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목회자” 를 읽고제1부 목회자들이 입은 상처의 실상.[1]방치되어있는 목사킬러방해꾼들은 이미 교회 내 각 기관에 침투해 있다. 이들은 정신적, 정서적 문제를 심각하게 앓고 있는 사람들로서 목사들에게 내적 적대감을 느끼고 있는 평신도들을 말한다. 이들을 ‘목사킬러들’ 이라고 부른다. 또한 그들을 통하여 학대받은 이야기의 공통적인 주제는 목회선상의 모든 문제의 원인을 목회자에게 돌릴 때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들 목사킬러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1)그들은 파괴적이다.(2)그들은 매우 단호하다.(3)그들은 기만적이다.(4)목사킬러들은 매우 악의적이다.(5)교회가 이런 부분에 대해 부인하는 것은 목사킬러들에 대한 통제를 없애버려서 일반적인 모든 교회와 특정한 목회자들이 그들의 간계에 심하게 상처를 받도록 방치하는 것이 된다.(6)그들은 협박의 대가들이다.(7)그들은 전문가들이다.2.교회 안의 병적인 적대자들(1)그들은 잘못된 증거에 기초하고 있는 자들이며 모호한 궤변과 과장된 말들 그리고 무지한 논의하는 자들이다.(2)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하여 공격적 과민반응을 하는 사람들이다.(3)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이다.(4)건설적 비판이 아닌 목사를 공격하는 사람들이다.(5)이기적인 공격자들이다.[1]병적인 적대감을 가진 사람들의 유형(1)강성의 적대자들아주 강한 적대감을 병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현실 밖의 사람들이다.(2)주요 적대자들정신적 장애는 아니지만 그들은 강성의 적대자들과 종종 행동을 같이하는 자들이다.(3)온건한 적대자들분명히 이들은 고의로 목사에게 고뇌를 주는 사람들이다.(4)선의의 적대자들고위성이 없는 단지 성격적 장애를 가진 자들이다.[2]전환된 적대감적대감의 대체는 방어기재를 나타낸다. 적대감의 처음의 곳에서 감정의 전이를 일으키는 것이다.[3]병적인 적대감을 가진 사람들의 지지자들때때로는 이들이 매력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많은 다수가 그들에게 동조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의 설득력은 수줍음을 잘 타고 대립을 싫어하는 착하고 수동적인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한다.(4)바쁜 생활[1]공격 당할 때 목회자들이 겪는 괴로움목사들은 목사킬러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을 때 핵심 리더들이 그것을 중단시키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을 때 상처를 받는다.5.자율적인 교회조직의 위험요소들물론 이것은 이단적이지 않지만 오랫동안 교회의 자율성을 강조해 온 침례교도들에게는 자율적인 교회 조직의 위험성을 다루는 일은 아마도 매우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권한 교회 의회에 두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특별히 목사자문위원회를 두는 것은 목사킬러들을 방지하는데에 최선의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6.부서지고 상처 입은 목회자의 삶목사킬러들의 공격은 목사로 하여금 엄청난 상처를 받게 함과 동시에 다양한 방법으로 파괴한다. 그들은 목사의 사소한 실수를 찾아 그것을 가지고 사실로 소문을 내며 목사를 위협하기도 하며 공격을 한다.목사들은 특히 칭찬을 받는 목사들은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교회의 역사 특히 목회자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라.*평신도 지도자 중에 교회를 운영하는 자를 찾아라.*그 교회의 교회법과 세칙이 명시하고 있는 공식적인 업무지침서를 요구하라.*만약 어떤 사람이 목사를 인신공격 했을 때, 공식적인 회의가 열릴 수 있는 지를 물어보라.*목사청빙위원회와 공식적인 회의에서 당신의 목회철학을 분명히 하라.*그 교회에 강요된 해고가 있었는지를 알아보라.*만약 당신이 오래된 전통의 교회를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 전통들을 알아보고 당신이 이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7.목회자가 받은 연쇄적인 상처목사킬러들의 공격은 단지 목회자에게만이 아니라 그의 결혼 생활과 배우자 자녀에게까지 큰 상처를 준다. 그들은 목회자의 모든 부분을 파괴할 것이며 목회자의 이상과 비전마저도 공격하여 무참히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목회자가 그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와 치료를 위한 해결책이라면 다음과 같다.*당신의 결혼 생활이 약하거나 상처를 입은 상태만을 향한 믿음을 굳게 하며 목회 사명의 자리로 부르신 소명을 다시 재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요소이다. 목회자의 회의적이지 않은 사고방식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14.상처 입은 치유자들후기. 거절을 통한 성장상처 받은 목회자들은 우는 것을 멈추고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 용서함으로 믿음의 깊이를 깊게 하고 상처 받음으로가 아니라 복음을 설교하며 기쁨을 회복해야 한다.오히려 회복된 목회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라“결코 포기하지 말라!”“개혁주의 목회신학” 을 읽고제1장 목회신학의 학문적 정체성1. 목회신학의 정의목회신학은 목회자의 직무와 기능뿐 아니라 교회의 전반적인 활동을 취급하는 하나의 신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신학은 이중성을 갖는다. 이론과 실천이 동시에 그 본질을 품고 있다. 목회신학의 여러 가지 정의가 있지만 무엇보다 목회신학과 실천신학과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서로 간에 학문적 혼동이 있기 때문이다. 목회신학은 실천신학의 가족 내에서 특수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으면서, 실천신학의 각 가족들이 교리적으로 일관성을 갖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2. 목회신학의 영역과 과제목회신학의 불명확성을 인식하면서 현대 목회신학이 다루는 4대 영역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첫째는 목사직의 기능과 직무 영역, 둘째는 상담과 치유의 영역, 셋째는 말씀 전파의 영역, 넷째는 봉사의 영역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첫째, 목회신학의 영역은 안수 목회의 정체성을 밝히고 그 직무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목회신학의 영역이다. 여기서는 특히 대표교역자로서 목사의 정체성을 밝히는 동시에 역사적으로 변질된 성직 패러다임의 고착화의 문제도 밝혀야만 한다. 더 나아가 안수사역과 협력하는 평신도 신학도 다루어야 한다. 둘째 목회적 돌봄으로서 상담과 치유의 영역도 목회신학의 중요한 영역이다. 목회상담 영역이 목회신학의 영역과 완전히 격리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목회상담의 영역에 목회신학은 신학적 관점에서 분명히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도움 쏟아 부어주는 모습을 보게 된다. 목회는 사랑을 공급하는 것이기에 부모로서의 역할만을 강조하다 보면 이러한 것이 퇴색될 수 있기 때문에 목회의 인격적 노력을 계속되어야 한다.모세가 하나님께 인정받은 첫째 이유는 철저한 준비에 있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가 자라나는 성장과정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준비가 있었던 것이다. 