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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중기 고분벽화의 특징
    目 次Ⅰ. 서론Ⅱ. 중국의 장의미술의 동북아시아로의 파급Ⅲ. 고구려 중기 고분벽화의 특징1 고구려 중기 고분의 구조2 사상적 배경1)민간신앙2)음양오행사상Ⅳ. 불교의 전생적 내세관 수용과 고분벽화의 내용1)불교 수용과 왕권2)고분벽화의 연꽃문양을 통해 본 전생적 내세관Ⅴ. 맺음말Ⅰ. 서 론고분벽화는 고대 무덤의 내부 벽에 그려진 그림으로 왕과 귀족 등의 지배층 무덤에 그려졌으며, 죽은 사람의 사후 세계를 위해 제작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고분벽화는 葬儀美術의 한 분야로서 주술성을 담은 회화이며, 제작 당시의 현재성과 초월성이 중첩된 작품이다. 고분벽화에는 그 무덤에 묻힌 자가 살던 세계, 살고 싶어 하던 세계가 때로는 함께, 때로는 어느 하나만이 선택적으로 그려지게 된다. 두 세계는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그려질 수도 있고, 철저하게 상징화되고 기호화되어 그려질 수도 있다. 고분 벽화의 각 화면에는 당대인의 인식과 표현, 의례와 관념, 현실과 희망이 함께 그려지는 것이다.고구려 고분벽화는 장의미술이라는 분야를 뛰어 넘어 우리나라 미술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넓은 의미에서 시도된 벽화여서 우리나라 회화의 시원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 회화의 시작은 신석기 시대의 바위그림(암각화)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선사시대의 암각화와는 달리 본격적인 예술로서 사회성과 상징성을 지니고 있고, 선과 색채로 이루어져 있어 발전적인 회화기법을 지니고 있다. 또한 벽화의 주제가 당시의 생활, 문화, 사회성 등이 반영된 생활상과 종교적인 소재로 선택되어 역사적인 史料의 가치가 있으며, 초기의 중국양식에서 벗어나 점차 독자적으로 발전된 회화적 전통이 동시대의 다른 나라에까지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선사시대의 암각화와는 달리 그 문화적인 중요도가 크다.고구려 고분은 현재 통구(通溝) 지방을 중심으로 한 압록강 유역과 평양을 중심으로 대동강 유역, 그리고 황해도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현재까지 약 90기가 밝혀 표현되었다. 화공의 기량이 제재의 배치와 구성, 배색 등에서는 향상을 이루었지만, 특수한 표현에서는 한계에 부딪치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널방오른벽의 사냥장면도 고구려 나름의 회화적 성취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화공은 힘 있고 간결한 필치로 사냥꾼과 짐승들 사이에 형성되는 사냥터 특유의 쫒고 쫒기는 급박한 흐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사람과 짐승의 자세와 동작은 비교적 정확하면서도 세련되게 표현한 반면, 산줄기는 공간감을 결여하고 산봉우리의 나무는 고사리순과 같이 표현되는 등 산수(山水)의 묘사 수준은 초보적이다.가장 가까운 산은 희색, 그 뒤의 산들은 붉은색, 먼 산은 노란색을 바탕으로 한 것은 보는 사람에게 멀어짐에 따라 백(白)-적(赤)-황(黃)의 차례로 채색하는 고대 설채법(設彩法)의 원리를 따른 것이다. 화면구성, 배색 효과 등 구성적 측면에서는 향상되고, 제재의 특수한 형태, 자세의 묘사와 같은 표현적 측면에서는 한계를 드러내는 이 시기 집안 지역 화공의 기량상의 문제가 이 사냥도에서도 확인 된다고 하겠다.널방 안벽의 묘주 접객도는 무덤 주인과 대화하는 두 인물이 승려인지의 여부로 논란이 일기도 했던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눈길이 가는 것은 무덤주인이 신상(神像)과 같이 정좌한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특정 장면의 주요 인물의 하나로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내세관의 변화와 관련하여 관심을 끄는 부분이다. 화면에 주인은 비스듬히 앉아 승려로 보이는 두 인물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무덤 주인의 부인은 보이지 않는다.이와 같은 구성의 벽화는 정좌한 무덤 주인과 이를 향해 비스듬히 앉은 두 부인으로 구성된 각저총 벽화 단계에도 흔적을 남기고 있던 무덤 안의 혼전(魂殿)에 대한 인식을 무용총 벽화에서는 느낄 수 없다. 무용총 벽화의 묘주 접객도는 내세관을 둘러싼 새로운 인식의 표현이자, 이제 고구려식 고분벽화의 구성이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표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초에 걸치는 시기에 집안?환인소화과정이 일정한 성과에 다다른 결과물이자, 집안권과 평양권이라는 고구려 양대 사회,문화 중심의 문화적 통합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쌍영총벽화는 문화사적으로도 상당히 의미있는 고분벽화인 셈이다.덕화리1호분(德化里1號墳)은 널방 앞벽에 주작, 좌우벽에 청룡과 백호, 안벽 상부에 인물행렬, 하부에 현무, 천장고임에 해와 달, 북두칠성과 남두육성(南斗六星), 천장석에 연꽃이 그려진 생활풍속 소멸 단계의 사신계열 벽화고분이다. 청룡과 백호에 비해 어색하고 서툰 필치로 벽면 위나 한편에 좁게 자리 잡도록 그려진 주작과 현무도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벽면 중심이나 하부 전체를 차지하도록 묘사되었다. 사신 표현에 ‘상상적 사실성’이 담겨지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가능한 단계에 이른 것이다.이상의 몇몇 작품 검토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평양권에 발견된 중기 고분벽화들에서는 대개의 경우, 생활풍속이 벽화 제재 구성상의 주요한 부분으로 일정 비중을 지닌다. 