 재화의 분배나 만족스러운 인간 생활 조직이 결코 달성될 수 없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사유재산제가 존재하는 한 대다수의, 아니 절대 다수의 인류가 불가피하게 빈곤과 고난과 근심이라는 무거운 짐 아래에서 계속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물론 히슬로다이우스도 재화가 인간 행복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이 배타적인 소유권이 된다면 더 이상의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모어는 생활 수준이 향상되려면 물량이 증가해야 하며 개인의 재산을 지켜주는 제도야말로 인간의 행복에 꼭 필요하다고 반박한다.저는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합리적인 생활 수준을 누리게 된다는 말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런 체제하에서는 늘 결핍 현상이 있게 됩니다. 누구도 열심히장하게 된다면 군주 스스로가 그러한 방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데에는 한계를 보이게 되고, 그 때는 이미 국가를 나누어 다스리기에는 늦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가지고 있는 영토에 대한 보다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길게 언급한 것과 같이 ‘유토피아’에서는 사적 재산의 개념이 없는바 이러한 토지의 개념 또한 개인의 재산이 아닌 공동의 것이다.또한 ‘유토피아’는 농업중심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여기에서 아주 특이한 사항을 발견하게 된다.나라 전역에 걸쳐 농사 장비가 완비된 농가가 있고, 도시 거주민들은 차례로 돌아가며 정기적으로 이 농가에 가서 살게 됩니다. 각 농가는 적어도 40명의 성인들과 그곳에 상주하고 있는 노예 두 명을 수용합니다. ······매년 각 농가에서 스무 명의 도시 거주민들이 시골에서의 2년간의 복무를 마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며, 그 인원을 또 다른 스무 명이 새로워 대체합니다. ······이런 제도는 농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경험이 없는 자들일 경우 초래될지도 모르는 식량 부족 현상의 위험성을 줄여줍니다. 농사 의무 복무 기간은 2년입니다. 따라서 누구도 너무 오랜 동안 거친 농사일을 하도록 강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골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라면(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습니다.) 더 오래 머물도록 특별 허락을 받을 수 있습니다.)이러한 강제적인 교류 혹은 이주는 아마도 이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농업을 육성하며, 도시에서의 문화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나누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다. 당시 영국, 유럽의 농촌의 현실을 본다면 대농장으로 인한 농토를 빼앗기며, 그로 인한 채소나 곡물류에 대한 가격상승에 대한 이상향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강제적이지만 농촌과 도시의 이러한 교류를 통하여 백성들 모두가 농업기술을 가지게 되며 농업의 중요성과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일 것이다.나. 정치 형태와 외교30가구나 혹은 30개 농장마다 ‘시포그란투스(Syph여 매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법률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해석에 따라서 다른 결론에 이룰 수 있는 모호한 구절이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양국의 동맹도 신의도 파기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로써 ‘유토피아’는 국가 간의 동맹이나 조약의 도덕적, 정치적 의무나 정의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한 것은 곧 군주들의 일단의 처세술 혹은 거짓된 술수로 판단하기 때문이다.국가 간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선한 의도와 거짓됨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로써 이루어지는 유대관계다. 군주들의 끊임없는 탐욕으로 인한 국가 간의 전술상의 동맹이나 조약은 거짓됨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문제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법률이나 맹세를 통한 파괴되어질 수 있는 얇은 눈속임보다는 인간 스스로의 진실 된 마음과 양심이 중요한 것이고 그것은 국가로 소급될 때 군주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국가 간의 외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피할 수 없을 때는 전쟁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예컨대 자국의 방위, 침략으로부터 우방국 보호, 혹은 폭정으로부터 인민의 해방 등이 그러한 상황이다.) 유토피아인은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지 않고 일정한 군사훈련을 받으며 전쟁에 있어서 살육전으로 번지기 전에 책략이나 전략, 외교적 노력을 통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한다. 또한 그들의 백성으로 구성되어진 부대는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 동원되어지며 먼저 각국에 있는 용병들로 하여금 최상의 보상금을 약속하며 용병을 모집한다. 그리고 다음은 주변국으로 하여금 가상의 적국을 공격하도록 획책하거나 회유하여 상대 적국을 고립시키고 최후의 수단으로 그들의 부대를 직접 투입한다. 이러한 모든 전쟁에 있어서의 전략은 ‘유토피아’의 막강한 경제적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여진다. 외국과의 어느 정도 자유 무역을 실시하지만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인간이 육체와 정신에서 실제로 환희를 느끼는 상태와 그곳으로 가는 모든 운동을 쾌락이라 부릅니다.)따라서 모든 쾌락이 아니라 “자연적 쾌락성(natural pleasantness)을 가져오는 것만이 유토피아인들이 추구하는 쾌락이다. 추잡스럽거나 불명예스러운 욕망이 빚은 전도되고 악의적인, 깜빡이는 유횩을 통해서는 결코 심신의 쾌락성이 얻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유토피아인들은 만사가 평등하며 빈부귀천의 구별이 없다. 차별이 있다면 연령에 따라 그 순서를 정한다.) 그러나 독특하게도 노예제도가 존재하는데 주로 징역받은 사람, 외국군의 포로들이며, 이들은 가축도살자, 청소, 심부름꾼의 일을 담당한다.