모세는 40년 광야의 훈련을 마친 다음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소명의식에 불타 그는 자신의 맡은 일에 충성스럽게 사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 또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인격적 관계의 지속에 있었다. 그뿐 아니라 유한한 자기 능력의 한계를 인식하는데 있었다. 출애굽 이후 지도자로서 엄청난 양의 책임을 지고 있었고, 그로 인한 긴장은 불가피 한 것이었다. 결국 모세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모세는 그 해답을 이드로의 충고에서 찾게 되었다. 어디 그뿐 이겠는가? 그는 하나님의 신실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에 있었다. 모세는 독창적으로나 창조적으로 행동하지 않았고, 오직 그분의 부르심에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해 나갔다.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님의 과업행위에 관한한 다른 사람과의 타협에 있지 않았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에 순종함으로 여호와를 따를 것인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을 결단하도록 도전했다. 모세가 보여주었던 이러한 이성과 그 한계들은 하나님께서 일군으로 부르셨지만 스스로 모세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격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모세 이후에 뒤를 이어 여호수아를 하나님은 세우셨다. 가나안을 점령하는데 앞장섰던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에 고정적인 지도자가 등장하지 않았다. 사사들이 산발적으로 행동하였지만 그들은 영속적인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등장한 인물들이 선지자들이다. 또한 선지자들은 젊은이들을 훈련하고 목적을 갖도록 하는데 있었다. 그뿐 아니라 여호수아 사무엘, 솔로몬 등 이러한 목회의 형태는 왕정정치를 했던 당시의 어려운 상황은 오늘날의 시대와 너무도 유사하다. 그러므로 바울이 강력하게 충고한 목회전략, 즉 바른 진리를 가르치고 모든 교리적 오류에 대하여 진리를 굳건히 수호하도록 한 명령은 오늘날에도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목회적 전략요소들이다.6. 공동서신베드로의 모든 목회관은 베드로전후서에 잘 요약되어 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동안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베드로는 앞으로 고난 받을 독자들에게 그러한 고난에서 면제될 것 같은 승리주의적 권면은 하나의 목회적 속임수 일 뿐이라고 인식했다. 그는 현실주의 와 목회의 격려를 잊지 않았다.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이와 같은 확신에 찬 권면을 줄 수 있었다. 베드로는 이제 그의 연약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참된 목자로서 교회가 확고히 설수 있도록 백성들을 격려하고 있다.제3장 목회신학의 역사적 개관1.초기기독교시대초기 기독교 시대는 목회 패러다임의 형성이라는 점에서 볼 때, 창조적인 면과 혼란스러운 면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사도 시대 이후 디다케는 12사도 경건집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스스로 합당한 감독들과 교사들을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희들을 위해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교사의 사역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을 가볍게 평가하지 말라, 그들은 너희들 가운데서 가장 고귀한 지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 이후에 폴리갑은 “다른 사람의 죄악에 대한 말을 지나치게 잘 믿어서도 안되며, 그들을 나무라는 일을 지나치게 서둘러서도 안된다. 우리는 모두 죄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콘스탄틴 대제 이후 크리소스톰은 “목사는 흠이 없어야 하고 천사와 같은 미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목사의 잘못은 대중들에게 결코 감추어 질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의 목회철학에 하였다.
신약해석학의 연구제1부 실제적인 해석법1. 성경 해석의 역사적 흐름과 전망우선 해석학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자, 종교개혁 이전으로 초대교회의 두 가지 대별되는 해석 방법론이 있다. 하나는 성경의 해석이 저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해석되는 위험한 알레고리 방식이 있고 다른 하나는 본문 중심적이며 보완적인 문법적-역사적 해석 방법이라 할 수 있으며 일종의 그릇된 교리적 해석으로부터 바른 해석권을 찾으려는 종교개혁, 초대교회의 역사적 정황의 재구성 하려는 역사적 비평, 역사적 비평을 넘어서고자 했던 신학적 주석, 문학 비평, 현대에 이르는 언어학적 연구로 해석학은 이어지고 있다.이러한 노력들은 가능성을 희망할 수 있는 것들이라 평가되어지고 있으면, 해석학의 발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2. 해석 방법론의 적용해석학의 흐름을 활용하는데 있어서 먼저, 본문 중심적인 해석의 선행, 역사적 측면의 이해, 실재적?수사적 이해를 필요로 한다. 또한 본문을 직접 다루게 될 때에는 본문 중심의 이해와 역사적 이해, 현재적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 이러한 해석학의 활용을 통해서 본문의 정보에 주모하게 되고, 정보의 연계의 훈련을 하게 되며 본문의 문맥적 위치 파악과 큰 단위의 연계성을 찾게 되고 역사적 이해의 보완과 현대적으로 이해하게 되며 나아가 세밀하고 분석적인 해석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를 얻게 된다.3-4. 구문분석의 실제구문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말의 구성과 정보를 요하는 목적어의 쓰임을 적절히 사용하고 또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구성, 수식, 선택, 강조, 순서의원리가 차례로 적절히 쓰여야 한다.이러한 분석과 원리들을 사도 신경에 대입했을 때 사도신경은 ‘나’의 신앙 선언이 되며 ‘나’는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마지막으로 성령과 성령께서 하시는 이에 대한 분명한 신조들을 선언하게 된다.또한 이러한 방법은 앞의 언어 원리에 구애받지 않고서도 한 단어 한 어구 하나씩 해석해 나감으로써 주기도문의 해석을 이룰 수 있게 되며 또한 이것한다. 이것은 가장 쉬운 방법으로 절이나 긴 구로 끊어 행을 바꿔주는 방식, 주어, 동사를 중시하는 구문 구성의 원리에 입각해서 본문을 재구성하는 방식, 본문의 순서를 그대로 살리되 어구의 자리를 적절히 배열하고 이에 따라 행을 바꾸는 방식, 이 세 가지 배열 방식을 통해서 실현되어 진다. 그리고 이 배여된 것을 한 부씩 연구(묵상)하여 각각의 의미를 새기는 분석 작업을 거쳐서 본문의 내용을 조직화함으로서 원어 구문분석은 가능하게 된다.이렇듯 마이크로 분석법을 통해서 성경본문의 한 구절 한 단어의 정확한 이해가 이루어진다.7-8. 매크로 해석해석법은 크게 마이크로(미시)분석과 매크로(거시)해석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마이크로 분석이 한 문단 또는 몇 절 정도의 본문을 대상으로 하고 그 부분을 철저히 연구하는데 목적으로 둔다면 매크로 해석은 보다 큰 단위의 본문을 목적으로 한다.