같은 시기 집안 지역의 고분벽화들이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연꽃장식무늬 위주로 벽화제재를 사실상 단일화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라고 하겠다.평양지역의 고분벽화에서 연꽃은 불교적 깨달음의 세계, 정토나 여래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천제에 대한 인식의 표현으로도 쓰이고 있는 것이다. 사신이나 신선신앙, 별자리 신앙과 관련된 제재, 생활풍속 계열의 제재들이 평양지역 고분벽화 속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제재구성상의 상호비중이 집안지역 고분벽화에 비해 지나친 불균형이나 극적인 변화를 보이는 사례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 역시 평양권 문화의 복합성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안악2호분, 쌍영총, 덕화리1호분 외에 평양권 중기 벽화고분 가운데 주목되는 것으로는 널방 벽은 사방연속무늬 안의 연꽃으로 장식 되었으면서도 천장고임이 천왕(天王), 지신(地神), 천추(千秋), 만세(萬歲) 등으로 장식된 천왕지신총, 벽면 전각도(殿閣圖) 위의 목조가옥 골조 그림 사이로 커다란 연봉오리들이 배치된 용강대묘, 나무기둥 그림을 대신한 역사 二氣로 파악했다. 해와 달은 지상에서 생명의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라는 원천적인 에너지가 없다면 지상의 생명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음양의 운동에서 생겨난 이치가 오행이 된다. 오행은 자연계의 중요한 물질의 속성으로 ‘行’자의 字形의 근원에는 운동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것은 木 火 土 金 水 5종류의 쉬지 않는 강한 운동을 뜻한다.이를 바탕으로 음양오행설이 고구려 고분벽화에 어떻게 표현되어 살펴보겠다. 먼저 신비감과 공포심으로 사방에 方位神을 만들어 수호케 하였는데, 방위신에는 황룡,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五神獸가 있는데 흔히 중앙의 황룡을 빼고 나머지 신수를 四神이라고 한다. 이것은 음양오행설과 이십팔수법이 관련되어 28개의 성좌를 중앙과 동서남북으로 다섯 방향에 따라 나누고 그 성좌들의 모양을 따서 신수를 만들고 그것을 숭배했는데 이것이 방위신이다. 이렇게 天詳動物을 오방에 배치하고 오색으로서 각 동물의 색과 형을 다르게 한다.고분벽화에 표현된 각각의 동물을 음양오행설과 관련하여 보겠다.거북(玄武)은 바다 속 깊은 곳에 살며 陰의 깊고 깊은 곳, 즉 태고의 신비를 갖는 의 세계이다. 현의 세계는 도덕경 10장의 ‘자궁(生成)의 문을 열고 닫는데 암컷과 같이 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과 수로왕의 탄생설화에서 보듯이 여성적 의미를 지니게 되며 陰의 막다른 곳을 상징한다. 결국 거북은 대지의 상징이며, 대지는 하늘(男)로부터 정충(雨)을 받아 생명을 잉태하는 동양인의 사고와 일치하게 된다. 이는 땅과 하늘에서 모든 것을 얻고 사는 농경사회의 특징도 아울러 설명할 수 있다.현무와 주작은 相生相剋이지만 동시에 공존하는 역학적 관계에 있고 백호는 달과 관련되며 陰氣의 상징이다. 호랑이의 싸움자세를 보면 대개 머리를 땅에 낮추고 뒷다리를 치세우는 자세인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기세를 陰風이라 하며 반대로 머리를 치켜세우는 용의 陽風과 비교할 수 있다.청룡은 뱀이 변화된 모습으로, 이 분이다. 지리상 평양권에 속하는 연화총과 천왕지신총 벽화를 집안 계열로 분류한 것은 벽화의 연꽃이 형태상 평양 계열보다는 집안 계열에 가깝기 때문이다. 먼저, 집안 계열의 고분벽화의 연꽃 표현에 살펴보겠다.① 무용총(舞踊塚) 벽화무용총 벽화는 5세기 집안 계열 고분벽화 가운데 제작 시기가 비교적 앞서는 것으로 벽화에 표현된 연꽃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연꽃은 꽃이나 봉오리가 독립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잎과 줄기를 수반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널방 천장고임 제 1층부터 천정석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묘사, 배치되고 있다.연봉오리는 안악 3호분 벽화의 것과 같이 봉오리 안에 각 한 개씩의 타원형 씨앗을 품은 두 개의 작은 봉오리가 담겨진 모습을 하였으며, 밑 부분에 끝이 흰 두 갈래 꽃받침을 지녔다. 각 연봉오리 아래에는 수직 등 간격으로 작은 원점을 찍어 연봉오리가 하늘세계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게 하였다. 이들 연봉오리는 평행고임 제 1층에 같은 간격으로 묘사된 세모꼴불꽃무늬나 연봉오리 사이로 배치된 측면연꽃보다는 조금 작으나 평행고임 제 3층 이상의 신수(神獸),선인(仙人)들과 거의 같은 크기로 표현되었다.평면연꽃은 널방 천청석에만 보인다. 널방 천정석 면을 가득 채우며 묘사된 대형 연꽃은 중심부 백회가 떨어져 나가 날카로운 꽃잎 끝만 남아있다. 꽃?잎?줄기가 함께 그려진 경우는 평행삼각고임의 삼각석 밑면에서 찾을 수 있다.연 줄기에는 같은 간격의 짧은 가로띠를 그려 넣어 마치 마디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줄기를 포함한 연의 묘사는 무용총 벽화에서 처음 나타난다. 이들 연, 연꽃, 연봉오리 사이에는 하늘세계의 신수?선인들이 그려졌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연봉오리가 달린 연 줄기를 손에 잡거나 부리에 물고 있다.무용총의 앞방과 널방의 네 벽, 앞방?널방 사이의 이음길 벽에는 생활풍속도 계통의 벽화가 그려졌으며 연꽃이나 연봉오리는 표현되지 않았다.② 통구 12호분(通溝12號墳) 벽화통구 12호분은 무덤길 입구에서 연결되는 독립된 두 개의 무덤 칸.
