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상숭배사상1. 유교의 조상숭배조상숭배의 개념을 규정해 보면 “조상은 생존시에 일정한 계보관계로 맺어진 자손이 있는 死者이고, 조상숭배란 그 조상에 대한 일련의 신념과 의례”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조상숭배는 유교적 색채가 강하고, 그 비중이 절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기독교, 무속의 조상숭배들은 모두 유교의 영향이나 지배를 받고, 대립갈등을 빚는다.조상은 생명의 원천으로 개체성의 기준이 되는 것인데, 조상을 존중함으로써 자기의 생명을 존중하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때, 조상은 관념적 대상으로써 ‘신’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유교에서의 조상숭배는 종교적이라 볼 수 있다.조상이 죽어 ‘신’의 존재로 바뀔 때, 자연신과는 다르게 영속성이 없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사라진다고 보았다. 곧, 고조부까지는 조상신이 존속한다고 보아 4대봉사의 관행을 지키고 있다.이러한 조상숭배사상은 친족간의 親等관계와 상하관계 등의 인식을 분명하게 하고 통합의식을 확립하여 祖孫간의 계승의식을 강화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2. 불교의 조상숭배현세교라 할 수 있는 유교와 내세교라 할 수 있는 불교는 본질적으로 상반성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불교는 인간생활에서 불교적 삶을 향한 하나의 방편으로 護國佛敎라는 명칭이 사용될 만큼 현세성을 띠고 있다. 즉, 유교의 영향으로 조상숭배에 대한 의식이 불교에서 자리 잡게 되었고, 이는 내세교 라는 본질적 모습에 영향을 주어 유교화로 변모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현재 불교의 조상숭배는 기일이 되면 명부전에서 先亡父母의 위패를 모시고 제례를 올리는 일과 百種날에 선망부모를 위해 공양을 올리는 일들이 있다. 하지만 차례나 기제사는 일반인들과 같이 지내고, 백중에는 꼭 절에 가서 조상의 영혼을 천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또 근래에는 절에 가서 비용을 내고 음식을 차려 스님의 인도로 기제를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한편, 차이는 있지만 불교에서도 유교와 마찬가지로 ‘효’를 중시한다. 『父母恩重經』은 유교의 『효경』과 유사한 경전이고, 『觀無量壽經』에서도 효도를 강조하고 있다. 즉, 이러한 효도관에 의해 유교의 조상숭배사상을 받아들여 불교에서도 유교와 마찬가지로 조상숭배가 대두된 것이다.3. 기독교와 조상숭배기독교는 유일신교이기 때문에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점은 불교의 융합성과 좋은 대조를 이루며, 유교적 통치사회하의 조상숭배에 대한 문제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기독교에의 효도는 ‘윤리적’관계에서의 문제일 뿐, 조상이 신격화되거나 절대화될 수 없고, 유교의 조상숭배는 종교와 윤리와의 혼돈에서 온 충돌이라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념적 대상으로써 조상을 ‘신’으로 모시고 숭배하는 유교적 조상숭배는 배척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제의 신사참배와 문제가 결부되면서 한국과 일본의 특수성을 로마교황청이 인정하기에 이른다. 이에 천주교에서는 조상숭배를 윤리와 풍속으로 여기고 허용했으며, 개신교에서는 종교로 여기고 금지했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의 기제는 간단한 음식상에 꽃과 聖水를 놓고 절은 하지 않지만, 최근에는 격식대로 다 차리고 절도 다 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개신교에서는 기일이 되면 목사의 주재 아래 가족이 모여 ‘추도예배’를 보는 경우가 있다.4. 무속의 조상숭배무속에서는 앞서 살펴본 세 종교에의 조상신이 많은 신들 중 하나일뿐더러 그 비중이 매우 적기 때문에 조상숭배에 대한 개념이 크지 않다. 하지만 조상단지를 통한 조상숭배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 조상단지류는 곡령숭배, 여신숭배, 조상숭배에 불교, 유교적 성격들이 다 내포?집약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최길성은 한국 조상숭배의 주축은 유교제사이며, 여기에 무속의 사령제가 상호보완적 기능을 한다고 하였다. 이는 일반 가정에서 조상단지들도 들고 4대봉사는 뿌리 깊게 남아 기제사와 차례를 모두 지내는 것으로 알 수 있다.또 지연적인 마을신이 혈연적인 조상신화 된 사례들로 무속의 조상숭배를 옅볼 수 있다. 마을의 堂神을 흔히 조상이라고 부르고, 그 당신에 성씨가 붙어 있으며, 신앙민의 성씨와 당신의 성씨가 일치하는 일들이 있는데, 이는 마을 수호신이 족보상의 시조신으로 좌정된 것이다. 영남의 골맥이 서낭님은 마을의 수호신이며 흔히 성씨가 붙어서 관념상 집단의 창건신이고 시조신으로도 모셔지는 것으로 알 수 있다.5. 한국 조상숭배의 미래상한국 조상숭배의 근간은 유교의 조상숭배였고, 각종 종교들은 상호교섭으로 영향을 받아 지금까지 이르렀다. 특히 기독교는 효와 조상숭배를 별도의 윤리로 강조하여 유교적 조상숭배와 정면충돌해 왔는데, 기독교인의 인구가 급증하는 추세를 미루어 보았을 때, 한국 조상숭배에 대한 미래를 이와 관련하여 짐작해도 무방할 것이다.한편, 사회가 점차 도시화되고 분화됨에 따라 시대적 편리성에 입각하여 조상숭배에 대한 의식이 변화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4대봉사의 관례가 깨지고 2대로 한정될 확률이 높아졌고, 참여 자손은 남계근친에서 형제자매로 변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사위가 처가 부모제사에 참여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형제자매에 기반한 사회적 결속감 때문이다. 