이 장에서 다루게 될 매크로 해석은 큰 본문 내의 단락 간의 관계 의미를 통해 본문의 전체적인 의미를 찾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네 단계의 과정을 밟음으로 이루어진다. 이 제 단계는 ‘의미단락’으로 본문을 나누는 단락 구분과 그 단락에서 중심 되는 주제나 모티브를 추출하는 각 단락의 요약, 서로 연결하고 어떤 의미를 생성하는지 단락 간의 연계과정을 거쳐서, 순차적인 흐름뿐 아니라 서로의 연계성을 이해함으로 정확히 해석해 내는 전체적인 해석 방식을 말한다.이 방식은 이 장에서 로마서와 마테복음에 적절히 대입됨으로써 더 자세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9. 통합 주제 해석통합된 주제 해석은 특정한 구저이나 단락에서 얻을 수 있는 주제를 다른 구절이나 단락이 내용과 서로 연계해서 해석하는 것을 말하며 예를 들면 사랑을 주제로 한 서로 다른 말씀을 서로 동일한 주제의 연구로 함께 병행해서 연구하는 것이다.통합된 주제 해석에는 귀납적, 연역적 연구 모두 필요하며 이 두 연구는 서로 보관되어야 한다. 또 성경 신학 방법론과 주제 해석이 필요하며 통일성과 다양성에도 주목한다. 또한 주제를 해석 이론10. 영감된 하나님의 책으로서의 성경과 개혁주의 해석학적 과제영감설과 무오성이 해석학에 미치는 영향과 개혁주의 해석학의 기초 해석학에 대한 입장 개혁주의 해석학의 대안 노력, 개혁주의 영감론에 근거한 해석학적 노력 방향에 대해서 바람직한 개혁주의 해석학의 노력은 성경은 영감된 거룩한 책으로 인정되어야 하며 무모한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되어야 하다. 그리고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인정하는 것이 성경적 개혁주의 해석법의 본질이며 방향이라고 결론짓고 있다.11. 성경 본문 해석을 위한 언어학적 담론(본문)분석의 통합적 방법현대 언어학의 네 가지 변화 방향(동시적, 능력-수행의, 문단 중심적, 통합적)은 해석학계에 이미 깊은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러한 방향들은 신학 연구와 해석방법론 계발에 상당히 유익하게 이용될 수 있다.여기에서 제시된 관계 해석은 본문 자체 연구를 중시하는 해석 방식일 뿐 아니라 언어학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모든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포괄적 연구 방식을 추구하는 특성상 가른 분야와 또 다른 연계성을 기대해 본다.12. 21C 시대적 특징과 성경해석학적 노력: 배타성과 포함성의 선택시대를 아는 것과 개혁을 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21C의 시대적 특징은 디지털 시대이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이며 다원주의적 시대이다. 이러한 가운데 시대는‘배타성’과 ‘포함성’을 선택해야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개혁 신학은 시대정신의 극복을 위해서 계발과 개혁이 멈춰서는 안 되며, 교회와 신학 간의 상호 보완과 협력, 총체적, 통합적 노력이 필요하고, 시대를 이끄는 개혁신학의 노력이 지속되어야 하며, 교회의 총체적, 통합적 노력은 해석학적 노력에서도 작용되어야 하며, 새로운 해석 방법론 등의 계발은 지속적이어야 하고 더 많은 방법론적 노력이 필요하다.13. 열린 모델로서의 관계 해석모든 것은 관계적이다. 관계 해석은 관계적으로 지향하는 ‘열린 모델’로서 다른 접근 방법들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연계되며 보완될 필요가 있다.개방성은대해 열려있고, 다른 상관된 부야들에 대해서도 열려 있으며, 직간접으로 교의 사역을 위해 함께 열려 있기를 소망한다. 요약하면, 모든 것이 한 주님 안에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를 위해서 상호관련성, 통합성, 상호 영향성, 상호 의존성 그리고 상호 지원성이 필요하다.‘해석 매뉴얼’이 장점과 단점 그리고 현대적 적용1. 장점해석 매뉴얼의 장점은 우선 이 책의 서문에서도 잘 나와 있듯이 성경 본문 연구에 실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해석 방법론을 익히게 해 주었다. 마이크로(미시적)분석과 매크로(거시적)해석이라는 두 가지 기본틀에 여러 가지 해석 모델ㄷㄹㅇ 제시받음으로 한 절 또는 몇 절로 죈 작은 단위의 본문 해석에서부터 큰 단위, 즉 여러 단락 또는 연속된 장들의 해석에 이르기까지의 해석 이론을 습득할 수 있었다.또 이들 방법론을 직접 다루어 봄으로써 실제적으로 해석이 부족하나마 가능하게 되었다.그리고 변화되는 시대에 맞추어서 성경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 어떻게 내게 적용해야 할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는데 ㅌㄱ히 성경의 본문 중심의 이해와 역사적인 이해 다시 현대적 이해를 시도하게 됨으로써 자칫 해석자의 주관에 의해 빗나갈 오역을 피하게 해주고 더 기피 있는 이해를 얻게 하며 과거의 것이 아닌 현재에 까지 생생하게 적용되는 성경과 개인의 만남을 잇게 해준다.또 말의 구성이나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 등 외에도 많은 이론 등을 제시함으로써 설교자로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어떻게 듣는 이들에게 전해야 할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마지막으로 해석 과정에서 연계성을 이해함으로써 성경해석의 깊이와 넓이를 한층 더해 주었으며 앞으로 해석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었다.2. 단점해석 매뉴얼에서 가장 아쉽고 안타까움으로 남는 것이 있다면 신학적인 다시 이야기 해 학문적으로 이론적으로 성경을 가까이하고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제시했을 뿐 그 속에 가장 중요하며 해석의 원천이 되시는 성령이 영감을 통한 해석은 가벼이 다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 이론적 해석에만 힘을 기울이는 것은 스스로 위험함에 뛰어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한다.말씀을 곧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이 말씀이 적힌 성경 말씀을 이해하는 선결 조건일 줄 믿는다. 그렇지 않고 이론과 학문적인 잣대를 먼저 들이대어 해석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처럼 보인다.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말씀 앞에 깨달음을 원한다면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조용히 나아가는 것이 제 1조건이 되어야 한다.3. 현대적 적용성경 말씀을 본문 중심으로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역사적 이해를 한층 깊이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그렇게 됨으로써 현대에 사는 독자에게 다가오시는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다. 성경 말씀이 6000년 전에 쓰여 졌든 2000년 전에 쓰여 졌든 오늘의 독자와 만나게 됨으로써 영생의 말씀은 생명의 기쁨을 얻게 한다.굳이 적용한다면 책의 본문에 인용되는 누가복음 17장의 말씀처럼 당시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종의 비유’를 통해, 오늘날 독자는 주님이 전하시는 비유의 말씀을 제자들과 동일하게 들으며 참 종이 가져야할 마음 자세와 태도를 실천해야 할 행동 지침이요 신앙의 자세이게 한다.