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을 위한 한국문화의 소개콘텐츠 안내 흐름도한국의세계문화유산?한국 문화의독창성?잘못 알려져 있는 한국문화 및 역사?세계가 함께즐기는 한국문화한국의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소개를 통해기초지식 제공독창적인 문화재 및 고유의 전통 문화 소개한국 고유의 문화가주변국(일본, 중국)의 문화로 알려져 있는 것을 올바로 알림외국인들이 직접 체험해보며 한국문화를이해?즐길 수 있는관광프로그램을 소개■ 창덕궁■ 선, 색, 형의 美■ 고구려역사■ 한복입기■ 수원화성■ 음다(飮茶)문화■ 김치(기무치) 등■ 다도체험■ 석굴암·불국사■ 한복 등■ 단소강습■ 해인사장경판전■ 가야금강습■ 종묘(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예술원, 외국인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 참고)■ 경주역사유적지■ 고인돌유적주제(대상) 설정의 이유세계 속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솔직히 없다. 한국은 극소수 전문가들의 나라로 남아있을 뿐이다. 한국은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 민주주의가 발전해 있으며, 표현의 자유가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런 점을 알지 못한다. 중국이나 일본을 여행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한국을 여행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한경쟁의 지식정보사회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한국을 알려야 한다.한국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모토보다 전통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중 하나인 석굴암은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비교적 널리 알려진 태권도와 김치 등 전통문화를 비롯하여 세계인의 관심을 이끌 수 있는 전통문화와 더불어 서울이라는 도시는 한국의 현대성을 알리는 좋은 소재다. 인구가 많고, 교통은 혼잡하고,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빽빽하다. 하지만 박물관과 갤러리도 많고 활기가 넘친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어 일본과 중국의 아류로 알려져 있는 한국의 정체성과 독창적인 면을 알리는 것이 국가 졍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콘텐츠 안내 흐름도의 설명1.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소개를 통해 기초지식 및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알리며 특히 우리나라만의 독창성을 중심으로 설명한다.문화재중 점 사 항주 요 사 진창덕궁자연과 조화를 이룬 공간 배치(지형에 따라서 자유롭게 건물을 배치)후원(後園)의 아름다움(부용지, 부용정, 주합루등)종묘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비슷한 의미의 건축물불국사?석굴암8세기 통일 신라 전성기에 만들어진 불교 예술의 걸작으로, 불교문화는 물론 건축술·수리학·기하학 등 이 시대 모든 지식이 집약되어 있는 결정체고인돌전 세계 고인돌 유적 중 60%에 이르는 3만 여 기가 밀집해인사장경판정세계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조선 초기의 전통적인 목조건축 양식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 건물내 적당한 환기와 온도·습도조절 등의 기능을 자연적으로 해결할수 있도록 설계경주역사유적지남산지구(불교유적이 집중)대릉원지구(신라 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왕과 귀족들의 고분이 집중)황룡사지구(신라 불교 문화의 정수)산성지구(신라의 도성 방위 시설을 대표)수원화성돌과 벽돌을 혼용한 과감한 방법, 거중기(擧重機) 등의 기계를 크게 활용하고 용재(用材)를 규격화한 점, 화포를 주무기로 하는 공용화기 사용의 방어구조 등은 다른 성곽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것이다2. 한국문화의 독창성-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 외의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재와 전통문화를 통해 한국이 중국·일본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 겨레의 문화유산 가운데서 세계적인 자랑거리를 들라면 으레 고려청자가 빠질 수 없다. 왜냐하면 고려청자야말로 우리나라를 세계 도자기사의 선구로 자리매김을 하게한 독창적인 문화유산이며,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세계적 수준의 자랑스러운 예술품이기 때문이다.청자문화의 선진국며 청자를 비롯한 자기의 원조라 자부하는 중국에서까지 자기 나라의 청자를 제쳐두고 고려청자를 천하에서 제일 귀하고 값진 것 중의 하나로 지목한 바 있어 고려청자의 예술적 가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천년이나 지난 오늘날의 우리에게 까지도 그 신비스런 아름다움과 예술적 감각을 공감하게 하는 고려청자는 인간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예술품이며 한국문화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또한 청자의 발생이 중국청자의 영향으로부터 왔지만 고려청자는 은은한 비색(翡色)의 색조, 부드러운 곡선적 기형이 풍기는 세련된 아름다움, 상감기법(象嵌技法)이라는 독창적 기술의 발명, 도자기사상 진사(辰砂)를 최초로 사용한 점등에서 중국청자와는 엄연히 구별되는 독창적 세계를 이룬점이 문화교류의 대표적 사례로 생각되어 주제로 선정하였다.1. 중국의 청자회유도기(灰釉陶器)와 중국청자의 발생청자는 도기에서 발전한 것이다. 