또 장남과 부모의 거주 불일치, 재산 균등상속 등이 관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제사의 책임도 아들뿐 아니라 딸에게 균등책임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또 자녀의 수가 적어졌기 때문에 제례 책임에도 아들과 딸의 구분은 점차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조상숭배가 서양문물의 수용과 도시화로 인해 간소화되고 그 모습이 점차 변할지라도, 이는 시대적 편리성에 의한 부분적 변용을 수반할 뿐 가족주의와 협동주의는 기본원리로 계승될 것이며, 이는 현대 산업주의에 의한 이기, 불신, 분열 등의 문제를 해결해 줄 소중한 전통이라는 점으로 볼 수 있다.보충1. 고대의 조상숭배『위지』부여전을 보면 여름에는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얼음을 사용한 기록이 있고, 상을 당한 남녀가 모두 흰 옷을 입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유력자의 죽음일 경우 순장의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고대에는 사후세계의 존재를 인식하고 현세와 같은 생활을 누릴 것이라는 繼世思想이 팽배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 서사구조와 주제1. 의 서사구조의 경우 ‘만남’, ‘사랑’, ‘이별’, ‘수난’, ‘구출’, 재결합’이라는 6대목을 기본틀로 하고 있다. 이를 서사단락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① 몽룡이 광한루에서 춘향과 만난다.(만남)② 몽룡이 춘향이집을 찾아 백년가약을 맺고 사랑가를 부르며 즐거워한다.(사랑)③ 몽룡이 춘향과 헤어져 서울로 간다.(이별)④ 변학도가 남원으로 내려와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한 춘향은 태형을 맞고 옥에 갇힌다.(수난)⑤ 몽룡이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와 변학도를 징치하고 춘향을 구출한다.(구출)⑥ 몽룡과 춘향은 백년가약을 맺는다.(재결합)이상의 서사단락을 보면 만남 부분은 화창한 광한루 경치를 배경으로 몽룡, 춘향, 방자, 향단의 즐거운 거동이 그려지고 있고, 사랑 부분은 춘향의 집에서 몽룡과 춘향이 아기자기하게 사랑을 나누는 정경이 그려지며, 이별 부분은 춘향이 몽룡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한스럽게 이별가를 부르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수난 부분에서는 변학도가 내려오는 신연맞이 대목, 기생을 점고하는 대목, 춘향이 매를 맞으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 대목, 옥에 갇혀 탄식하는 대목들로 이루어져 장면의 변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출 부분은, 몽룡이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되어 내려오는 대목, 춘향 어머니와 옥에 갇힌 춘향을 만나는 대목, 사또의 생일 잔치와 어사 출도를 통해 춘향을 만나는 대목이고, 재결합 부분은, 몽룡이 춘향과 춘향 어머니를 만나 다시 백년가약을 맺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이렇듯 의 서사구조는 만남에서부터 재결합까지 총 6대목이 시간적 순차구조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를 다시 행복 - 불행 - 행복의 3단으로 이어지는 U자형 구조로 특징지을 수 있다.)이본에 따라 시간적 순차구조에서 벗어나 역순행적 구조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도 있지만 조상현의 는 수난과 구출 대목에서 “춘하추동 사시절을 생불여사로 이렇듯 세월을 보낼 적에, 이때으 도련님은 서울로 올라가겨 글공부 힘을 쓸 제” 라는 대사를 통해 춘향의 수난과 몽룡의 글공부가 동시간에 이루어지고 있었던 일임을 설명해 주고, 어사로 임명받아 남원으로 내려가며 농부들에게 춘향의 수난에 대해 듣는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몽룡의 장원급제가 춘향의 수난 뒤에 일어난 일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즉, 조상현 는 만남에서부터 재결합까지의 6대목이 시간적 순차구조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조상현의 에서 특기할 만한 서사구조의 한 단락이 있다면, 춘향이 태형을 맞고 옥중에 갇혔을 때, 꿈속에서 ‘만고 열녀 황릉묘’에 들어가 백의를 입은 두 부인에게 열녀라 칭송받으며 심약해진 몸을 구완할 수 있는 약을 먹고 몸의 기력을 회복하는 장면이다. 시종일관 현실적 모습으로 전개되던 서사에서 환상적인 요소가 개입하여 서사구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여러 연구에서 밝혀진 것처럼 의 인물적 특성이 영웅소설류에 등장하는 영웅의 일대기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에서 그 특징적 의미를 해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여성영웅소설의 주인공들이 천계의 도움을 받는 서사적 구조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여러 의 구성을 보면 구성상의 불합리, 모순, 불통일 등이 나타나는 것을 살필 수 있다. 