설교본문말씀마태복음 6:14-15본문의 구조적 배열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오늘 본문의 말씀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마치신 직후에 주님께서 죄용서가 조건적이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하여 구할 것과 이어 구할 자의 삶을 언급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자의 모습을 완성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조건적 용서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아래 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남다른 지성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인간이었는가, 아니면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하나님이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는 참 사람인 동시에 참 하나님이었는가? 이러한 문제는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신학자와 역사가들의 고민이자 싸움이었다. 이러한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에 대한 답변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하기에 먼저 위격적 연합의 사역을 다루기에 앞서 위격적 연합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1.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시나, 세 위격으로 구분된다.? 우리는 이 진리와 이 하나님 말씀에 따라 본질상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은 단 하나의 본질이시고, 그 한 본질 안에 세 위격이 있다. 그분은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의 비공유적 속성에 따라 영원히 구별되신다.) 성부는 보이는 모든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원인과 근원과 시작이시다.) 성자는 말씀과 지혜와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 영원한 능력과 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구별에 의해서 셋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아버지, 아들, 성령이 각각 위격적 존재이고, 각각의 속성을 가진 것으로 구별되지만 세 위격이 오직 한 분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런 방식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고,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고, 이와 같이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이 아님이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별된 위격은 나누어지거나 혼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부는 우리의 살과 피를 취하지 않으셨고, 성령도 그러하시고, 다만 성자만 우리의 살과 피를 취하셨기 때문이다. 성부는 성자 없이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성령 없이도 존재하지 않으신다. 이는 하나이고 동일한 본질 안에서 이 세 위격이 영원히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세 위격은 먼저 되거나 나중 되신 분이 없으시다. 왜냐하면 이 세 위격 모두 진리와 능력과 선하심과 자비하심에 있어서 하나이시기 때문이다.2.이씀하실 때,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지적하신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러 위격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시고, 다만 구약에서 불분명하게 보이는 것을 신약에서 아주 분명하게 하셨다고 하는 것은 진리이다. 우리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마3:17)라고 하는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다. 아들은 물 가운데 있었고, 성령은 비둘기 형체로 아들 위에 내려왔다.) 모든 신자들의 세례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족속에게 세례를 주라”(마 28:18)고 하는 이 형식을 규정하셨다. 누가복음에서 천사 가브리엘은 우리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고 선언하였다.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 한다(고후13:13). 이 모든 성경구절에서 우리는 충분히 하나의 유일한 신적 본질 안에 세 위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비록 이 교리가 모든 인간의 이해를 훨씬 넘어선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생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 교리를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장차 하늘에서 이 교리의 완전한 지식과 열매를 즐기게 될 것을 고대한다.? 또한, 우리를 향한 이 삼위의 독특한 직무와 사역에 주의해야 한다. 아버지는 그의 능력으로 인해 우리의 창조주라고 불리어지고, 아들은 그의 피로 인해 우리의 구원자와 구속주로 불리어지고, 성령은 우리 마음속에 거하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성화주로 불리어진다. 성삼위일체 교리는) 사도 시대 이래로 오늘날까지 정통 교부들이 공정하게 정죄한 유대교와 이슬람교와 말시온과 마니교와 프락세아스와 사벨리우스와 사모사타의 바울과 아리우스 등에 대항하여 항상 참된 교회 안에서 유지되고 보존되어져 왔다. 그러므로 이 교리 안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불타는 가시떨기로 모세에게 나타나셨다는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야훼의 천사’라고 언급되어 있다. 모세 역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 천사는 바로 하나님이시지만, 또 하나님과 분리해서 언급되어 있다. 야훼의 천사의 신분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은 이 분이 바로 제 2위 다시 말해서 성육신하시기 전의 그리스도시라는 것이다. 시편139:1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야훼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성신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주의 신을 피해 어디로 가오리이까’라고 7절에서 언급했다. 여기에 신적인 속성들이 성신께 돌려지고 있다.구약성경이 보다 삼위일체 교리에 관하여 신약은 훨씬 더 분명하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점점 더 많이 계시하셨다. 요한복음5:17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어떻게 당황하게 만들어 물리치셨는지를 다음과 같은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나의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하노라.’ 이 말씀이 왜 유대인들을 단숨에 물리치셨을까? 