    인문/어학| 2009.04.22| 33페이지| 6,000원| 조회(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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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크로드 미술사 ppt
    중앙아시아 벽화권영필,「중앙 아시아벽화 고」 고고미술사학과 01' 홍성일목 차1. 시작하면서.. 2. 동서 투르키스탄의 회화 ① 이란 벽화 ② 판치켄트 벽화 ③ 바미얀 벽화 ④ 카슈가르 벽화 ⑤ 키질 벽화 ⑥ 베제클릭 벽화 ⑦ 돈황 벽화 ⑧ 미란 벽화 3. 마무리하면서..1. 시작하면서..중앙아시아가 역사적으로 복합문화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시아에서 내륙에 위치한 이 지역은 파미르 고원을 분수령으로 하여 동,서 투르키스탄으로 나뉜다. 이곳은 대체로 사막지대로 구성되어 있고 그 사이에 오아시스 도시를 잇는 실크로드가 전개된다. 중앙아시아의 중심 종족은 다수의 유목민족이다. 그러나 많은 유목민족 중 구체적인 유물을 남긴 종족은 많지 않다. 유물을 남긴 종족으로는 사카이족, 소그드족, 흉노족, 훈족, 위구르족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주변 정주문화와의 접촉을 계기로 자신들의 문화적 고유성을 촉발시키는 특성을 보인다. 아울러 이러한 접촉의 과정에서 적극적인 선택을 통해 미적 의지를 표출한다.2. 동,서 투르키스탄의 회화중앙아시아 회화의 태반은 벽화의 형태로 남아 있다. 벽화를 포함한 중앙아시아 회화가 구축한 양식은 매우 복합적이다. 당해 지역의 토착문화가 헬레니즘, 이란, 불교, 중국 문화 등과 상호 습합하면서 새로운 변종을 탄생시킨다. 중앙아시아의 벽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경 및 역사적 기본조건과 더불어 불교사상의 변천과 외래 영향으로 인한 각 지역마다의 독특한 불교도상의 성립배경을 파악하는 것이 전재되어야 한다. 중앙아시아 미술의 흐름은 주지되듯이 대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방향이었고, 편년상 연대를 따져본다고 해도 서투르키스탄에서부터 고찰하는 것이 순서가 되겠다. 다만, 남아 있는 작품이 충분치 않아 양식의 변천과 유파의 연관관계 등을 관찰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①이란 벽화이란의 고대 왕국인 파르티아(기원전 4c~기원후 3c)의 회화대상에는 벽화와 모자이크가 일부 포함된다. 서쪽에 위치한 지역적 특르칸트, 판치켄트, 바락샤 등의 도시에 남아 있는 사원, 궁전 등의 벽면을 장식한 그림들이 주를 이룬다. 판치켄트 화가들이 사용했던 안료는 광물성, 식물성 안료로써 20가지 이상의 안료를 사용했다. 벽화에 표현된 주제들은 의식, 서사적인 내용, 민속, 풍속 등으로 구분된다. 판치켄트 회화의 제반 특성은 아프라시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두 지역이 같은 유파에 속한다는 것은 아프라시압의 궁전벽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공통점은 한때 부하라의 수도였던 바락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차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부하라 궁전터의 벽화의 배경이 붉은색으로 처리되어 명명된 '붉은 방'의 벽화는 판치켄트 루스탐 전설을 담은 벽화에 비해 규칙적인 거동 속에서 대상이 반복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아프라시압 궁전벽화의 행렬도에서 한국인 사절로 보이는 인물들이 묘사되어 있어 주목되고 있다. 관식으로 깃털을 꽂고 허리에는 칼을 찬 모습으로 김원용은 8세기 초기의 신라인으로 추정하고 있고 외국학자들도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③. 바미얀 벽화카불의 서북쪽으로부터 177km 떨어진 곳에 바미얀은 힌두쿠시 산맥의 줄기에 위치해 있다. 서투르키스탄의 어느 지역보다 불교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동,서 대립불소상'으로 유명하다. 바미얀 대립불 주위에 많은 석굴이 조영되었고 인접 유적지인 카크락 등에도 석굴이 남아있다. 특히 동대립불감실의 천정벽화에 묘사된 태양신의 존재는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불교가 이란의 토속신 미트라와 습합된 사례로 바미얀 회화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바미얀 지역에 표현된 사산조의 영향은 결코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에프탈족을 피해 이란의 왕족들이 바미얀으로 피난왔던 사실은 양자의 직접적인 접촉을 의미한다.④. 카슈가르 벽화동투르키스탄의 벽화들은 불교의 동점과 더불어 들어온 아잔타 설굴과 같은 인도 석굴사원의 전통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인도에서 파미르 고원을 넘어 동쪽으로 오면 처음 만나는 도시, 서쪽 끝의 도시, 카슈가르이다. 카슈가르에인 남색조가 지배적으로 사용. 2단계(4세기 말~5세기 중엽) – 벽화의 내용은 차이가 없으나 세부에 있어서 도안화 현상과 채색에 있어서 하이라이트 수법을 이용한 점이 나타남. 3단계(6세기 중엽~8세기 중엽) – 천불이 유행하는 주제상의 변화와 연대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연주문 장식이 등장. 이러한 내용을 보면 키질벽화는 초기 소승유부사살을 반영하는 반면, 말기에 대승적 내용을 가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혜초의 기록에는 이 지방이 대승불교를 신봉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키질 벽화의 주요부분을 점하고 있는 불전도를 세분하면 1단계에서는 인연류의 불전 벽화가 유행하고, 2단계에서는 본생류의 불전 벽화가 출현하기 시작해 인연류가 성행을 마감하며, 3단계에서는 두 종류의 불전 벽화가 모두 감소되어 부분적으로는 천불로 교체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키질 벽화는 철선묘를 바탕으로 굵은 윤곽선을 이용하고, 짙은 갈색으로 피부색을 칠한 후에 하이라이트 수법으로 돌출부를 강조하는 특색을 보이고 있다. 