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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남미 경제실패이유
    2조 과제 : 중남미 경제실패 이유빈곤의 역사적 요인- 독립 이전을 중심으로1.단일산품의 흥망성쇠라틴아메리카 경제는 금, 은, 동 석유와 같은 광물 또는 설탕, 커피등의 농작물로 대표되는 일차 산물의 생산과 무역으로 수백 년과 지탱되어 왔다. 어느 한 지역의 경제는 전적으로 특정한 산물에 의존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광물과 농작물들을 유럽이 수요에 맞추어 팔았고, 벌어들인 돈은 다시 유럽선진국으로부터 자본재와 공산품을 수입하는데 몽땅 써버리는 악순환을 거듭하였다.무역파트너는 초반기에는 유럽이었으나 점차 미국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1차산물과 2차산물의 불평등교환이라는 방식은 더욱 심화될 뿐이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라틴아메리카의 19세기는 제국주의의 각축장이었다. 스페인이 물러간 자리엔 영국자본이 들어와 신속하게 경제 식민지를 구축했고, 프랑스와 네덜란드도 그 뒤를 이었다. 미국은 20세기에 들어서야 헤게모니를 장악했지만 그 정도는 더 심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유럽 자본은 주로 낮은 생산 가격을 통제하기 위해 노동력 통제에 주력했지만 20세기초반부터 미국의 막강한 자본가들은 생산 단계에서부터 직접 참여하는 수직적 통합을 지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 회사들은 대규모 농지를 소유하고 지역에 따라서는 항만 시설까지 운영하기에 이른다. 선두 주자는 악명 높았던 유나이티드 사 UFC(United Fruit Company)와 스탠다드사(Standard Fruit Company)였다. 유나이티드 사는 온두라스와 과테말라같은 국가의 정치까지 좌지우지하여, 중미 국가들이 이른바 이라는 별칭을 얻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바나나에서 동(銅)에 이르기까지 라틴아메리카의 주요한 일차 산업은 기술력과 자본으로 무장한 다국적 기업의 지배하에 놓기에 되었다.선진국 입장에선 원자재와 일차산물의 가격을 최대한 낮추어 수입하고 동시에 안정된 공급선을 확보하는 것이 최대목표였다. 그리고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생산지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빈번하게 옮겨졌고 비교 우위를 상실한 일차 산물의 운명도 부침이 심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일차 산물의 출현이 주로 선진국의 수요 폭발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몰락의 길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찾아왔다. 우선 광물 자원의 자연적인 고갈이나 브라질의 사탕수수와 같은 지력의 쇠진으로 어쩔수 없이 더 이상의 생산이 불가능한 경우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생산력과 상관없이 다음과 같은 억울한 경우도 있다. 19세기 아마존에서의 천연고무 생산이 각광을 받자 영국은 더 안정적이고 저렴한 원료 공급을 위해 브라질로부터 고무나무의 씨앗을 밀수하여 자국 식민지였던 말레이지아에 심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천연고무를 생산할 수 있었지만 가격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급속도로 몰락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수출 작물이 몰락한 가장 일일반적인 형태는 선진국의 소비 감소에 의한 것인데, 과학 기술의 발달로 저렴한 양질의 대체품이 개발되어 기존 산물이 가치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이 범주에 든다. 엘살바도르의 인디고라는 천연 염료는 19세기 독일에서 인조염료가 개발되자 시들해졌고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옥수수 당분이, 유럽에서는 사탕무가 감미료로 애용되기 시작하자 카리브해 산 설탕은 점점 중요성을 상실해갔다. 각종 광물의 보고인 칠레 사막지대에는 천연비료의 원료로 각광받았던 질산염이 다량으로 매장되어 있었는데 19세기말 칠레는 이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인접국인 페루, 볼리비아와 전쟁을 벌이기까지 했다.소비자의 취향 변화에도 일차 산물은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양철 깡통의 수요가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에 밀려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볼리비아 산 주석은 중요성을 상실하고 있다. 커피의 경우에도 선진국의 소비자가 고급 제품을 선호하게 됨에 따라 저가의 브라질 산보다는 중미가 콜롬비아 산 커피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어떤 경우이든 단일산품의 몰락은 국가와 지역 경제에 심한 타격을 입혔다. 문제는 그것을 대체할 만한 다른 부문이 육성될 수 있는 환경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브라질의 사탕수수처럼 생 파괴된 것은 스페인인들이 소, 말, 양등의 가축과 밀, 사탕수수등을 들여오면서 동시에 다른 형태의 생산 방식인 엔꼬미엔다Encomiende제도를 이식시키면서부터였다. 대농장제도와 노예제가 결합한 식민 초기의 엔꼬미엔다는 농업과 광업 생산에 있어 정복자들이 인디오들의 노동력을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게 한 제도이다. 정복자들은 수확한 일정량의 산물을 본국에 상납하고 원주민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대가로 그들의 노동력을 무임으로 착취할 수 있는 권리를 스페인왕으로부터 부여받았다. 물론 첫번째 목적은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조속히 부를 축적하는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페인인들이 신대륙으로 대규모로 이주해 오면서 일차 산물에 대한 수요(특히 식량 수요)가 증가하여 대량생산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인디오의 인권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엔꼬미엔다 제도는 곧 교회와 왕권과 정복자 당사자 간에 에 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대해, 왕권과 교회는 어느 정도 인디오의 권리를 옹호하는 입장이었지만 각각 금은과 전교라는 더 큰 목적이 있었기에 그들의 비참한 현실에서 눈을 돌려버리고 만다. 