누구든지 18절을 살펴보면 그 대답을 얻을 수 있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그가…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음이니라.’ 19절과 20절에서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이와 같은 반응에 대해서 이점을 더욱 정교하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신데, 다시 말해서 아들은 아버지를 반향하고 그대로 옮겨 놓았다. 생명을 주시는 것은 신적인 행위이며 또 아버지와 아들이 이것을 똑같이 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뜻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던 투쟁은 교회 교부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한 분 이시면서도 동시에 세 분이라는 사실 즉 세 분이자 한 분이심을 분명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무진 애를 쓰면서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소개하기에 이르도록 했다. 삼위 일체 교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초기 교회 역사에서 굉장히 많이 토론되었다. 어떤 교사들이 교회에서 나왔는데, 이들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모나르키안 혹은 군주론자들로 알려져 있으며,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하나님은 세 분이시다는 것을 부인했다. 이때부터 모나르키안들은 두 부류로 형성되었는데, 그들은 양자론자들과 양태론자들이다.? 양자론자들(Adpotionists)? 양자론 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 혹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나사렛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라는 지상의 부모를 둔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나사렛 예수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가 가진 경건한 성격에 있는데, 하나님에 대한 넘치는 사랑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그 분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큰 열심에 있다고 주장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한 예수의 큰사랑을 주목하셨기 때문에, 그의 신을 예수 위에 부으심으로 응답하셨고, 이것으로 예수를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자기를 위해 그를 아들로 삼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성경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할 때에,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이렇게 예수가 아들이 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성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이나 힘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아리우스는 양자론자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는 주장하기를 예수께서 존재하시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활동하고 있는 여호와 증인(Jehovah's Witness)이 양자론 자들이다.? 양태론 자들? 양태론(mode=from;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서 다른 형태를 취하신다는 뜻이다)자들은 하나님께서 지상의 아버지는 AD 325년경에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 온 교회가 함께 소집되었다. 이 회의에서 아리우스와 양자론자들이 주장하는 견해가 잘못되었음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아리우스는 자기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실제적으로 아리우스의 논적이었던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다가 추방당했다. 사실상 그 이후의 역사를 추적해보면, 교회는 상당부분에 있어서 아리우스의 주장을 수용했는데, 즉 예수는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으로서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만일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 아니라면, 구원이 있을 수 없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6주일에서 한 죄인이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서 죽어서 배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실상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위태롭게 되었다.하나님께서 아리우스의 주장을 AD 381년경에 콘스탄티노플 회의에 의해서 또 다시 정죄를 당하게 하시는 방법으로 이끄셨다. 이 회의는 니케아 신경으로 잘 알려져 있는 신앙의 진술을 채택했다. 니케아 신경을 사도 신경과 비교해 보면, 둘 다가 삼위일체의 각 위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AD 381년 회의는 간단하게 사도 신경을 채택했고 또 이단과 싸우기 위해서 또 삼위 일체교리를 더욱 명확하게 진술하기 위해서 각 조항들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사도 신경의 첫 조항은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인데, 이를 니케아 신경은 ‘나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전능하신 아버지로 믿습니다. 로 진술하여 사도 신경보다 확장시켰다. 또 사도 신경의 두 번째 조항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인데, 니케아 신경은 길게 보족어들을 달아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하나님이시며, 빛으로부터 오신 빛이시며, 참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참 하나님이시며, 낳으셨으나 창조되지 아니하셨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성신님에 관한 사도 신경은 ‘나는 성신님을 믿습니다. 인데, 니케아 신경은 여기에 성백했다.
