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서론과학을 지식의 체계라고 할 때 그 지식이란 무엇인가? 라는 이른바 인식론의 물음의 문제는 고대 플라톤 철학에서부터 중세의 인식론으로 그리고 데카르트, 흄, 러셀, 칸트 이후의 무수한 철학자들까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내려져왔다. 이 중에서 칸트는 철학사에 있어서 소위 ‘코페르니쿠적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중요한 인물이다.18세기에 들어서서 합리론은 인식의 과정을 설명함에 있어서 그것의 핵심이 경험 이전에 그리고 경험과는 무관하게 성립된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이와는 반대로 경험론은 올바른 인식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주장을 하였다. 이런식으로 경험론과 합리론은 대립하게 되는데, 흄에 이르러 정점에 도달한 경험론은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한계에 부딪히면서 모든 경험들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이 수면위로 떠올라 회의론으로 귀착되었고, 합리론은 우리의 지성 능력의 한계 너머까지 파악하려고 함으로써 독단론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러한 면에 있어서 칸트는 경험론의 주장과 합리론의 주장 각각에서 자신이 인정한 측면을 수용함으로써 회의론과 독단론을 넘어서고자 했다. 즉 통합한 선험주의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지식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인식을 확장하는 선험적 종합판단을 긍정하여서 두 이론의 논란을 매듭지었던 것이다.) 따라서 칸트의 인식론을 논의하기위해서 다음과 같은 과정을 따르려고 한다.첫째, 당시 유행했던 합리론과 경험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의 한계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본다.둘째, 칸트가 이 두 가지 이론을 어떻게 종합했는지 알아보고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칸트의 인식론을 고찰한다.Ⅱ.본론1. 합리론과 경험론(1)합리론?합리론의 정의합리론이란 인간의 감각이나 감정을 불확실한 것으로 배척하고 보편타당한 이성과 논리만을 중요하다고 여기는 입장이다. 신은 인간에게 이성이라는 것을 주었고, 이는 선험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사유가 곧 진리의 근원이라고 본다. 합리론의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데카르트가 있고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Je pense, donc je suis, Cogito ergo sum).”라는 말을 통해서 자기 존재의 확실성을 뚜렷이 증명해주는 생각, 이것이야말로 모든 진리의 원천이라고 말하였다.?합리론의 한계합리론의 한계는 지나친 논리적 무모순성에서 나온다. 과연 논리적 조건을 갖추기만 하면 모든 것이 진리가 되는 가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논리적 조건이 성립한다해도 그것에 있어서 현실성이 없다면 진리로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황금산’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지나친 삼단논법에 대한 맹신이 바로 한계인데, 아무리 형식적으로 논리적이라고 할지라도 처음의 대전제부터 틀리게 된다면 그 명제는 성립불가능한 잘못된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또 이는 지나치게 논리성과 이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독단에 빠져버릴 위험이 크다. 이성은 보편성이라는 것 아래에 어떠한 다른 개별적인 생각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의 주체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지, 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주의 아래에서는 어떤 감각의 특성이나 개성이 진리를 주장할 수 없다. 그럼 과연 이러한 순수사유라는 것은 존재할 것인가?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져서 너무나도 추상적이기만 할뿐이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순진무구한 시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체는 이것을 ‘완전무결한 인식 추구의 오류’라고 불렀다.)(2)경험론?경험론의 정의경험론이란 지식의 원천을 감각적인 경험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어떠한 대상을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경험을 통해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초경험적인 존재나 선험적인 것을 중요시 여기는 합리론과는 극명히 다른 입장이다. 이 이론은 고대 그리스의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은 사람에 따라서 각각 대상을 바라보는 기준과 관점이 다르고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리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그의 주장은 상대주의적일 수 밖에 없었다.또 경험론의 유명한 철학자는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 있다. 그는 사유만으로 삼라만상의 법칙을 정립하는 것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였다. 대신에 자연의 법칙과 규칙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사유하는 방법이 아니라 감각을 동원해서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삼단논법이 아닌 귀납법이라는 방법을 강조하였다.?경험론의 한계경험론의 한계는 모든 인식을 경험에만 맡겨버려서 필연성의 문제가 생긴다. 