한편 노동력 확보가 현실적인 문제였던 정복자들에게는 엔꼬미엔다 제도의 도입과 운영이 반드시 필요했다.결국 본국의 논쟁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인디오의 노예화를 하나의 권리로 콜럼버스와 그의 뒤를 이은 정복자들에 의해 이 제도는 이미 정착화되고 있었다.엔꼬미엔다는 사실 중세 봉건제도와 재정복 사업이라는 스페인의 역사적 경험이 결합되어 출연한 제도이다.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교도를 상대로 700년동안 국토 회복 전쟁을 벌인 스페인 왕은 매번 새로운 땅을 빼앗을 때마다 정복자에게 토지와 포로를 사용할 권리를 부여하고 그 대가라고 국왕에게 조세를 납부할 의무를 지웠다. 마찬가지로 신대륙의 정복자는 자신들의 권리를 인정받는 대신 조세를 납부하고 교회를 유지하며 식민지를 방어할 의무를 지키면 그만이었다. 엔꼬미엔다는 국왕이 식민자들에게 원주민을 말 그대로 위탁하는 제도로서 식민자는토지를 개간하지만, 개간한 땅을 다시 지주에게 갈취당하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이 과정에서 삼림 파괴와 생태계 훼손 등의 심각한 환경 문제까지 파생되고 있다. 브라질 아마존 지역의 경우 일부 농장주는 총잡이들을 고용하여 강제로 인디오들을 몰아내고 목축용 토지를 확보하기도 한다.1870년 이후 농산물 수출 위주의 발전 전략은 토지와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필요성을 증대시켰으나, 이는 곧 소수 특권계급의 전횡으로 이어졌고 계층 간에 사회적?경제적?문화적 괴리감을 심화시켰다.이 과정에서 드러난 한 가지의 특징은 엘리트 계층의 특권을 보장하고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종차별주의가 강조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인종 구성은 소수의 백인 유럽이민자들과 라디노(혼혈인), 인디오로 되어 있다. 지배층의 특권유지는 부, 교육, 공공 서비스등의 백인독점과 인디오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로 나타났다.빈곤의 정치적 요인- 독립 이후를 중심으로1. 오늘날의 중남미의 빈곤현재 중남미 국가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빈곤의 실태와 그 원인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그런데 이 빈곤이라는 단어에 대해 잠시 짚어보고 넘어가고자 한다. 빈곤이라는 말은 가난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난보다 더 절박한 상황을 연상시키는 듯하다. 그리고 ‘빈곤’은 긴 세월 동안 이베리아 반도 출신 정복자들의 지배 아래 아시엔다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을 수많은 메스티소와 물라토, 그리고 인디오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렇다면 식민 시대의 잔재로서 토지 소유의 불평등 구조가 지속되고 있는 오늘날의 중남미인들의 빈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300년간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성숙한 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중남미 국가들은 군부 통치 등의 우여곡절을 겪어왔고 빈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식민 시대의 잔재들을 아직 완전히 털어버리지 못한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의 중남미인들의 삶은, 뻬온이 안고 살아간 빈곤과 어느 정도 유사한 빈곤으로 얼룩져 있다. 우선 뻬온은 노동력을 착취당하기만 할 뿐, 갈수무리이다. 특히 2001년 국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아르헨티나가그러한 최악의 사태로 치닫게 된 데에는 환율 정책, 긴축 정책 등 경제 정책의 실패가 주요하였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 정치인의 부정부패 역시 크게 작용하였음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아르헨티나는 조사 대상국 145개 국가 중에 108위를 차지하였다. 숫자로서 그 상황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지만 아르헨티나의 부패 정도가 비교적 높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아르헨티나의 부패는 공공기관, 정치인의 부패 등에서 잘 나타난다.이과수 폭포 부근의 아르헨티나, 브라질 국경선에서 발생하는 일을 예로 들어보면 곡물 등을 실은 컨테이너가 아르헨티나로 들어갈 때, 관행에 따라 뒷돈을 주지 않으면 세관을 통과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물류 산업이 급부상하고 있는 오늘날, 물류의 원활한 흐름은 중요한 요소로서 경제에 작용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부패는 물류의 빠른 흐름을 방해한다. 따라서 작은 규모의 부패이지만 이러한 작은 부패가 국가 내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면 경제에 미치는 여파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아르헨티나의 정치인의 부패는 뿌리 깊은 정경 유착과 해외로의 재산 도피에서 잘 드러난다. 아르헨티나는 국영 기업을 해외로 매각할 때 상당한 리베이트를 받았으며 그 규모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수준이라고 한다. 이처럼 정격 유착 관계에 의한 경제 활동이 만연할 때 정당한 경제 활동은 이루어지기 어려우며, 당장은 정치인들과 기업가의 배를 부르게 하게지만 얼마 후엔 이것이 국가 경제의 숨통을 조이게 된다.해외로의 재산 도피는 아르헨티나의 현재 경제 상황을 낳은 또 하나의 요인이다. 아르헨티나는 군부 통치 기간(1976~1982)에 외채가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페소화가 고평가 된 상태에서 금융자유화정책이 실시되었고 국내외 금리차를 노려 은행들은 자금을 끌어들이게 된다. 결국 군부 통치 초기보다 민간, 공공 부문에서 각각 세 배, 두 배 가까이 외채가 증가했는데 이러한 외채들은 부실 대출되 만다.
