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인도네시아는 동남아 말레이 군도에 위치해 있으며 수도가 자카르타이다.인구가 약2억1,400만 명으로 세계4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종교는 다양하다. 인도네시아는 모든 국민이 한가지의 종교를 가지는 것을 의무로 하고 있으며 사람이 태어나 호적신고를 할 때 종교 난에 종교를 기입하여야 한다. 인도네시아에는 이슬람교 즉 회교는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기독교 5%, 힌두교 3%, 불교 2%이다.특히, 다른 지역의 이슬람 국가와는 다르게 인도네시아는 ‘최고 신(神)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나라’임을 강조하며, 정부에서종교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또 피조물에 지나지 않으며,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굳은 믿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죽음을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죽음 앞에 눈물과 슬픈 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침착하게 받아들인다.즉,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것이다. 이 글은 이슬람 국가라고 말하는 인도네시아가 이슬람화 되었는지 살펴보고 현재의 인도네시아 속에서의 이슬람을 알아보았다.Ⅱ.본론1.이슬람교이슬람은 아랍어로 복종, 항복, 순종 등을 의미한다. 종교로서의 이슬람은 알라께 대한 완전한 복종과 순종을 나타내며 이 때문에 이 종교가 이슬람교라 불리는 것이다. 이슬람의 또 다른 의미는 평화이다. 이는 알라께 복종과 순종을 할 때만 몸과 마음의 진정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뜻이다.이슬람교는 경전, 교리, 의례에 대한 규정을 체계적으로 갖추고 있는 종교이다.규범을 따르겠다고 한 사람은 무슬림 즉 신자가 되고 이를 거절한 사람은 까피르 즉 불신자가 된다.㉠ 이슬람교 신앙이슬람교는 5신(신앙)과 5행(행위)으로 이루어져 있다.알라, 예언자들, 경전들, 천사들, 부활과 심판을 믿는다. ‘알라 외에는 신이 없다’는 유일신에 대한 신앙과 천사, 진, 사탄 등 영적 존재를 믿으며 직접 알라의 영감을 받은 자를 선지자라고 하며 그 중에는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무함마드 등 6명의 선지자를 가장 중요한 선지자로 여기며 그 중에도 무함마드를 마지막 선지자라고 믿고 있다.또한 거룩한 경전을 믿는다. 알라가 계시한 104권의 책이 있는데 아담에게 10권, 셋에게 50권, 에녹에게 30권, 아브라함에게 10권, 모세오경, 다윗에게 시편, 예수에게 복음서, 무함마드에게 꾸란을 계시했다고 믿으며 그 중에 꾸란이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알라의 최종 계시라 한다.무엇보다 최후의 심판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현세에서의 개개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강조하고 언제나 알라의 주권을 강조하며 무슨 일이든지 알라의 뜻으로 돌린다.㉡ 이슬람교 의무이슬람교의 의무는 신앙고백, 기도, 자선, 금식, 순례 다섯 가지이다.첫 번째 의무는 자신이 믿는 신앙을 고백하는 것인데 이 고백은 신의 유일성과 무함마드의 선지자직을 확인하는 것으로 우주의 유일한 최고의 주님은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을 믿으며 무함마드의 선지자 직분을 믿고, 그분께서 제시한 종교를 받아들이며, 그분의 명령을 따르며 내세의 믿음과 함께 심판의 날 인간의 책임이 추궁된다는 것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신앙고백을 한 사람은 모두 무슬림이 되는 것이다.두 번째 의무는 기도이다. 기도를 하기 전에 먼저 세정의식을 행해야 한다. 물이 없을 때는 모래로 청결 의식을 행하며 모든 불결함을 제거하고 몸과 복장을 깨끗이 한 상태로 얼굴은 반드시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는 하루 다섯 번을 하는데 아침기도, 한낮기도, 한낮과 일몰의 중간기도, 일몰기도, 일몰 한 시간 후의 기도로 시간이 각각 정해져 있다. 기도 시작할 때 기도서인 꾸란 1장을 단순하게 반복한다.세 번째 의무는 구제이다. 이슬람교에서는 부유함을 알라의 선물이라 가르치며 가난한자, 궁핍한자, 빚 진자, 노예, 여행자, 거지, 고아와 과부에 대한 자발적인 선물이나 여러 가지 자선금을 마련하는데 개인이나 가족이 1년 동안 번 재산의 2.5%를 자카트로 내야한다. 꾸란은 자발적인 형태의 구제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자선이라 칭한다.네 번째 의무는 금식이다. 금식은 라마단 기간 중에 행하며 라마단의 시기는 이슬람 달력 중 제9월에 행한다. 즉 한 달 동안 해가 떠서 해가 질 때까지 금식하게 된다. 어른들은 모두 이 달에 금식을 해야 한다. 음식, 음료수, 담배, 침, 부부관계, 주사 등으로부터 완전히 단절해야 하며 특별한 이유들 때문에 금식을 할 수 없을 때는 다른 날 금식을 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어야 한다. 이 금식은 꾸란을 계시해 준 알라에게 감사하는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매우 형식적이며 습관적으로 되어 가고 있다.다섯 번째 의무는 순례이다. 일생동안 한 번은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메카를 순례해야 한다. 메카 순례는 세계적ㆍ국제적인 모임이며 만민 평등사상과 그들의 형제애를 나누기 위한 행사이다. 