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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근현대사 관련 유적지 조사 - 덕수궁, 정동교회, 구러시아공사관 평가A좋아요
    '한국근현대사 관련 유적지 조사 및 답사'오랜만에 답사 길을 나섰다. 볕이 따스했던 5월의 봄날. 우리의 답사는 정동교회부터 시작된다. 사실 덕수궁을 먼저 들렸으나 월요일이 휴관이라는 사실을 깜빡하고 갔기 때문에 덕수궁은 며칠 뒤 다시 찾아보았다.덕수궁, 정동교회, 구러시아공사관은 중학교 때 답사를 가보고 꽤 오랫동안 내 기억에서 잊혀 져 있던 곳이었다.먼저사적 제 256호 서울시 중구 소공동에 위치하고 있는 정동교회(貞洞敎會)는 고종 광무 2년 (1898)에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 신교(新敎) 교회 건물이다. 당초는 건평이 115평이었으나 1926년 증축 때 양쪽 날개 부를 넓혀서 현재는 175평이다. 원 건물은 그대로 두고 양 날개부만 증축했기 때문에 건물의 원형에는 손상이 없다. 구조는 단층건물로서(층탑은 3층) 삼랑식(三廊式)의 단순화된 고딕식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북미 계통의 단순화된 교회건물의 맛을 엿볼 수 있다.정동교회는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정동교회는 한국 개신교회의 최초 교회며 한국 신문화의 요람지며, 3·1운동의 한 발원지였다. 정동교회는 1백 14년 전 아펜젤러 선교사가 처음 교회를 세운 이후 한국기독교의 역사를 몸으로 증거하면서 한국 근대화의 진원지가 됐다. 1885년 4월 5일 아펜젤러 선교사는 스크랜턴·스크랜턴 대부인과 함께 제물포항으로 입국, 서울에 들어와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를 세웠다. 정동교회는 처음부터 배재·이화학당과 한몸을 이뤄 출발, 서재필· 윤치호· 이승만· 김규식· 신흥우· 조병옥· 유관순· 김활란 등 수 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이 교회를 통해 조국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도록 도왔다. 정동교회는 암울했던 일제치하에서 민족 자주독립의 믿음을 전하던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다. 3·1운동이 일어나기 5일 전인 2월26일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측 인사 10명이 정동교회 이필주 목사의 사무실에 모여 기독교측 민족대표 명단을 확정했다. 감리교의 박희도· 박동완· 최성모· 오화영· 김창준· 고 있어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넓디 넓은 예배당. 우리나라에 최초로 만들어졌다는 파이프 오르간. 멋졌다. 이곳이 3·1운동의 한 발원지였다니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정동교회는 암울했던 일제치하에서 민족 자주독립의 믿음을 전하던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다. 그리고 해방 후에도 다양한 사회활동을 전개하였다.100주년 기념탑과 새로 지어진 예배당을 살펴본 뒤 우리는 구러시아 공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정동 길을 따라 난타전용극장으로 오르면 사적 제253호인 옛 러시아공사관의 흔적이 있다. 지금은 다 허물어지고 건물의 잔해인 양 3층탑만 홀로 남았다. 언뜻 어떤 목적으로 남아 있는 건물인지 모를 만큼 이정표 하나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다. 다만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국 공관이 등을 맞대고 있어 아직도 경비가 삼엄하다.1896년 촬영 당시의 사진을 보면 러시아공사관 입구에는 개선문 형식의 정문이 있었다. 또한 건물은 ‘ㄱ’자 형태로 된 단층 건물과 지금의 3층짜리 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외벽은 석재와 회색 별돌로 마감되었고, 1970년 보수공사를 통해 흰색 회칠로 마감했다고 기록된다.현재는 단층건물은 허물어져 그 터만 남아 있고, 전망대 역할을 하던 3층짜리 탑은 계단 위에 우두커니 서 있다. 1층은 긴 반원형 아치문이고, 2층은 단순한 네모 창문이 좌측으로 나 있다. 또한 3층은 사면에 반원형 아치창이 2개씩 있다.러시아공사관은 해방 후 소련영사관으로 사용되다가 다시 6·25전쟁 때 폭격을 맞아 소실되고 탑 부분과 지하층만 남았다. 1980년 유적 발굴 당시 이곳 지하에는 밀실과 비밀통로가 있었다. 서로 연결되어 왕복 통행이 가능했다.러시아공사관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고종 27년(1890)에 러시아인 사바틴(Sabatine)이 설계한 것으로 르네상스풍의 2층 벽돌 건물이다. 고종이 거처했던 방의 내부는 건물과 같은 르네상스풍의 실내장식이고 현재 탑의 동북쪽에 지하실을 두어 덕수궁까지 비밀통로를 연결했다.그러나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일제 낭인들 상처로 그 잔해를 가지고 있는 ‘구러시아공사관’ 3층탑에 시대의 교훈을 위해서는 한 번쯤은 들릴 만한 곳인 것 같다.덕수궁이 월요일이 휴관이라는 사실을 내가 까맣게 잊는 바람에 우리는 며칠 뒤 이곳을 다시 찾아야했다.지금의 덕수궁(德壽宮)은 원래 경운궁(慶運宮)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까지 몽진하였다가 1년 반 만에 서울로 돌아왔으나, 궁궐이 병란에 소실된 까닭에 머물 궁이 없었기에 왜군들이 주둔하여 파괴를 면한 당시 황화방(皇華坊:정릉동 일대)의 종친과 양반가 등의 민가들을 수용하여 임시 궁궐로 개조, 정릉동 행궁으로 삼고 시어소로 머물게 되었다.생전에 소실된 궁궐을 재건하려 하였으나 나라의 형편이 여의치 않아 결국 이곳 행궁에서 승하하신 선조의 뒤를 이어 1608년 즉위한 광해군은 1611년(광해군 3)에 창덕궁 복구 공사가 마무리되자 정릉동 행궁을 경운궁이라 부르게 하였고, 광해군은 1615년 4월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하였다. 한편 1623년 반정에 성공한 인조가 경운궁 별당(즉조당)에서 즉위한 뒤 광해군에 의해 경운궁에 유폐되었던 인목대비와 함께 창덕궁으로 이어하면서 인조는 선조가 머물던 즉조당, 석어당과 왕비의 궁방인 명례궁 건물만 남기고, 나머지 경운궁의 가옥과 대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떠나게 된 후로 경운궁은 어려운 시절의 쓰라림을 회상하는 뜻 깊은 공간인 궁으로 남게 되었다.1895년 10월 경복궁에서 명성황후가 살해된 을미사변 이후, 친일적인 관료들과 일본의 압력이 가중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2월 세자(순종)와 함께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을 단행하여, 1년이 넘게 러시아공사관에서 머물던 고종은 마침내 1897년(건양 2년) 2월 경운궁으로 환궁(還宮)하게 된다. 연호를 광무(光武)로,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고 원구단(圓丘壇)에서 황제 즉위식을 가지면서 경운궁은 고종에 의해 궁궐의 격식을 갖추어 나갔다. 그런데, 1905년 경운궁 중명전에서 을사의 동편에 있던 제사준비소 터에는 지금의 덕수초등학교가, 1927년에는 경성방송국이 건립되었다. 이렇듯 대부분의 궁내의 건물을 철거 또는 방매(放賣)하게 되어 훼철된 덕수궁은 1933년 10월 공원으로 일반에게 공개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일제침략기를 거치면서 현재 남아 있는 경운궁의 영역은 대한제국 당시의 1/3정도일 뿐이다.덕수궁의 각 건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대한문대한문은 원래의 경운궁의 정문이 아니었으며 본래 이름 또한 대안 문(大安門)이었다. 정문인 인화문이 있었으나 주위에 민가가 교통이 불편한 반면, 동쪽에 있는 대안문은 1900년대 고종의 근대적 도시개조사업의 일환으로 방사상 도로가 나 자연스레 자주 이용되면서 사실상의 정문이 되었다. 1904년 경운궁에 큰 화재가 일어나 대부분의 건물이 중건되는데 이때 대안문도 수리를 했다.1906년 고 종의 명에 의해서 이름이 지금의 대한문으로 바뀌었다. 바뀐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설 에 의하면, 1900년대는 친일파들이 득세했다. 