대체로 인물의 얼굴은 둥근 형태가 태반이며 후대에 나신의 돌출된 근육을 둥글둥글하게 입체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두드려지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양식은 한마디로 중국과의 연관성보다 서방적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키질벽화의 외래적 요소는 크게 인도적인 것과 이란적인 것으로 나눌수 있다. 가령 수영자에 표현된 인물들의 길게 찢어진 눈, 가늘게 뻗친 콧수염 등은 당시 인도미술에 나타나는 공통점 이다. 이러한 특징은 목우난다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후기작품인 대가섭에 이르면 말끔히 사라진다. 커다란 눈, 특징적인 턱수염, 광대뼈 등 달라진 인상뿐만 아니라 인도적인 안면의 판에 박은듯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석가의 열반을 슬퍼하는 대가섭의 내면을 표출해 고유한 회화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편, 말기에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너풀거리는 리본, 의복의 세부, 대칭적 배치, 공양자 남녀의 복장은 분명히 페르시아적이다. 이러한 문화적 입장은 7세기 중이것들의 변형에 속한다. 벽화의 주제로는 주로 불교적인 내용인데, 에외적인 그림도 존재한다. 석굴 38호 벽화에는 나무 아래 흰 옷을 입은 마니교 신도들이 보인다. 이는 위구르족이 고창으로 이주했던 직후만 해도 주로 마니교도들이었던 사실을 반영하는 사례이다. 베제클릭 서원벽화의 도상적 안배는 전체를 묶어주는 치밀한 짜임새, 강화에서 볼 수 있는 견실한 선묘의 윤곽처리, 그 위에 위구르식의 강렬한 설채, 때로는 키질화의 영향인 운염식 입체묘 등등이 한데 어울려 독자적 양식을 형성하고 있다. 명품이라고 여기는 '위그르 왕자, 왕녀상'은 세밀하게 묘사된 안면의 각 부위, 거기서 느껴지는 위엄성, 옷감의 문양 처리,바닥의 양탄자 등은 사실적 표현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러한 용모는 사주외골의 돈황벽화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 “위구르의 민족적 용모, 기질 등의 사회적 특징을 강조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이것은 위구르 불교예술의 민족화의 중요한 표현으로 간주되며, 유목족 위구르 회화의 청정성기를 보여주는 걸작들이라고 할 수 있다.⑦. 돈황벽화역사적으로 돈황은 중국 본토에서 한 번도 포기되지 않았던 중국 영토였다. 그러나 돈황 고대문화의 성격은 매우 절충적이었다. 중앙아시아의 비정주적 문화의 냄새가 늘 거기에 배여 있는 것이다. 돈황벽화는 다른 석굴과 마찬가지로 불교가 중심이 되나 그 밖에 한 문화 특유의 전통이 여기에 가미되어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첫째, 존상화로써 각종 여래의 형상과 여래 주위의 협시와 팔부중 등의 벽화를 말한다. 후기에는 밀교의 신상이 많이 나타나 천수천안관음, 애염명왕 등이 묘사된다. 둘째, 불교경전에 의한 설화도가 나타난다.(출가유성, 연등불수기, 시비왕본생 등) 셋째, 동왕공, 서왕모, 복희, 여와, 사신, 우인,방사 등이 등장해 불교와 도교가 융합된 현상이다. 넷째, 경변 중 대승경전의 변상도는 수대에서 시작된다. 당대경변은 법화경변, 유마경변, 아미타경변 등이 유행 했다. 다섯째, 불교사적화는 수대에 출현, 불교의 역사 , 응감설화, 서상, 보인다. 그리하여 불교의 깊은 철리를 피력해 나가는 유마의 당당한 표정이 힘에 넘치는 서예적 필선에 여실하게 개진되고 있다. 돈황 벽화의 변천을 가져온 요소는 무엇보다도 주변의 국제정세와 중원의 정치적 안정여부와도 무관하지 않는 점이다. 970년대 『송사』중에 '감,사주 회골'이란 칭호가 보이는데, 회골이 사주에 진주해 직접 통치했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11세기부터는 과주,사주에 실절적인 기반을 닦았다.돈황 벽화는 14세기 이후 중앙아시아에 확산된 이슬람세력에 의한 불교의 약화, 해상로 개발로 인한 실크로드 교통로로서의 가치 추락 등의 원인으로 종언의 장을 맞이하게 된다. 돈황벽화의 표현수단을 통해서 볼 때 화가들은 주로 민간화공 또는 화장들이었다. 이들은 남북조 시대에는 조직을 가지고 있어서 조두의 화사가 초고를 묘사한후 공인이 채색하고 마지막으로 화사가 윤곽을 그림으로써 완성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처럼 벽화의 작가들은 지역의 여러 민족에 의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남도의 미란 벽화처럼 '티타'라는 서방에서 온 순회작가의 일원에 의해 제작된 경우도 있다. 돈황 벽화를 포함해 돈황 석굴에서 발견된 많은 고문서와 화적 등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돈황학'이라고 일컫는다. 이것은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유럽학자들의 탐사에서 비롯되어 1908년 펠리오의 돈황 탐사로 한권의 고전적이 혜초의『왕오천축국전』임을 확인하고 세게학회에 보고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돈황학은 그 후 동서양의 관계학자들을 자극해 많은 연구성과를 올리고 있다.⑧.미란 벽화호탄의 동쪽에 이웃하고 있는 선선왕국은 호탄과 밀접한 문화적 교류를 가지면서 서역남로의 중심 왕국으로 성장하였다. 그리하여 자연히 불교문화가 영향을 끼쳤다. 미란의 벽화들은 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불교적 내용을 헬레니즘,이란적인 표현법을 사용하고 있다. 헬레니즘 영향의 인도풍으로 로마식의 콥트 미술과 관련있는 공양자는 이러한 것을 증명해 준다. 그러나 이 벽화들의 중요성은 동투르키ow}
    인문/어학| 2009.04.22| 32페이지| 5,500원| 조회(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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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크로드 미술사 중앙아시아 벽화 평가A+최고예요