몽룡이 광한루에 외출할 때는 3월인데 반해, 춘향이 그네를 뛸 때는 5월의 단오로 설정되어 있거나, 그날 몽룡이 춘향의 집을 찾아갔을 때는 단오인데 하늘의 달이 밝고 밝은 것이나, 월매가 몽룡에게 음식을 내어 오는 것이 사계절의 음식이 고루 갖추어져 있는 것, 또 몽룡이 과거에 급제하자마자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향하는 것이나, 기생의 딸 춘향이 정렬부인이 된다는 것 등은 당시의 시대나 사회적 상황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구성상의 불합리나 모순은 판소리가 가진 부분의 독자성과 관계있는 것으로, 특히 판소리는 전체 줄거리의 전달에 중점을 두어 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 장면에 중점을 두어 창을 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조상현의 에는 이러한 구성상의 불합리적 모습이 크게 나타나고 있지 않다.2. 의 주제그동안 또는 의 주제에 대한 수많은 연구들을 통해 밝혀진 것은 의 주제는 단순한 것이 아닌 다각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이면적 주제’나 ‘주제의 양면성’으로 규정되어 왔다.조동일의 경우 춘향이 기생이면서 기생이 아닌 인물로 보고 그 둘 사이의 갈등에서 작품이 전개되다가 기생 아닌 춘향이 승리하는데 이르렀다고 보았다. 그렇게 해서 신분적 제약을 청산하고 인간적인 해방을 이룩했다는 것이다. 즉, 춘향을 열녀라고 칭송한 것이 표면적인 주제라면, 기생 춘향과 기생 아닌 춘향의 갈등을 통해 신분적 제약에서 벗어나 인간적 해방을 이룩하고자 한 것은 이면적 주제라고 본 것이다. 표면적 주제는 기존의 관념을 재확인하면서 작품의 품격을 높이는 구실을 하고, 설명을 하려고 하면 빠져나가는 이면적 주제가 작품이 인기를 얻고 높이 평가되는 근거가 된다)고 하였다.이러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조상현 의 표면적 주제를 먼저 살펴본다면 ‘사랑’, ‘정절’ 등을 들 수 있다.춘향과 몽룡이 백년가약을 맺고 ‘사랑가’를 부르며 사랑을 나누는 대목과 몽룡이 춘향에게 이별을 고하는 대목, 어사가 된 몽룡이 걸인행색을 하고 옥중의 춘향과 재회를 하는 대목 등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사랑’에 대한 주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몽룡을 떠나보내고 혼자 수절을 하고 있는 춘향의 모습이나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며 태형을 맞을 때 자신의 수절을 절절히 읊는 대목, 몽룡이 정체를 숨기고 수청을 들라 했을 때 거부하는 대목 등에서 춘향의 ‘정절’이라는 주제의식을 찾을 수 있다.
해학과 풍자의 노래들1. 해학과 풍자의 노래민요는 민중들의 다양한 생활세계를 표현하며 그들의 생각과 느낌이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는 노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진취적인 내용을 노래한 작품이 많은데, “이들 노래 중에는 향락적인 성격이 짙은 노래도 있지만 대부분의 노래가 삶의 재치와 해학이 듬뿍 베여 있는 것들이다.”)해학과 풍자가 섞인 골계적 구성의 노래는 , , , , , , , ) 등이 있는데, 부산지역의 민요 중에서도 해학성이 풍부한 노래가 다수 조사되었다. 이 노래들은 주로 性 · 주변 인물 · 시대 등을 그 대상으로 해학과 풍자로 연결시키는데, 대상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만들거나, 시대 비판적 의식으로 당시 일어나는 현상을 풍자하는 노래로 불리어진다.2. 性의 유희화性은 인간의 본성으로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부분이지만 일반적으로 은밀함을 내포하고 있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요에서는 性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해학적 골계미를 느낄 수 있게 한다.성의 유희화를 통한 골계적인 노래는 노동요인 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된 모내기 일을 하면서 일의 고통을 덜고 즐겁게 일을 하기 위해 해학과 풍자가 섞인 노래를 자주 부르는데, 남녀의 성적 문제를 선정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문체로 담아내고 있는 노래들이 많이 불린다. 그 중 는 ‘모심기 소리’로 가창되기도 하지만 비기능요로서 유희요의 일종으로 가창·전승되고 있기 때문에 살펴보기로 한다.뒷동산 땍때구리 생구녕도 뚫는데우리집에 저문디 떯힌구녕도 몬뚫네)위 노래는 성행위나 남녀의 성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하고 있는 해학적인 노래이다. 이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딱따구리’를 남성과 대비시켜 남성의 무능함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딱따구리는 구멍이 나있지 않은 나무에 오랜 시간에 걸쳐 구멍을 뚫지만 남성은 뚫어져 있는 구멍도 뚫지 못한다고 하여 성행위의 시원찮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그런 남성의 무능함을 ‘우리집에 저문디’로 표현하여 성에대한 노골적인 묘사를 웃음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한편, 이러한 노래는 “남성 창자보다 여성 창자들에 의해 불려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이는 여성들의 성적 억압에 대한 해소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성의 노골적인 묘사로 인한 골계미의 발현은 민요의 개방성과 해학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3. 