그 중에서도 배정자 라는 여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로서 사람들은 안(安)자를 빗대어 갓을 쓴 여자가 궁을 드나들면서 고종을 현혹해 나라가 망한다고 하여 대한문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1914년 태평로가 뚫리면서, 1968년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두 번 뒤로 밀려났다.중화문법전인 중화전의 정문에 해당되는 문이다. 중화문은 현재 단독 건물 처럼 남아 있으나 원래는 다른 궁궐에서와 같이 좌우로 연결된 회랑이 동서쪽으로는 물론 거기서 다시 남에서 북으로 연결되게 둘러져 있어 중화전 마당 조정(朝廷)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다 철거되고 이 문 동쪽에 그 흔적이 조금 남아 있다.중화문을 보면 공포 있는 곳에 망이 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부시라고 하는데 이는 새가 둥지를 틀게 됨에 따라 구렁이 등에 의해 살생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새의 분비물에 의에는 중층 건물이었으나 다시 지을 때는 단층으로 중건되어 현재도 단층 지붕으로 남아있다.중화전 안에 있는 어좌는 부처의 자리와 같이 꾸며 높게 마련한 용상위에 놓는데, 머리 위에는 보개를 두고 포작으로 닫집을 짰다. 어좌 뒤에는 일월오악병풍을 쳐서 임금의 권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준명당중화전이 공식행사를 하던 곳이라면 준명당은 고종이 실질적인 업무를 보거나 신하들과 회의를 하던 편전(便殿)이었다. 이곳의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광무 원년(1897년)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엔 이곳을 준명전이라 불렀다가 언제부터인가 준명당으로 바뀌었다.전각이름에 붙게 되는 전(殿)은 당(堂)보다 격이 한 단계 높은 것으로서 왕이나 왕에 버금가는 인물인 왕비 혹은 대비 등과 관련된 건물에만 붙게 된다. 고종 나이 예순에 양귀인 과의 사이에서 얻은 고명딸 덕혜옹주의 교육을 위해 1916년 이곳에 유치원을 만들기도 하였다. 즉조당과는 월랑으로 연결되어 있다.즉조당즉조당의 의미는 왕이 즉위를 한 곳이라는 의미인데 실제로 여기에서 조선조 제15대 광해군과 제16대 인조가 즉위하셨다. 현재의 중화전이 지어지기 전에 이곳이 임시 정전(正殿)으로 사용되면서 광무 원년(1897년)엔 태극전 이라 하였다가 이듬해에 중화전으로 고쳐 부르게 된다.1902년 지금의 중화전이 지어지면서 다시 원래의 이름인 즉조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곳은 고종의 후비인 엄비가 돌아 가실때까지 거처했던 곳이기도 하다. 즉조당 현판을 보게 되면 어필(御 筆)이라는 한자와 광무구년을사칠월(光武九年乙巳七月)이라는 한자가 쓰여있다.어필은 왕이 쓰셨다는 뜻이므로 고종의 글씨임을 알 수 있다. 광무는 대한제국의 연호이니 1904년 화재로 즉조당이 불에 타 버려 1905년에 중건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석어당석어당은 임진왜란 후 선조 임금이 거처하셨던 건물로써 한자를 풀이하더라도 옛날 임금님이 머물렀던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선조 임금이 이곳에서 16년간이나 머무시다가 1608년 승하하신 곳이다. 그 후 순종이 황
    인문/어학| 2009.05.31| 9페이지| 1,000원| 조회(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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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봉사 소감문
    고등학교 1학년 때 장애우 돌보기 사회봉사를 했던 적이 있다. 내가 졸업한 중학교의 선배가 그 쪽 관련 일을 하고 있어서 몇몇 친구들과 함께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 때는 사전 교육 없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어리고 미성숙했던 우리는 아는 거 하나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바람에 그들을 돌보는 것이 너무나 벅차고 힘들었다. 결국 얼마 안가 우리는 그만두고 말았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장애우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던 우리들은 그들에게 두려움 없이 다가가고 어떻게 친밀감을 표현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그 때 나는 사회봉사에 있어서 사전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사회봉사에 있어 사전에 진행되는 교육은 꼭 필요하며 정말로 중요한 과정인 것이다.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3학년 하계방학에 사회봉사를 하게 되었다. 봉사는 총 36시간. 사전에 우리는 6시간 정도 따로 교육을 받았다. 1차 교육에서는 일반교육을 2시간과 기관 이해 및 배치교육 2시간을 받았고, 2차 교육은 봉사영역별 교육을 2시간 받았다. 우리는 사회봉사의 종류 및 의미, 사회봉사자의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서 자세하게 배웠다. 그 뒤 우리는 각 기관에서 오리엔테이션을 거쳐 현장에 투입되었다.사회봉사의 종류로는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아동이나 청소년들을 지도하는 지역사회복지 등이 있으며, 사회봉사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첫 번째는 사회적인 측면이다.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다. 복지국가란 모든 국민에게 소득, 영양, 보건, 주택, 교육상의 최저수준을 자선적 차원이 아니라 국민이 당연히 받아야할 권리로 보장하는 국가를 말한다. 이러한 복지국가의 성취도는 그 사회의 이타주의와 같은 도덕성·봉사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 모두의 자발적인 자원봉사활동이야말로 온전한 복지국가를 형성하는데 기여를 하게 될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두 번째는 사회기관적 측면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고 있거나,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많은 시설이나 기관들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며 어려운 생활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설이나 기관을 운영하는 일손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 및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은 기관을 운영하는 직원들이 보다 긴급한 업무, 또 그들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업무를 자유로이 수행할 수 있게 하여 서비스의 범위를 확대시키고 새로운 대상에게까지 확장하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이렇듯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은 기관 및 기관 직원의 서비스를 풍부하게 하며, 보조한다는 데에 그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세 번째는 자원봉사자의 개인적 측면이다. 자원봉사자는 사회봉사를 하면서 봉사자 자신의 개인적 능력을 활용하게 되어 생활의 의의나 보람을 느끼게 되고, 자원봉사자의 여가를 건전하게 이용하여 개인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또한 자원봉사자간의 교류를 통하여 정보를 교환하고 사회의식을 고취하여 봉사자 자신의 문제를 실펴보게 되어 자신의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게 하며,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하여 전문적 지식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간의 연대의식을 갖게되어 지역사회의 소속감과 국민의식을 갖게 하며, 사회문제에 접근하고 치료하면서 사회나 국가에 대해 긍정적 견해를 갖게 된다. 또 사회봉사는 사회복지시설·단체·지역사회 등 기존의 사회복지체계 변화의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우리는 봉사자들이 봉사를 하면서 유의해야 할 점도 배웠는데 대략 11기자 정도가 있었다. 