    중앙아시아 회화권영필,「중앙아시아 벽화 고」1. 시작하면서..2. 동서 투르키스탄의 회화① 이란 벽화② 판치켄트 벽화③ 바미얀 벽화④ 카슈가르 벽화⑤ 키질 벽화⑥ 베제클릭 벽화⑦ 돈황 벽화⑧ 미란 벽화3. 마무리하면서..1. 시작하면서...중앙아시아가 역사적으로 복합문화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아시아에서 내륙에 위치한 이 지역은 파미르 고원을 분수령으로 하여 동,서 투르키스탄으로 나뉜다. 이곳은 대체로 사막지대로 구성되어 있고 그 사이에 오아시스 도시를 잇는 실크로드가 전개된다. 중앙아시아의 중심 종족은 다수의 유목민족이다. 그러나 많은 유목민족 중구체적인 유물을 남긴 종족은 많지 않다.유물을 남긴 종족으로는 사카이족, 소그드족, 흉노족, 훈족, 위구르족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주변 정주문화와의 접촉을 계기로 자신들의 문화적 고유성을 촉발시키는 특성을 보인다. 아울러 이러한 접촉의 과정에서 적극적인 선택을 통해 미적 의지를 표출한다.2. 동?서 투르키스탄의 회화중앙아시아 회화의 태반은 벽화의 형태로 남아 있다.벽화를 포함한 중앙아시아 회화가 구축한 양식은 매우 복합적이다. 당해 지역의 토착문화가 헬레니즘, 이란, 불교, 중국 문화 등과 상호 습합하면서 새로운 변종을 탄생시킨다. 중앙아시아의 벽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경 및 역사적 기본조건과 더불어 불교사상의 변천과 외래 영향으로 인한 각 지역마다의 독특한 불교도상의 성립배경을 파악하는 것이 전재되어야한다.중앙아시아 미술의 흐름은 주지되듯이 대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방향이었고, 편년상 연대를 따져본다고 해도 서투르키스탄에서부터 고찰하는 것이 순서가 되겠다. 다만, 남아 있는 작품이 충분치 않아 양식의 변천과 유파의 연관관계 등을 관찰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①. 이란 벽화이란의 고대 왕국인 파르티아(기원전 4c~기원후 3c)의 회화대상에는 벽화와 모자이크가 일부 포함된다. 서쪽에 위치한 지역적 특성과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다는 점 등이 특히 헬레니즘 회화 느끼게 한다.고대 이란의 회화는 그 다음 시대인 사산 왕조의 모자이크 바닥장식화로 대표된다. 이 모자이크는 로마미술의 영향으로써 비샤프르의 모자이크의 모티프는 안티오크의 모자이크 제작소에서 나온 것이다. 그곳에서 로마 미술가들이 미리 만들어 놓은 범본을 수입해서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기본적인 기법은 로마풍을 보여주지만 제작 자체는 이란 작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인물, 의복, 머리손질에서부터 앉은 자세와 같은 구체적인 모습이 모두 이란풍이라는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②. 판치켄트 벽화소그디아나의 회화는 7~8세기 문화의 전성기에 제작된 벽화가 중심을 이룬다. 당시 수도였던 사마르칸트, 판치켄트, 바락샤 등의 도시에 남아 있는 사원, 궁전 등의 벽면을 장식한 그림들이 주를 이룬다.판치켄트 화가들이 사용했던 안료는 광물성, 식물성 안료로써 20가지 이상의 안료를 사용했다. 벽화에 표현된 주제들은 의식, 서사적인 내용, 민속, 풍속 등으로 구분된다.판치켄트 회화의 제반 특성은 아프라시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두 지역이 같은 유파에 속한다는 것은 아프라시압의 궁전벽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공통점은 한때 부하라의수도였던 바락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차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부하라 궁전터의 벽화의 배경이 붉은색으로 처리되어 명명된 ‘붉은 방’의 벽화는 판치켄트 루스탐 전설을 담은 벽화에 비해 규칙적인 거동 속에서 대상이 반복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아프라시압 궁전벽화의 행렬도에서 한국인 사절로 보이는 인물들이 묘사되어 있어 주목되고 있다. 관식으로 깃털을 꽂고 허리에는 칼을 찬 모습으로 김원용은 8세기 초기의 신라인으로 추정하고 있고 외국학자들도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③. 바미얀 벽화카불의 서북쪽으로부터 177km 떨어진 곳에 바미얀은 힌두쿠시 산맥의 줄기에 위치해 있다.서투르키스탄의 어느 지역보다 불교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동,서 대립불소상’으로 유명하다. 바미얀 대립불 주위에 많은 석굴이 조영되었고은 양자의 직접적인 접촉을 의미한다.④. 카슈가르 벽화동투르키스탄의 벽화들은 불교의 동점과 더불어 들어온 아잔타 설굴과 같은 인도 석굴사원의 전통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인도에서 파미르 고원을 넘어 동쪽으로 오면 처음 만나는 도시, 서쪽 끝의 도시, 카슈가르이다.카슈가르에서 25km 떨어진 삼선동에는 초기 모얼 불탑과 불교유적이 있는 석굴사원이 있다. 삼선동 상원은 동투르키스탄에서 오래된 사원이나 규모는 크지 않다. 불가의 석굴 조영의 전통에 따라 하의 남단 절벽을 이용하여 3개의 석굴을 파고 벽화와 불상을 안치 했다. 아직 잔교가 가설되지 않은 높은 절벽이라 접근이 불가능하며, 과문이나 연구자료가 충분치 않아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 둔다. 이 삼선동 석굴에서부터 중국의 초기 석굴이 개착이 시작되고 있음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⑤. 키질 벽화쿠차 지구에 있는 석굴 중 가장 규모가 큰 석굴이다. 석굴의 구조는 비슷하나, 기본적으로 장방형의 평면바닥과 둥근 천정을 가지고 있다. 석굴의 종류는 불상을 만들어 예배하는 차이타 굴인 중심주굴과 대상굴, 승도가 수행하는 비하라 굴인 승방굴 등으로 나뉜다.석굴의 형식과 위치, 벽화의 주제와 양식 등을 기초로 수바이는 종래의 독일 학자들의 편년을 비판하면서 키질 석굴의 발전 과정을 3단계로 나누고 있다.1단계(3세기 말~4세기 중엽) ? 좌상과 입상의 석가불, 교각좌미륵보살의 가 표현되고 있으며, 차가운 색인 남색조가 지배적으로 사용.2단계(4세기 말~5세기 중엽) ? 벽화의 내용은 차이가 없으나 세부에 있어서 도안화 현상 과 채색에 있어서 하이라이트 수법을 이용한 점이 나타남.3단계(6세기 중엽~8세기 중엽) ? 천불이 유행하는 주제상의 변화와 연대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연주문 장식이 등장.이러한 내용을 보면 키질벽화는 초기 소승유부사살을 반영하는 반면, 말기에 대승적 내용을 가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혜초의 기록에는 이 지방이 대승불교를 신봉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키질 벽화의 주요부분을 점하고 있는 불전도를에 하이라이트 수법으로 돌출부를 강조하는 특색을 보이고 있다. 