    경영/경제| 2006.11.25| 12페이지| 1,000원| 조회(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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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주,흡연,약물
    1. 음주“술은 적절히 마시면 약이고 지나치면 독이다”라는 말이 있다. 음주의 양면성을 잘 지적하는 것이다. 술이란 잘 다루면 개인이나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이 될 것이나, 지나치게 마신다면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매우 해로운 것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술은 칼로리가 높아 음식이 귀하던 시절에는 훌륭한 에너지공급원이 되었다.-부패되지 않고 휴대가 간편하여 집에서 멀리 떠나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이 애용하였다.(특히 전쟁터의 군인)-또한 조금만 마셔도 기분을 좋게 바꿔주며,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는 효용가치가 많이 있는 알콜의 속성으로 인해 술은 널리 사용되였다.그러나 술의 이런 효용성은 마시는 사람이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효과를 볼 수도 있다.과음과 남용은 개인의 심신과 사회의 다른 구성원에게 예상하지 않았던 결과를 초래 할 수 있다.1) 음주의 영향-알코올은 인간의 행동이나 인지능력에 변화를 일으킨다.-생각과 행동을 조절하는 대뇌의 작용이 둔해지며 판단능력과 대처능력이 떨어진다.-다양한 질병발생의 원인☞ 간경변, 간암, 식도암, 고혈압, 관상동맥질환, 신생아 결함, 위장 질환, 췌장 질환, 신경계질환, 정신장애, 자연유산 등과 높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교통사고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 알코올을 마시게 되면 감각기능의 역할수행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이런 상태에서 운전을 하거나 기계를 조작하게 되면 정확성과 판단력, 속도감을 느끼는 능력, 돌발사태에 대한 대처능력 등이 떨어지기 때문에 사고를 일으키기 쉽다.☞ 음주가 운전에 미치는 영향은 혈중 알코올농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교통사고 뿐만 아니라 추락사고와 화재, 해상사고 및 익사사고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사회적인 범죄와도 관련이 있다.☞ 특히 음주상태에서는 성폭력 발생비율이 현저히 높다.2) 음주동기음주의 악영향에도 불구하고 음주인구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이다. 1998년 우리나라 20세 이상 인구의 68.4%(남자 83.3%, 여자 54.9%)가 술을 마시고 있으며 여성과 청소년의 음주가 지마시게 되면 어떠한 상태(기분)가 되고 그 결과 어떤 긍정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사회문화적인 요인 : 친고 또는 동료들의 권유(이 경우 거절하면 사회적으로 불리한 결과가 초래된다고 인식함), 부모로부터의 학습 등의 사회적 영향에 의해 술을 마시게 된다. 음주가 갖는 사회적 믿음이 요인이 된다.☞ 사회집단의 교범에 따라 음주자의 숫자가 다를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음주를 권장하는 집단, 완전히 금지하는 집단, 술 마시는 것에 대하여 애매모호한 규범을 갖는 집단, 조금만 마시는 것은 허락하지만 과음은 허락하지 않는 집단 등이다.3) 문제음주자와 치료-문제음주자 : 개인이 지니고 있는 알코올 소화능력 이상의 양을 반복적으로 마시고 그 결과 개인의 사회생활, 가정생활, 신체상태 등에 문제가 반복적으로 생기고,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음주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될 수 있고 이는 곧 알코올로 인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본다.☞ 알코올의 남용과 알코올 의존알코올 의존의 핵심적인 증상은 알코올에 대한 통제 능력의 부족 또는 상실과 알코올의 확보 및 섭취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증으로 요약된다. 알코올에 대한 통제 능력의 상실이란 알코올을 마시지 않아야 할 상황에서도 정도에 지나치게 마시는 경우를 말한다.☞ 알코올 의존의 치료현재 알코올 의존의 치료에 이용되고 있는 방법에는 약물치료, 상담치료, 가족치료, 심리치료, 집단심리치료, 사회기술훈련, 행동치료 등이 있으며 이들 중의 어느 한 방법이 다른 방법보다 더 우수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고 환자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을 혼용하여 치료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4) 음주와 건강관리음주가 갖는 양면적인 영향을 고려할 때, 가장 올바른 음주법이란 음주로 인한 부정적인 효과를 최소화하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최대로 할 수 있는 정도의 음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란 사람마다 다르다. 소위 체질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분위기, 또는 언제 마시느냐, 누구와 마)을 넘지 않아야 한다. 여자의 경우에는 매일 마실 경우, 절대 알코올이 20g(청주 1홉, 맥주 1병)을 넘지 않아야 한다.-특히, 임신 중에는 완전히 금주하는 것이 아주 바람직하다는 것을 강조 장려한다.-운전을 해야 하는 사람이나, 기계를 운전해야 되는 사람, 그리고 위험한 상황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사람은 절대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어떤 상황에서 얼마만큼의 양을 마시는 것이 절대 안전하다는 것을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조심을 요하는 상황이라면 절대 마셔서는 안된다.마지막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절대 음주량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며, 확실한 것은 음주량이 늘수록 신체가 폐해를 입을 가능성은 커진다는 것이다.2. 흡연* 흡연 : 현대인의 질병이나 사망원인들 중 단일원인으로 가장 영향력이 큼.∴ “금연은 질병과 사망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 흡연과 건강과의 관계①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② 담배 피는 것을 배우는 과정③ 계속적으로 피우게 되는 사회적 행동에 관여하는 사회구조적, 문화적 요인들④ 지금까지 사용된 금연방법과 이를 위한 사회적 노력들1) 흡연 실태* 마야족 → 아메리카 인디언 → 콜롬버스 일행 → 유럽으로 전파 → 전세계로 보급* 전체적으로는 여성보단 남성의 흡연율이 더 높지만, 여성의 흡연율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2) 담배의 유독성분* 담배 연기에 함유되어 있는 대부분의 화학물질은 인간의 건강을 해치는 유독성분.* 담배에는 1천여종의 화합물질이 함유되어 있음.* 담배에 함유되어 있는 니코틴, 타르, 일산화탄소, 황화수소, 암모니아, 알데히드 등 30여종의 화합물질은 각종 암질환을 유발하거나 심장병을 비롯한 순환기계, 소화기계, 신경계 및 내분기계 질환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있음.