금품지원의 신중성, 무분별한 약속의 금지, 비밀 보장, 타인과의 비교 금지, 비판적인 언행의 금지, 정치활동과 영리활동의 배제, 임의적인 모금활동 금지와 선의의 금품처리, 언어와 복장단정및 예절준수, 불안한 마음 상태에서는 대상자와 접촉 삼가, 신빙성과 효율성있는 정보의 제공, 지속적으로 꾸준한 봉사활동등이었다. 봉사활동을 하는 내내 나는 이를 학년 학습, 특기활동 지도 등을 도와주는 지역사회봉사활동을 하였다. 이랜드 월곡 종합 사회 복지관에는 어르신들에게 반찬을 배달해 주는 밑반찬 전달 프로그램과 발달 장애우들을 돌보는 프로그램, 고학년 학습과 특기활동 지도를 도와주는 와우 프렌즈, 그리고 내가 맡은 꿈자람 교실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6월 마지막 주에 복지관 세미나실에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 되었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시며 각 프로그램의 종류와 특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나는 신청했던 꿈자람 교실에 배치되어 아이들의 학습과 특기활동을 지도하였다.꿈자람 교실은 선생님 한분과 1,2,3학년 학생들이 스무 명 정도 합쳐져서 구성되어있는 복지프로그램 이다. 주로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 많으나 한 두 명 정도 저소득층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선생님을 보조해 드리며 아이들의 기본적인 학교 학습지도와 미술과 체육지도, 간식 및 자유 시간 지도를 맞았다.초기에는 아이들을 통솔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아이들은 나를 처음 봤을 때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한 달만 있다가 갈 거죠?”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있으면 안 나올 거면서 왜 나한테 친한척해요?” 왜 아이들이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짧게 왔다가는 나 같은 자원봉사자 선생님들 담당선생님들하고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차피 갈 사람이니까 말이다.그래서 나는 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이 그러면 그럴수록 더 정을 주었고 내가 아는 많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길 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나아갔다. 아이들도 나를 많이 따르고 의지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 마음은 무거워졌다. 36시간이 이렇게 짧은 시간이었는지 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아이들의 학습지도는 전 과목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국어, 수학, 슬기로운 생활, 바른생활, 즐거운 생활 등 해당 문제집을 풀게 하고 개인 과외 선생습시간에는 저학년 일수록 지도가 힘들어 1학년 아이들에게 더 관심과 주의를 기울였다. 몇몇 남학생들이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과격해서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에는 엄한 통솔이 필요했다.나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미술과 체육 시간이었다. 미술은 특히 만들기를 좋아했는데 담당 선생님이 손재주가 뛰어나셔서 정말 즐겁게 수업했다. 그리고 한 일주일 동안은 교실 환경미화를 했었는데 나와 다른 봉사자 선생님과 둘이서 교실 게시판을 꾸몄다. 원숭이를 만들고 풍선을 만들고, 나비와 꽃, 나무들을 만들고, 색지를 오리고 붙이면서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다. 다 만들고 ‘꿈자람 교실’ 이라는 글자를 붙이면서 다 완성했을 때의 그 뿌듯함이란. 지금도 잊을 수 없다.체육시간에는 줄넘기와 피구, 공놀이, 훌라후프등과 특별한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의 기초체력을 향상 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아이들은 공놀이를 제일 좋아하였다. 여름이라 체육을 할 만한 장소가 실내 강당뿐이었는데 나중에 날씨가 선선해지면 탁 트인 그런 넓은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했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지 유독 체육시간에는 싸움이 많이 났다. 편을 가르고 게임을 하다 보니 진 팀의 여자아이들은 울기 일쑤였고 남자아이들은 승부에 집착이 심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래서 스포츠 정신(?)을 가르쳤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승부의 결과를 깨끗이 승복하는 그런 것을 말이다.아이들을 지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여자아이들의 급격한 기분변화에 따른 대응이었다. 아이들이 시기와 질투가 심하였다. 바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이라 그런지 아주 사소한 것에도 기분 상해하고 다른 사람을 질투하였다. 그리고 내집단과 외집단을 만드는 것처럼 자기안의 사람을 분명히 하여 끼리끼리 노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왕따도 있었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너무 일의 분량이 많아서 스무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이러한 세세한 상황까지 파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선생님은 그래서 우리 같은 자원님과 모델링할 선생님이 필요한 거라고. 그래서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언니처럼 아이들의 사이를 조율하고 뭐든 함께하는 습관을 들이고자 하였다. 어려울 때는 서로 돕고 좋은 것은 서로 나눌 수 있도록 말이다.그 결과 성격이 많이 나아진 여자아이가 있었다. 처음에 그 아이는 질투가 심하고 언행이 거칠고 폭력적이며 자기 맘에 들지 않은 사람은 무조건 싫어하고 삐지면 그냥 교실을 나가버리는 그런 아이였다. 선생님이 여러 번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와 담당선생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많은 시간을 보내었다. 잘못했을 때마다 그게 왜 잘못된 행동인지 아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컴퓨터로 아이들의 캠프 이름을 출력하려고 편집하고 있을 때였다. 그 아이가 내게 다가오더니 “선생님 이거 보세요. 하트에요. 제가 선생님 주려고 만들었어요.” 하면서 분홍색 클립으로 만든 하트를 내게 주는 것이 아닌가. 그 때 느꼈다 이 아이가 이제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방법을 배웠구나. 너무 보람 있었고 잘 따라와 준 그 아이에게 고마웠다. 난 이렇게 말했다. 누구누구야. 선생님이 이거 핸드폰에 걸어서 잘 간직할게. 고맙다. 라고-그만두기 전 주에 유난히 나를 따르던 1학년 여자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이제 다음주 부터는 안나오죠?”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당황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시간은 다 채웠는데 아이들이랑 정이 너무 들어서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뒤로 이틀정도를 더 나갔다. 아주 조금의 시간을 더 보낸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럴 수 있어서 좋았다.사회봉사를 하던 마지막 날 아이들에게 마지막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보고싶을 때 다시 보러 올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아니라 가끔 맛있는 거 사들고 찾아오는 손님으로라도 가끔 찾아가 볼 생각이다. 생각 같아서는 계속 아이들을 지도하고 싶지만 이번 학기는 복수전공 실했다.