유토피아인들이 노예로 삼고 있는 전쟁포로들은 오직 자기들이 직접 싸운 전쟁에서 붙잡힌 자들뿐입니다. 노예의 자식들이라고 해서 노예로 삼지 않고 노예를 외국에서 사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국 시민으로서 극악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노예가 된 자들이거나, 외국인으로서 자기 나라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자들인데, 후자가 그 대부분을 차지합니다.)하지만 분명히 언급되어 진 것은 노예에 의존한 경제제도나 사회생활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봉건사회에서의 노예제도와 동일시 할 수 없으며 신분이 세습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노예생활을 자원하는 외국인들도 있는데 유토피아인들은 그들을 알뜰히 다루고 거의 시민이나 다름없이 친절하게 대접한다. 혹 그중 떠나려는 자가 있으면 억지로 붙들어 매놓지 않으며 빈손으로 보내지도 않는다고 한다.유토피아에서의 시민생활 중에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결혼 생활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일부일처제로 철저히 순결을 강조하는 가족제를 가지고 있다. 여자는 18세와 남자는 22세 이상이 되어야 결혼을 할 수 있으며,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육체적 과오가 들어났을 때에는 엄격한 제재를 의회로부터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사람들의 난잡한 성교행위가 엄격히 규제되지 않는다면 애정이 담긴 결혼생활 - 오직 한
    인문/어학| 2011.03.14| 10페이지| 1,000원| 조회(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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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수이성비판(발표문) 평가A+최고예요
    순수이성비판 Kritik der reinen Vernunft1. 머리말(Vorrede)그는 초판의 머리말(Vorred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독단론자(Dogmatiker)들처럼 그저 ‘폭군적으로’ 형이상학에 매달려 있어서도 안 되고, 또 자기의 실패에 지쳐버린 회의론자(Skeptiker)들처럼 간단히 무관심주의(Indifferentismus)에 빠져서도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이성의 자기 인식을 문제 삼지 않으면 안 되고, 이성에게서는 그 정당한 요구를 보장해주나, 이와 반대로 근거 없는 모든 월권을 권력자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의 영원하고 변치 않는 법칙에 따라 거절할 수 있을 그런 법정을 설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런 법정이야말로 순수이성 자체의 비판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즉 이성이 모든 경험과는 상관없이 얻어내려고 하는 모든 인식에 관한 이성능력 전체에 대한 비판이고, 따라서 형이상학 전체가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으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고, 형이상학적 원천, 범위 및 한계 등을 규정하는 것이다.주목할 만한 것은, 칸트에게 있어서는 형이상학적인 인식이 경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타당하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형이상학적인 인식은 그저 선천적(a priori)인 판단을 내포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것을 요구하는 것이 이런 인식 원천의 특성이다. 그래서 그는 머리말에서 자기의 이성 비판의 과제를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나타내게 되었다. 주된 물음은 언제나, 오성과 이성이 경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무엇을 얼마만큼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칸트의 핵심적인 문제는 이성의 자기 인식이며, 사고하는 능력 자체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것은 아니다.2. 서론(Einleitung)가. 순수 인식과 경험적 인식의 구별에 관하여우리의 모든 인식이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는 것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인식능력이 대상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무엇에 의해서 그 활동을 개시하도록 깨우쳐지겠는가? 대상은 우해 볼 수 있는 범위와 한계를 완전하고도 정확하게 정하는 것이 수월할 것이다.' 칸트는 이러한 작업을 비판을 통해 수행하고자 한다. 즉 모든 인식을 경험으로부터 독립시키려고 하는 이성 능력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형이상학 일반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한다.3. 선험적 감성론(transzendeltale Aesthetik)가. 감성의 형식 - 空間, 時間감성이란 대상이 우리를 촉발하는 방식을 통해 표상을 받는 능력이다. 감성이 대상에 의해 촉발을 받아서 생기는 결과를 감각(Empfindung) 또는 경험적 직관(Anschaung)이라 한다. 그런데 직관에는 대상이 감성을 촉발해서 생긴 경험적 직관과 순수 직관 두 가지가 있다. 한편 현상에는 '현상의 질료'와 '현상의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 '현상의 질료'란 경험적 직관, 즉 감각이고, '현상의 형식'은 현상의 다양한 질료를 질서지우는 형식이다. 그런데 이 형식은 현상의 질료, 즉 감각(경험적 직관)이 들어오기 전에 논리적으로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의 형식'을 다른 말로 '감성의 순수 형식' 또는 '순수 직관'이라고 한다.나. 선험적 감성론의 기획선험적 감성론이란 'a priori한 감성의 모든 원리에 관한 학'이다. 선험적 감성론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감성을 오성과 분리시켜, 경험적 직관만을 남긴다. 다음 경험적 직관에서 감각에 속하는 것과 현상의 단순한 형식(순수 직관)을 분리시킨다. 그 결과 우리 인식의 원리로서 감성적 직간의 두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 외감이라고 부르는 공간과 내감이라고 부르는 시간이다.1) 공간에 대하여▷ 공간에 대한 형이상학적 구명 - 공간의 형이상학적 구명을 통해 공간이 a priori함이 밝혀진다. 하나의 개념 속에 속하는(비록 상세하지는 않더라도) 판명한 표상을 구명(究明)이라한다. 