아무리 경험적 사실이 많이 되풀이 되어도, 그것이 반드시 미래에 기존의 경우와 같이 되풀이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필연성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철학자 러셀의『철학의 제문제』라는 책에서 모이를 기다리는 닭이라는 예시를 통해서 알려준다. 닭의 주인이 나타나 닭들에게 먹이를 주면 닭들은 주인이라는 관념의 출현이 모이라는 관념의 출현과 동일시하게 된다. 그런데 주인이 모이를 주러온 것이 아니라 닭을 잡기위해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닭들은 그것도 모르고 주인에게로 몰려들게 된다. 이것은 경험적 지식이란 필연성을 띠지 못하고 개연성밖에 띠지 못한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이에 대해서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라는 철학자는 지식이란 ‘습관’, ‘신념’, ‘개연성’ 세 가지로 규정한다. 따라서 경험론은 늘 필연성과 보편타당성에 대해서 회의주의에 빠지게 된다.2. 칸트의 인식론(1)경험론과 합리론의 종합‘우리의 모든 인식은 경험과 함께 시작하지만, 모든 인식이 경험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라는 칸트의 말처럼 그는 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하였다. 우리의 이성이 대상에 관한 지식을 얻을려면 유일한 통로는 감각이지만, 감각을 통해서 얻은 것들은 서로 불분명하고 잡다해서 정리가 필요하다. 여기서 정리의 기준인 어떠한 틀은 절대로 경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선험적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칸트는 경험론과 합리론의 이론을 종합하였다는 의의를 갖는다.(2)오성과 감성칸트에게서 경험 또는 인식이란 오성과 감성의 작용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오성이란 감각기관을 통해서 대상을 받아들이고 다양하게 생각, 분석, 종합하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말하며 감성이란 감각기관을 통해서 대상을 받아들이는 그 자체의 작용을 말하며 수용적이고 수동적이다. 여기서 오성과 감성은 형식과 내용의 요소로 나누어진다. 감성의 형식이란 시간과 공간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이 시간과 공간이란 내가 세계의 대상들과 접촉하는 통로, 즉 감성의 직관 형식이다. 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에 나의 주관적 형식이 있어야 경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혼동될 수가 있는 것이 이 시간과 공간은 대상의 속성이 아니라 나의 속성이라는 점이다. 물론 칸트가 외부에서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 개념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다만 시간과 공간이 나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오성의 형식은 분량, 성실, 관계, 양상 네 가지 범주에서 각각 세부적으로 영역을 세 가지씩 쪼개어 12개의 범주를 설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분량 - 단일성, 다자성, 전체성성질 - 실재성, 부정성, 한정성관계 - 실체성, 인과성, 상호성양상 - 가시성, 존재성, 필연성즉 감성을 통해 우리가 어떠한 대상을 받아들이면 위의 12가지 개념을 통해서 오성이 능동적으로 정리하고 이 범주들은 선험적이고 불변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3)분석판단과 종합판단?선천적 분석판단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경험과 관계없이 이미 가지고 있는 개념을 분석함으로서 얻어지는 선천적인 판단을 말한다. 예를 들면 ‘지구는 둥글다’라는 말을 살펴보자. 지구라는 말 자체에 둥글다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어서 사실 더 이상의 추가적 설명이 필요없어서 우리에게 인식판단의 보편성(필연성)을 가져다 주고 있지만 우리의 인식을 확장시켜주지는 못하므로 확장성은 결여된 판단이다.?후천적 종합판단주어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술어개념을 경험을 통해 새로운 부가적인 판단을 해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지구는 바다가 많다.’ 라는 말을 살펴보자. 위에서 말한 선천적 분석판단과 비슷해보일지는 몰라도 전혀 다른 성질을 상정함에 있어서 주어개념을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즉, 바다가 많다라는 술어개념은 ‘경험’이라는 것이 새롭게 개입된 것이다. 이는 우리의 인식을 확장해주는 확장성을 가지고 있지만, 보편성을 결여한다.?후천적 종합판단선천적 분석판단과 후천적 종합판단을 종합한 것으로 칸트는 자연과학과 수학의 법칙들을 후천적 종합판단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보았다.4. 신은 존재하는가의 문제칸트는 이전의 신의 현존에 관한 이론들을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말 자체에서 모순이다신의 존재론적 증명에 대한 부정이다. 신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신의 존재를 추론하는 것이 대해서 칸트는 신이라는 것은 존재한다는 속성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므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신의 개념 자체와 모순된다고 주장한다. 즉, 신은 존재한다라는 주어와 술어 관계 자체가 모순이 되지 않는 것과 신이라는 주어개념 자체가 현존하는게 아닌지 대한 여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감성적 자료를 가지고 감성계를 초월하는 신의 존재를 추론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Ⅰ. 정책수단환경정책수단으로는 법령, 환경계획 등이 있는데, 이 환경정책 및 환경계획은 환경부 이외의 다른 부처의 사업에 반영되어야 한다. 이를 보장하는 수단이 환경정책기본법 제25조 이하의 사전환경성검토제도이다.1. 