    사회과학| 2009.05.31| 6페이지| 1,000원| 조회(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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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년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 - 한국 일러스트 중심으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현대' 라는 시각적 상황 속에서 사회문화적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로 나타남. 패션의 의미를 내포. 전달하기 위한 이미지, 혹은 보다 적극적인 차원에서 패션의 특정한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 명확한 의도가 개입되어져 그 이미지를 형성화.패션 일러스트레이션패션 정보에 대한 이해를 유도하는 메시지 전달의 수단.* 전환의 시대: 사회적으로 국제화, 세계화, 유럽 공동체 경제의 다극체제로 사회가 변화.과거 시대를 그리워하는 경향으로 감성공학(편안함)이 나타남.그린 마케팅의 등장- 민속풍이 부각되면서 동양풍이 나타남.- 다양한 스타일이 혼합되고 건강과 여가에 관심.- 환경으로 관심이 증대.- 전통적이고 민속적인 경향과 함께 미래적 영향 공존.- 90년대엔 고정된 법칙이 없고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그린 패션풍이 등장.90년대 중반부터 롱 앤 슬림 실루엣이 10여년 가까이 강세1) 복고적 여성미- 여성스런 이미지의 부각 - 강한 남성적 이미지는 거의 사라짐. - 대체로 가늘고 긴 몸매에 좁은 어깨, 여성스럽고 다소 연약한 이미지가 주류.정혜선 作- 가늘고 연약하며 예쁘장한 계란형 얼굴의 서구적 마스크를 가진 8등신의 미인형. - 현대 도시적 감성의 다소 강한 개성의 이목구비로 표현. - 생략이나 왜곡, 과장 등의 일반적인 기법을 사용하지 않음. - 전통적 기법에 충실하여 사실적으로 나타냄.*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미인 스타일* 표현 기법- 여성의 육감적인 인체 개방과 관능적인 포즈-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중심 없는 흐트러진 자세와 표정. - 립스틱이나 마스카라가 번져 엉망이 된 메이크업. - 정신이 혼미하거나 황홀경에 빠진 상태로 묘사.2) 페티시적, 엑스터시적 여성 이미지* 사실적 표현보다는 단순화, 과장, 생략, 왜곡, 부분적 변형, 인체의 해체와 재구성 등의 표현 방법으로 나타남.정혜선 作장동림 作3) 혼성적 탈 정형미혼성적 스타일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가 동시에 혼재 → 부드럽고 편안한 스타일의 혼성이미지. 사각형의 남자얼굴에 여성스런 메이크업, 관능적인 인체와 포즈 등으로 양성성이 혼재한 스타일로 구사.성광숙 作3) 혼성적 탈 정형미혼 세대적 스타일 젊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미와 패션에 대해 연령 영역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품3) 혼성적 탈 정형미혼 민족적 스타일 과거 서양중심 사고의 미인 이미지 → 탈 중심화, 다원화 됨. 미의 중심이 서양중심→ 다양한 인종으로 확산 동양인이나 흑인의 특징을 부분적으로 채택 → 둥글 넙적한 큰 얼굴, 외 꺼풀의 길쭉한 눈, 넓적한 코, 얇고 작은 입술, 큰 광대뼈, 검은 피부와 두꺼운 입술. 인체는 슬림하고 늘씬한 타입의 서구체형 접목정혜선 作부분적 변형에 의한 기형화 과장, 확대, 축소, 생략, 제거, 왜곡, 이질적 결합 등의 방법이 동원되어 인체를 변형 과장 → 인체의 비율을 10등신 이상으로 확대 축소 → 6등신 이하로 축소하거나 길이는 증가 시키 고 폭은 축소하여 표현.4) 인체의 해체와 재구성의 미정혜선 作추의 미화 추하게 인식되어 온 인물의 스타일들이 새로운 미(美)로 표현. 새로운 미의 범주 성립 → 5등신 정도의 단신체형, 매우 뚱뚱하거나 기형적으로 마른 막대기 같은 체형, 남자같이 생긴 체형과 얼굴 등 다원화, 개별화.정혜선 作4) 인체의 해체와 재구성의 미동식물화, 물신화, 기계화로의 변용 인체를 구체적인 어떤 대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계획에 의해 표현됨.4) 인체의 해체와 재구성의 미정혜선 作1) 전통적 원근법의 일탈평면적 구도 는 90년대 이후 급속히 퍼져 보편화 되다시피 한 주목할 현상으로 보여짐.- 과거의 원근법이 대다수 무시되고 탈피하여 새로운 시도들이 나타남.*구도 표현의 특징: 아방가르드 예술구도의 활용→ 평면적 구도 즉 클로즈업. 시상의 합체, 일상적 장면을 포착한 스냅적 구도 등으로 현대적 구도의 다양성을 이루어 나감.정혜선 作2) 구도 개념의 일탈화면을 구성하는 질서와 원칙을 이탈하며 무질서와 비규범 추구.균형비례리듬조화조형원리의 기본의도적으로 파괴하여 일반적인 가치의 반대현상으로 표현됨.파괴2) 페티시적, 엑스터시적 여성 이미지90년대 이전 회화와 표현 방식을 같이하는 구조로 아직은 회화적인 예술성이 침투하여 아카데믹한 전통적 표현을 즐겨 사용함.90년대 이후 탈 아카데미즘적, 탈 텍스트적현상으로 고급스러운 취향의 패션일러스트레이션에서 이 탈하여 대중적이고 일회적이며 순간적 취향을 위한 것으로 바뀜.2) 단순화① 구성상의 단순화 - 표현되는 인체와 의상이 비기교적. 비 장식적 형태를 추구. 모노크롬적인 채색, 절제와 생략을 통해 최소 표현에 의한 심플함을 지향.② 제작 방법상의 단순화 보는 이로 부담 없이 접근하고 향유할 수 있음. 작가 역시 단순한 제작과적으로 인하여 감적의 이입이 용이하며 순간적인 영감을 놓치지 않고 바로 표현할 수 있어 제작시의 만족과 쾌감 얻을 수 있음.2) 단순화서광숙 作*제작과정의 최소화: 사전계획이나 밑그림 없이 단시간에 순간적인 즉흥성에 의해 이루어진 듯한 형태로 나타남.3) 평면화이순재 作*평면적 구도: 전통적 구도의 일탈에서와 같이 급속히 퍼짐. 이는 제작기법상의 단순화와 구성성의 단순화에 힘입은바 크며, 탈 아카데미즘적 특성으로 볼 수 있음.4) 미완성의 완성서명자 作일부분을 제거하여 부분만 드러나게 하거나, 혹은 일분만 제시함 으로써 미완성된 듯한 상태에서 작업을 마침작가의 주체적 결정의 배제하고 수용자의 자의적 해석을 유도하여 감상자에 의해 이미지 완성5) 우연적- 작가의 의지에 의해 구속되는 재료의 효과를 최대한 배제하고, 재료가 갖는 고유의 효과를 살려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방법. 재료적 효과를 이미 계산한 작가의 선 의지를 숨긴 우연을 가장한 가장 숙련된 표현.6) 유희적-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변덕스러운 기표와 가벼운 유머로 전하는 경우가 90년대 이후 급속히 증가.7) 인물 실체의 부재정혜선 作주체인 인물의 실체를 악화, 제거, 대체 하여 그 의미를 축소시키고, 의상을 부각시켜 전달하고자함.인물에 의해 패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8) 의도적 유아성- 완벽하지 않고 미숙한 그림은 무의식에 내제된 유아적 환상을 충족시키며 규범으로부터의 자유, 기교없는 순수함과 신선함이 새로운 자극이 됨. - 어느 한 곳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오뜨꾸뛰르 패션을 포함한 광범위하게 다양한 컨셉의 패션에 실행되는 것이 주목할만함.9) 스토리 전개*배경: 패션과 그 패션을 누리는 다양한 삶의 모습과 장면을 하나의 이야기로 표현하며, 물리적 의미의 패션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서의 패션을 전함.정혜선 作패션과 함께 설정된 상황이나 스토리는 흥미롭고, 재밌음. 이것은 전혀 새로운 발상으로 탈중심적, 탈 텍스트적인 사고로 볼수 있음{nameOfApplication=Show}