그러나 이 구명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개념을 의미하는 것을 포함할 때에는 형이상학적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근거로 증명된다. ① 공간은 경험에서 이끌어지지 않는 a p순수 이성 인식들에 관한 학문의 이념이다. 따라서 인식의 근원, 범위, 객관적 타당성을 규정하는 논리학으로 여기서는 오성의 법칙과 이성의 법칙만을 다룬다. 하지만 일반 논리학처럼 경험적 인식과 무차별적으로 관계를 갖지 않고, 단지 이 법칙들이 선천적인 대상과 관계를 맺는 범위 내에서만 그 법칙들을 다룬다.▷ 순수 논리학과 선험적 논리학의 차이점 - 순수 논리학은 사고의 내용과 경험적 원리를 도외시한, 사고의 형식만을 다루지만, 선험 논리학은 그 형식적 사고의 법칙이 선천적인 대상과 관계하는 경우, 그 때의 형식적 사고의 법칙을 다룬다. 선험적 논리학이 선천적인 대상에 관계하는 두 능력인 오성과 이성의 법칙을 다루므로, 우선 오성 법칙을 다루는 선험적 분석론과 이성 법칙을 다루는 선험적 변증론으로 나뉘게 된다.가. 선험적 분석론선험적 분석론이란 '우리의 모든 선천적 인식을 순수 오성 인식의 요소로 분해하는 것'이다. 즉, 인식의 가능 근거를 묻는 선험적 입장에서 오성 능력 자체를 분해하는 것이다. 칸트는 선험적 분석론에 있어, 즉 모든 선천적 인식을 순수 오성 인식의 요소로 분해함에 있어 중요한 점을 네 가지 지적한다.① 개념은 경험적 개념이 아니라, 순수한 개념이다.② 개념은 직관이나 감성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와 오성에 속한다.③ 개념은 기본적 개념으로, 파생 개념이나 합성 개념이 아니다.④ 개념의 표는 완전하고, 순수 오성의 모든 분야와 완전히 일치한다.1) 개념의 분석론개념의 분석론이란 개념의 분해나 또는 제시된 개념을 분석하여 판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성 능력 자체를 분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오성 능력의 순수한 사용 일반을 분석함으로써 선천적 개념들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 칸트는 이것을 선험 철학의 진정한 과업이라 말한다. 칸트는 감성적 지성에 대해 요구했던 것을 사고에 대해서도 역시 요구한다. 혼잡한 감관 감각들이 근원적인 선천적 원리에 의해 철저하게 탐구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사고도 철저하게 탐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선천적 다. 오성의 범주와 대상과의 관련성은 감성의 형식에서와 같이 당연하지 않다. 즉 사고의 형식의 객관적 타당성에 대한 정당화가 필요하다. 또한 이 연역은 경험적 연역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오성의 개념은 이미 경험에 독립적인 것이고, 경험적인 실례를 통한 정당화는 상대적인 보편성만을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경험적 연역이 아닌 선험적 연역이 필요하다.▷ 선험적 연역의 과정▶ 결합(verbindung)인식은 직관이든 개념이든 간에 다양한 것들의 결합(verbindung)이다. 칸트가 종합이라 부르는 이 결합은) 감관에서, 그리고 객관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감성적 직관의 순수 형식에서도 기인하지 않는다. 이 결합은 오직 오성에서 유래한다. 즉 오성이란 결합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오성은 자발성의 활동이기도 하다. 즉 모든 종류의 결합은 오성의 작용이다. 물론, 결합이란 이러한 종합의 개념 외에 다양의 통일이라는 것도 포함한다. 즉 결합은 '다양의 종합적 통일의 표상'이다.▶ 선험적 통각(transzendentale Apperzeption))오성의 결합하는 능력으로, 직관의 다양이나 개념들을 종합한다. 하지만 결합은 이 종합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결합은 '다양의 종합적 통일의 표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일은 범주 중에 있는 단일성과는 다르다. 오히려 범주들은 이 통일의 표상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이 통일은 단일성의 범주와는 높은 단계에 있는, 근원적인 표상이다.이러한 통일을 통각의 근원적 통일이라고 한다. 통각은 '나는 생각한다'로, 자기 의식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통각의 선험적 통일을 자기 의식의 선험적 통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직관의 다양이나 개념이 만일 자기 의식에 속하지 않는다면 나의 표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범주의 사용 범위(한계)'대상을 사고하는 것과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다르다. 대상에 대한 인식에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하나는 직관이다. 이 직관을 통해서 대상이 주어진다. 다른 하나는 개념이다이다. 이 합리적 심리학의 영혼론의 주요 목표는 영혼의 불멸성을 증명하는 데 있다.① 영혼(사고하는 존재)은 실체다.(관계)② 영혼은 그 성질상 단순하다.(성질)③ 영혼은 상이한 시간 속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수적으로 동일하다. 즉 단일성이다.(분량)④ 영혼은 공간 안에 있는 가능한 대상과 상호적으로 관계한다.(양태))이러한 네 가지 주장으로부터 영혼의 비물질성, 불가분성, 정신적 성격, 그리고 (합리적 심리학의 영혼론의 본래 목표인) 불멸성이 도출된다. 그러나 합리적 심리학의 절차에서 행해지는 오류 추리는 다음과 같은 삼단 논법으로 요약된다.)① 주어로서밖에 생각될 수 없는 것은 실제로 주어로서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이 실체이다.② 사유하는 것은 사유하는 것으로서만 고찰되는 한에서 주어로서밖에 생각될 수 없다.③ 그러므로 사유하는 것은 또한 주어로서만, 곧 실체로서만 존재한다.타당한 추리는 대전제와 소전제가 공유하는 매개념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런데 대전제의 매개념과 소전제의 매개념은 서로 동일하지 않다. 즉 소전제의 매개념은 선험적인 자기의식, 즉 '모든 개념 일반에 대한 순수한 형식적인 운반구'를 의미하지만, 대전제의 매개념은 (선험적 자아가) 아니라, 객체적 자아, 즉 내적 경험의 대상으로서의 실재적 자아를 의미한다. 따라서 각각의 전제가 가지는 매개념이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됨으로써, 이 추리는 오류 추리가 된다. 즉 매개성 다의성의 오류(sophism figurae dictionis)에 의해 기인하는 오류이다.말하자면 이들 증명은 의식의 단순하고 동일하며 필연적인 주관, 즉 모든 표상들과 구별되는 “나는 생각한다”에 근거를 두고서, 이러한 (단순성, 동일성, 필연성과 같이 주관의 사고적 특성에 속하는) 모든 술어들을 하나의 사고하는 존재자에 실재적인 객관이라는 개념을 갖다 붙이는 오류 추리에서 기인한다. 이와 같이 사고 주관으로부터 영혼의 실체로의 이행은, 이 경우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직관이 여기에서 요구되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이다.