* 니코틴 : ① 습관성 중독을 일으키는 마약성 물질.②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를 자극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생리적 변화를 일으킴.③ 혈압뿐만 아니라 심장박동을 높임.④ 신경 내분비 효과를 가짐.* 일산화탄소 : ①암, 구강암, 후두암, 방광암, 담도암, 신장암 등도 유발됨.⑵ 흡연과 순환기계 질환- 담배가 관상동맥 심장 질환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음.- 뇌졸중, 고혈압, 말초혈관 질환, 동맥경화증 등의 순환기계 질환에도 흡연이 중요 위험요인으로 여겨짐.- 니코틴이 혈관을 수축시킴 → 혈압을 높임 → 전신의 말초혈관에 동맥경화성 병변을 일으켜 말초혈관 폐쇄성 질환을 일으킴.- 여자의 경우 경구피임제를 복용하면서 흡연을 하게 되면 심근경색증과 혈전증을 일으킬 위험성이 높음.⑶ 흡연과 호흡기계 질환- 기관지염, 인두염, 편도염, 기관지천식 등 호흡기계 질환이 흡연의 영향을 받고 있음.- 담배를 피우면 가래가 많이 생기고, 세균에 대한 방어력이 저하, 만성 기관지염, 폐기종 등 호흡기계 질환이 발생하게 됨.- 소화 기관지의 기도저항이 커져서 공기가 잘 통하지 않고, 폐포에 산소 공급이 잘 되지 않아서 저산소혈압을 일으키기도 함.- 만성 기관지염은 바이러스성 질환의 감염, 공기오염, 흡연 등에 의해 발생할 수 있으나 상습 흡연이 가장 큰 요인이 된다고 함.⑷ 흡연과 소화기계 질환- 흡연량이 많을수록 소화불량을 유발함.-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위궤양 발병률이 5배, 십이지장궤양은 2배정도로 나타남.⇒ 흡연이 소화기계 질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⑸ 흡연의 기타 피해- 비흡연자 임산부에 비하여 흡연자 임산부는 자연유산이나 조산하는 예가 2배나 많고, 태아 발육이 완전치 못하여 출생아의 체중이 정상치보다 미달이고, 미숙아의 출생에도 비흡연자보다 2~3배 많은 것으로 조사됨.- 임산부의 흡연은 태아에게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태반을 통과하는 혈류량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저체중아 출산에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게 됨.- 해산한 임산부가 계속해서 흡연할 경우 모유에 니코틴이 함유되어 신생아의 발육에 위해를 준다고도 함.- 간접흡연자가 마시는 담배 연기 속에는 실제 흡연자가 들이마시는 연기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물질이 들어있음.- 간접흡연은 폐암, 심장 질환으로 사망할 자” 등에 의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입장.⇒ 이런 거시적 요인들과 미시적 요인들이 서로 복합적인 작용을 통해 각각의 흡연행동 발전 과정 (담배를 처음 배우는 과정, 계속적으로 흡연 행동을 유지하는 과정, 금연하는 과정)에 서로 상이한 영향력을 가짐.⑴ 담배를 배우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담배를 배우는 과정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또래 친구나 부모와 같은 의미 있는 타자 대중매체라고 함.- 주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는 친구와 같은 동료집단과 강한 연대감 확보가 행동에 중요한 결정요인이 되는데, 흡연을 통해 그러한 사회심리적 욕구를 상징적으로 충족하기도 함.- 허위의식을 상징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의미가 있으며, 성인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의 의미도 있을 수 있음.- 부모로부터의 통제가 약해지는 인생의 전환기에 흡연이나 음주 등을 쉽게 배울 수 있음.- 담배를 지급하는 군대 생활이 흡연에 쉽게 폭로되는 시기이기도 함.⑵ 흡연을 지속시키는 사회적 요인- 흡연은 신체적, 심리적으로 중독된 행동이므로.(ex. 금단증상, 불면증, 불안감, 판단 및 집중력 저하 등등)- 흡연과 관련된 사회문화적 믿음과 가치체계⇒ 각 개인이 담배를 끊고 싶어도 계속해서 피울 수밖에 없는 것은 여러 가지 신체적, 심리적, 그리고 사회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임.5) 금연* 금연을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① 행동수정용 방법을 이용- 혐오치료 방법 : 담배에 대한 혐오감이 흡연자 자신에게 저절로 들도록 하는 방법- 자극통제 : 금연 실천 여부에 따라 금전적인 보상이나 처벌이 따르는 보상방법을 제시- 대체적 흡연 : 물을 마신다던가, 과일을 먹거나, 껌을 씹거나, 니코틴 대용물을 사용하거나, 힘이 드는 운동을 하거나, 식후 구강세제를 사용하는 대체행동을 함으로써 담배 피우는 것을 줄여나가는 방법② 금연프로그램을 이용③ 전문의사의 도움⇒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단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효과를 인정받고 있지만 장기적인 효 함.
    의/약학| 2006.11.25| 6페이지| 1,000원| 조회(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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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카콜라와 펩시
    Cola wars continue :coke and pepsi in the twenty-first centuryCola wars continue :coke and pepsi in the twenty-first century코카콜라와 펩시는 100년여 동안 전 세계 음료계의 '라이벌 기업'이었다. 두 기업의 치열 한 맛. 가격경쟁, 톡톡 튀는 광고 전략과 마케팅 싸움은 매번 화제가 되었고 그 때마다 어느 쪽이 승리 했는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주로 코카콜라가 우세하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펩시가 코카콜라를 앞서나가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코카콜라는 연간 2.3%의 매출성장을 기록해 펩시의 7.5%에 뒤쳐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년간 펩시의 주가는 2배 이상 올랐지만 코카콜라는 하락했다.* 미국의 음료시장코카콜라 등 상위5개사 시장 48% 점유미국인들은 매년 23갤런의 탄산음료를 소비하고 있으며 1990년대 중반 우유, 맥주, 커피등의 다른 음료들의 가격이 상승하고 탄산음료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됨에 따라 판매량이 더욱 높아졌었다. 코카콜라와 펩시의 공장주들은 직접 가게에 상품을 진열하고 주변환경을 쾌적하게 하는 등의 서비스를 보여 판매량을 더욱 높게 했다. 음료를 공급하는데 있어서도 다루기쉽고 저장하기 쉬우며 비교적 가볍고 재활용이 가능한 캔을 가장 많이 사용했고 플라스틱병이나 유리병은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코카콜라와 펩시의 역사1. 코카콜라의 역사코카콜라는 1886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약국을 경영하던 펨버튼 박사에 의해 발명 되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프렌치 와인 코카라고 하는 액체로 약을 제조하다가 이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이것을 개량하여 사람들이 즐겨 마실 수 있는 시럽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에 콜라는 청량음료가 아닌 그저 소화제의 대체제로 판매 될 뿐이었다. 