    예체능| 2008.07.05| 25페이지| 2,000원| 조회(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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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려한 한국의 전통문양
    1. 무늬의 의미무늬라 하면 일반적으로 물건의 거죽에 여러가지 형상이 어우러져 이룬 모양을 말한다. 무늬는 생활에 대한 주관적 의식의 반영이며 삶을 통한 문화활동의 소산임과 동시에 또한 창조적 문명의 산물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무늬는 바로 의사를 전달하는 언어이며 문자로서의 역할 뿐만이 아니라 인류가 그동안 이루어 놓은 회화, 조각, 공예, 서예 등 모든 조형미술의 원천이 되었고, 오늘날 까지도 인류는 이를 위하여 무한한 노력을 하여 왔다.무늬는 언어와 문자와 마찬가지로 그 민족과 그 민족이 살아온 환경에 따라 고유한 형태를 지니며 전통무늬는 어느 민족의 문화적 실체를 가장 뚜렷하게 반영하며, 또한 민족의 집단적인 가치 감정이 통념에 의해 고정되고 의도적으로 표상된 의장미술이다.무늬의 실체는 그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아름다움 이전에 그 안에 깃들여져 있는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2. 한국의 전통문양한국의 전통문양은 대부분이 중국을 통해 전래된 것이지만 한민족의 미적 감각에 의해 다음어지고, 우리의 생활문화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면서 재창조되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저통문양과 쉽게 구분되어지는 특정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다.또한 한국의 전통 문양은 한국인의 멋과 정서가 교유한 조형감각으로 여과되어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추상적인 기하문계 문양으로부터 사실적 표현의 동ㆍ식물문계 문양이나 자연문, 인물문계 문양에 이르기까지 그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조형적 특성을 구비하고 있다.3. 한국의 문양 과 무늬단청이란 목조건물에 여러 가지 빛깔로 무늬를 그려서 아름답고 장엄하게 장식한 것이다. 단청의 원료인 안료는 원래 진채 또는 암채라 하여 광물질 색감을 사용하였다. 단청은 광택이 없고 벌레의 침식을 방지하고 방습효과가 있어 목조건물의 부패를 막아준다. 단청은 무광택이므로 역광에서 보아도 제 빛깔을 발한다.당초는 당라나풍의 덩굴무늬를 가리킨다. 당초문양은 고대 이집트에서 발생하여 그리스에서 완성되었으며 광범위한 지역에 전파되어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荷花)라 하는데 옛날에는 부용(芙蓉)이라 하기도 하였다. 연꽃은 옛날부터 생명의 창조, 번영의 상징으로 애호되었는데 그 이유는 연꽃의 강한 생명력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연꽃을 청결, 순결의 상징물로 여겼다. 또 연꽃은 환생(還生)을 상징하기도 한며 여인, 천재, 고난속에서 피어난 순수를 나타내고 때묻지 않는 깨끗함 때문에 깨끗한 선비정신을 의미한다.귀면문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을 모티프로 한 장식무늬로서, 상상의 동물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이 각종 동물을 복합적으로 결합시켜 이질화한 것이 많다. 또한 식물과도 결합하여 리드미컬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귀면문은 옛 우리 조상들이 귀신을 쫓기 위해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의 첫 귀면문은 낙랑 고분에서 발견되었으며 7~8세기 통일 신라 전성기에 이르면 표현 기법이 독자적으로 발전되어 의장이 화려하고 활기라 넘치는 귀면문이 많이 나타나게 된다. 주술적인 제기의 장식 의장이나 건축, 고분에서 상징적인 그림으로 등장한다.옛사람들은 구름을 천신이나 신령들이 부리는 탈것일 뿐 아니라, 만물을 자라게 하는 비의 근원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상서로운 구름도안무늬가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장수와 길상을 상징했다. 중국에서는 구름 운(雲)자와 운수 운(運)자가 같은 음을 낸다고 하여 구름은 길운(吉運)을 가져다준다고 믿어왔다.? 점운(點雲) : 점점으로 흩어진 구름 모양? 유운(流雲) : 흘러가는 구름모양? 비운(飛雲) : 바람에 날아가는 모양? 완자운(卍字雲) : 卍자 모양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무늬? 기운(起雲) :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모양? 풍운(風雲) : 바람에 구름이 날리는 모양전통 건축을 비롯하여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물들을 살펴보면 길상문자가 문양으로 베풀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 문자무늬를 살펴보면 오복(五福)을 뜻하는 글자로서 오래오래 살라는 수(壽), 복을 많이 받기를 바라는 복(福), 건강하고 편안하라는 강녕(康寧), 좋아하는 바가 덕(德)이라는 뜻의 유호덕(攸好德)과꼴 등의 도형을 짜맞추어 이루어진다. 기하학적 무늬는 글자, 점, 선 등을 엇갈리게 만다는 추상적인 무늬로서 일정한 규칙성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다.꽃은 아름다운 것, 혹은 아름다운 여자, 아름답고 화려한 시절 등을 비유한다. 