    인문/어학| 2011.03.14| 13페이지| 1,000원| 조회(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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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롤즈의 정의론(발표문)
    롤즈의 정의론가. 여는 글자유주의 정치 철학은 자유를 인간의 본질로 이해하고 이에 입각한 정치원리를 규명하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자유주의 정치 철학의 핵심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개인의 자유로운 가치관에 입각하여 선정한 인생 계획과 의도에 따라 자신의 삶을 영위해 갈 수 있는 정치 환경을 설정하려 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정치 환경을 규정하는 정치 원칙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 각 개인은 이에 대한 동등한 합의권 또는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갖지 점은 개인이 자신의 인생 및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정치 환경 설정의 주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정치 철학자들은 이러한 두 가지 점에 입각하여 정치 환경의 기본 제도를 규정하는 정치 원칙의 도출 과정 및 내용에 있어 차이를 보여준다.나. 자유주의의 역사적 발전 과정1. 고전적 자유주의 - 로크, 스미스고전적 자유주의는 제한 정부, 법치, 자의적이고 무분별한 권력의 방지, 사유 재산과 자유 계약의 신성성, 자신의 운명에 대한 개인들의 책임의 개념에 이론이 집중되어 있다. 많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도덕과 문화의 문제에 있어서 유용한 진전을 가져 올 수 있는 일반 사람들의 능력에 대하여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한 고전적 자유주의는 복지 국가에 대하여 반대하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복지 국가는 개인 각자가 자신의 복지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위배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복지 국가는 종종 사회 정의의 구현이라는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표방하는데, 이 사회 정의라는 이상에 대해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2. 수정적 자유주의 - 그린, 홉하우스고전적 자유주의에서의 자유란 언제나 의도적으로 부과된 제약이나 강제가 없는 상태로 묘사된 소극적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새로운 수정적 자유주의는 그러한 형태의 자유라는 것이 정치적 이상으로 고무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에게 자유란 가치 있는 행동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가난, 질병 등)를 제거하는 sm) 또는 신우파(the new right)로 규정되는 레어거노믹스(Reaganomics)와 대처리즘(Thatcherism)은 모두 현대 보수주의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경제적 영역과 도덕적 영역 모두에서 국가개입의 최소화를 주장하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가 있는데, 이것이 신자유주의로 이해되기도 한다.)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 자유주의는 최근 ‘합의의 정치’ 모델을 이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자유주의 세 번째 단계이다. 합의 정치의 이론은 롤즈의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 또는 토론과 이성적 숙고를 강조하는 심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 논의를 통해 형성되고 있다. 이 단계의 특징은 개인이 정치 체제의 근본 원칙 수립의 저자(author)가 된다는 점이다. 이 단계의 자유주의에서는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 보호는 부수적인 것이며, 정치 체제를 운영하는 근본 원칙 수립을 개인의 자유 행사의 본질로 간주하는 적극적인 측면이 나타난다.자유주의의 현대적 유형으로서의 롤즈의 『정의론』은 정치적 · 경제적 자유와 권리의 확보라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성과와 공정한 기회 균등과 분배적 정의의 실현이라는 두 요소를 사회 계약론적 입장에서 종합하고자 한다. 그의 이론은 자유주의의 철학적 근거로 작용해온 공리주의의 약점(전체 복지라는 미명아래 발생할 수 있는 소수자 인권 침해의 가능성)을 극복하겠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자유주의 정치 철학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롤즈의 자유주의는 “신칸트적 좌파 자유주의” 혹은 권리준거적인 “칸트적인 의무론적 자유주의”로 명명된다.)다. 자유적 평등주의 : 롤즈의 정의론롤즈는 사회를 ‘행위를 구속하는 규칙을 서로 승인한 사람들과 규제에 부응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연합체’ 라고 가정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규제는 ‘선’을 지향하도록 계획된 협동의 체계를 규정하는 것으로써, 협동체계 안에서 사람들이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 전제하였다. 그래 적음이나 사회적 지위의 높낮이에 대해 아는바가 없어야 한다. 둘째, 기술 발전과 그것에 필요한 자원과 같은 문제를 입법화할 때 전제가 되는 사회의 속성에 대해서 무지해야 한다. 셋째, 미래에 다가올 상황에 대해서 몰라야 한다. 이러한 롤즈의 의도, 즉 원초적 상황과 무지의 베일이라는 개념들을 도입하여 가상적 상황을 상정하는 롤즈의 의도에서 그가 공정성을 무지와 연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다) 계약 당사자들의 특성이상과 같은 무지의 베일은 계약 당사자들의 상호 협동이 가능하고,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자신이 필요로 하는 권력이나 재화의 취득을 요구한다는 사실 등을 전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당사자들은 사회 이해관계의 갈등과 자원의 희소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갈등보다는 협력을 추구함으로써 그들의 사회가 정의의 환경 에 복종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또한 당사자들은 서로의 목표나 의도에 상관하지 않고, 특별한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이해가 없는 관계이며, 자신들이 가능한 많은 제 1차재)를 필요로 함을 알고 있는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시기심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즉,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많은 것을 획득한다 해도 여전히 제 1차재를 획득하기를 원하며 자신의 몫을 거부하지 않는다. 