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정치사상1. 시대적 상황1) 경제적 상황2) 정치적 상황3) 사회적 상황4) 문화적/예술적 상황2. 주제가 발생하게 된 계기1) 아테네의 위기와 민주정2) 민주정의 타락과 철인정치3. 주제의 내용과 특징1) 플라톤의 「국가」2) 「국가」에서 나타난 플라톤의 정치사상4. 비판적 논의5. 플라톤 사상의 현대적 의의1. 시대적 상황1) 경제적 상황그리스사회는 도시에 중심을 둔 사회였다. 그러나 도시의 문명과 정치발달에 상응하는 경제 발달은 도시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도시의 발달과 문화의 생동감을 뒷받침했던 물질적 부는 주로 농촌과 식민지경제에서 창출되었다. 도시 지배자들의 수입은 도시주위의 영지나 농장에서 생산된 주요 농작물 혹은 식민지 농업과 전리품에서에서 나왔다. 도시의 제조업자는 그리 많지 않았고 기술이나 도구도 초보적이었다. 기술은 단순했고 수요는 한정 되어 있었으며 수송비는 매우 비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 고대는 도시가 농촌을 지배한 사회였다. 도시와 농촌을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기초는 노예제였다. 노예제로 인해 토지 소유자를 농촌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아울러 토지로부터 나오는 부에 의존하는 도시를 창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예를 사용한 농업은 도시 지배층의 다양한 분화를 가능하도록 하고 도시간의 무역을 촉진시켰다. 그러나 비인간적이며 수지맞는 노예 노동의 투입에 대한 대가는 결코 싼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한계는 대외적 팽창과 정복을 통한 노예의 끊임없는 투입을 요구했다.※ 이 당시의 사회는 밀착된 혈족사회, 공동운명체이므로 사유권이 모호했다. 또한 전쟁에 지면 완전히 도태되는 공동체에서 사유재산이란 자기의 소지품 정도에 불과하였으므로 오늘날과 같은 경제개념을 갖기 어려웠다.※ 플라톤의 경제개념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의 하나는 ‘분업론’이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 자신의 천성에 적합한 일을 찾아서 한다면 재화를 싸게 많이 생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질은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보았다.2) 정치적 상황플라톤이 태어난 시기는 아테네사회발전에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지성적 활동에 몰두하게 되었다. 특히 정치적 불안정에서 오는 사회전반의 도덕성의 추락은 사회가 기존의 전통에 의지하는 도덕이 아니라 새로운 도덕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의식이 급속히 퍼져나가게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회전반에 걸쳐서 새로운 변화의 기운을 감지할 정도로 팽배해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플라톤을 포함한 다수의 지성인들은 아테네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위기가 닥쳐올수록 그 난관을 교육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를 점점 강하게 가졌다.※플라톤이 존경하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죽음도 이때 일어난 사건이다. 제자인 플라톤이 그의 스승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건, 중우정치에 대한 철저한 반대와 비전문가주의에 대한 불신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이 설립한 학원 '아카데미'는 바로 전문가주의, 정치도 재판도 고도의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이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을 할 수 있다.4)문화적/예술적 상황그리스 문화의 기원은 오리엔트에서 시작되었으나 그것은 오리엔트 문화와는 다른 성격의 문화를 완성하였다. 그리스 문화의 특징은 첫째, 인본주의(humanism)의 강조이다. 오리엔트 신정문화와는 달리 인간의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이성과 개성을 존중함으로써 인간성을 높이고 확대하여 나갔던 것이다. 둘째, 완전성의 추구이다. 그리스인들은 세계를 하나의 아름다운 조화의 실체로 보았으며, 예술에 있어서도 조화와 균형을 이룬 4완전미를 추구하였다. 인간상에 있어서도 지혜와 행동을 겸비한 인간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제시하고 있다. 셋째, 자유시민의 공동체인 폴리스(police)를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폴리스는 도시국가로서 정치적, 행정적 조직이기도 하지만 아고라(agora) 광장에서의 집회를 통하여 인간 존재의 의미, 인간 행위의 규범, 공공적 인간으로서의 인간의 가치 등에 관한 교시를 해주는 기관이기도 하였으므로 도시 전체가 하나의 학교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은 수세기 동안 완성된 두 개의 미의 토지를 비교적 평등하게 나누어 소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고전 고대적 토지소유형태가 바로 아테네 민주정의 토대로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아테네가 그리스 제국의 리더로 비대화, 제국화 되면서 이러한 고전 고대적 소유 형태는 계급분화와 대토지 소유로 특징지어지는 노예제 생산양식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폴리스 구성원들 사이에서 계급 분화가 발생하는 이러한 노예제 생산양식에서는 폴리스 구성원들 사이에서의 평등한 정치적 참여란 가능할 수가 없다.