여러 가지 꽃의 형태를 나타낸 문양은 인간의 기원(祈願)이나 바람이 소재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으며, 꽃의 문화는 각 시대의 사회적 배경과 사조(思潮), 그리고 토착신앙 같은 종교등에 따라서 각기 특색을 나타내며 상징적인 뜻을 지닌다.통일신라 시대에는 불교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로 서역적 문양 요소가 많이 나타나게 된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보상화무늬를 비롯하여 연화무늬, 모란무늬, 당초무늬, 그리고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등을 그린 사군자무늬 등이 다양하게 장식된 것을 볼 수 있다.또 조선시대에는 궁중의 꽃담을 비롯하여 단청 등 건축 의장과 도자기, 가구 등에 많이 장식되었다.연꽃은 군자, 모란은 화중화(花中花), 덩굴은 인동초, 혹은 인도당초라 하여 ‘장춘(長春)’을 기원하는 뜻을 지녔고, 화문은 화목, 다복, 부귀, 다손, 다남자, 여의 등 다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쓰여 졌다.? 모란문(模蘭紋)모란꽃은 크고 화려해서 부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고려청자에서 간결하게 도안화된 모란 무늬가 다양하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국화문(菊花紋)국화는 늦서리를 견딘다 하여 길상의 징조, 또는 절개의 상징으로 여겨 왔으며, 맑은 아취와 높은 절개를 상징하는 길상의 꽃으로 인식되었다.? 대나무대나무 죽(竹)과 축수한다는 축(祝)이 같은 음을 낸다고 하여 축수(祝壽)의 의미로 쓰였다. 죽문(竹紋)은 계절을 통해 색이 변하지 않는 것 때문에 군자의 품격이나 절개의 상징으로도 비유되었으며 기형에 특징적으로 나타난 것은 고려시대이다. 조선시대 백자에 문양으로 나타났다? 소나무대나무, 매화와 더불어 세한삼우라 한다. 사계절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하여 예전 사람들은 이것을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다른 나무들과 달리 소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시들지 않아, 역경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통일신라 시대 와당과 뼈항아리에는 학, 제비, 오리, 기러기 등을 비롯한 철새들이 많이 등장하며, 고려시대 이후에는 자연 풍경을 소재로 새무늬가 매우 다양해진다. 이 시기 문양을 통해 선종(禪宗)의 성행과 더불어 유유자적하고 은유한 생활을 동경하였던 풍토를 엿볼 수 있다. 운학문(雲鶴紋)을 비롯하하여 많은 새무늬가 조선시대까지 유행하였다.? 학(鶴) : 장수를 상징하는 새? 앵무(鸚鵡) : 애련의 새? 닭(鷄) : 때와 시를 알리는 존재? 공작(孔雀) : 덕망의 새? 백로(白鷺) : 청렴결백의 상징? 원앙(鴛鴦) : 부부의 사랑을 상징? 오리 (鴨) : 신조(神鳥)라 믿어오는 새? 까치 (鵲) :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새? 꿩(雉) : 아름다운 문채(文彩)로 덕을 지닌 존재? 박쥐(??) : 복의 상징? 삼족오(三足烏) : 세발 까마귀, 해를 상징우리 고대 미술에서는 청동기, 토기, 와당 그리고 고분 벽화 등에서 각종 상상 속의 신수(神獸), 또 서역미술에서 영향을 받은 동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민화라고 부르는 그림에는 천마, 해태, 불가사리 등 영물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해태(??)뿔을 가진 동물로서 모습은 양을 닮았으며, 대단히 영물스럽고 사람의 시비곡직을 판단하는 신령스러운 재주가 있어 성군을 도와 현명한 일을 많이 하였고, 만일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 뿔로 덤비어 받아넘기는 ‘정의의 동물’이라 할 수 있다. 해태는 조선시대 관리들의 흉배나 여성들의 노리개, 주머니 장식으로 많이 쓰였고 재화(災禍)를 막아주는 상상속의 동물이다.? 기린(麒麟)전설에 의하면 기린은 용이 땅에서 아말과 결합하여 낳았다고 한다. 이마에 뿔이 하나 돋아 있으며 사슴 몸에 소의 꼬리, 말과 같은 발굽과 네 개의 다리 앞쪽에 화염 모양의 갈기를 달고 있는 동물로 하루 천리를 달린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린은 어진 성인이 출현하고 세상이 태평해질 징조로 여겨졌다. 기린은 영물로 신성시되어 장식문양으로 닭의 머리와 뱀의 목, 제비의 턱,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모양을 하고, 몸과 날개에 오색을 띄어 찬란한 빛을 내며 오음의 소리를 낸다고 한다. 또한 암수가 함께 그려져서 숫컷은 봉, 암컷은 황이라 하였다. 조류의 수장으로 일컬어지는 봉황은 성인, 혹은 성왕이 나오거나 어떠한 길조가 있을때 나타난다하여 도교사상과도 관련이 있다. 그리고 불교와도 관련이 있어사천왕의 하나로 신귀와 함께 사령이라고도 불려진다.봉황문모든 실제 동물과 상상 속 동물들의 능력과 장점을 취합하여 만들어낸 동물이 바로 용이다. 용의 머리는 뱀, 뿔은 사슴, 눈은 귀신, 귀는 소, 목은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발바닥은 호랑이를 닮았다 한다. 날개가 있고 와문(渦文)에 싸여 승천하거나 구름을 부르고 비를 내리는 신성(神性)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용의 다양한 성질과 신비한 능력에 의탁하여 그들이 바라는 바가 성취되기를 빌었다. 무속에서는 용을 수신으로 섬기면서 풍요와 안전을 빌었고, 궁중에서는 용을 임금의 권위에 비유하여 여러 장식 문양으로 활용하였으며, 민가에서는 용 그림을 대문에 붙여놓고 용의 능력을 빌려 잡귀신을 물리치고자 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생활용품, 문방구 등 매우 넓은 영역에 걸쳐 길상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널리 활용되었다.태극(太極)은 하늘이고 우주이며 해와 달이기도 하다. 태극은 천지가 개벽하기 이전의 상태로서, 우주만물 구성의 가장 근원이 되는 본체를 일컫는다. 『주역(周易)』에 의하면 음양의 본체라 하였다. 즉, 태초에 우주가 생성될 때에 태극이 생겼고, 이 태극이 둘로 갈라져 하나는 음이 되고 하나는 양이 되었는데 이 음, 양의 배합으로 천지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태극은 음,양이 변화하여 모든 것이 변화, 생성되고 새로워져 발전과 번영을 영원히 계속한다는 뜻이다.팔괘(八卦)는 중국 상고시대에 복희씨가 천문지리를 관찰해서 지었다고 전한다. 자연계(自然界)와 인사계(人事界)의 모든 현상의 여덟가지 상으로 나타낸 것으로, 이 괘 두 개씩을있다.