순례를 행한 모든 발자취는 자신의 죄를 씻고 또한 순례의 여정 중에 죽은 자는 순교자로 칭했는데 이때 순례 객들이 많아 사람들 발에 밟혀 죽는 사람들도 많았다.2.인도네시아의 이슬람화 과정이슬람화는 7~16세기에 걸쳐 국제교역을 하고 있던 무슬림 상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각 지방의 토후들이 외국 상인들과 같은 종교를 가지는 것이 부를 축적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토후들은 국제교역을 하는 무슬림 상인들과 같은 종교를 가지게 되었다. 상업적 교류를 통해 부를 이룬 무슬림 상인들은 사회적으로 상류층의 특권을 누렸다. 그들 중 귀족자녀와 원주민 여성과 결혼한 사람이 많았는데, 특히 자바를 이슬람화 하는데 기여한 수난 구눙 자띠와 수난기리 또한 이러한 혼인을 통해 태어났다. 원주민들은 혼인하기 전에 복잡한 절차 없이 신앙고백인 ‘샤하다’만 암송함으로써 무슬림으로 귀의하게 된다. 이러한 간단한 절차들이 많은 원주민들이 이슬람교에 귀의하는데 자극제가 되어 무슬림 촌락은 점차 영역을 확대시켜 나갔다.몽고의 침략으로 압바스 왕조가 1258년 멸망하였을 때 초자연적 신비주의자들인 수피들은 인도네시아 군도로 이주해왔는데 그 당시 자바에는 샤먼적 정령신앙과 힌두?불교의 사상이 혼합된 형태의 의식세계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수피들은 마법을 행하고 병자를 치유하는 등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왕족들뿐만 아니라 서민들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왕족의 딸과 혼인한 수피들도 있었는데 이들의 후손은 그 지역을 이슬람화 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이슬람 교리에 통달한 학자들이 해안지방에 건립된 무슬림 촌을 중심으로 ‘뻐산뜨렌’이라고 불리는 작은 전통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을 했다. 이 학교는 기숙사가 있어 학생들이 숙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군도 여러 지방에서 온 학생들을 수용하여 교육을 시켰다. 오랜 기간 동안 이슬람 학문을 습득한 학생들은 귀향하여 같은 유형의 ‘뻐산뜨렌’을 세웠다. 당시 가장 대표적인 ‘뻐산뜨렌’은 인도네시아 군도에 이슬람을 전파한 9명의 왈리 중 한 사람인 수난기리가 동부 자바 해안 지방 그레식에 세운것이다. 이슬람 문화 중심지이기도 한 이곳을 통해 롬북, 마까사르, 동부 깔리만딴의 꾸따이, 말루꾸, 그리고 민다나오 섬 남단에 위치한 떠르나떼에 이르기까지 이슬람교가 확산되어 갔다.신비주의에 관한 내용의 문학은 초자연적인 사고에 젖어 있던 토착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무림촌에 세워진 웅장한 건축물들은 지역사회에 많은 관심을 끌기 충분했고, 무엇보다 보다 이슬람 종교 관련 행사 때 가멀란과 같은 악기와 민속춤 공연 같은 예술 활동을 통해 쉽게 토착민들에게 접근하여 문학, 춤, 음악, 조각, 건축물 등과 같은 예술을 통해 이슬람화가 되어갔다.3.인도네시아 이슬람화 양상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크고 활발한 이슬람 사회운동 단체는 ‘무함마디야’이다. 1912년에 설립이 되었고 토속신앙을 제거하고 이슬람을 토대로 한 교육발전과 선교강화를 시도하였다.1970년대에 비정치적 사회, 문화 운동가들은 교육과 사회, 복지, 종교의 신심을 강화하는 일에 집중하고 정부 체제 안에서도 온건한 이슬람을 부흥시키려 노력하여 이슬람 공동체들의 활발한 무대가 마련되었다. 처음에는 구시대적 종교실천과 의무를 비판하여 무슬림 정체성을 보다 강화하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지만, 점차 이슬람과 과학이 서로 모순관계에 있지 않으며 경전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것을 주장하는 등 서구문화를 수용하는 방식의 정치적이기보다는 사회문화를 개혁하는 방향으로 종교갱신운동을 전개했다.1980년대 군부가 이슬람 세력을 약화시키려고 하였으나 이일은 역설적으로 이슬람 부흥운동을 더욱 자극시켰다. 이 일을 통해 이슬람을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경제적으로 박탈당한 집단으로 보지 않게 되었고, 이슬람리더들은 이슬람만이 인도네시아의 문제에 대한 가능한 답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무슬림으로서의 종교적 실천과 관련하여 정체성의 분화가 급격히 일어났으며 최근 20여년 동안에는 경전중심의 무슬림이 증가하는 추세에 따라 더 배타적인 정체성 개념이 확립되어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이슬람과 관련된 문제는 모두 집합적으로 취급 되고 일상생활에서도 사회현상과 개인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사회는 다양한 성향을 지닌 무슬림들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교리가 정치경제 영역의 기본원리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 성향의 무슬림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도시를 중심으로 한 근대주의자들로 ‘산뜨리’라 불린다. 이슬람 교리를 도덕적?사회적으로 해석하며 이슬람의 절대 진리에 대한 필연성을 강력히 주장하는 자칭‘순수 무슬림’이다. 자바의 귀족 엘리뜨이며 식민지 시기 핵심관료들인 ‘쁘리야이’는 산뜨리를 정치적 위협세력으로 간주한다. 이외에도 서구 지향적인 무슬림도 있어 다양한 종교성향을 지닌 무슬림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 인도네시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