당사자들 자신의 특별한 삶의 계획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고, 단지 그것을 밑받침해 줄만큼의 충분한 재화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으며, 협상에 있어서는 자신들의 몫을 늘리려는데 관심을 가지고, 유리한 위치를 불공정하게 부여해 줄만한 사안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이상에서 볼 수 있는 롤즈의 기본적인 생각은 합리적인 사람들이, 원초적 입장에서, 공정한 절차에 의해, 사회 제도나 규칙을 결정한다면 비록 그 결과가 부정의 하더라도 우리는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롤즈는 원초적 입장의 개인들은 다음과 같은 두 원칙에 합의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첫째,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유사한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기본적 자유에 대하여 동본적 자유제 1원리의 기본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선거권과 피선거권), 언론과 집회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 (사유) 재산 및 신체의 자유, 그리고 법의 지배라는 개념에 의해 규정되는 바 부당한 체포 및 구금을 당하지 않을 자유 등이다. 이러한 모든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정의로운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3) 자유 우선성의 원칙정의의 제 1원리는 다른 정의의 모든 원리에 대해 절대적 우선성을 가지는데 롤즈는 이를 자유 우선성의 원칙 이라 한다. 그는 "모든 사람은 전체 사회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자유의 불가침성을 갖는다" 고 하며 공리주의와 같이 타인들이 갖게 될 보다 큰 선을 위하여 소수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자유의 평등성에 대한 제한은 오로지 덜 평등한 자유가 더 적은 자유를 가진 사람의 자유를 보다 확고히 해 줌으로써 그에게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경우와 모두가 공유한 자유의 전 체계를 강화할 수 있는 경우에 제한될 수 있다. 즉, 자유의 제한은 오로지 자유 자체만을 위해서 가능한 것으로 자유 이외에 사회적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 유보될 수는 없다. 또한 기회의 불평등이 허용되는 경우는 그러한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기회를 덜 가진 사람들의 기회를 확대시킬 때이다. 즉, 불평등이 평등을 유도할 때이며, 다음 세대를 위하거나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저축은 그것으로 인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의 부담을 반드시 덜어주도록 해야 한다.(4) 우선성의 근거우선성의 근거로는 첫째,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이 다른 무엇에 의해서도 희생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종교적 도덕적 관심을 갖는다. 종교적 도덕적 관심을 가질 자유는 기본적 자유 중 가장 중요한 양심의 자유로서 이것이 어떠한 경제적, 사회적 이득이라는 명분에 의해서도 제한될 수 없다. 이런 추론의 결과로 양심의 자유에 대한 우선성은 일단 확보되었으나 제 1원리는 그것뿐만이 아니라 여러 기본적 자유를 그 분배의 대상으로 게 된다. 그러므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적 연합의 자유로운 활동이 우선되어야 한다. 롤즈가 사회의 기본구조에 있어서 자유 우선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자존감의 지지가 자유 활동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일 자유로운 활동이 아니라 경제적 소득과 사회적 지위가 자존감을 높여 준다고 한다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보다 많은 소득과 높은 지위를 위해 다른 사람의 더 적은 소득과 낮은 지위를 초래할 수도 있어 이렇게 되면 성원 간에 불화가 조장되고 서로의 자존감을 손상시키게 된다.롤즈가 이상과 같은 평등한 자유의 이념을 제 1원리로 채택하고 있는 것은 그의 정의론이 근대 자유주의적 이념에 기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자유주의 이념에 수정을 가하여 그 속에서 민주주의적 평등의 이념을 구현하고자 한다. 이것은 평등한 자유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제 1원리가 제 2원리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는 데서 발견할 수 있다. 만일 제 1원리가 제2원리와 결부되지 않으면 평등한 자유의 원칙은 형식적인 원리로만 남게 될 것이다.인간이 실질적인 자유를 누린다고 하는 것은 사회협동체계에 가담함으로써 가능한 것이고, 어떤 규율체계가 권리와 의무, 권한과 책임, 직위와 직책 등에 차등을 두는 것은 사회적 협동체를 영위해 가는 필수적 방식이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규율체계를 가지고 있을 경우 그것이 비록 차등의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평등한 자유를 실질화하고 구체화 시키는 조정의 개념이다. 따라서 정의의 제 2원리의 주요 관심사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차등적인 분배의 몫을 어떻게 정당하도록 규정하느냐에 있다.나) 제 2원리 : 차등의 원리(difference principle)소득, 부, 권력 등에서 어떤 불평등을 용인하고, 분배될 재화의 양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으면 불평등도 용인할 수 있는 것인가? 롤즈는 제 2원리인 차등의 원리에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득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직책과 직위에 결부되도 한다.
    인문/어학| 2011.03.14| 7페이지| 1,000원| 조회(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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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레니즘 윤리설
    헬레니즘 시대의 윤리 사상(스토아, 에피쿠로스, 회의학파)1. 헬레니즘 시대헬레니즘 시대(Hellenistic Age)는 그리스 문화가 모든 지중해 국가들의 공통적 특성이 되었던 시기의 기간을 이르는 말이다. 알렉산더 대왕(B.C. 356-323)의 죽음에서부터 로마의 정복에 이르면서, 그리스 문화는 로마 귀족 사회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교화된 유대 서클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로마와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나갔다. 알렉산더 대왕이 중동 지방을 정복한 결과 이루어진 문화의 융합과 종족의 혼합 때문에 고전 문화의 이상은 대부분 상실되고 말았다. 그 대신 여러 요소들이 혼합된 새로운 형태의 문명이 형성되었다. 역사가들은 이 문명을 고전적인 그리스 문화(Hellenic Culture) 와 구별하여 헬레니즘 문화(Hellenistic Culture)라 부르고 있다. 헬레니즘 문화는 폐쇄적이며 자족적인 폴리스 문화에 동방적 요소가 가미되어 형성된 것이었다. 그 결과 개방적이며 보편성 있는 문화가 되었고 각 {) 이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은 19세기 독일 역사학자인 드로이젠 이었다. 그는 로마게르만 두 요 소의 복합을 로마니즘이라고 부르는 데 착상하여, 그리스·오리엔트 두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 아 질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새로 태어난 문화를 헬레니즘이라 불렀다. 헬레니즘은 헤브라이즘과 함 께 유럽문명의 2대 원류 중 하나이다. 19세기 영국 문예평론가 M. 