현재의 코카콜라 상표는 동업자 로빈슨에 의해 만들어 졌는데, 상표에 적색과 백색을 사용한 것은 당시의 약국 건물이 이 두 가지 색으로 칠해져 있었던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처음 코카콜라는 제이콥 약국에서 한잔에 5센트의 가격으로 판매되었고, 코카콜라 브랜드가 들어간 천을 붙이면서 최초의 광고활동을 시작했다.1915년경 코카콜라는 기존의 유리병모양과는 다른 혁신적인 디자인의 콘투어병을 계약한다. 이 병은 작은 유리공장에 다니던 18세의 '루드'라는 소년에 의해 고안되었는데 루드는 우연히 당시 유행하던 통이 좁고 엉덩이의 선이 나타나는 긴 주름치마를 보고 이 옷의 주름에 착안해 병을 디자인 했다고 한다.2. 펩시의 역사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약사 캐레브 브래드햄이 조합한 소화불량 치료약이 펩시콜라의 원조이다. 펩시의 원료는 주로 콜라 너트,바닐라빈즈 등을 원료로 한 것이며,“Brad's Drink”라고 불렸던 음료로서 약국에서 제조, 판매됐다. 후에 펩시는 콜라 너트의 ‘콜라’와 소화 효소의 ‘펩신’으로부터 "펩시콜라"라고 이름을 지었고, 펩시콜라회사를 설립해서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한다.펩시는 프랜차이즈 제도를 통해 생산, 판매 시스템을 확대하여, 1906년까지 미국전역에 200의 보틀러와 계약한다.대공황 당시에 소프트드링크의 대부분은 1 병(6 온스)에 5 센트로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펩시콜라는 12온스를 5 센트로 판매하여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세계 제 1차 대전 이후로 생산비용이 급격하게 상승하여 펩시콜라는 저렴한 가격을 유지할 수 없었고 인지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었다. 결국 브래드햄은 펩시콜라의 상표를 매각하기에 이르지만 펩시는 판매 전략을 바꾸어 당시로서는 드물게 라디오 광고를 대대적으로 사용해서 발매와 동시에 매상을 크게 향상시킨다.* 코카콜라와 펩시의 경쟁코카콜라는 초창기 6.5온스짜리 독특한 병을 만들어 콜라로서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는데, 펩시는 경제 불황과, 콜라의 이 장점을 이용,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에게 동일한 가격(5센트)로 두 배(12온스)를 마실 수 있다고 강조하며 큰 병을 출시했고, 코카콜라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게 된다. 펩시콜라는 자판기에서 구입하여 손에 꼭 쥐고 먹는 1:1전략의 코카콜라와는 다른 타깃을 설정했다. 가정 소비로 시장을 확대한 것이다. '모두가 화목하게'라는 캠페인으로 구매 장소도 자판기가 아닌 슈퍼마켓으로 옮긴 것이다. 1955년 코크와 펩시의 시장점유율은 5대 1이었으나, 1960년대에는 그 차이가 절반이 되어 있었다. 당황한 코크는 해마다 새로운 전략으로 펩시에 대처해나갔으나 코카콜라는 손에 딱 들어오는 6.5온스의 병이 회사의 상징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펩시의 큰 용량 마케팅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펩시의 저가격 공격은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하지만 50년대에 이르자 제조원가의 부담으로 펩시는 더 이상 저가격으로 시장공략을 할 수 없었고 이에 펩시의 시장점유율은 크게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70년대에 들어 펩시는 코카콜라의 역사가 깊다는 사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코카콜라는 진보에 뒤지고, 감각에 뒤지며, 세대에도 뒤지는 제품으로 보이도록 유도하며 펩시 광고에는 항상 젊고 매력적인 젊은이들의 우상을 등장시켰다. 펩시는 새로운 세대의 선택 (The choice of a new generation)을 브랜드 컨셉을 내세우면서 젊다는 이미지를 강조했다.코카콜라에 대한 펩시의 공격은 펩시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계속된다. 펩시 챌린지란 눈을 가리고 콜라를 맛본 후, 좋아하는 콜라를 선정하도록 하는 테스트인데, 이 테스트에서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3분의 2가 펩시를 선택했고 펩시회사는 이 실험결과를 광고에 그대로 이용하였다. 눈앞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펩시를 선택하는 것을 증명해 보인 여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한 팹시챌린지에 당황한 코카콜라는 펩시와 비슷한 맛의 뉴코크를 내놓지만 기존 코카콜라 맛을 좋아하던 소비자들의 반발로 인해 뉴코크의 생산을 중단하고 클래식코크라는 이름하에 기존의 콜라를 새로 출시하며 어영부영하는 모습을 보이고 결국 1986년에는 코카콜라: 펩시의 비율이 1.1 대 1까지 낮아지게 된다.
    경영/경제| 2006.11.25| 3페이지| 1,000원| 조회(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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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이기주의 평가A좋아요
    * 목 차 ** 시작하는 말 -21. 지역이기주의란? -21-1. 지역이기주의 [地域利己主義]의 정의1-2. 지역이기주의의 종류1-3. 지역이기주의의 개념2. 지역이기주의의 문제점 -33. 지역이기주의 사례 -44. 지역이기주의의 발전방안 -65. 소감 -66. 자료출처 -7* 시작하는 말지방자치 10년이 되면서 각종 지역사업 추진에 지역마다 님비(NIMBY : Not In My Back Yard) 현상 등 지역 이기주의가 만연, 지역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이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중앙정부에서도 이 같은 지역 이기주의를 어떻게 극복, 지역 갈등에서 벗어나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가 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지역 이기주의는 혐오시설의 입지 등을 반대하는 경우를 비롯해 흔히 부정적 의미를 함축하는 뜻으로 사용돼 왔으나 시대나 가치관이 변화함에 따라서 가치중립적 용어로 새롭게 정의할 필요성이 야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여러 가지 사업이 갖는 경제적 외부효과가 지역에 따라 비대칭적으로 시현되기 때문에 사업의 유치 혹은 기피를 위한 지역 경쟁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소각장·쓰레기매립장 건립에서부터 핵폐기장 건립, 신도시 개발, 박물관 건립, 지역 경계선을 이유로 한 세수 싸움 등 지자체간 지역 갈등이 끊이지 않는데 과연 지역이기주의란 어떤 의미인지 문제점이 무엇인지,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이번 ‘현대사회와 행정’ 과목의 과제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1. 지역이기주의란?1-1. 지역이기주의 [地域利己主義]의 정의 : 정치와 행정에 대한 불신과 상호 의사전달 체계의 부재, 정책담당자의 조정능력 미비, 주민의 지나친 이기심, 공동체 의식의 약화나 정치권력의 통제성 약화 등의 거시적 환경요인들 등으로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이익을 사회 전체의 이익보다 중요하게 여겨 발생하는 현상들을 일컫는 말이다.1-2. 