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베일의 베일을 벗기다여는 말베일 논쟁의 복잡성과 베일 문제 제기몸 말1. 언제, 어디서 베일이 시작되었는가2. 누가, 베일을 씌웠는가3. 왜, 베일을 벗지 않는가4. 어떻게, 베일을 벗어야 하는가닫는 말이슬람 여성의 주체적 베일 벗기의 중요성여는 글최근 이천 냉동 창고에서 화재가 나 40여 명의 인부가 사망한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6년 전, 이와 비슷한 화재 사고가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학교에서도 일어났다.) 이 사고로 인하여 일어난 인명 피해는 40여 명으로 이천 사고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한국의 이천 화재 난에서는 불에 타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며, 사우디아라비아의 화재 난에서는 충분히 학생들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경찰이 여학생들이 이슬람 복장인 베일을 착용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인명 구조를 저지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생명보다도 종교적 관습을 중요시 여기는 이 이슬람의 문화에 경악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은 이 사우디아라비아 화재 사건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 대체 어떤 나라이기에 여성의 생명을 이토록 경시하는가? 대체 어떠한 종교이기에 여성을 평생 베일 속에 가두어두어 억압하는가? 이슬람 여성관에 대한 많은 서구의 언론들, 혹은 타 문화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이러한 인식들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이슬람 국가의 여성들은 분명 베일로 대표되는 성차별의 억압을 받고 있으며, 그들의 정체성은 평생 베일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2004년도에 프랑스의 히잡 금지 명령으로 인한 민족 갈등을 보았을 때, 무작정 베일을 벗으라고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우리들의 의식은 왠지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이슬람 문화권의 시각과 그를 바라보는 타국의 시각은 분명히 둘 다 맞는 논리이다. 이슬람 고유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베일은 필요한 것이고, 여성의 인권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베일은 이라 할 수 있겠다.베일의 역사는 매우 놀랍게도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풍토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저 베일은 중동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토착 풍습 가운데 하나였다. 신밧드의 모험에서 보는 것처럼 베일은 성별에 상관없이 남녀 모두에게 씌워졌고, 베일의 의미도 각각 자치권, 평등, 계급 등으로 매우 다양했다. 베일 착용은 이렇게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문화적 이유에서부터 형성된 것이며, 실제로 그 이유에서 오랜 시간 계속적으로 전래되었다.이러한 베일은 고대국가가 생겨나고 국가의 힘과 경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남성의 파워와 군사력이 중요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의미가 변하기 시작한다. 에서는 그러한 남성 권력의 집중화가 법제화된 증거가 최초로 나타나고 있는데, 함무라비 법전에 의하면 남편이 아내를 담보해서 저당 잡는 횟수를 제한하고 있으며, 아내를 구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법규들은 아시리아에 아예 폐지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법의 등장과 사라짐은 그 당시 중동 사회에 가부장제 풍조가 만연하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남성 권력의 집중화 속에 베일은 ‘여성에 대한 소유권’의 의미로 자리 잡아 간다. 남성이 여성에게 베일을 씌워줌으로써 그녀는 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그 베일은 남편만이 벗길 수 있으며, 베일을 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그 여자가 정숙치 못하거나 창녀임을 말해 주었다. 우리 나라도 조선 시대에 여인들이 외출할 때에 쓰개치마를 썼던 것을 기억하면, 이러한 중동 지역의 베일의 의미에 대해서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베일은 그저 문화적으로 정숙의 의미였지 이슬람이라는 특정 종교와의 연개성이 없었다는 사실이다.2. 누가, 베일을 씌웠는가베일은 분명히 남성이 여성에게 씌웠다. 가부장제가 시작되면서 권력을 쥐게 된 남성은 여성에게 그 베일의 강요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었다. 여성을 소유물로 여기는 인식과, 자녀에 대한 소유권을 확실히 하기 위한 ) 이러한 베일 씌우기는 그 시대 남성교활동을 하고 이슬람을 전파시키는데 매우 중요하고 강력한 기반이 되어주었다. 이 시대만 해도 여성의 경제권이 인정이 되었으며, 여성의 주체성과 인권이 상당부분 인정이 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즉, 이때만 하여도 강력한 부계 중심적인 이슬람이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아내인 ‘아이샤’에 이르러 이러한 여성에 대한 인식은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카디자가 경제력을 지닌 여성이었던 반면에, 아이샤는 정치력을 지닌 여성이었다. 이 또한 여성의 인권이 인정되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나, 아이샤는 이 정치권 행사에 있어서 큰 실패를 하였다. 그녀가 주도한 낙타 전투)가 패배하고, 여성의 정치권 참여에 대한 부정적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 무렵에 진행되었던 이슬람의 법제화와 맞물려 여성의 정치권 참여와 주체성에 대한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다.여기에서 중요하게 살펴볼 점은 이슬람의 법제화이다. 