사전환경성검토제도(1) 의의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행정계획의 수립 이전 및 환경영향평가의 대상이 되는 사업이 아닌 사업 중 일정한 규모의 개발사업 승인이전에 환경에 대한 영향을 평가하여 이들 행정계획의 수립이나 개발사업의 승인에 있어서 환경에 대한 배려를 하도록 하는 제도이다.(2) 배경사전환경성제도는 기존의 환경영향평가제도가 대부분 대규모의 개발사업에 대하여, 계획이 확정된 후 사업실시단계에서, 주로 오염의 저감방안을 검토하는데 그치고 있다는 미비점을 보안하기 위해서 나온 제도이다. 즉, 각종 개발계획이나 개발사업을 수립, 시행함에 있어서 계획초기단계에서 입지의 타당성, 주변환경과의 조화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토록 함으로써 개발과 환경보전의 조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환경성을 고려하여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게 하는 의의가 있다.(3) 유형a. 환경정책기본법에 의하여 사전협의를 하는 경우동법 시행령 제3조 별표 2의 1호에서 정하고 있는 10개의 행정계획과 2호에서 정하고 있는 20개의 개발사업b. 관련법령 및 환경정책기본법에 의하여 사전협의를 하는 경우당해 개별법령에서 관계행정기관의 장과 사전에 협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경우로서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 별표 3에서 정하는 구비서류를 갖추어야 하는 29개의 행정계획c. 관련법령에 의하여 사전협의를 하는 경우관련법령에서 관계행정기관의 장과 사전에 협의토록 규정하고 있는 행정계획으로서 환경 정책기본법 시행령 별표3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들, 이 경우의 행정계획은 개별관련 법령에서 사전환경성검토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4) 환경영향평가제도와의 차이점사전환경성검토제도는 행정계획이나 개발사업을 수립?시행함에 있어 타당성조사 등 계획이나 사업의 초기단계에서부터 미리 입지의 타당성이나 주변환경과의 조화 여부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도록 하는 제도임에 비해, 환경영향평가제도는 대규모 개발사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주로 사업의 추진이 확정된 후 실시단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 입지의 타당성보다는 오염의 저감방안에 비중이 더 주어진다는 점에서 사전환경성검토제도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양 제도는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효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5) 한계계획단계와 사업단계의 규율이 각기 독립된 별개의 법체계에 의해 이루어짐으로 인해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미국의 경우 대상의 선정단계에서부터 최종 평가까지 하나의 법체계내에서 단계별로 평가를 한다.Ⅱ. 정책집행수단1. 직접적 규제수단(1) 의의행정기관이 환경규제목적을 직접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상대방에 대하여 직접 행하는규제수단이다. 그 전형적인 것이 상대방에 대하여 명령하고 강제하는 권력적 수단이다.(2) 특징과 한계규제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유효한 수단이 되지만, 감독과 단속이 철저하지 못한경우에는 실효성있는 제도가 되지 못한다. 즉, 감시와 단속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되고,인간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직접적 규제수단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게 된다.(3) 유형a. 환경기준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설정하는 환경의 질적수준을 말한다. 환경기준은 행정기관이 달성하고 유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하는 목표로서의 성질을 갖는다. 하지만 직접 어떠한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다. 단, 여기에도 예외가 있는데 그 환경기준이 환경영향평가기준이 될 때와 배출시설설치제한사유가 될 때, 총량규제의 실시근거로 규정되어 있을 때이다. 이때는 예외적으로 법적구속력을 갖는다.환경기준은 또한 배출허용기준과 구별되어야 한다. 배출허용기준은 오염물질배출시설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허용한도를 말하는데, 배출허용기준은 법적구속력이 있는 규제기준이고, 사업장의 경영자 또는 관리자를 수범자로 하며 그 위반 시에는 제재가 가하여지는 특성을 지닌다. 이에 대하여 환경기준은 행정목표 내지 지향점에 불과한 것으로서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으며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를 수범자로하여 기분이 준수되지 않은 경우에도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b. 배출허용기준배출허용기준이라하면 오염물질배출시설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배출농도 또는 배출량의 한계기준을 말한다.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할 경우 방지시설의 개선, 대체를 명하거나 배출부과금을 부과한다. 배출허용기준은 법적구속력 있는 기준으로 위반시 법상 각종 제재가 가해지고 배출시설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배출허용에 관한 전국적인 기준은 환경부장관이 부령으로 정한다.c. 배출부과금배출부과금이란 일정한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하는 공해배출량이나 잔류량에 대하여 일정단위당 부과금을 곱하여 산정되는 금전적 급부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금정상의 제재수단으로서의 과징금의 성격과 의무이행확보수단으로서의 시장유인적 성격을 함께 갖는다. 배출부과금의 산정방식은 기본부과금+초과부과금으로 측정된다.2. 간접적 규제수단(1)의의수범자가 행하여야 할 행위를 국가가 엄격하게 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범자의 결정에 영향을 미쳐 수범자의 행위를 규제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수단을 말한다.