지역이기주의의 종류1)님비 : NOT IN MY BACK-YARD의 약어로, 그 뜻은 '제발 내 집 뒤뜰에는 가져오지 마시오.'란 으로, 예를 들면 2002년 월드컵 축구장 유치운동의 경우 등이 이에 속한다.3)임피현상 : IMFY(In My Front Yard), 자기 지역에 이득이 되는 시설을 유치하거나 관할권을 차지하려는 현상. 세수원 확보나 지역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행정구역 조정, 마세권 확보, 정수장 관리, 청사 유치 등을 위한 적극적 활동을 의미한다. 자기 지역 내에 쓰레기소각장이나 핵폐기물 처리장 등의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NIMBY)증후군에 대비되는 용어로서,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최근 임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4) 바나나현상 : 'Build Ab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 라는 영어 구절의 각 단어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이다. '어디에든 아무 것도 짓지 마라'는 이기주의적 의미로 통용되기 시작했으며 유해시설 설치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다.각종 환경오염 시설들을 자기가 사는 지역권 내에는 절대 설치하지 못한다는 지역 이기주의의 한 현상이며 공공정신의 약화 현상.1-3. 지역이기주의의 개념지역이기주의는 '사업의 외부효과가 지역에 따라 비대칭적으로 시현되기 때문에 야기되는 사업의 유치 혹은 기피를 위한 지역경쟁'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혐오시설 기피경쟁과 같은 환경이기주의뿐만 아니라 첨단산업 유치경쟁과 같은 개발이기주의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지역이기주의의 효율적 갈등조정을 위해서는 사후적인 분쟁조정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나 사전적으로 특정사업이 가져다주는 사회적 비용과 편익을 관련 지역 간에 적절하게 배분시키는 적정분담체계를 확립함으로써 갈등의 소지를 미리 없애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지역이기주의는 지역 간 경쟁의 내용에 따라 환경이기주의, 개발이기주의, 환경·개발혼합형이기주의로 나눌 수 있다. 환경이기주의는 서로 자기지역으로 의 유치거부를 위한 경쟁으로 표출되는 지역이기주의로, 사업의 경제적 편익보다 비용이 더 큰 시설의 기피경쟁에서 발생한다. 개발이기주의란 개발사업의 유치와 개발이익의 배분을 둘러싸고 서로경의 외부효과가 동시에 작용하여 표출되는 지역이기주의이며, 강 상류지역의 개발이 하류지역의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경우에 나타나는 지역이기주의가 그 좋은 예이다.2. 지역이기주의의 문제점지역 이기주의는 지방자치제와 행정과정의 민주화와 더불어 확대되고 있어서 행정의 형평성, 공공성, 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한편 지역 이기주의는 주민간의 갈등을 확대시키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행정 민주화로의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기주의에 의한 행정의 중단, 행정상 의사결정의 지연에 의한 행정비용의 증대와 같은 비능률성을 확대하고 있다. 공공의 이익보다는 내가 주거하는 지역의 이익을 먼저 생각함으로써 경제적인 손실을 많이 발생시키며, 공사착공에서부터 완성까지의 기간도 지연시키기 때문에 지역이기주의의 정도가 내가 피해를 입는 정도보다 큰 경우가 훨씬 많다.3. 지역이기주의 사례사례1)갈수록 거세지는 지역이기주의 [헤럴드경제 2004-11-02 12:08]`지역 이기주의인가, 행정 무리수인가.` 임대주택 건설과 고가 철거 등 서울시가 추진하는 굵직굵직한 사업이 지자체들의 반발로 삐걱거리면서 마찰음을 빚고 있다. 지역주민과 서울시의 입장차이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임대주택사업은 강남 등 일부 지역 주민들이 지역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강력 반발하면서 사업자체가 지연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의 고가철거사업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평가 속에서도 지역 주민들의 각종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무리한 행정이라는 비난을 비껴가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상권 피해 못 참는다"고가도로 철거놓고 서울시-지자체 대립 팽팽고가도로 철거를 놓고 서울시와 지자체(구청)들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구청은 철거를 하겠다고 주장하고 서울시는 함부로 할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다.지난 9월. 성낙합 중구청장은 `중구 발전계획안`을 발표해 서울시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1966년과 77년 각각 준공된 광희ㆍ회현고가도로를 철거하겠다았다.지난해 청계고가 삼일고가 미아고가 등이 철거된 후 미관이 크게 개선되고 부동산 가격도 들썩거리자 자치구들은 앞다퉈 고가철거민원을 냈다.▶고가도로 교통소통이 판단근거=서울시내 고가도로 103개 중 현재 철거된 고가도로는 불과 5군데. 청계천 복원사업을 위해 청계고가와 삼일고가가 철거됐고 버스중앙차로제의 일환으로 원남ㆍ미아고가가 철거됐다. 서울역고가의 경우 퇴계로→한강대교 방면 램프가 철거된 상태다.현재 철거가 검토되는 곳은 낡아서 고민인 서울역고가와 중앙차로제를 시행해야 하는 혜화고가, 한남2고가 등이다.이에 따라 신설고가 광희고가 회현고가 등 다른 지역 고가도로도 철거해 달라는 민원이 급증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교통의 원활한 흐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도모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것.마국준 반장은 "고가도로는 교통개선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철거 여부가 결정된다"며 "아직 대부분의 고가도로가 제 기능을 하는 경우가 많아 완전 철거로 가기는 힘들다"라는 의견을 밝혔다.▶지역민은 환영=고가도로가 철거된 지역들은 대부분 차량 접근성이 좋아지고 조망권이 확보되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분위기다. 청계고가와 삼일고가, 서울역 램프가 없어진 서울 중구에는 명동과 충무로, 동대문, 청계천을 잇는 문화ㆍ관광벨트가 조성될 예정이다. 국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숭례문과 덕수궁, 정동 일대 문화재 지역과 남대문시장, 명동쇼핑거리, 충무로 `영화의 거리`, 남산골 한옥마을, 남산, 동대문 패션타운, 청계천을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이를 위해 보도환경을 대폭 정비할 계획이라는 것이다.중구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당장 청계천 쪽에서 오는 관광객들이 동대문운동장 인근 상가로 올 수 있는 지하상가가 크게 개발될 거라는 계획에 상인들의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의류업을 하는 조모(41) 씨 역시 "고가가 없어져 상권이 커질 거란 얘기에 경기침체에도 장사를 할 만하다"며 웃음을 지었다.