둘째로는 폴리스 구성원들의 윤리적 타락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는 소피스트들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소피스트의 철학으로 대변되는 상대적 윤리설이 유행하면서 구성원들은 점점 공공의 이익보다는 사익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폴리스의 운영은 점점 더 비효율적, 비능률적이 되어갔던 것이다.플라톤이 살았던 시대는 바로 이렇게 그리스의 민주정이 그 전성기를 지나서 타락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철학적 사조와 문제제기가 이루어졌다. 플라톤은 이러한 철학적 문제와 사고에 때로는 투쟁하며, 때로는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철학적 체계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2)민주정의 타락과 철인정치(1) 민주정치는 중우정치인가?플라톤의 청년기에 아테네는 과두정권 체제에서 민주정권으로 이양되었다. 새로 집권한 사람들은 비교적 공정한 정치를 했지만, 그들 중 일부가 자신이 존경하는 스승 소크라테스를 고발함으로써 청년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게 되는 것을 본다. 이후 플라톤은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을 접고 철학에 몰두하게 된다. 이러한 사태를 보면서 플라톤은 어리석은 다수가 지배하는 민주주의의 폐해를 주목하게 되었을 것이다.플라톤은 「국가」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민주정체(Democracy)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민주정체는 유쾌하고, 무정부적이고, 다채로운 특징을 지니며, 동등한 사람에게나 동등하지 않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차별 없는 평등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에게서 모든 자유를 박탈하는 플라톤에게 있어서 최악의 정부형태이다.따라서, 플라톤은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다수의 정치로 몰락할 수 있기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이 철인정치를 주장한 것은 분명히, 이러한 민주정의 단점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2) 철인정치는 군주제인가?사전에 보면, ‘군주제란, 역사적으로는 한 사람이 주권을 가진 정치제를 말하며, 귀족제·민주제 또는 공화제와 구별되었다.’라고 기록되어있다. 즉, 최고 권력자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형태를 말한다.다음으로 ‘철인정치’를 사전에서 보면, ‘플라톤은, 저서「국가」에서, 이상국가의 실현을 위해서는, 진정한 학문이며 인생지도의 지침, 인간형성의 힘으로서의 철학으로 국가지배가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라고 쓰여 있다. 즉, 상기한 철학을 익힌 철학자가 통치하는 형태이다.사전적 의미에서만 보자면 분명히 군주제와 철인정치는, 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통치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만 보자면 엄연한 군주제이기에, ‘철인 정치는 군주제이다’라는 논제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플라톤의 정치철학과 철인정치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위의 논제가 꼭 올바르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고 볼 수 있기에,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알아봄으로써 주제에 대해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3. 주제의 내용과 특징1) 플라톤의 「국가(Republic)」플라톤의 「국가(Republic)」는 소크라테스가 주변인들과 ‘올바름’에 관한 논의에서 시작하여 전개되어 나간다.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에 대해 논의하다가 개인에 있어서 올바름이 있다면 개인보다 큰 형태인 국가의 경우에 있어서도 올바름이 있을 것이고 작은 것보다 큰 것에서 찾는 것이 더 쉬우니 가장 ‘이상적인 국가, 아름다운 국가, 훌륭한 국가’를 구현해서 명확하게 올바름에 대해서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국가(Republic)』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설명하고 있다.2)가장 본질적인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진리는 곧 선’이라는 플라톤의 입장을 보여주며, ‘좋음의 이데아’를 도달한다는 것은 진리의 깨달음, 완성이라 하겠다.