자연유의 성분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을 잿물 또는 회유(灰釉)라 한다. 따라서 이 잿물을 토기표면에 바르고 고온으로 구워내면 회유도기가 되고 이 회유도기가 청자발생의 시조가 된다.2. 고려의 시대별 청자의 변화(1) 송의 영향1. 10세기초, 중국 황하유역 중심으로 북방식 靑磁가 황해연안쪽으로 들어와서 황해도 옹진,개성지방에 정착2. 중국 남부의 月柱窯 계통이 전남 강진, 전북 부안으로 들어옴.전남 신안의 해저 갯펄에세 원나라 송나라 시대 도자기 만여점이 발굴되었음(도자기, 엽전....)목간(글을 쓴 나무조각편)에 일본 동대사로 가는 물건이라 적혀 있음.(2) 고려청자의 시대별 특징1. 10세기 : 재래식 도기(통일신라기 도기). 골호에서 나타나는 유약을 입혀서 구운(소성)초기형태의 도자기 모습.2. 11세기 : 회청자, 화청자는 북송에서 영향을 받음.3. 12세기 전반기(순청자) : 문양은 가미되지 않았지만 여러종류의 그릇 형태4. 12세기 중엽(상감청자) : 송나라로부터 청자기법은 받아들였으나 상감기법만은 우리나라만의 독보적 기법5. 13세기 : 상감청자를 비롯해 순청자, 회청자 등 여러 청자가 함께 생산되었으며 1231년몽고의 침입을 받아 상감청자가 쇠퇴-둔탁해짐으로 해서 새로운 장식기법 나타남-청자진사채(靑磁辰砂彩), 화금청자 (畵金靑磁)6. 13세기 후반 : 관납(官納)하는 그릇에는 명문을 새기기 시작. 사용되는 사용처의 명문과함께 관청명, 간지명을 써넣기도 함. 이와같은 명문은 귀중한 유물로 당시의 정부재산, 사용처,제작의 연대를 알 수 있음.7. 14세기 말 : 퇴조되는 청자의 양상. 태토가 거칠어짐(이전:정선된 흙)청자그릇의 두께가 두꺼워짐. 둔탁해 보임.청자의 상감기법이 거칠고 성그럽다. 색도 황록색을 띠며 문양도 섬세하지 않고 대담해져서 전체적으로 청자가 쇠퇴해짐1. 상감기법상감은 나타내고자 하는 무늬를 기면에 조각도로 음각한 후에, 백토나 자토를 붓으로 찍어 바른 후 기면과 같게 얇게 깍아내고 초벌구이를 하면 백토는 하얀색으로, 자토는 검은색으로 발색되며 이 위에 유약을 바른다. 이러한 상감수법은 고려 중기 이후로 청자와 백자에 널리 쓰여져 상감이 갖는 고유한 미의 세계를 무늬로서 잘 표현해 주고 있다2. 종 류순청자상감청자철화청자상감이나 다른 물질에 의한 장식무늬가 들어가지 않는 청자청자에 상감기법으로 문양을 나타낸 것청자 바탕흙으로 그릇을 빚고 표면에 흑색의 산화철을 주성분으로 한 안료로 그림을 그린후 그 위에 청자 유약을 입혀 구워낸 자기흉내낼수 없는 비취색(秘色)고려청자의 푸른 빛이 ‘비색’이라 불리게 된 것은 12세기 중국 송나라의 사신인 서긍(徐兢)이 고려에 왔다가 돌아가서 쓴 견문록인 ‘선화봉사고려도경(宣化奉使高麗圖經)’에서 “도자기로서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 사람들은 비색이라고 한다. 근래에 더욱 세련되고 색택(色澤)이 가히 일품이다.” 라고 극찬한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비색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지 아직 정확하지 않으며,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물총새(翡翠) 날개의 푸르름에서 비유한 비취색(翡色)을 의미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누구도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신비스러운 색(秘色)’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절정기의 비교우리는 우리보다 청자를 몇백년 먼저 만들기 시작하였며 그 최고의 절정기는 우리 고려청자의 절정기와 거의 같은 중국청자의 최고봉이라 할 수있는 북송 휘종년간의 여관요청자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여관요청자는 기형자체도 엄정하며 예리하고 적절한 과장이 있어 냉엄한 기품이 있으며 유약은 얇으나 투명하지 못해 거기에 음각은 물론이고 양각문양도 있을 수 없으며 태토 또한 유약을 통하여 전혀 비춰보이지 않는다. 우리 청자의 비색은 산속을 흐르는 맑은 물이나 모시발이라면 중국청자는 깊은 웅덩이의 물이거나 비단발과 같아서 하나는 맑고 은은하면서 투명하고 하나는 진하여 전혀 불투명하고 두꺼운 장막을 드리운 것과 같다. 이때는 유약과 함꼐 기면의 정리도 매끄럽고 전체적인 균형이 준수하고 경쾌하다. 병.주전자등 큰 그릇의 굽을 깍는 방법과 번조시 굽밑유약을 훑어내리고 눈을 받치는 방법도 가능한한 단아하고 깨끗하게 하였다. 눈을 받치는 방법은 11세기까지 내화토목을 점차 작게 하였으며 11세기 말경부터는 가사목으로 번조하는 새로운 기법이 등장하였다. 굽은 작고 예쁘게 깍고 굽밑까지 빈틈없이 시유하고 유약을 그대로 둔채 가사목 3~5개를 받쳐 번조하여 내외전면에 번조후 남은 흠자국을 극소화시켰다. 병.항아리 등 커다란 그릇은 내화토와 모래 비짐눈으로 번조하였으나 굽밑은 전대보다 깨끗하게 정리하였다.(고려) 청자음각연화당초문매병(중국) 청자삼족화로중국 청자의 영향을 수용하여 독자적으로 청자를 생산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던 나라는 한국(고려) 뿐 이었다. 통일신라 후기부터 서·남해안 등 각 지역을 중심으로 등장한 호족세력들은 중국 청자를 수입해 쓰면서 그 뛰어난 아름다움과 실용성, 산업적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이해할 수 있었고, 9~10세기경 드디어 발달된 경질토기 기술을 바탕으로 절강성浙江省 월주요越州窯의 기술진을 영입하여 청자제작에 성공하였다. 중국이 2000여년에 거쳐 완성한 청자를 불과 한 세기안에 성공하고, 나아가 세계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은 참으로 놀랄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이처럼 고려인들이 다른 나라의 우수한 문화를 수용하여 모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또다른 독창적 세계를 창조하였듯 다른 나라의 문화의 훌륭한 점을 우리만의 생활문화와 감성에 맞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문화교류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