서 론1.교회사의 연구의 의미교회사란 창조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까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부터 종말론적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신앙을 갖은 사람이라면 역사를 통해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된다.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자연의 모든 것은 영적인 실체의 그림자인 셈이다. 만약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하면 비록 초자연의 세계를 볼 수 없다고 해도 초자연을 움직일 수도 있고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이 택한 자는 자연의 상태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신앙의 눈으로 보아야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고 계신다.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같이 교회사는 이런 관점에서 보도록 노력 하여야한다.이러한 노력은 분명 세속사 일반역사와 더불어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아야하며 이러한 교회사에 대한 접근은 미래의 신학자난 기독교지도자를 배출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나라를 위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2. 교회사 연구의 유익이것은 하나님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며 인간을 알 수 있는 연구이며 기독교의공동체를 확고히 하여 삶의 지혜를 주는 유익함과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심을 알게 하며, 과거를 통해 내일의 거울이 되게 하고, 신앙의 영웅들의 자취를 통해 위로와 격려를 준다. 기독교가 세계에 끼친 영향을 통해 세상을 바로 보며,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얻게 한다.연구본론교회사의?시대?구분?1)?고대사?(A.D1-590)예수?그리스도로부터?고레고리우스?1세?즉위 시까지?(1)?사도시대(1-100)?그리스로부터?사도들의?활동이?끝날?때까지?(2)?사도 후?시대(100-313)?콘스탄티누스?대제가?기독교를?허락할?때까지?(3)?니케아?회의?시대(313-590) 초대?교황?그레고리우스?1세?즉위?시까지?2)?중세사(590-1517) 그레고리우스?1세?즉위부터?종교?개혁?시작까지?(1)?과도?시대(590-800)?선교?발달기?(2)?로마?교회?성장?시대?(800-1073) 그레고리시대(1073-1303) 교황?보니파키우스?8세?사망까지.?(4)?로마?교회?쇠퇴?시대(1303-1517) 종교?개혁까지.?3)?근세사(1517-?현재) 종교?개혁까지?(1)?종교?개혁?시대(1517-1648) 종교?개혁?시작부터?베스트팔렌?강화?조약?까지.?(2)?근세?시대(1648-1800) 프랑스?혁명까지1.초대교회사사도시대(1-100)의 특징은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기독교가 각지(소아시아, 헬라, 로마등)로 전파 되고 예루살렘, 안디옥 에베소 교회의 여러 교회의 설립되어진다. 신약성경의 기록과 성도들의 삶이 성령 충만과 사도들의 순교로 기독교의 박해가 시작 되었고 교회의 변증법이 발달했다. 그 당시에는 로마제국의 전성기로 지중해 중심의 세력을 확장하였고 교통의 중심지였다.사도 후 시대(100-170)의 특징은 카톨릭 교회의 탄생, 교부들의 등장으로 사상이 발달했으며 정경의 형성 및 집성을 들 수 있다. 네로 황제 이후 250년간 박해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되고 박해로 인하여 기독교는 통일된 교리를 가지게 되었다. 또 카타콤의 교훈을 통해 죽음 앞에선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슬픔 대신 기쁨이 넘치는 삶이였음을 알 수 있다.니케아 전 시대(170-325)에는 속사도교부의 등장에서 니케아 회의까지의 기간으로이 시기에는 네로 이후 콘스탄틴의 회심까지 극심한 박해가 계속 되었다.이 시에초대교회에 이단이 등장하여 신앙인들을 미혹하며 혼란에 빠뜨렸다. 이단으로는 에비온파, 영지주의, 몬타누스파, 마니교를 들 수 있다. 주요사건은 313년 콘스탄틴의밀라노 칙령을 발표 기독교를 공인된 로마종교로 인정한 것이다.니케아 회의는 삼위일체중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동일시하는 회의였다.니케아 후 시대(325-590)에는 교부의 등장에서 초대 중세 교화 그레고리1세의 즉위까지를 말한다. 교리 논쟁이 본격화 되어 박해를 받을 때에는 교리보다는 신앙을지키느냐가 중요 하였다.대표적인 교부로 아타나시스, 어거스틴 등이다. 교회의 교리가 제도화 되면서 조직화 되어 같으며 교직자가 주요 관직을 소유하게 됨에 수도원 운동이 발전하였고 이런 일들의 성행으로 수도원이 발생하게 이른다. 410년 로마제국의 멸망을 통해 고대 교회사는 끝을 맺지만 암브로우스(340-397), 제롬(354-420),요한 크리소스톰(347-406), 어거스틴(354-430)을 일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갔다.2.중세교회사그레고리 1세의 측위 시(590)부터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1517)까지를 말한다. 그의등장은 교황권을 확장하고 그 권한을 강화 하고 주요 직위에 수도사를 채용하는 등의 일을 하였고 교직자가 된 후 결혼을 금하고 교직 매매를 금지 시켰다. 새로운서유럽의 질서는 정착되어 가며 교황제도와 수도원제도를 통하여 하나의 거대한 국가가 되었다. 이슬람의 침입은 지중해 중심의 질서를 무너뜨린다.(창시자 마호멧;571-632) 유럽의 문화는 지중해에서 서유럽으로 서서히 이동해간다. 샬만 대제 때절정을 이루며 중세 봉건제도와 어울려 1000년을 이끌어간 전통이 된다.샬만통치(768-814)때, 기근과 전염병이 돌았다. 중세의 특징인 봉건제도의 등장이다.특색은 기사계급을 통하여 힘을 모으고 봉건제도를 활성화하여 자신의 영토 내의모든 조직과 방어를 효과적으로 그리고 능률적으로 진행하였다. 통치구조의 단순화를 통한 최소한의 부단을 꾀하였다. 이것은 게르만의 영향으로써 나오는 '충성서약',신종선서란 말로 봉건제도의 상징이 되었다. 교권과 세속 권력의 갈등은 교황제의타락으로 나타나 1305년 교황청은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겨가고 만다. '교회의 바벨론 포로시대'라고 불리 우는 아비뇽 교황청시대가 열린다.언어의 갈등과 문화가 다른 동서방 교회는 예배 시 우상사용, 결혼, 금식, 사순절기간의 빵, 필리오케를 놓고 120여 년간 논쟁한 끝에 분열되고 만다.십자군 전쟁(1차:1096-1099)은 심한 흉년으로 인한 사람들의 내세영향적인 흐름으로바뀌고 성지에 대한 애착에 있는데 당시 예루살렘 성지를 이슬람교도들이 정복한후 순례자를 박해하여 그 성지를 탈환하고자 십자죽임->죽임) 이슬람 세력을 멸종시키려는 생각이 도리어 이슬람교도의 개종과 전도의 어려움을 낳고 대사면으로 중세신학의 큰 영향을 주었다.민족주의 정신과 지리상의 발견, 항해술의 발전으로 도시국가의 산업에서 해상 무역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본을 축척하는 도시인이 생겨났고 스콜라 신학과 대학이 생기고 구라파에 신지식이 전해 졌다(아라비아 숫자).교훈은 기독교 전도는 영토적인 전도가 아니라, 사람의 영혼 구원에 있음을 보여준다.중세의 대학은 십자군 원정을 통해 동방의 문물이 밀려들어와 스콜라 철학의 꽃을피고문예부흥의 열매를 맺게 된다. 학문의 정상은 신학이었고 형식적이라도 대학은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1225-1274) 스콜라 철학을 집대성시키며 이성과 신앙의 관계를 잘 조화시켜 설명 하였다.그레고리11세가(1370-1378)교황이 되던 해 신비주의의 지도자 성녀 캐더린은 자신의 환상을 근거로 교황청 귀환시키는 운동을 전게 한다. 1377년1월17일 아비뇽 포로 시대는 끝이 난다. 이후 교황이 둘이 되는 상황을 겪으며 교회의 권의는 땅에 떨어진다. 중세 말 스콜라 철학의 회의를 느끼는 헬라 철학의 아리스토텔레스(십자군전쟁후)와 플라톤(중세초기)사상은 철학만 아닌 문학, 미술, 조각, 건축에도 나타나게 되었다. 인간에 대한 관심은 문예부흥을 일으키게 했다. 중요 인물로는 단테(1265-1321), 페트라르카(1304-1474), 복카치오(1313-1375), 다빈치(1452-1519), 라파엘(1483-1520), 미켈란젤로(1472-1520),엘라스무스,존 콜라, 토스모어, 멜랑히토, 몽테뉴, 세익스피어등 이다. 중세 말 유럽은 별안간 시대의 개척을 중단하고 소비로 일 관하는 사회를 맞이한다. 이 점은 로마의 말기와 같았다. 백성들은 무거운 종교세와국가세에 시달리고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간이나 전쟁을 하였고 대역병은 종말을 앞당겨 유럽은 새 시대를 기다리고 있었다.3. 근세사종교개혁(1517-1648)은 성경의 절대권위, 이신득의, 했다. 사회의 성행했던 교회의 부패(교직매매, 성직자의 부도덕한 생활, 음행), 교황의 세속화의 모습이 개혁을 필요로 하고 루터의 95개조 항의문이 일반인들이 알 수 있는 글로 인쇄되어 전국에 퍼져 나갈 때 종교의 변화를뛰어 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혁명의 문을 열었다. 