※ 철인을 만들기 위한 교육과정인간은 선별되어 세 가지 계급가운데 한가지에서의 노동에 적합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삶의 첫 18년 동안 소년은 체조, 음악과 문예, 읽고 쓰며, 유희하고 노래하며, 그리고 여러 가지 스포츠에 참가하는 것을 학습하는 것에서의 훈련을 받게 된다. 18세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소년들은 그 이상의 훈련을 받게 되는 반면, 그 나머지는 더 이상의 훈련을 받지 않고 장인이나 상인 등의 생산직이 된다. 교육체제에 남게 된 소년들은 2년의 군사훈련을 받는다. 20세에 계속할 수 없다고 판명된 사람들은 군인계급이 되어 국가방어의 임무를 맡는다. 반면 나머지 사람들은 언어적, 수학적, 철학적 교육을 30세까지 받은 후 중간관리직이 되고, 그 중 뛰어난 사람들은 나아가 철학적 문답법을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통시 실습을 한 후에(50세 까지), ‘좋음의 이데아’를 인식, 철인이 되어 국가를 통치하고 교육을 관리하게 된다.(2) 플라톤의 영혼삼분설과 국가에 대한 적용플라톤은 인간의 육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으로서의 인간의 영혼에 관심을 가졌다. 영혼은 육체와 별개의 것으로 이성과 기개 그리고 욕망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나뉜다. 이성의 고유한 기능은 올바른 삶을 추구하는 것이고 이를 행하기 위하여 적절한 기개가 발휘되어야 한다. 그렇게 올바른 것들을 추구할 때 욕망은 진정한 행복을 위한 갈망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이 욕망에 지배당할 때 기개는 욕망으로 인해 타락하고 인간의 영혼은 불행을 맞이하는 것이다. 결국 행복을 위해서는 이성이 욕망과 기개를 조절, 통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훌륭한 인간이란 세 가지 요소 사이의 적절한 조화와 통일성을 유지하는 인간을 지칭하는 것이다.이러한 영혼의 개념은 국가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플라톤에게 국가란 하나의 거대한 인간이다. 또한 그는 국가것이다.
플라톤의 정치사상아테네 명문가에서 태어난 플라톤은 21세에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었다. 당시의 아테네는 고대 문화와 정치의 중심지였다. 아테네에 모여든 많은 현자들이 상대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진리와는 상관없이 설득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변론을 중요시했다. 이들이 바로 아테네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소피스트이다. 이러한 소피스트들에 반대하여 진리의 존재를 주장하였던 사람이 소크라테스였고,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은 진리와 선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그러나 28세의 청년 플라톤은 무분별한 민주정에 의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잘못된 민주정을 목도하게 된 플라톤은 이런 타락과 악덕에서 아테네를 구하는 것, 그리고 이상적인 국가의 실현을 최대 과제로 생각하였다.플라톤은 『국가(Republic)』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은 ‘좋음의 이데아’를 깨달은 사람이 철인이고 그 이상적 인간인 철인이 왕이 되어 국가를 지배해야하며, 또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 본분을 다하여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사회인 이상국가론을 내세웠다. 결국 플라톤은 가장 중요한 덕목인 지혜를 가진 자, 다시 말해 가장 훌륭한 영혼을 가진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통해, 불안전한 민주주의보다 효율적이고 보다 완전한 인간에게 완전하게 통치되는 이상적인 체제를 꿈꾸었던 것을 알 수 있다.플라톤은 실제와 개념을 분리, 즉 감각적인 것들과 이념적인 것들을 상정한다. 감각을 통해서 알 수 있는 현실은 이념들의 모방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즉, ‘이데아’는 현실에 있는 감각적인 것들의 본질로 이성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플라톤이 제시한 좋음의 이데아는 모든 이데아들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최고의 올바름이다. 즉, 존재적 측면과 가치적 측면 모두에서 가장 본질적인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진리는 곧 선’이라는 플라톤의 입장을 보여주며, 좋음의 이데아를 도달한다는 것은 진리의 깨달음, 완성이라 하겠다.플라톤은 국가를 단순한 개인의 집단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각하였으며, 인간의 영혼을 국가에 적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영혼은 육체와 별개의 것으로 이성과 기개 그리고 욕망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나뉜다. 