(2)유형a. 보조금 등 재정상 지원환경보전을 위한 유력한 행위유인적 수단으로서, 환경정책기본법 제3장의 재정적 조치에 관한 조항들, 폐기물관리법처럼 다수의 개별법에 이에 관한 규정들이 있다. 단,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보조금에 대해서는 규제를 가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된다.b. 예치금제도재활용이 가능한 폐기물에 대하여 제품 생산자 또는 유통업자에게 제재의무를 부과하고 그 회수의무의 담보로서 폐기물 처리비용의 일정을 국가에 예치하도록 하고 폐기물을 회수한 경우에 회수된 폐기물에 상응하여 예치한 금액을 반환하여 주는 제도를 말한다. 현재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로 대체되었다. 예치금제도의 장점은 오염물질을 재활용할 동기부여, 폐기물의 발생량을 줄임으로 환경오방지의 목표를 달성하고, 시장기구의 가격기능을 왜곡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점으로는 적정한 예치금의 수준을 책정하기가 실질적으로 곤란하다는 점이다.
REPORT 이슬람과 기독교의 비교제 출 일 : 년 월 일과 목 명 :담당교수 :학 과 :학 번 :성 명 :목차Ⅰ. 서론Ⅱ. 본론1. 이슬람교의 기원2. 기독교의 기원3. 이슬람과 기독교의 비교①같은 핏줄 그리고 갈등②하나님의 개념③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④죄론⑤예수의 부활⑥코란과 성경⑦정치와의 관계Ⅲ. 결론참고문헌Ⅰ. 서론9?11 사태는 전 세계에 생중계로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끔찍한 사고를 보여주면서 우리들의 머릿속에 잊지 못할 장면을 남겼다. 물론 이는 여러 가지 사회적?정치적?외교적 문제들이 뒤엉켜서 나타난 것이겠지만, 이는 단면을 잘라놓고 깊숙이 들어가서 그 뿌리를 살펴보면 최하층에는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의 갈등이 나타나 있다. 9?11 사태 말고도 구 유고슬라비아 내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전쟁, 미국 주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지금도 크고 작은 분쟁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들 모두가 이슬람과 기독교의 오랜 운명적인 분쟁의 결과물들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분쟁의 경우는 같은 언어, 같은 민족, 같은 풍습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반목하고 다투고 있다.그러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기원을 알아야하고 그리고 나서 이 둘을 비교해야할 필요성이 있다.Ⅱ. 본론1. 이슬람교의 기원이슬람교는 예수탄생 후 약 600여년 이후에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에 의해서 창시되었다. 무함마드는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히라’라는 동굴에서 명상 중에 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아 “너는 주의 이름으로 이크라(ikra)” 라는 말을 듣고 계시를 외웠다. 깨달음을 얻은 무함마드는 그때부터 그가 자라난 메카에서 당시에 다신숭배가 유행하는 것을 비판하고 하나님은 한분이라는 일신사상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의 현명한 지혜를 빌리고자 메디나라는 곳에서 부족 간의 분쟁을 중재해결해줄 사람으로 무함마드는 초청받았고 그는 현명하게 사건을 해결한다(헤지라). 여기서 그는 그의 세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고, 점점 커지는 무함마드의 세력과 추종자들이 두려웠던 기존 메카의 반대세력들은 그의 목숨을 위협하였고 무함마드는 결국 AD622년 메디나로 떠나게 된다. 이를 ‘성전’이라고 부른다. 메디나로 간 무함마드의 이슬람교 세력은 점차 성장하여 결국은 통치자 입법자가 되었다. 헤지라 이후 9년 만에 그는 메카를 다시 탈환하였고, 키바 시전에 가서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그곳에서 순례의 의식을 거행하기 시작했다.2. 기독교의 기원기독교의 창시자는 예수로 팔레스타인의 남부지역 유대 지방에서 태어났고, 생애의 대부분을 이 나라의 북부지방인 갈릴리에서 보냈다. 그는 구약 성서 창세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아들이삭의 후손으로서 예수의 유년기와 소년기의 행적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사료는 극히 빈약하다. 예수는 세례를 받은 후 40주야로 금식하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뒤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역사를 시작하였다. 예수는 종교의 순수성을 부르짖는 나머지 형식적 전통에 구애받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종교인들의 반감을 사게 되어서 집권자들과 결탁하여 예수를 없애려 하였다. 결국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하였다. 사도 바울은 후에 아라비아 건너가서 대대적으로 기독교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바울은 기독교의 교리를 체계화하였고 이는 그리스도 교회에 거대한 영향을 주었다.3. 이슬람과 기독교의 비교①같은 핏줄 그리고 갈등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갈등원인 중 하나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창세기 16장에 아브라함이 사라를 통해서 상속자를 낳으려고 했으나 계속 아이가 생기지 않자 이집트 여자 몸종 하갈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이가 바로 이스마엘이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지 않던 사라에게도 이삭이라는 아이가 후에 생겼다. 이에 두 명의 아들로부터 상속권의 문제부터 비롯해서 형제가 있음으로 아브라함의 것들을 독차지하기 위한 질투와 갈등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후에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이슬람교를 이삭의 후손들이 기독교를 창시하였고 위의 갈등은 두 종교 간에도 이어져왔다. 