주변 인물의 풍자인물의 풍자를 통한 웃음 유발은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방법으로 주변 인물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묘사하여 웃음을 유발함과 동시에 그 대상에 대한 해학적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1) 고추모한패기도 못뽑는여자야 이마에터리는 왜뽑느냐예의삼자 모르는여자야 팔자에눈썹은 왜그리노일자한자도 모리는년이 지잘난채로 왜까부노)(2) 가씨나야 가씨나야 빵구똥똥 뀌지마라내일모레 너거신랑 봉채받아 짊어지고보지동냥하러 온다)(1)은 로 예의 없고, 글도 모르는 여성에 대한 날선 비판의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과 동시에, 노동의 현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와는 다르게 이마에 털을 뽑고, 팔자에 눈썹을 그리는 등 얼굴 치장을 하는 여성에 대한 부러운 시선이 교차하는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그 여성을 ‘예의삼자 모르는여자’, ‘일자한자도 모리는년’으로 희화화하고 있으며, ‘지잘난채로 왜까부노’라는 결구를 통해 대상에 대한 풍자를 극대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2)는 결혼을 앞둔 어느 여성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나타내어 웃음을 유발하고 있는 이다. 방귀는 생리적 현상이지만 소리와 냄새 때문에 性과 마찬가지로 은밀화 되는 경향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결혼을 앞둔 새신부의 경우는 더욱 숨기고 싶은 욕구가 강할 것인데, 노골적으로 그것을 드러냄으로써 대상을 희화화 시키고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특히 ‘똥똥’이라는 의성어를 사용하여 새신부의 방귀뀌는 모습을 연상시켜 웃음을 극대화 시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한편, 주변 인물의 풍자화를 통해 자신의 처지나 애환을 희화화 시키는 또 다른 노래로 가 있다. 에서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상상력을 담아내어 시집살이의 애환과 맺힌 응어리들을 풀어내고 일상의 긴장으로부터 해방감을 만끽”)하기 위한 장치로 시아버지, 시어머니 등 자신의 주변 인물을 풍자화 하여 웃음을 유발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4. 시대의 풍자어느 시대를 살건 민중들의 삶은 각박하기 때문에 그 세태를 풍자하는 노래는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어 있다. 다음의 노래는 이다.에요놈 징검아내돈석냥 갚어라내머리를 비어서달비전에 팔아도
수용 양상 연구-시가를 중심으로1. 서론2. 수용 양상3. 수용의 의미4. 시가에 수용된 의 미적특질1) 의 미적특질2) 수용 시조에 드러나는 미적특질5. 결론1. 서론작품을 창작할 때 소재가 고갈되었거나, 참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현재에도 많이 쓰이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타 장르의 수용이다. 특히나 수용할 작품이 이미 인지도가 있는 경우 그 후광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8세기 이후의 조선 문학사에서도 이러한 수용의 모습이 전반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당시 유행한 소설의 수용양상이 두드러지는 편이다.시조 중에는 소설의 내용이나 고사를 인용하여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는 작품이 있다. 하지만 이경선)의 수용 시조 연구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여타 시조와 소설의 장르교섭에 관한 문제를 고정희), 간호윤), 변승구) 등의 연구자들이 간간히 연구를 하였을 뿐 소설의 시적변용에 관한 고찰이 활발히 이루어지진 않고 있다. 이는 소설을 수용한 시조의 편수가 많지 않고, 소설과 시조라고 하는 장르상의 교섭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간호윤은 그의 논문에서 소설을 수용하여 창작된 시조를 110여수 찾아냈다. 그 중 단순히 소재원만으로 차용한 시조는 10수이고 나머지는 서사와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이때, 소설을 수용하여 창작된 시조의 대부분은 의 영향으로 창작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연구에서는 대부분 의 영향을 받아 창작된 시조를 대상으로 소설의 시적 수용 모습을 살피며 그 특징적 의미를 고찰한다.한편, 소설을 수용하여 창작된 시조들 중에서는 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 더러 있다. 은 17세기에 창작된 이래로 여성고난서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각광받으며 많은 독자에게 사랑을 받아온 만큼 그간 연구자들과 독자들의 관심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즉, 의 관심은 타 작품에서의 수용으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시조에서도 을 수용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은 시조 뿐 아니라 다른 소설과 탈춤 등 여러 장르에 영향을 끼쳐 수용되고 있는 모습도선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현상의 하나로 문학사적으로도 주목을 요하는 과제이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의 수용 양상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그간의 소설 수용 양상에 대한 연구는 모두 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는 소설을 수용한 작품의 대부분이 를 수용한 작품이기 때문에 그 작품의 수가 타 소설을 수용한 작품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연구에 있어서 소설의 영향으로 인한 타 장르의 형식적, 내용적 변용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머무르게 되었다. 