대체로 인물의 얼굴은 둥근 형태가 태반이며 후대에 나신의 돌출된 근육을 둥글둥글하게 입체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두드려지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양식은 한마디로 중국과의 연관성보다 서방적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키질벽화의 외래적 요소는 크게 인도적인 것과 이란적인 것으로 나눌수 있다. 가령 수영자에 표현된 인물들의 길게 찢어진 눈, 가늘게 뻗친 콧수염 등은 당시 인도미술에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목우난다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후기작품인 대가섭에 이르면 말끔히 사라진다. 커다란 눈, 특징적인 턱수염, 광대뼈 등 달라진 인상뿐만 아니라 인도적인 안면의 판에 박은듯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석가의 열반을 슬퍼하는 대가섭의 내면을 표출해 고유한 회화세계를 구축하고 있다.한편, 말기에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너풀거리는 리본, 의복의 세부, 대칭적 배치, 공양자 남녀의 복장은 분명히 페르시아적이다. 이러한 문화적 입장은 7세기 중엽 사산 왕조 에 대한 이슬람의 파괴를 피해 온 이란 망명자들에게 쿠차가 베푼 후대를 설명해 준다.키질 벽화를 세밀히 관찰한 사람이면 서방의 헬레니즘회화와 다르고 또 동쪽의 중국 회화와도 구별되는 독창적인 회화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키질적인 예술감각으로서 “문아적 정조와 소박하고 함축적인 정태의 구현”인 것이다.쿠차 지역의 석굴군 중에는 굼트라 석굴이 있다. 현재 알려진 석굴은 총 122개로 석굴형식은 키질과 유사한데, 그 외에 여러 개의 굴을 가진 복굴식과 굴 안에 작은 다감실굴 등이 있어 주목되고 있다. 이 키질 형식과 다른 석굴들이 한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쿠차계 석굴의 조성 시기는 5~8세기 중엽으로 설정된다. 그러나 한인계 석굴은 7세기 초~8세기 중엽으로 이른다. 벽화의 주제나 양식도 키질 벽화의 유형을 따르고 있으나, 후기로 가면 당의 영향으로 한식 주제와 양식이 지배적이다.⑥. 베제클릭 벽화석로 이주했던 직후만 해도 주로 마니교도들이었던 사실을 반영하는 사례이다.베제클릭 서원벽화의 도상적 안배는 전체를 묶어주는 치밀한 짜임새, 강화에서 볼 수 있는견실한 선묘의 윤곽처리, 그 위에 위구르식의 강렬한 설채, 때로는 키질화의 영향인 운염식입체묘 등등이 한데 어울려 독자적 양식을 형성하고 있다. 명품이라고 여기는 ‘위그르 왕자, 왕녀상’은 세밀하게 묘사된 안면의 각 부위, 거기서 느껴지는 위엄성, 옷감의 문양 처리,바닥의 양탄자 등은 사실적 표현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러한 용모는 사주외골의 돈황벽화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 “위구르의 민족적 용모, 기질 등의 사회적 특징을 강조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이것은 위구르 불교예술의 민족화의 중요한 표현으로 간주되며, 유목족 위구르 회화의 청정성기를 보여주는 걸작들이라고 할 수 있다.⑦. 돈황벽화역사적으로 돈황은 중국 본토에서 한 번도 포기되지 않았던 중국 영토였다. 그러나 돈황 고대문화의 성격은 매우 절충적이었다. 중앙아시아의 비정주적 문화의 냄새가 늘 거기에 배여 있는 것이다. 돈황벽화는 다른 석굴과 마찬가지로 불교가 중심이 되나 그 밖에 한 문화 특유의 전통이 여기에 가미되어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첫째, 존상화로써 각종 여래의 형상과 여래 주위의 협시와 팔부중 등의 벽화를 말한다. 후 기에는 밀교의 신상이 많이 나타나 천수천안관음, 애염명왕 등이 묘사된다.둘째, 불교경전에 의한 설화도가 나타난다.(출가유성, 연등불수기, 시비왕본생 등)셋째, 동왕공, 서왕모, 복희, 여와, 사신, 우인,방사 등이 등장해 불교와 도교가 융합된 현상 이다.넷째, 경변 중 대승경전의 변상도는 수대에서 시작된다. 당대경변은 법화경변, 유마경변,아미타경변 등이 유행 했다.다섯째, 불교사적화는 수대에 출현, 불교의 역사 , 응감설화, 서상, 고승의 고사 등을 주제로 한다.여섯째, 공양자상으로 석굴 조성에 공덕을 베푼 시주의 초상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중국의 전통적인 조상숭배 사상과 결합된 것으로 급속히 발전되었다. 각 민족의 초상이 바뀐다.
    인문/어학| 2009.04.22| 8페이지| 3,000원| 조회(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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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과 주거환경
    Ⅰ. 서 론공자는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며 좋아하는 자는 즐겨하는 자만 못하다.”고 설파 했다. 이는 지, 호, 낙의 세 가지 순차적 경지를 말한 것이다. 이 말은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아는 것은 내심의 정감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초기 상태이다. 내 것이 되지 못하고 객관적 상태에 머문다는 의미다.좋아하는 것은 내심의 정감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므로 아는 것보다 한 걸음 진보한 상태다. 그러나 좋아한다는 것은 아직 일시적인 흥취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이다. 내심의 정감이 생기기는 했지만 만족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기준과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따라 바뀔 수 있는 상태이다. 마지막으로 즐겨하는 것은 내심의 정감이 만족된 상태로부터 외부의 환경에 의해서 변화하지 않는다. 좋아함에는 성쇠가 있으니 즐거움의 깊이가 못하다고 했다.한국의 주거공간은 가변성과 아울러 무형성을 대표적인 특징으로 갖는다. 