종교 개혁의 형태에는루터파:독일의 동부 유럽에서, 칼빈파, 제네바를 중심한 불어권의 프랑스에서(위그너,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등), 쯔빙글리파:쯔빙글리를 중심으로 독일어권 스위스에서, 재세례파:서부유럽 대부분에서, 영국 개혁파:영어권의 민족에서, 예수회:로마교회내 반동 종교 개혁 운동이 있었다. 칼빈의 영적 사상은 인간의 영적 부패, 무조건 선택, 제한된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 성경의 절대 영감, 성경의 권위를 교회의 권위보다 우위에 둔다. 성경의 통일성, 성령의 내제로 성경을 증거 한다, 66권의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인정치 않는다. 교회는 성경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칼뱅의 교회관은 가견적 교회와 불가견적교회로 구분 하였다. 1538년 기독교 강요를 저술하였다. 근대 교회사(1648-1800)에는 청교도 운동이 있었다. 이 운동은 영국교회의 종교개혁을 신학적, 형식적, 제도적으로 철저하게 하려고 한 신교도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카톨릭교회의 요소를 제거하고 미신을 제거하고 정화하려는 주장으로 인하여 청교도 운동이라 한다. 박해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1620) '세계는 나의 교구다' 라는 표어를 갖은 존 웨슬레는(1703-1791) 성화의 교리를 통해 완전한 타락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차별 적이며, 그리스도는 모든 죄인을 위하여 돌아가셨다. 지옥은 그 사람의 책임이다는 말로 자기구원의 확신은 성령을 통하여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신득의를 통한 성화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카톨릭의 개혁은 예수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탄압과 싸움이 일어났고 카톨릭과 개신교의 끝없는 갈등 속에서 처참하고 가장 긴 싸움이 일어.
1장 엔키리디온진정한 기독교의 일반적인 규칙들이 규칙들은 원죄의 잔재인 세 가지 악에 대항하여 가장 강력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선 할 일은 탐구를 통해 피할 것이 무엇인지 식별해서 닫혀졌던 눈을 뜨고 사물들의 기쁨 안에서 정신적인 방황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악한 생각을 미워하고 선한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며 잘 시작되어진 것들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를 인해 연약함은 강화되어 우리가 덕에 들어가지 않느니 차라리 덕의 길을 더 악하게 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첫 번째 규칙. 무지의 악에 대적하기성경의 약속을 믿어라 구원에 속하지 않는 것은 성경에 조금도 없다. 이 규칙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이해하는데 성경을 의존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에 속하지 않는 것은 성경에 조금도 없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그 이외의 어떤 것도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하게 하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믿을지라도 서두르지 말고 여러 시대에 걸쳐 나타난 성경의 확증을 굳게 잡을 때 미래에 대한 예언적인 메시지에 대하여도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될 것이다.두 번째 규칙. 지체하지도 소심하지도 않게 단호한 목적을 가지고 전 마음과 믿음의 마음으로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리라는 각오로 구원의 길에 들어서는 것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우물거리지 말고 즉시 구원의 길로 들어서라. 이러한 것들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유혹으로 인해 취소하지 말아야 하며 이것은 그리스도와 세상의 둘 사이에서 세상으로 갈라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의 선택은 없다. 단지 둘 중 하나의 길을 가야하며 만약 세상이 아니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는 것이 필요하다.우리가 왕자이든 농부이든 간에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닮는 는 것을 달성해야 한다.세 번째 규칙. 가장 악한 세 적에 대하여 항구적으로 싸워야 한다.이 길이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라. 삶은 어차피 고난이기에 누구를 위해 고난을 받겠는가를 선택하라. 이것은 어렵고 슬프나 세상의 편안함을 포기하기 위해집어 전에 사랑하였던 것을 미워하고 도망치고 전율하기 시작했다면, 전에 쓸개 같은 맛이 났던 것이 당신에게 달콤하게 되었다면 이것은 건전함의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면 할수록, 악을 더욱 미워하게 된다. 왜냐하면 죄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경건함을 사랑하기 때문이다.그래서 주께로 가까이 나아오는 자에게 이번엔 그분이 그에게 가까이 오실 것이고(약4:8), 만일당신이 눈 먼 것과 감각의 외침을 굴복시키는 데 강한 노력을 들인다면, 그분은 접근하기 어려운 빛으로부터, 그리고 저 생각할 수 없는 침묵으로부터 시기적절하게 나타나실 것이다.여섯 번째 규칙. 위대한 이름들로 움직이지 말라.그리스도의 모범만을 유일한 삶의 방식으로 삼아라. 믿음에 합당한 도덕성을 창출하며 수단들을 대하는 태도가 그리스도의 모범과 맞아야한다. 죽음, 돈, 사치, 음행, 힘, 세상 정보 등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웃의 유익을 생각하라. 사람이 규정을 돌에 맞추지 않고 돌에 규정을 맞춘다면 거꾸로 된 일이다. 하물며 사람의 도덕성을 예수그리스도께 맞추지 않고 예수그리스도를 사람들의 생활에 맞추려고 한다면 더욱 불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그 어떤 위대함도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그리스도의 기준에 일치한다면 무엇인가 행해진 것은 옳은 것이다. 실제도 대다수를 기쁘게 할 때는 어떤 것이든 의심해야만 한다. 그들의 마음은 기독교의 단순성과 가난과 진리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은 작지만 축복이다. 그 이유는 하늘나라가 오직 그것에만 속하기 때문이다.우리의 이어야할 옷은 그리스도인데 오직 그분 안에만 복된 삶의 모든 방법이 있다. 예외 없이 그 분을 모방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훈련받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원형에 상응할 정도에 이른 누군가를 본보기로 삼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는 비천하게 태어났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었다. 참된 고귀함은 공허한 고귀함을 경멸하는 것을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놀라면 놀랄수록 비천하고 일시적인 것들은 더욱 바뀌게 될 것이다.여덟 번째 규칙. 고난에 불평 하지 말고 감사하라.유혹의 폭풍이 엄습할 때 앞서간 친구들을 생각하라. 