고로 본고에서는 의 수용 양상을 통해 미적특질을 살핌으로써 수용 작품 뿐 아니라 의 위상과 그 특성을 다시 한번 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2. 수용 양상은 여러 고전소설에 인용되어 그 모티프를 제공하고 있는데 《박씨전》,《담낭전》,《배비장전》,《춘향전》,《심청전》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사설시조에서도 숙향과 이선의 행적을 고사처럼 인용하여 시상을 전개시키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봉산탈춤에서도 《숙향전》이 등장하는데, 판이 시작할 때 “낙양동천 이화정(洛陽東村 梨花亭)”이라 외치며 춤판을 시작하는 것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판소리 에서 심봉사가 심청이를 데리고 젖 동냥을 가는 대목에서도 “낙양동촌 이화정”을 외치며 판이 시작된다. 이것은 난리가 나자 숙향이 부모와 헤어져 천태산 마고할미와 함께 이화정에서 수를 놓으며 살았었다는 내용을 축약해서 제시한 것이다.《심청전》에서는 심봉사가 심청이를 어르는 부분에서 등장한다.㉮ 금자동아, 옥자동아. 어허 간간 내 딸이야.포진강 숙향이가 네가 되어 살아왔나.은하수 직녀성이 네가 되어 내려왔나.남전북답 장만한들 이보다 더 반가우며, 산호진주 얻었은들 이보다 더 반가울까.어디 갔다 이제 와 생겼느냐.)심청이가 태어나자 심봉사는 심청이를 안고 어르며 위의 노래를 부른다. 이때, 심청이에 대한 심봉사의 마음을 숙향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데, 숙향이의 선 본 후 숙향의 이야기를 하는데, 고난을 당하는 대표적 여성 이미지의 숙향을 단순히 인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은 이본에 따라서 등장하는 서사의 종류가 달라지는데, ? ? ? 등의 서사가 달라질 뿐 은 필히 등장한다.그렇다면 시조에서 숙향전을 인용하고 있는 모습은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 李仙이 집을 叛?여 노? 목에 金돈을 걸고天台山 層岩絶壁을 넘어 방울? ?기 치고 鸞鳳孔雀이 넘?? 곳? 樵夫를 맛나 麻姑할미 집이 어듸?오저 건너 彩雲어뢴 곳? 數間茅屋 대사립 밧긔 靑??리를 ?즈소셔)위의 시조는 작자시비가 있지만 김수장의 사설시조로 알려져 있다. 에서 남주인공 이선이 숙향을 찾아 마고할미를 찾아가는 대목을 직접 인용하면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의 인용 자체는 축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선이 숙향을 만나기 위해 마고할미를 찾아 가기 전의 고난과 이선이 숙향을 찾게 되는 경위 등은 모두 생략한 채 초부와의 대화만 직접적으로 수용하면서 앞 ? 뒤의 내용에 대해서는 축약하고 있다.3. 수용의 의미앞서 의 수용 양상에 대한 고찰에서 알아보았듯 그 수용 양상은 여러 장르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 타 장르, 소설에서 을 수용하여 작품을 전개시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고정희의 분석 방법을 통해 삽입시 형태의 ㉮와 사설시조 ㉰를 비교 분석하여 알아보고, 논의의 진행에 있어 필요에 따라 ㉯를 함께 보도록 하겠다. 두 작품만으로 한정한 것은 소설과 시조로 대비되는 두 작품의 장르적 특성에 따른 수용 양상과 의미에 대한 특성을 살필 수 있고, 삽입시와 시조라는 동일한 서정 장르에서의 수용 양상을 함께 비교 고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경우 고정희의 분류에 따르면 ‘매개적 독백체’에 해당한다. 에 드러나는 숙향의 아리따운 이미지에 대해 요약 ? 서술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논평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는 ㉮에서 숙향의 이미지에 대한 단순 수용으로 드러난다. 작자는아무런 인용투어가 없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리하여 ㉰ 작품에서는 서사 자체가 초점화 되고 있어 후행담화의 시적 화자에 대한 내면의식이 드러나지 않고, 서정의 ‘독백체’가 드러나 있지도 않다. 즉, ㉰는 “장르적 성향이 서정양식을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다성적 서사체"를 통해 드러나는 특징적인 모습이 바로 대화체적 어투이다. 이러한 특징은 고전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소설 인물들간의 대화체 어투가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성립되는 것이다. “시조는 시적화자의 서정적 독백체로 시상을 진술하기 때문에 시적 화자 이외의 화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과의 장르적 교섭을 통해 대화체를 적극 수용하게 되고, 이를 시조의 특성으로 정착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4. 시가에 인용된 의 미적특질1) 의 미적특질의 가장 큰 미적 특질로는 인간의 육체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서술 태도를 꼽을 수 있다.) 