같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형제이지만,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것처럼 그 근본적 원인에는 모든 인류가 그러하듯이 형제들 간의 질투와 경쟁심리가 종교에까지 묻어있는 것이다.②하나님의 개념이슬람교에서는 기독교에서 믿는“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이 없다. 이슬람교에서의 신의 본질은 단일성이다. 기독교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가 있지만 이슬람교에서는 오직 유일한 알라 한 분 밖에 없다. 기독교에서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와 피조물인 신자들 상호간의 인격적 교제와 신비적 연합 관계가 있다. 그라나 이슬람교에서는 알라가 피조물 신자들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신령적 교통이 없고 직접적 관련도 가지지 않는다. 알라는 위대하여 인간을 초월해 있으므로 비인격적으로 존재하고 작용한다.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들 사이에 내려와 인간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음으로써 인간들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였다. 그 사건을 믿는 것이 기독교이다. 그럼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요 감격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슬람교도들에게 매우 꺼림칙한 일이다. 그들은 알라를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매우 큰 불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버지란 개념을 육체적 성관계를 통해서 자기를 낳아주신 분으로만 생각한다. 이슬람교의 하나님인 알라에게는 거룩함, 사랑, 은총과 같은 인격적 속성이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거룩하고, 사랑이 많으며, 의롭고 은혜가 넘치는 하나님의 성격을 가진다.③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코란의 기록 가운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과 비슷한 기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한다. 코란에서는 예수를 아브라함, 요나 그리고 다른 선지자들과 동일한 한 사람의 선지자로 인정한다. 또한 코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은 사실이 없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일에 대하여 구약에 예언되어 있고, 신약의 4복음서에도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룬 대속적인 죽음 그 자체야말로 신약성경 전체의 핵심 진리이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예수를“무함마드보다는 못한 선지자이지만 죄는 없으신 분,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대신한 천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 죄 없는 삶을 사신 분,‘신의 말씀’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이슬람교는 예수를 상당히 높이 대우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는 아니라고 하였다.④죄론기독교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하였으며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인간이 죄에서 용서받고 해방되고 구원받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교의 구원관은 인간은 죄 때문에 멸망 받게 되어있었지만 인간 스스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죽게 하심으로써 인류의 구원을 다 이루셨으며 누구든지 이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교에서는 사라마다 자기가 지은 죄는 자기가 해결하야 한다는 것을 교리화하고 있다. 그들은 신앙의 다선기둥인 신앙고백, 기도, 구제, 음식, 순례를 지킴으로써 죄에서 구원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죄의 개념을 알라에 대한 복종의 결핍과 불충분성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에 죄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죄가 되는 행위를 하기 때문에 죄인이 된다고 본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죄 아래서 태어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채 멸망상태에 처하였다고 한다.죄와 구원론에 관해서는 이처럼 두 종교가 다른 점을 보이나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차이점이 없다.⑤예수의 부활이슬람에서는 예수를 무함마드와 같이 선지자로 보지만, 인간에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고 거부한다. 반면 기독교는 예수를 신과 같은 다른 차원의 존재로 높여서 보기 때문에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 확언을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기독교의 근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언론매체나 학계에서 예수의 묘를 찾았다거나 그 증거자료를 찾았다고 하면 엄청난 반발을 일으키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예수는 인간과는 다른 존재라는 믿음 위에 성립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무너지면 기독교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