▶역발상의 검토 필요=서 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밝혔다. 서울역 한강대교 방면 램프가 없어진 이후의 통행 불편도 크다. 서울역에서 고가 건너 염천교를 통해 빠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통난을 해결하는 시민 스스로의 노력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것. 불편함이 공동의 편안함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한편 박영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청계고가 이후의 고가도로 철거는 지역민원에 영향을 받은 측면이 크다"며 "흉물이라고 터부시하기보다는 광역적인 교통 흐름에 초점을 맞추고 시민들이 통행에 만족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이태경 기자(unipen@heraldm.com)사례2)[무심천 통신] 안타까운 지역이기주의 [경향신문 2006-04-13 17:51]호남고속철 공주역 신설 계획이 알려진 후 충북이 혼란스럽다.오송유치위는 유치위대로, 지방언론은 언론대로, 지방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제 입맛에만 맞게 과민반응을 보이며 극한 지역이기주의로 치닫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한마디로 충북엔 고속철역이 들어서야 하고, 이웃 충남엔 들어서지 말라는 것이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역지사지(易地思之) 해 보자. 충남 땅엔 호남고속철도 구간이 90여㎞다. 충북의 주장(일부이지만)대로라면 충남은 땅만 내주고 고속철역 하나 갖지 말라는 얘기가 아닌가.오송역 위상에 대해서도 그렇다. 공주역이 생기면 호남 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행정중심복합도시에 가기 위해 공주역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 하지만 수도권이나 경부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오송역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2%’ 부족하면 어떤가. 그마저도 다 얻어야 속이 시원할까.추병직 건설교통부장관이 지난 4일 오송역유치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서류를 집어 던지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다. 아무리 속이 상했어도 일국의 장관이라면 참았어야 했다. 그 행위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것도 한번 역지사지 해보자.오송역 유치는 전 도민의 노력이 결집된 ‘작품’이다. 그렇지만 이원종 지사→이강철 전 청와대시민사회수석→추병직 장.
    법학| 2006.11.25| 7페이지| 1,000원| 조회(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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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현대사 사건탐구 - 3.1운동 평가C아쉬워요
    근현대사 사건탐구< 근현대사 사건탐구 - 3.1 운동>* 3.1 운동이란(일어난 배경,원인 등)?삼일운동은 다른말로는 기미독립운동이라고도 한다. 1910년 이래 한국은 일본의 조선총독부 통치하에 놓여 있었는데, 일본은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침략에 항거하는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강력한 무단정치를 폈다.이에 저항하는 한민족의 항일독립투쟁은 각지에 의병을 낳고 널리 민족계몽운동으로 발전하여 갔다. 일본은 이와 같은 민족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헌병경찰제도를 실시하여 항일독립운동 투사들을 학살 ·투옥하고, 일체의 결사와 언론활동을 금지하였다. 교육정책에 있어서도, 우민정책을 실시하여 민족의식의 성장을 억누르고, 고도의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박탈하였다.이러한 무단정치는 한국의 고유문화를 말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토지 ·광산 ·철도 ·금융 등 모든 분야의 이권을 독점 경영하였으며, 한민족의 경제발전마저 극도로 제한하였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해외로 망명하고, 특히 무력투쟁으로 혹은 외교활동을 통하여 조국의 국권회복을 위한 선두에 섰다. 한편 국내의 대다수 농민들은 소작농 ·화전민 등으로 전락하였으며, 생활난으로 인하여 만주 등지로 유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일본의 폭압은 지식인 ·학생 ·종교인뿐만 아니라, 농민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의 반일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이 일본의 무단정치를 겪고 있을 무렵,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나고, 1918년 1월 미국대통령 윌슨은 14개조로 된 전후 처리원칙을 파리 강화회의에 제출하였는데, 그 가운데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 스스로 결정한다.’고 하는, 민족자결의 원칙을 제창하였다. 이것은 세계의 피압박민족에 대한 자극제가 되었다. 이 민족자결주의의 새로운 원칙은 항일투쟁을 계속해오고 있던 독립 운동가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것이었다.이와 같은 조류 속에서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갑자기 승하하게 되자 일본인들에 의한 독살설이 유포되어 한민족의 일본에 대한 증오는 극도에 달하였다. 이처럼 식민통치 10년 동안 자본가·농민·노동자 등 모든 사회구성 계층이 식민통치의 피해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입음으로써 그들의 정치·사회의식이 급격히 높아져 갔고, 더욱이 미국대통령 윌슨이 전후처리를 위해 을 발표한 상황에서,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함에 따라 이 기회를 이용한 지식인·종교인들이 불길을 댕기자 항일민족운동은 삽시간에 거족적인 운동으로 번져나가게 되었다.* 3.1 운동의 전개과정은?손병희를 대표로 하여, 천도교·기독교·불교의 지도적 인사로 구성된 민족대표 33인은 마침 고종황제의 인산(국장)이 3월 3이로 결정되자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모일 것을 예측, 3월 1일 정오를 기해 파고다공원에 모여 를 낭독한 후 인쇄물을 뿌리고 시위운동을 펴기로 했다. 또 각 지방에도 미리 조직을 짜고 독립선언서와 함께 운동의 방법·날짜 등을 전달해두었다. 독립선언서와 일본정부에 대한 통고문, 미국대통령·파리 강화회의 대표들에게 보낼 의견서는 최남선이 기초하고, 비용과 인쇄는 천도교측이 맡아, 2월27일 밤 보성인쇄소에서 2만 1천장을 인쇄, 은밀히 전국 주요도시에 배포했다. 손병희 이하 33명의 민족대표는 3월 1일 오후 2시 정각 인사동의 태화관에 모여 한용운이 독립선언서의 낭독을 끝내자 만세삼창을 부른 후 경찰에 통고하여 자진 체포당했다. 한편, 파고다 공원에는 5천여 명의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른 후 시위에 나섰다. 