다섯 번에 걸친 숙향의 고난은 기본적으로 그녀의 육체적인 고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이는 첫 번째 고난에서부터 특히 강조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육체에의 관심은 숙향의 고난에서만이 아니라, 여타의 인물들에게도 초점이 맞추어져 기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숙향이 부귀하게 되어 보은의 길을 떠나 예전에 자기를 구해준 짐승들을 만나게 될 때, 그 짐승들에게 숙향이 보은하는 방법이 후하게 먹이는 것이다. 또한 용왕이라는 천상적 존재는 김전에게 자신의 배고픔을 채워줄 것을 요구하여 음식을 배불리 먹은 다음에 그에게 응답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즉, 에서는 지상적 인물이나 천상적 인물이나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그들의 육체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고 있다는 점을 특징적으로 꼽을 수 있다.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미적 특질로는 해학적인 신의 형상과 고된 운명 속의 인간 형상으로 나타나는 대비적 구조이다. 의 줄거리는 상당히 비장하게 전개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느끼는 바의 비장함일 뿐 신들의 태도는 그와 반대의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즉,만 ㉮와 같이 “매개적 독백체”의 형태로 을 수용하고 있는 ㉯의 경우 ‘숙향의 현실적 고난’의 의미로 육체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수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시가 형태의 수용 작품에서 “매개적 독백체”의 담화방식으로 소설을 수용하고 있다면, 이는 그 소설의 미적특질을 고스란히 가지고 오기 보다는 작자의 감정과 해설을 덧 붙히기 위한 단순 도구의 의미에서 수용 소설을 이용하기 때문에 미적특질이 삭제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한편, ㉰의 경우는 “다성적 서사체”의 담화방식으로 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에 드러나는 해학적인 신의 형상과 고된 운명 속의 인간 형상으로 나타나는 대비적 구조의 미적 특질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이선은 숙향을 찾기 위해 이리 저리 떠돌다 마고할미가 운영하는 술집에 찾아든다. 이때, 마고할미는 숙향을 찾아온 이선에게 능청스런 거짓말을 둘러댄다. 자기가 숙향을 데리고 있으면서도 그녀의 친부모를 찾아가라고 이르며, 터무니없이 숙향을 병신이자 추물로 소개한다. 이선이 여러 곳을 다닌 후 다시 이화정으로 와서 하소연하였을 때, 마고할미는 “슉향이 발셔 다른 ?람의 ?필이 되여 간 고로 못 본잇가”라며 희롱한다.천상의 인물들의 이러한 모습은 인간에 대한 신의 우위에 입각한 일종의 여유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은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몹시 초조하나, 신은 그들의 운명을 꿰뚫어 보는 위치에서 의뭉스럽고 능청맞다. 운명의 소용돌이에 처한 인간과 그들의 운명을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신들 사이의 선명한 대비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 비장미를 골간으로 하면서도 유머가 간간히 흐르는 양상은 바로 이와 같은 인간과 신의 대비적 구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해학적인 신의 형상의 모습과 고된 운명 속의 인간 형상으로 나타나는 대비적 구조의 미적 특질을 시조에서 고스란히 수용하므로 인해 ㉰에서는 작가의 내면의식이 드러나는 대신 의 미적특질이 드러나는 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5. 결론이상에서.
카페와 맥주, 그리고 돈의 문학적 형상화1. 술에 대한 의식의 변화2. 비어홀과 카페 : 경제적 공간3. 맥주와 정치, 그리고 일본4. 결론1. 술에 대한 의식의 변화조선왕조 500년 동안 금주령은 끊임없이 실행되었다. 그 시기 ‘술’은 곡식을 축내는 주범이었기 때문에 국가가 수시로 금주령을 발동하여 개인의 음주를 금지했던 것이다. 특히 금주령에서 특별히 단속대상이 된 술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소주’다. ‘소주’는 알코올 함량이 높은 증류주로 곡식의 소모가 많은 술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특별했고, 고급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술이 아니었다. 당시 소주를 마음대로 마실 수 있는 이들은 지배계층의 양반관료들이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사회적 특권과 쾌락을 누리는 데 열중하였으며, 음주 역시 그 특권적 쾌락의 일단이었다.”) 즉, 양반관료들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하여 음주를 하며, 일반 백성들과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려 하였던 것이다.20세기 초에 접어들어 시대가 변했다. 일본을 통해 근대의 문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조선의 거리엔 카페와 다방이라는 음주의 공간이 생겼다. 여성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하였고, 노동자라는 신계급도 생겼다. 