    자연과학| 2007.12.09| 15페이지| 1,500원| 조회(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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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고미술] 고려청자 - 시기, 기법, 문양에 따른 분류와 그 특징들
    고려청자국보 95호/ 청자칠보투각향로靑磁七寶透刻香爐, 고려시대, 국립중앙박물관1. 한국의 도자기한국 도자기의 역사는 약 4000년 전 부 터 시작됨 ▶ 돌로 만든 석기가 주를 이룸 삼국(三國)시대 토기 생활화 이루어짐 ▶ 용기나 기와 등에 화려한 무늬를 넣어 도자기의 공예적 가치를 공고히 함 통일신라시대 ▶ 토기의 기형이 세련화 되었으나 토기문화는 쇠퇴하게 됨 ▶ 이는 고려자기의 탄생을 위한 준비 고려시대 ▶10세기 초 삼국과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에서 벗어나 자기로 접어 듬 ▶ 기능적인 용도와 실용적인 형태로의 변화가 이루어짐2. 고려자기- 고려시대는 도기(陶器) 와 청자(靑磁), 백자(白磁), 흑자(黑磁) 많은 종류의 도자기(陶磁器)가 만들어 짐 - 청자; 고려시대의 특색을 가장 잘 반영함2. 고려자기1. 高麗靑磁 란 -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푸른빛(翡色)의 자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상감 청자가 특히 유명 - 국내 자체적인 노력 + 중국 도자기 영향 - 고려 초기 10세기 무렵부터 청자 소성 - 12세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함 - 고려 청자는 귀족들의 기호에 맞아 많이 만들어짐2. 고려자기2. 청자의 기원 - 은(殷)나라 시대부터 기원을 볼 수 있음 - 후한(後漢)과 위진(魏晉)시대 ; 회녹색의 원시적 청자가 절강성 북부를 중심으로 성행 - 육조(六朝)시대 ; 부장용 명기에 사용 - 당(唐) 시대 ; 각 요지(窯址)에서 비색청자 (翡色靑磁)라 일컫는 발전된 청자 나타남 - 송(宋)시대 ; 고전적 순수성을 구현한 완전한 형태의 청자로 발전3. 시기에 따른 청자의 구분1) 10세기 - 청자와 백자가 탄생하는 시기 - 청자와 토기제작 병행 - 순화 4년 명 (淳化四年銘) 항아리 → 고려 태조의 태묘(太廟)에서 제향(祭享) 때 쓰던 그릇 → 형태와 유약등의 특질이 중국 당나라 후기 5대의 중국 월주 청자의 여운을 짙게 풍기고 있음청자 순화4년 명 호, 보물 237호,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3. 시기에 따른 청자의 구분2) 11세기 - 송나라의 문물과 직접적이고 폭넓게)이 나는 11세기 후 부 터 12세기 초의 청자 12세기 후반 ; 상감청자 시대 → 12세기 중엽 상감 기법 도입과 함께 상감기법이 절정을 이룸순 청자청자죽순형주자 靑磁竹筍形注子, 고려시대, 국립중앙박물관청자사자향로 靑磁獅子香爐, 국보 60호, 고려시대, 국립중앙박물관3. 시기에 따른 청자의 구분4) 13세기 - 국운의 쇠퇴에 따라 고려 청자도 성격을 점차 잃게 됨 - 단정함과 우아함 보다는 실용성과 안전성을 강조 - 13세기 후반 청자진사채, 화금청자가 나타남 5) 14세기 - 고려청자의 쇠퇴와 조선 분청사기 준비기4. 기법에 따른 청자의 구분청자의 기법에 따른 분류 - 순(純)청자 ; 소문(素文)·양각(陽刻)·음각(陰刻) 투각(透刻)·상형(象形) 등으로 구분 - 상감(象嵌)청자 - 화(畵)청자 - 퇴화문(推花文)청자 - 진사(辰砂)청자 - 화금(畵金)청자 분류 ▶ 이러한 여러 장식기법은 때때로 양각·음각·투각·상감 등을 혼용하면서 장식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음 ▶ 도자기의 명칭은 재질 , 기법 및 문양, 형태 순4. 기법에 따른 청자의 구분1) 소문(素文) 청자 - 그릇의 표면에 아무 장식이나 문양도 없음 - 청자의 전시대를 통해서 제일 많이 생산 - 그릇의 종류도 술병, 대접, 주전자, 향로, 합자, 벼루, 요강, 도장 등1)무문(無文)청자청자 소문 과형 병 (靑磁素文瓜形甁)고려청자의 절정기인 12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작품 참외를 본뜬 몸체에 높직한 굽 다리가 달려 있으며 병 입구는 참외 꽃을 본뜬 듯 여덟 잎의 꽃 모양으로 벌어져 있음국보 94호, 고려시대, 국립중앙박물관4. 기법에 따른 청자의 구분2) 음각(陰刻)청자 - 그릇의 표면에 대나무 칼 혹은 못으로 문양을 조각 그 위에 청자잿물을 먹여서 구운 것 - 그릇의 표면에 음각되어 있는 문양 종류는 연꽃, 당초, 모란, 소묘, 국화, 용 등이 있음 - 그릇 종류는 사발, 병, 대접, 주전자 합자, 침 뱉는 단지, 냄비 있음2) 음각(陰刻)청자청자 음각 연화당초문 매병 (靑磁 陰刻蓮花唐草紋 梅 병, 향로 등 있음3) 양각(陽刻)청자청자 양각위려수금문정병 (靑磁陽刻葦麗水禽文淨甁)보물 344호, 청자양각위려수금, 국립중앙박물관4. 기법에 따른 청자의 구분4) 투각(透刻)청자 - 그릇에 입체적인 조각 또는 투각을 하여 구운 것 5) 상형(象形) 청자 - 12세기 고려청자는 복숭아, 참외, 거북이 , 오리, 표주박, 죽순, 대마디 무늬 등 동.