무함마드에 의하여 이슬람이 제도화되고 에 부계 중심적 결혼제도와 베일 착용이 명시되면서 베일과 이슬람은 결합하기 시작한다. 물론 베일은 권장 사항일 뿐, 강요 사항은 아니었다. 무함마드 시대에 베일을 착용하는 여인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러한 꾸란의 베일 착용이 당시만 해도 심각한 문제로 작용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에서 명시된 차별적 베일 착용이다. 꾸란에서는 남성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여성은 베일을 써야하되, 노예는 베일 착용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명목으로 다른 여성을 차별하는 매우 모순적인 여성 차별 구조를 만들었다. 또한, 무함마드 사후에 그의 아내들이 착용했던 베일 착용이 상류층에 유행처럼 번짐으로써 이러한 베일에 가려진 ‘착한 몸’에 대한 여성 차별 의식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던 것도 이슬람과 베일의 결합에 큰 일조를 하였다. 즉, 그동안 문화의 일부였던 베일은 이슬람이 법제화 되면서 종교적인 의미로 거듭났고, 에 명시된 이중적 구조의 베일 강요가 암묵일 금지령을 내렸고, 아직도 고등 교육기관과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여직원에 한해서만큼은 베일 착용이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다. 이렇게 이슬람 내부에서 진보 계몽 주의자들에 의하여 서서히 베일 벗기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왜 베일은 여전히 견고하며, 무슬림 여성의 머리에서 벗겨지지 않고 있는 것인가?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들 수 있다. 첫째는, 이슬람의 진보 계몽 주의자들의 베일 벗기기가 여성 인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양 사회의 모방이라는 정치적 이유에서 시행되었다는 것이며, 두 번째로 서구에 반대하는 이슬람 내부의 보수 진영의 민족의식 고취 운동이 진보 지식인에 반하여 활발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이다.이슬람 내부의 보수 민족주의자들은 중세에 세계를 재패했던 오스만 제국의 영예가 서구의 침략 하에 처참하게 짓밟혀 바닥까지 내려간 사실에 통개했다. 이들의 민족적 자긍심은 매우 커서 서구에 대한 저항 의식도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 저항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그들 민족 여성들의 ‘베일’이다. 서구는 중동 지역을 식민지화 하면서 ‘여성 인권’이라는 명목 하에 그들의 민족성의 상징인 베일을 벗기려 하였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서구의 ‘베일 벗기기’가 단지 ‘여성 인권’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매우 정치적인 침략 행위였고, 서구는 이를 ‘인권’으로 교묘하게 포장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서구의 인권 전략은 매우 효과적으로 먹혀들어가서, 베일에 대한 전 세계적인 부정적인 인식 형성에 크게 성공을 하였다. 물론 베일이 여성들의 삶을 억압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들에게 베일은 한국인이 쌀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인 것도 사실이다. 베일 논쟁이 단순히 인권 차원에서 논의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베일에는 ‘여성 인권’ 외에도 ‘민족 수호’ 라는 이중적이고 정치적인 이유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일을 접근하는데 있어서 매우 신중하고 다방면적으로 접근해야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베일을 벗기려고 하는 것이다.4. 어떻게, 베일을 벗어야 하는가지금까지 논의되었던 베일 논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모순이 있다. 베일을 씌우고, 베일을 벗기는 주체가 모두 ‘남성’이었다는 사실이다. 베일에 관련되어 가장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은 여성인데, 그 문제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 베일의 밖에 있는 남성들이었던 것이다. 가부장제와 이슬람의 법제화를 거치면서 남성은 여성에게 베일을 씌웠고, 터키의 남성 중심 정치 권력은 서구를 모방하기 위해서 여성의 베일을 강제로 벗겼다. 또한 서구의 남성적 권력은 이슬람의 여성적 식민지 지배를 위해서 베일 벗기를 강요했다. 베일과 관련된 모든 논쟁과 사건의 중심에 남성이 서 있다는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며, 이점이 바로 베일 논쟁이 해결되지 못하고 더욱 심화되고 있는 현실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무슬림 여성에 의한 베일 벗기’가 이루어져야하는데, 이러한 여성에 의한 혁명은 지금의 이슬람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매우 이루어지기 어려워 보인다. 최초로 베일을 벗고 방송에 출현했던, 아프가니스탄의 비디오 자키 샤이마 레자위가 그 가족들에 의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명예 살인을 당하여 사라진 것은 이러한 여성 스스로의 혁명이 넘어야 할 험난한 산에 대해서 잘 말해준다.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혁명은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여성들에게 있어서 매우 힘들고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 물론, 무슬림 남성 의 의식 계몽이 이 숙제를 푸는 데 있어서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지만, 남성들에게 있어서 오랜 세월 종교를 통하여 획득되어 온 부계 중심 권력은 쉽사리 포기하지 못할 단 맛의 권력이기 때문에 결국 여성의 뼈아픈 각성과 노력만이 이 베일 논쟁을 해결 짓는 가장 정확한 열쇠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부적으로는 이슬람 내부 여성들의 의식 구조 각성의 노력과 외부적으로는 서구의 지원이 필요하다. 단순히 이권 취득을 위한 정치적 속셈으로 무슬림 여성의 베일 벗기를 주도해서는 안 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