시대가 급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소주는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술로 변해 있었다. 192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소주 제조업체가 전국에 3175군대나 존재하고 있었다는 기록만 보더라도 소주의 대중화는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즉, 근대에 접어들어 사람들은 자신이 소주를 마신다고 해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다.19세기 후반 삿포로 맥주가 일본에서 유입된 이후 그 소비량은 꾸준히 늘어 1933년 조선맥주 주식회사와 기린맥주가 세워지기에 이른다. 하지만 1930년대 조선인 남자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 60~80전이었는데 반해 맥주 한병의 가격이 40전으로 비싼 만큼 일반인들이 먹기에는 힘든 술이었다. 즉, 맥주는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술은 아니었다. 자본주의 사회로 접어들기 시작하며, 일반 노동계급의 하층민들은 입에 대기도 힘들 정도의 술이 바로 맥주인 것이다. 이러한 풍토에 따라 조선 후기 ‘소주’로 대변된 지배계층의 권위의식은 근대 ‘맥주’로 바뀌기 시작한다. ‘맥주’를 먹는 사람들은 ‘맥주’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 비해 우월감을 지니게 되었고, ‘맥주’를 통해 계급이 양분되는, 혹은 개화인과 비개화인으로 양분되는 현상이 자연적으로 나타나게 된다.이 딱한 사나이는 도리어 그것에서 일종 득이감을 맛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뿐 아니라, 그는 한 잔 십 전짜리 차들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그렇게 몇 병씩 맥주를 먹을 수 있는 것에 우월감을 갖고 그리고 지금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구보씨는 벗을 만나기 위해 들어간 다방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한 사내를 발견한다. 그는 구보씨를 발견하고 호기롭게 인사한다. 이 사나이의 행동을 살펴보면 ‘맥주’로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고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한 잔에 십 전하는 차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60전 이상의 고가인 맥주를 마시고 있다는 우월감을 더욱 드러내기 위해 맥주병을 높이 치켜들고 다방에서 일하는 아이에게 더 달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주위 사람들에게 ‘맥주’를 마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그리고 그 우월감에 도취되어 행복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보아 하니 당신 스무 살은 넘었을 터인데, 그래 삐루 한 컵쯤 못 먹는대서야 어디 현대 청년이 되겠소, 사양 말구 자시오.’엄흥섭의 소설 속 젊은이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맥주는 개화인과 비개화인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 하였다. 스무살이 넘은 젊은 사람이 맥주 한 컵쯤 못 먹는다면 개화인이 아니라는 논리의 소설 속 대화는 근대를 살아가는 개화인들의 의식에서 맥주를 먹고, 안 먹고에 따라 개화인과 비개화인으로 양분하는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당시 모던보이들은 ‘맥주’를 마시므로 인해 자신들이 모던보이라는 의식이 팽배했다. 이러한 의식들은 ‘맥주’는 한다. 자본주의 사회로 들어서면서 지위는 곧 돈이 되었고 돈만 있으면 누구나 들어가서 자유롭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술집이었다. 술집 주인의 입장에서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곧 귀빈이고 높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서양의 술집에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자본주의 사회로 급격하게 변하며 사회가 도시화되고, 돈이 있으면 자유롭게 술집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자신이 마신 술값을 지불하고 주위 사람들과 소통을 하며 즐기는 공간이 바로 술집이 된 것이다. 곧, 그들에게는 술을 마시는데 있어서 상하귀빈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며 술집을 매개로 소통의 마당을 형성하게 되었다. 즉, 술집이라는 공간은 개방적인 공간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3.1 운동 이후 한국에는 카페의 등장이 본격화 되었다. 명동과 진고개에 일본인들이 카페를 먼저 열기 시작하자 그에 맞추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종로에 카페를 열기 시작하였다. 카페는 프랑스어로 커피라는 뜻이 된다. 요즘에는 카페라는 뜻이 정착되어 커피를 마시는 곳으로 이해되지만 당시만 해도 여급을 두고 양식과 주류를 판매하는 곳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간단한 안주와 함께 맥주를 파는 곳도 생겼는데 그곳이 바로 비어홀이다. 