훌륭한 인간이란, 이성이 욕망과 기개를 조절, 통제하여 세 가지 요소 사이의 적절한 조화와 통일성을 유지하는 인간을 지칭하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에 세 요소가 있었던 것처럼, 국가는 생산자, 전사, 통치자라는 세 계급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세 신분계급에 따라 통치계급은 지혜, 전사계급은 용기, 생산자계급은 절제의 덕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사회계급들이 그 신분에 따라 제몫을 다하고 그 미덕을 발휘 할 때 그 국가는 ‘정의’의 국가가 된다. 특히 사회계급들을 통제하는 통치자는 이를 실현할 수단과 방법을 잘 아는 ‘지혜’를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진리에 가장 가까이 있는 철학자가 통치자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철인정치를 제창하였다.앞에서 논의한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통해 생각해보면, 플라톤은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한 정치를, 즉 그 당시 소피스트들에 의해 이루어졌던 비합리적이고 무분별한 정치를 비판하였다고 하겠다. 플라톤은 타락하기 쉬운 민주정의 성격을 경계하여 그것을 얼마나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을 지를 연구하였고 그 대안으로 철인정치를 주장한 것이다. 이때 철인정치는 그 형태가 군주제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내용에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엄격한 교육을 통해 ‘좋음의 이데아’의 인식에 이른 사람만이 철인군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권력을 얻는 방식이 일반적인 군주하고 다르다. 또한 철인은 좋음의 이데아라는 존재적, 가치적 본질에 닿아 있기에, 그의 정치는 올바르며, 같은 이유로 철인의 의지는 곧 보편적 의지와 일치한다. 결국, 철인정치는 군주제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모두의 의지를 최대로 실현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플라톤의 국가는 매우 이상적이기에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현실성의 기준으로만 그의 사상을 평가한다면 플라톤을 가장 감각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플라톤은 현실에서 드러나는 감각적 세계의 정치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며, 국가에 나타나는 문제들을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를 분석하였던 것이다. 플라톤은 현실에서 나타난 감각적 세계의 정치를 욕망의 지배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런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치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으며, 철인정치는 이성에 의한 절제와 조화, 즉 ‘모든 사람이 이성의 준칙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국가’라는 정치의 핵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약 2500년이 지난 현대에 플라톤의 사상을 적용하여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플라톤이 강조한 이성에 의한 정치는 현대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국가에서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많은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정치는 바로 이런 모든 것들을 예측하고 조정하여 질서를 유지하며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다양성과 변화 가능성이 내포된 사회에서, 현실에 나타난 문제들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방법으로는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없다. 현실에서 추론할 수 있는 모든 근거들을 바탕으로 하는 것, 즉 이성적 사고를 통해 근원에 있는 문제들을 발견하여 그 해결에 다가가는 방법만이 정치의 정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마치 수학에서 하나의 원리로 많은 문제들을 풀어내고, 또한 그 원리로부터 새롭고 이로운 원리들을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대의 극심한 변화 속에서도 그 중심에 위치하여, 국가의 상황을 돌아보고 나아가야할 올바른 방향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플라톤의 정치사상은 겉으로 보이는 상황만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어리석은 정치에서 벗어나 그 상황의 근본원리를 발견함을 통해 더 합리적인 정치를 추구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