아놀드가 유럽정신 형성의 2가지 원류로서, 그리스도교와 고전적 전통을 들어 각각 <헤브라이즘> <헬레니즘>이라 표현한 뒤 일반 화되었다.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흡수 융합하여 로마에 연결시키는 교량 역할을 한 시기로써 세계 시민적이고 개방적이며 보편적인 문화적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헬레니즘 시대의 범위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멸망, 또는 로마의 이집트 합병에 이르는 약 300년 동안으로 본다. 지역 범위는 그리스·마케도니아세계를 중도 있었다.학파가. 유래와 발전스토아 학파의 창시자는 키티온 출신인 제논(Zenon, B.C 336-264)이었다. 제논은 청년 시절 윤리적인 가르침, 특히 소크라테스의 용기 있는 죽음에 감명을 받아 철학적 삶을 삶의 목표로 삼은 인물이다. 그는 논리학, 물리학, 윤리학의 탐구에 힘썼으나 점차 윤리적 분야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스토아 학파는 초기와 중기, 후기로 나누어지는데, 제논에 의해 시작되어 중기에 로마로 전파로 되고, 후기에 이르러서는 세네카(Seneca, B.C 4 - A.D 65)에 의해 더욱 발전한다. 세네카는 후기 스토아 학파의 대표적 철학자이다. 로마 황제 네로의 스승이었으나, 황제의 의심을 받아 황제의 명령으로 자살했다.나. 사상1) 운명론스토아 학파의 중심 분야는 논리학, 물리학 그리고 윤리학이다. 이를 정원에 비유하면 논리학은 정원의 울타리이고, 물리학은 나무에 해당하며, 윤리학은 그의 열매이다. 스토아 학파는 논리학을 통해 언어를 연구했고, 물리학을 통해 우주의 근원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윤리학을 통해 인간의 행복을 추구했다. 그들의 윤리는 한마디로 정해진 자연 질서에 순응하는 운명론이었다. 그들에 의하면 이 세계는 정해진 질서에 따라 미리 예정되어 있고, 인간은 이를 피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스토아 철학자들이 제기한 중심 과제는 참다운 윤리적 삶을 위한 법칙을 찾아내어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특수한 인간적인 본성에서 즉 이성 에서 성립한다. 오직 이성만이 인간을 짐승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보다 더 높은 피조물로 고양시킨다. 이렇게 이성에 적합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스토아 철학자들의 최상의 도덕 원리였다. 이성 법칙은 윤리법칙 자체이다. 이성 법칙은 운명론과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 이성 법칙의 핵심은 운명이라고 하는 우주의 섭리를 깨달아 아는데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에 따라서 사는 사람이 apatheia(부동심)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고, 진정한 현인(賢人)이었다. apatheia는 마음을 완전음을 맞이한 소크라테스적 자세를 항상 마음에 새겨두었으며 그들 또한 그러하기를 원하였다.스토아 학파는 생존의 위협, 죽음의 위협을 앞에 두고 감정을 억제하는 경건한 태도를 삶의 귀감으로 삼았다.{) 에픽테토스는“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죽음의 두려움을 피할 수는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또“사건들이 당신이 의도한 바대로 일어나기를 바라지 마라. 오히려 그것들이 일어나 는 대로 진행되기를 원하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라고 했다.또한 우리가 모든 사건을 통제할 수 없으며 단지 일어나는 일에 대한 우리의 자세만을 조정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설파했다. 어쨌든 사건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의지의 행위에 의해 공포를 억제하는 일은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그들은 말했다.이 도덕철학에는 우아한 단순성은 있으나, 그것은 지식의 생산자들에게나 맞는 철학이었다. 이 철학의 결론은 개인의 태도를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에 의하면, 세계는 인간과 물질적인 사물들이 목적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질서 정연한 배열 장소였다. 스토아 학파는 세계에 대한 이러한 견해를 설명하기 위해 특별한 신(神)의 개념을 도입하였는데, 그들이 도입한 신은 자연 전체, 즉 모든 사물 안에 존재하는 이성적인 실체라고 생각되었다. 그것은 자연의 전 구조를 통제하고 배열하며, 사건들의 경과를 결정하는 형이상학적 존재, 실제적인 형태의 이성이었다. 여기에 도덕 철학의 근거가 놓여 있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 스토아 철학이 취한 방향은 그들의 인식의 본질에 관한 이론에 의해 결정되었다.4) 인식론스토아 학파는 인간이 어떻게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세밀하게 탐구했다. 이러한 탐구가 전적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그들의 인식론은 중요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첫째로 자연에 대한 유물론적 이론 조성과 둘째로 진리 혹원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이 행하는 바대로 행동한다. 이 원리에 일치된 물질의 연속된 행위가 곧 자연의 법칙(法則), 즉 한 사물의 본질에 대한 법칙이라는 것이다.결국 스토아 학파는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삶을 생활의 최고 이상으로 삼았으며 자연에 따르는 삶이 곧 신의 섭리에 순종하는 삶이며 이성에 충실한 삶 이라는 것이 그들의 신념이었다.6) 윤리학스토아 학파의 도덕 철학은 단순한 통찰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인간은 연극 속의 배우로 자주 비유되곤 했다. 에픽테토스는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연출가나 작가의 몫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세계의 연극 속에서 각 인간의 배역과 역사 속에서 개인이 처할 상황을 결정하는 것은 이성의 원리인 신(神)이다. 스토아 학파에 의하면 인간의 지혜는 이 연극에서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맡은 부분을 잘 수행해 내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단역을 맡고 어떤 사람들은 주역을 담당한다.“당신이 가난한 자의 역을 맡는 것이 신의 즐거움이라면, 당신은 그 역을 잘 소화해내야 한다. 절름발이나 지배자 혹은 소시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 당신의 할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에픽테토스는 말한다.배우는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다른 배우들이 누가 될 것인가 또는 배경의 모양과 형태 등에 대해, 그리고 극의 전개나 그 주제에 대해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우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그 자신의 태도와 감정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가 단역을 맡았기 때문에 화가 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영웅 역을 맡았기 때문에 시샘할 수도 있다. 분장가가 그의 얼굴에 아주 못난 코를 붙인다면 그는 매우 슬플 것이다. 