곧, 맥주를 먹기 위해서는 카페나 비어홀에 가야만 했고, 그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거나 돈이 많은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즉, 상하귀빈의 자유로운 소통의 마당이었던 근대 서양의 술집과는 다르게 ‘맥주’의 등장과 함께 카페와 비어홀이 들어서게 되고, ‘맥주’를 마시는 공간인 카페와 비어홀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닌 폐쇄적인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돈이 없는 하층민들은 목로술집 ? 내외술집 ? 사발막걸리집 ? 모주집 등의 공간에서 술을 마셨고, 상층의 돈이 있는 사람들은 카페나 비어홀, 호텔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들만의 리그에서 소통을 하였다. 즉, 이러한 카페나 비어홀은 단고 있는 사람들이, 기생이나 그러한 것을 자동차에다 태워가지고, 이따금씩 호기 있게 달려오고 또 달려갔다.)점룡이는 카페라는 공간에 대해 부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시기와 질투를 한다. 돈도 없이 카페에 갔다가 나오는 세 젊은이를 보고는 비웃음을 보이는 부분에서 점룡이의 부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아이스크림을 팔며 힘겹게 사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술을 먹을 수 있는 엄두를 못 낼뿐더러 카페나 비어홀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의식 저편에는 카페와 비어홀에 대한 동경과 낯설음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카페를 출입하는 여러 사람들을 바라보며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대목은 당시 사람들의 경제적 의식에 대한 일단락을 잘 보여주고 있다.요오와, 오망, 오까네와 이꾸라데모 못도루소! 아마리 빠가니 스루나! 고노야로!(오늘은, 네 이녀석, 돈은 얼마든지 있어! 바보 취급 하지 마! 이 새끼야!)그러한 말을 몇 번이고 잘 안 돌아가는 혀끝으로 해가며, 곧잘 주먹을 휘두르는 삼 호 박스의 손님은, 사십이 넘은 대머리 진 사나이, 이곳에는 전부터 출입을 하여, 모르는 사이가 아니건만, 두어 달 전에 다른 데서 곤죽이 되어가지고 자정이나 넘어서 들어와서는, 외상술을 먹자다가 거절당한 일이 있은 뒤로, 술이 취하면 거의 입버릇같이 뇌는 말이 이 말이다.)돈이 없어 출입을 거절당한 사내는 돈을 가지고 와서 술을 먹고는 큰 소리로 욕을 한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돌아가는 카페라는 공간은 돈이라는 입장권이 없다면 애초부터 들어서지 못하는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돈이 있다면 높은 지위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카페이다. 폐쇄된 공간인 카페의 입장권은 다름 아닌 돈이다.『천변풍경』에 등장하는 ‘평화 카페’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그들은 전부가 ‘신사’라든가 그러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에서 알 수 있듯 지위가 높은 사람만이 드나드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인물들을 하나씩 살펴서 여급들과 함께 마시면서 우월감에 빠질 수 있었고, 자동차를 타고 밤거리를 활보하며 기생들과 노닥거릴 수 있었다.자리를 일어선 종로 은방 주인과, 그의 뒤를 좇아 문밖까지 나간 하나꼬와의 사이에, 어떠한 교섭이 있었나 하는 것을 메리만은 다 알고 있었다. 그때에 은방 주인의 손에서 하나꼬의 손으로 옮아간 지전 뭉치는, 메리의 눈 어림으로는 분명히 오십 원이나 그보다 적지 않은 금액의 것인 듯 싶었다.(중략)‘오십 환씩이나......’그는, 은근히 그 돈을 탐내었다.)카페에는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다. 그들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특권의식에 의해 카페에 출입하며 여급과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종로 은방 주인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특권층이다. 그는 그 돈으로 평화카페에 출입하며 여급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오십환이라는 큰 돈을 쥐어준다. 이와는 반대로 카페 여급은 은방 주인에게 돈을 받는 존재이다. 술을 따라주거나 혹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소비하는 인간에게 돈을 받아 축척한다. 그리고 그 돈을 탐내는 여급 또한 돈의 축척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3. 맥주와 정치, 그리고 일본서양의 술인 ‘맥주’는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그 소비량이 적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늘어나게 되어, 나중에는 전통 주류시장을 압박하는 형국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1928년의 맥주 소비량(696만병)은 당시 인구를 2000만으로 잡으면 3명당 일 년에 한 병꼴로 마신 셈이니, 오늘의 기준으로는 아주 적은 양이다. 하지만 상당수가 가난에 허덕이던 식민지였기에 당시 조선일보는 비싼 맥주 소비의 증가에 대해서는 비판의 화살을 계속 쏘았 붙였다. "1923년 맥주 소비에 들어간 돈이 42만3000원(약 84억6000만원)"임을 보도한 조선일보 1924년 5월 7일자 기사에는 "목 말은데 목 취기는 돈이 이가치 만히 들어가는뎨 모두 일본 물건"이란 제목을 길게 붙여 긴 탄식을 담았다. 뿐만 아니라 맥주가 건강에 해롭다는 기사도 자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