가장 큰 악에 의해 고통 받았던 바울과 욥과 제롬 그리고 베네딕트와 프란체스코 그리고 수많은 교부들도 나와 같은 고난을 당했다면 낙심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정복하기 위해 싸워야 할 것이다.아홉 번째 규칙. 신중한 마음을 가지라.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준비하는 마음을 가져라. 방심하지 말고 신중한 삶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악한 것은 계속하여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열 번째 규칙. 말씀으로 무장하라.유혹자를 물리치는 수단으로 망각, 즉각 대항, 기도, 말씀을 통한 응답 등이 좋다. 말씀으로 이루어진 이외의 것들을 준비하는 것은 유익하지 못하다. 기도하거나 거룩한 일에 몰두하는 것 그리고 말씀으로 대적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다.열한 번 째 규칙.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승리 뒤의 위로와 영적 기쁨으로 오만해지지 말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세상을 이긴 자임을 믿고 그 분 안에서 승리하며 그 영광을 그 분에게 돌리는 것이야말로 끝까지 이기는 것입니다. 갈등이 있다면 그리스도께 피하여 그의 자비하심에 모든 승리의 희망을 두어야 한다.열두 번째 규칙. 죄짓지 말고 선을 행하라.만약에 욕심과 탐욕이 유혹한다면 자선을 양을 늘리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이것은 적의 무기를 적에게 되돌려 보내는 것과 같다. 욕심 대신 자선을 허영대신 비하를 보이는 것이다.열세 번째 규칙. 마음의 소망을 품으라.적이 다시 오지 못하도록 마지막 전투처럼 싸워라. 마지막 전투인양 임해야 하는 이유는 승리 후 하나님의 보상으로 다시 싸움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유혹이 찾아온다면 즉시로 사움에 임할 것을 예상해야한다.열네 번째 규칙. 악을 경멸하지 말라.용서될 수 있는 가벼운 죄악이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큰 죄악에 대하여 혐오하는 군중도 가볍고 단순한 간음과 쾌락을 적절히 즐. 그래서 하나는 적으로 하나는 주인으로 세우라. 그렇다면 순결함과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의 친구들의 숫자에 끼고 아들의 특권과 상속 안으로 들어오게 되며 죄를 통해 사탄의 아들과 종이 된다. 하나님의 고나대하심과 부유하심 그리고 온유함의 모든 반대적인 것은 사탄입니다스무 번째 규칙. 경건하라.경건과 불경건의 보상은 불공평하지 않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올라가지 못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준비시킨다. 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불경건한 자들은 구더기는 죽지 않으며 그들은 더 윗 세상의 거주자들 가운데서 그들의 지옥을 견딥니다. 복음서에 언급된 부자가 처벌을 받는 것 외에 다른 불은 없다.스물한 번째 규칙. 현재의 삶은 덧없다.현재의 삶이 덧없음을 생각하라. 얼마나 빨리 흐르고 있음을 기억하라. 죽음이 엄습해오고 있음을 기억하라.스물두 번째 규칙. 회개하라.회개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라. 왜냐하면 마지막 까지 죄악에 끌려가기 때문이다. 악으로 떨어지는 길은 미끄럽다. 내려가기 전 다시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라.수도회 서약에 대한 마틴 루터의 심판/루터복음적인 자유에 위배되는 수도회 서약수도원의 제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만큼, 그리스도인의 신앙에도 반대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스스로 발견해 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 바로 이 같은 사실을 보다 자세히 수도회 서약이 말씀과 믿음의 열매, 즉 기독교적이며 복음적인 자유에 어긋난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 수도원 서약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것, 뿐만 아니라 만약 그것이 본질적으로 기독교적이고 경건하지 않다면 서약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경건은 가장 큰 계명으로 명령하셨기 때문이다.무엇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인가이런 논쟁으로부터, 의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한 어떤 서약도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어떤 서약도 명령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절대는 모든 것에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행위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행함은 무시될 수 없고 믿음과 같이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더러운 것들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비신앙적인 친절함을 신앙적인 친절함으로 만들려는 것이다.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로 매춘, 살인 도적질, 허위, 배신 우상숭배, 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이유인즉 성도가 내적으로 변화되면 행위는 변화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도의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시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이다. 그런데 수도원은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잣대로 오히려 신앙을 판단하고 있다. 그 잣대가 성경에 기초하지 않고 이미 수도원 스스로 세운 잣대이기에 이 서약으로도 성도의 삶을 평가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바리새인들처럼 자신들을 의롭다고 여기는 것일 뿐이다. 겉으로는 수도원의 기준에서 벗어나도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목음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며 반면 자신의 노력으로 서약을 지켜 의롭게 되려 한다면 서약은 그리스도의 행하심에 의지하지 않은 것이므로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수도원에서 경건하게 산다고 해서 아내를 얻은 사람이나 농사를 짓는 사람보다 의롭다고 할 수 없다. 수도원 사람들은 자신들이 결혼한 사람들 , 농부, 노동자와 같은 계급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다른 계급에 속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혼을 거부했다. 하지만 수도원에서 인내한 세월이 하나님으로부터 존중을 받는다고 할 수 없다. 서약이 더 높은 계급에 속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주장 또는 논증/토마스 뮌처주장 또는 논증코마스 뮌처의 주장 또는 논증은 아래의 22가지로 구성되어져 있다.1.주님을 순수하고 올바르게 경외하라.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갈망은 사도적 기독교의 확고한 표식이요 택자의 출발점이다. 악의 자식들에 의해 희망을 잃고 무색하게 된다면 가라지가 무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듯을 따르려는 마음 속 깊은 다.