그러나 분노나 시샘, 모욕감도 자신이 단역을 맡았고 영웅이 되지 못했다는, 추한 코를 붙여야 한다는 사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이러한 감정에 의해 단지 그의 행복 제논의 스토아와 더불어 고대의 명망 있는 학원 가운데 하나로 취급되었다.에피쿠로스는 실천적인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의학이 신체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사상은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진정으로 그는 철학을 영혼의 의학이라고 불렀다. 그는“세계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그에게는 원자 혹은 물질의 조각으로 구성된 세계의 상을 전개시킨 데모클레이토스의 이론이 적절한 대답으로 생각되었으며, 더 이상의 논의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에피쿠로스는 세계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인간의 행동에 대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였다. 에피쿠로스에게 인생의 주된 목적은 쾌(快)였다.나. 사상{)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인간을 본질적으로 시민으로 규정하고, 윤리성을 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의무 의 총체로 본 것과는 달리, 에피쿠로스는 인간을 행복을 추구하는 한 개인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그에 있어 인간이란, 공동체 내에 속한 구성 단위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적인 개인이었다.1) 물리학과 윤리학에피쿠로스가 쾌락설을 택하게 된 것은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B.C 460-370)에게서 물려받은 물리학 때문이었다. 그의 ‘원자론’ 위에 기반을 둔 에피쿠로스는 존재하는 사물은 단단한 물질로 작고 부서지지 않는 조각, 즉 영원한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원자들의 덩어리 없이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했다. 이것은 곧, 유일신 혹은 여러 신들이 존재한다면 그들도 역시 물질적인 존재이어야 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이 모든 사물의 원천이거나 창조주도 아니며, 그 스스로는 목적도 의지도 없는 임의적인 사건의 결과라는 사실이었다.원자에게는 여하한의 시초도 없다는 개념에 의해 만물의 기원이 설명된다. 원자는 항상 공간 안에서 존재한다. 빗방울처럼 원자들은 한꺼번에 제각기 공간 속에 떨어지며, 그것들은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
    인문/어학| 2008.04.13| 10페이지| 1,500원| 조회(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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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톤의 윤리 사상
    (2007.03.21)Plato의 思想Ⅰ. 개요가. 세계관: 이원론적 세계관-이상주의감각적으로 경험되는 현실 세계는 참다운 세계가 아니고 이성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이데아 세계만이 절대적이고 참된 세계로서 모든 사물의 최고 이데아인 선의 이데아를 추구하여야함 - 현상계는 이데아의 모방, 그림자1. 현상계가) 감각적 경험에 의한 세계, 가변적 세계나) 이데아계의 불완전한 모방2. 이데아계가) 사물의 진실로서 사유의 눈에 의해서만 인식가능->참다운 세계이며 이성에 의해서만 인식가능나) 초월적이고 이상적인 세계: 객관적으로 실재함나. 참된 삶: 선의 이데아를 모방하여 실천하는 것다. 영혼 삼분설1. 인간의 영혼은 정욕, 기개, 이성의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2. 의지가 나약한 원인을 이성, 기개, 정욕의 부조화에서 찾음라. 정치 사상1. 철인정치 : 철학자가 나라를 통치할 때 이상국가가 달성될 수 있다. (저서-[국가])2. 4주덕가) 지혜(이성) - 머리 - 통치계급(철학자)의 德나) 용기 - 가슴 - 방위계급의 덕(군인)의 덕다) 절제 - 배, 팔 - 생산계급(농·공·상인)의 덕라) 정의 : 인간 - 지혜, 용기, 절제의 덕이 조화를 이룬 이상국가의 덕※ 에피쿠로스학파-검소한 생활을 위해 4주덕 수용3. 사회주의 사상에도 영향가) 통치자의 사유 재산 인정하지 않음. 통치계급의 재산공유나) 국가에 대한 자녀의 공동양육마. 주지주의, 지덕복합일설바. 다수에 의한 정치를 중우정치라 비판->군주제옹호사. 교부철학의 아우구스티누스-플라톤 철학을 중심으로 크리스트교의 교리 정립 하려함Ⅱ 생애 (B.C.427~347)플라톤은 B.C 427년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명망 높은 귀족가문 출신인 그의 양친은 아테네 정치권의 요직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플라톤도 원래는 정치의 길을 걸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청년기의 권력관계가 그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어렵게 만들었다. 플라톤의 친지들도 함께 가담했던 B.C. 404년경의 30인 참주정치 시기의 공포체제 하에서 그는 곧 정치에서 물러지되었다. 60세가 넘은 나이에 그는 다시금 이탈리아로 가서 참주 디오니시오스 2세를 설득하여 자신의 이상국가를 구현하려했으나 이것 역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말년의 그는 아카데메이아에서의 교육과 연구 활동에 전념하면서 대작 『법』을 서술 하였다. 그는 B.C. 347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플라톤은 그 저술이 손상되지 않고 거의 완전한 상태로 전해지는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저서는 거의 대부분 대화체로 되어있다. 그의 이름 하에 전해지는 43편의 대화편중 25편 정도가 진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Ⅲ 사상가. 이데아(Idea)1. 이데아의 의미영어의 idea나 독일어의 idee는 오늘날 생각을 뜻하는 일상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원래 이 단어는 ‘보다’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동사에서 파생된 것으로 바라봄 혹은 이에서 더 나아가 특징적이고 전형적인 관점을 의미하였다. 플라톤에 와서 이 단어는 외적 현상 뒤에 숨어있는 참된 것을 뜻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일상어에서 (올바른) 생각이나 사상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데아란 ‘생각’의 뜻을 일컫는 말이다.이러한 이데아는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는 윤리적인 혹은 미적 가치 등에 대한 관념을 의미했다. 그러나 플라톤에게 이데아란 보여지는 현실 세계의 너머에 있는 어떤 존재의 본래적인 원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감각적인 것이 아닌 초감각적인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이 존재의 특징은 영원하고 불변하며 소멸되지 않는 신적인 것으로 이성을 통해 서만 얻을 수 있는 형체 없는 것으로서, 단순한 사물의 이데아뿐만 아니라, 어떤 성질들에 대한 이데아, 관계와 활동하는 것들에 대한 이데아, 예술품들의 이데아, 가치 있는 것들의 이데아, 나쁘고 쓸모 없는 것들에 대한 이데아도 있다. 