식물의 상을 따서 만든것 6) 상감(象嵌)청자 - 상감이란 그릇에 각종 문양을 금각 한 후 그 파여진 요부(凹部)에 죽처럼 된 백토(백상감) 혹은 적토(흑상감)로써 메운 뒤에 그릇 면이 고르게 대패질을 하여 구운 것4) 투각(透刻)청자청자 투각 연화동자문 주자 (靑磁透刻蓮花童子文注子)고려시대, 국립중앙박물관순 청자의 전성시기인 12세기 전 반경에 제작 특히 투각은 성형 후 조각하기 쉽도록 어느 정도 건조된 상태에서 행해지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시문기법으로 그 수량이 많지 않음 - 주자는 구형(球形)의 내용기(內容器)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외용기(外容器)로 구성되어 있으며 바깥 부분 전면에 연당초문(蓮唐草文)과 7명의 동자(童子)들이 매우 생동감 있게 투각.5) 상형(象形) 청자국보 61호, 고려시대, 국립중앙박물관청자 어룡형주자 ( 靑磁魚龍形注子) - 물고기의 머리가 마치 용의 머리처럼 보이므로 어룡魚龍이라 불림5) 상형(象形) 청자국보74호, 고려시대, 간송미술관- 오리 모양으로 만든 고려시대의 청자 연적 - 물위에 뜬 오리가 연꽃줄기를 물고 있으며 연 잎과 봉오리는 오리의 등에 붙어있음 오리의 등 가운데 붙어있는 연 잎에는 안으로 뚫은 구멍이 있어 물을 넣음 물을 따르는 부리는 오리 주둥이 오른편에 붙음청자귀형수병 (靑磁龜形水甁)6) 상감(象嵌)청자청자 상감 모란국화문 과형병 (靑磁象嵌牡丹菊花文瓜形甁) - 몸통은 참외 모양으로 여덟 부분으로 나뉘어 골이 지어있음 - 긴 목 위의 아가리가 나팔처럼 벌어진 것이 참외 꽃 모양이고, 목의 중간 부에는 2줄의 가로줄이 백토(白土)로 상감 되어 있음국보 114호, 고려시물관청자 상감모란문 표형병 (靑磁象嵌牡丹文瓢形甁) - 12세기 중엽의 고려시대 표주박 모양 청자 주전자 목의 윗부분에 흑백상감으로 구름과 학 무늬를 그려 넣었으며, 병의 아래 부분 몸통에는 활짝 핀 모란과 피지 않은 봉오리, 잎들이 꽉 짜여진 채 전체를 장식함4. 기법에 따른 청자의 구분7) 철화(鐵畵)청자 - 송(宋), 원(元)의 자주요(磁州窯)등의 영향을 받아 발달한 것이나 고려청자의 특색을 나타냄 - 그릇의 표면에 철사 혹은 백토를 가지고 문양을 그린 뒤 청자잿물을 먹여서 소성한 것 - 대부분의 철화 청자는 회 황색을 나타냄 8) 퇴화문(堆花文)청자 - 그릇 면에 백토 또는 적토로써 문양 혹은 선을 그리고 그 위에 청자 잿물을 발라서 소성한 것7) 철화(鐵畵)청자청자 철화양유문 통형병 (靑磁鐵畵楊柳文筒形甁) 청자철화는 같은 청자류지만 형태와 유약의 색, 문양 등에서 순 청자나 상감청자와는 갈래가 다른 독특한 발전을 보임 몸체의 양면에 표현 된 단순화된 버드나무는 다른 청자 철화들과는 달리 문양 그릇 전체에 표현되지 않고 여백을 넓게 두고 간략하게 표현국보 113호, 고려시대, 국립중앙박물관8) 퇴화문(堆花文)청자청자 퇴화 음각초화문 주자 (靑磁堆花陰刻草花文注子) 몸통의 좌우양면에 백토를 넓게 바른 후 일반적인 청자에서 볼 수 없는 풀꽃 한 포기를 단순화시켜 선묘로 새겨 넣음고려시대, 호림박물관4. 기법에 따른 청자의 구분9) 진사(辰砂)청자 - 그릇 면에 산화동(酸化銅)으로 문양 혹은 문자로 쓰고 그 위에 청자잿물을 발라서 소성한 것 - 소성 후엔 산화동이 환원되어 선홍색을 나타냄 10) 화금(畵金) 청자 - 상감청자에 금(金)물로써 문양을 그리고 가마에 넣어서 800℃정도의 온도에서 다시 소성하면 찬란한 금빛 색9) 진사(辰砂)청자국보 133호, 고려시대, 호암미술관청자 진사연화문 표형주자 (靑磁辰砂蓮華文瓢形注子) - 표주박 모양의 몸통에 표면은 연 잎으로 둘러싼 형태 - 꽃봉오리 모양의 마개를 하고 있음 - 잘록한 목 부분에는 동자가 연봉오리를 두 손있는 다양한 무늬가 상감청자의 문양으로 나타남 ▶ 연꽃과 연판, 연당초, 모란꽃, 모란당초, 국화꽃, 봉황, 학, 구름, 운학(雲鶴), 버드나무와 물새를 그린 포류수금(蒲柳水禽)등 도자기의 명칭은 재질 , 기법 및 문양, 형태 순5. 문양에 따른 청자의 구분1) 포류수금 (蒲柳水禽) 문양 - 버드나무와 물풀, 그리고 물살을 가로지르는 오리 등을 도자기 안에 그려 넣음 ▶ 자연스러운 풍경 떠오름 - 중국의 도자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려청자의 독자적인 문양 - 당시 사람들의 불교적 세계관, 그 가운데에서도 禪宗的 세계관과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음 즉 선종에 심취하여 고요함과 정적의 세계를 추구하던 고려인들이 내세에서 그러한 곳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청자에 그와같은 문양을 새겼을 것으로 파악한 것1) 포류수금 (蒲柳水禽) 문양국보 66호, 고려시대, 간송미술관청자 상감 포류수금문 정병 (靑磁 象嵌 蒲柳水禽文淨甁 )2) 매죽(梅竹) 문양보물 903호, 고려시대, 개인청자 상감 매죽 학문 매병 (靑磁 象嵌 梅竹 鶴文 梅甁)3) 운학(雲鶴) 문양- 청자의 문양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구름과 학 - 이것은 고려인의 세계를 나타낸 것 - 고려인 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불교적인 세계였으며, 불교가 널리 보편화된 사회였고, 불교의 가르침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는 찰나이며 결국 윤회에 의해서 다음 생이 영원할 수 있다는 것 - 현실의 삶보다는 내세의 삶을 동경하게 되었으며, 영원한 세계에 대한 동경을, 창공의 구름 너머로 비상하는 학으로 나타낸 것3) 운학(雲鶴) 문양고려시대, 호암미술관청자 상감 운학문병 (靑磁 象嵌 雲鶴文甁 )청자 상감 운학문매병 (靑磁 象嵌 雲鶴文梅甁)국보 68호, 고려시대, 간송 미술관포도당초문청자 상감포도당초문 표주박형 주자 (靑磁 象嵌 葡萄唐草文 瓢形注子)고려시대, 일본 세카도 문고 미술관연당초문청자 상감 연당초문 주자 (靑磁 象嵌 蓮唐草文 注子 )고려시대, 국립중앙박물관동자승문청자 상감 포도동자문동채 주자 (靑磁象嵌}
    인문/어학| 2007.12.13| 41페이지| 1,500원| 조회(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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