두 특징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은 채 섞여 나타난다.어떤 면에서는 한 가지 특징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이름붙인 것일 수도 있다. 건물의 종류나 기능 유형과 관련해서 불교 공간인 사찰과 유교 공간인 한옥이 전통공간을 대표한다. 전통공간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사상은 불교 사상과 도가의 비움 사상이다. 두 사상의 배경은 뚜렷이 분리되지 않고 혼재되어 전통 공간형성에 영향을 끼쳤다.본 보고서는 건축의 근원부터 우리나라 건축의 특징,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떠나 자유를 얻기 위한 다른 공간의 주거를 수업시간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했다.Ⅱ. 건축의 개념 잡기1)집이 왜 필요한가?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고, 추우면 옷을 입게 되는 것처럼 집도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단지 배가 고파서 음식을 찾는다면 다양한 음식이 있어야 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리고 단지 추워서 옷을 찾는다면 다양한 디자인의 옷도 필요 없겠지요. 집이 다양한 이유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건축은 식물처럼 연약한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가디온 이라는 건축가가 말했습니다. 인간은 연약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자연으로부터 보호되어야합니다.즉 집이 필요하게 된 최초의 이유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동물보다 집이 중요한 이유는 역시 어린 시절이 동물들에 비해 길다는 점도 있습니다. 때로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히 있을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집, 이것이 좋은 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기존의 집의 기능이 아닌 “돈과 부의 목적” 이 되어 변질된 점에는 안타까운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2)건축물을 읽는 한 방법분석이라는 것은 분석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른 것이냐 또는 객관적인 사실에 의한 것이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역사에는 항상 두 가지 힘이 작용하고 있다. 그 한 가지는 유형을 전형화하고 표준화하기 위해 움직이는 정상화, 일반화의 힘이다. 또 다른 한 가지 힘은 위반의 힘인데, 이것은 표준화에 대항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이를 바꾸려고 한다. 이 위반의 힘은 여러 차례 반복되어 새로운 유형에 다시 흡수된다.” 피터 아이젠의 표현인데 표준 속에 있는 것, 그리고 그 표준을 위반하는 것, 마지막으로 새로운 표준에 흡수되는 세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상식이 곧 표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표준 또는 상식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우리는 새로운 것을 모더니즘이라고 표현합니다. 모더니즘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새로움을 나타내기 위하여 대항하는 모든 것을 진부하고 우둔한 것,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규정지어야합니다, 그리고 아이젠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모더니즘을 위해서는 그 표준성과 상식이라는 전통적인 것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합니다.일반인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디테일하게 분석할 때 부연적인 설명이 따라야하며,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합니다. 그러지 않을 경우 분석 보다 그 설명이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깊이 분석해 들어가는 것을 자제하도록 하고 작품을 놓고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Ⅲ. 한국의 건축1)어울림과 형식미어울림과 형식미는 주로 유교사상에 나타난 건축적 개념입니다. 유교사상이 반영된 건축적 특징을 대표하는 조형 개념인 것입니다. 공간과 여정이 주로 불교나 도가 사상을 배경으로 가졌던 것과 대비되는 대목입니다. 어울림은 계급의 의미로서의 위계성, 위계를 이루는 구성요소로서의 개체성, 개체를 포괄하는 전체의 의미로서의 집단성, 집단을 유지하는 규율과 자유 사이의 조화, 인과 선의 의미로서의 도덕적 가치 기준 등을 내포한다. 요약하면 위계, 개체, 집단, 조화, 도덕을 기본 개념으로 갖습니다.한옥은 어울림의 개념을 본뜻에 가장 합당하게 표현합니다. 그 결과로 조형적으로도 아름다운 구성을 이루어냅니다. 어울림을 표현하는 적절한 조형 형식을 획득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한옥도 속으로는 추악한 이면이 많습니다. 당파의 싸움의 숙덕공론이 모의되던 공간이 한옥이었고, 노비의 비참한 생활이 양반의 호화로운 수탈과 한 공간에 공존하는 곳도 한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추악한 이면과는 다르게 순수 조형적 측면과 한옥의 절제와 형식미에는 따뜻한 정감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의 배경은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첫째, 절제와 금욕을 미덕으로 여기는 선비정신이 깔려 있다.둘째, 국가적 차원에서 양반들의 상류 주택을 제한했다.셋째, 사회적 계급과는 별도로 집안의 화목을 유난히 중요시했던 민족정서가 있다.넷째, 장인들의 조형 의식 이다.한옥은 일상생활이 일어나는 살림공간이자 가족들의 보금자리였습니다. 