이들의 시위행렬에 수만의 시민들이 가담함으로써 서울시내는 흥분된 군중과 만세소리로 들끓게 되고, 만세운동은 삽시에 전국적으로 번져나가, 오후6시 진남포·선천·안주·의주·원산·함흥·대구등지에서 시위가 벌어졌으며, 다음날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와 시위운동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서울에서는 3일의 국장 당일에만 잠잠했을 뿐 매일 가두시위가 벌어졌으며, 학생은 휴교, 상인은 철시, 노동자는 파업, 관리는 퇴직으로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이에 총독부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 비무장 평화적 시위를 벌이는 군중에 대해 무자비한 공격을 가해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부상·투옥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화수리·정주·맹산·강서·대구·밀양·합천 등 많은 곳에서 일제에 의해 잔인한 집단학살이 저질러지고, 유관순의 참살 등이 자행되었으며, 민족대표를 위시한 지도자 47명은 내란죄로 기소되었다.* 3.1 운동의 중심인물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임예환, 나인협, 홍기조, 박준승, 양한묵, 권병덕, 김완규, 나용환, 이종훈, 홍병기, 이종일·최린 등 15명이 선정되었다.그리스도교 측에서는 이승훈, 박희도, 이갑성, 오화영, 최성모, 이필주, 김창준, 신석구, 박동완, 신홍식, 양전백, 이명룡,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 등 16명이 선정되었다.불교 측 대표로는 한용운과 백용성이 서명·날인했다.* 3.1 운동의 의의3.1운동 이후 전국을 휩쓴 시위운동 상황을 보면 집회회수 1,542회, 참가인원수202만3,089명, 사망자수7,509명, 부상자1만5,961명, 검거자 5만2,770명, 불탄 교회 47개소, 학교2개교, 민가715채나 되었다. (이 수치는 일본에서 발표한 것으로 실질적인 수치는 훨씬 많을 것이다. ).이 거족적인 독립운동은 일제의 잔인한 탄압으로 비록 많은 희생자를 낸 채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대내외적으로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을 선명히 드러낸 바가 되어, 우리 근대민족주의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 결과 대내적으로는 일제는 강압적이던 무단정치를 변형한 보다 교활한 문화정치를 시행하게 되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상해의 임시정부탄생, 해외 무장독립운동의 촉진, 그리고 아시아의 다른 식민지 및 반식민지의 민족운동 등에 강한 영향을 끼쳤다.또한 국민들의 애국심을 높이고 결속력을 강화하여 일제 강점기 내내 굴복하지 않는 의지를 지닌 모습을 더욱 고취하게 되었다.* 3.1 운동이 미친 영향은?3.1운동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이 반일적 민족해방운동이 제 1차 세계대전 후 인류역사의 전환기에 있어서 식민지 민족의 해방투쟁으로서의 우리 민족의 역량과 위대함을 만방에 떨쳤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일본 제국주의로 하여금 한민족에게 양보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다. 비록 이 양보가 일종의 전술적이며 미온적 개량주의적이며 형식적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우리 민족의 반일 투쟁의 결과로서 얻은 부분적 승리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즉 일본은 헌병경찰을 사법경찰로, 무단통치를 소위 '문화통치'로 바꾸었으며, 제한된 다소의 언론집회의 자유를 허락하는 미미한 개량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이러한 점 이외에, 특히 3.1운동의 직접적인 영향은 한국민에게 커다란 사상적 변동을 일으키게 하였다. 첫째,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적 사상이 노동운동과 결속됨으로써 반제·반봉건적 민주주의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하였으며,둘째, 당시 몇몇 독립운동가들이 형식에 불과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라는 환상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면서 제국주의 열강의 '파리강화회담'의 약탈적 본질을 명백히 인식함과 동시에 약소민족의 장래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이에 따라 한국의 지식인들은 두 갈래로 나누어지기 시작하였다. 한 갈래는 급속히 좌경화 하였으며 또 한 갈래는 점차 일제에 접근하여 그들의 협력자로 타락하게 된 것이다. 3.1운동은 이러한 정치적 영향을 남기었다.* 3.1 운동의 실패원인?첫째, 일제와의 투쟁을 지도할 역량이 부족하였다. 일제와 대항하기 위해서는 3.1운동 이전부터 대중을 꾸준히 결속하고 조직화하면서 거사를 준비해야만 했다. 물론 당시 한국에서는 노동자나 농민 그리고 자본가들이 모두 약하고 독립적인 역할을 담당할 정도로 성장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3.1운동 당시에 곧바로 조직적인 단체의 성립이 없었다는 것은 크나큰 과오였다. 당시의 지도자인 33인은 무저항 비폭력을 주장하고, '3.1운동의 지도자'로서 투옥되기를 자청하였다는 사실은 프랑스 혁명 때 비타협적, 결정적 투쟁을 강조한 구호와 비교해 볼 때 아쉬움이 남는다.우리 민족은 당시에 일본 제국주의의 전례 없는 야만적 잔인성으로 무자비하게 학살당했었다. 그런데 적을 꾸짖지도 말고, 배척하지도 말고, 질서유지를 파괴치 말라고 한 점은 이해되지 않는다. 나의 생각이지만, 이것은 우리 민족자체의 역량을 과시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격퇴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반일 감정을 시위함으로써 자주적이 아닌 의타적으로 열강의 동정으로써 독립을 구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둘째, 당시 운동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들의 근본적인 문제, 즉 토지개혁의 문제가 전혀 제기되고 있지 않은 점에서 반봉건적 투쟁을 망각했다는 것이 큰 과오였다.셋째, 당시 일본은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유리한 입장에 처하게 되어 경제적, 군사적으로 더욱 강해졌으며, 또한 제 1차 세계대전 후의 '국제연맹'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재분할'을 의사일정에 올리고 토론할 만큼 한민족의 호소는 전혀 무시되었으니, 이러한 불리한 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의 해방운동인 3.1운동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결론을 짓자면, 3.1운동이 실패한 교훈으로서 우리가 진정한 민족해방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민중의 역량과 그것을 이끌어 나갈 주체적 지도력의 존재, 그리고 반봉건적 잔재를 일소하고 민족주의적 발전으로 이끌어 갈 토지개혁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문/어학| 2006.11.01| 5페이지| 1,000원| 조회(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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