이러한 이데아들은 그 자체로 실재하고 사유(思惟)의 세계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 이러한 순수하고 독립적인 실재인 이데아들은 하늘 저쪽에 거쳐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감각적인 것은 진리의 원천이 될 수 없고 진고, 상위의 Idea를 善의 Idea로 설명하고 이를 만물의 목적, 조화, 최상의 세계로 보았던 반면, 하위의 Idea는 상위의 Idea를 목적으로 하여 나아가려는 정열적인 사모(eros)로 규정함으로써 그의 사상에서의 윤리학적 기초를 마련하였다., 인간학 등 전반적인 그의 사상을 펴는데 그 기초를 이루고 있다.2. 이데아에 대한 인식플라톤은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윤리학의 문제에 대해서는 물론 학적 지식의 전반적 가능성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관심을 가졌는데, 이리하여 플라톤은 실재의 본성에 관한 학적 인식과 윤리적 행위의 문제를 결합시키고 있다. 실재의 본성에 관한 학적 인식과 관련하여 플라톤은 모든 것이 변화하고 어떤 것도 동일한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면, 세계에 대한 인식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하여 인식될 불변의 대상을 요구한다고 생각하였다.플라톤은 이와 같이 명확성·영원 불변성을 갖는 실재를 이데아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우리들의 마음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 관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실재성을 갖는다. 즉, 이데아는 개별자의 공통된 요소로부터 귀납적으로 추정한 개념이 아니라 머리 속에 담겨 있는 관념의 범위를 벗어나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이다. 더욱이 이데아는 시공적 규정을 초월해 있어 불변하기 때문에 초월적 실재이다. 즉, 이데아는 결국 자연계의 영원하고 완전한 원형을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이상적 세계를 상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는 가지(可知)적인 불변의 세계인 이데아계과 가시(可視)적인 변화의 세계인 현상계로 양분된다.그렇다면, 이데아계와 현상계의 경험적 대상들의 관계되는데, 플라톤은 이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관여' (혹은 '분유')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즉 현상계의 개별적인 사물은 이데아의 보편적 본질을 나누어 갖는다는 것이다. 결국 관여에 관한 사상의 기초에 놓여 있는 철학적 문제는 개별자와 보편자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다. 보편자는 개별자의 본질이고 개별자는 보편자를 나누어 가질 때 비로소 존재한다. 결국해서 흐려지지 않고 끊임없이 이데아의 인식을 추구하게 하는 데 있는데, 플라톤은 이데아의 상기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변증법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요컨데 플라톤에게 있어 변증법이란 인간 영혼을 이끌어 이데아에 이르게 하는 학문인 것이다. 그는 변증법을 이데아에 이르는 학문으로 규정했는데 그에 따라 변증법은 플라톤 철학에서 철학 그 자체와 일체화된다. 플라톤은 그의 이데아론 속에 변증법을 위치시킴으로써 변증법을 독자적 형이상학의 기본 개념이 되게 했으며, 이론과 실천이 일치한 인간의 가장 높은 경지라는 의의를 부여했다.하지만 플라톤의 변증법은 존재의 변화와 연결되지 못하고 불변하는 이데아와 연관됨으로써 형이상학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의 변증법은 개념의 변증법이 존재의 변화와 연결되지 못하고 개념 자체에 머물 때 관념론의 신비의 빠질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나. 윤리설플라톤의 윤리설은 결국 불완전하고 변화무상한 감관계를 극복하여 참실재인 善의 Idea에 나아가는 것이다.1. 영혼설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란 육체와는 달리 스스로 움직이는 것으로, 육체는 죽음이 있지만 영혼은 시작도 끝도 없다고 말하고 영과 육은 일시적인 결합이라고 한다. 결국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고, 선의 이데아에까지 이르는 사람의 영혼은 진리와 이데아의 세계인 천상에까지 도달한다.플라톤은 인간의 행동의 근원은 영혼이며 이 영혼을 세 부분으로 나누는데, 사유능력(理性)과 결단능력(意志)와 욕구능력(欲望)이다. 즉 인간의 영혼은 이성적 부분과 비이성적 부분으로 나누어지며 비이성적 부분은 또 다시 이성적 면에 가까운 감성적인 기개의 부분과 감각적인 하위의 부분인 욕망의 부분으로 나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 안에 있는 이성적인 것은 어떤 것을 배우고 느끼며 감성적인 것은 사고(思考)하고 감각적인 것은 인간의 욕망으로서 영양의 섭취나 생식에 관련된 쾌락 따위를 갈망한다고 한다. 이성은 영혼 전체를 위한 선견지명을 지니고서 각 부분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을 분별하는 지식이고 또한 지혜의 근원이가와 같이 이 세 부분이 질서와 조화를 잘 이룬 사람을 정의로운 사람이라 하였다.{인간 영혼의3부분이성적 성질최상위 : 이성반성, 추리, 통찰비이성적 성질상위 : 기개분노, 혈기, 명예, 수치, 불명예에 대한 혐오하위 : 물욕감각적 욕망(식욕, 성욕, 소유욕......)2. 4주덕플라톤이 사용한 희랍어 아레테(arete) 라고 하는 것은 흔히 德(virtu)으로 번역되고 있다. 특히 플라톤이 말한 문맥상의 德은 단순한 결백, 즉 惡의 결여가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탁월성의 성취요, 인간의 온갖 능력이 이상적으로 발휘되어 완성에 도달함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즉 인간다운 좋은 생활이란 인간성에 숨어 있는 모든 소질을 총체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생활은 금욕을 통해서가 아니라 온갖 능력을 통일적 활동 속에서 적극적으로 실현시켜 감으로써 성취되는 것이다.{) 램프레히트, 『서양 철학사』(서울 : 을유문화사, 1963), p. 61가) 지혜지혜란 영혼의 한 부분인 이성의 덕이며, 지식을 갖고 깊이 생각하며 일반적인 현실 생활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어서, 모든 덕은 지혜 속에 뿌리 박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덕은 知 라는 근본 명제는 이 말의 타당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또한 만물을 지배할 수 있는 德으로서의 지혜는 인간을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인간이 善을 행할 수 있게끔 주도하고 있다. 플라톤이 지혜를 사랑하여 참된 지식을 추구함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인 善의 Idea를 아는 자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는 점도 바로 지혜의 덕이 인간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혜를 통해서 가장 궁극적 가치인 善을 알게 됨으로써 국가나 개인의 실패를 막아주고 불행을 방지 할 수가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의 궁극의 목적인 善을 소유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쓸모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선을 함유하지 않은 지식이나 행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지식에 있어서 善의 역.
    인문/어학| 2008.04.13| 8페이지| 1,000원| 조회(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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