효의 절대성이 있긴 하지만, 친자 가족 간의 정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한옥에서는 유교의 가치 가운데 위계, 규범보다는 조화와 가치가 우선이었습니다.2)자연과 자연스러움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주제가 자연일 것입니다. 이것은 건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보편적인 전총 정서나 전통문화 전반에 걸쳐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인식되는 것이 바로 자연입니다. 여기에서 자연이란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에 순응하고 닮고 싶어 한다는 의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받아들여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경향들은 흔히 친자연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한국 전통 건축에 나타난 친 자연 경향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자연 재료의 사용, 자연 원리의 모방, 자연과의 일체감이 그것입니다. 장자는 도가적 관점에서 이상적 인간상을“천지자연의 본연의 모습을 따르고 천지만물의 다양한 변화에 순응하며 무한한 세계에서 노니는 자”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구절에는 앞의 세 가지 경향이 상징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천지자연의 본연의 모습을 따른다”는 것은 첫 번째의 자연재료의 사용, “천지만물의 다양한 변화에 순응한다”는 두 번째의 자연 구성 원리의 모방, “무한한 세계에서 노니는 자”라는 것은 세 번째의 자연과의 일체감을 각각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공학/기술| 2008.05.07| 4페이지| 2,500원| 조회(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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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정세의 변화와 통일 -중국의 대외정책
    중국의 대외정책인문학부 20014405 홍성일1949년 내전에서 승리한 모택동 공산당정권은 천안문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으나, 이후 발생되었던 문화혁명으로 인해 중국인들은 역사적, 국가적으로 큰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세계의 모든 국가가 현대화를 위해 매진하던 60-70년대 당시 사회주의 국가였던 중국의 입지는 정치적 이념으로 인해 스스로 몰락하는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택동 사후 작은 거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등소평이 정권을 잡으면서 중국의 변화는 예정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77년 8월 북경에서 개최된 제11기 중앙위원회에서 경제적 개방정책을 추진하는 발판을 마련하였고, 이를 기초로 시작된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현재 중국이 세계의 중심국가로 성장하는 기본원칙이 되어왔습니다. 그러나 급격한 경제적 개방정책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에 있어서의 정치적인 이념은 여전히 미비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패권주의가 가장 강한 민족입니다. 더불어 중국은 은밀하고, 무모할 정도로 힘을 강조하는 국가입니다. 동북공정, 단대공정, 탐원공정 등을 봐도 이 모든 내용을 증명하고 있습니다.중국은 동북아 국제질서가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하고 중국이 견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을 바꾸고자 많은 노력을 해왔는데, 북한 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질서의 재편성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전략을 구사해 왔습니다. 또한 미사일과 핵실험, 그리고 고립과 주변 강대국들의 강경정책으로부터 북한을 보호함으로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고 있고, 이로 인해 미국과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면서, 중국의 위상강화가 되었습니다.이러한 중국의 이중적인 행동에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대한민국정부가 원하는 평화와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는 점입니다. 장쩌민 주석은 대미, 대일 회담에서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및 운반수단의 개발을 저지하도록 협조할 것을 요청 받고 이를 수락했습니다. 중국 또한 98년 김대중 前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선린우호 협력관계’를 21세기 동반자관계로 격상하였습니다. 이것은 북한과 전통적 우호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현실에 본다면 비약적인 발전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또한 북한을 개혁과 개방의 길로 이끌고자 하는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사회과학| 2008.05.07| 1페이지| 1,500원| 조회(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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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22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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